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아가씨와 성기사 (1)화 (1/128)

세상은 망해 가고 있다.

베로니카는 아버지의 죽음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끄드득. 드득.

도시를 덮친 바하무트는 덩치 큰 남자보다도 두 배는 더 컸으며,

으드드득.

사람 형태였지만 목이 뜯겨 나간 듯 없었다. 등이 굽은 몸뚱이는 뼈가 마디마다 불뚝불뚝 튀어나와 마치 거대한 뼈대에 가죽만 덧씌운 느낌이었다.

아, 심장께에 달린 붉은 눈동자가 이쪽을 돌아본다.

알고 있다. 이빨 달린 목구멍에 처넣어질 다음 차례는 자신이란 걸.

몸이 바짝 얼어붙었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오한이 주르륵 타고 내렸다.

도망쳐야 해. 제발 움직여. 부탁이야.

바하무트의 걸음마다 찐득한 액체가 마룻바닥에 질퍽하게 떨어졌다.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그런데 왜 난 머저리처럼 이러고 서 있는 거지?

“베로니카!”

그때 고함과 함께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팔을 옆으로 휙 잡아끌었다. 열린 문밖으로 끌어내진 베로니카는 반강제로 달리면서 낯익은 뒤통수를 알아봤다.

“벤자민…?”

대장장이 도제 벤자민이다. 그는 베로니카를 스토커처럼 쫓아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순간에 달려오다니? 가족들은 전부 어떻게 하고?

“교회 종이 울리자마자 달려왔어. 어디 안전한 데 숨어 있다가 함께 도시를 빠져나가자.”

머리가 텅 비어 버렸기에 몸은 솜 빠진 인형처럼 질질 끌려갔다. 엉겁결에 반사적으로 다리를 움직이던 베로니카는 가까스로 의미 없는 질문을 토해 냈다.

“벤자민… 너, 동생들은….”

“교회에서 기사단을 곧 보내올 거야. 조금만 참아. 베이른은 나름대로 큰 도시잖아? 이대로 괴멸한다는 건 말도 안 돼.”

기사들이 오고 있다는 말은 가족들의 행방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한다.

벤자민도 모르는 거다. 베로니카는 어렴풋이 추측했다. 그는 가족마저 버리고 바로 이리로 온 것이라고.

“잠깐 여기 숨어 있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무렵 벤자민은 무너진 잔해 사이로 그녀를 강제로 당겼다. 베로니카는 나사 하나가 빠진 사람처럼 끌려갔다. 목구멍에서 비릿한 게 치밀었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나사 한두 개가 아니라 수십 개가 빠져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망가지고 말았다. 가족은 죽고 자신은 망가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시야가 조금 맑아졌다.

“이거 받아.”

손에 금속이 닿는 서늘한 감촉에 베로니카는 고개를 내렸다. 아름다운 동백꽃 가지가 음각된 단검집이 보였다. 대장간에 갈 때마다 가지고 싶어서 눈을 떼지 못하던 물건이다.

“이걸 왜….”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생일?”

베로니카는 되물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응. 나, 널 정말 좋아해. 네가 날 싫어하는 거 알아. 하지만 내가 널 구해 줬으니 내게도 기회를 줘. 이제 가족들도 없고 우리 둘뿐이야. 베이른을 나가서 결혼하는 거야.”

말이 한 귀로 흘러들어 한 귀로 나갔다.

지금 뭐라는 거지? 결혼이라고?

도대체 우리가 뭔데?

멍한 정신이 낭만보다는 소름으로 고개를 들었다.

도시가 잿더미가 되었는데. 가족의 생사도 모르는 와중 그깟 사랑이 문제인가.

어떻게 해야 이 기묘한 기분을 설명할 수 있는지는 모른다. 사랑받는 건 좋은 일인데. 왜인지 역하게 치미는 토기를 느꼈다. 징그러웠다.

베로니카는 부지불식간에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일단 카르트에 가서 군마를 파는 숙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야. 거기서 정착하고 나면….”

“벤.”

하얗게 질린 베로니카는 멋대로 이어지던 미래 계획을 간신히 끊어 냈다. 그러곤 또렷하게 중얼거렸다.

