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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프롤로그. (1/14)

감각점 1권

다깡

-목차-

프롤로그.

01 ~07(1)

프롤로그.

꿈이었다.

나는 꿈을 꾸면서 이것이 꿈인지 안다.

꿈의 전개는 늘 달랐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던 어릴 때였을 때도 있고, 최근일 때도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나올 때도 있었고 모르는 사람들 속에 있을 때도 있었다. 단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항상 어두웠다는 것이다. 나는 어둠이 싫다.

“왜 일어나 있어?”

남자의 목소리는 근사했다. 이 목소리를 너무 그리워해서 꿈에서까지 들리나 보다.

“비가 와요?”

나는 의미 없이 물었다. 남자에게서 희미한 흙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아니. 정원에 물이 고여 있었나 봐. 그걸 밟아 버렸어.”

조금은 낭패스러운 남자의 말투에 나는 웃었다. 작게 키득거리자 남자도 웃는 것 같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춥지 않아?”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물었다. 어차피 얼굴을 볼 수 없는 나는 남자의 목 아래를 보았다. 운동으로 다져진 굵은 목에 튀어나온 울대가 아름다웠다. 나는 꿈에서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신기하게도 그랬다. 부모님의 얼굴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의 얼굴도 볼 수 없었다. 그저 느낌으로 아는 것이다.

“조금.”

무의식적으로 손이 배에 갔다. 배가 이제 제법 봉긋하게 불러 있었다.

“아, 23주가 되었지.”

나는 혼잣말을 하며 배를 쓰다듬었다.

“만져도 돼?”

남자의 물음에 나는 웃었다.

“어제도 만졌잖아요.”

나는 웃으며 남자의 커다란 손을 잡아 내 배로 갖다 대주었다. 따뜻하고 큰 손이 벌어져 배를 감싸자 작은 배가 한 손에 잡힐 듯 감싸졌다. 누구인지 아는 듯 아이가 반응했다. 손바닥을 통통 차더니 손안에서 놀 듯 스르륵 움직였다. 얇은 뱃가죽이 아이의 움직임에 들썩였다.

“잘 노네. 건강한가 봐.”

늘 다정하지만, 아이를 볼 때면 조금 무뚝뚝해지는 남자의 목소리에 나는 입을 삐죽였다. 현실에서는 절대 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이것은 꿈이니까.

“응. 당신 아이잖아요.”

내가 웃자 남자의 무뚝뚝한 분위기가 사르르 녹는 것 같다. 아, 좋아. 이런 꿈만 꿨으면 좋겠어. 기분이 좋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렌다. 심장의 떨림은 감정적인 동요가 아니다. 배를 만지면 곧 이어질 음란한 행위들에 대한 기대였다.

꿈에서 나는 자유롭고 과감했다. 마치 6개월 전의 홍콩 여행에서 진여은이라는 이름을 버린 것같이 자유로웠다. 아이의 움직임이 잦아들자 나는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무엇을 바라는지 아는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즐겁고 기껍기만 한 웃음은 나를 부끄럽게 했다.

“웃지 말아요.”

투정하듯 말하자 곧 커다란 손가락이 내 잠옷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맞춤 슈트를 입느라 가슴을 붕대로 감싸기에 답답함이 싫은 나는 집에서는 속옷을 입지 않았다. 그런 사소한 현실도 꿈에서 똑같이 재현되는 것이 신기하다. 파자마 상의 단추가 벌어지자 곧 임신으로 더욱 커진 가슴이 드러났다.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남자의 숨소리가 조금 거칠어진 것 같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당신이 올 것 같아서, 캐미솔을 안 입었어요.”

파자마가 벌어지자 바로 드러나는 가슴에 남자는 놀란 것이다. 그렇다. 나는 꿈에 올 남자를 생각하며 캐미솔을 입지 않았다.

“어제보다 더 부푼 것 같아. 가슴.”

웃음기를 띤 남자의 말에 나는 내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다른 사람의 얼굴은 안 보이지만 내 몸은 잘 보였다.

“푸른 유선이 돋아서 징그러워요.”

