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2. 그리고, 그 후 Ⅱ
“기다려.”
위에서 아래로 눈을 내리깔며 뱉어 내는 그 목소리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승진은 파르르 떨리는 제 몸의 반응을 티 내지 않기 위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꼴깍,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타액이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후우.”
붉은 입술 사이로 짧게 숨결을 흘리며 쓰고 있던 안경을 벗는 우영의 행동이 야릇하다. 저 손가락에 입을 맞추고 싶어. 우영의 기다란 손가락이 안경에서 떨어져 나와 셔츠 깃으로 내려앉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자신의 붉은 입술을 가져다 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승진은 상대가 행동을 취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목덜미를 가리고 있던 셔츠의 단추가 우영의 손길에 의해 풀어졌다. 왜 저렇게 느리게 움직이는 건지. 아까부터 피가 마를 지경이다. 솔직한 승진의 심정으로는 지금이라도 당장 우영의 셔츠 단추 위로 제 손을 얹고선 우영의 탄탄한 가슴을 가리고 있는 빌어먹을 셔츠 따위는 좌우로 쫘아악, 찢어 버리고 싶다.
그런데 우영은 그런 승진의 마음 따위는 알 생각이 없는지 ‘내가 말할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라는 말을 뱉은 후 행동을 이어 가고 있었다.
‘미치……겠군.’
현재의 상황에서 안느냐, 안기느냐는 둘째의 문제였다.
자신을 침대 위로 눕혀 놓고 그 흔한 실오라기 하나 못 걸치게 만든 우영은 보란 듯이 승진의 눈앞에서 옷을 벗고 있다. 스윽. 다리 사이가 뻐근하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하늘 위로 솟구친 이 욕망을 저 혼자 분출할 기세였다. 진한 갈증이 느껴져 승진은 미간을 좁혔다.
“신가.”
타는 목마름으로, 결국 승진이 이제 막 셔츠의 두 번째 단추를 풀고 있는 우영을 불렀다. 안경을 벗은 우영의 검은 눈동자가 승진에게 향했다. 승진은 생글생글 웃으며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대충 벗고, 빨리 넣어 주면 안 되냐?”
“…….”
“아니면 내가 넣어도 좋고.”
몸을 겹치지 않는다면 심장이 말라 버릴 것 같다. 우영을 향한 욕구가 절정으로 치달은 지금, 얼른 이 마음을 해소하고 싶어졌다.
승진이 씩 입꼬리를 올리며 그에게 눈을 빛내자 그 말을 들은 우영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우영은 간절한 시선을 보내는 승진에게 쿡쿡 웃으며 속삭였다.
“그건 안 되겠군.”
“뭐? 왜!”
누굴 진짜 말려 죽이려고 그러는 거야?
승진이 크게 실망한 표정으로 소리치자 우영의 눈빛이 돌연 예리해졌다.
“백가.”
“어어?”
뭔가 심상찮은데.
승진은 퇴근하여 우영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간 자신을 자연스럽게 붙잡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어디서 났는지 밧줄로 제 손목까지 묶고선 옷이란 옷은 다 벗긴 후 침대에 던져 둔 우영에게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영은 입을 쭉 내미는 승진 쪽으로 다가왔다. 우영의 짙은 체취가 코끝으로 느껴져 승진은 미간을 꿈틀거렸다.
“이건 일종의 벌이라서 말이야.”
……벌?
“무슨 벌, 헉!”
승진은 작게 말을 한 뒤 자신의 복근 위로 손을 가져다 대는 우영의 행동에 몸을 움찔거렸다. 우영의 손길이 닿자 승진의 몸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찌릿한 전율이 전신을 휘감았다. 승진은 우영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 뻐근해지는 사타구니 사이를 인지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자식이.’
꽁꽁 묶여 있었던지라, 그를 덮칠 수 없다는 것이 애석하다. 승진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우영을 올려다봤다.
승진을 자극한 뒤, 다시금 셔츠를 풀고 있는 우영의 손놀림은 느려도 너무 느리다. 정말 돌아 버리겠네.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인지하며 승진이 뜨거운 숨을 뱉어 냈다.
