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2) (9/14)

감각점 2권 (완결)

다깡

-목차-

07(2) ~12

07(2)

“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녀는 왜인지 불안한 마음을 쫓아내려 애쓰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걱정할 동생을 신경 쓰며 통화해서인지 금방 몸이 지쳤다. 여은은 침대에 풀썩 누워 우물형으로 매립된 천장의 조명을 멍하니 보다가 꼬로록 소리가 나는 얇은 뱃가죽을 쓸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붉은 비단 가운이었다. 유명 디자이너의 로고를 보니 어젯밤에 류태주가 준비한 것이 틀림없었다.

“빌어먹을 놈. 주문하려면 속옷이랑 다른 옷도 주문할 것이지 달랑 가운 하나만 준비하다니.”

분명히 매일 침대에서 뒹굴 작정인 거야, 짐승! 나쁜 새끼!

일주일간 함께 있고 싶다고 청한 것은 분명히 자신이었다. 남자도 모르게 임신이 목적이었으므로 종마 같은 체력을 가진 남자와 단둘이 갇힌 이런 상황이 반가워야 했다. 하지만 폭력과 같이 무지막지한 쾌감과 너무 심한 폭주를 거듭하는 남자의 체력, 그리고 섹스 후 무척이나 만족하는 느른한 그 표정에 여은은 마치 자신이 수탈당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배도 고프다고!”

얇은 가운 위로 쓰다듬는 납작한 배는 계속해서 배꼽시계를 울리고 있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마찬가지로 붉은 가운을 입은 류태주였다. 처음 남자도 똑같은 가운을 착용하자 못마땅한 눈썹이 활처럼 휘었었다. 그러나 그때는 동생과 전화 통화를 위해 목소리를 아껴 두고 싶었기에 겨우 참았었다. 여은은 다시 그 붉은 가운을 보자 누운 채 눈에 힘을 주었다.

“마침 통화를 끝냈군. 친구는 어때?”

“친구가 별일 있을 게 있나요? 그나저나 그 옷은 도대체 뭐예요? 왜 저랑 같은 거죠?”

마음 같아서는 벌떡 일어나서 매섭게 쏘아붙이고 싶었으나 침대에 누웠더니 몸은 천근만근에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 통에 기운이 없던 여은은 겨우 눈에 힘만 주었을 뿐이었다.

“배고프지? 룸서비스가 도착했어. 내가 안아 주지.”

룸서비스라는 말이 너무나 반가워서 여은은 남자의 목에 냉큼 팔을 감았다. 같은 가운을 입고 안겨 있으니 그야말로 신혼부부 느낌이 따로 없었다. 여은은 그것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아 투덜거렸다.

“빨리 대답해요. 이 가운 뭐냐고요!”

“비서에게 열 살 어린 여자와 일주일간 이곳에서 지낼 거라고 했더니 이런 가운을 사 왔더군.”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만면에 서린 웃음기에 여은은 분한 듯 발을 동동 굴렀다.

“뭐예요, 그게! 왜 붉은색이냐고요! 신혼부부 같잖아요! 이거 싫다고요.”

“싫으면 어쩔 수 없지. 벗고 있는 수밖에, 그렇지만 조심하라고. 어제나 오늘 아침을 봤겠지만 나도 내 자제심을 믿지 못하니까 말이야.”

가운을 벗으면 당장이라도 다시 덮치겠다는 말에 여은은 다시 발을 굴렀다. 불만스러움이 가득한 작은 얼굴을 본 류태주가 귀엽다는 눈으로 보며 웃어서 더 심술이 났다. 마치 커플 같은 가운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벗을 수는 없었다.

임신이 중요하지만, 아이를 담을 모체도 중요했다. 여은은 하루 두 번 이상의 섹스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남은 5일간 시도 때도 없이 남자의 정액을 뽑아내려 했던 계획을 수정했다.

류태주에게 안겨 거실로 나오자 화려한 흰 그랜드피아노 뒤로 넓은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이 언뜻 보였다. 식욕을 당기는 음식 냄새에 뾰로통한 표정이 풀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여은은 자신들이 첫날에 들어오자마자 뒹굴었던 장소를 곁눈질했다. 다행히 카펫은 깨끗했다. 핏자국과 난잡한 체액들로 엉망이 된 카펫을 아예 통째로 교체한 것을 모르는 여은은 아마도 처녀 혈은 없었나 보다고 생각하며 안심했다.

“세상에! 이게 다 뭐예요?”

열 명은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넓은 테이블에는 한식부터, 중식, 양식, 일식 등이 다양하게 차려져 있었고, 그 옆의 작은 테이블에는 각종 화려한 후식이 가득했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그래도 그렇지! 이걸 다 어떻게 먹어요? 내일 먹을 수도 없고, 다 버려야 하잖아요.”

여은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해도 남자의 얼굴은 그게 어때서? 라는 표정이었다. 원래 어머니와 함께 요리하는 것을 즐기던 여은은 지금도 휴일이면 동생과 먹을 음식은 스스로 만들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도 풍족한 환경에서 살았지만, 결코 낭비하며 살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유품으로 남은 가방이나 옷가지들을 봐도 분에 넘치는 사치품은 없었다.

“류태주 씨가 아무리 재벌이더라도 그렇게 음식을 함부로 버리면 안 돼요. 다음부터는 저에게 메뉴를 보여줘요.”

“알겠어.”

의외로 선선히 수긍하는 류태주에 여은은 오히려 기운이 빠져 버렸다. 그러나 뷔페가 되어 버릴지언정 음식은 맛있었고, 식사 시간은 즐거웠다. 배는 고팠지만, 손 하나 까닥하기 귀찮은 것을 눈치챈 태주가 그녀의 입에 원하는 음식을 끊임없이 넣어 주었다. 어릴 때도 어리광을 부린 적이 없던 그녀는 타인이 입에 넣어 주는 상황을 상당히 어색해하며 처음에는 아예 입을 벌리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향해 류태주는 상당히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해서 이해시켰다.

“내가 당신을 혹사해서 그런 거니, 이건 나름 책임을 지는 것이지. 숟가락을 든 손이 떨리잖아.”