원래도 풍만한 편이었던 가슴은 임신으로 엄청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하얀 피부 위로 드러난 핏줄이 더욱 파랗게 보였다. 아이에게 먹일 젖을 준비하는 가슴은 색이 짙어진 유두를 중심으로 뿌리처럼 뻗어 가슴을 휘감고 있었다. 몸을 낮춘 남자의 뜨거운 입김이 가슴 둔덕에 닿았다. 그것만으로도 짜릿한 전류가 어깨를 감싸고 허리 아래로 짜르르 흐른다.

“아니야. 아름다워. 정말이야.”

자신의 진정성을 믿어 달라는 듯 말하는 남자의 말투에 나는 웃었다.

“안 믿어요. 거짓말쟁이.”

꿈이지만 안다. 이 남자는 절대로 나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야. 히메. 당신만큼 아름다운 여자는 본 적이 없어. 정말이야.”

“알았어요.”

아무려면 어떤가. 이것은 꿈인걸. 남자의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을 듣기 싫었던 나는 가슴팍 앞의 짧은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감아 몸쪽으로 당겼다. 남자의 얼굴이 내 두 가슴 안에 파묻혔다. 살면서 불편하기만 했던 큰 가슴이 이럴 때만큼은 커다란 만족감을 준다. 커다란 둔덕 사이에 코를 파묻고 있던 남자의 뜨거움이 가슴부터 허리로 볼록하게 나온 배와 그 아래로 퍼진다.

“빨아 줘요. 핥아 주고 혀끝으로 쑤셔 줘요.”

꿈에서의 나는 대범하게 요구했다. 그러면 살면서 한 번도 명령이라고는 받아 본 적 없을 법한 이 남자는 성실하게 나의 요구에 응했다. 새빨간 혀가 나와 마치 산딸기 과육같이 갈라진 젖꼭지 끝에 닿았다.

“아!”

다가올 쾌감에 대한 기대로 온몸의 감각이 벌써 활짝 열렸다.

“어서. 빨아 줘… 음…!”

남자는 절대로 서둘지 않았다. 마치 야수처럼 서둘며 덤벼든 것은 홍콩에서의 첫날밤밖에 없었다. 나는 그날을 최대한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으므로 이유에 대해 짐작할 수 없었지만, 불현듯 혹시 이 남자도 그때가 처음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에 관한 생각도 젖꼭지를 휘감은 축축한 살덩어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앙! 좋아. 아앙! 조금 더…!”

홍콩에서는 훨씬 더 거칠었었다. 얼마나 이로 깨물고 씹었던지 하루도 젖꼭지가 헐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치 사탕을 먹듯 달콤하게 빨아만 대서 그것이 더 감질났다.

“세게 하면 당신이 아플 거야. 당신이 아프면 아이가 놀라. 엄마잖아.”

나를 달래는 다정한 남자의 목소리에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 이것이 거짓이고 꿈이라는 것이 원망스럽다. 하지만 꿈이라도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모성은 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부푼 배에 손을 갖다 대었다. 꿈에서라도 아이를 생각지 못한 자신이 한심했다. 하지만 쾌락을 아는 몸은 점점 더 달아오를 뿐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살면서 성욕이란 것을 느껴 보지 못했다. 홍콩에서 남자에게 다리를 벌리기 전에는 그저 수치스럽고 경멸스럽기만 하던 행위였다. 그런데 아이를 가지고 낮임에도 불구하고 시도 때도 없이 자꾸만 축축이 젖어 오는 아래가 당혹스럽기만 했다. 나는 심통 난 아이처럼 투덜거렸다.

“하지만 간지럽단 말이에요. 젖꼭지도 간지럽고, 아래도 너무 간지러워. 간지러워 죽을 것 같아요.”

남자의 웃음소리가 부끄러우면서 좋았다. 아! 그래, 정말 좋은 조건을 두루 모두 갖춘 남자다. 그 유려하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꿈이라 보지 못하는 것은 너무 아쉬울 정도로 남자는 잘생겼다. 그 얼굴에 홍콩에서 넋을 빼앗겼을 만큼.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 남자는 가장 큰 결함을 안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모든 좋은 조건을 휴짓조각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컸다. 그것은 이 남자가 제아무리 커다란 능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에서도 지금은 자유롭다. 왜냐하면 이것은 꿈이니까!

“정말 음란한 자태야. 히메. 정말 당신 때문에 눈이 멀 것 같아.”

