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아가씨와 성기사 (32)화 (32/128)

눈이 마주쳤다. 분명히. 그 순간에 모든 소리가 휘몰아쳐 사라지며, 산맥에는 내려다보는 ‘그것’과 올려다보는 그만이 존재했다. 뚫어지게 응시하던 리온이 검을 털어내고 발을 디디는 순간이었다.

“대장님!!! 이런 제기랄, 누구든 이리 와서 힘을 보태라! 제발!!!”

누군가의 간절한 외침이 쩌렁쩌렁 귓가로 파고들었다. 고개를 틀자 바하무트 네 마리가 샌드위치처럼 기이하게 포개진 모습이 보였다. 옆에서는 로버트의 부관이 미친 듯이 검으로 그들을 베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오히려 점점 더 많은 바하무트들이 그 위로 덤벼들어 몸을 포갰다. 부대장 또한 로버트를 구하려다 무리에 휩쓸렸다.

바하무트는 키도 무게도 인간보다 월등하다. 두 마리만 붙어도 보통의 성인 남자는 몸이 짓눌려 죽는다.

이미 은으로 도금한 철제 갑옷이 버틸 시기는 지났다. 바하무트들이 계속 쌓이자 지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리온은 바닥에서 우그러졌을 로버트를 쉽게 예상했다. 이대로 두면 지휘관을 잃어 우왕좌왕할 파견대의 미래까지도.

하지만 그간 쫓던 ‘그것’이 지금 저 앞에 있다.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알고 있잖아. 네 선택으로 모두가 죽을 거야. 그리고 ‘그것’도 놓치고 말겠지. 티란에서처럼.

내면의 목소리가 뇌까렸다. 아셀도르프에서 시민들을 버리고 죄책감에 시달린 건 그 여자뿐만이 아니었다. 리온은 냉정하게 전투가 끝나기까지 꼭대기에 오를 수 있을지 가늠했다. 파견대를 지휘할만한 인간이 남아 있는가도 확인했다. 그리고 선택했다. 악문 이가 비틀린 소리를 냈다.

리온은 주인 잃은 로버트의 말에 훌쩍 뛰어올랐다. 이제 위쪽에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말을 달려 대열을 정비하며 외쳤다.

“방패를 들어라! 지금부터 산을 내려간다!”

기사들은 갑자기 바뀐 지휘관에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신의 검 아포칼립시스가 기다란 날을 세우자 금세 정신을 차렸다. 그는 묵시록의 붉은 기사이자 신의 사자 리온 베르크였다. 신이 선택하고 카르트가 사랑한 기사였다.

“위로 떨어지는 개체는 베고 대열 안으로 접근을 허용하지 마라!”

리온이 검을 높이 쳐들며 외쳤다.

“데우스 노비스쿰 에리트!(신은 우리와 함께하신다!)”

팔라딘의 심장을 뛰게 하는 문장이 대기를 관통했다. 파견대는 같은 말로 화답했다.

“데우스 노비스쿰 에리트!!!(신은 우리와 함께하신다!!!)”

신의 검 앞에서 강철 날들은 똑같이 포효하며 일제히 올라갔다. 백여 개의 심장이 하나가 되어 타올랐다. 불처럼. 어둠을 밝히는 하나의 불꽃처럼.

***

베로니카는 리온이 비탈길을 내려가는 모습을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젊은 기사들은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대열을 흐트러뜨리지 않았고, 바하무트가 파고들 틈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았다.

리온의 통제는 완벽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긴장으로 숨을 죽였다. 너무 많은 바하무트가 한데 쌓여서 지반이 주저앉기 직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래지 않아 쿠구궁, 하며 흰 비탈에 거미줄처럼 금이 가더니 눈 깜짝할 새에 가장 마지막에 내려가던 리온에게까지 뻗어 나갔다.

베로니카는 내적인 비명을 질렀다. 바닥 전체가 산사태처럼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가 잘 피했는지 아닌지는 이제 육안으로 알 수 없게 되었다. 그저 신께 기도할 뿐이었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부디 당신의 기사들을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다행스럽게도 바하무트들은 더는 파견대를 쫓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들의 진짜 사냥감은 리온이 아니었으니까.

베로니카는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떼어 내어 반대편 산면을 바라봤다. 그 길은 고도가 훨씬 낮은 평지로, 너머에 성도가 보이는 단단한 암석 지대였다.

리온의 파견대가 한눈에 봐도 스무 살쯤 된 젊은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메클렌부르크가 이끄는 기사들은 그의 휘하에 있는 카르트에서 가장 명망 높은 기사들이었다.

과연 전투는 화려했다. 선두에 선 기사단장이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십여 마리의 바하무트가 베여 나갔다. 그뿐인가. 용맹한 철퇴가 목구멍에 박혀 심장을 으깼고. 사슬로 팽팽 감아 당겨 비틀어 조이는 자도 있었다. 누군가의 화살은 백발백중으로 심장을 깨뜨렸다. 그러나 죽어 버린 십여 마리 위로 이십 마리가 더 밀려드는 식이라, 퇴로를 뚫으려는 시도는 벌써 여러 번 막힌 참이었다.

죽여도 죽여도 바하무트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말과 기사들에게 자살을 무릅쓰고 엉겨 붙었다. 사실상 전투가 아니라 자폭이었다. 인간은 무적이 아니다. 특히나 이만큼의 양이 위아래와 앞뒤 좌우에서 쏟아져 나올 때는 더더욱.

