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1. 그리고, 그 후 Ⅰ
“크흠.”
우영은 코앞에서 들려오는 신음에 바둑판으로 두고 있던 시선을 슬그머니 들어 올렸다. 그러자 끙끙거리던 한 남자가 하얀색 바둑돌을 움켜쥔 채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이 보인다.
은빛이 감도는 백발에 두꺼운 뿔테 안경, 그리고 미간 위로 선명하게 튀어 오른 주름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연중에 풍기는 기도는 한때 대법원의 수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남자답게 무시무시했다.
중년이라기에는 노년에 더 가까운 남자는 그간 살아온 인생이 어떠하였는지 외견만으로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서늘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자신이 정해 놓은 규칙에서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아왔고, 남들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으며, 정의를 추구해 온 눈동자는 예나 지금이나 맑고 깊다. 그러한 남자의 올바른 성격은 정·재계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수많은 법조인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사법계에서 일하면서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면 무시를 당할 만큼 유명한 사람.
우영은 심각한 얼굴로 백돌을 쥐고 있는 남자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삼켰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세간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더라.
[응? 백인우 전 대법원장님? 뭐, 엄격하기는 하지만 매우 점잖은 분이시지.]
[어휴, 어디 점잖으시기만 하겠어요? 아주 청렴한 분이시기도 하죠! 원체 부족함 없이 살아오셔서 그런지 타인을 배려할 줄도 아시고요. 그분께서 비리에 얽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난 백 전 대법원장님 밑에서 일하는 내내 그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한 걸 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맞아요, 맞아. 아마 화도 웃으면서 내시지 않을까요? 워낙 고고한 분이시니 말이죠!]
[그렇겠지?]
[그럼요!]
하지만 가끔, 세간의 평가는 사실과 다를 때가 있다.
“이…… 이 망할!”
그래, 바로 지금처럼.
으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귀를 울린다. 빙긋 웃고 있던 우영의 눈에도 선명하게 보일 만큼 백인우 전 대법원장의 이마에는 핏줄이 가득 세워져 있었다. 우영은 흑돌과 백돌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바둑판과 자신을 번갈아 쳐다보는 백 전 대법원장을 향해 유려한 미소를 그리며 물었다.
“할아버님, 그렇게 역정을 내시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그러자 ‘뭬야!’ 하고, 있는 대로 얼굴을 구긴 백 전 대법원장이 돌연 진지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보게, 신 검사.”
우영은 우아하게 ‘네.’ 하고 답변했다. 흠흠, 헛기침을 내뱉으며 주저하던 백 전 대법원장이 조심스럽게 우영에게 말을 건넨다.
“내가 일전에 둔 수 말일세.”
“아, 그 무리수.”
“무리수라니! 흠흠. 어, 어쨌든…… 신 검사.”
“네, 할아버님. 말씀하십시오.”
우영은 미소를 잃지 않고 백 전 대법원장의 말을 기다렸다. 우영의 눈치를 슥 보던 백 전 대법원장이 다시 한 번 바둑판을 내려다보다 조심스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자네는 내가 본 젊은이들 중에서도 꽤 점잖은 편이지.”
“칭찬이십니까?”
“우리 진이보다는 차분한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백 검사에 비하면…… 뭐, 그런 셈이죠.”
확실히 다혈질에 가까운 승진보다는 자신이 더욱 차분한 성격을 지니기는 했다. 우영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러한 우영의 대답에 하얀 이를 씨익 드러내던 백 전 대법원장이 대뜸 소리쳤다.
“게다가 자네는 노인을 공경할 줄 알지?”
“당연히…….”
“한 수면 되네!”
“예?”
“딱 한 수. 그러니까, 일전에 내가 둔 한 수만 물려 주게!”
“아.”
“한 수 정도야 쉽지 않은가. 안 그래, 신 검사?”
정확하게 정곡을 찔러 버리는 백 전 대법원장을 보며 우영은 쓴웃음을 흘렸다. 언제 이 말을 뱉어 내나 싶더니,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아무리 제한 시간이 없는 대결이라고는 하나 백돌 하나를 놓는 데 한 시간 이상을 소비하는 모습은 궁지에 몰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웬만해서는 스스로 투항하기를 원했던 우영은 ‘한 수 물려 주게! 한 수만 물려 줘! 물려 달란 말이야!’를 외쳐 대고 있는 백 전 대법원장을 향해 짙은 미소를 그렸다.
“할아버님.”
