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까느냐, 깔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미친.”
멍하니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던 승진의 입 밖으로 욕설이 흘러나왔다. 어찌나 집중을 하고 있었는지 눈에 힘이 다 들어갔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 있던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한껏 경직된 얼굴은 펴지지 않는다. 승진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엄청……난데.”
조금 전, 자신이 보았던 모니터 속 동영상에서의 행위는 그의 심장을 덜컹거리게 만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말로만 들어온 남자들끼리의 섹스 영상을 제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후우. 길게 숨을 흘린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제 손길에 황당한 표정을 짓던 우영을 떠올려 보았다.
[백가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때는 바야흐로 백승진이 신우영이라는 소년에게 홀딱 빠져 버린 몇 달 전의 일. 그 후로 새해가 밝았고, 승진과 우영은 성인이 됐다. 합법적으로 백승진이 꿈꾸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소리.
우여곡절 끝에 본가를 나온 이후, 승진은 우영에게 자신의 오피스텔 키를 건넸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신이 아닌 우영이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여기며 자연스럽게 우영의 목을 감싸려던 순간, 우영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우영의 서늘한 표정에 움찔하던 승진은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 하기는? 당연히…….]
[떼라.]
[뭐? 왜!]
[떼.]
[하?]
[내가 허락한 건 키스까지만이야.]
우영의 굴곡진 엉덩이를 지분거리며 그 사이를 파고들려던 승진은 냉정하게 말한 뒤 후방으로 향해 있던 그의 팔을 가슴 쪽으로 올리는 우영에게 인상을 썼다.
[이봐, 신가. 너무한 거 아니냐?]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발뺌하지 마, 이 새끼야! 너, 내가 얼마나 참았는지 알잖아!]
[…….]
[네가 수능 전까지는 안 된다고 해서 참고, 졸업 전까지는 안 된다고 해서 참았어. 그리고 입학 전까지는 안 된다고 해서 참았고, 독립 전까지는 안 된다고 해서 참았다고!]
승진은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런데 뭐? 또 안 된다고? 씨발, 그럼 언제 가능한 건데!]
백승진.
매일 밤 꼿꼿하게 기둥을 세우고, 아침 역시 그 기세가 죽지 않는 혈기왕성한 스물의 청년
전신의 피가 들끓어 미칠 지경이건만, 고작 타액을 나누고 혀를 옭아매는 키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승진은 조금 더 많은 것을 원했다. 조금 더 진한 것을 우영과 나누고 싶고, 조금 더 깊은 것을 건네고 싶었다.
그것이 처음으로 만든 ‘연인’에게 해 주고 싶은 건데, 이 자식은 왜 이리 신중한 거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외치던 승진은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쉬며 뒷머리를 긁는 우영을 아니꼽게 응시했다.
한동안 검은 눈으로 그런 승진을 쳐다보던 우영이 ‘백가.’ 하고 승진을 불렀다.
[왜!]
[너.]
[……?]
[남자끼리, 어떻게 하는 건지 알고나 있냐?]
우영의 발언에 승진은 인상을 썼다.
[어떻게 하기는! 그냥 넣고 쑤시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법조계 집안 자제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저렴한 발언이군.]
[시비냐?]
[잘 들어, 백가.]
얼굴을 찌푸리는 승진에게 쯧쯧 혀를 차던 우영이 말을 이어 갔다.
[너는 그냥 박기만 하면 다인 줄 알겠지만, 남자끼리의 섹스는 주의를 요해야 하는 법이다.]
[뭐?]
[원래부터 그런 기능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그게 무슨…….]
[됐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 주는 게 낫겠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승진을 한심한 듯 바라보더니 웬 주소 하나를 건네는 우영을 보며 그는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그거나 보고 공부 좀 해.’라는 말을 한 뒤 몸을 돌려 사라지는 우영을 멀뚱히 응시하던 승진은 한동안 머뭇거리다 조금 전, 예의 주소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펼쳐진 신세계에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똑같은 것이 달린 남자들끼리 철썩 붙어선 야릇한 신음을 흘리는 광경은 분명 승진과 우영이 손으로 서로를 달래 줄 때 하는 행동들과 흡사하기는 했으나, 뭔가 차이가 있었다.
