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공(公)과 사(私) (2)
[차 가져갈 거니까 금방 복귀할 거야.]
그러고 보니 틀림없이 그런 말을 했었다.
블랙문으로 향하기 직전, 자신과 나누었던 전화 통화에서.
하지만 승진이 타고 있는 차는 분명 우영이 알고 있던 승진 소유의 차가 아니었다. 우영은 굳은 얼굴로 조수석 문을 부여잡고 있는 승진을 말없이 응시했다.
“아, 전화번호요? 아직 그것도 교환 안 한 겁니까? 내 정신도 참. 여기 핸드…… 아니, 이 안에 명함이 있을 겁니다. 잠깐만요!”
대체 누구와 그리 즐겁게 대화를 하는 건지.
승진은 우영이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귀찮을 정도로 눈치가 빠르던 녀석이 오늘따라 왜 저러는 건지. 우영의 눈동자가 점점 더 짙어졌다.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 나쁜 감각이 스멀스멀, 아래에서부터 치밀어 오른다. 우영은 여전히 조수석의 문을 연 채 운전석에 앉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승진을 쳐다보다 슬며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신우영은 백승진의 좁디좁은 교우 관계를 모두 꿰고 있었다. 요즘은 조금 나아졌지만 사교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백승진이 중요한 볼일까지 내팽개치고 함께 있었던 것을 보면, 틀림없이 ‘친구’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예의 ‘맞선 상대’이려나.
‘아마도 그렇겠지.’
이번 맞선 자리는 보통 자리도 아니고, 무려 백승진의 친할아버지인 백인우 전 대법원장이 주선한 자리였다. 겉으로는 자의처럼 보이기는 했으나, 결국 우영의 손에 떠밀려 그곳으로 나가게 된 승진은 아마도 할아버지의 얼굴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에스코트에 노력을 다해야 했을 것이다. 백승진이 아무리 저만 아는 개망나니더라도, 그 정도 예의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
[이 세상에서 제 애인한테 맞선을 보라고 하는 인간은 너밖에 없을 거다.]
애인(愛人).
노골적으로 그 단어를 내뱉으며 툴툴거리는 승진은 꽤 귀여웠다. 그랬기에 달려드는 그를 내버려 둔 거고, 이후의 일을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우영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 있었으니까.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백승진이 신우영을 미치도록 사랑한다는 것이다.
감히 확신컨대, 이 점은 아마도 변하지 않을 거다. 백승진처럼 저밖에 모르고, 자신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오만한 놈이 치욕을 무릅쓰고 엉덩이를 스스로 벌릴 정도였으니까. 단적인 예로 승진은 우영과의 인연을 이어 나가기 위해 스스로 커밍아웃까지 한 미친놈이 아니었던가.
우영은 승진이 저 아닌 남녀에겐 절대 엉덩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얼마든지 맞선 자리에 나가 보라지.
그래 봤자 결과는 똑같을 거다.
우영은 승진에게 물밀 듯이 쏟아지는 맞선 제안을 잘 알고 있었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매일같이 붙어 있는데, 끊이지 않는 그의 전화를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하지만 승진이 맞선에 나간다고 해도,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십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백승진은 여전히 자신에게 목을 매고 있었고, 이제 자신 역시 비슷해졌다.
아직까지 서로를 완벽하게 함락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백승진이 자신을 두고 눈길을 돌릴 리 없다. 그 점을 너무도 잘 인지하고 있었기에 우영은 승진의 맞선 자리를 공(公)적으로 이용한 것이고, 덕분에 훌륭히 KS 클럽에 드나든 용의자들의 리스트를 확보했다.
그래. 분명 오늘 하루 일어난 일은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완벽했고, 우영의 예측대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거슬려.’
우영은 묘하게 찝찝한 이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찝찝하다 못해 불쾌했다.
계속해서 우영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는 것은 총 세 가지. 일단 첫째로 제게 일어난 일에 대해 귀찮을 정도로 쫑알거리던 승진이 오늘따라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는 점이었고, 둘째로는 운전석을 향해 무어라 말하고 있는 승진의 얼굴이 지나칠 정도로 밝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 신우영의 심기를 가장 거슬리게 하는 마지막 이유는―
“신가?”
아.
고요하게 일렁이던 검은 눈동자가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짜증이 치밀어 인상을 쓰고 있던 우영은 저를 보고 깜짝 놀라는 승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영은 가로등에 비쳐 몹시 빛나는 승진의 눈을 말없이 응시했다.
“너 왜 여기 있냐?”
저와 똑같은 눈높이에 누가 누워도, 혹은 눕혀도 이상하지 않은 체격의 승진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열 받는군.
우영은 입 안에 맴도는 말을 꾹 삼킨 채 ‘신 검?’ 하고 한 번 더 묻는 승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늦어.”
“어? 아아. 미안, 미안. 잠깐 얘기 좀 하느라.”
“차는?”
“응?”
“차 가지고 간 거 아니었냐.”
싸늘한 목소리로 묻자 눈을 동그랗게 뜨던 승진이 배시시 웃었다.
“하하, 그러게. 놔두고 왔다!”
……뭐?
“아니, 내가 기분이 너무 좋은 일이 생겨서 술을 한잔 해 버렸는데, 거기에 그만 차를 놔두고 왔지 뭐, 읍!”
이 미친 새끼가.
우영은 골목길이 떠나가라 웃는 승진의 입으로 손을 뻗으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한 잔 정도가 아닌데.”
승진이 답지 않게 헤벌쭉 웃어 보였다.
“우영아.”
승진은 굳은 얼굴을 한 우영의 어깨로 팔을 뻗었다.
“윽!”
“우리 우영이, 나 기다린 거지?”
“안 떨어져?”
“흐흐. 내 귀가가 늦어져서 신경이 쓰였구나, 우리 자ㄱ…… 억!”
목소리라도 작으면 모를까, 쩌렁쩌렁한 음성을 내뱉으며 헤실거리는 승진을 보다 못한 우영이 그의 복부를 툭 쳤다. 그러자 낮게 신음을 흘리며 우영의 몸 쪽으로 쓰러진 승진이 ‘이 자식…….’ 하고 우영의 품으로 툭 떨어졌다.
우영은 그런 승진을 부축하고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인기척은 없다. 우영은 잠시 고민하다 승진을 둘러멘 후 오피스텔 쪽으로 걸어갔다.
* * *
“흡.”
승진의 입 안에 고여 있는 꿀물을 깊게 빨아 당기자 그가 짧게 신음을 흘렸다.
개자식.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겉으로는 분명 멀쩡한 얼굴이었는데, 입 안에서 느껴지는 알코올 향 때문에 그의 혀를 옭아매던 우영의 눈앞이 다 어지러울 정도였다.
으윽.
우영은 속으로 욕설을 흘리면서도 승진의 입 안을 헤집는 행위를 멈추지는 않았다.
“하아, 잠깐. 윽, 야, 신……!”
승진의 위에 올라타 위로는 입 안을 점령하며, 아래로는 바지 버클을 풀려는 우영의 손길에 승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영은 냉랭한 눈으로 그런 승진을 내려다보더니 말을 이으려는 그를 다시 틀어막았다. 벌어지던 승진의 혀가 다시금 달려드는 우영의 입술에 의해 꿈틀거리기만 했다.
“하으, 으!”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승진은 쉬지 않고 저를 압박하는 우영의 접근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승진을 소파로 내던지고 셔츠까지 풀어 헤친 우영은 완벽하게 바지의 지퍼까지 내리자 다시금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승진은 흐트러진 눈으로 그런 우영을 올려다보며 기다란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으윽, 잠, 잠깐……. 헉!”
뒤늦게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승진이 손을 뻗어 우영의 가슴을 밀쳐 내려고 했으나, 브리프 사이로 손을 집어넣는 우영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승진은 우영의 손가락이 스치자마자 멋대로 반응해 버린 페니스를 느끼며 미간을 좁혔다. 우영은 그런 승진이 당황할 틈도 주지 않고 다시 그의 입 안으로 제 혀를 밀어 넣었다.
컥컥.
입천장을 간질이며 점점 더 깊숙하게 들어가는 우영의 혀 놀림에 숨이 막히는지 승진이 인상을 썼다. 우영은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승진의 모든 것을 빨아 당겼다. 그리고 승진의 턱을 붙잡고 있는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그의 부푼 페니스를 힘껏 잡고는 아래위로 슥슥 문지르기 시작했다.
“으흣, 신우, 윽, 하으!”
호흡 고를 시간조차 주지 않는 우영의 스킨십으로 인해 승진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엉망이 됐다. 백승진의 옅은 갈색 머리카락이 우영의 눈앞에서 춤추듯 넘실거리자 그의 아랫도리도 점점 묵직해지는 게 느껴졌다.
젠장. 아직 전희도 제대로 못 했는데, 벌써 이 자식의 엉덩이에 제 것을 박아 버리고 싶다.
우영은 딱딱한 승진의 치열을 마구잡이로 쓸며 미간을 좁혔다.
그렇게 한동안, 정말 정신없이 승진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를 농락했다. 끄응, 하고 헉헉거리는 승진을 모두 집어삼키겠다는 듯 멈추지 않았다. 보이는 곳, 보이지 않는 곳을 가리지 않고 승진의 몸에 붉은 반점을 새긴 것으로도 모자라, 승진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파묻으려던 순간이었다.
“……!”
뜨거운 입김을 뱉어 내던 우영이 오뚝 서 있는 승진의 페니스를 입 속으로 넣으려던 순간, 덜덜덜 떨리던 승진의 허벅지가 들리는가 싶더니 우영의 어깨를 걷어찼다.
우영은 큭, 짧은 신음을 흘리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아, 하아…….”
우영의 기습 애무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술에 취해 있었던 까닭인지 붉게 상기된 승진의 얼굴이 우영의 눈에 가까이 들어온다.
“인마, 신우영! 너 진짜 갑자기 왜 그래!”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생글생글 웃고 있던 승진의 얼굴엔 당혹감이 가득했다. 우영은 냉랭한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 ‘설마 너도 술 취했냐?’ 하고 묻는 승진에게 피식 웃어 버렸다.
우영은 은색 실타래가 남아 있는 입가를 손등으로 슥 문지른 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하기 싫어?”
“……뭐?”
“하기 싫으면 치워. 억지로 할 생각은 없으니까.”