중얼거리는 목소리도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나는 막 태동을 시작한 아이가 다시 잠을 자듯 조용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을 늘어뜨렸다. 그러자 곧 한쪽 젖꼭지가 강하게 빨리는 동시에 커다란 손에 젖이 짓이겨진다.

“흐읏!”

남자의 혀는 부드럽지만 집요했다. 마치 뱀처럼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선단을 휘감아 빨아당기더니 그 안을 파고들 듯 쪼아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을 머리에 새긴 듯 남자는 나를 만족시켜 갔다.

“하앙! 좋아, 좋아요.”

저절로 허리가 들썩인다. 엉덩이가 저절로 조여들을 때마다 젖은 구멍이 벌름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언젠가부터 이 음란한 꿈에 취해 있었다.

“홍콩에서보다 성감이 더 좋아진 것 같은데. 너무 느껴서 무서울 정도야.”

성격대로 느긋한 목소리였지만 조금씩 거칠어지는 숨결도 만족스럽다.

“그때는 처음이니까…. 하앙!”

꿈에서라도 솔직하게 말해 본다. 남자와 이런 감각을 나눠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제법 노는 티를 냈다. 나에게는 이 남자의 정자가 필요했으니까. 아무런 경험이 없던 여자가 피임 도구를 쓰지 않고 관계를 요구하기 위해 급히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나도 처음이었어. 히메. 당신이 정액으로 오르가슴을 느낀다는 그 말에 깜빡 속아 거칠게 했었지. 후회하고 있어.”

“거짓말. 류태주가? 하응! RUU의 류태주가 처음이라고? 동정이었다고?”

이 꿈은 나의 무의식을 반영한다고 하기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실이다. 그러다가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에게 자기 이외의 여자가 없기를 바랐음을. 술자리에서 옆에 앉은 여자에게 느낀 것이 질투였음을. 제발 그 여자가 남자의 몸에 손대지 않기를 절실히 원했음을. 나는 깨달았다. 꿈이었지만 만족스럽다.

“그래. 당신이 처음이었어. 나는 당신만 보고 있었거든.”

거짓일 게 뻔한 이런 허무한 말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꿈에서라도 남자의 다정함에 눈물이 난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남자의 존재에 나는 그 입을 막듯 가슴을 더욱 밀착하며 아래를 비벼댔다.

“아래. 아래를 빨아 줘요. 너무 축축해.”

나의 요구에도 마치 순서가 있는 양, 남자는 혀로 다른 쪽 가슴을 한 손에 움켜쥐고 빨았다. 굵은 손가락 사이로 도드라진 가슴살과 움켜쥔 손 모양대로 변형된 젖이 음란해 보인다.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마구 만지는 것 같은데도 가슴에 퍼지는 알싸함이 고통스러움과 동시에 시원했다. 젖을 생산하기 위해 변화하는 가슴의 몽우리들이 풀리는 동시에 느껴지는 쾌락에 나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풀어 헤친 긴 머리가 등을 스치는 것만으로도 쾌감이 된다.

“젖내가 나는 것 같아.”

그것은 내가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빨아 주는 게 좋지?”

여전히 유두를 희롱하는 데 열심인 입술이 짓궂은 질문을 한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요, 좋은 집안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은 이 남자가 잠자리에서 읊는 말들은 조직의 보스로 8년을 살아온 나도 수치스러움을 느낄 만큼 난잡하고 음란했다.

“바지를 내려 봐.”

말하는 그 잠깐의 순간에도 다디단 과육에서 입을 떼기 싫다는 듯 입술은 젖가슴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지체 없이 동그란 배 아래에 걸린 헐렁한 파자마 바지를 팬티와 함께 내 손으로 끌어 내렸다. 그리고 몸을 뒤로 뉘었다. 나를 절대로 놓칠 리 없는 단단한 팔을 알기에 맘 놓고 뒤로 넘어갔다. 이 남자의 말은 믿을 수 없지만, 몸에는 신뢰가 간다니, 그 사실이 우습기만 하다.