빨리.
깔든 깔리든, 뭐든 상관없으니 얼른…….
“백가.”
“하아.”
“네 거, 세우지 마.”
“……윽, 서는 걸 어떡해!”
“…….”
“젠장. 신가 너, 빨리 안 오냐? 뭘 해도 좋으니까 그거 얼른 벗고 좀 들어오라고! 오늘따라 왜 이렇게 굼떠?”
방치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상대를 향한 욕구가 깊어 간다. 승진은 끝내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냉정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던 우영이 이제 하나 남은 셔츠의 단추를 끄르는 모습이 보인다. 두근두근. 가슴이 거칠게 요동쳤다.
“말했었지.”
……응?
“벌을 주는 거라고.”
“그게 대체 무…….”
“백가 너, 오늘 점심 먹고 뭐 했어?”
상대에 대한 욕정으로 머릿속이 가득한 승진과 달리, 겨우 셔츠 하나를 벗은 우영은 바지 벨트를 푸는 데도 적잖은 시간을 소요했다. 평소라면 옷 따위는 진작 벗고도 남을 시간. 꽁꽁 묶여 있는지라 직접 우영에게 달려들 수도 없던 승진이 얼굴을 구기자 우영이 돌연 서늘한 음성을 흘렸다.
오늘 점심?
“별거 없었는데?”
“……없어?”
대뜸 점심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대체 왜일까. 우영에 대한 일 외의 사소한 일화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 편인 승진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러자 우영의 검은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래. 신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브리프나, 헛!”
계속 이런 플레이를 이어 가다가는 정말 짜증이 날 것 같았다. 승진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제 배 위에 입술을 대며 쪽쪽거리는 우영에게 인상을 썼다. 그런 사소한 키스 따위는 하지 말고 얼른 그 무지막지한 페니스를 몸으로 집어넣으란 말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흐으!”
“너.”
“으읍!”
“그 여자들이랑, 뭐 했어.”
“하윽. 무슨, 으읏!”
“왜 그렇게 웃고, 떠들었지?”
“뭔 말을 하는 건지 모르, 웁!”
하지만 그런 승진의 요구는 충족되지 않는다. 승진은 하의 탈의 따위는 이어 가지 않고, 돌연 자신의 두 다리를 덥석 잡는 우영의 손길에 신음을 터뜨렸다. 우영이 제 다리를 좌우로 벌려 아래에서 위로 시선을 올리자 숨이 막힌다.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무릎에서 사타구니로 이어지는 그의 키스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호흡이 거칠어진 탓에 승진의 가슴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백가 네가 그 여자들이랑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까…….”
“하으으.”
“몹시, 기분이 나쁘더군.”
아니, 그러니까,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승진은 억울함을 가득 담아 소리치고 싶었지만, 평소와 달리 페니스가 아닌 애널 쪽으로 입술을 옮기는 우영으로 인해 이를 꽉 악물 수밖에 없었다. 하아― 주름 잡힌 애널이 우영의 타액으로 인해 질척이기 시작한다. 승진은 부르르 몸을 떨며 눈을 내리감았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흘리는 야릇한 교성이 입 밖으로 흘러나올 게 분명했다.
아니, 그것보다 이 녀석―
‘왜 화가 난, 어?’
집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을 결박한 우영이 왜 이리 화가 났을까. 게다가 점심에, 여자라니.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 우영을 이상하게 여기던 승진은 돌연 떠오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러니까 정확히 오늘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오늘이요?]
승진은 일주일 전 직접 예약했던 물건을 찾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점심시간을 틈타 쥬얼리 숍에 들렀다 청사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 앉아 손바닥 위에 올려 둔 군청색 보석 상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머, 백 검사님. 그거 뭐예요?]
[어어? 서, 설마!]
[혹시 반지예요?]