그랬다. 어젯밤은 서로가 미쳐서 저녁도 건너뛰고 즐겼다 치더라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덮친 책임은 전적으로 그에게 있었다. 그리고 여은은 그 자신이 ‘혹사’했다는 것을 인지한다는 것에 큰 점수를 주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기 때문이다.

섹스하지 않을 때의 류태주는 말이 잘 통하는 남자였다. 처음 봤을 때처럼 그는 정중하고 젠틀했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는 하면서도 그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혹여나 개인적인 인적 사항을 묻는다면 늘어날 거짓말이 부담스러웠던 여은은 그가 여행지에서의 단기간 섹스 파트너로 자신을 생각한다고 확신했다.

테라스에서 와인 잔을 부딪쳤을 때는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나를 왜 히메라고 불러요?”

와인 잔을 들며 눈을 휘는 그가 말끝에 버릇처럼 붙인 호칭에 여은은 물었다. 낯간지러운 호칭이기도 했지만, 만나는 모든 여자에게 붙이는 호칭이라면 기꺼이 사양하고 싶었다. 여은의 질문에 류태주는 잠시 생각하는 듯 침묵했다. 마치 말을 고르는 듯한 그의 태도에 여은의 고개가 갸웃해졌다.

“어릴 때 어머니가 읽어 주신 동화책이 있었어.”

“어머니라면, 일본인이시라는?”

“맞아. 혼자서 외동딸을 키운 외조부는 부모님의 결혼을 무척 반대했어. 하지만 여행지에서 아무런 조건도 모른 채 사랑에 빠진 부모님의 사랑을 이길 수는 없었지. 그래서 결혼을 허락하는 대신 내가 학교에 다니기 전까지 일본에서 살도록 조건을 걸어서 나는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지. 어머니는 어차피 내가 한국에서 살아야 하는 걸 아시니 일본에서는 일본어만 쓰셨어. 그래서 어릴 적 어머니에게 들은 동화는 전부 일본 동화나 설화야.”

짧게 말했지만, 낭만이 느껴지는 그의 부모님의 사랑 이야기에 미소가 지어졌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결코 느끼지 못할 감성이었다. 여은은 그것을 낯선 장소와 낯선 남자 앞이기 때문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들은 동화책 이야기에 나온 계집아이가 나랑 닮기라도 했어요?”

“응.”

여은은 와인을 한 모금 머금는 남자의 표정에 심장이 살짝 내려앉음을 느꼈다. 저릿하게 이는 심장의 고통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거의 마시지 않는 술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와인으로 인한 약한 취기로 나른해지는 몸을 늘어뜨렸다.

“머리가 아주 긴 히메의 이야기였지. 파도처럼 찰랑거리고, 냇물처럼 잔잔하고, 빗방울처럼 반작이는 긴 머리를 가진 공주님은 무척이나 차가운 얼음 성에 갇혀 있었지.”

류태주의 이야기에 입술을 길게 호선을 그리며 웃음을 지은 여은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요? 해피엔딩?”

“그렇지. 멋진 쇼군(장군)이 성에 사는 얼음 뱀을 죽이고 차가운 겨울에서 구해 주지.”

“흐응.”

가볍게 코웃음 치는 그녀의 얼굴이 취기로 약간 상기된 것을 본 태주는 여은이 잡고 있던 와인 잔을 건네받고 테이블 위에 놓았다.

“제가 히메라면 류태주 씨는 누구? 장군? 얼음 뱀?”

서서히 다가오는 태주의 눈빛은 무척이나 미스터리 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확인하려 했으나 뒤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야경에 역광으로 드리워진 그림자에 감추어져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나야. 왕자님이 되고 싶지.”

“왕자님?”

입을 맞춰 오는 진득한 키스에 눈을 감았다. 가볍게 안아 드는 남자의 목에 팔을 감고 여은은 까르르 소리를 내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은 태주의 눈이 다정하게 빛났다. 의식하지 못하는 듯하지만 와인을 마신 이후 웃음이 많아진 그녀였다.

술에는 전혀 내성이 없는지 느슨해진 몸과 마음을 완전히 드러낸 여자는 무척이나 귀여웠다. 지금도 안긴 채 가운 아래로 드러난 가는 다리를 물장구치듯 달랑거리는 폼이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당신은 왕자님보다 마왕이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

“마왕?”

“네. 공주를 성에 가둔 무시무시한 마왕요.”

본능이 느끼는 대로 지껄이지만, 꽤 근접한 진실인 진여은의 말에 그는 속내를 숨긴 채 빙긋이 웃었다.

“마왕은 지금도 공주를 탐하고 싶은데, 어때? 몸은 좀 나아졌나?”

순전히 그녀의 안에 파고들기 위해 먹이고 휴식 시간을 주었다는 짙은 뉘앙스의 말에 여은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색마.”

“내가 얼마나 참고 있는 줄 알면 놀라서 달아날까?”

“설마요. 당신 얼굴에서 다 나타난다고요. 그리고 입은 가운이 얼마나 얇은지 알아요? 아래 상황은 벌써 알고 있었어요.”

여은은 다시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색골, 색광, 호색광.”

“나쁜 말을 하는 입은 이렇게 벌줘야지.”

방으로 향하며 연신 가벼운 키스로 입술에 부드럽지만 집요한 체벌을 하던 태주는 재밌다고 웃어대는 작은 입술에서 결국 혀를 잡아채어 밖으로 끌고 나왔다.

“음…. 야해.”