꿈에서까지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나는 두 발을 허우적거리며 어중간하게 걸린 바지를 모두 벗어 던져 다리를 활짝 벌렸다. 두 팔에 머물러 있던 상의도 남자에 의해 벗겨진 나는 완전한 알몸이었다. 그러나 이 음란한 꿈이 반복되어서 그런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왼쪽 팔의 흉터도 유선이 가득한 커다란 가슴도, 체모 하나 없이 물이 흥건히 젖은 아래가 노출되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다.

“당신이 옛날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분명히 화가가 되어 당신을 오달리스크로 만들어 그렸을 거야. 분명히 그 그림은 명작이 되겠지. 아니, 아니야. 당신의 이 아름답고 음란한 자태를 공개할 수는 없지. 그때도 당신의 아래를 이렇게 개같이 핥고 싶어서 그림 따위는 관심도 없었을 거야.”

활짝 벌어진 붉은 속살을 보는 그 눈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말해 봐. 어떻게 빨아 줄까? 벌써 발발 떨리고 있는데? 가슴만으로 이렇게 느끼다니, 정말이지 음란하다니까.”

사실은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부터라는 말은 꿈이지만 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는 나, 진여은에게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혀로 빨다가, 핥고, 살짝 깨물기도… 해줘요. 개처럼.”

천하의 류태주를 개로 만드는 이 순간이 좋았다.

“좋아. 내가 당신의 개들을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를 거야. 히메.”

M자로 활짝 벌어진 다리 사이로 남자의 머리가 내려갔다.

“하윽!”

나는 뜨거운 혀가 클리토리스를 감는 감각에 진저리치며 마치 힘겨운 고문이라도 견디듯 시트를 움켜쥐었다. 쩝쩝 음란한 물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꿈에서조차 혼몽한 상태로 남자에게 아래를 내맡긴 채 신음하며 울부짖었다. 볼록한 배를 내밀고 성애에 가득 차 아래를 빨리는 제 모습이 마치 짐승 같다.

“하앙! 거기, 커졌어! 아앙!”

자극받은 클리토리스가 부풀어 오르자 나는 허리를 위로 띄우며 더욱 강한 자극을 원했다.

“그래,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부풀어서 너무 귀여워.”

그는 마치 키스하듯 각도를 달리하며 아래를 빨았다. 핥을 때는 개같이 질척거리고 빨아올릴 때는 흡착기같이 강렬했다. 그리고 나의 요구대로 살짝 깨물자 흥분으로 벌어진 속살이 노출되며 그 안으로 혀가 파고들자 뇌를 강타하는 쾌감에 나는 정신을 놓아 버렸다.

“하응! 손가락, 아! 거기!”

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굵은 남자의 손가락이 뻐끔대는 구멍으로 파고들었다. 원래 바늘귀 같던 그곳은 남자로 인해 제법 존재를 드러낸 둥근 모양을 만들어 내고 있었으나 여전히 삽입은 힘들 것이다. 이 남자의 좆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흉측하게 생겼다.

“큰일이야. 내 손가락도 이렇게 쪼아대는데 좆을 넣으면 찢어질 것 같아서.”

홍콩에서 수없이 뒹굴며 난잡하게 갈취해 갔던 주제에 위하는 척 말은 잘한다.

“거짓말, 하응! 자지만 넣으면 정신없이 허리를 터는 주제에! 아응! 짐승.”

이 남자 앞에서는 이런 음담패설이 자연스럽다. 아래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꿈속이 아니더라도 RUU 해운의 실제 대표인 이 남자는 음란한 말을 즐기는 저질스러운 인간이다.

“응. 정말이야. 내 좆은 당신만 생각해도 피가 몰려. 그리고 목소리라도 들으면 좆 물을 흘려대지. 그 도청기에 녹음된 당신 목소리 들으며 내가 얼마나 물을 흘려댔는지 알면 짐승이라는 말도 못 할걸? 짐승은 그래도 발정기란 게 있잖아. 나는 당신이 발정기야.”

“하으응!”

아래를 쑤시며 빨아대는 통에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인지할 수도 없다. 귀는 이명이 인 듯 멍했고 말소리는 가까이 들렸다, 멀리 들리기를 반복하며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아! 거기! 아!”

홍콩에서 느낀 스팟 외에도 남자가 꿈에서 개발해 준 스팟은 굉장히 다양했다. 질벽이 파르르 떨리는 감각에 취해 나는 이 달콤한 꿈이 계속되기를 바랐다.

