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아가씨와 성기사 (12)화 (12/128)

떨리는 손가락을 어쩌지 못해 부들거리다가 옷자락을 거세게 말아 쥐며 끙끙 앓았다. 머릿속이 곤죽이 되었다. 아랫배가 아릿하게 뭉쳐 오는 감각에 연신 더운 숨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다른 사람과 입을 맞춰 본 적이 없대도 이 충동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쯤은 알고도 남았다. 의지를 벗어난 무언가. 차라리 죽고 싶어지는 비참한 욕구.

모를 수가 없다. 베로니카는 거리에서 봤던 흘레붙는 개의 헉헉거림을 떠올렸다. 이건 짐승의 발정과도 흡사했다.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바하무트의 식욕은 분열을 위한 것. 그 식욕이 강제로 억눌리면서 번식욕이 다른 식으로 표출되는 것이리라.

그냥 인간도 아닌, 더 월등한 능력을 가진 인간을 잡아먹고 싶은 충동. 그의 성력이 달콤하다. 가지고 싶다. 그러니 당신도 나와 같은 충동을 느껴야 해.

“하으….”

목에서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교태 어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눈이 풀리고 옷자락을 잡고 있던 손은 어느새 남자의 목을 뱀처럼 휘감았다.

홀린 듯 받아 주던 리온은 호흡이 모자란 베로니카가 입술을 떨어뜨렸을 때 겨우 열기의 맥을 끊어 낼 기회를 잡았다.

밀어내는 게 얼마나 효과 없는지 학습한 남자는 이제 어깨를 꽉 끌어안아 그녀를 내리눌렀다. 머리를 제 품에 누르고 허리를 바싹 당겨 안는 손길이 뜨거웠다. 베로니카는 불만스레 칭얼거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요.”

“알아, 잠깐만 가만히 있어.”

베로니카는 속박된 채 발버둥 쳤다. 머스크향과 비슷한 남자의 체취가 폐부로 흘러들어오며 몸의 안팎을 휘감았다. 헉헉거리는 가쁜 숨소리. 불규칙한 박동 소리. 전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둘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기이하게도 충동은 차츰 사그라들었다.

혼자가 아니다.

수치심이나 부끄러움 따위는 없었다.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 기관이 고장 나 버린 것 같았다. 아, 또다. 이대로 이 남자에게 파묻혀 죽어 버리고 싶다.

둘 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몰아쉬는 숨소리만이 귓가를 벼락처럼 울렸다. 덜컹대는 나무판자 소리를 멍하니 듣던 베로니카는 달아오른 뺨에 닿아오는 서늘한 감촉에 정신을 차렸다.

리온이 그녀의 뺨을 느릿느릿 쓸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금 조각을 길거리에서 주운 소년처럼. 어둠 속에서 형형한 안광이 탐욕으로 번득였다.

“원래 이렇게 생겼어?”

“무슨 뜻이에요?”

“동화 전에도 원래 이렇게….”

리온은 무어라 말을 하려다 말고 홀린 듯이 붉은 눈에 엄지를 가져다 댔다.

“눈 때문인가.”

올려다보던 베로니카는 손이 다가오자 반사적으로 눈을 내리감았다. 리온은 예상한 것처럼 눈알의 윤곽을 따라 눈꺼풀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정점을 만지듯 예민한 손길은 미세한 떨림과 구르는 눈알의 감촉을 즐겼다. 그대로 속눈썹까지 스치자 그녀의 붉은 입술에선 연신 가쁜 호흡이 이어졌다.

리온이 탁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면 그냥 내가 네 얼굴을 좋아하는 건가.”

붉은 눈이 가려졌어도 특유의 고혹적인 분위기는 여전했다. 화려한 미인은 아니다. 다만 남자를 질질 홀릴 표정과 몸짓을 지을 줄 알았다.

아마 누구라도. 다리 사이에 뭔가 달린 사내새끼라면 모두가 발갛게 흐트러진 그녀와 자고 싶어 허리를 흔들며 몸 달아할 것이다.

리온은 그렇게 제 욕망을 합리화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제 부자연스러운 의지로 찍어누르면 그뿐.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싶은 손을 억지로 떼어 내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여자의 뒷머리를 당겨 품에 안았다. 보드라운 머릿결 속으로 커다란 손이 파고들었다. 자그마한 온기가 순순히 품에 안겨 오자 형용하기 어려운 평온이 퍼져나갔다.

리온은 천천히 기다란 숨을 내뱉었다. 뻐근한 하체를 무시하며 눈을 감았다.

바람이 윙윙거리며 헛간을 위협했다.

***

베로니카는 리온의 말을 생각했다.

“난 죽어 버릴 동물 이름은 안 불러.”

그러고 보니까 당신, 내게 이름을 물어본 적이 있었나?

“깼으면 그만 일어나.”

깜깜한 세상에서 잠긴 저음이 들렸다. 베로니카는 뻑뻑한 눈을 게슴츠레 뜨며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얕게 깨어 있었음에도 눈을 뜨자 아주 오랫동안 자고 일어난 기분이 들었다.

해가 떴는지 세상은 새파랬고 공기에선 새벽 냄새에 섞여 남자의 체취가 느껴졌다. 불쾌하기보다 오히려 좋았다.

누군가에게 깊이 안겨 본 건 아주 어린 시절 이후로 처음이다. 그것도 이렇게 밤새도록. 부모님도 해 주시지 않았던 일이다. 뜨거운 물에 담긴 듯 따뜻한 체온이 전신을 휘감고 고였다. 그것은 도랑에 고인 빗물처럼 평온한 빛을 띤다.

“환상은?”