입 밖에서 서로의 혀가 얽히는 것은 너무나 음란한 감각이었다. 뱀처럼 뒤엉킨 붉은 혀를 내려다보는 갈색 눈동자는 어느새 촉촉이 젖어 있었다. 태주는 품 안의 가느다란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끼며 보이지 않게 미소 지었다. 예민한 듯싶지만 의외로 자신의 몸에 관해서는 둔한 편인 진여은은 색을 타고났다. 머릿속으로 뭔가를 열심히 계산 중이겠지만 몸은 벌써 준비가 끝나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진득하게 바라보거나 입꼬리를 올리면 당장 커다란 갈색 눈동자가 젖어 든다는 걸 알지 못할 것이다. 고집스럽게 새침함을 고수하는 입매와는 다르게 강아지처럼 순한 눈매는 그를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태주는 단단히 받쳐 든 팔 위에 느껴지는 작은 구멍의 벌름대는 움직임에 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조금 더 빨리했다. 방으로 들어간 후 놀리는 듯 들리던 여자의 간헐적인 웃음소리는 곧 비명 섞인 신음이 되었다.

□ ◆ □ 윤이아

“어제는 별일 없었어?”

매일 아침에 일어나 동생의 일과를 묻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거야, 언니.>

생존을 확인하듯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은 동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은은 조금 잠긴 동생의 목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며칠 전부터 동생의 컨디션이 나빠 보였다.

“오늘도 목소리가 왜 그래? 정말 감기 기운이라도 있는 거야?”

<아, 아니야. 계속 침대에 누워만 있었더니 그런가 봐.>

여은은 석연찮은 동생의 반응에 잠시 침묵했다.

<정, 정말이야, 언니. 별일 아니야. 언니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

아이 같은 칭얼거림에 여은은 입꼬리를 올렸다. 늦둥이 막내딸인 여린은 소심한 데다 겁이 많았다. 어려서부터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는 나이 차 있는 언니에게 과보호를 받다 보니 소심함이 더욱 심해졌다. 그것을 오로지 언니에게 보여주는 모습인 것을 모르는 동생 바보인 여은은 제게 매달리는 동생에 대한 애정으로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담았다.

“이제 며칠 안 남았어. 마침 배란일도 잘 보냈으니 지금부터는 다지기랄까?”

<언니!>

남자와의 관계를 암시하는 짓궂은 말은 그사이 류태주에게 배워서일까? 여은은 자신을 나무라는 동생의 잔소리를 즐겁게 들으며 전화를 끊었다. 여은은 소파에 몸을 기대며 작게 한숨지었다.

폭풍 같은 나흘이었다.

그들은 정말 호텔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그 짓만 했다. 정도를 모르고 덤벼드는 류태주에게 질려 하루 두 번만 하자는 결심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와르르 무너졌다. 어쩐지 남자의 태도는 날이 갈수록 느긋해지고 테크닉은 화려해지는 느낌이었다.

짐승 같은 허리 짓은 여전했으나 강약 조절로 여은의 몸에 훨씬 부담이 덜하게 했으며 쾌감으로 몰아붙이는 속도 또한 완급을 조절해서 금방 지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했다. 너무 자주 해서 자신의 몸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을 비웃듯 류태주의 정열은 식을 줄 몰랐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해지는 것 같기도 해서 여은은 어느새 여자로서 매력에 대해 상당한 자존심이 세워졌다.

여은은 류태주가 무척 특별하고 좋은 남자임을 인정했다. 그는 정열적이고 배려가 넘치는 좋은 연인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들어주었다. 주기적으로 아침에 통화하는 시간이면 알아서 자리를 피해 주었고 부담스러운 개인적인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본인에 대해서는 꽤 자세히 이야기해 주어 선을 긋는다는 느낌도 없었다.

그런데도 여은은 여전히 그가 몸담은 회사나 사는 곳을 알지 못했다. 그것이 못내 서운했다. 이름도 거짓으로 가르쳐 준 자신이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너무 제멋대로라는 걸 안다. 하지만 세상에 단 하나 남은 여자를 대하듯 맹렬하게 자신을 원하면서도 단지 이 순간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냉정하게 인지하고 있는 남자에 속이 탔다.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한쪽에서 일어나는 맹렬한 거부 반응에 여은은 살짝 우울해졌다.

“우울?”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지한 여은은 냉소적으로 입술을 비틀었다. 평소라면 어림도 없는 감정이다. 남자를 떠올리며 우울해하다니!

“그러고 보니 가슴도 좀 아리는 것 같고.”

역시 배란기에 나타나는 호르몬의 영향이었다. 항상 찌르는 듯한 긴장 속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맛본 일탈에 호르몬도 요동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할 때마다 정자가 있긴 한 거겠지? 남자의 정자 생산 기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제는 무려 일곱 번이나 관계했다. 남자의 스킬이 늘어나는 동시에 여은의 몸도 훨씬 남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나아졌다. 그녀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자 류태주는 시도 때도 없이 덮쳐 왔다.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섹스로 성감이 있는 대로 발달한 여은은 할 때마다 목놓아 울 정도로 많이 느꼈다.

처음에는 자신이 운다는 사실에 받았던 충격도 잠시, 쾌락에 잠길 때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벌거숭이가 된 채 울어 버리고 만다. 감정적인 저항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기간 한정이라는 좋은 핑곗거리로 밀어내 버렸다. 사실, 그렇게 펑펑 울고 나면 몸은 힘들지언정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도 깨달은 참이다. 흐르는 눈물을 핥는 류태주의 은근한 위로는 덤이다.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 있다면 방을 만들어 봐.”

“방이요? 그것도 당신 어머니가 해준 말인가요?”

류태주는 가족 중에서도 일본인이라는 어머니 이야길 가장 많이 했다.

“어머니는 마음속에 수많은 방이 있다고 하셨어. 가끔 깊은 생각에 잠겨 제 마음의 방을 열어 보라고 하셨지. 그러면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어서 처박아 두었던 어떤 것이 의외로 그 방에서 잘, 자리를 잡은 것을 알 수 있다고.”

“도저히 처리할 수 없는 쓰레기도요?”

“그런 것을 위해서는 창고를 만들어 두라고 하시더군.”

“무척 현명하신 분 같아요. 당신 어머니.”

다정하고 현명한 어머니가 곁에 살아 있다는 것은 정말 부러운 일이다. 문득 이 남자를 낳아 준 여인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여은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우리의 관계는 여기까지야. 임신만 하면 돼.”

다가서는 마음을 붙잡으며 여은은 결과가 분명한 관계를 떠올리자 깨닫게 된 오르가슴의 세계에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원래 다른 여자도 이 정도로 느끼는지 궁금하다.