“물려 주겠나?”
우영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까지 저를 쳐다보는 백 전 대법원장을 보고 입꼬리를 꿈틀거렸다.
“뭔가 걸리는 말이 있군요.”
“으응?”
“저번 대국에 대한 연장선으로 오늘 저는 돌을 하나 놓았고, 일전에 할아버님께서 두신 돌을 거두어들이기 위해서는 제 것도 거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한 수가 아니라 두 수인데 말이죠.”
“아! 무, 물론 그렇긴 한데…… 잠깐! 신 검! 신 검의 말인즉, 내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건가?”
우영은 상기된 표정을 짓는 백 전 대법원장을 향해 웃으며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하하, 그럴 리가요. 할아버님께서 두신 수는 저에게 있어서 최고의 수인데,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거절하는 우영을 보며 백 전 대법원장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보게, 신 검!’ 하고 불쾌감이 가득한 말까지 흘리는 것으로 보아 단단히 화가 난 듯싶었다.
어느새 밤 9시를 가리키는 벽시계를 흘긋거리던 우영은 후우, 한숨을 흘리며 ‘할아버님.’ 하고 백 전 대법원장을 불렀다. 백 전 대법원장이 가라앉은 우영의 목소리를 듣고 몸을 움찔거렸다. 우영의 눈꼬리가 보기 좋게 휘어졌다.
“승패는 이미 예전에 난 듯한데, 이제 그만 포기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포기라니! 내 사전에 포기란 없네!”
생각 이상으로 완고한 분이시란 말이야. 하긴, 그래서 백씨 집안을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법조계 집안으로 일군 거겠지만.
“하지만 저도 뜻대로 움직여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윽! 이, 이!”
“만약 이대로 경기를 지속한다면…… 지금보다 더한 참패를 당하실 텐데.”
“흡!”
“할아버님의 자존심이, 그걸 허락할지 조금 의문이 드는군요.”
우영은 말을 마친 뒤 정말이지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턱 끝을 기다란 손가락으로 스윽 쓸었다. 그런 우영의 행동에 입술을 꾹 깨물던 백 전 대법원장이 ‘하하, 할아버지. 신 검 말대로 그만 포기하시죠.’라고 작게 웃는 승진의 큰형 백우진을 노려봤다.
우영은 절대로 패배는 안 된다며 마지막까지 백색 돌을 꽈악 움켜쥐고 있는 주름진 손을 응시하다 진지한 음성을 뱉어 냈다.
“실망하실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
“할아버님께서 생각하시는 그 이상으로 잘하겠습니다.”
백 전 대법원장을 보지 않고 바둑판에 시선을 꽂고 있던 우영이 고개를 들어 눈앞의 사내를 똑바로 바라봤다. 패배를 직감한 장수처럼 절망에 빠져 있던 백 전 대법원장의 요동치던 눈동자가 우영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우영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온 것은 아니니까요.”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마지막까지 함께한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는 곱지 못한 시선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그랬기에 더더욱 옆에 서고 싶었다. 혼자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한다고 할지언정, 가족들만 허락한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몇 달 동안 무리하게 일을 벌였고, 그 노력의 결과로 나름 빛나는 훈장도 얻어 냈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검사라면, ‘그’의 가족들도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을까. ‘그’의 곁에 저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 자신과 ‘그’가 같이 만들어 갈 미래를 더는 부정하지 않고 지켜봐 주지 않을까―
[백 검을, 승진이를 제게 주십시오.]
그러한 이유로 백 전 대법원장의 만남 제안에 응했고, 그를 보자마자 요구했다. 제 말을 들은 백 전 대법원장의 근엄한 얼굴이 파랗게 질려 가던 모습은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다. 당장 꺼지라며 윽박지르는 그에게 바둑 내기를 제안하면서 설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물려 준다면, 바보지.’
애써 잡은 물고기를 놓아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어항을 구해 손에 쥔 물고기를 가둔다면 또 모를까.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백 전 대법원장을 지켜보던 우영은 고요하게 울리는 심장의 박동을 느꼈다.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백 전 대법원장은 여전히 자신을 탐탁잖게 여기는 것 같았지만 생글거리는 입꼬리를 내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물러선다면 틈을 내어 주게 될 것이다. 우영은 확고한 의지까지 드러내며 백 전 대법원장의 검은 눈과 마주했다.
툭.
“끼리끼리 만난다는 말이 정확하군.”