“흐음.”
아예 바보는 아니었기에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그곳을 쓸 줄이야.
‘하읏.’ 하고, 길쭉한 것이 몸 안으로 밀려들어 올 때마다 뜨거운 교성을 흘려 대던 동영상 속의 남자를 떠올리며 움찔거리던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난 절대 못 해.”
아니, 안 해.
박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박히는 건 절대 사양이다.
배설물을 배출하기만 하던 곳으로 제 몸의 일부가 아닌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특히나 아래 있는 쪽의 낯빛이 더욱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승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조건 눕힌다.”
* * *
승진은 행동력이 빠르다. 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주저하는 걸 싫어하는 편이었기에 마음을 먹자마자 곧바로 우영에게 연락을 넣었다. 제 연락만 받으면 툴툴거리던 우영이 승진의 오피스텔 문을 열고 들어오기가 무섭게 승진은 우영에게 뜨거운 입맞춤을 가했다.
그런 승진의 행동에 당황하던 우영은 돌진하는 승진을 뿌리치려다 말았고, 몇 초가 더 흐르자 더욱 적극적으로 승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거 잘하면 되겠는데?
주말마다 있는 해외 축구 경기를 관람하며 치킨이라도 시켜 먹자는 멘트로 우영을 제집으로 끌어들인 승진은 이젠 아예 우영을 소파 쪽으로 밀어붙였다.
“윽.”
가슴팍을 더듬으며 승진의 입맞춤에 대응하던 우영이 ‘잠깐, 잠깐만.’ 하고 자신의 귓불을 핥는 승진의 어깨를 덥석 잡은 것은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백가.”
“어, 왜.”
“지금…… 뭐 하자는 거냐.”
“또 뭐가.”
“갑자기 축구 보자고 할 때부터 예상하기는 했지만…….”
했지만?
“지금 이런 자세는 솔직히 이해가 안 되는데.”
승진은 드러누워 있던 우영이 꺼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해가 안 돼?”
“그럼 너는 이해가 돼?”
“……?”
“네가 내 위에서 내 다리를 벌리려 하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느냔 말이다.”
살벌하고도 냉랭한 우영의 말이 귀를 울린다. 자연스럽게, 정말 자연스럽게 우영의 두 다리를 들어 그의 바지 버클과 브리프를 단번에 내릴 생각이었던 승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새끼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당연히 이해가 되지. 네가 내 밑에 있는 게 정상이잖아.”
“뭐?”
“그래야 내가 너한테 박지!”
승진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외쳤다.
우영에게서 남자끼리의 섹스 방법에 대한 동영상을 추천받은 뒤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그려 봤다. 그렇게 수십 번,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았으나 납득이 가는 상황은 자신이 우영의 애널 사이로 페니스를 집어넣을 때뿐이었다.
‘그게 정상이잖아?’
물론 겉으로 보기에 승진과 우영의 체격 조건은 비슷하다지만 여러모로 성숙한 백승진이 주도권을 잡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승진은 제 외침에 ‘하?’ 하고 헛웃음을 흘리는 우영을 내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걱정 마라, 신가.”
“…….”
“나도 네가 준 그 동영상으로 연구 많이 했다.”
“뭐?”
우영은 승진의 대답이 당혹스러웠는지 입을 벌렸다. 승진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너도 알겠지만 이 몸이 머리 하나는 뛰어나지. 하나를 알게 되면 열을 깨우치는 대단한 존재이니, 말 다 했다. 그러니 염려할 필요는 없어. 네가 아프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유혹한 거니까.”
소파 위에 드러누운 우영의 배를 꾹 누르고 있던 승진은, 소파 앞의 테이블을 향해 손을 뻗었다. 테이블 서랍을 열자 오늘과 같은 일을 대비하여 구비해 놓은 각종 로션과 러브 젤들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승진은 빙긋 입꼬리를 올리며 그중 하나를 집어 들고선 말을 잇지 못하는 우영을 내려다보며 손에 들린 것을 좌우로 흔들었다.
“자, 그럼 허락한 걸로 알고 본격적으로 시작을…….”
“기다려.”
“또 왜!”