여은은 문득 꼬고 앉은 다리 사이에서 느껴지는 몽글함에 제가 입은 진보랏빛 가운을 내려다보았다. 요사스러운 색깔의 커플 가운만 즐비한 옷장에는 손바닥만 한 속옷의 존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말해 5일간 그녀는 노팬티로 침대 밖에 있을 때는 얇은 가운만 입고 있었다. 그나마 가운도 벗고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여은은 닫혀 있는 방문을 한번 본 후, 꼰 다리를 풀고 소파 위로 다리를 올렸다. 자연스럽게 벌어진 가운을 허벅지 바깥쪽으로 치우고 제 다리 사이를 보았다. M자로 벌어진 다리 사이로 갈라진 속살이 적나라하다.

“흐…!”

음모가 없어서인지 노골적으로 훤히 드러난 아래가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져 여은은 마땅찮은 표정으로 작게 신음을 흘렸다. 제 몸이었지만 이제껏 스물여덟 해를 살면서 단 한 번도 궁금해 본 적이 없던 부분이었다. 그녀는 마치 부모님 몰래 나쁜 짓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닫힌 방문을 연거푸 확인하며 몸을 숙여 제 아래를 확인했다.

“이상해.”

이상하게 생겼다. 자기 몸이지만 아무리 좋게 말해도 예쁜 생김새라든지 하는 미적 잣대를 들이대지 못할 모양새를 남자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다. 아름답다는 찬사를 보내는 대상이 제 얼굴이나 다른 부분보다 이곳일 때가 월등히 높았다.

여은은 미간을 찌푸린 채 다시 한번 제 아래를 살폈다. 아래는 좀 붉었다.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서 비교할 수도 없다. 털이 없어 민둥한 치골, 그 아래 붉고 작은 돌기와 연결된 작은 날개 같은 소음순, 그 아래에 있을 미지의 구멍은 허리를 숙인 상태로는 어떤지 확인할 수 없었다. 거울까지 비칠 용기가 없는 여은은 남자를 떠올려서인지 젖어 있는 그곳을 보다 다리를 모으고 일어섰다.

배란일이 지난 며칠은 가임기에 속했다. 아직도 배란 중인 것인지 가슴이 탱탱하게 당기고 아랫배가 아릿하다. 수컷의 맛을 알아 버린 암컷이라 그런지, 여은은 어느 때보다 자신 호르몬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류태주 그 남자를 먹고 싶다. 여은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입술을 할짝대며 방문 고리를 잡아당겼다. 문을 열자 류태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과 같은 진보랏빛 실크 가운을 입은 남자의 입에는 담배가 물려 있었다.

그에게서 스킨 향과 더불어 옅게 풍기는 향으로 흡연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다. 회사 일인지 특유의 중저음으로 일본어를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조금 낯설다.

일본어로 통화하는 남자를 보며 당연히 회사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어이가 없어진 여은은 피식 웃었다. 방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말해 줄 것처럼 너그럽게 굴지만 정작 중요한 정보는 단 하나도 말한 적이 없다.

딱딱한 말투의 통화가 길어지자 여은은 잠시 후에 나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더 다가가기를 망설였다. 그래도 혹시 중요한 전화가 아니라면 지켜보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류태주를 보고 싶은 욕심에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그쪽을 통해서 현재까지 매수한 지분은 얼마나 되지?)

영혼까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음성에 움직이던 작은 발이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상대가 눈치채도 상관없어. 거기도 바보는 아니니, 이미 알아차렸을 거야. 뭔가 방비를 세우는 중일 수도 있지.)

여은은 자기가 들으면 안 되는 대화라고 판단했다. 남자에게서는 위험한 냄새가 났다. 상대의 약점을 노리는 검은 수, 음모, 비열함, 사냥감을 구석으로 몰아가는 포식자의 날카로운 이빨. 왜인지 자신이 보면 안 될 것을 본 남자의 다른 모습에 당황한 그녀가 막 몸을 돌렸을 때였다.

“통화는 끝났어? 히메.”

여은은 자신의 허리를 감아 오는 굵은 팔뚝에 잡혀 남자에게 끌려갔다.

(응. 그렇게 처리해.)

류태주는 계속 핸드폰을 손에 든 채였다. 그는 상대에게 보고를 들으며 긴 카우치에 앉은 후, 여은을 제 허벅지에 앉혔다.

(응. 그래.)

수화기에서 들리는 일본어에는 ‘지분’, ‘매각’이라는 단어가 간헐적으로 흘러나왔다. 기본 회화 정도만 익힌 여은이 알아듣기에는 상당히 빠른 대화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자신을 곁에 두어도 되는 대화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의 긴장이 풀리자 덩달아 굳어 있던 등의 긴장도 풀리자 여은은 남자의 넓은 가슴으로 좀 더 파고들었다. 계속해서 긴장을 풀라는 듯 매끄러운 옆구리를 쓰다듬었던 커다란 손이 가운 사이로 들어와 풍만한 젖가슴을 쥔다.

카우치가 있는 맞은편은 넓은 거실을 규모 있는 짜임새로 나누어 좋은 가벽이 있는 곳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가벽은 중간, 중간, 거울이 붙어 있어 공간이 답답해 보이지 않게 하는 효과 가 있었다. 여은은 여러 개의 작은 거울 안에서 제 가운 안에 들어가 있는 커다란 손을 보았다. 아래쪽의 둥근 가슴 모양을 덧그리며 만지다가 젖꼭지를 당기는 등 희롱하는 손 모양이 바뀔 때마다 거울에 비치는 가운의 모양이 다양하게 일그러졌다.

“핫!”

그 모습에 정신을 빼앗겼던 여은은 부드러운 입술이 목덜미로 미끄러지자 작은 신음을 뱉었다.

(그렇게 알고 있겠어. 다시 연락하지.)

냉정하게 전화를 끊은 그는 카펫 바닥으로 아무렇게나 핸드폰을 던진 후, 그녀를 안고 그대로 옆으로 누웠다. 카우치 한쪽에 세워진 부드러운 쿠션에 머리가 닿았다.