그런 그를 얼마나 쳐다보고 있었을까.
우영은 날카롭게 들려오는 백 전 대법원장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들고 있던 백돌을 통 안에 신경질적으로 던져 버린 백 전 대법원장은 멍하니 제 행동을 좇는 우영을 한 번 노려보다 미소를 그리고 있는 우진을 향해 외쳤다.
“에잉! 하여간 이런 고집스러운 놈들과 상대하는 건 너무 피곤해! 벌써 9시가 넘었잖아! 쯧. 이봐, 백 의원!”
“예, 할아버지.”
“저 판, 내 눈앞에서 치워 버려!”
“네?”
“한동안 바둑 따위엔 손도 대지 않을 거다!”
……!
“하하. 할아버지, 패배를 인정하시는 겁니까?”
“패배? 패배는 무슨! 나는 바둑판을 치우라고 그랬지, 패배는 인정 안 했어! 그냥 잠시 일어난 거라고!”
“상대방의 동의 없이 먼저 일어나면 지는 거라고 룰을 정해 두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윽!”
“그럼 확실한 패배네요. 축하드립니다, 신 검사.”
“인석이! 패배 따위 인정 안 했다니까?”
“어차피 계속 진행하시면 할아버지 손해입니다. 신 검사가 이쯤에서 기권하게 해 주는 것을 고맙게 여기세요.”
“백 의원, 너!”
“자, 자, 소중한 막내 손자를 결국 빼앗겨 버렸으니 섭섭하시지요? 그런 의미로, 제가 위로주라도 올리겠습니다.”
“빼앗기긴 누굴 빼앗겨! 그리고 몇 번을 말하지만, 우리 진이한테 저런 시커먼 놈은 하나도 안 어울려! 심지어 저 목석같은 놈은 진이보다 크지 않느냐!”
“에이, 더 크기는요. 비슷해 보이는구만.”
“너 이놈! 대체 누구 편이야!”
“저는 진이 편이지요. 사랑하는 동생이잖습니까?”
“으으! 어찌 된 셈인지 이 집 녀석들은 하나밖에 없는 할애비를 공경할 생각을 안 해!”
“어라? 할아버지,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이십니까. 제가 가장 존경하고 공경하는 분이 바로 할아버지십니다.”
“말은 번지르르!”
“하하하.”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백 전 대법원장의 장단에 맞춰 주던 우진은 ‘못된 놈들!’ 하고 툴툴거리며 방을 벗어나는 백 전 대법원장의 뒤를 따르려다 말고,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우영을 바라봤다.
“뭐 하고 계십니까, 신 검사님?”
……응?
“승부는 났잖습니까.”
승진과 닮은 듯 닮지 않은 남자의 눈에 부드러운 미소가 깔렸다.
“아마 목이 빠져라, 이 소식만 기다리고 있을 사람이 있을 텐데요.”
* * *
[실실거리지 말거라. 나는 아직 인정한 거 아니다.]
서둘러 별장을 나서는 우영을 향해 흠흠, 호흡을 가다듬던 백 전 대법원장이 검은 눈을 빛냈다.
[네놈들의 끈기를 한 번쯤은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거야.]
[끈기요?]
[말은 평생 붙어 있겠다고 하지만, 언제 돌아설지 모르지 않느냐!]
[하, 하하.]
[진이 그놈은 워낙 변덕스러운 놈이라, 금세 네놈에게 질릴 거다. 그럼 이 할애비는 신 검, 네놈보다 더 좋은 놈을 그놈에게 던져 주면 되는 거고!]
[할아버님, 저희 같이 지낸 지 10년이 넘습니다.]
[11년째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냐! 흥! 워낙 극과 극인 놈들이니 내일 당장 헤어질 수도 있는 게야!]
확실히 저를 향해 외치던 백 전 대법원장의 말대로였다.
극과 극.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과 승진은 정반대 성향을 지닌 인물들이었다. 외향적이었던 자신과 달리 승진은 내향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들에게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고, 속내를 숨기는 저와 달리 가면 따위는 쓰지 않았었다.
자신이 낮을 선호한다면 승진은 밤을 선호할 만큼 극명한 차이점을 보여 왔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와 승진이 가까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거겠지.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년이 지나고, 또 세월이 흘러도 네놈들이 여전히 같은 마음이라면…… 이 할애비도 어쩔 수 없이 허락해 주어야 하지 않겠어! 사랑하는 우리 막내가 계속 투정 부리는 것도 보기 싫고, 나도…….]