[세상에!]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 가고 있었기에 사람이 없을 거라 여긴 것이 실수였다. 승진은 하하호호 웃으며 휴게실 안으로 들어오던 무리들이 순식간에 자신을 둘러싸는 것을 보며 흠칫 놀랐다. 그녀들은 청사 내에서도 무시무시한 알력을 자랑하고 있는 신입 검사시보들이었다.
승진은 ‘백 검사님, 애인 있으셨어요?’ 하고 외치는 그녀들의 눈동자가 매섭게 빛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이 무척이나 당황스러워 얼른 휴게실을 벗어나려 했지만, 순식간에 자신을 둘러싸 버린 그녀들로 인해 그의 계획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애인한테 프러포즈하려는 거죠?]
[그런데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셨어요? 백 검사님도 자신 없는 일이 있구나!]
[반지, 봐도 돼요?]
깔깔 웃으며 말하는 세 여자들은 역시 만만찮았다. 자신의 후배들이기도 한 그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승진은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쉬며 어색하게 웃었다.
어울려 주지 않는다면 소문이라도 낼 기세여서 어쩔 수 없이 예의 반지들을 보여 주자 흐음, 하고 콧소리를 흘리던 그녀들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반지 크기가 왜 이렇게 크죠? 아아, 애인분이 손가락이 되게 굵으신가 보다!]
[어머,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죠. 실례예요!]
[언제 전해 주시려고요? 오늘? 아님 조만간? 저희 국수 먹을 수 있는 거예요?]
보여 달라기에 보여 주었고, 그 이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지를 내려다보며 꺅꺅거리던 세 명의 검사시보들은 반지를 보았다 승진을 보기를 반복했다. 승진은 그런 그녀들을 응시하다 결국 후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쩌다 보니 그걸 맞추긴…… 했는데.]
[했는데?]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라서.]
벅벅, 뒷머리를 긁으며 말하자 검사시보들의 눈이 일제히 휘둥그레졌다. 승진은 그녀들이 소중하게 움켜쥐고 있는 반지들을 흘긋거리다 고개를 의자 뒤로 젖히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서로의 눈치를 살피던 세 명의 검사시보들이 약속이나 한 듯 씩 웃더니 승진의 어깨에 턱 손을 얹으며 말했다.
[호호, 백 검사님!]
[응?]
[백 검사님은 운이 좋으시네요. 저희에게 이 모습을 들키신 걸 천만다행으로 여기세요!]
[맞아요. 저희가 상담해 드릴게요. 애인분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부터, 어떻게 프러포즈를 해야 할지 말이죠!]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잘 알지요! 호호호!]
승진이 만나는 사람이 당연히 여자라고 여긴 것인지, 활짝 웃으며 ‘프러포즈하는 법’에 대해 일장 연설까지 늘어놓은 그녀들은 검사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를 잡고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건가.’
승진은 어느새 질척해진 그의 애널 속으로 손가락 하나를 밀어 넣고 있는 우영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꾹 삼켰다.
돌겠네, 진짜.
“으읏!”
난데없이 웬 결박 플레이인가 싶더니, 저도 모르는 사이 질투를 하고 있었다.
승진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고 달아오르게 만든 이유가 점심시간의 일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이 녀석도 가끔 보면 어린애 같은 면이 있다니까.
승진은 하나에서 둘로, 서서히 삽입 개수를 늘려 가는 우영의 아래에서 신음을 흘리다 쿡쿡 웃었다.
“뭐…… 야.”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선 저를 빤히 내려다보는 우영의 시선이 느껴졌다. 승진이 주르륵 땀을 흘리며 인상을 쓰자 냉랭하게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던 우영이 중얼거렸다.
“웃는 게 마음에 안 드는군.”
뭐?
“이 정도 넓혔으면 된 것 같은데. 들어간다.”
“아니, 잠깐 기…….”
“넣어 달라고 한 건 너, 아니었어?”
……!
“아니면, 넣지 말고 방치해 줘?”
