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던 시민들은 그야말로 혼비백산해서 비명을 질렀다. 평화로운 한낮에 어울리지 않게 허둥지둥 도망가는 모습이 꼭 잔잔하던 수면에 돌이 떨어졌을 때의 물고기들 같았다.
머리가 아뜩해졌다. 베로니카는 입을 벌리고 사체를 바라봤다. 눈밭에 붉게 흐르는 피. 성기게 뜯긴 목.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바로 며칠 전에 토할 정도로 많이 봤으니까. 저건. 저 흔적은.
“들어가.”
그건 명령이었다. 리온이 검을 뽑아 들자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은날이 번득였다. 베로니카는 검광에 눈이 먼 사람처럼 그대로 얼어붙었다.
리온의 뒤에 선 채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갑자기 빛을 본 어린 짐승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누가 발목을 꽉 붙든 것처럼. 쿵. 쿵. 쿵. 심장의 박동을 닮은 규칙적인 걸음이 다가온다. 끝이 조금 끌리는 인간보다 묵직한 발소리.
“바, 바하무트다!!!”
“애들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가!”
“도망쳐!!!”
사람들이 새된 고함을 질렀다. 혼란은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어린아이의 울음과 황급히 문을 쾅 닫아걸어 잠그는 소리가 귓가에 똑똑히 들렸다. 베로니카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좁다란 골목 사이로 걸어 나오고 있는 형체는 틀림없이 바하무트였다. 하지만 어떻게? 성벽이 있는데. 저렇게 높고 두껍게 쌓았는데. 성벽이 뚫렸다면 이렇게 도시 깊숙이까지 조용히 들어왔을 리가 없었다.
바하무트는 목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우물거리고 있었다. 아마 방금 뜯어 먹은 여자의 머리이리라. 가슴께에 있는 붉은 눈은 다음 사냥감을 찾아 이리저리 굴렀다. 이윽고 정해진 약속처럼 그것이 이쪽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같은 색의, 같은 성질의 눈이 서로를 담고 크게 뜨였다.
그, 있을 수 없는 것을 보는듯한 기이한 괴물의 눈동자. 베로니카는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거리 한가운데 우뚝 멈춰 있던 바하무트가 갑자기 땅을 박차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쿵쿵쿵쿵. 베로니카는 눈도 감지 못하고 똑바로 달려오는 괴물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온다. 온다. 온다. 서걱.
예리한 소리와 함께 검광이 햇살에 번득였다. 쿵쿵대는 발소리가 멈추고 제 자리에 선 바하무트가 멈칫했다고 생각했을 때, 절반으로 두 동강 난 몸뚱이가 사선으로 미끄러지며 분수 같은 핏물을 사방으로 터뜨렸다.
바닥으로 두 갈래의 몸뚱이가 쿵, 소리를 내며 나동그라지는 광경을 베로니카는 놓치지 않고 빠짐없이 지켜봤다. 바닥의 포석 사이로 피가 스며들어 흘러나갔다. 저것은 지하로, 내려가겠지. 그리고… 흐리멍덩한 붉은 눈에 공포를 넘어선 깨달음이 스쳤다.
도시에 막 들어왔을 때 느꼈던 울렁거림. 마치 피 냄새 같은, 발밑에서 무수한 얼굴이 지켜보고 있는 듯한 감각. 그건.
“지하예요.”
실제로 바하무트들이 올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옷자락을 힘주어 붙들자 리온이 뺨에 묻은 피를 닦으며 몸을 돌렸다.
그 소름 끼치리만치 적요한 얼굴을 향해 베로니카는 새처럼 쉬어 버린 목소리로 힘주어 소리쳤다.
“하수도를 통해서 들어온 거라고요!”
리온의 얼굴이 언뜻 찌푸려졌다. 그때, 침입자를 알리는 북소리와 교회의 종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돌림 노래처럼 건물과 거리마다 아스라이 비명이 들려왔다. 무섭다. 이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숫자는?”
“모르겠어요. 이 느낌이 전부 바하무트라면 적어도 도시 아래를 전부 메울 만큼은 돼요. 아니, 사실은….”
그보다 더 많다.
리온은 뭔가를 떠올리듯 죽은 바하무트를 응시하다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갑자기 분위기가 새카맣게 가라앉아서 베로니카는 당황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감정. 그것이 분노였기 때문이다. 충격이나 공포가 아닌 시커멓게 잠식해 나가는 분노.
“위에 올라가서 짐을 가져와.”
마침내 그가 나직이 명령했다. 골목마다 바하무트가 걸어 나오고 곳곳에 비명이 팽배한 도시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사라진 목소리였다.
“뭐라고요?”
“탁 트인 평야도 아니고 하수도로 숨어든 것들을 일일이 상대할 수는 없어. 개체 수 미상에 벽 안으로 발포는 불가능. 이대로 갇히면 얻을 것도 없이 무의미한 개죽음이야.”
“그 말은, 떠난다는 거예요?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은요?”
대부분이 바하무트에게 먹혀 죽을 거다. 잿더미가 되어 버린 베이른처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대답에 베로니카는 새파랗게 질렸다.
“말도 안 돼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다 죽여 버릴 수 있잖아요. 나를 협박한 것도 그런 이유였잖아요.”
“그래. 그러니까 떠난다고.”