“아아아!”

임신 이후 아이에게 무리가 갈까 싶어 힘을 줄 수 없는 아랫배가 저절로 요동친다. 남자와 뒹굴던 시절, 아랫배에 힘을 주어 클리토리스를 더욱 부풀리는 대신 사정을 참으며 더욱 쾌감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썼던 나는 대신 파도처럼 덮쳐 오는 그 쾌감에 온몸을 맡기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쾌감에 목마르면서도 이 순간이 싫다. 왜냐하면 늘 시트를 적시는 사정과 함께 오르가슴을 느끼는 순간 이 꿈에서 깨어나기 때문이다.

“하앙! 하앙! 싫어! 싫어! 류태주! 아앙! 조금 더, 조금 더!”

눈을 뜨면 맞이할 지긋지긋한 일상이 싫었다. 날을 세우고 노려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싫었다. 그저 이 달콤한 꿈에, 이 감각에 취해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구해 줄게. 진여은. 사랑해.”

“하아앙!”

울부짖는 내 목소리 뒤로 들린 낮은 저음. 내 것이 될 수 없는 안타까움에 나는 오늘도 아래위로 펑펑 울어 버렸다.

□ ◆ □ 윤이아

삐삐삐삐.

알람 소리에 눈을 뜬 여은은 배가 불러온 이후 계속되는 묵직한 느낌에 나른한 한숨을 쉬었다.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악몽에 시달린 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로 계속된 것이었다. 가끔 어둠 속을 헤매다가 가위에 눌리기도 했는데 임신 이후에는 계속 이런 음란한 꿈의 연속이다.

“임신하면 호르몬이 변화된다더니….”

다시 떠올리기도 민망한 장면들이 떠오르자 여은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러다 그녀는 톡톡 발을 차는 아이의 인사에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안녕, 아가. 잘 잤니?”

진여은은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이 아이와 사랑에 빠졌다. 이 사랑스러운 존재를 잠깐이라도 떠나보낼 생각을 했다는 것이 미안하고 죄스러울 만큼 이제는 이 아이가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도 없다. 만약 여동생이 결혼해서 떠나간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혼자 남지 않아도 되었다. 이 세상에 더는 혼자가 아니라는 든든함에 마음이 따스해져 온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내가 지켜. 동생도, 진도 금융도. 모두 지킬 거야.”

여은은 배를 소중하게 쓰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

왜인지 허리 아래가 묵직했다. 여은은 굵은 손가락이 제 아래를 들락거리던 지난 꿈을 떠올리며 이불을 걷고 헐렁한 고무줄의 파자마 바지를 슬며시 들어 올려 보았다.

“응? 내가 분홍색 팬티를 입고 잤던가?”

쾌감이 선연한 음란한 꿈을 기대하며 캐미솔은 입지 않고 잔 것은 맞지만 자신이 무슨 색깔 팬티를 입고 잤는지는 가물거렸다. 여은은 잠시 자신과 주위를 살폈다. 잠을 잔 흔적이 가득한 시트는 깨끗했고 구겨진 파자마의 단추는 단정히 잠겨 있었다. 살짝 부어 있는 느낌의 아래에 팬티를 들쳐 보려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미쳤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여은은 일어나 외출 준비를 했다. 오늘은 진도 금융의 긴급 주주 총회가 있는 날이었다. 지분 확보에 성공한 숙부가 어떤 낯짝으로 무슨 발언을 할지, 거기다 진도 금융을 노려 자신과 아들의 결혼을 종용한 명운 그룹 최 회장이 무슨 꼼수를 부릴지, 여러 가지로 가관인 꼬락서니를 보게 될 것이 분명한 날이다.

“엄마는 괜찮아. 그러니까 너도 놀라지 마.”

어느새, 아이에게 엄마라고 말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아이를 품은 지 벌써 6개월. 여은은 검은 슈트 차림으로 앞쪽으로 쏠리는 몸을 살짝 뒤로 젖히며 허리에 손을 짚고 창가로 갔다. 임신 이후 올라간 기초 체온으로 작은 움직임에도 숨이 가쁘고 땀이 났다.