우영의 바지 지퍼를 내리려던 승진이 자꾸만 자신을 저지하는 우영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그의 손목을 있는 힘껏 붙잡은 우영이 승진에게 깔린 채 물었다.
“어째서 네가 박는 걸로 결론이 나 버린 거지?”
아니, 이 새끼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대화가 안 통해?
“말했잖아. 그건 내가 박는 편이…….”
“넣는 건…….”
응?
“나여야지.”
한숨을 푹 내쉬며 대꾸하려던 승진의 귀가 먹먹해졌다. 넣는 게 누구라고? 제 손목을 덥석 잡은 우영이 대체 무슨 말을 하나 싶어 천천히 그 말을 곱씹어 보던 승진은 기겁하며 소리쳤다.
“너 뭐라고 그랬냐?”
파르르, 우영을 내려다보던 승진의 속눈썹이 요동쳤다. 동요한 것이 틀림없는 승진을 물끄러미 직시하던 우영이 붉고 탐스러운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넣는다고 했다.”
내 청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군. 그런데…….
“왜 네가 넣어!”
승진은 침까지 튀기며 외쳤다.
“너 미쳤, 윽, 이 새끼가!”
절대로 상위 포지션은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던 승진은 조급해졌다. 빨리 바지를 벗겨 내지 않으면 저 정신 나간 놈에게 먹혀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얼른 손을 우영의 앞섶으로 뻗으려는 순간, 우영이 그런 승진의 팔을 낚아챘다.
승진이 신음을 흘림과 동시에 우악스러운 우영의 손이 그를 뒤로 눕혔고, 그 탓에 팔걸이에 머리를 부딪힌 승진은 얼굴을 구기며 이를 갈았다. 그러자 몇 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대로 승진에게 주도권을 뺏길 뻔했던 우영이 서늘하고도 고요한 음성을 내뱉었다.
“미친 건 너 같은데.”
“뭐?”
“내가 왜 너한테 엉덩이를 대야 해? 납득이 안 간다, 납득이.”
승진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니트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우영의 행동에 입술을 악물었다.
“그러면 내가 너한테 엉덩이를 대는 건 납득이 가냐?”
“당연하지. 너 사정할 때 짓는 표정은 간혹 쓰러뜨리고 싶을 정도니까.”
“이봐, 그 말은 그대로 돌려줘도 무방할 것 같은데?”
“백가, 괜한 저항 하지 말고 그냥 안겨. 그러라고 너한테 미리 공부까지 시킨 거잖아.”
“뭐? 그거 나보고 너 안으라고 알려 준 거 아니었어?”
“뭐라고?”
“안기라니! 이 새끼가, 말은 바로 해야지. 내가 미쳤냐? 젠장. 거의 다 됐었는데 왜 좋던 분위기를 망치긴 망쳐! 신가, 너 솔직히 말해 봐라. 너, 나랑 섹스하고 싶기는 해?”
“안 하고 싶으면 내가 왜 과제까지 미뤄 가며 네놈 집에 축구를 보러 왔겠냐!”
“그럼 왜 안 안기려는 건데?”
“안아야 정상인 놈한테 안긴다는 게 말이 안 되니까 그렇지! 그러는 너야말로 더는 저항하지 말고 안…… 큭!”
“꺼져! 나는 안는 거 말고는 관심 없어, 이 새끼야!”
그래.
아마도 까느냐, 깔리느냐 하는 백승진과 신우영의 주도권 다툼은 그날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 * *
‘빌어먹을.’
승진은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지만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번뜩이고 있는 이태원의 밤거리를 굳은 얼굴로 주시했다.
‘내가 어쩌다…….’
부드득.
이까지 갈며 인상을 쓰던 그를 향해 어딘가로부터 뜨거운 시선이 느껴진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살랑살랑, 손을 흔들면서 승진에게 추파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것도 여자가 아닌 남자들. 승진은 윽, 하고 신음을 삼키며 얼굴을 찌푸렸다.
자정을 넘겨 어느덧 새벽 1시를 향해 가는 시점.
대체 그런 어둑한 시간에 천하의 백승진이 왜 밖에 나와 있냐 묻는다면, 이유는 간단했다.
[신가, 너 진짜 나한테 양보할 생각 없냐?]