제게 실실 웃을 때는 언제고 덤벼드는 자신을 책망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자, 우영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에 눈을 동그랗게 뜬 승진이 조금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 아니. 하기 싫은 건 아닌…… 윽!”
“그럼 박혀.”
“잠, 헉!”
머뭇거리는 승진을 보자마자 다시 일어선 우영이 당황해하는 승진의 손목을 덥석 잡고선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깜짝 놀란 승진이 비틀거리는 사이, 그의 몸을 돌려 소파 위로 내던졌다.
승진이 ‘이 개새끼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다시 정면으로 움직이려 했지만, 엎드린 승진의 복부를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우영의 속도가 더 빨랐다.
“우, 우영아.”
우영은 저를 부르는 승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승진의 탐스러운 엉덩이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승진은 한 손으로는 제 엉덩이를 주물럭거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어디서 났는지 러브 젤을 듬뿍 발라 만지작거리는 우영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저기, 나 왜 네가 화가 난 건지 이해가 안 되는데……. 무, 물론 하기 싫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내가 왜 박혀야 하는 건지 모르, 허윽!”
“백가.”
하지만 우영은 그런 승진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으으, 읏!”
우영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승진의 애널 입구를 지분거렸다. 촉촉한 무언가가 애널에 닿자 승진의 등이 새우처럼 굽어졌다.
우영은 승진이 반응하여 인상을 찌푸리는 사이, 좁은 입구 속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야, 아프, 하으, 잠깐만, 처, 천천히. 으윽!”
[그럼 또 뵙도록 해요.]
백승진보단 비교적 냉철한 신우영이 이렇듯 신경이 곤두서 있는 이유. 그건 아마도 몇 분 전, 도로가에서 보았던 장면이 잊히질 않는 까닭일 것이다.
우영은 승진이 제 아래서 뜨거운 숨결을 흘리며 주름진 애널을 더욱더 벌렁거리는 모습을 무심히 내려다보다 하나만 넣었던 손가락을 두 개로 늘리며 승진의 안을 넓혔다. 그러고는 복부를 붙잡고 있던 손을 아래로 내리고선 승진의 페니스를 움켜쥐었다.
“후읍!”
얼굴을 구기며 내뱉는 승진의 신음이 귀를 울린다.
[예!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불현듯 어떤 장면 하나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가로등 아래에 서서 헤픈 웃음을 흘리며 손까지 흔들어 주던 승진의 모습이 잊히질 않아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그런 승진 때문에 괜히 기분이 나빠져 있던 우영은 승진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차를 몰고 제 앞을 지나쳐 가는 운전자의 모습을 그제야 목격할 수 있었다.
‘…….’
빙긋,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핸들을 잡고 있던 사람.
굳은 얼굴로 서 있는 우영을 한 번 흘긋거리곤 매끄럽게 움직이는 차를 몰고 사라진 사람은 틀림없이, ‘남자’였다.
[야, 신가.]
[……?]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러는데, 너는 마음에도 없이 실실거리면 짜증 안 나냐?]
상냥한 척, 친절한 척, 그리고…… 다정한 척.
우영은 사람 다루는 것에 익숙했다. 그 때문에 낯선 타인을 대할 때도 절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마주 보면 항상 웃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듯, 우영이 웃어 주면 백이면 백 전부 그에게 호감을 드러냈으니까.
호감을 얻는 과정이 좋았다. 자신이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든, 차곡차곡 쌓여 가는 그들의 호의는 훗날 그에게 도움이 됐으면 됐지 결코 방해가 되진 않을 테니까.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은 그의 훌륭한 무기였다. 그래서 우영은 20대 초중반까지는 미소로 사람들을 홀리곤 했다.
[뭐?]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이후 우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고 할 수 있는 승진은 그런 우영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중앙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향하려던 우영은 우연히 벤치에 앉아 있던 승진이 툭 던진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눈에 눈물방울까지 고여 가며 하암, 길게 하품을 하던 승진이 입을 툭툭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그냥, 괜히 피곤해 보여서.]
[…….]
[네놈도 실은 실없이 웃는 거, 딱히 좋아하지 않잖아. 아까도 그 여자애들이 들러붙어서 조금 짜증 났던 것 같은데. 아니냐?]
[…….]
[‘상냥하고 멋진 남자’라는 이미지라는 게, 참 불편해. 안 그래? 어떻게 그리 꾸며진 틀에 맞춰서 살 수 있는 건지.]
픽 웃는 승진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우영은 대답 대신 입술을 짓눌렀다. 슬그머니 벤치에서 일어난 승진은 아무도 없는 그들 주변을 흘긋거리더니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인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신가 네놈을 아주 대단한 녀석이라고 생각한다. 그 갭이 꽤 마음에 들기도 하고.]
[……무슨 소리지.]
가만히 승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영이 낮게 일렁이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승진의 눈이 반으로 접혔다.
[네놈이 온전히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나라는 게, 마음에 든다는 소리야.]
“하윽!”
거칠게 몰아붙이는 우영으로 인해 승진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소파 헤드에 팔을 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엉덩이를 흔드는 승진의 등은 이미 굽어진 상태였다.
“하으으, 읏!”
승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숨결과 뜨거운 신음이 귀를 자극한다. 점점 더 달아올라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밀면 밀수록 강하게 조여 오는 승진이 우영을 물고 놓아주지 않자 우영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혔다.
우영은 바들바들 떠는 승진의 팔뚝이 힘겹게 소파 헤드를 짚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더욱더 힘을 주었다.
“흡, 으윽!”
우영의 성난 페니스가 승진의 안을 무너뜨릴 기세로 파고들어 갔다. 결국 승진의 몸을 지탱하고 있던 팔이 무너져 내렸다. 우영은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승진의 허리를 잡으며 흐트러진 그를 감싸 안았다. 승진을 안는 순간 그에게서 느껴지는 강한 체취에 현기증이 일었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이나 미소는 잘 못 짓겠더군. 너처럼 억지로 웃는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야.]
사람을 대할 때 미소를 짓는 신우영과 달리, 승진은 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렀다. 검사로 임관하게 되면서 그 성격이 많이 유해졌다고는 하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자신이 허용한 ‘범위’ 내의 사람들에게만일 뿐, 승진은 자신이 둘러놓은 틀을 쉽사리 깨려 들지 않았다.
승진에게 단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지만 우영은 타인을 ‘이용’하는 저와 달리, 차라리 그렇게 벽을 치는 승진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있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그리고 백승진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가 자신이라는 것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백승진의 고고하고도 두꺼운 벽을 와르르 무너뜨릴 수 있는 존재가 자신이라니, 영광이 아닌가.
[오늘 즐거웠습니다.]
그런 백승진이 낯선 타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더없이 상냥하고도 부드러운 음성을 흘리기까지 하면서. 제 눈으로 직접 목격한 상황이라 부정할 수도 없었다.
“하아, 윽, 크으!”
기분이 나쁘다.
“으읏, 흐읍……!”
이렇게 단단하게, 가득, 넘쳐 버릴 만큼 네 안을 채우고 있는데.
“크으윽, 하아!”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움찔거리는 승진의 애널 안으로 제 모든 것을 밀어 넣으면 풀릴 것이라 여겼던 감정이 그에게 온몸을 실으면 실을수록 더욱더 엉켜 가는 것 같았다. 승진의 매끈한 엉덩이를 움켜쥐고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 대고 있음에도, 불쾌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우영은 쓰고 있던 안경에 김이 서렸다는 것을 뒤늦게 인지했다. 제 아래에서 흐물거리는 승진을 몰아세우던 그는 거칠게 안경을 벗어 던진 후 올곧이 승진의 등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헉!”
굽어진 척추 위로 입술을 가져다 대자 승진이 움찔거렸다. 우영의 페니스는 여전히 승진의 안에 들어차 있었으나 더는 피스톤질을 이어 가지 않았다. 대신 입술을 아래로 내리며 승진의 등과 목, 그리고 뺨에 집중적으로 낙인을 새겼다.
미친 듯이 박아 대던 우영이 돌연 키스 마크를 새기자 승진은 당황하는 것 같았다.
우영은 붉어지는 승진의 귓불을 물어뜯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 심장이 뛰었다.
짜증 나.
냉랭한 눈으로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우영이 이내 승진의 애널에서 제 것을 빼냈다.
“어? 왜 하다가……!”
그의 아래서 얕은 신음을 흘리던 승진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우영은 그를 다시 둘러멨다. 저와 똑같은 체격의 남자를 어깨에 메고 침실로 향하는 우영의 무지막지함에 승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우영은 멈추지 않았다.
“윽! 너 뭐, 흡!”
시작도, 과정도 모두 제멋대로인 우영의 행동에 황당해진 승진은 침대에 내동댕이쳐진 후 반항적인 눈빛으로 우영을 노려봤다. 우영은 대답 대신 승진의 발목에 걸려 있던 바지와 브리프를 힘껏 내렸다. 그러자 승진에게 남은 것은 셔츠와 넥타이, 그리고 정장 상의뿐이었다.
승진은 우영이 던져 버린 제 하의 세트를 어이없이 쳐다보다 우영을 노려봤다. 우영은 대응하지 않고 이미 자신의 출입으로 인해 젖어 버린 승진의 두 다리를 벌렸다.
……겨야 해.
“……가!”
새겨야.
“하으윽!”
벌어진 사타구니 쪽에서 달콤한 냄새가 났다. 우영은 승진을 자극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의 페니스 주변을 배회하며 낙인을 새겨 나갔다. 그의 예민한 살갗을 깊게 빨아 당기면 금세 붉어져 우영의 신경을 더욱 자극했다.
우영은 제 행동으로 인해 가쁘게 숨만 내쉬던 승진을 흘긋거리며 인상을 썼다.
네가, 누구 것인지 새겨야…….
‘아.’
시야로 들어온 승진의 모든 부위에 제 이름을 새기고 싶었다. 뜨거운 숨결만 흘려 대는 승진을 무시하고 정신없이 입을 맞추었다. 그의 발끝, 발목, 무릎, 허벅지, 사타구니, 그리고 페니스 근처까지. 톡 건드리면 바르르 떨리던 승진의 귀두 끝에서 투명한 애액이 나올 때까지, 우영은 정신없이 승진을 탐했다.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 때까지.
* * *
“또…… 또라이 새끼.”