몸이 차면 안 된다는 극성스러운 오산댁과 자신을 위한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여동생 때문에 초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방 온도는 숨이 막힐 만큼 더웠다. 그래서 자주 창문을 열어 열기를 식히기 위해 창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잠깐 창문을 열게. 더워서 그래.”

여은은 배 속 아이에게 변명하며 창문을 밀었다. 그녀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제가 버리도록 명령한 꽃다발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지만 가장 먼저 시야에 잡힌 것은 2층 방 아래 물이 흥건한 정원이었다. 집 안을 돌보는 오산댁이 어제 정원에서 뭔가를 한다더니 물을 둔 양동이가 넘어졌나 보다. 아마도 제 방 아래에 꽃밭을 만들 생각인지 쌓아 둔 흙에 물이 쏟아져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비가 와요?”

“아니. 정원에 물이 고여 있었나 봐. 그걸 밟아 버렸어.”

꿈에 나눈 대화가 떠오른 여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대문 앞에 그대로 버려진 꽃다발을 확인하고는 창문을 닫았다.

“뭘 확인하고 싶은 거야, 진여은?”

병원에 입원했던 때는 물론이고 단 한 번 코빼기도 보여주지 않던 남자였다. 단지, 병원비, 자신을 감시하던 간호사, 매일 보내오는 꽃다발 따위로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 있었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따위 성의로 나중에 친자랍시고 아이나 빼앗으러 오지 않기를 바라야지.”

여은은 차가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방을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보스.”

아래에 있던 수하들의 깍듯한 인사를 곁눈질로 받은 그녀는 도도하게 턱을 세우며 반듯하게 걸었다. 원래 마른 몸에다 임신 초기에 심한 입덧으로 오히려 살이 빠진 그녀는 임신 6개월의 몸에도 불구하고 크게 티가 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새로 맞춘 슈트 덕이 컸다.

임신으로 불어난 가슴도 조금 여유 있게 붕대로 여밀 수 있었으나 7개월 즈음부터는 재택 할 수 있도록 주변의 일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주방으로 향하던 그녀는 들리는 생소한 소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주방에는 익숙한 오산댁이 아니라 여동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린이 웬일이야? 여사님은?”

여은이 집에서만 부르는 이름으로 동생인 여린의 이름을 부르자 활짝 웃는 얼굴로 돌아본다.

“응. 언니. 잘 잤어? 우리 쿠키도 잘 잤니?”

“쿠키는 또 뭐야?”

아마도 태명일 듯한 명명에 여은은 피식 웃었다.

“건강하게 태어나라고 개똥이라 불렀는데, 나중에 개똥이라 불렀다고 이모 미워하면 어떡해? 언니가 요즘 쿠키를 잘 먹는 걸 보니 얘가 쿠키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어. 그래서 쿠키라고 부를래. 여사님은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새벽에 나한테 전화했어. 친척분에게 일이 생겨서 고향에 급히 내려갔다 온다고. 그런데 여사님에게 그렇게 가까운 친척이 있었나? 전화도 어떤 남자가 했어. 여사님이 놀라서 경황이 없다고.”

여은은 따라 놓은 우유를 마시다가 멈칫했다.

“남자?”

“응. 젊은 남자였는데. 엄청 무뚝뚝한 목소리였어.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갑자기 통보만 하면 어떡해?”

“너는 가끔 여사님께 너무 무례해. 엄마처럼 너를 예뻐하는 사람인데 왜 그러는 거야? 10년 동안 휴가도 한번 없이 우릴 돌봐준 여사님께 그러면 안 돼.”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인 여은과 달리 다섯 살 아래인 여린은 소심하긴 하지만 천성이 밝고 사람을 잘 따르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유독 오산댁에게 거리를 두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피! 세상에 엄마는 한 명이라고.”

동생의 투덜거리는 작은 목소리를 못 들은 체하며 여은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가 전화했다고?”

젊은 나이에 혼자되었다는 오산댁은 이미 이 집에 오기 전에 홀몸이었다. 친척이나 가족에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던 여은은 날카로운 눈으로 수하를 바라보았다.

“여사님 아파트로 사람을 보내 봐.”

“네. 알겠습니다. 오늘 든든히 드십시오. 보스. 진경백이 움직인다고 합니다.”

숙부가 움직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기 위해서 지분 확보에 성공한 것일 테니 말이다.