[할아버님?]
[나도 아, 아주 조금은…… 네놈이 마음에 드니까.]
[……!]
[그러니까 한동안은 지켜봐 주기로 결심한 거다, 이 손자 도둑놈아!]
아무래도 백승진이 솔직하지 못한 건, 그의 친할아버지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놀란 제게 얼굴을 붉히며 외치던 백 전 대법원장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우영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분명 그런 것 같은데.”
“뭐가?”
서초구에 위치한 B 오피스텔 19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드르륵 열리는 문밖으로 나가려던 우영은 코앞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시선을 옮겼다. 승진이 생긋 웃으며 벽에 기대어 살랑살랑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우영은 어떻게 된 거냐는 표정을 지었다.
“형한테 연락받았어. 곧 도착할 것 같아서 조금 전부터 기다렸지.”
그 말을 한 후 입꼬리를 올리는 승진의 볼이 아주 살짝 빨개졌다. 확실히 ‘조금 전’은 아니군. 우영의 차가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지켜봤을 승진의 모습이 그려진다. 우영은 ‘들어갈까?’ 하고 작게 속삭인 뒤 나란히 붙어 있는 1901호와 1902호를 바라봤다.
“일단은 우리 집이 낫겠지?”
불 하나 켜지지 않은 우영의 집보다는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는 제집이 더 나을 것이라 여겼는지 승진이 씩 웃으며 속삭였다. 우영은 자연스럽게 1901호 앞으로 다가가는 승진을 쳐다보다 막 문고리를 돌리는 그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애교냐?”
승진의 넓은 어깨 위로 턱을 대며 숨을 내쉬자 승진이 간지럽다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고는 제게 철썩 붙어 있는 우영을 이끌어 집 안으로 들어섰다. 떨어질 생각을 않는 우영에게 피식 웃으며 하는 승진의 말이 들려오자 우영은 승진의 배를 문지르던 손을 슬금슬금 위로 움직였다.
“할 거면 침대에서……!”
단추가 가득 달린 셔츠가 아닌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있던 승진의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자 그의 복근이 단단해졌다. 단단한 배에서 위로, 조금 더 위로 올라가자 승진이 인상을 쓰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우영은 제 손끝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돌기에 싱긋 웃으며 이를 악물고 있는 승진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하아, 으.”
현관에서 침실로 향하다 우뚝 멈춰 선 승진의 목소리가 야릇하게 귀를 울린다. 그에 더 자극받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영은 거칠어지는 승진의 숨결을 들으며 더욱더 빠르게 손가락을 놀렸다. 엄지와 검지로 왼쪽 유륜 근처를 지분거리자 승진이 몸을 비틀거렸다.
우영은 ‘승진아.’ 하고 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뭐, 흐읍, 야.”
입을 벌리는 승진에게서 거친 호흡이 들려왔다.
우영은 그런 그를 벽 쪽으로 밀착시켰다. 승진이 벽에 손을 대며 어떻게든 버텨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위로는 가슴 끝을 문지르던 우영의 다른 손이 아래로 내려가 바지 앞섶을 건드렸다. 승진이 크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자, 잠깐. 나 아직.”
“샤워는?”
“어?”
“했지?”
“하기는 했는데.”
“그럼 됐어.”
“뭐? 잠, 흣!”
태연하게 브리프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우영의 행동이 당황스러웠는지 승진이 우영의 팔목을 덥석 잡자 우영이 검은 눈을 일렁이며 물었다. 얼떨결에 질문에 대답해 버린 승진은 자신이 말을 하기가 무섭게 손을 더욱 깊게 밀어 넣는 우영을 막지 못했다.
“하, 큭.”
우영의 손이 승진의 사타구니 쪽을 스쳐 은밀한 중심에 닿는다. 그의 손가락 끝이 길쭉한 기둥에 닿자마자 승진이 신음을 흘리며 인상을 썼다. 우영은 저와 스치자 곧바로 반응한 페니스를 감쌌다.
“너…… 헉!”
우영은 놀라는 승진의 페니스를 감싸 쥐고선 아래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으, 읏! 흑, 흐으!”
굵고 긴 승진의 것이 우영의 부추김에 점점 팽창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동시에, 벽에 쓰러지듯 몸을 기대고 있던 승진의 눈이 흐려졌다. 우영은 순식간에 열기로 휩싸인 그들 주변을 똑똑히 인지하면서도 제 행동을 멈추지는 않았다.