송골송골 맺혀 있는 땀방울을 후드득 흘려 대며 승진이 중얼거렸다.
길고 긴 낙인의 과정 끝에 다시금 피스톤질을 시작한 우영이 얼마 되지 않아 승진의 안에 모든 것을 배출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우영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승진은 으으, 작게 숨을 흘리더니 인상을 쓰며 우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침대 앞에 놓인 전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발견하고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 개새끼야. 이렇게 대놓고 마크를 남기면 어떡해? 사람들한테 나 섹스했어요― 하고 떠벌릴 일 있냐!”
우영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거울 속의 자신을 가리키는 승진을 한 번 흘긋거리기만 할 뿐 굳이 대꾸하지는 않았다. 입을 굳게 다문 채 그저 앉아 있을 뿐이었다.
“대체 뭔데?”
미친 듯이 박아 댈 때는 언제고, 뒤처리는 정말 완벽하게 끝내 버린 우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승진이 후우,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다가갔다.
“으윽.”
드넓은 침대 위에서 슬금슬금 움직일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는 것으로 보아 조금 전 우영의 페니스가 들락거렸던 애널이 아직 흥분한 상태임이 틀림없다. 승진은 ‘야!’ 하고 저를 바라보면서도 넋을 놓은 것 같은 우영을 향해 크게 외쳤다.
우영의 흐려진 동공이 그제야 점점 생기를 되찾자 승진이 눈을 부라렸다.
“뭐에 또 핀트가 나갔던 건데?”
“……무슨 소린지.”
“무슨 소리기는. 신가 네놈, 가끔 맛 가는 일 생기면 앞뒤 생각도 안 하고 정신없이 박아 대잖아.”
“…….”
“오늘이 ‘그날’이냐?”
우영은 대답 대신 동공을 일렁였다.
승진은 하아, 길게 숨을 내쉬더니 침대 위로 벌러덩 누우며 중얼거렸다.
“씨발…… 아파 죽겠네. 너 때문에 술 다 깼어, 미친 새끼야. 이 새끼는 내가 기분 좋은 꼴을 못 본다니까. 그렇지? 안 그래?”
“…….”
“그래서, 이번엔 대체 무슨 일인데? 또 뭐에 빡이 돌았는데? 어?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 헉! 야, 잠깐. 신 검아, 내가 줬던 그 명단, 혹시 문제 있는 거였냐?”
“…….”
“신가!”
“너.”
“응?”
“…….”
“왜? 뭔데?”
우영은 눈을 빛내는 승진을 말없이 응시하다 침대 옆 테이블 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난데없는 우영의 행동에 승진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우영이 낮고 굵은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전화 온다.”
“뭐? 이 시간에?”
침대 옆 테이블에 던져 놓은 승진의 전화가 새벽 2시를 향해 달려가는 이 시점에 요란하게 울려 대고 있었다. 우영은 ‘아!’ 하고 탄성을 터트린 승진이 엉금엉금 기어서 테이블 쪽으로 가는 것을 지켜봤다.
승진이 새벽에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도통 끊어질 줄 모르는 전화가 대체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핸드폰 액정을 내려다본 승진의 얼굴이 짜증으로 물들자 우영은 전화를 걸어온 사람을 한번 유추해 보았다.
백승진 성격을 잘 아는 강 계장님이 급한 일이 아닌 이상 이 시각에 전화를 걸어올 리는 없고. 그렇다면…… 가족이려나. 가족 중에서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전화를 걸어올 분은 아마도―
“예, 할아…… 네? 윽. 설마 보고받으려고 지금 이 시각에 전화하신 겁니까? 그것도 새벽 2시에?”
……!
제 아래에서 쇳소리를 흘릴 때와는 다른, 퉁명스러운 목소리.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통화 상대라 쓰게 웃고 말았다.
승진은 칫, 입술을 삐죽인 후 우영에게 ‘할아버지’ 하고 짧게 입을 벙긋거려 주었다. 우영은 통화하라는 눈빛을 보낸 후 자리를 비켜 주려 했다.
그런 우영을 보고 승진이 고맙다는 듯 얼굴을 주억였다.
“몰라요. 제가 왜 할아버지한테 그걸 말씀드려야 합니까? 이건 엄연히 제 사생…… 하아, 알겠어요. 뭐,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습니다. 의외로 괜찮은 사람이더군요.”
……뭐?
“이제 만족하십니까? 그래요! 대화하는 게 심심하지는 않았어요. 쳇.”
그리고 막 우영이 승진의 침실을 나서려던 순간, 그의 귓가로 거슬리는 말이 들려왔다. 화를 내면서도, 은근히 웃음을 담은 음성.
그 때문에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
우뚝 멈춰 선 우영이 문턱을 서성거리기만 하자 승진이 ‘왜 그래?’라는 눈빛을 보냈다. 우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우영의 반응에 대수롭지 않게 그에게서 시선을 돌린 승진은 계속 통화를 이어 가고 있었다.
“예예. 원하시는 대로 조만간 다시 만나기로 했으니까 너무 걱정은 마십쇼. 참나. 알겠어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제발 신경 좀 꺼 주십시오. 예? 그래요. 아, 왜 제가 거짓말을 합니까? 진짜 만날 거라니까요? 예! 할아버지 수명을 걸고 맹세합니다!”
우영은 제 귀에 들릴 만큼 크게,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 할아버지한테 말하는 태도가 그게 뭐야!’ 하고 외치는 백 전 대법원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침실을 벗어났다.
소란스러운 침실과 달리 고요한 복도에 가만히 서 있던 그는 냉장고가 있는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냉장고 문을 열어 물병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켜다 인상을 썼다.
‘……마음에 안 드는군.’
미친 듯이 승진을 안았음에도 이 허기짐은 마를 줄을 모른다.
빌어먹을.
대체 자신이 저기압인 이유가 뭘까.
우영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오늘이 ‘그날’이냐?]
반항할 틈도 없이 그에게 깔려 깊은숨을 흘려 대던 승진이 중얼거린 말이 귓가를 맴돈다.
그날, 그래. 굳이 따지자면 화가 난 건 맞았다. 그런데 왜 화가 난 거지?
어제 오후부터 우영의 기분은 촥 가라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승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던 5시 즘부터. 연락이 끊어지는 것은 아주 가끔, 정말 가끔 있는 일이어서 크게 신경을 안 써도 됐지만 하필 승진이 나갔던 곳이 다름 아닌 맞선 자리였다는 게 거슬렸다.
‘하지만 녀석한테 나가라고 한 건 나였지.’
그래서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거다.
현시점에서, 사(私)적인 일보다 공(公)적인 일을 더 중요시하라고 승진에게 말했던 것은 자신이다. 그리하여 싫다는 승진의 등을 떠밀었고, 끝끝내 맞선에 내보냈다. 그런 제가 화를 낼 권리 따위는 없었다.
게다가 자신은 확신하지 않았던가. 백승진이 저 아닌 다른 존재에게 눈길이라도 줄 리 없다고. 그런데 왜 이렇게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거지.
분명 몇 가지 이유가 있긴 했다. 공적인 일을 중시하지 않고 사적인 일부터 처리하려 했던 승진에 대한 짜증이 1차로 폭발했고, 뒤이어 승진이 예의 맞선 상대와 늦은 시간까지 함께 있었다는 점이 기분 나빴다.
그리고 셋째로―
‘백승진의 맞선 상대가…… 남자여서?’
첫 번째, 두 번째 이유보다 더 신경 쓰이는 세 번째 이유.
앞면 유리 안으로 보이던 남자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잊히질 않아 무려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그의 얼굴을 어둡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사님.”
체면이 말이 아니군.
“……사님?”
설마, 질투……라도 하는 건가.
“……사님!”
젠장.
백승진은 왜 하고많은 여자들을 다 두고 남자랑 선을 본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볼일이 끝났으면 빨리빨리 귀가해야지, 그 늦은 시각까지 그 새끼랑 대체 뭘 한―
“야, 신 검!”
“……!”
우영은 저를 부르는 귀 익은 음성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너 지금 뭐 해?’ 하고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는 승진이 보였다.
그의 비좁은 시야에 오로지 승진만 들어차 있어 ‘승진아.’ 하고, 다정하게 그를 부를 뻔했지만 ‘검사님, 괜찮으세요?’ 하고 승진의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미는 강 계장을 보고 순식간에 마음을 가라앉혔다.
두근두근, 낮게 울렁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기는!”
승진이 되묻는 우영을 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뒤편에 서 있던 양 계장과 승진을 따라온 강 계장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우영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승진이 대답하지 못하는 우영에게 말했다.
“네 녀석이 호출했잖아. 시나리오 설계해 보자고!”
……아.
그러고 보니 그랬다.
잔뜩 취할 때까지 마신 술의 영향과 동틀 때까지 이어진 우영과의 섹스로 지칠 대로 지쳐 있던 승진은 아침 해가 뜨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승진을 내버려 두고 먼저 출근한 우영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상태였다.
승진 못잖게 피곤하기는 했지만, 우영은 출근하자마자 두 검사실의 계장들이 어젯밤을 꼬박 새워 조사해 놓은 명부의 신원 파악 서류를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10시를 갓 넘겨 출근한 승진이 ‘왜 안 깨우고 갔어!’ 하고 노기를 담은 문자를 보낼 때까지 제 책상 앞에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양 계장님, 신 검 언제부터 이랬습니까? 완전 맛이 간 것 같은데.”
그런 우영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승진은 혀를 끌끌 차며 신우영 검사실의 양우혁 참여계장에게 말을 건넸다. 양 계장도 승진의 말에 동의하는지 저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우영은 태연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제게 시선을 꽂고 있는 윤희에게 눈을 돌렸다.
“윤희 씨, 아침에 부탁했던 거 준비됐습니까?”
“아, 네!”
“백 검, 따라와. 강 계장님도요.”
우영은 무뚝뚝하게 그 말을 내뱉은 후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윤희와 양 계장에게도 눈짓했다.
갑자기 태도를 달리하는 우영을 보고 서로를 한 번 흘긋거린 승진과 강 계장은 알아서 움직이는 우영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우영이 제 사람들뿐 아니라 승진 쪽 사람들까지 이끌고 향한 곳은 브리핑 룸.