“오늘 무척 재미있는 하루가 되겠어. 인원은?”

어디에 빌붙었는지 가진 것 하나 없는 숙부가 진도 금융의 지분을 30%를 끌어모았다. 25%만 되어도 이사 선임에 관여할 수 있는데 30%라면 대표로 등록된 여은과 불과 3% 차이였다. 그 인간이 지분을 매수한다는 소문을 우습게 무시한 결과였다. 인간쓰레기로 알려진데다 손대는 것마다 망하는 마이너스의 손을 가진 진경백에게 돈을 대줄 인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저희도 그 인간이 맨몸으로 올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끌어들인 조직이….”

평소 무데뽀같이 거침없는 제 수하가 망설이는 것을 본 여은의 눈썹이 올라갔다.

“RUU입니다. 거기서 30명이나 붙었다고 합니다.”

“RUU!”

진여은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얼굴은 핏기가 모두 가신 듯 창백하고 갈색 눈의 동공은 커다랗게 확장되어 지금 그녀가 얼마나 놀랐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언니!”

여은이 놀라는 모습에 더 놀란 여린이 당장 달려와 어깨를 안아 왔다.

“언니, 그렇게 놀라면 아이에게 좋지 않아. 긴장을 풀고 심호흡을 하자. 응?”

다독이는 동생의 말에 이성을 되찾은 여은은 떨리는 손이 보이지 않도록 슈트 주머니로 찔러 넣었다.

“괜찮아. 나는 괜찮아.”

누구에게 들려주는 말인지 모호한 말을 중얼거리는 여은을 보는 여린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나도 갈래.”

“안 돼. 위험해.”

단칼에 잘라 버리는 여은의 말에도 여린은 고개를 저었다.

“위험하기는 언니도 마찬가지잖아. 숙부님이 무슨 짓을 벌일지….”

자매의 실랑이는 쇠줄 같은 여린의 고집을 꺾지 못한 진여은의 패로 돌아갔다. 대신 만약의 경우, 난장판이 벌어진다면 가드로 붙인 조직원을 따라 그대로 도망간다는 약속을 단단히 받아낸 후였다.

그들은 주주 총회가 열리는 M 컨벤션센터로 향했다. 넓은 빌딩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었다. 주차장부터 포진한 검은 슈트의 사내들을 보는 진여은의 갈색 눈동자는 여느 때보다 더 차갑고 날이 서 있었다.

“전쟁이라도 낼 작정인가?”

진도 금융의 기조를 이루는 진도 파는 물론이고, 진도 파가 속해 있는 명운, 그리고 이제는 조직에서 손을 뗐다고 큰소리치는 대명과 오신의 조직원들까지 보였다. 모두 검은 슈트를 입은 사내들이 모여 있어 숫제 장례식이라도 치르는 모양새다.

여은은 다른 입구에서 동생을 먼저 내리게 했다. 자신과 함께 있다가 습격을 받을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차가 입구에 서자 컨벤션센터의 직원인 듯한 남자가 문을 열어 주었다. 날카로운 킬 힐이 차 밖으로 나오자 곧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앞이 유난히 뾰족한 구두가 대리석 바닥을 찍을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20명 남짓의 남자들이 따르고 있는 여자는 자그마한 체구였지만 밀어닥치는 태풍 따위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큼 당당하고 위엄 있었다.

걸을 때마다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짧은 단발머리가 귀 옆으로 찰랑였다. 복도에 어수선하게 서 있던 사내들이 그녀의 등장에 모두 숨을 죽이고 하던 행동을 멈추었다. 칼같이 날카로운 검은 단발, 검은 슈트에 무기로도 사용이 가능한 하이힐. 진도 파 보스 진여은이었다.

나이를 알 수 없는 짙은 화장으로 느껴졌으나 창백하리만큼 흰 얼굴은 자세히 보면 피부 화장은 거의 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천천히 걷던 그녀가 눈을 움직여 사내들을 본다. 그들은 고양이처럼 치켜 올라간 짙은 아이라인에 검은 섀도로 음영을 준 갈색 눈동자가 자신들을 향하자 모두 허리를 숙였다. 여자가 지나갈 때까지 사내들은 허리를 펴지 못했다.

“우와! 검은 마녀.”