승진은 노골적으로 생글거리는 우영을 올려다봤다. 빌어먹을 놈. 이정후 스캔들 이후, 두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 승진이 아래로 깔리는 공식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안기는 느낌도 나쁘지 않다 여기며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까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방치라니. 두 손마저 꽁꽁 묶어 버리고, 페니스까지 꼿꼿하게 세우게 만들어 놓고, 방치라니! 그게 어디 말이 되는 소리냐고.
“……ㄴ어.”
“뭐라고 했어? 안 들려.”
망할 자식.
승진은 일부러 묻는 것이 분명한 우영을 향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빨리, 넣어 달라고!”
네놈의 것을 내 안에 넣고 정신없이 휘저어서 아주 눈을 못 뜨게 만들어 달란 말이다, 이 새끼야!
‘큰일……이군.’
네 번을 뺐다. 세 번도 힘겨운데, 네 번이라니. 그 때문인지 허리 아래가 얼얼하다.
승진은 간드러진 교성을 흘리던 제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인상을 썼다.
‘헬스라도 해야 하나.’
체력이라면 어디서 뒤지는 편은 아니었으나, 하필 상대가 우영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자신이 깔 때는 그나마 나았지만 반대 상황이 요 몇 달간 계속 이어지다 보니 받아들인 다음 날이 문제가 됐다. 이대로라면 팔팔했던 승진의 신체가 나이를 먹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승진은 그의 고뇌 따윈 알지 못한 채 눈을 내리감고 있는 우영 쪽을 힐끔거리며 입을 쭉 내밀었다.
‘빌어먹을 놈.’
그녀들과는 단순히 상담과 관련된 대화를 주고받았을 뿐인데, 그걸 못 견뎌서 무지막지하게 박아 대다니.
[백가 너는 성격이 더러운 것치고는, 꽤 인기가 많은 편이니까.]
[뭐?]
[전부 그 반반한 얼굴 탓이야. 다들 속고 있는 거지.]
두 번째 사정이 끝난 후 축 늘어진 승진을 향해 우영이 작게 중얼댔다. 잠자코 그 말을 듣고 있던 승진은 ‘뭐라는 거야!’ 하고 발끈하며 외쳤다.
[그러는 신가 네놈도 얼마 전에 웬 대학생 꼬맹이한테 고백 받았잖아!]
[피해자였어. 게다가 남자였고. 나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한 거고.]
[몇 번을 말해야 하지? 그놈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니까! 그 눈빛은 내가 잘 안단 말이다! 그건, 틀림없이 네놈을 탐내는 눈빛이었다니까!]
[지나친 망상이야.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그리고.]
[그리고 뭐!]
[……설령 네 말이 사실이었다고 한들, 너 아닌 남자한테는 눈도 안 가니 걱정 안 해도 돼.]
[윽.]
[왜.]
[……젠장. 갑자기 기습 공격하면 못 참겠잖아!]
‘너 말고는 안 보여.’라는 낯 뜨거운 말을 서슴없이 흘려 대는 우영의 눈은 조금의 미동조차 없었다.
덕분에 한껏 달아오른 승진이 우영을 덮쳤고, 우영도 그런 승진이 싫지만은 않았는지 승진의 보조를 맞춰 주었다.
‘정말, 큰일이란 말이지.’
백 전 대법원장과의 ‘바둑 대결’이 끝난 이후, 이제 보란 듯이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정사를 이어 갔다. 눈을 뜨면 하루는 우영의 침대 위였고, 또 하루는 자신의 침대 위인 생활이 반복됐다. 급하게 나오느라 서로의 셔츠를 바꾸어 입고 나온 적도 있었고, 넥타이나 구두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분, 옷도 나눠 입으세요?]
그런 승진과 우영을 번갈아 쳐다보던 백승진 검사실의 강 계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을 던질 정도면, 은연중에 그들 사이를 알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럴 거면 차라리 동거를 하지그래?]
[동……거요?]
[아니면 결혼을 하든가.]
[……!]
[장애물만 없다면야, 나쁘지 않잖아?]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술을 마시던 특수 1부 소속 유태현 검사의 말은 승진이 쥬얼리 숍에 들러 반지를 맞추게 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어떻게…… 전해 준다?’