앞쪽 화이트보드 위에 각종 사진과 설명들이 간략하게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 승진이 강 계장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우영은 각종 서류를 놓고 있는 윤희에게 검사실로 돌아가 대기하라는 말을 한 후 착석하는 승진과 두 계장을 바라봤다.
‘냉정해야 돼. 냉정해져, 신우영.’
고작 이런 일에 흔들릴 때가 아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저에게나 승진에게나 아주 중요한 일이 분명하므로,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 옳았다.
우영은 숨을 고른 후 화이트보드 옆에 섰다. 그러고는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세 쌍의 눈동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어제 백 검이 무사히 정보원과 접촉한 덕에 KS 클럽 마약 파티 사건 당일 클럽에 출입한 인물들의 명단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백 검, 수고했습니다.”
우영이 승진을 칭찬하자 두 계장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승진을 바라봤다.
승진은 머쓱한 듯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모습을 보고도 냉정한 표정을 짓던 우영은 다시 몸을 돌려 화이트보드를 가리켰다. 우영의 손가락 끝에는 오늘 아침까지, 두 검사실의 계장들이 퇴근도 하지 못하고 조사했던 유력 용의자 세 명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우영은 굳은 얼굴로 세 용의자들의 인적 사항이 적힌 서류를 훑고 있는 승진과 나머지 계장들을 번갈아 쳐다본 뒤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우리가 시작할 일은 이번 마약 파티 사건 당시, 클럽 내에서 마약을 유통한 것으로 보이는 이 세 사람에게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지, 적절한 방법을 강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 사람이 누군지 설명 드리는 것이 먼저겠군요.”
우영은 유심히 서류를 훑고 있는 세 남자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백 검이 수집한 ‘정보원’의 리스트와 당시 ‘파티’가 열린 시간을 대조해 보았을 때, 클럽에 출입하기는 했지만 클럽 내부와 근처의 CCTV에 찍히지 않은 사람은 총 아홉. 그중에서 알리바이가 확보된 여섯 명을 제외하고 의심스러운 정황을 보이는 사람은 다음의 세 명입니다. 모두 배부된 자료를 봐 주십시오. 첫 번째 용의자는…….”
“한서준이잖아?”
우영의 설명을 듣고 있던 승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블랙문으로 가서 정작 명단을 받아 온 건 자신이면서, 깜짝 놀랐다는 얼굴이다.
그를 본 우영이 인상을 썼다.
“백 검, 명단 받고 확인 안 해 봤나? 왜 그리 놀란 표정이지?”
“어? 아아, 그게…… 동명이인인 줄 알았지. 맑은 이미지의 대한민국 톱 배우가 이런 지저분한 사건에 얽힐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
그러고 보니 승진은 한서준을 나름 좋게 보는 편이었다. 영상 매체에는 도통 흥미가 없으면서, 한서준이 나오는 예능이나 드라마, 혹은 영화를 멍하니 주시한 적도 있지 않은가.
언젠가 궁금하다는 듯 물어보았다. 대체 왜 저 녀석만 나오면 채널을 안 돌리냐고. 그러자 깜짝 놀란 승진이 우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 아…… 그 남자는 왠지, 뭔가 저 녀석 너랑…….]
[뭐?]
[큭큭. 아무것도 아냐. 신경 쓰지 마라.]
미묘하게 웃으며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저 녀석보다는 네가 낫지.’라는 알 수 없는 말까지 중얼댄 승진이 바지 지퍼를 내리려 하는 것을 우영은 막고 또 막았다.
‘순진한 놈.’
사교성이 너무 없어서인지, 아니면 저밖에 모르는 성격 탓인지 가끔 보면 승진은 너무 보이는 대로 믿는 경향이 있었다.
미간을 찌푸리는 우영을 흘긋거리던 강 계장이 하하, 웃음을 터뜨리더니 ‘충격받았어…….’ 하고 중얼대는 승진에게 말해 주었다.
“마약에 가장 노출되기 쉬운 건 아마도 연예인일 겁니다. 일단 촬영이다 미팅이다 해서 해외를 많이 나가잖습니까? 그만큼 마약 확보가 쉬운 거죠. 게다가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사람을 끌어 모으기 쉬운 직업인 만큼 밀수도, 유통도 그런 식으로 수월하게 이뤄진다더군요. 저와 양 계장이 조사해 본 바로, 한서준 씨는 저번 파티에서 국내 쪽 홍보 담당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명 ‘얼굴 마담’으로, 마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이죠.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면서 파티에 참여한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역할이랄까. 대한민국에서 한서준 씨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로 보면 충분히 납득 갈 만한 상황입니다. 그런 한서준 씨가 저번 습격 때 노출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쓴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강 계장의 말에 승진이 짧은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우영은 속으로 쯧, 혀를 차고는 자신을 응시하는 강 계장을 보고 화이트보드의 오른쪽 사진을 흘긋거렸다.
아마도 한서준의 공범일 것이 틀림없는 두 번째 용의자.
검은 선글라스를 쓴 채 건물에서 나오는 모습이 찍힌 사람은 KS 클럽의 실질적 소유주이자 한서준이 소속되어 있는 연예 기획사, KS 미디어의 윤주혁 대표였다.
이번에는 제 차례라는 듯 양 계장이 입을 열었다.
“두 번째 용의자는 현 4대 연예 기획사 중 하나인 KS 미디어의 윤주혁 대표입니다. KS 클럽의 현 소유주가 이강권이라는 일반인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실상 윤주혁 대표의 외사촌이고, 검사님들의 ‘정보원’들에 의하면 이강권은 클럽의 소유주이기만 할 뿐 일명 ‘바지 사장’이랍니다. 대체적으로 클럽에 고위 인사급 고객들을 데려오는 인물은 윤주혁입니다. 주 고객층은 정·재계 유력 인사들이나 유명 연예인들이라고 하더군요.”
“국내 유통 담당인 겁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이쪽에 능통한 마약수사과의 협조를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아, 그건 걱정 마세요. 시나리오 작업 끝나면 어차피 그쪽에도 협력을 구해야 할 테니까요.”
우영은 ‘부탁드립니다.’라며 승진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양 계장을 쳐다보다 마지막 장을 넘겼다.
그럼 남은 사람은―
승진과 양 계장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우영이 마지막 장의 남자를 내려다보기 위해 고개를 숙인 순간.
“자, 잠깐! 계장님들!”
화이트보드의 한가운데에 당당히 사진이 붙어 있는 사내.
그 사진을 무심히 응시하다 세 사람에게 배부한 서류들과 같은 서류를 집어 올리던 우영이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려 할 때였다.
우영보다 앞서 마지막 페이지를 내려다본 승진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왜 그러십니까?”
승진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덩달아 놀라 버린 두 계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승진을 응시했다. 우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승진은 두 눈이 튀어나올 기세로 서류 속의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사진이 왜 여기 있습니까?”
“네? 그 사진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아뇨. 정확히는 이 남자가…… 왜 용의자랑 함께 있는 겁니까?”
강 계장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승진을 바라봤다. 승진 역시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였는지 팍 얼굴을 일그러뜨리고선 말을 이었다.
“젠장! 그러니까 안서호 씨가 왜 여기 있냐고요!”
좆됐군.
승진은 황당한 숨을 터뜨리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지.
한번 시작된 두통은 도통 멈출 줄 모르고 그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안서호라니, 그게 누굽니까?]
[여기요, 여기! 왼쪽 하단의 사진 말입니다! 네이비색 정장!]
[왼쪽 하단…… 아! 혹시 3번 용의자의 변호사 말입니까?]
[뭐, 뭐라고요?]
[예. 이번 사건에서 가장 의심이 되는 3번 용의자는 한서 전자의 이정후 부사장입니다. 이번 KS 클럽 마약 파티의 총 막후라고 짐작되는 사람이죠. 요즘 우리나라에 필로폰이나 DMT(디메틸트립타민), 액상 대마 등이 심심찮게 적발되는 게, 아무래도 이 남자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해외에서 예의 마약 등을 밀반입해 온 뒤, 윤 대표에게 유통을 맡겼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그리고 백 검사님께서 가리키신 분은 이정후 부사장의 전담 변호사라던…… 헉! 잠깐만요, 검사님! 혹시 이 부사장 전담 변호사랑 알고 지내시는 사입니까?]
[아, 그, 그게…….]
[이거 잘됐습니다! 어쩌면 일이 더 잘 풀리겠네요! 어차피 저번 사건으로 인해 이 부사장이고, 윤 대표고, 한서준이고 모두 몸을 사리고 있을 텐데. 게다가 증거도 정황 증거밖에 없어 대놓고 구속 수사는 불가능합니다. 용의자를 모두 잡아넣으려면 잠입 수사를 해서 유인한 다음 처리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백 검사님께서 이 부사장 변호사랑 아는 사이시면, 시나리오는 완벽하죠! 안 그렇습니까, 신 검사님!]
생글생글 웃으며 우영에게 동의를 구하는 양 계장의 말에 승진의 심장이 덜컹거렸다.
우영은 어떻게 된 거냐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승진은 그저 말없이 웃음만 흘려야 했다.
‘돌겠네, 진짜.’
상황이 난처하게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명단을 받자마자 돌아왔어야 하는 건데.
[백승진 씨한테 상담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상담이요?]
[네. 공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당신을 만날 기회가 이런 방법뿐이어서 맞선이라는 걸 선택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참, 저는 변호사입니다.]
[변호……사?]
[기업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정의를 위해 일하는 백승진 씨와는 달리, 조금 속물적이죠.]
싱긋 웃으며 말하던 남자의 정갈한 미소가 잊히질 않는다.
노골적인 표현까지 사용하며 자신을 소개하던 그의 모습에 피식, 실소를 터뜨렸던 제 모습도.
승진은 ‘빌어먹을.’ 하고 낮게 숨을 흘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거 이해관계가 상당하잖아.’
KS 클럽 마약 파티 사건의 총 배후일지도 모르는 유력 용의자의 변호사와 사건 수사를 맡은 검사가 맞선을 보게 되다니.
만일 이 사실이 세간에 밝혀지거나, 혹은 조사 도중 밝혀지는 경우 승진은 물론이거니와 우영도 곤란해질 것이다. 아니, 밝혀지는 ‘경우’가 아니라 반드시 밝혀지게 될 것이다. 하필이면 안서호가 이정후 부사장의 비서이자 변호사라고 했으니.
‘망할 노인네!’