“그게 무슨, 산 사람을 앞에 두고 떠나는 게 말이나,”
“네가 살아 나온 도시라고 달랐을 것 같아?”
리온은 흥분하지도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베로니카는 말문이 막혔다. 남자의 얼굴은 무표정했으나 그냥 무표정과는 달랐다. 섬뜩한 낯이 도저히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다 죽여 버릴 수도 있어. 다만 내가 그 난리를 치고 나면 네 생명까지는 장담 못 하겠군.”
“…….”
“모든 인간을 구제할 수는 없어. 단지 선택할 뿐이지.”
그는 베로니카를 골랐다. 그녀에게 이 도시보다도 더 큰 판돈을 올렸다. 베로니카는 중압감에 몇 걸음쯤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리온이 그녀의 목덜미를 흘긋 내려다보며 말했다.
“명령에는 무조건 복종할 것. 충분히 알아들은 줄 알았는데. 다시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면 지금 말해.”
넋이 나간 몇 초. 베로니카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다가 이내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가 돌아서려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망연히 고개를 돌렸다.
“그 무거운 갑옷들을 어떻게 혼자 들고 와요.”
“필요 없어. 네 검과 식량만 들 수 있는 만큼 들고 내려와.”
리온이 짓씹듯 내뱉었다. 하지만 그럼 당신은? 갑옷도 없이 맨몸으로 싸우려고? 묻고 싶었지만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베로니카는 여관 문을 밀고 뛰어 들어갔다. 마침 문을 잠글 심산이었던지 아까 음식을 줬던 여인이 문 바로 앞에 서 있다가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죄송하다고 외치며 계단을 올랐다.
하필 4층이나 돼서!
운동 부족을 저주하며 방에 들어가 검을 들고 식량을 챙겨둔 가죽 포대기를 어깨에 들쳐멨다. 급하게 내려오던 베로니카는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층계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아!”
쨍그렁 소리가 나며 검이 층계참까지 미끄러지고 짐 더미는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갔다. 발목을 삔 건지 아픔이 극심했다. 진심으로 울고 싶었다. 헉헉거리는 소리로 귀가 터질 것 같았다.
어떻게든 해야 해. 그 남자는 맨몸으로 여관 앞을 지키고 서 있을 텐데 난 이 정도도 못 해? 살고 싶잖아. 살아야 하잖아. 리온이 싫은 것과는 별개다. 그가 이곳을 버리겠다면 아셀도르프에는 희망이 없다.
이를 악다물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난간을 짚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검과 짐가방을 주워 들고 발목의 통증을 무시하며 절뚝절뚝 나아갔다.
복도에서 여관 투숙객들이 불안하게 서성거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1층 현관에 다다랐을 때까지였다. 문을 가로지른 빗장을 열려는 순간 식당에 있던 투숙객 하나가 홱 팔을 잡아챈 것이다.
“아가씨. 지금 밖에 나가려고? 미쳤어?”
“밖에서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 사람이 아가씨 하나인 줄 알아? 내 일행도 아침 일찍 밖에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그런 이유로 모두가 위험에 빠지도록 둘 수는 없다고. 밖에는 바하무트가 있단 말이야.”
“위험하지 않도록 빠르게 나갈게요. 곧장 문을 잠그면 돼요. 제 일행은 정말 이 문 바로 앞에 있어요.”
흥분으로 실핏줄이 터진 남자는 문 앞이라는 소리에 눈을 가늘게 떴다.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냥개처럼 여관을 지키고 선 리온을 창문으로 봐서 알고 있었다.
달려드는 바하무트를 일격에 베어 내는 인간. 정체가 뭔지 생각할 필요도 없다. 훤칠한 체구에 갑옷을 걸치지 않았다 해도, 오만한 얼굴 위로 불꽃 같은 적발이 흔들리고 있었으므로.
그는 신의 사자, 리온 베르크다. 천의 바하무트도 상대한다는 기사가 여기에 있다.
“아가씨가 저자의 동행인가? 왜 여길 지키고 섰는지 이제야 알겠군.”
“에드! 그 여자 내보내지 마. 짐을 보라고. 저들끼리 여길 떠날 속셈이야.”
그의 동행으로 보이는 여자가 앙칼진 목소리로 외쳤다. 몇몇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식량 가방으로 쏠렸다. 그러자 베로니카를 잡고 있던 남자가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시근거렸다.
“뭐? 세상에 신의 기사가 약자를 버리고 도망가는 일도 있나? 내가 매주 성전에 낸 헌금이 얼마인데.”
심상찮은 분위기에 베로니카는 얼굴을 굳히며 좌우를 둘러보았다. 낌새가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대화를 나눴던 여주인마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베로니카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아가씨. 뚫린 벽이 보수될 때까지만 머물러. 응? 성벽만 다시 막으면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우리 때문이 아니라 아가씨가 걱정이 되어 그래. 이렇게 나가서 어떡하려고.”
염려하는 얼굴을 보자 마음이 풀어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그 여주인은 베로니카의 무언가를 자극했다. 잊고 살던 것들. 어머니의 걱정 같은 것.
베로니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메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아니요. 벽은 뚫리지 않았어요. 이럴 게 아니라 다 같이 떠나요. 전 바하무트가 벽이 아니라 하수도를 부수고 올라왔다고 생각해요. 이 도시는 더 이상 가망이 없어요. 버리고 가야 할 때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