리온이 나직이 물었다. 기분 탓인지 평소의 날 선 예리함이 조금 누그러진 느낌이었다. 부스스하게 흐트러진 머리 때문인가. 처음으로 그가 인간적으로 보였다.

“못 봤어요.”

홀린 듯 올려다보던 베로니카는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자그맣게 대답했다. 환상도, 충동도 없었다. 리온은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는 대신 허리를 둘렀던 팔을 치우며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옆이 텅 비며 온기가 떠나간 자리가 아쉬웠다. 늑대 털 망토는 또다시 베로니카의 차지가 되었다.

리온은 잠기운을 몰아내려는 듯 마른세수를 한 뒤 이마 위로 헝클어진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움직임에 따라 솟아오르는 어깨와 등의 윤곽이 도색적이었다. 검은 튜닉의 얇은 옷감은 한 겹 아래 촘촘히 짜인 남성적인 근육을 미처 가리지 못했다.

남자라는 생물을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기분이 들었다. 세상의 반을 차지하는 성별인데 왜 새삼스레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밤새 안겨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게 온몸을 감싸 주는 온기는, 어른으로서는 이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으니까.

만져 보고 싶다는 기이한 충동으로 손끝을 뻗은 순간이었다. 리온이 슬쩍 고개를 틀었다.

“왜?”

베로니카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화들짝 놀라 손을 내렸다. 일순 현실감이 밀어닥치며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미친 거 아냐?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거야?

희미한 후회는 다급하게 용건을 끄집어냈다.

“배가 고파서요.”

하지만 뱉고 보니 얼굴은 더욱 뜨거워졌다. 대륙법까지 들먹이며 성인이라고 따졌으면서 배고프다고 어린애처럼 칭얼대는 꼴이라니.

“물론 요리를 해 달라는 말은 아니고. 뭘 먹을지 정하면 저도 도울게요.”

재빨리 자존심을 세우자 빤히 보던 리온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기분 탓이 아니다. 막 자고 일어났을 때의 남자는 평소보다 느슨하다.

“귀찮게 하지 말고 앉아 있어. 부상이 덧나면 버리고 갈 거니까.”

불을 피우려는지 리온은 마른 짚을 얼마쯤 들고 일어섰다. 뒷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문득 목덜미를 더듬었다.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타닥타닥, 잘 데워진 훈제 생선이 고소한 냄새를 풍겼다. 버터를 발라 구운 대구는 제철이라 그런지 풍미부터 남달랐다. 여린 살을 베어 물자 담뿍 흘러나온 육즙이 입 안을 적셨다.

베로니카는 허겁지겁이라 해도 좋을 만큼 맛있게 생선을 먹었다. 그러다 마지막 덩이를 집었을 때는 리온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단 걸 깨닫고 머뭇머뭇 변명했다.

“따뜻한 집에서 먹을 땐 별로 안 좋아하던 음식인데 추운 데서 먹으니까 맛있어요.”

“요리하는 사람이 다른 건 아니고?”

리온이 되묻자 베로니카는 반박하지 못하고 흘끔 그를 노려보았다. 집 안의 요리사를 욕하는 말인데 그 요리사란 자신이었으므로.

한편으론 의외란 생각도 들었다. 남자가 간단한 요리라도 하는 건 처음 봤다. 그와 같이 있으면서 계속 처음 겪는 것만 늘어 간다. 첫 군마, 첫 여행, 첫 입맞춤.

“카르트로 갈 거야.”

마지막 덩어리를 꿀떡 삼켰을 때, 리온이 성도이자 수도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어쩌면 예상하고 있었다. 아셀도르프에서 나온 후로 그는 망설임 없이 북쪽으로 말을 몰았으니까.

베로니카는 잠잠히 앉아 머릿속에 행선지를 잇는 지도를 그려 보았다.

애초에 출발한 베이른이 대륙의 극동에 있고, 얼마 전에 떠나온 아셀도르프는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서쪽에 있다. 성도 카르트는 여기서 정북 방향.

직선거리로는 대략 닷새 거리지만 문제는 중간에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광야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광야를 피해 빙 둘러 간다는 전제하에 이주는 걸릴 거다.

“식량이 모자라진 않을까요? 멀쩡한 도시에 들른다고 해도 이젠 돈도 없는데.”

“안 모자라. 광야를 가로지를 거니까.”

갸웃거리며 던진 질문에 리온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를 뻔했다. 물이 잘못 넘어가 거하게 콜록거린 베로니카가 입을 가린 채 당혹한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물었다.

“미쳤어요?”

이 남자 진짜 사이비 아냐?

“사제를 앞에 두고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지만, 광야는 대신전이 있는 신성한 땅이에요. 그렇게 아무렇게나 들어갔다간 벌 받는다고 들었어요.”

“벌을 내리려면 내리라고 해. 신성한 땅이든 더럽혀진 땅이든 지금은 신경 쓸 시간이 없어.”

어이가 없어서 입만 벙긋거리는데 타닥거리는 불에 눈을 끼얹은 리온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넌 네 고향을 덮친 바하무트들이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지?”

느닷없는 물음에 베로니카는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상식적인 부분 아닌가.

“그야 당연히 바다에서 왔겠죠. 바다밖에 없잖아요. 육로는 남부 전선이 꽉 잡고 있으니까.”

“티란이 진작에 뚫렸다면?”

일순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정적이 흘렀다. 남쪽 바다에서 올라온 괴물. 그들과의 전쟁은 언제나 머나먼 남부 땅의 일이었다. 나머지는 안전했다. 왜냐하면 그곳엔 천혜의 요새 티란이 있으니까. 성기사들이 지키는 땅이니까.

핏기가 서서히 가시는 얼굴을 보면서 리온이 거듭해서 질문했다.

“여기서 남부로는 전부 먹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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