백 전 대법원장이 마련한 맞선 장소에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승진은 이를 갈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처음부터 가서는 안 됐다.
물론 안서호와의 대화는 밤늦게까지 이어질 정도로 즐거웠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지는…… 잠깐!
‘설마.’
흥분하던 승진의 눈이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곰곰이 머리를 굴려 보니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었다.
안서호가 어떻게 그 자리에 나오게 된 거지?
물론 백 전 대법원장이 직접 선별한 인물이었으니 안서호의 집안이 보통 집안이 아니라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승진의 집안만큼 대대로 법조인들을 배출해 온 집안이라고 들었다.
안서호는 전 전대 국회의장직을 지내고 현 5선 국회의원이기도 한 안윤호 의원의 친손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안서호 역시 자신과의 대화에서 밝히지 않았던가.
[본가의 로펌 인수 전, 짧게 실습 중입니다.]
[실습이요?]
[예. 저는 기업 전문 변호사가 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이 업계에서 계속 일을 하려면 할아버지의 배경이 아닌 저만의 이름을 키울 필요가 있어서요. 몇 년 전 한서 전자에 가족들 몰래 입사를 했는데, 능력이 나쁘지 않다 보니 어느덧 부사장님을 모시게 됐습니다.]
그 자식, 계획적이었던 건가?
[저에 대한 소개는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하고, 바쁘실 테니 본격적으로 몇 가지만 여쭤 보겠습니다. 백승진 씨, 제가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은―]
아니, 그럴 리 없다.
승진과 우영이 KS 클럽 마약 파티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안서호가 자신을 만나고자 했던 이유는 자신의 상사와는 전혀 다른 문제가 아니었던가.
그래, 그럴 리 없어. 절대로 그럴 리가…….
“……!”
한숨만 푹푹 내쉬며 브리핑 룸 앞 복도를 서성이다 결국 쪼그려 앉은 승진은 제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검은 그림자에 고개를 들었다. 검은 안경 너머로 냉랭한 시선을 보내며 우영이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쿵쿵.
우영의 검고 깊은 눈을 보자마자 심장이 벌렁거렸다.
“어, 저기.”
“안서호가 누구지?”
우영은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승진에게 해답을 요구했다. 그의 눈빛이 너무도 차가워서 승진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이 녀석이 왜 이래?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데 우영까지 저를 죽일 듯 노려보니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승진은 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벼, 별로 신경 쓸 필요 없는 사람이야. 내가 우연히 알게 된…….”
“네 맞선 상대냐?”
“콜록콜록!”
말을 이으려다 사레가 들려 버렸다.
승진은 우영의 코앞에 앉아 한참이나 기침을 해 댔다. 승진이 미친 듯이 헛기침을 해도 눈 한 번 꿈쩍하지 않았다.
개, 개자식.
물이나 수건 등을 가져다주어도 모자랄 판에, 팔짱을 끼고 서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우영으로 인해 평소보다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늦어졌다.
승진은 이를 갈며 무릎을 폈다. 그제야 승진과 우영의 눈높이가 같아졌다.
“알고…… 있었어?”
자신의 ‘맞선 상대’가 남자였다는 것은, 결코 밝힌 적이 없다.
어떻게 밝혀. 쪽팔려서 못하지.
백 전 대법원장의 황당한 술책으로 남자와 맞선을 봤다는 건 꽁꽁 숨겼다. 만약 우영의 귀에 들어간다면 두고두고 놀릴 것이 분명하니까.
물론, 그 맞선 상대와 의외로 합이 잘 맞아 늦게까지 대화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를 리가 있나.”
우영의 냉랭한 대꾸에 승진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검사실의 두 계장들은 여전히 브리핑 룸 안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시나리오를 짜고 있었다.
승진은 쓰게 웃더니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 할아버지가 장난치신 거야. 노인네가 노망이 났는지 여자를 내보내야 할 곳에 나, 남자를 내보냈더라고.”
“…….”
“하루 보고 안 볼 사이야. 그러니까…….”
“전화.”
“어?”
“걸어.”
승진은 대뜸 명령하는 우영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자 승진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온 우영이 붉은 입술을 움직였다.
“오늘이 좋을까, 아니면 내일? 뭐, 아무래도 좋아. 일단 만나기만 하면 되니까.”
“시, 신 검.”
“왜, 못 할 거 없잖아? 조만간 다시 만나기로 하지 않았었나?”
빙긋 웃는 우영의 입꼬리가 어딘가 뒤틀려 있었다.
승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우영을 바라봤다.
뭐…… 뭐야, 이 녀석.
그걸 어떻게……. 아, 아니, 그 전에.
‘왜 화가 난 거지?’
우영의 음성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승진은 얼굴을 구겼다. 괜한 생각인가 싶었지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우영의 눈동자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짧게 숨을 고른 승진이 대답을 주저하자 팔짱을 낀 채 승진을 응시하던 우영이 중얼거렸다.
“네 표정.”
“응?”
“그 표정이 마음에 안 드는데.”
뜬금없이 무슨―
“망설이는 이유가 뭐지?”
“이봐, 신…….”
“맞선 상대를 이용하려는 게 걸리는 건가.”
윽.
나지막하게 흘린 말이었지만 승진의 귀를 파고들어 핵심을 찌르기엔 충분했다.
‘귀신 같은 놈.’
승진은 제 속을 꿰뚫어 버린 우영의 두 눈을 쳐다봤다.
이 녀석한테는 뭔가를 숨길 수가 없어.
쓴웃음이 흘러나온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영의 짐작은 정확했다. 승진은 어제 만난 맞선 상대이자 변호사로 활동 중이라는 안서호가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평소답지 않게 제 볼일을 본 후에도 그와 다시 만나 대화를 이어 갔다. 안서호가 제게 했던 ‘상담’ 또한 몹시 흥미로웠기에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그럼 또 뵙도록 해요.]
생긋 웃으며 인사를 하던 안서호에게 손까지 흔들어 준 것은 백승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예의였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인간적으로 호감을 가지게 된 사람은 꽤 오랜만이었기에 이 만남을 좋게, 좋게 유지해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왜 하필 유력 용의자의 비서냐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승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망할. 기분 더럽네, 진짜.
“이해할 수가 없군.”
그때였다. 우영이 간담이 서늘해지는 목소리를 흘렸다.
승진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오늘따라 우영의 시선에서 찬바람이 흘러넘친다. 안 그래도 안서호로 인해 골치가 아픈 상황에 우영까지 대응해 주자니 짜증이 났다.
승진은 ‘이봐, 신 검.’ 하고 잠깐 숨 돌릴 시간을 부탁하고 싶었다.
“진심도 아닌 위장용 맞선 자리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네놈이 그 상대를 이용하는 걸 망설이는 이유를 모르겠어.”
주저하는 승진을 바라보던 우영이 차갑게 일갈했다.
그게 쉬운 문제냐.
승진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려 했다.
“신 검, 그러니까 그 안서호 씨는.”
“아니. 한 가지 이유 정도는 있겠군.”
설명하려는 순간 고개를 저어 버리는 우영의 말에 승진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한 가지 이유?
의아해하는 승진을 바라보던 우영이 짙은 미소를 그렸다.
“그 자식, 깔고 싶냐?”
“……!”
승진은 자신이 대체 무엇을 들었나 싶어 어리벙벙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본 우영의 웃음이 더욱 깊어졌다.
“이정후랑 함께 있는 사진을 보니 꽤 반반하던데.”
“어, 어이.”
“그러고 보니 딱 네 취향의 얼굴이기도 하고.”
“…….”
“하긴, 원래 네놈은 그런 놈들을 좋아하는 편이었지. 하얗고 반반한 것들. 네 녀석이 날 처음 인식했던 곳에서도, 그런 놈들한테 ‘봉사’를 받고 있었고.”
“……신 검, 뭔가 좀 엇나간 것 같은데 그만하지.”
자극하는 것이 분명한 우영의 도발에 승진의 입 밖으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승진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순간 멈칫한 우영이 이내 픽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재미있어. 내내 그런 놈들을 쓰러뜨리고 싶었으면서, 백승진 네놈은 이 긴 시간 동안 대체 어떻게 참고 견딘…….”
쿵!
“큭!”
유려한 미소를 그리던 우영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손을 뻗은 승진에 의해 멱살이 잡혀 버린 것이다.
우영을 잡아챈 승진이 뒤쪽으로 그를 밀자 우영의 등이 딱딱한 벽과 맞닿았다.
승진은 제게 잡힌 채 눈을 내리깔고 있는 우영을 가만히 바라보다 낮은 숨을 흘렸다.
“엇나갔다 했지.”
우영은 거칠게 일렁이는 승진의 눈을 말없이 응시하다 승진의 얼굴 위로 숨을 흘렸다. 승진이 ‘야!’ 하고 인상을 쓰자 우영이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건 백 검 너 같은데.”
“뭐?”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백 검 너는 지금 공적인 일에 더욱 집중해야 하는 시기, 아니었나?”
“……!”
“뭐가 우선인지 생각해 보지그래?”
냉정하게 말을 늘어놓는 우영을 보고 당황한 승진이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우영이 제 멱살을 잡고 있던 승진의 손을 툭 내리쳤다.
승진이 깜짝 놀라 우영을 바라보자 우영이 언제 밀쳐졌냐는 듯 다시 단정하게 옷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승진은 묘한 눈으로 우영을 직시했다.
“백 검.”
“…….”
우영이 다시 승진을 부르고는 차분한 음성을 흘렸다.
“네가 만약 네 맞선 상대를 이번 사건에 이용하기 싫다면, 이번 일에서 빠지도록 해. 부장님들이나 계장님들께는 내가 알아서 얘기할 테니.”
일단 가만히 듣고 있자 싶어 들어줬더니, 이 자식이 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건지. 승진은 황당한 표정으로 우영을 바라봤다.
우영의 차갑고 서늘한 말이 계속 이어졌다.
“쓸데없는 정에 휩싸여 시나리오를 방해할지도 모르는 놈과 함께는 일 못 해. 네놈은 어찌 되든 상관없겠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대검에 가야 한다. 그런 내 입장에서는 고작 이런 일에도 망설이는 네놈 꼬락서니를 보니 짜증이 치밀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훗날 후회되는 일을 할지도 모르는 놈과 나는 함께 일할 순 없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기어코 백 검을 이 사건에서 내쫓겠다 이건가, 신 검?”