“구해 줘서 정말, 정말로 고마워. 이 빚은 평생에 걸쳐서라도 갚을게. 하지만 너를 따라가는 식으로는 아니야. 그러니 그만 날… 내버려 뒀으면 좋겠어. 설령 내가 여기서 죽어도 이젠 네 책임이 아니야. 가족들한테 가 봐. 동생들이 걱정하고 있을 거야.”

어조가 어땠는지는 모른다. 분간할 정신도 없었다.

다만 진심을 다해 말하고는 몸을 숨겼던 벽 뒤에서 뛰쳐나갔다. 열린 거리로 나오자마자 검고 붉은 지옥이 펼쳐졌다.

와르르, 몇 걸음 앞에서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파드득 놀랐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홀린 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온통 난장판인 것 같아도 목적지는 있었다.

나사가 다 빠져나가 고장 난 머리는 도시 변두리의 교회로 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이 지키는 곳으로. 바하무트가 감히 접근하지 못할 신성한 장소로.

도시는 눈이 닿는 곳마다 불바다였다. 무너진 잔해 사이로 비명과 울음이 메아리쳤다. 헤어진 가족을 찾는 절박한 울음은 이제 누구의 주의도 끌지 못했다.

한참 동안 취한 사람처럼 휘청휘청 걸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어깨를 세게 붙잡아 돌릴 때까지.

아, 또다시 벤자민이다.

희번득 뜬 눈이 비죽 웃는다.

“베니. 네, 네가 받았을 충격은 이해해. 무, 물론이야. 하지만 앞으론 좀 고쳤으면 좋겠어. 튕기는 걸 예쁘다 예쁘다 해 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나도 상처받아. 시간이 지나면 말 잘 듣는 착한 여자에게 넘어가는 법이라고.”

끼릭끼릭, 벤의 관자놀이에서 빠져나가는 나사가 보였다. 하나, 둘, 수십 개의 나사가 한꺼번에 빠져 굴렀다.

아, 망가진 건 혼자만이 아닌지도 모른다.

벤자민도 고장이 났다. 베로니카는 입술을 달싹였다.

“물러서, 벤자민. 점점 소름 끼친단 말이야.”

“소름 끼친다고?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난 목숨을 걸고 널 구해 줬어. 그 커다란 놈이 아저씨 뇌를 마구 씹어 대는 동안에도! 난 네 생명의 은인이라고!”

그가 마구 흔들어 대는 통에 어깨가 몹시 아팠다. 뿌리치려고 버둥댔지만 가뜩이나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와 쇠붙이를 다루는 남자 사이엔 완력 차가 너무 컸다.

그녀는 파리한 얼굴로 외쳤다.

“아! 아파, 벤자민, 이거 좀 놔!”

한참을 씨름하다가 있는 힘껏 밀어낸 순간이었다.

“이 계집애가…!”

벤자민이 그녀를 때리려는 것처럼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다가올 아픔을 예상하며 눈을 꽉 감았다.

그리고 팍, 뺨에 피가 튀었다.

피?

검은 시야가 아몬드 모양으로 뜨였다가, 다시 감겼다가, 커다랗게 열린다.

주르륵, 뺨에 튄 뜨끈한 액체가 눈물처럼 턱 끝으로 흘러내렸다.

베로니카는 입을 벌리고 숨을 멈췄다. 눈꺼풀이 한계까지 올라갔는데도 더 벌어진다.

동공이 확장되고 떨리는 다리는 드러난 풍경에 몇 발짝 뒷걸음질 친다. 더 이상 어깨를 잡는 힘은 없으므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으극극극!”

다음 순간, 말을 채 마치지 못한 벤자민이 그대로 뒤통수에서부터 입이 뚫린 채 낚아채어 올라갔다. 이어지는 비명도 없었다. 그저 그드득, 드드득 하는 살가죽 꿰뚫리는 소리가 벤자민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베로니카는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뒷걸음질 치던 몸의 중심이 뒤로 기울었다.

“아!”

넘어지며 바닥을 짚은 팔에 강한 통증이 엄습했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부러졌나 보다.