뜨거워.
제 품 안에서, 제 손안에서 달아오르는 승진이 사랑스러워 미칠 지경이다. 뚱했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풀어지는 것도,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이를 꽉 악물고 있는 것도, 절대로 지지 않겠다며 눈을 부라리고 있는 것도, 모두.
“인마…… 하아, 나…… 으윽, 나, 나오겠어.”
슥슥 페니스를 비비는 우영의 손놀림이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승진의 신음 역시 잦아졌다. 거칠어지는 숨결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인상을 쓰고 있던 승진이 벽에 얼굴을 댄 채 중얼거리자 머릿속의 이성이 뚝 끊어졌다.
우영은 제게서 등을 돌리고 있던 승진을 바로 세운 뒤 곧바로 몸을 숙였다. 그러고는 반쯤 벗겨져 있던 승진의 브리프를 아래로 내린 뒤 꼿꼿하게 서 있는 그의 페니스를 향해 입술을 가져다 댔다.
“큭!”
강한 열기가 페니스 끝에서 느껴지자 승진이 짧게 교성을 흘렸다. 우영은 그만하라며, 그의 귀두를 머금으려는 제 머리를 밀어내는 승진의 행동에 아랑곳 않고 입을 크게 벌렸다. 우영의 입 속으로 승진의 것이 들어갔다.
“그만, 흐으, 나온, 하아, 다니까!”
기다란 혀끝으로 최대한 팽창한 페니스를 자극하는 우영에게 승진이 소리쳤다. 어떻게든 그를 떼어 내기 위해 외쳤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미 절정을 코앞에 둔 승진은 우영을 거부하지 못했다.
이를 세우지 않고 부드럽게, 때로는 강하게 승진을 몰아붙이던 우영의 입 속에 뜨뜻한 무언가가 가득해졌다. 승진은 참지 못하고 그것을 분출해 버린 스스로를 책망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얼른 우영의 입을 벌리려 했다.
“신― 야! 뭐, 뭐 하는!”
하지만 우영은 아랑곳 않고 승진의 것을 모조리 목구멍 뒤로 삼켰다. 기겁한 승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우영은 입꼬리를 올리며 승진을 올려다봤다.
“할아버님께 허락받았어.”
“……뭐?”
“이제 어디서든 할 수 있어.”
“…….”
“그러니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그 말을 끝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스윽, 닦은 우영은 모든 것을 분출한 후 늘어진 승진의 페니스에서 시선을 뗐다. 승진은 ‘하?’ 하고 황당한 신음을 흘리더니 잇소리를 흘렸다.
“넌 씨발, 그런 중요한 말을 하필 이 상황에서 하냐?”
우영은 그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려 했다.
“……!”
한 번 빼 줬으니, 다음 단계는 샤워를 하고 나서 이어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무릎을 펴려는 제 목에 팔을 두른 승진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끌어당기는 것이 보이자 그 마음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섰다, 이 새끼야.”
우영이 뭐 하는 짓이냐는 표정을 짓자 승진이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으며 속삭였다.
‘뭐?’
그 말에 고개를 아래로 내리자 분명 몇 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명 ‘현자 타임’을 갖던 승진의 페니스가 어느새 우뚝 솟아 있었다.
“난 왜 이런 놈한테 흥분을 하는 건지.”
우영은 이젠 아예 제게 안겨 드는 승진의 말을 들으며 그를 바라봤다. 승진은 나무에 매달린 코알라처럼 우영에게 달라붙어서는 그의 귀에 대고 입술을 달싹였다.
“안아.”
“…….”
“자극했으니 마지막까지 책임을 져야지!”
대롱대롱 매달리며 인상을 쓰는 승진의 모습에 우영은 픽 웃었다.
“그래도 돼?”
“씨발, 당연하지. 그리고 이번에 안긴다고 완벽하게 결정되는 것도 아니니 그런 표정은 짓지 마라. 빡치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지?
히죽 웃으며 침실로 향하려던 우영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는 거구의 남자를 내려다봤다. 우영에게 ‘얼른 안 안고 뭐 해!’라고 소리치고 있던 승진은 여전히 우영에게 매달린 채 말을 이었다.
“난 아직 포기 안 했어.”
“하하.”
“웃지 마! 언제 인사이동이 날지 모르고, 네놈이 대검으로 가는 게 확실한 건 아니니까. 대한민국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적폐청산은 멀었거든? 뒤져 보면 이정후 스캔들만 한 일이 또 나올 수도 있으니 그때까지는 신가 네놈이 즐길 수 있도록 협력하도록 하지.”
