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여기가 황실 서고인가요? 생각보다 작은데….”
“본 서재는 본궁에 있습니다만, 역사적 기록물은 소실의 위험을 고려하여 모든 궁에 필사본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여긴 실제로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창고에 가까운 장소입니다.”
사람도 잘 드나들지 않는지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나는 방이었다. 책장은 천장 끝까지 닿아 있었고 크기는 사람이 서른 명쯤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베로니카는 군말 않고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흘끔거리던 시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 버렸다. 독하다는 눈빛이 절로 읽혔다. 베로니카는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온종일, 요한나 황녀가 질릴 때까지 춤을 춰야 했다. 발은 피투성이가 됐고 온몸은 땀에 절었다. 어쩌면 내일도 이 일을 반복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베로니카는 늦은 시각에도 불구하고 서고를 찾아왔다. 쓰러지기 전에 가진 기회를 이용해야 했다.
절뚝거리며 걸어가 책장에 써진 연도를 살폈다. 지금은 신력 1521년. 광야의 석상은 정확히 20년 전의 여름에 머리를 잃었다.
몇백 년의 크고 작은 역사가 잉크로 응집된 곳이었다. 베로니카는 어렵지 않게 비교적 최근에 해당하는 1501년의 기록물을 찾아낼 수 있었다. 겉면에는 기록을 맡았던 사관과 황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뭔가 있을 것 같던 기대와는 달리 신상에 대한 예언은 베로니카가 익히 아는 내용만 적혀 있었다. 광야가 개방되자마자 들어간 인파가 목 없는 신상을 발견했다. 끝.
뒤로 가도 마찬가지라서 베로니카는 이번엔 책장을 앞쪽으로 넘기기 시작했다. 그해 초부터의 기록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폈다. 타국과의 무역부터 각종 판결까지.
그러다 광야가 개방되기 한 달 전의 기록에서 흥미로운 단락을 찾았다.
신력 1501년, 7월 4일.
한낮의 태양이 검게 가려져 세상이 어두워졌다. 지속 시간은 매우 짧아서 양초가 5라차드(약 1.5센치) 정도 녹았을 즈음 하늘이 원래의 빛깔을 되찾았다. 세상이 망할 징조라 하여 민심이 술렁이자 빌헬름 1세가 거짓을 예언하는 자들을 잡아들이라 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