“제가 방해했어요? 방으로 돌아가 있어도 되는데.”

“아니. 지금 여기서 당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어.”

아부성이 농후한 그의 발언에 여은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녀의 웃음에 전염된 듯 태주도 따라 웃으며 가느다란 목에 뾰족한 코를 갖다 댔다.

“친구와 통화는 잘했어?”

“네.”

어느새 겨드랑이 안으로 파고든 손에 의해 가운 밖으로 노출된 두 젖가슴은 천천히 주물러졌다.

“당신 가슴 정말 예뻐. 만지면 기분이 좋아.”

어느새 붉은색으로 변한 젖꼭지가 남자의 양손에 의해 당겨지는 모습을 거울로 보며 얼굴을 붉히던 여은은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또…. 내 어디가 예뻐요?”

귀 뒤쪽을 지분거리며 여은의 향기에 취해 있던 태주는 거울 안에서 자신을 보는 갈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여은은 거울 속에서 짓궂게 올라가는 남자의 한쪽 입꼬리를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섹스 중, 이런 표정을 지은 다음 황당한 체위를 요구한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숨넘어갈 듯한 쾌감을 주기는 했지만 이제 섹스 체험 5일 차인 그녀로서는 아래로 싸대는 사정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왜인지 섹스가 거듭될수록 부드러워지는 대신 변태적인 스킬이 성장하는 듯한 류태주를 불안한 시선으로 보던 여은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할 거죠? 방으로….”

그러나 너무나 간단히 눌린 여은은 위로 들린 다리가 태주의 굵은 허벅지 뒤로 넘어가 다리를 벌리게 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리를 빼려 힘을 주었으나 돌같이 단단한 허벅지 사이에 들어가 고정된 다리는 꼼짝하지 않았다.

“하고 싶어서 나온 거 아닌가?”

여은은 옆으로 누운 채 양쪽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온 팔로 이미 결박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자세였다. 거기다 한쪽 다리까지 벌어졌으니 그 뒤는 보지 않아도 불 보듯 뻔했다. 허리 앞에 느슨히 묶은 나비매듭을 푸는 것을 지켜보는 갈색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렸다.

“예쁜 곳을 물었지?”

다행히 매듭을 푼 손은 금방 가운을 들치지 않았다. 여은은 스스로 예쁜 곳을 말해 달라는 자신의 질문에 뒤늦게 수치스러워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말 안 해도….”

“당신 결 좋은 긴 머리는 반짝이는 강물 같아서 예뻐, 동그랗고 귀여운 이마도 예쁘고, 반듯한 눈썹도 예뻐, 순하지만 화가 나면 무서울 것 같은 갈색 눈도 예쁘고 우아하게 뻗은 코도 예뻐. 그리고 한입에 삼키고 싶은 작은 입술은 너무 예쁘지.”

한마디로 얼굴이 예쁘다는 말을 길게 늘이는 남자의 말을 싱거운 흰소리로 들으며 여은은 피식 웃었다. 그러나 기분은 좋았다. 그것으로 끝날 줄 알았던 태주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가느다란 목도 예쁘고, 자그마한 어깨도 예뻐, 그리고 이 풍만한 가슴.”

“읏!”

제 몸을 어딘가에 소개라도 하듯 입술과 손으로 지분거리며 확인시키는 그의 손길에 다시 가슴이 꽉 쥐어지자 여은은 작게 신음했다.

“내 손에 넘치게 잡히는 동그란 가슴이 정말 예뻐. 그리고 앙증맞은 당신 젖꼭지도.”

“앙! 말하면서 당기지 말아요!”

젖꼭지를 쥐어 당기던 한 손이 가슴에서 깊은 곡선을 그리며 내려가더니 둥근 골반을 지나서 뒤로 돌려진 발을 잡았다.

“작은 발도 너무 예쁘고.”

다행히 몸을 일으켜 발에 입 맞출 생각은 없는지 그냥 놓아주고 다시 제 허벅지 뒤에 다리를 고정한 그의 행동에 안심한 것도 잠시, 가운을 걷으며 허벅지 안쪽으로 올라오는 손에 숨을 삼켰다.

“가느다란 종아리나, 보드라운 허벅지도 예쁘지.”

“아, 알았으니까 하지 마요.”

여은은 그의 의도를 파악하고 울상을 지었다. 허벅지 안쪽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커다란 손이 가운을 치운 바람에 가슴은 물론이고 배와 그 아래쪽까지 거울에 훤히 드러나 있었다.

“아니, 내가 당신 보지가 얼마나 예쁜지 말해 준 적 있나?”

손가락이 쩍 벌어진 살 주위를 배회하는 광경을 거울로 본 여은은 눈을 꼭 감았다.

“말했어요. 예쁘다고 말한 적 있다고요. 아니 많다고요. 그러니 그만….”

“아니. 나는 부족해. 히메. 당신의 보지는 너무나 특별해.”

‘눈 떠 봐.’ 하고 악마처럼 속삭이는 남자의 목소리에 여은은 홀린 듯이 눈을 떴다. 거울 속에서 웃음을 머금은 그의 검은 눈과 마주쳤다. 여은은 방금까지 북풍한설처럼 차가운 목소리를 냈던 남자가 맞을까 싶을 만큼 다정하고 따뜻한 눈빛에 제가 당할 일은 생각지도 못하고 빠져들고 말았다. 몽롱하게 젖은 갈색 눈동자를 확인한 태주의 입매가 느른히 풀렸다.

“나도 내 취향이 이런 줄은 몰랐어. 처음 알았지. 백보지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는걸.”

수치심을 자극하는 말이었지만 이지를 잃어버린 백치처럼 여은에게 류태주의 말은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특별하다는 말로 들렸다.

“작은 클리토리스는 흥분하면 살짝 부풀어 오르지. 마치 당신이 뿔낼 때의 귀여운 뺨처럼 말이야.”

귓가에 속삭이면서 한번 부풀려 보라는 듯 뺨에 입술이 닿자 여은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젖꼭지를 자극하면 여기가 발발 떨려.”