“…….”
“건수만 물어 봐. 이번엔 나도 안 봐줘.”
마치 다짐이라도 하듯 중얼대는 승진을 보고 우영은 혀를 쯧쯧거렸다.
“아직도 포기를 안 하다니, 노력이 가상하군.”
“뭐, 인마?”
“나한테 넣는 게 그렇게 중요하냐?”
“당연히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그게 대체 뭔데?
복도에서 침실까지.
겨우겨우 승진을 들고 침대로 눕힌 우영이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헤치며 눈을 내리깔았다.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던 승진이 엉망진창이 된 몰골로 우영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영원히 깔려야 한다는 게, 왠지 자존심 상한단 말이다!”
우영은 새빨개진 승진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붉어진 것은 비단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얼굴에서 귓불, 그리고 목덜미까지. 온통 빨갛게 물든 승진이 이글거리는 검은 눈을 제게 고정시키며 말했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야. 네가 내 안에 들어오는 것도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다만, 이 몸은 넣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그리고, 네놈이 내 아래서 뱉어 내는 신음이 얼마나 듣기 좋은지 알기나 해?”
그건 뭐, 너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부드득 이를 갈면서도 ‘빨리 그 옷 좀 벗어!’ 하고 외치는 승진을 향해 풉, 실소를 흘리던 우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백가 너는 생각 이상으로 끈질기군. 이쯤 되면 내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양보해 줄 만도 한데.”
“깔고 깔리는 데 양보가 어디 있냐? 그러는 신가 너는 나한테 영원히 엉덩이 대줄 생각 있어?”
그런 끔찍한 양보 따위는 하고 싶지도 않지.
툭―
셔츠의 단추를 푸느라 시간이 걸렸다. 우영은 언제든 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는 승진에게 다가가기 위해 침대 위로 올라갔다. 마음대로 하라며, 커다란 등을 매트리스 위에 붙인 승진이 제 위로 올라오는 우영을 올려다봤다.
검고 깊은 승진의 눈동자를 내려다보던 우영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좋아.”
“뭐?”
“네 도전, 받아 줄게.”
“어이, 도전이라니? 그건 꼭 네가 대검 가는 것이 확정이 된 것처럼 느껴지잖아. 아직 모르는 일이, 흣!”
우영은 툴툴거리는 승진의 오른쪽 다리를 덥석 잡고선 그의 사타구니 쪽에 입술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이 스치자 승진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승진아.”
“하아, 왜.”
“너 내일 몇 시 출근이냐.”
“……평소, 끅, 대로.”
종아리부터 허벅지, 그리고 하늘을 보고 서 있는 페니스 근처까지. 붉은 낙인을 곳곳에 새기며 움직이던 우영이 하아, 뜨거운 신음을 흘리며 물었다. 그런 우영으로 인해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승진이 대답하자 우영이 다시 입을 연다.
“외근은 없어?”
“으읍, 4시에 대법에 잠시.”
“그럼 대법 갔다 오는 길에 연락해.”
“뭐? 핫.”
“허락도 받았으니 앞으로는 더욱 붙어 있어야겠어. 해도 해도 모자라.”
“어이, 나보고 굶주렸냐고 하더니 정작 굶주린 건 네 녀석, 으읍!”
승진이 콧방귀를 뀌며 소리치려 했으나 그 말은 곧 자신의 기둥으로 입술을 가져다 댄 우영에 의해 멈춰졌다. 우영은 제 혀 놀림으로 인해 점점 무너져 내리는 승진의 가쁜 숨결을 느끼며 생각했다.
‘단독 사건으로 치고 나가게 할 수는 없어.’
만약 녀석이 이정후 스캔들보다 더 큰 건을 얻게 된다면, 이 상황이 뒤집히는 건 순식간일 테니. 그렇다면…….
‘공조를 늘려야겠어.’
혹시 모를 상황도 막고, 녀석과 붙어 있는 시간도 길어지겠지.
‘부장님께 압력을 넣어야 할까?’
요즘 내 덕분에 특수부보다 잘나간다며 즐거워하셨으니, 그 정도 요구는 들어주실 거야.
‘큰일이군.’
공과 사는 엄연히 분리해야 하는데―
‘뭐, 그게 가능했다면 이렇게 될 일도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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