“카리스마 장난 아닌걸?”

“저 정도 되니까 조직을 운영하는 거지. 뒤에 선 새끼들 어깨 세우는 것 못 봤어?”

“그러게. 나는 진팔양 딸이라고 해서 그냥 의리로 자리 지키나 했는데 그게 아니네.”

“진도 금융 자산이 백조 단위야. 관리하는 업소도 엄청 짱짱해서 실속이 장난 아니래.”

“햐! 누군지 기둥서방으로 앉는 남자는 돈방석이겠네. 저기 있는 놈들 모두 그걸 노리는 거 아니야?”

“네가 검은 마녀 소문을 못 들었구먼, 저 킬 힐에 마빡 뚫린 인간들 셀 수 없다고. 재수 없으면 눈도 찍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여자야.”

수군거리던 사내들은 뒤따르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어서 오십시오. 다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진여은이 문 앞에 서자 앞을 지키던 남자가 허리를 숙여 깍듯이 인사했다. 문이 열리자 100석이 되는 의자에 앉은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배당금이 지급되는 연말 이전, 긴급으로 소집된 주주 총회였지만 많은 사람이 좌석을 채우고 있었다. 이사는 대부분 명운 파의 장로들로 지금은 은퇴했지만, 한때 이름을 날리던 조폭들이었다.

의리 있게, 남자답게 살아야 한다고 외치는 그들의 이중성에 진여은은 진심으로 침을 뱉고 싶었다. 의리와 신의 위에 있는 것이 돈이었다. 이들에게 돈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적어도 진여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들의 동료이자, 아우, 형님으로 모시던 이가 비명에 가자, 모두 벌겋게 달구어진 눈으로 달려든 모습이 그 증거였다.

‘부모님도 당신들이 죽였을지도 모르지.’

부모님의 교통사고의 배후는 철저히 가려져 찾을 수 없었다. 그토록 깔끔하게 잘린 모든 단서에 그녀는 주위 모든 사람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진여은은 사람을 믿지 않았다. 그녀의 울타리에 들어선 인간은 동생인 진여린과 어머니의 생전 비서였던 오산댁, 김소영이 유일했다.

“사장님,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진도 금융의 실무를 보는 점장이었다. 조폭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 오늘의 분위기에 기가 질린 모양인 남자는 연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진여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쪽으로 몸을 틀었을 때였다. 자신을 보는 시선에 저절로 눈동자가 움직였다.

창가에 선 남자의 유난히 긴 다리에 먼저 시선이 갔다. 오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실내의 화려한 샹들리에의 불이 환히 켜져 있는 창은 모두 암막 커튼으로 막혀 있었다. 남자는 일부러 커튼을 걷은 듯 창 앞에 빛을 등지고 서 있었다.

시선을 돌리자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빛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역광 안의 눈동자가 사냥감을 노리듯 번득였다. 여은은 점장을 따라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췄다. 포마드로 깔끔하게 올린 앞머리, 반듯한 이마, 붓으로 그린 듯한 짙은 눈썹, 속눈썹의 깊은 눈, 이마와 굴곡 없이 떨어지는 날카로운 코, 모양 좋은 완벽한 입술, 갸름하지만 남자다운 턱, 홍콩에서 진여은이 0.2초의 기적을 느낀 바로 그 남자.

류태주였다.

“당신만큼 아름다운 여자는 본 적이 없어.”

“당신이 옛날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분명히 화가가 되어 당신을 오달리스크로 만들어 그렸을 거야. 분명히 그 그림은 명작이 되겠지. 아니, 아니야. 당신의 이 아름답고 음란한 자태를 공개할 수는 없지. 그때도 당신의 아래를 이렇게 개같이 핥고 싶어서 그림 따위는 관심도 없었을 거야.”

“진여은. 사랑해.”

다정한 웃음, 쓰다듬던 손길, 따뜻하던 가슴과 그 품.

아, 아. 왜 몰랐을까!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진여은은 6개월 만에 보는 남자의 얼굴을 보고서야 꿈으로 생각했던 것이 꿈이 아님을 깨달았다.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배에 손을 갖다 대는 여자를 보며 입술 끝을 올렸다. 그 미소는 무척이나 차갑고 비정했다.

“찾았다. 히메와… 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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