까느냐, 혹은 깔리느냐.
스물의 두 청년에게 있어선 결코 물러날 수 없는 자존심과도 같은 문제였다.
첫 시작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가는가에 따라, 앞으로의 미래도 결정될 테니까.
격렬한 논쟁과 심지어 주먹다짐까지 이어지는 난투 끝에, 씩씩거리며 마주 앉은 승진은 저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우영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우영의 냉정하고도 깊은 검은 눈동자가 승진에게 꽂혔다.
[그런 생각이 있을 리가.]
우영은 단호했다.
개자식.
제게 남자끼리 섹스하는 동영상을 추천해 주기까지 한 녀석이 이제 와 안기기 싫다는 말을 꺼낼 줄은 예상하지도 못했던 터라 솔직히 황당했다. 조금도 양보해 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영은 결코 생각을 바꿀 의지가 없어 보였고, 그로 인해 승진은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좋아. 그럼 가라.]
[뭐?]
[가라고. 할 마음이 없는 놈한테 구차하게 매달리고 싶진 않으니까.]
우연히 일어난 입술 박치기로 인해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도 우영과의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으나, 자신과 더 깊은 관계가 되지 않는다면 굳이 우영을 곁에 둘 필요가 없었다.
물론 자신이 신우영을 몹시 좋아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20년간 지켜 온 깨끗하고 깨끗한 제 엉덩이를 그놈에게 냅다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절대 안 되지.’
백가의 승진은 맺고 끊음이 몹시나 명확한 인간이었으므로 제 말을 듣고 ‘뭐?’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우영을 망설임 없이 집 밖으로 쫓아냈다.
쾅― 하고, 완벽하게 오피스텔의 문이 닫히자마자 승진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드레스 룸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몇 시간 뒤.
승진은 현재 대한민국 게이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이태원 밤거리에 잘 차려입은 상태로 우뚝 서 있는 중이었다.
‘내가 저 아니면 안을 놈이 없을까 봐?’
먼저 고백했다고, 먼저 목을 맨다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고 만만히 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천하의 백승진이 이러한 취급을 당할 줄이야.
‘안기라니.’
미친 새끼 아니야.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자신이 깐다면 또 모를까, 우영에게 깔리는 것은 그의 고고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한다. 승진은 흥, 콧방귀를 뀌며 후우 숨을 크게 들이켰다.
‘어려울 거 없어.’
그래 봤자 똑같은 것이 달려 있는 놈들일 뿐이니까.
언제나 주도권을 잡는 건 나였다고.
비록 이제 막 성인이 된 승진이었지만 타고난 기도로 인해 사람들을 주눅 들게 했던 그는, 자신을 노리고 있는 저 남자들의 시선 정도에 굴복하지 않는다.
‘신가 놈에게 꼴려 버렸으니 남자를 좋아하게 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하지만 신가 놈은 내게 안기려 들지를 않으니.
‘그렇다면 내게 안기려는 놈들을 찾아 신가 놈을 대체하면 되는 거, 아닌가?’
승진은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어져 온 우영과의 인연은 고작 몇 달이었지만 확실히 승진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 만큼 자극적이었다. 그러나 과연 그 마음이 줄곧 이어질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태. 여전히 우영의 입술을 탐하고, 그를 안고 싶고, 그를 마구 울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우영에게 제 페니스가 반응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반응하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날 깔려 하다니…….’
승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하기 그지없던 우영의 말을 떠올리며 흥, 코웃음을 쳤다.
되도 않는 신경전을 벌여 머리만 지끈거리게 만든 신과 놈과의 인연은 새로운 흥미 상대를 찾는다면 끊어질지도 모른다. 입꼬리를 올리며 한때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었던 이태원에서 가장 핫한 바(Bar) 안으로 발을 내디딘 승진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혼자 왔어?”
“못 보던 얼굴인데. 이름이 뭐야?”
“같이 놀래? 내가 한잔 사 줄까?”
저를 보자마자 놀라는 바텐더를 향해 생각해 둔 칵테일을 주문하고 앉아 있을 때였다.