“아! 무슨 짓을…! 하지 마…! 하악!”

확인해 보라는 듯 젖꼭지를 비비는 동시에 진득하게 당기면서 한 손으로는 음핵을 굴리는 손길에 여은은 진저리치며 벗어나려 버둥거렸다. 그러나 겨드랑이 아래로 들어온 태주의 굵은 팔 때문에 제 팔은 아래로 내릴 수도 없었고 뒤로 돌려져 벌어진 다리는 단단한 허벅지 사이에 끼어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은. 눈 뜨고 거울을 봐.”

귓불을 씹으며 뜨거운 숨결을 관자놀이에 흩뿌리는 류태주의 짓궂음에 여은은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싫어! 싫어요! 변태! 색골! 색마!”

그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퍼졌다. 자기를 이 꼴로 만들어 놓고! 정말이지 즐거운 듯 웃는 남자에게 화가 난 여은이 볼을 부풀리며 노려보았다.

“어서 내 다리, 내려놓으라고요! 정말 미워할 거예요!”

잔뜩 찡그리고 날 선 눈으로 노려보는데 어째, 더 녹아드는 것 같은 류태주의 눈길에 오히려 당황한 여은이 눈을 깜박였다.

“히메. 아, 아! 히메!”

“아앗! 뭐, 하는…!”

미친 거 아냐?

여은은 갑자기 폭주한 류태주가 허벅지에 끼운 제 다리를 더 힘주어 벌린 채 입을 맞춰 오자 질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비명은 파고들어 온 두꺼운 혀에 사로잡혀 그의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뒤에 있는 류태주의 키스를 받기 위해서는 목을 한계까지 꺾어야 했다. 여러 가지로 힘겨운 자세였지만 끈질기게 빨아대는 달콤한 혀 놀림에 얼마 지나지 않아 가느다란 목에서 갸르릉대는 신음이 울렸다.

“당신이 어디가 예쁜지 물었잖아. 그래서 가르쳐 주는 거야.”

태주가 혀를 살짝 놓아주자 공중에서 혀가 얽힌다. 여은은 상기된 얼굴로 얽어진 혀를 보다 눈을 돌려 슬쩍 거울을 봤다. 조각난 수십 개의 거울은 작았지만 어째서인지 손가락에 비틀리는 젖꼭지와 훤히 노출된 제 붉은 속살만 보이는 것 같았다.

“흣!”

혀를 빨리며 동시에 가슴이 자극받자 아랫배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벌써 아래에 있는 허벅지는 제가 흘린 애액으로 번들거렸다.

“예쁜 데가 한두 곳이면 간단히 말로 끝냈지. 히메.”

고개를 뒤로 돌린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가 힘들자 결국 그가 앞으로 숙여 왔다. 가느다란 신음을 연신 내뱉는 작은 혀를 연거푸 빨던 태주는 붉은 과육을 연상시키는 여자의 다리 사이를 보았다.

“준비하고 있군.”

허벅지로 줄줄 흐르는 애액을 확인한 그는 팔을 뻗어 그 아래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하악! 하지! 하지 마…!”

그가 손을 집어넣기 위해 뒤로 돌렸던 다리를 아예 위로 접어 올리자 여은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눈을 꼭 감았다. 아무리 둘만 쓰는 공간이지만 70평 규모의 스위트룸의 거실은 거의 바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넓었다. 개방된 느낌의 장소에서 다리를 한계까지 벌리고 구멍을 내보이는 자세는 진여은으로서 가히 상상할 수가 없는 행태였다. 한 조직의 보스나 은행의 사장 따위가 아니더라도 그녀의 드높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아! 아! 너무 아름다워. 아름다워. 히메.”

잠깐씩 정신이 들어올 때마다 노려보는 류태주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마치 꺼졌던 스위치가 올라간 사람처럼 들뜬 표정으로 그녀에게 잔 키스를 퍼부어댔다.

푸욱! 세 개의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가자 마치 그런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여은은 손가락으로 스치는 내벽의 스팟의 자극과 그의 말대로 젖꼭지를 자극할 때마다 떨리는 클리토리스의 떨림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하읏! 하악! 이 변태! 아, 아!”

투덜거림 안에 달콤한 신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음란한 그 광경을 비춰 주는 거울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시각적인 자극에 더욱 흥분을 느끼는 여은의 반응을 놓칠 리가 없는 류태주였다. 그는 짐짓 다정한 척 뺨에 입을 대며 손가락을 빼고 다리를 놓아주었다.

“자세가 힘들었지? 미안해.”

여은은 갑자기 몸이 당겨져 앉히자 멍한 채 그의 가슴에 등을 기대고 늘어졌다.

“당신의 예쁜 곳 보면서 하게 해줘.”

애원에 가까운 부탁이었지만 애초에 그녀의 허락 따위를 받아낼 생각이 없었다. 여은은 벌어진 허벅지 뒤로 단단한 팔이 끼워져도 무엇을 하기 위한 자세인지 인지도 못한 채 그저 멍한 머리로 거친 호흡만 뱉어냈다.

“넣을게.”

“앗! 무엇을…! 안, 안 돼! 허억!”

등을 기대고 앉은 채 벌어진 구멍으로 그의 굵은 귀두가 끼워졌다.

“하악!”

마치 아이의 오줌 누이는 자세로 그를 받아들이게 된 여은은 수치심 어린 자세도 자세지만 제 무게로 눌러지는 삽입에 허리를 비틀었다. 아무리 몸을 섞어도 그의 흉기 같은 크기의 성기가 들어올 때는 오금이 저렸다. 더구나 뭉툭한 모양의 귀두는 어린아이의 주먹보다 커서 늘 첫 삽입은 절대로 울지 않겠노라고 다짐한 그녀를 쉽게 무너뜨렸다.

“허엉! 이 자세, 싫다고! 아프다고! 부끄럽다고!”