베로니카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기사단이 느리게 무너져 가는 모습을 똑똑히 두 눈에 담았다. 창대가 부러지고 흰 깃발이 붉게 물들었다. 인간의 두 배나 되는 크기의 괴물들이 기사들의 팔다리를 당겨 뽑고 투구를 벗겨 머리를 뜯어먹었다. 그것은 심연의 지옥을 묘사한 어느 예술가의 그림 같았다. 화폭에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로 비극이 그려졌다.

대륙의 검사들의 심장을 뛰게 했던 신성 기사단은 낭만 없이 스러져 갔다. 베로니카는 그 안에서 말이 쓰러지자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메클렌부르크를 발견했다. 위와 사방에서 그에게 수십 마리의 바하무트 떼가 달려들었다. 신검 헤네시스가 높이 치솟아 허연빛을 냈다. 그리고 그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높은 검은 어느 순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죽음이다. 새까맣고 아무것도 없는 죽음이다.

명예롭고 긍지 높던 기사의 최후라기엔 지나치게 끔찍했다. 그가 얼마나 고귀하고 오만한 인물이었는지 기억하기에 더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하늘을 날던 독수리의 추락과도 비슷했다. 어느 날 아침, 도시의 뒷골목에서 거리의 비둘기처럼 비천하게 떨어져 죽은 사체를 본 기분이었다. 아, 창공을 호령하던 존재 또한 땅에 속한 짐승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만드는.

살색의 뼈 가죽이 새하얀 화폭에 우글거렸다.

그들은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 그것이 인간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나’를 지키고자 하는 생존 본능이 바하무트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으니 사라지는 일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옛이야기에 나오는 무덤에서 일어난 망자처럼 기사들에게 덤벼들었다. 육중한 이빨로 갑옷의 강철을 씹고 손으로 살점을 찢었다. 그 전투에는 형용할 수 없는 그로테스크함이 존재했다.

처음에는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지 못했던 베로니카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만큼, 산의 한 면을 뒤덮을 만큼 많은 수가 집결했음에도 소리가 없다는 걸.

바하무트는 소통하지 않는다. 마치 하나의 생물처럼 움직였다.

따라서 수천 개의 기척이 일제히 멈췄을 때, 베로니카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끝났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끝이 났다. 절벽에서 뛰어내리자 아찔한 감각이 울렁이며 몸을 휘감았다.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도달한 그녀는 갈라지는 무리 사이를 지나갔다. 바닥에는 짓밟힌 고깃덩이가 피와 함께 눌어붙어 곤죽이 되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진득한 신경 줄 같은 것이 발바닥에 달라붙어 늘어났다. 말이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모조리 짓눌리고 흩어져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한 곳에서 걸음이 멈추었다.

바닥을 본 베로니카는 비명을 참았다. 눈을 감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바하무트는 물고기처럼 눈꺼풀이 없기 때문이다. 마구 박살 나고 짓밟혀 형태가 남지도 않은 사체 위로 새빨갛게 변색한 검만이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허리를 구부려 검을 들어 올렸다. 수천 쌍의 눈이 그녀를 바라봤다. 악몽 속 아셀도르프의 시민들이 그러했듯이. 전율시키는 눈이다.

작은 검을 빼앗기고 카르트는 무너지리라.

하나가 실현되었고 이제 다른 하나가 남아 있었다.

***

베로니카는 어둑한 바닥에서 신음했다. 오스카는 그녀가 마침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차라리 잘되었다.

의식을 잃은 지 벌써 사흘째였다. 그사이 리온의 파견대는 귀환했지만 후발 주자인 기사단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리온은 산에서 다수의 바하무트를 맞닥뜨렸다고 보고했다. 파견 대장과 부대장이 죽었고 심지어는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스무 명의 사상자까지 생겼다. 불면증을 앓던 교황의 귀에 결코 듣기 좋은 자장가는 아니었다.

안절부절못하던 교황은 결국 불길한 예언을 한 여자의 ‘교화’를 명했다. 오스카는 당혹했다.

자는 여자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회개할 의식도 없는 인간에게 교화형이라니.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리온을 기다렸으나 그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교황은 오스카에게 직접 채찍을 휘두르라고 명했다. 어차피 일반 고문관들은 감당할 수도 없는 힘이었다. 신의 기사 중 하나가 나서야만 했다.

충성을 맹세한 몸이기에 오스카는 교황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다. 그는 리온과는 달랐다. 생각하지 않는다. 판단하지 않는다. 사망의 골짜기로 향하라 하시면 따를 뿐이었다. 오스카는 결국 정신 잃은 무결한 여자의 등에 채찍을 휘둘렀다. 옷이 찢어지고 피가 튈 때까지. 가녀린 등이 고통에 여리게 떨고 신음이 흩어질 때까지. 그것은 단언컨대 교화가 아니라 폭행이었다.

“날 동정하죠?”

팍, 손등에 튄 핏방울이 뜨거웠다. 채찍을 든 손 위로 단단한 힘줄이 섰다.

“당신은 지금의 상황에 어느 정도 불합리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쓸데없는 얘기까지 해 주는 거예요.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고통받는단 사실이 마음에 걸려서.”

단단한 적안이 떠올라 눈을 질끈 감았다.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했다.

“그래서 죽어도 마땅하다는 건가요?”

오스카는 채찍을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 후, 그것은 힘없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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