매의 눈으로 승진의 걸음걸이를 지켜보던 굶주린 늑대들이 말없이 칵테일 잔을 움켜쥐는 승진에게 다가와 생긋 눈웃음을 그렸다. 갑자기 드리워진 그림자에 슬쩍 고개를 들어 그들을 쳐다보던 승진은 짙은 미소를 그리며 제 팔뚝을 어루만지는 그들의 접근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것들은 뭐야.’
물론 수소문을 하여 이 바를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
우영에게 반응하는 자신의 세 번째 다리가 다른 이들에게도 반응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자기, 왜 말이 없어?”
“…….”
“그러지 말고 내가 한잔 사게 해 줘. 여기 바텐더가 칵테일을 잘 말거든. 그러니까…… 악!”
“시끄러워.”
“뭐?”
“꺼져.”
원치 않은 스킨십을 이어 가며 짙은 향수 냄새를 풍기는 남자의 목소리가 구역질이 치밀게 만들었다. 승진은 생글거리며 바텐더를 향해 손짓하려는 남자의 손목을 덥석 부여잡더니 서늘한 눈빛을 쏘아 댔다. 그런 승진의 반응에 ‘뭐, 뭐야! ’하고 얼굴을 화르륵 붉힌 남자가 씩씩거리더니 곧 승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제길.’
눈앞이 어질어질하다.
처음에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자신을 쏘아보던 바 안의 사람들이 조금 전 일을 목격하고선 경계의 눈초리를 가득 담고 있었다. 망할. 승진은 고운 미간을 좁혔다. 그렇게 차갑게 굴 생각은 없었는데 본능적으로 냉랭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코끝을 자극하는 향수 냄새와 이상할 정도로 거슬리는 남자의 콧소리가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끌리는 특별한 성적 취향을 지닌 것이 사실이라면 조금 전 남자의 접근이 그리 싫지 않았어야 했다. 특히나 방금 전의 그 남자는 승진이 와락 끌어안고도 남을 만큼 작았고, 또 얼굴까지 하얘서 얼핏 보면 여자처럼 보이지 않았던가.
‘돌겠군.’
우영과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승진은 작고 가녀린 것들에 눈길을 주지 않았던가. 뭐야, 이제 와서 취향이 바뀌기라도 한 건가. 승진은 한숨을 삼키며 벅벅 뒷머리를 긁었다. 난생처음 경험한 게이바는 생각 이상으로 승진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이곳에 더 머물렀다간 괜한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특히나 자신은 우영처럼 남 앞에서 살랑거리는 가면 따위는 쓰지 못하기에 다가오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귀찮은 일은 질색이었던 승진은 찝찝하기는 하지만 이곳을 나서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때.
“저기.”
응?
오지 말라는 오라를 풍겨 대고 있던 승진에게 과감하게 접근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 * *
“헉, 헉!”
승진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미친.
미친. 미친. 미치인!
입 밖으로 차마 흘러나오지 못하는 숨결이 목구멍을 맴돈다. 굵은 땀방울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려 승진은 인상을 썼다. 쿵쿵쿵쿵. 벌렁이는 심장 소리가 헉헉대는 그의 숨소리와 뒤섞여 커다란 울림을 만들었다.
‘미……친.’
간담이 서늘하다.
몇 분 전 그에게 일어난 상황이 승진의 가슴을 도무지 진정시키지 않는다. 승진은 비틀거리며 벽에 기댔다. 주르륵 쓰러지는 그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러니까 30분 전의 일이었다.
[한잔할래?]
예의 바에 머무른다고 더 이상 상황이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지막 잔을 비운 뒤 밖으로 나서려던 승진에게 웬 남자가 접근을 했다. 지금껏 승진에게 접근했던 여성스러운 외모가 아닌, 어딘가 익숙한 눈빛을 지닌 남자. 그 사내의 눈빛에 승진이 흐응, 묘한 콧소리를 흘린 까닭은 아마도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누군가와 닮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물? 우와, 많이 어리네.]
[그래요?]
[여긴 처음인 것 같은데 이런 곳에 겁도 없이 들어오면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어.]
[내가 그렇게 쉽게 당할 사람처럼 보입니까?]
[확실히 그건 아닌 것 같지만.]
[…….]
[앉아도 되지?]