류태주는 섹스할 때 모든 것을 팽개친 듯 흐트러지는 진여은이 좋았다. 제 몸을 탐하면서도 묘한 거리를 두고 절대로 저를 드러낼 말을 하지 않는 도도한 그녀도 좋았지만 이렇게 아이처럼 울고 비명을 지르고 반말로 소리치는 그녀가 좋았다. 그리고 조금 전, 화가 난 눈으로 노려봤을 때는 어릴 적 도도하게 자신을 무시하던 새침데기 소녀의 얼굴이라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줄 알았다. 아니, 그의 심장은 이미 진여은으로 난도질당해 버렸다.

“나를 이렇게 만들었으니 책임지라고, …은.”

아직도 들어오고 있는 긴 기둥에 꿰인 여자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하악!”

긴 삽입이 끝나자 자궁까지 닿는 커다란 귀두에 여은은 전기에 감전된 듯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기둥이 내벽 안으로 휘어지자 조금 편해졌는지 몸을 늘어뜨린다. 삽입만으로도 이미 지쳐 버린 여자의 목을 위로하듯 핥으며 태주는 여은이 더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허리를 앞으로 뺐다.

“조금 진정되었어? 거울을 봐. 내 것을 아주 야무지게 물고 있어.”

여은은 겨우 뜬 실눈으로 앞에 펼쳐진 한도 초과의 음란한 장면에 눈을 다시 꼭 감았다. 하지만 뒤로 늘어진 가운을 겨우 팔에 걸친 채 남자의 벌어진 다리 위에 한계까지 벌어진 다리 사이로 훤히 드러난 음부와 그 아래에 연결된 검붉은 기둥과 벌써 자신의 애액으로 젖어 반짝이는 검은 음모의 잔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싫어! 정말… 변태…!”

여은은 당장이라도 좀 더 노멀한 방법으로 정액을 줄 수는 없는 것이냐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을 꾹 누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 남자는 제 정자로 임신하려는 자신의 목적을 알지 못했다. 그는 순수하게 이 행위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다정한 눈빛, 닭살스러운 호칭, 만족스러운 신음, 그리고 언제고 자신을 원하는 흉악스러운 성기!

그녀는 본능적인 감각으로 남자의 이런 모습은 쉽게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눈빛과 분위기에 압도당해 감히 함부로 가까이 가지도 못하리라. 그것을 누군가와의 전화 통화를 하는 그의 차가운 목소리로 확인했다. 자신을 이렇게나 수치스럽게 만들며 난잡한 관계로 이끄는 것은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렸지만 자신 한정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이다.

여은은 아래를 가득 채우는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느끼며 제 배를 쓰다듬었다. 조금 여유가 생긴 그녀가 내벽을 살짝 조이자 곧 머리 위에서 한숨 같은 뜨거운 숨결이 흩어졌다. 남자를 만족시키고 싶었다. 제 몸에서 쾌락을 얻고 신음을 뱉는 색스러운 저음이 좋았다. 자기를 가져도, 가져도 모자란다는 듯 매달려 오는 남자가 좋았다.

여은이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투덜거리자 커다란 두 손이 뺨을 잡더니 목으로 내려왔다. 그녀는 류태주가 거울을 보며 제 몸을 만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앞으로 허리를 빼고 뒤로 깊숙이 앉은 탓에 머리를 가슴에 기댄 여은은 허리를 활처럼 휜 채 가슴을 내밀고 있었다.

귀한 작품을 만지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가슴을 주무르다가 매끈한 겨드랑이에서 아찔한 곡선을 그리는 아름다운 허리선으로 손을 내렸다. 태주의 손길이 가는 곳마다 여은은 신음하며 허리를 움칠거렸다. 골반에 손이 닿자 저절로 허리가 꿈틀대며 움직였다.

“하앙!”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자 격렬함은 없었지만, 은근히 자극되는 내벽과 자궁에 닿는 귀두가 이리저리 스치는 감각이 좋았다.

“변태라서 미안하지만, 맹세코 나를 이렇게 만드는 여자는 당신뿐이야.”

여은은 귓가에 속삭이는 고백에 가슴이 설렜다.

“나는 광장에서 춤을 추는 당신을 볼 때부터 이미 빠져 버렸어. 히메. 나의 여자가 되어 줘.”

남자의 고백은 심장이 내려앉을 만큼 기쁘기도 했지만 동시에 슬픔과 두려움을 주었다. 이 남자가 필요하지만, 그것은 진도 금융을 지키기 위해 아이를 만들기 위한 정자만이 필요할 뿐이다. 진여은의 인생에 남자는 필요 없었다.

그와는 자신은 사는 세계가 완전히 다른 존재다. 화목한 가정, 현명한 어머니, 부유한 집안, 분명히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문가의 자제일 것이다. 그런 그에게 고리대금업과 유흥업소를 관리하며 돈을 버는 여자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나마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검은 마녀라는 별명을 얻고 이제는 낯선 여행지에서 조건에 맞는 남자를 사냥하여 정자를 탈취하고 있다.

그가 욕심내는 스물세 살의 이예은이라는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머리는 온통 말도 안 되는 이 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이유를 나열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여자로 소유욕을 드러내는 남자의 말에 몸은 뜨겁게 반응했다. 아래로 왈칵왈칵 쏟아지는 애액에 저절로 내벽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허리가 경련한다.

“흐으윽! 안….”

“응. 이렇게 꽂힌 채 있으면 당신도 힘들 거야. 정말 아름다워. …은.”

여은은 남자가 이제껏 자신의 이름을 늘 애매하게 부른다는 사실은 깨달았다. 작정한 듯 ‘이예은 씨’라고 말하지 않으면 늘 이런 식으로 예은인지 여은인지 모호하게 들렸다.

“하악! 안, 안 돼!”

그러나 허벅지 안쪽을 받쳐 든 커다란 손이 쑤욱, 하고 그녀의 몸을 들어 올리자 그런 작은 상념들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내벽을 한계까지 채우는 굵은 기둥이 쑥, 뒤로 물러가자 역행하는 주름이 조여들며 비명을 지른다.

“흐윽!”

