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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아가씨와 성기사 (7)화 (7/128)

아직 불씨를 반짝이는 벽난로가 굵은 윤곽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언제 돌아왔는지 그는 침대의 반을 차지한 채 누워 있었다.

잠시 넋을 놓고 있던 베로니카는 홀린 것처럼 바들바들 침대 위를 기었다. 그가 필요했다. 도와줘. 이 갈증을, 제발.

단단하고 커다란 몸 위로 올라타는데도 남자는 깨지 않았다. 잠든 얼굴 위로 고개를 내릴 때까지도. 그러나 닫힌 입술을 가르는 순간, 거짓말처럼 피로한 눈꺼풀이 밀려 올라갔다.

싫어, 반항할 틈은 주지 않아.

베로니카는 아직 초점이 바르지 않은 동공을 싹 무시한 채 물컹한 혀를 더듬었다. 베어 먹듯이 빨았다.

요부 같은 짓거리란 건 안다. 아니, 창부도 제 목에 칼을 들이댄 남자를 건드리진 않을 거다.

그러나 차가운 입술 사이로 흐르는 호흡이 너무나 달아서, 베로니카는 멈출 수 없는 심정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헐떡이는 소리와 낮은 숨소리가 들릴 때마다 전율을 느꼈다.

뱃속이 뜨끈해져서 살끼리 마구 비비지 않으면 몸이 불타 버릴 것만 같았다. 아아, 뇌가 터져 버릴 듯한 잔혹한 쾌감.

그의 입 안에는 건드릴 때마다 다디단 성수를 내는 촉촉한 살덩이가 있었다. 그것을 정신없이 빨다가 실수로 놓친 순간 리온이 거친 숨을 터뜨리며 입술을 떨어뜨렸다.

“도무지 편하게 잘 틈을 안 주지.”

사나운 중얼거림이 흙탕물처럼 탁했다. 잠이 덜 깬 남자는 웃는 것도 같고 비웃는 것도 같았다. 그래도 손을 뻗어 잘생긴 입술을 매만지자 말을 멈추었다.

내리깐 시선은 물끄러미 가냘픈 손을 바라보았다. 아니, 손을 보는 게 아닌가. 베로니카는 이내 새까맣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상체를 숙이면서 훤히 드러난 튜닉 안을 응시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웃음기가 사라진 눈빛은 형형했다.

“생각보다 겁도 없고.”

그는 금욕적인 기사답게 고개를 옆으로 돌리기는커녕 희미한 불빛 아래 드러난 그녀의 선을 노골적으로 훑어내렸다.

소문이 맞았다고 베로니카는 생각했다. 한때는 미래가 창창했던 성기사. 지금은 타락을 자처한 이단아.

전신이 황금이 된 것 같다. 뜨거운 시선에 온몸이 녹아내리며 열감이 오른다. 순간 그의 눈길을 버티지 못하고 상체를 물리려 하자 그가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채며 작은 몸을 제게 바싹 붙여 내렸다. 비웃는 목소리가 기이하리만치 고요했다.

“잘 자던 사람 깨워 놓고 어딜 도망가게?”

베로니카는 코끝이 맞닿은 채로 일렁이는 눈동자를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몸의 모든 부위가 빠짐없이 붙어 있다는 건 상당히 직접적이고 적나라한 느낌이었다. 다르게 생긴 두 신체가 톱니처럼 하나로 맞물려서. 태어날 때 연결되도록 만들어진 그대로 은밀하게 맞닿아서.

“봐요. 나한테 반응하잖아.”

새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뜻을 알아들은 리온이 재밌다는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남자의 목울대가 느리게 위아래로 움직이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혼탁한 숨소리가 깊은 곳에서 나와 볼을 타고 흩어졌다. 불이라도 붙였다간 쾅, 하고 터질 것 같은 농밀한 공기가 사이로 흘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툭, 하고 그의 얼굴에 눈물이 떨어지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심장이 아팠어요.”

