소설리스트

괴물 아가씨와 성기사 (93)화 (93/128)

둘 다 이 정도까지 흥분한 건 처음이었다.

허리와 뒷목을 휘감아 쥔 리온은 고개를 깊숙이 숙여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깊이, 목구멍까지 닿을 듯 박힌 혀가 젖은 입 안을 찍어누르는 소리가 야릇했다.

“…흑.”

키가 작은 베로니카는 목도 허리도 잔뜩 뒤로 젖힌 채 그의 목에 매달렸다. 발꿈치를 드느라 힘을 준 종아리가 부들부들 떨리다 풀리는 찰나 그가 그녀의 엉덩이를 받쳐 올렸다.

다리로 허리를 감싸 안은 건 단지 바닥에 떨어지지 않으려는 본능이었다. 그게 얼마나 야한 자세인가를 깨닫기엔 하얘진 머리가 사고를 거부했다.

리온은 그대로 침대로 걸어가면서 그녀의 달아오른 귓불을 깨물고 핥았다. 간지러웠다. 그가 자국이 남도록 빨기 시작한 목덜미에서 전류가 짜릿하게 솟구쳤다. 절로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하아, 아….”

떨어지기 싫은 것처럼 절박하게 매달리자 그는 그녀를 눕히는 대신 안은 그대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베로니카는 그의 허벅지 위에 앉은 채 등줄기를 느릿하게 훑어내리는 손길에 허리를 뒤틀었다. 단단한 손은 옷 안으로 들어와 날개뼈며 허리를 부드럽게 그려 냈다.

기분이 좋았다. 몸은 천천히 그러나 착실하게 달아올랐다.

낯선 스스로가 무서워질 정도로.

“이거 계속해 줘요. 기분 좋아.”

그의 품에 고개를 묻은 채 무력하게 웅얼거렸다. 옷을 벗지 않은 상태라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얇은 흰 천 위로 손 모양이 그대로 도드라졌다.

리온은 마치 그녀를 빚어내는 신처럼 손을 미끄러뜨렸다. 야윈 배와 가늘게 들어간 허리와 오뚝한 쇄골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정말 만져 줬으면 하는 곳엔 아무리 기다려도 온기가 닿지를 않았다. 주위만 둥글게 배회하는 손길에 베로니카는 검은 튜닉 자락을 찢어질 듯 세게 움켜쥐며 밭은 숨만 흘려보냈다. 으스러지도록 잡아 줬으면. 살아 있음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고통스럽게.

고개를 든 순간, 가까운 곳에서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꽉 잠긴 심연은 달아오르는 얼굴을 관찰하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술을 겹쳤다.

“읏.”

분명 그는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해 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미칠 것 같다고 칭얼거릴 때까지.

풀린 눈으로 숨을 섞던 베로니카는 천천히 그러쥔 옷자락을 놓았다.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보채는 행위가 손을 원하는 곳으로 이끌었다. 마침내 여린 살결에 그가 닿은 순간, 새카맣게 가라앉은 적안에 번득이는 불이 붙었다. 아찔할 정도의 악력이 이성을 뚝 끊어 버렸다.

자연스럽게 등이 시트에 닿으며 옷자락이 말려 올라갔다. 서늘한 숨이 예민한 살갗에 닿았다. 그의 체취가 숨과 심장을 멈추고 머리까지 어질어질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아마도 바람이 불지 않는 태풍의 눈.

한 발자국만 잘못 내디뎌도 휩쓸리고 말 거야.

***

엄밀히 말하자면 리온 베르크는 사랑을 말한 적이 없다. 분명 앞으로도, 영원히.

그건 그의 감정과는 무관한 일이다. 신의 기사는 인간을 사랑해선 안 되니까. 신념은 누군가에게 있어서 의지가 아니라 숙명의 문제니까.

슬펐다. 알고 있었음에도 사람 마음이란 정말이지 간사했다.

얼마 전까진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테니 살려만 달라 청했는데. 이제는 그의 사랑까지도 신의 손끝에서 갈취하고 싶다니.

“…아….”

베로니카는 옆으로 누운 채 몸을 둥글게 말았다. 아직도 가슴에 고개를 묻고 있는 남자의 머리를 꽉 끌어안았다. 절정의 여운이 남은 예민한 몸은 집요하게 괴롭히는 감각을 버거워했다.

아무리 헐떡여도 놔주지를 않아서 그의 머리칼은 이미 엉망이었다. 베로니카는 헝클어진 머리칼에 다시 한번 손가락을 밀어 넣으며 끙끙대고 앓았다. 불 앞에서 무력해지는 건 일렁이는 찬란한 생명력 때문이다.

그래서 자각이 늦었는지도 모른다. 열이 나는데 이렇게 무리해도 괜찮은가, 그렇게 아파했는데 이 정도로 빠른 회복이 말이 되나 따위의 불안들.

가만 생각해 보면 미심쩍은 구석이 많았다. 요아힘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교회의 성물은 모두 대가를 요구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메마른 입술을 열어 리온에게 물어보려는 순간이었다.

“리….”

꼬르륵.

배가 요란하게 울면서 그의 이름을 잡아먹었다. 리온의 움직임이 뚝 멎으며 쥐 죽은 듯한 적막이 흘렀다. 귓불이 화끈 뜨거워졌다. 베로니카는 내적 비명을 질렀다.

눈치 없는 위장아. 분위기 파악 좀 해!

“…….”

그리고 그에 응답하듯 이번엔 배가 더 크고 신나게 울었다. 베로니카는 포기하고 눈을 감으며 어물거렸다.

“생각해 보니까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단 말이에요….”

리온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놀려도 골백번은 놀려야 할 남자가 조용한 게 이상해서 슬쩍 눈을 떴다. 베로니카는 의아한 시선을 내리고 그를 다시 불렀다.