그리고 다시 내리누르자 제 무게로 깊이 들어와 자궁구까지 처박히는 굵은 귀두에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

“하악! 안 돼! 죽을 것 같…! 하악!”

“윽! …은! 나의 히메. 내 여자가 된다고 말해.”

사정없이 박히는 굵은 기둥에 여은은 울며 고개를 저었다. 그 어떤 거짓말도 할 수 있었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할 수는 없었다. 실낱같은 이성이 그것만은 거부하게 했다. 그것은 허튼소리라도 반드시 족쇄가 되어 자신을 묶어 버릴 것이라고, 남자에 대한 두려움이자 동물적인 본능이었다. 이 남자는 절대로 안 된다는.

“하악!”

깊숙이 자궁을 찔러대는 거친 행위는 폭력에 가까웠지만, 완벽히 쾌감을 인지한 여체는 아래로 물을 싸대며 자지러지고 있었다. 출렁이는 가슴, 직접적인 자극이 없어도 당장 커질 듯 발기한 클리토리스, 이지를 잃은 듯한 몽롱한 눈동자, 호흡하기에도 버거운 작은 입에서는 침이 흐르고 있었다. 이렇듯 한계까지 몰아붙여진 상태에서도 절대 그가 원하는 말을 하지 않는 여자를 벌주듯 태주는 가느다란 목에 이를 세웠다.

“허억!”

잇자국이 남을 정도로 세게 목을 물린 여자는 그마저도 쾌감이 되었는지 다시 절정을 느끼며 아래로 물을 싸댔다. 태주는 좆을 쥐어짜는 내벽의 조임에 다시 무너졌다. 다시 여자의 자궁을 향해 포말이 쏟아지자 그는 묵직한 신음을 뱉으며 허리를 떨었다.

“흐으윽!”

세차게 퍼부어대는 정액에 바들바들 몸을 떠는 여자는 말을 잊은 사람처럼 오직 짐승의 울음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수탈하듯 제 정액만을 앗아 가며 그 어떤 진실도 입에 담지 않는 여자를 그는 원했다. 제 첫 몽정의 상대였으며 온통 무채색으로 일관된 저의 세상을 새로운 색으로 물들인 존재다. 몸이라도 가지면 덜할 줄 알았던 집착과 소유욕은 날이 갈수록 더했고, 목마름은 해갈되지 않았다.

남자의 사정액에 절정을 느낀다는 성벽이 있다는 그녀의 거짓말은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처녀 혈이 아니더라도 진여은이 섹스에 무지하다는 것은 처음인 자신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

진여은은 근 8년간 지켜보며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오만한 자신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갈기는 여자였다. 제 측근이 아니면 남자와 눈도 안 마주치는 여자가 가면을 벗어던지고 해외여행에서 남자를 사냥하고 다닐 줄이야! 자신이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이 지금 이 구멍을 차지한 좆은 다른 놈의 것일 수도 있었다.

“당신은 정말 나쁜 여자야.”

철저하게 제 육체만 탐하는 여자를 향해 볼멘소리를 하지만 작은 어깨를 쓰는 입술은 다정하기만 했다. 작은 몸에 무리를 준 체위와 너무 심하게 느껴 버린 절정에 여전히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여은은 아무것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완전히 방전된 채 남자의 가슴에 기대어 지친 몸을 완전히 의지하고 있었다.

“말로 약속하지 않겠다면, 몸의 약속이라도 받아내야겠어. 오직 나만이 당신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손길과 입술의 움직임을 다정하지만, 말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음험한 남자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났지만 안타깝게도 여은의 귀는 이명만이 가득 차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여전히 강렬한 절정의 여운이 지나가지 않은 예민한 몸을 다시 깨운 것은 그의 커다란 손이었다.

“응? 뭐….”

여은은 저절로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는 이상한 감각에 눈을 떴다. 질척이는 소리도 들렸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자 보이는 거울에서 젖꼭지와 아래의 붉은 속살을 문지르는 커다란 손이 보였다.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엉덩이를 카우치 밖으로 길게 빼내고 앉은 터라 벌린 남자의 허벅지 바깥쪽으로 활짝 벌어진 다리 사이로 여전히 박혀 있는 남자의 검붉은 기둥이 보인다.

“흐응!”

야살스럽게 제 음핵을 문지르는 남자의 손에 자극받은 아랫배가 요동치자 절대로 빈틈이 없을 것 같던 구멍 사이로 허연 정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슴만 애무해도 자동으로 움찔대는 클리토리스였다. 방금 절정을 느꼈는데 다시 시작된 자극은 폭력보다 더했다.

정말 뇌가 녹아 버려 천치가 될 것 같았다. 엉엉 울며 평생 당신 옆에 있을 거라는 말을 내뱉을 것만 같았다. 남자의 이런 집요함이 치가 떨리면서도 좋았다.

“하악! 미칠 것 같아!”

울부짖으며 외친 소리는 사실이었다. 정말 미칠 것 같다. 이 남자가 너무 좋다.

“히메. 내 안에서 미쳐 줘. 제발 부탁이야.”

음핵을 문지르던 손이 그곳의 껍데기가 살짝 벗겨지는 것을 느끼자 곧 파헤치기 시작했다.

“앙! 안 돼! 나, 정말, 정말 죽을 것 같아!”

류태주에게 안기면 순수하게 짐승이 된다. 도덕도, 관념도 수치도 잊어버린 채 울부짖는 암컷이 된 여은은 목을 뒤로 젖히며 꺼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온몸이 타는 듯한 열기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의 고통에 제 가슴을 쥐어뜯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단단히 깍지 끼어 사로잡혔고 비명마저 그에게 먹혀 남자의 목구멍으로 사라졌다. 사시나무 떨듯 떠는 몸은 움쭉달싹하지 못할 정도로 커다란 몸에 싸여 있었다. 순간 커다랗게 떠진 동공이 확장되더니 거울로 긴 포물선을 그리는 사정액이 분출되었다.

“당신은 내 거야. 내 여자. 나의 히메. 여은.”

무섭도록 집착 어린 남자의 목소리를 꺼져 가는 정신으로 듣는 여은의 의식은 어둠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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