“…….”

“꿈을, 꿨는데.”

베로니카는 더듬더듬 이야기를 시작했다. 눈 한번 깜빡 않고 떨어지는 눈물은 열로 인한 것이었다. 그날의 반복이지만 다른 게 있다면 조금 더 의식이 또렷하다는 점이다. 베로니카는 제가 본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도 이해했다.

“내가 바하무트였어요. 절벽에 서 있는 바하무트. 나는 발밑의 도시를 보고 있었고, 베이른보다도 화려한 도시를 보면서 배고픔을 느꼈어요.”

리온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표정이 사라졌다. 베로니카는 눈물 사이 사이로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다 성, 성기사를 한 명 봤어요. 그 사람이 겁에 질려서 도망치는데 나는 웃고 있었어요. 맛있는 냄새가 나서. 너무 달콤한 냄새가 나서. 그래서 어깨를 잡았어요. 발버둥 치는데 입을 벌렸어요. 그리고 내가, 내가 그를.”

“네가 한 일이 아냐.”

흥분해서 고조되는 말을 리온이 짤막하게 끊어 냈다. 못 들을 말을 들은 것처럼 흠칫하자 그가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며 천천히 되뇌었다.

“아무것도 안 했다고, 너.”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자존심이 상해서 입술을 깨물고 참는데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눈물은 피와 닮은 데가 있어서 멈추고 싶어도 자기들 멋대로 흘러내린다.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 거추장스럽게 사람을 괴롭게 한다.

어릴 적 아버지는 울음소리를 무척이나 짜증스러워하셨다. 눈물이 조금은 날 수 있어도 계속해서 훌쩍거리는 건 일부러 쥐어 짜내는 거라나.

그래서 어린 베로니카는 참아야 했다. 혼자일 때면 울 수 있지만 남과 있을 때는 하늘을 봐서라도 삼켜 내야 했다. 이렇게 아래를 봐선, 안 되는 건데.

“뭘 그렇게 힘들게 참아? 그냥 흘려보내.”

리온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베로니카는 눈을 크게 떴다.

이상한 일이다. 낯설고 무서운 남자가 그토록 원했던 말을 들려준다는 건. 타는 듯 뜨거운 몸을 받아 주고 그와 닿기를 열망하는 제 충동을 알아준다는 건.

너무 기뻐서 서글퍼.

“그럼 어떻게든 해 주세요.”

어떻게 들릴지 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 죽을 것처럼 더워서 그래요.”

맡기듯 몸에 힘을 풀었다. 맞닿아 있는 남자는 분명 느꼈을 거다.

리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알 수 없는 얼굴로 빤히 바라보다가, 눈물을 마저 닦아 준 뒤 그녀를 옆에 눕혔다. 그리고 이렇다 할 말도 덧붙이지 않은 채 고개를 깊게 내려 키스했다. 그녀가 황홀과 쾌락으로 발버둥 치며 놔 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그 과정은 산채로 불에 타는 고통과도 얼마쯤 흡사했다. 방이 열기에 울렁거리고 천장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차가운 건 오직 리온 베르크뿐이었다. 그에게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찬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베로니카는 곁에 누군가 있다는 데 진심으로 안도했다.

‘안 가.’ 홀연히 그날 밤에 들었던 나지막한 음성이 떠올랐다. 그는 가지 않고 그녀는 가지 못한다. 리온이 맞았다. 그들은 당분간 함께 있어야 한다.

멸망한 세계에 단둘이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

리온은 동틀 녘에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피곤했다. 생각보다 더. 최근에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찬물로 씻은 후 어제 밖에서 구한 옷과 약을 침대 한쪽에 잘 보이게 올려 두었다. 새근거리는 소리로 보건대 또다시 환상을 보진 않는 듯했다.