이젠 이름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남자와 통성명을 한 뒤, 승진은 그가 제 앞자리에 착석하는 것을 지켜봤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온 거야?’라는 말을 시작으로 대화를 건넨 남자에게 승진은 평소와 달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 냈다. 아무래도 우영을 연상케 하는 남자의 모습이 낯익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말을 늘어놓다―
[뭐…… 하는 겁니까?]
문득 정신을 차린 승진의 시야로, 제 사타구니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승진이 인상을 쓰며 음산한 목소리를 흘리자 슬쩍 고개를 든 남자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러려고 온 거 아니었어?]
[예?]
[걱정 마. 처음인 것 같으니 아프지 않게 할, 컥!]
[이 새끼가 미, 미쳤나!]
놀라다 못해 경악한 승진에게 부드러운 눈웃음을 흘리며 안심을 시키려던 남자가 승진의 길쭉한 왼쪽 허벅지로 입술을 가져다 대며 자신의 바지 버클을 풀려던 순간이었다. 승진은 그런 남자의 턱 밑을 무릎으로 걷어찬 뒤 버럭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나섰다.
두근두근두근.
어떻게 바에서 호텔로 갔고, 또 그 뒤로 익숙한 자신의 동네까지 온 건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승진은 집 앞 놀이터에서 헉헉 숨을 내뱉고 있었고, 온몸엔 소름이 돋아나 털이 쭈뼛거렸다.
“우욱!”
찬찬히 방금 전 일어난 상황에 대해 떠올려 보던 승진은 입 밖으로 구역질을 하며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식도를 거슬러 온 말간 타액이 투둑, 흙바닥을 적셨다.
‘그 개새끼가.’
다리 사이를 분질러 두고 올 것을.
승진은 뻔뻔하게도 감히 자신을 안으려던 남자를 떠올리며 전신을 부르르 떨어 댔다.
‘내가 안기면 신가 놈에게 안기지, 그런 생판 처음 보는 놈에게 안길 것 같냐!’
으드득, 이 가는 소리가 놀이터를 가득 울렸다.
“망할. 되는 게 없……!”
놀이터에서 호흡을 고르며 안정을 되찾은 승진은 터덜터덜,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정말 되는 일이 없는 최악의 날이다―라고 생각하며 스타일링한 머리를 긁어 대던 그는, 자신의 오피스텔 앞에 기대서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신……우영?’
제 눈을 의심하며 손등으로 비벼 보았지만 우영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는다.
승진의 인기척을 느낀 건지 삐딱하게 서 있던 우영이 바로 섰다.
“어딜 다녀왔어.”
우영의 날 선 발언에 멈추었던 혈액이 관을 타고 뛰기 시작한다. 승진은 미간을 좁혔다 펴는 우영을 멍청하게 응시하다 어색하게 웃었다.
“자, 잠깐 요 앞에.”
“잠깐이 아니던데.”
뭐?
“됐고. 일단 들어가.”
우영은 빨리 문을 열라는 듯 현관 쪽을 가리켰다. 어어, 하고 그런 우영을 힐끔거리던 승진이 문을 열자 우영이 그 뒤를 따랐다.
“이 새벽에 무슨…… 일이냐?”
승진이 호텔에서 귀가를 한 시간은 정확히 새벽 4시.
물론 우영이 평소 이런 시간까지 강의를 복습하며 시간을 보내기는 하지만, 승진의 연락 없이는 먼저 이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그런 우영이 이곳까지 온 것으로 보아 뭔가 심상찮은 일이 일어날 것 같기도 한데.
승진은 가슴이 콩닥거리는 것을 느꼈다.
‘설마.’
내가 이태원에 갔던 걸 알아 버린 건 아니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우영밖에 없는 승진과 달리, 우영은 철저한 가면을 쓰고 마당발 행세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영의 친구가 이태원의 밤거리를 헤매던 승진을 발견하고, 우영에게 전화를 건 것일 수도 있다.
승진은 긴장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우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후우, 길게 숨을 내쉬며 복잡한 표정을 짓던 우영이 입을 다물어 버린 승진에게로 천천히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생각해 봤다.”
“어?”
“네 말에도 일리가 있어.”
뭐, 뭐가.