……!
등 뒤에서 들리는 귀 익은 음성에 고개를 돌리자 네 쌍의 눈이 승진과 우영에게 꽂혀 있는 것이 보였다.
승진은 화들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났다. 승진에게 으르렁거리던 우영 역시 물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문 채 미간을 찌푸리기만 했다.
승진과 우영, 두 검사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두 명의 남자들 중 우영의 직속 상사인 한형석 첨수부장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나 참, 제발 친해지라고 겨우겨우 붙여 놨더니 그새를 못 참고 또 싸워? 너희가 열일곱 고딩이냐! 여기가 학교인 줄 알아!”
그러자 한 부장의 말에 동조한다는 듯 그의 옆에 있던 승진의 상사, 유재익 특수부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싸우려면 어디 조용한 곳에 처박혀서 싸우든가! 왜 꼭 복도 앞에서 이 지랄이야, 지랄들이! 니들 사이 안 좋다는 거 광고할 일 있어? 네놈들 때문에 우리 특수부랑 첨수부 사이 안 좋다고 소문 다 났다, 이 미친 새끼들아!”
승진과 우영은 침을 튀겨 가며 이를 갈고 있는 두 부장들을 보고 일단 휴전의 뜻을 주고받았다.
그런 두 사람의 눈빛 교환을 발견한 계장들이 이번에는 부장검사들을 말리기 위해 나섰다.
“하, 하하. 부장님들, 진정하세요.”
“맞습니다. 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습니까.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남은 이야기를……!”
하지만 복도에서 멱살까지 쥐고 있는 두 검사들을 목격한 부장검사들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인지 애석하게도 계장들의 중재가 통하지 않았다.
“아니기는! 강 계장은 꼭지 안 돌아? 이 미친 새끼들이 하는 행동 좀 봐! 위에서는 이 두 놈을 어떻게든 잘 포장해 보라는데, 허구한 날 이 지랄들을 하고 있으니 내가 빡이 안 쳐? 안 치냐고!”
“하, 하하.”
유 부장은 애꿎은 강진호 계장에게 제 노기를 드러냈고,
“양 계장.”
“헉, 예!”
“넌 대체 이놈들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내가 말했잖아. 이 새끼들 또라이들이니까 제발 좀 잘 주시하면서 케어하라고. 싸울 것 같으면 남들 눈에 안 띄게, 조용한 곳에서 싸움 붙이라고. 그런데 왜 하필 일반인도 드나들 수 있는 이런 곳에서 싸우고 있는 건데? 어? 너, 나 진짜 놀리냐?”
“부, 부장님,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왜 힘이 없어! 아무리 이놈들이 검사라고 한들, 우리 청에 들어온 건 양 계장이랑 강 계장 니들이 먼저야! 신 검이고 백 검이고 너희보다 한참 후밴데, 굴러들어 온 놈들 부리려면 박힌 놈이 가끔 성질도 내고 해야지! 안 그러냐, 유 부장?”
한 부장은 관망 중인 양우혁 계장을 윽박지르며 오히려 눈을 부라렸다.
그렇게 두 검사들의 대립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완벽하게 폭발해 버린 두 부장의 질책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 * *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백 검 너는 지금 공적인 일에 더욱 집중해야 하는 시기, 아니었나?]
그 말을 뱉어 내는 순간 황당하다 못해 동그래지던 승진의 눈빛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몹시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다, 이윽고 서서히 일그러지던 승진의 모습이란.
과연 승진은 어떻게 여겼을지 모르겠지만 저를 향한 그의 눈빛은, 마치 공과 사를 엄연히 구분하라고 하던 우영을 도리어 질책하는 것 같아서 순간 당황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우영은 머지않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공적인 일에 사적인 일을 끌어들인 건 그 녀석이 아니라…….’
나였나.
우영이 쓴웃음을 흘리며 입술을 짓눌렀다.
어젯밤, 아니, 정확히는 승진이 멋대로 잠적했던 그 시각 이후 치밀어 올랐던 이 불쾌한 감정이 뒤늦게 납득이 되었다. 대체 무엇이 이리도 심기에 거슬리는가 싶더니, 결국 오늘 폭발해 버리고 만 것이다.
기분이 나쁜 이유가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이렇게 화가 치솟는 원인이 무엇인지, 우영은 깨달아 버렸다.
우영이 검은 눈으로 어느새 어둑해진 창밖을 응시하다 흐린 웃음을 흘렸다.
솔직하게 인정하자.
자신이 떠민 맞선 자리임에도, 우영은 어젯밤 자신이 목격한 장면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분명 승진이 내린 차의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람은 ‘남자’였다. 그리고 이어진 승진 할아버지와의 전화 통화에서도 분명히 그의 맞선 상대는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 그것도 저보다 훨씬 더 보들보들한 피부를 가지고 있고, 훨씬 더 가녀린 체격을 지닌 예쁘장한 남자.
신우영의 차분한 마음을 제멋대로 휘젓고, 조급하게 만든 사실은 바로 이것이었다.
승진이 자신과 똑같은 것이 달린 ‘남자’와 맞선을 봤다는 사실.
바로 그 단순한 사실이 우영의 신경을 잘근잘근 씹어 먹다 못해 가루처럼 분지르는 중이었다.
만약 맞선 상대가 여자였다면― 이렇게 짜증이 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상대가 남자라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어차피 의미 없는 맞선일 뿐인데…… 왜 이리 짜증이 나는 거지.’
요 며칠간의 일을 곰곰이 되짚어 본 결과, 신우영의 기분을 다운시킨 것은 총 두 가지 원인 때문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첫 번째, 질투.
‘네가 흔들리지 않을 거라 믿는다.’며 백승진을 친히 맞선 자리로 떠민 자신이 느낀 감정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질투.
어떤 사정이 숨겨진 건지는 모르나 천하의 백승진이, 오로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산다고 해도 무방한 그 백승진이 타인을 이용하기 싫다는 말을 늘어놓다니.
‘망할.’
이 사실에 화가 나지 않으면 성인(聖人)이지.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불안……인가.’
당연히 여자일 줄 알았던 맞선 상대가 남자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우영을 절망에 빠뜨렸다. 부러움과 시기, 그리고 불안. 백승진의 곁에 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결과적으로 자신은 백승진의 ‘라이벌’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겉으로는 앙숙이라고 알려진 이 관계가 올바른 자리로 되돌아간다 한들, 승진의 연인이나 맞선 상대로는 그 앞에 마주 보고 앉을 수 없었다.
[깔고 싶냐?]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피곤해하는 승진을 안고 또 안았던 것은 아마도 승진의 몸에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함이었을지도.
그것으로도 모자라 시비를 걸고, 그 맞선 상대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승진에게 불쾌한 말까지 흘려 버렸다.
‘우습군.’
깔고 싶냐―라니.
오늘의 자신은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다.
우영은 스스로의 아둔함에 혀를 찼다.
“후우.”
언제 퇴근하냐고 묻는 검사실의 동료들에게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10시가 넘어서야 검사실을 나섰다.
적막이 흐르는 중앙지검을 벗어난 후, 멀지 않은 오피스텔로 향하는 공기가 오늘따라 차갑기만 했다. 아까부터 연신 핸드폰이 지이잉, 진동하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한 우영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서늘하게 스치는 밤바람이 심장 온도를 더욱 떨어뜨린다.
“…….”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곳은 집 앞, 서초구의 B 오피스텔 1902호.
몇 시간 전 있었던 다툼 이후, 우영은 승진과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두 부장들에게 훈계를 당하고, 다시 그들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각자의 검사실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애새끼들 같다며 혀를 끌끌 차던 두 부장들의 목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1902호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기 전, 승진의 집인 1901호 쪽으로 들어가 승진의 상태를 확인할까 하다가 마음을 돌렸다. 지금 이 기분으로는 또다시 승진에게 불필요한 말을 늘어놓을 것 같아서였다.
우영은 냉랭하게 시선을 옮겨 1902호의 도어록을 열었다.
‘자고…… 있는 건가.’
현관 안으로 들어오기 전, 얼핏 보았던 1901호의 불은 완벽하게 꺼져 있었다.
어젯밤 잔뜩 술에 취해 들어왔고, 또 오늘 새벽까지 제게 안겨 있었던지라 피곤해할 만도 했다.
승진이 깨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문을 닫고 안쪽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씻기도 귀찮아 대충 침실로 들어가 바로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일단 들고 있던 브리프케이스만 소파 위에 던져 둔 채 침실로 들어가려던 우영은 긴 숨을 내쉬며 거실 스위치로 손을 뻗었다.
딸깍.
“……!”
캄캄했던 거실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몸을 돌려 브리프케이스를 내던지려던 우영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툭. 그가 들고 있던 브리프케이스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우영은 그것을 주울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의 시선을 묶어 두고 있는 커다란 체격의 남자가 제 거실 소파에 앉아 그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근두근.
심장이 일렁인다. 제어 불가능한 속도로.
침묵이 흐르는 허공에서 우영은 상대방의 검은 눈동자와 조우했다. 이 상황에 당황한 우영이 뭐라 목소리를 흘릴 사이도 없이, 짙게 일렁이는 눈으로 우영을 응시하던 갈색 머리 사내가 붉은 입술을 움직였다.
“꽤 늦었는데?”
승진의 냉랭한 목소리에 전율이 흘렀다.
무의식적으로 스위치를 켜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둠 속에서 저 검은 눈동자와 마주했을 테니.
우영은 빙긋 웃으며 자신을 반기고 있는 승진을 말없이 쳐다봤다.
온몸이 차갑게 식는다. 가라앉은 승진의 목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 와 우영의 전신을 잠식했다. 생긋, 미소 짓는 승진에게서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어떻게 승진이 우영의 소파를 차지하고 있는 건지는 뻔했다. 이미 백승진은 그의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고, 그것은 우영 역시 마찬가지니까.
그런 사소한 것에 주목하지 않은 우영은 승진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현재 우영의 시야로 들어온 승진은 틀림없이 눈과 입꼬리를 올리며 보통 때 이상으로 그의 귀환을 반기고 있었다.
우영은 부드럽게 휘어지는 승진의 눈가에 집중했다.
심장이, 철렁거린다.
‘화……났군.’
우영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승진의 음성뿐만이 아니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백승진의 미소와 고요한 눈빛이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우영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뭐, 화날 만도 하지.