곧장 몸을 돌려 필사적으로 기기 시작했다. 방향은 모른다. 어디든 상관없다. 처음부터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교회로 가면? 그곳은 안전할까? 정말 바하무트를 신의 집 따위가 막을 수 있을까?

미친 듯이 움직이는 동안 무릎과 손바닥이 쓸리고 손톱이 부러졌다. 그러나 더는 아픔도 추위도 느끼지 못했다. 벌레처럼 바닥을 쓸고 눈밭을 기었다.

멈춘 건 어느 벽면에 낙서처럼 휘갈겨 쓰인 붉은 글씨를 본 순간이었다. 피로 적힌 문구는 성전의 언어였다. 베로니카는 저도 모르게 그것을 읽었다.

Deus dereliquit hominem

“신이 인간을 버렸다….”

두근. 두근. 두근.

시야가 훅 넓어지며 주위에 흩어진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고깃덩이에 가까운 시체 조각들. 종탑. 십자가. 날아와 앉는 까마귀들.

눈앞의 건물은 그녀가 그렇게 찾던 교회였다. 신의 자비를 갈구하며 왔던 자들이 갈기갈기 찢겨 희생 제물이 되었지만.

“하하, 하하하하하.”

베로니카는 발작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인류의 해는 결코 지지 않으리라던 교황의 호언은 틀렸다!

오만한 인간이 먹이 사슬 꼭대기에 들어앉아 세상을 통치하던 시대는 공식적으로 끝이 난 거다. 남쪽 바다에 운석이 떨어지고, 바하무트가 이 땅에 기어 올라왔을 때부터.

베이른은 수도는 아니어도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항구 도시로 통했다. 명백한 열세다. 문명에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아… 우….”

그때, 시체인 줄 알았던 것 중 하나에서 신음이 들리는 바람에 베로니카는 퍼뜩 고개를 들고 재빨리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피투성이가 된 여자가 눈을 부릅뜨고 있다.

“부인. 괜찮으세요? 정신이 드세,”

베로니카는 문득 입을 벌린 채 말을 닫았다. 아득하리만치 새까만 공포로 젖은 눈동자가 두려웠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그녀가, 그녀의 눈동자가.

뒤를 보고 있으니까.

“으…흐….”

전율 같은 오한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몸이 파르르 떨렸다.

세상에는 꼭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있다. 생물이기에 본능적으로 느끼는 압도적인 공포. 불안. 절망.

머리부터 발끝까지 잠식하는 어둠에 숨이 막힌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그녀의 바로 뒤에서 허리를 낮추고 고개를 땅까지 깊이 숙이고 있었다.

눈앞에 자리한 얼굴을 보며 베로니카는 이를 악물었다. 신음을 삼키려고 했지만 소리는 삐걱삐걱 새어 나갔다.

어떻게, 얼굴이, 있지?

뿌연 시야가 흔들린다.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바하무트.

악마. 마귀. 괴물.

인간의 오만을 누르기 위해 내려왔다는 신의 심판.

그것의 붉은 홍채가 쭈그러들며 검은 동공이 둥글게 부풀었다. 동공은 딱 그녀의 머리만 했다. 머리카락 없는 징그러운 얼굴은 웃고 있었고 귀가 있어야 할 자리엔 바다에서 올라왔다는 걸 알려 주듯 아가미가 꿈틀댔다. 그것은 그대로 소리 없이 그녀를 들여다보았다.

본디 바하무트에겐 머리가 없다. 하지만 들어 본 적 있다. 인간의 머리를 수없이 집어삼킨 개체 하나가, 인간과 같은 머리를 지니고 있더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홍채의 미세한 근육 하나하나가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선 사체 썩는 듯한 악취가 강렬했다.

안 돼. 자극해선 안 돼.

베로니카는 시장 뒷골목에서 본 적 있는 쥐와 고양이를 떠올렸다. 고양이는 쥐가 움직이기 전까지는 흥미롭게 지켜보기만 했다. 사냥은 움직여야 시작된다. 그러니까. 아무런 재미도 제공하지 않고 가만히만 있으면.