승진은 난데없는 우영의 말을 당장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제기랄’ 하고 짧게 욕설을 중얼대던 우영이 다음 말을 이었다.
“내가 먼저 오해의 소지를 줬어.”
“……?”
“너한테 남자끼리 하는 법을 가르쳐 준답시고, 안기는 법보다 안는 법 위주의 동영상을 알려 줬었지.”
그, 그랬나?
승진은 눈을 크게 떴다. 우영은 멈추지 않았다.
“당연히 네가 까는 사람의 입장에서 머리를 굴렸던 걸 이해한다. 그러니까, 해.”
“뭐?”
승진은 깜짝 놀라 그만 뒤로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그런 승진을 보고 뭐가 그리 놀랍냐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짓던 우영이 다시금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이번 한 번만, 딱 한 번만 깔려 주도록 하지. 일단 네가 하는 법 정도는 깨달아야 할 테니까. 그러니 딱 한 번만 깔려 준다. 하지만 뒤로는 없어. 이 뒤는 무조건 내가 위다.”
쿵쾅쿵쾅.
승진은 제 귀를 의심했다. 이 자식이 제정신인가부터 시작해서, 우영의 정신 상태가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우영은 몇 초가 흘러도 자신의 말을 주워 담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기, 기회인 건가?’
승진은 입꼬리가 근질거리는 것을 느끼며 우영에게 다가갔다.
“신가야.”
“왜.”
“거, 거짓말 아니지?”
“…….”
“농담하는 거, 아니지?”
흥분한 승진이 생글거리며 묻자 우영이 흥, 콧방귀를 뀌었다.
“이런 걸로 농담할 만큼 한가하지 않아. 그리고, 너 못잖게 나도 금욕하는 건 어려우니까.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우영은 ‘아!’ 하고 탄성을 터뜨리는 승진에게 말한 뒤 몸을 돌렸다.
“씻고 오면 되냐?”
스르륵.
우영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바닥으로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는 승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욕실로 들어갔다.
‘하, 하하.’
가슴이 뛴다.
승진은 차오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건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꼿꼿한 태도가 우영에게 먹혀들었던 모양이다. 입이 절로 해죽거린다. 승진은 쏴아아, 멀리서 들려오는 욕실 안의 샤워기 소리를 들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좋아. 그럼 그 모든 것들을 사용할 시간인가?
미리 구비해 둔 콘돔부터 러브 젤, 로션까지.
웬만한 러브호텔 부럽지 않은 만반의 준비가 갖춰져 있다.
그럼 어디서부터 삶아 먹는다?
승진은 결연한 의지를 표하던 우영을 떠올리며 웃음을 삼켰다.
“네 차례야.”
몇 분이 흘렀을까.
우영을 기다리며 시간을 소진하던 사이, 승진의 이름이 불려 왔다.
승진은 수건으로 자신의 중요 부위만 두른 채 욕실 밖으로 나선 우영이 머리를 탈탈 털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 그래야지.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입고 있던 셔츠를 훌러덩 벗어 던지고는 아직 수증기가 남아 있는 욕실로 들어가려 했다.
“잠깐.”
응?
일단 배웠던 대로 전희부터 선사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우영의 성감대를 찾을 계획이었던 승진은 우영의 곁을 스쳐 지나가려다 행동을 멈추었다.
“백승진.”
룰루랄라, 콧노래까지 흘리려던 승진의 눈동자에 문득 의문이 서렸다.
갑자기 왜 불러?
그런 승진을 아랑곳 않고 우영은 정확히 승진의 오른쪽 목덜미를 가리키며 물었다.
“너, 그게 뭐냐?”
“응? 뭐냐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우영이 가리킨 목덜미 쪽을 만지작거리던 승진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 갔다.
……아뿔싸.
* * *
모든 일의 시작.
누가 깔고, 깔리느냐 하는 것은 지난 십수 년 동안 승진과 우영 사이에 일어난 가장 큰 갈등이었다.
분명 백승진이 신우영을 사랑하는 것과 신우영이 백승진을 사랑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건만, 그 드높은 자존심이라는 것이 무언지.
‘아니, 정확히는 한번 건수를 잡히면 계속 먹힐 것만 같다고.’
단적인 예로, 11년 전의 그날.