브리핑 룸 앞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 핀잔을 들은 건 비단 자신만이 아니니까. 한형석 부장보다 훨씬 더 다혈질인 유재익 부장이 승진을 부장검사실로 끌고 가 엄청 퍼부어 댔다는 걸 양 계장으로부터 전해 듣기는 했다.
그것 때문에 화가 난 건가.
우영은 생글생글 웃고 있는 승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겨우 정신을 바로잡았다.
“언제 왔지?”
“글쎄, 8시쯤이려나.”
“그렇군.”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는 승진의 눈웃음에 멈칫하던 우영은 겨우겨우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말없이 고개를 주억인 후 몸을 돌리고는 갈증을 채우기 위해 냉장고로 향했다.
우영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한 채 냉장고 문고리를 잡았다. 동요하던 우영의 눈동자에 들어온 것은, 기다란 캔 맥주였다.
“신 검, 너는 왜 이리 늦었냐.”
딸깍.
우영이 캔 맥주의 뚜껑을 따는 소리를 듣자마자 승진이 입을 열었다. 우영은 꿀꺽꿀꺽 맥주를 입 속으로 들이붓고는 대답했다.
“처리 못 한 일이 있어서.”
“조서?”
“뭐, 그렇지.”
“의외네. 내가 아는 너는 나랑 달리 잔업을 남기지 않는 스타일인데.”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승진의 말에 미묘한 가시가 돋쳐 있다면 착각일까. 아니, 절대로 착각이 아닐 것이다. 우영은 대답 대신 술을 들이켰다. 탄산이 섞인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혈관이 팽창되는 게 느껴진다.
침묵이 서린 집 안을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을 누그러뜨려야 하는데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던 우영은 입 안을 가득 채운 한숨을 흘리지도 못한 채 캔 맥주를 붙잡고 있었다.
“……!”
우영의 손에 들려 있던 캔 맥주가 다른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간 것은 그때였다. 제 손안에 들어 있던 캔 맥주가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승진에게로 넘어가자 우영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다 얼굴을 찌푸렸다.
“냉장고에 있어. 직접 꺼내 마셔.”
“다시 꺼내기 귀찮아.”
“내가 마시던 거다.”
“왜, 키스도 하는 사인데 같이 마시면 안 되나?”
“…….”
“…….”
“하고 싶은 말이 뭐지?”
허공에서 부딪친 승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 우영은 단정한 머리카락 위로 손을 올렸다. 기다란 손가락 끝으로 한두 번 머리 숲을 헤집자 승진이 흐응, 콧소리를 흘리며 우영을 바라봤다.
우영은 승진이 들고 있던 캔 맥주를 테이블 위로 내려놓는 것을 말없이 응시했다. 미소 짓던 승진은 어두운 눈으로 저를 주시하고 있는 우영에게 입을 열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 있어.”
번들거리는 승진의 입술이 붉다. 삐딱하게 서서 뚫어져라 저를 쳐다보는 승진으로 인해 혈관을 흐르는 피가 들끓는다.
우영은 승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승진이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우영을 기다렸던 이유를 읊기 시작했다.
“네 녀석이 왜 화내는지 알겠어. 뭐, 내가 서호 씨를 이용하지 않으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거겠지. 그래, 신가 네놈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애초에 나를 그런 상황으로 밀어 넣은 사람이 다름 아닌 네놈이었다는 거야. 지금 내 행동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든다면, 애초에 나를 그곳으로 밀지나 말든가. 네가 먼저 내 등을 떠밀어 놓고선, 이제 와서 왜 신경질이지? 그리고 뭐?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건 나라고? 새끼야, 그건 너잖아. 그 와중에 사람 개무시하고 쌩까기까지 하는데, 내가 이 기분으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 열 받네, 진짜.”
쉬지 않고 말을 늘어놓는 승진은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백승진은 답답한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솔직하고, 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어떻게 해서든 제 감정을 얼굴 뒤로 숨기려 하는 신우영과는 많이, 다르다.
우영은 ‘너 때문에 오늘 일이 하나도 안 됐다고, 젠장.’ 하고 욕설까지 흘리는 승진을 가만히 주시했다.
“그리고 서호 씨,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진짜 괜찮은 사람이다. 그 사람한테 협조를 구할 순 있어도, 이용하는 건 이상하게 걸린다고. 그러니까 그 문제는 다시 한 번 생각…… 읍!”
말끝마다 서호 씨, 서호 씨.
‘더럽게 짜증 나네.’
우영은 멈출 줄 모르는 승진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커다란 손으로 그의 뒤통수를 감싸고선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우영의 코끝으로 승진의 숨결이 느껴졌다. 우영은 마침 벌어져 있던 승진의 입 안으로 제 혀를 밀어 넣었다. 놀란 승진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우영은 승진의 말랑한 혀를 옭아맸다. 깊게 빨아 당겨 현기증이 날 만큼 세차게, 승진의 모든 것을 흡수했다.
달콤한 타액이 입 안을 건너와 목구멍을 자극했다. 예민한 잇몸을 쓸고, 입천장까지 대자 승진이 미간을 좁혔다. 우영은 거침없이 그의 속을 휘젓고 난 후 떨어져 나왔다.
“빌어먹을.”
그러고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승진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근래 들어 나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우영이 흘린 욕설에 승진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우영은 냉랭하게 승진을 응시하고 명령했다.
“성, 붙여.”
“……뭐?”
“그 새끼한테 성 붙이라고, 씨발!”
“……!”
자신의 명령에 눈을 깜빡이는 승진에게서 벗어나 홱 몸을 돌린 우영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듯 헤집으며 이를 갈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좋은 사람? 하, 어이가 없어도 존나게 없군. 네놈 맞선 상대가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좋겠다? 알고 보니 맞선 상대가 존나 좋은 새끼라서? 그리고 뭐? 다시 만나? 명단 확보에 잠시 이용만 하라니까 왜 또 만난다는 건지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건 나다, 이 새끼야!”
“…….”
“오호라, 그런 거냐? 백가 네놈, 나 아닌 사내새끼랑 맞선 보니 참신하게 느껴졌냐? 너희 할아버지도 참 대단하시군. 손자새끼를 어떻게든 있는 집안이랑 엮으려고 사내새끼까지 맞선 장소에 내보내시고 말이다. 네놈은 그런 사내새끼랑 할 일도 내팽개치고 밤늦게까지 시시덕거리니까 행복했겠다? 네놈이랑 같은 세계에 있는 새끼들이랑 웃고 처마시니 기분 좋았냐고!”
“저기, 우…….”
“닥쳐, 씨발! 내가 말하고 있잖아!”
우영을 부르려던 승진이 호통 치는 우영으로 인해 멈칫했다. 우영은 눈에 힘을 주며 계속 소리쳤다.
“왜, 너랑 좀 통하는 네 세계 사람에, 그것도 게이라고까지 하니 아주 눈깔이 회까닥했던 거냐? 그래서 복귀도 안 하고 그 새끼랑 술 처먹고 놀았어? 그걸로도 모자라 또 만난다고? 하, 씨발. 지조도 없는 개새끼. 지 인생에서 남자는 나뿐이라더니, 순 구라였구만? 내가 진작 알아챘어야 했다. 엉덩이고 좆이고 존나 가벼워서는, 그 새끼한테 잘 가라고 쳐 웃는 꼴이 아주 가관이더라? 그때 네놈 입, 찢어지다 못해 아주 터져 버릴 지경이더군. 그 새끼가 집 앞에까지 태워 주니 좋디? 좋아? 그러고 아무 일도 없었다고 나한테는 왜 실실거려? 이 새끼가 누굴 호구로 보나!”
“…….”
“뭘 봐! 눈깔 안 치워!”
우영이 타인을 대하기 위해 제 본래 성격을 숨긴 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그는 한번 뚜껑이 열리면 머릿속을 부유하던 말을 필터도 없이 늘어놓곤 했던지라 항상 주의를 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매사에 신중하고, 또 신중했다.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고,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하지만, 백승진과 관련된 일이라면 이렇게 참지를 못하겠다. 뱉어 내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서른 넘은 남자가 하기에는 무척이나 유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저히 견디질 못했다.
돌아 버리겠군.
우영은 씩씩거리며 말을 내뱉은 후, 멀뚱히 서 있는 승진을 노려보았다. 승진은 으르렁거리는 우영에게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개새끼.
우영은 승진이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캔 맥주를 향해 손을 뻗고선, 홱 몸을 돌려 소파로 걸어갔다.
갈증이 난다.
쉬지 않고 말을 뱉어 내느라 말라 버린 입술을 원상 복구시켜야 했다.
우영은 좁아진 미간을 펴지 않고, 들고 있던 캔 맥주 입구로 입술을 가져다 댔다.
‘제기랄.’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입 밖으로 상스러운 말을 흘리는 것을 자중하게 됐다. 우영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었고, 무려 촉망받는 중앙지검의 검사였으니까. 보는 눈이 많은 자리에 앉은 이상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속내를 숨기는 일이 잦아졌다. 그가 짧게나마 욕설을 흘리는 것은, 백승진에게 안길 때 정도였을까.
저만큼이나 큰 승진의 것을 받아들일 때는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어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제 안에서 용솟음치는 승진의 페니스를 느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상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섹스 후엔 항상 그렇게 욕설을 흘린 걸 후회하곤 했다. 예나 지금이나, 승진과 엮이면 롤러코스터처럼 날뛰기만 하는 감정의 변화가 짜증스러워서.
그사이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저 자식하고만 엮이면 이렇게 되는 거지.
‘망할…….’
이게 다 백승진 때문이다.
공이고 사고, 구분하지 못하는 저 빌어먹을 자식 때문에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어쩌다가 저런 미친 새끼랑 엮여서는 이런 사소한 일에까지 신경을 쓰게 되는 건지. 승진과 관련된 일이면 냉정을 유지하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이렇게 된 이상, 그냥 헤어질까.
‘……하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헤어지는 것이 가능했다면 이미 진작 헤어졌을 것이다. 그에게 단단히 화를 내놓고도 헤어질 마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들지 않으니, 그것은 그것대로 또 문제였다.
빌어먹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우영은 캔 맥주 속에 들어 있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입 안으로 털어 넣은 후, 테이블 위로 그것을 툭 올려 두었다. 그러고는 소파 헤드에 등을 기대며 머리를 뒤로 젖혔다.