그녀의 환상은 십중팔구 ‘그것’이 향하는 장소와 관련이 있다. 베이른보다도 화려한 도시. 그리고 성기사의 존재. 이 근방에서 동서남북 어디로 따져도 성도 카르트 외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물론 더 구체적인 환상을 기다려야겠지만.

최악의 가정이 떠오른다.

“…벤자민…. 그만해.”

그때 여자가 조금 뒤척이더니 몸을 옆으로 웅크리며 잠꼬대를 했다. 헐렁한 튜닉은 한쪽 어깨까지 흘러내려 뾰족한 쇄골과 가슴 둔덕을 드러냈다.

리온은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이불을 끌어 올려 목까지 덮어 주었다. 이름을 보아하니 아마 약혼자나 사랑하는 남자의 꿈이라도 꾸는 모양이다.

과연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는가. 불타는 도시와 괴물의 이빨에서 살아남았는가?

살았다면 애인을 애타게 찾고 있을 테고 죽었다면 그 나름대로 비극이다. 리온은 무의미한 의문이라는 걸 알았다.

“어느 쪽이든 너는 내 옆에 묶여 있어야 할 테니.”

세상모르고 잠든 얼굴은 현실을 부정하듯 평온했다. 설익은 푸른 새벽이 맑은 얼굴에 고요히 내려앉았다. 그는 지금까지 그녀의 이름조차 물어보지 않았다. 언젠가 죽어 버릴 군마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였다.

입가의 머리칼이 색색거릴 때마다 흔들거렸다. 도톰한 입술은 간밤의 자극으로 붉게 부르텄다.

천진하게 자극적인 여자.

손에 박힌 가시 같다고 생각했다. 건드리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다.

***

“아침은 모두 같소. 오트밀과 빵이오.”

“술은 없습니까?”

“에일이 조금 있소만.”

리온이 고개를 까딱이며 1층의 바에 앉자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의 사내가 잔을 먼저 놓아 주었다. 주인장인 듯했다. 조르륵 흘러드는 경쾌한 액체를 보며 리온은 보충해야 할 식량의 양을 가늠했다.

“아, 그리고 가능하면 정오까지 묵고 싶은데.”

“어느 방이오?”

“4층 끝방.”

사내의 눈이 가늘어졌다.

“점원들이 묵는 2인실이군. 이야기는 이미 들었소. 그 녀석들은 충분히 만족했으니 정오까지 묵는다고 또 돈을 낼 건 없소. 밤까지 술을 퍼마시더군.”

100금화. 리온이 낸 돈은 이런 시국만 아니라면 낡은 여관 하나쯤은 통째로 빌릴 수도 있는 금액이었다. 그런 돈을 선뜻 내고도 또 내겠다고 한다. 몰골로 보아 지친 피난민도 아니다. 주인장은 빵을 접시에 담아 건네며 지나가듯 물었다.

“상황이 많이 심각하다고 보시오?”

“글쎄, 나라면 돈을 벌기보다는 도시를 뜰 겁니다.”

“실제로 젊은이들은 많이들 그러고 있소. 하지만 그네들이야 가진 게 없으니까 쉽지, 나 같은 사람이 대뜸 집을 떠날 수 있겠소? 기르는 양이고 닭이고 땅까지 다 버리고 간다고 해도 향하는 곳이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소. 또 어떻게든 고생해서 다른 지역으로 건너간다 해도 제대로 정착하려면 결국 돈이 필요할 거요.”

들어 보니 떠날 것도 염두에 두고 있긴 한 모양이었다.

리온은 무심하게 어제 먹었던 양고기스튜를 떠올렸다. 가산을 처분해서 피난 자금을 모은다는 발상은 꽤 이상적이다. 시간만 있다면.

서서히 끓는 냄비에 들어간 개구리 같군.

“새로 증축한 성벽이 티란의 반만큼만 버텨 주면 좋으련만.”

탁자를 건성으로 두드리고 있던 손가락이 불시에 멎었다. 리온은 느리게 고개를 들고 확인하듯 뇌까렸다.

“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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