우영과의 다툼으로 인해 홧김에 다른 남자와 사고를 칠 뻔했다는 것을 들켰을 때, 한동안 얼마나 많은 날을 우영에게 안겼던가.
[헉! 너, 너 뭐 하는 거냐? 갑자기 왜 브리프를 내리곤, 헉! 시, 신우영!]
[닥쳐. 이 개새끼.]
[어어? 야, 왜 화가 났, 허윽! 어, 어디에 손을 집어넣는 거야! 당장 ㅃ…… 하읏!]
[이 가벼운 새끼. 목을 빨려? 누구냐. 누구랑 이런 짓을 한 거야? 내가 아는 놈이냐?]
[하, 잠깐, 잠, 헉, 너무, 너무 아프, 으읏!]
[아파? 어디까지 간 거냐. 키스 마크가 있는 걸로 봐서 뒹굴기라도 했냐? 누구야. 어떤 놈이야!]
[모, 모르는, 흐읏! 학!]
[뭐? 씨발, 어이가 없군. 생판 모르는 놈한테 엉덩이를 대줘? 나한테는 그 지랄발광을 했으면서?]
[허윽, 대체 무슨 소리를, 흐읏, 안 줬, 안 줬어! 주려다 말았다흐응!]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어이가 없군. 백가 너, 대체 밖에서 어떤 짓을 하고 돌아다니기에 생판 처음 보는 놈이 네놈을 눕히려 들어? 절대 용서 못 해. 단단히 알려 주겠어. 네놈이 누구 건지.]
[야, 기다, 기…… 하으읏! 으읏!]
백승진과 신우영의 관계에서 정신이 조금 더 나가 버린 쪽은 당연히 자신인 줄 알았는데, 11년 전의 그날 승진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신우영, 그도 결코 만만한 놈은 아니라는 것을.
‘끔찍했지.’
생판 모르는 놈에게 ‘깔렸다’는, 아니 ‘깔릴 뻔했다’는 사실로 그만 돌아 버린 우영의 접근을, 승진은 감히 막지 못했다. 해명할 기회 따위는 주지 않고 그에게 달려드는 우영의 눈동자엔 붉은 광기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나, 나름 좋기는 했어.’
나름 좋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더할 나위 없이 오싹하고, 짜릿했다.
그 때문에 승진은 이후 몇 달 동안 우영에게 안기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여 또 우영을 덮친 적도 있었다. 그것은 또 얼마나 좋았던가.
안고, 안기고.
사랑을 동반한 섹스에서 포지션 다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상대가 자신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가 중요할 뿐. 적어도 우영과 살을 부딪치는 동안엔 그의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 승진은 이제 어느 쪽이든 가리지 않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검사님!”
광폭하게 불어 대던 태풍이 지나간 뒤, 잠잠해진 서울중앙지방 검찰청의 백승진 검사실.
폭풍 속의 고요를 느끼며 슥슥, 칼만 갈고 있던 승진의 귀에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침묵 한가운데서, 두 사람의 첫 경험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떠올리고 있던 승진은 벌컥 열리는 문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헉헉,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강진호 참여계장의 얼굴이 보였다.
승진이 ‘계장님?’ 하고 기대에 찬 목소리를 흘리자 강 계장이 손을 들어 엄지손가락을 당당히 그려 보였다.
“잡았답니다!”
“……!”
“조금 전 광수대 쪽에서 연락 왔습니다! 모조리 검거했다고!”
두근두근.
가슴이 요동친다.
“피라미부터 간부, 보스까지. 검사님이 지시하신 대로 모두 포획했다고! 백 검사님, 축하드립니다! 검사장님은 물론, 장관님께서도 기뻐하셨답니다. 특히나 이번 건은 작년에 있었던 신 검사님의 이정후 스캔들보다 더 큰 건 아닙니까? 하하하. 이제 신 검사님보다 앞설 수 있겠네요!”
승진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축하의 말을 전하는 강진호 참여계장에게 생긋 웃어 보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드디어 이제야.
지난 1년간 우영의 아래서 버티고 또 버틴 끝에, 이제야…….
“반격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되었군요.”
승진의 미소가 찬란하게 번져 가기 시작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