우영은 생각 이상으로 눈치가 빨랐다.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저로서는 감을 잡을 길이 없었다.
세 명의 검사시보들이 승진의 애인에게 프러포즈하는 법에 대해 알려 주었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승진의 상대가 ‘여성’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었기에 여성에게나 통할 법한 프러포즈법을 읊어 주었다. 그것이 우영에게 통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어서, 승진은 잠든 우영의 얼굴을 쳐다보며 입만 다셨다.
‘손에 맞기는 하려나?’
제 목에 팔을 두른 우영의 손가락을 떠올리며 승진은 눈을 내리감았다. 그의 비좁은 애널을 넓히던 손가락들의 크기로 짐작해 보면 얼추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안 그러면 깍지를 껴서 대충 가늠해 볼까. 이미 반지를 제작하기는 했지만,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낭패니까.
승진은 조심스럽게 우영의 팔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고는 제 허리를 감싸 쥐려는 그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며 넓이를 살펴봤다.
‘맞을 것 같기는 한데…….’
이왕이면 한번 끼워 보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던 승진은 결국 행동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는 깊게 잠들어 있는 우영을 살피다, 슬그머니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바닥에 툭 떨어져 있는 슈트 상의를 향해 다가갔다.
‘으으, 더럽게 아프네.’
다리 사이가 후들후들 떨릴 정도로 간밤의 정사는 격했다. 질투에 얼룩진 우영을 상대하는 것은 항상 다음 날에 지장을 줄 만큼 여파가 컸다.
뭐, 그 모습이 싫지는 않았으니까. 앞뒤를 생각하지 않는 격렬한 정사는 전신이 오싹해질 만큼 짜릿했으니까.
쿡쿡 웃으며 침실로 기어가듯 발을 움직인 승진은 다시 침대 위로 숨어 들어갔다.
‘어디 보자.’
좀 크더라도 작진 않아야 할 텐데.
두근두근, 가슴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보석상자에서 반지 하나를 꺼내 든 승진은 우영의 왼손 약지에 예의 반지를 스윽 끼워 넣었다.
“오!”
걱정과 달리 쑤욱 들어간 반지가 놀라울 정도로 우영의 약지에 딱 맞게 자리 잡았다. 승진은 배시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낮게 탄성을 터뜨렸다.
“웬 반지야.”
“헉! 뭐, 뭐야! 깨어 있었냐?”
그때였다.
승진은 코앞에서 들리는 우영의 낮은 음성에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스르륵 눈꺼풀을 들어 올린 우영이 ‘언제부터 일어났어!’라고 외치는 승진에게 ‘네가 침대에서 나갈 때부터.’라고 대답하는 게 들려왔다. 승진은 귀를 붉히며 투덜거렸다.
“보고 있었으면 인기척이라도 내야 할 거 아니냐.”
“이건 뭔데.”
우영은 승진의 투정 따위는 한 귀로 흘리며 왼손 약지를 들어 올렸다. 그의 손가락에 예쁘게 자리 잡은 민자 반지가 번뜩이는 것 같았다.
승진은 무엇을 뜻하는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묻는 것이 분명한 우영에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가족들 허락은 네가 구했으니까, 적어도 프러포즈 정도는 내가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
“신가야. 우영아.”
승진은 말 없는 우영의 입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대며 쪽 입을 맞춘 뒤 슬며시 물러나선 입을 열었다.
“살다 보면 짜증을 낼 때도 있을 거고, 별거 아닌 일로 다툴 수도 있을 거다. 사소한 것에 질투를 할 때도 있을 거고, 속박하려 들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하지만…… 그런 단점들도 아무렇지 않게 여길 만큼 이 백승진, 너만을 사랑해 주마.”
한 자, 한 자 진심을 담아 뱉어 내는 승진의 말에 우영의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승진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나는 네게 엉덩이를 내어 주는 데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네 엉덩이를 노리겠지만, 뭐 그런 것도 다 애정의 연장선 아니겠냐. 가끔 기분 좋으면 나한테 안겨 줘. 아, 뭐, 영원히 안기겠다면 나로서는 정말 환영할 일일 테지만―”
“…….”