숨을 참는다. 맥박이 요동친다. 심장이 고막에 달린 것처럼 마구 뛰기 시작한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손톱이 부러져라 바닥을 긁으며 소리를 참았다. 정신이 분쇄되기 직전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붉은 눈이 심장처럼 뛰기 시작했다. 사슬 같은 동공의 테두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요동친다. 베로니카는 넋이 나간 채 그것을 바라보았다.

소리가 사라졌다.

어느 순간 세상에는 붉은 눈과 그녀의 심장 둘만이 남았다.

붉다. 빨갛다. 세상은 온통 피범벅이다. 처음부터 망해 가는 세상에 태어났으니 갓 태어난 아이들은 아픈 울음을 터뜨린다. 생명이 태어나면서 맡는 짙은 피의 잔향과 시야를 메운 벌건 세상.

이 세상은 망해 가고 있다. 멸망할 운명이다.

심장이 느려지다가 결국 멈췄다. 주마등이 스르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아기 시절 뻗어 나가는 작은 손. 활짝 웃고 있는 엄마와 아빠. 처음으로 만든 조그만 눈사람과 따뜻한 벽난로. 활기찬 저녁 식사와 웃음소리. 침대맡에서 동화를 읽어 주는 엄마. 안아 주는 엄마. 엄마.

그리고 더는 동화를 읽어 주지 않는 엄마가 침대에 누워 슬프게 미소 짓는다. 불쌍한 아빠는 지쳐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다. 어둠이 드리운 침대 옆에 다가가 아빠 손을 꼭 잡자 아빠는 힘없이 웃는다.

맑은 하늘 아래에는 검은 옷을 입은 이웃들이 있다. 엄마는 어딨어? 묻는 어린 베니의 손을 이번엔 아빠가 꼭 잡아 준다. 자상한 아버지를 올려다본다. 그러나 아버지에겐 머리가 없다.

그러니까 인간은 바하무트에게,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

누군가 빨간 물감을 뿌린 듯 시야가 새빨갰다.

아버지의 환상이 팔다리에 경련을 일으켰지만 베로니카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저 빙긋이 미소 지을 뿐이다. 바하무트니까. 나는.

이제 바하무트니까.

“벌써 동화됐잖아.”

순간 새빨간 기억이 와장창 무너지며 어떤 남자의 차디찬 얼굴이 파편 사이로 난입했다.

소음이 몰아닥치며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는 불길이 치솟는 매캐한 세상을 뒤로 하고 베로니카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남자는 적색 머리칼에 검은 갑주를 입고 있었다. 사나운 눈에는 검붉은 살기가 돌았다.

빠져나가려 바르작거렸지만 상대가 머리채를 거칠게 잡은 터라 두피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만 계속될 뿐 벗어날 수 없었다. 발버둥 치는 그녀를 혐오스러운 눈길로 보던 그가 나지막이 물었다.

“살고 싶어?”

“윽, 흐윽. 윽.”

“지옥 불에서 굴러도 살고 싶냐고.”

“이거, 놔.”

“대답해. 죽고 싶다고 하면 고통 없이 죽여 줄 테니까.”

죽고 싶냐고?

베로니카는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였다.

죽기 싫다. 죽고 싶지 않다. 이제야 겨우 다시 태어났는걸.

“그럼 도와 달라고 말해.”

속내를 읽은 듯한 남자가 나지막이 뇌까렸다. 불타는 심연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살고 싶어…. 도와줘.”

잘생긴 얼굴이 잔인하게 변하는 건 삽시간이었다. 잔학함에도 종류가 있다면 이건 매미의 날개를 떼어 버리는 종류다. 그는 재밌다는 표정을 하더니 아프게 잡고 있던 힘을 풀었다.

“그래. 다시 태어난 걸 축하해.”

남자가 주저앉은 그녀의 앞으로 검을 내리꽂았다. 시뻘건 불빛이 반사되는 은날 위로 파리한 얼굴이 조각난 채 떠오른다. 검은 단발. 하얀 얼굴. 붉은 눈.

붉은 눈. 바하무트와 같은 색의 눈동자.

세상은 망해 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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