“리온?”

역시 아직 아픈 건가 걱정이 고개를 쳐드는 순간, 미세하게 흔들리는 어깨가 시야에 박혔다. 베로니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너른 어깨가 들썩이더니 이윽고 낮은 웃음이 흘러나와 심장을 적셨다. 고개를 든 남자는 말 그대로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서늘한 얼굴이 그렇게 풀어진 건 처음 봤다. 베로니카는 안 그래도 달아오른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중얼거렸다.

“자연스러운 생리 반응이에요. 웃지 마요.”

“그렇게 배고팠으면 말을 하지.”

“어떻게 말해요. 아까 그런… 그런, 아무튼 진지한 상황에서.”

약 오른 베로니카가 정확히 말하지 못하자 리온이 피식거리며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은 뚜껑이 덮인 탁자를 보는 것 같았다.

“일어나. 안 그래도 남겨 둔 게 있으니까.”

그가 곧바로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베로니카는 얼결에 일어나 앉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남겨 둔 음식이 있다고? 아니, 그보다 방금 그 상황에서 그렇게 빠르게 태세를 전환한다고?

그에게 잡혀 있던 몸은 아직도 얼얼하게 달아올라 뜨거웠다. 그러나 리온의 경우엔 방금까지 그녀를 몰아붙이던 남자라곤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행동이 빨랐다.

대충 바지를 꿰입은 그는 음식을 데우기 위해 화로대에 빵과 냄비를 매달았다. 베로니카는 갸웃하며 물었다.

“…계속 궁금했는데. 인내심이 특출난 거예요? 아니면 몸을 가라앉히는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어요?”

“가라앉은 걸로 보여?”

나지막한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주르륵 아래로 미끄러지던 시선은 리온이 뒤 돈 순간 화들짝 놀라 다시 위로 올라갔다.

“아, 물론 비결도 존재하긴 하지. 주로 기도문을 외우거나 그것도 안 되면.”

안 되면?

“교황 성하를 떠올리거나.”

켈록, 베로니카는 목을 축이려고 잔을 들었다가 사레가 들어 미친 듯이 기침했다. 물인 줄 알고 마셨던 액체는 심지어 술이었다. 눈꼬리에 눈물을 매단 베로니카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자 리온이 씩 웃었다.

“기사단 내에선 꽤 유명한 방법이지. 백 년을 묵은 욕정도 단숨에 식을걸.”

잔기침은 이내 웃음으로 번졌다. 베로니카가 키득거리다가 중얼거렸다.

“가끔 진짜 미친 사람 같아요.”

“고마워.”

“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미쳤다는 말이 칭찬으로 들려요?”

“미쳐야 세상 살기 편하다는 점에서?”

리온이 특유의 평연한 태도로 대답을 넘긴 뒤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침대를 짚은 채 화로를 깊게 응시하는 그의 옆모습은 마치 불꽃에서 태어난 인간처럼 보였다. 강렬한 원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일렁이는 음영이 그의 벗은 상체로 흘러내렸다.

“인간은 미쳐 있는 편이 좋아. 그게 뭐든 간에.”

리온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가 그녀가 들고 있던 술잔을 가져가 마시는 동안 베로니카는 그의 말을 되풀이해 생각했다. ‘좋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꿈이나 일에 푹 빠져 사는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긴 했다. 그게 신이든, 가족이든, 우정이나 취미생활이든, 인간은 사랑할 때 가장 아름답다. 광기에는 어느 정도의 사랑이 포함된 셈이었다.

냄비가 부글부글 소리 낼 때까지 한마디 대화도 없는 적막이 내려앉았다. 침묵이란 쉽게 어색해지기 마련인데 베로니카는 도리어 형언하기 어려운 평온함을 느꼈다. 리온이랑은 언제나 그랬다. 별 얘길 안 해도 시간이 흘렀다. 저절로.

“황제가 바하무트로 투기를 벌였어요.”

내밀한 공기에 힘입어 말이 튀어나왔다. 리온은 흘긋 시선을 움직였다.

“그러다 그것들이 눈을 떴고… 황제가 죽었어요. 동화된 황녀한테 찔려서요.”

“넌 왜 거기 있었는데?”

“이럴까 봐 갔던 거예요. 물론 사고를 막지는 못했지만.”

리온은 술잔을 찰랑이다가 말없이 끝까지 들이켰다. 곧게 뻗은 목이 꿀꺽꿀꺽 울대를 일렁였다. 그게 다였다.

“안 놀라네요. 대뜸 요약해서 피해만 말했는데도.”

“별로 피해랄 것도 없잖아. 네가 다친 것도 아닌데.”

입술을 축이는 혀를 보며 베로니카는 헛웃음을 흘렸다. 황제의 서거가 어떤 의미인지 아냐며 길길이 날뛰던 필립과는 정반대의 느슨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황녀와 일부 귀족들이 동화됐어요. 아직은 살아 있겠지만 머지않아 죽겠죠. 인사하러 가고 싶으면 마지막 기회이기도 해요.”

거기까지 말하고서야 베로니카는 문득 깨달았다. 필립의 당부와 상관없이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 그건 그냥 리온이 요한나에게 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왜 가야 하는데?”

리온의 나직한 물음이 떨어진 건 그때였다. 왜인지 그 목소리에 불만이 배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베로니카는 고개를 들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건 아는데 그래도 받은 선물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긴 하잖아요.”

“선물?”

“토벌전 때 받은 손수건이요.”

베로니카는 여전히 그의 검에 매여 있는 그슬린 손수건을 눈짓해 보였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간 리온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그건 네가 준….”

순간 싸한 침묵이 흘렀다. 마주치는 눈 속에 혼란과 깨달음이 동시에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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