“뭐 어쨌든, 우영아.”
“응.”
“사랑한다.”
“…….”
“그거 받고 나랑 평생 함께하자.”
소리를 내뱉은 후 우영의 왼쪽 손을 들어 올려 반지가 끼워진 그의 약지에 입을 맞췄다. 그러면서 슬쩍 우영의 얼굴을 살피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간을 좁히고 있는 연인이 보였다.
좋아하는 거야, 아닌 거야? 밋밋한 반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금을 엄청 쏟아부은 건데. 왠지 반응이 심드렁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다이아 알이라도 몇 개 박을 걸 그랬나.
만약 자신이 우영의 입장이었다면 실실 웃으며 ‘앞으로 잘해.’라는 식의 말을 건넸을 것이 분명한데, 우영은 얼굴을 굳히기만 할 뿐이다. 가슴이 철렁거린다.
‘반지는 역시 아니었나?’
아니면 무드가 없었어?
그 전에, 이 자식은 평소 무드 같은 걸 챙기는 녀석이 아니잖아! 주는 것도 감지덕지지, 옳다구나 하고 넘어오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말이 없―
“헉!”
반응 없이 고요한 침묵을 이어 가고 있는 우영으로 인해 마음이 급해졌다. 승진은 쿵쿵, 심장이 들썩이는 것을 느끼며 우영의 눈치를 살피려 했다.
그런 승진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신음이 흘러나온 건 몇 초 후의 일이었다.
“너, 너 뭐 하는!”
“하자.”
“뭐?”
승진은 그가 기다리는 대답 따위는 하지 않고, 옆으로 누워 있던 저를 바로 눕히고선 웃옷을 훌러덩 벗는 우영을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승진아, 나 당장 널 안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우영은 그렇게 말한 뒤 승진이 입고 있던 목욕 가운을 홱 젖히고는 그의 유두 위로 제 입술을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잠깐, 으, 만…….”
타들어 갈 듯한 열기를 담은 혀가 우뚝 솟은 돌기를 스친다. 강렬한 숨을 흘리며 가슴을 빨아 당기는 우영을 부르려던 승진은 문득 고개를 돌리다 벽에 걸린 달력을 발견했다.
오늘은 금요일. 금요일엔…… 헉!
“이, 이봐.”
승진은 쪽쪽거리며 자신의 상반신에 붉은 낙인을 새기는 우영을 호출했다. 우영은 그런 승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계속해서 제 행동을 이어 갔다.
“금요일이면…… 우리 상견례 날, 아니었어?”
“아.”
그제야 우영의 혀 놀림이 멎는다. 승진은 제 허리를 붙잡다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우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금 시작하면 나 더 못 움직여. 그러니 나갔다 와서 다시 하자.”
“…….”
“그때까지 참을 수 있…….”
“못 참아.”
……뭐?
“반지까지 준비해 왔는데, 고작 입맞춤으로는 성이 안 차.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끝낼게.”
“늦지 않게 끝내다니! 신가 넌 언제나 한번 시작하면 뽕을 뽑…… 흡!”
“시간 맞춘다니까. 괜찮아.”
“괜찮긴 뭐가…… 흣, 안 괜찮…… 으읍!”
“괜찮다고.”
아무리 밀어내도 다시금 달라붙는 우영은 승진의 말을 들을 생각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승진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우영을 향해 소리치려 했다.
아니, 진짜 안 괜찮다고!
이러고 있으면 지각이란 말이다!
그러나 그런 승진의 말은 제 입술을 뒤덮어 버리는 우영의 온기로 인해 목구멍을 감돌기만 할 뿐이었다.
‘이 파렴치한 놈들! 신성한 상견례 자리까지 지각을 하는 놈들이 어디 있어! 난 이 관계, 인정 못해!’라고 외치는 백 전 대법원장의 말이 머리를 울리는 듯했지만, 승진 역시 입술 사이를 파고드는 우영의 달콤한 혀를 밀어내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