‘머리 아파…….’
온종일 시답잖은 일로 골머리를 썩으니 정작 중요한 일을 해결할 수가 없었다. 검사실의 동료들이 그런 우영의 눈치를 살피며 일을 하던 것도 화가 났다.
내일이면 좀 나아져야 하는데.
우영은 두근두근,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긴 숨을 흘려야 했다.
스윽.
‘……?’
냉장고가 있던 부엌에 승진을 내버려 둔 채 먼저 거실로 나왔던 우영은 차마 가늠하기도 힘든 앞으로의 일을 떠올리며 눈을 내리감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갑자기 느껴지는 검은 그림자에 힘겹게 내렸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뭐야.”
제 앞에 서선 생긋 웃고 있는 승진의 반반한 얼굴이 보인다. 우영은 짜증을 담아 입술을 움직였다.
“우영아.”
눈꼬리를 반으로 접은 승진이 그런 우영의 눈앞에 무릎을 굽히며 제 이름을 불렀다. 그의 유려한 미소와 함께 들려온 다정한 음성에 온몸의 털이 쭈뼛거렸다.
우영은 냉랭한 눈으로 승진을 내려다봤다. 승진이 그런 우영의 다리로 손을 뻗더니 우영의 발을 감싸고 있던 양말을 홱 벗겼다.
“너, 뭐 하는…… 흡!”
당황한 우영이 조심스레 제 발을 감싸는 승진에게 외치려는 순간, 승진의 붉은 입술이 그의 발등에 닿았다. 우영은 숨을 크게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만, 윽, 냄, 하!”
오른쪽 발등에서부터 시작된 승진의 입맞춤은 발등에서 발목, 그리고 무릎까지 이어졌다. 우영은 난데없이 일어난 상황에 그를 걷어차지도 못했다.
순식간에 우영의 바지 지퍼까지 내려 버린 승진은 우영이 당황하는 사이 그의 바지를 내리고 사타구니 속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큽!”
우영은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감촉에 얼굴을 구기며 입을 틀어막았다. 승진의 기다란 혀끝이 저를 집어삼킬 것 같아 숨이 막혔다. 아래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감각에 이를 악물었다.
“하아, 하아―”
아예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승진은 정신없이 우영의 아래를 공략했다. 그를 말리고 싶었지만 온몸이 달아올라 손끝이 덜덜 떨렸다. 심지어 조금 전 승진에게 제 모든 감정을 털어놓는 바람에 이미 기진맥진해 눈앞이 어지러워진 상태. 그래서인지 브리프를 쑥 내려 버리는 승진을 막지 못했다.
개새……끼.
“어떡하냐, 우영아.”
승진이 차갑고 커다란 손으로 그의 페니스를 움켜쥔 채 숨을 흘리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크으, 신음만 흘리며 입술을 깨물고 있던 우영은 제게 말하는 것이 분명한 승진의 목소리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승진이 입술을 쓸며 생긋 웃는 것이 보였다.
그 후 이어지는 달콤한 목소리도.
“나, 너 화내는 거 보니까 무지 꼴리는데.”
“뭐?”
“그래서 그러는데…….”
승진은 어이없어하는 우영에게 짙은 미소와 함께 통보했다.
“안는다?”
승진의 눈빛이 활활 타올랐다.
“뭐……라고?”
이 자식이 방금 뭐라고 한 거지?
분명 의문형이기는 했지만 우영의 대답 따위는 기다리지 않겠다는 듯 승진은 우영을 품으로 끌어당겼다.
가녀린 공주님을 안듯 제 몸을 가볍게 들어 버리는 승진의 행동에 당황한 우영이 발버둥 칠 틈도 없었다. 뭔가 심상찮은 기색을 느낀 우영은 다급한 눈빛으로 승진을 올려다봤다. 저를 안고 침실로 걸어가고 있는 승진의 눈동자는 완벽하게 뒤집어진 상태였다. 우영은 등 뒤로 주르륵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승진을 부르려 했다.
“저기 백, 윽!”
하지만 그가 말을 내뱉는 속도보다, 승진이 우영을 침대 위로 던지는 게 더 빨랐다. 무릎에 브리프가 걸쳐져 있던 우영은 보드라운 이불이 엉덩이에 닿는 것을 느끼며 낮게 신음을 흘렸다. 그사이, 속옷만 남긴 채 이미 상의와 하의를 탈의해 버린 승진이 우영의 곁으로 다가왔다.
“우영아.”
“너, 진짜 뭐 하는…… 우웁.”
생긋 웃은 승진이 우영의 팔목을 움켜쥐고선 그를 눕혔다. 인상을 쓰려던 우영은 이불 위로 등을 대며 승진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샐쭉 미소 짓던 승진이 그대로 으르렁거리는 우영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으윽…….’
조금 전 그를 위협하듯 키스를 퍼부었던 것은 틀림없이 자신인데, 이번엔 그 반대 상황이 되어 버렸다.
우영은 요동치는 가슴의 박동을 느끼며 미간을 좁혔다. 혀끝을 옭아매는 승진의 움직임으로 보아, 승진은 현재 제정신이 아니었다.
위험해. 이러다 진짜 먹히겠―
“하!”
입 안의 꿀물들을 정신없이 빨아들이는 승진은 쉴 틈 따위는 주지 않았다. 우영은 혀 천장을 건드리는 승진으로 인해 온몸을 비틀었다. 간지러워 견딜 수가 없어 거칠어진 숨결이 터져 나온다. 빌어……먹을. 눈을 온전하게 뜨고 그를 뿌리치고 싶은데 뜻대로 하지 못하겠다.
우영은 거침없이 달려드는 승진의 혀를 받아들이기도 버거웠다.
“후우.”
“콜록콜록!”
승진이 떨어져 나온 것은 우영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시점이었다. 호흡을 하지 못할 만큼 휘저어 버리는 승진 때문에 숨을 참고 있던 우영은 그가 떨어져 나가자마자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은빛 실타래가 엉망진창으로 엉켜 있던 입 안이 그제야 겨우 자유를 찾았다.
“우영아.”
승진이 가까스로 낯빛을 되찾은 우영의 이름을 불렀다. 어깨를 들썩이던 우영은 크으으, 신음을 흘리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흐릿한 시야 사이로 싱글벙글 웃고 있는 승진의 모습이 들어왔다. 승진은 잔뜩 굶주린 짐승처럼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영이 고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뭐.”
신경질적인 우영의 반응에도 승진의 방글거리는 얼굴은 구겨지지 않았다. 승진은 하아, 하아 숨을 내쉬고 있는 우영의 목 끝에 입술을 가져다 대며 물었다.
“읏!”
“그렇게 섭섭했어?”
“크흣!”
“그럼 말하지. 나는 네가 설마 질투라는 걸 할 줄은 몰랐다. 천하의 신우영이 고작 내 맞선 한 번에 질투할 줄이야. 전혀 예상 못 했지.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맞선 볼 걸 그랬네. 그랬다면 하루라도 더 빨리 우리 우영이가 섹시하게 욕하는 모습을 봤을 텐데.”
“미, 미친 변태 새끼가 지금 뭐라는, 흡!”
크게 웃고는 목덜미에 낙인을 새기며 잠겨 있던 우영의 셔츠 단추를 풀어 헤친 승진은 슬금슬금 밑으로 내려왔다. 그를 제게서 떼어 내려 애쓰며 승진의 머리 쪽으로 손을 가져다 대려던 우영은 셔츠 사이로 드러난 제 가슴 쪽으로 얼굴을 파묻어 버리는 승진을 막지 못했다.
“크으으.”
승진의 가지런한 이가 솟아 있던 유두 끝에 닿자 찌릿한 전율이 일었다. 딱딱하게 세운 이로 유두 끝을 슥슥 쓸어 버리는 승진의 행동은 우영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의 아래서 신음을 흘리고 싶지 않은데,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자극적인 감각에 반사적으로 입이 벌어졌다.
우영은 이불 위에 닿아 있던 손가락을 끌어 모았다.
“우영아.”
“하으.”
“신우영…….”
승진의 차가운 손가락이 입술이 닿지 않은 또 다른 돌기 쪽으로 향했다. 섬세한 손끝으로 돌기를 지분거리는 승진 때문에 현기증이 인다. 도대체 어디에서 꼴려 버린 거야. 화를 내고 있었는데, 어째서 자신이 안기는 건지 모르겠다.
우영은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본래부터…… 제정신이 아닌 놈이니까.’
그래, 이 자식은 애초부터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놈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 단순히 그를 이용하기 위해 접근한 자신에게 무작정 키스를 요구했던 황당한 놈이 아닌가. 대체 어떤 시점에서 자신을 덮치기로 결심했는지 물을 필요는 없었다.
“하아…… 읏, 흐으으.”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이 녀석을 눕힌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의 몸에 군데군데 제 낙인을 새기며, 온 힘을 다해 승진을 안았던 사람 역시 자신이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침대에 드러누워 교태로운 숨결을 내쉬고 있는 사람 또한 자신이다.
“하으윽.”
물컹한 혀끝으로 유륜 근처를 배회하던 승진이 점점 더 아래로 내려오자 사고를 이어 나갈 수가 없다. 단단한 복근 위로 승진의 혀가 닿자 가까스로 이어 나가던 이성의 끈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
“씨……발.”
배꼽 주변을 원으로 그리며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승진 때문에 사타구니 쪽이 뻐근해졌다. 우영은 아랫배를 간질이는 승진의 머리카락으로 인해 인상을 쓰고 있다 낮은 욕설을 흘렸다. 그러자 멈칫하던 승진이 슬쩍 고개를 들더니 배시시 웃었다.
뭐, 뭐야.
우영의 눈앞을 가리고 있던 도수 없는 안경은 이미 코끝으로 내려간 상황. 우영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하지도 못한 채 가쁜 숨만 내쉬며 승진을 노려봤다.
완전히 돌아 버린 승진이 방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난 말이다, 신 검. 네가 욕을 하면 그렇게 좋더라.”
……뭐?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참던 우영은 승진의 말에 벙찐 표정을 지었다. 생글생글 웃은 승진이 그런 우영의 발목에 걸쳐진 브리프를 잡고선 힘껏 당기며 속삭였다.
“아, 미치겠네. 신우영, 너 진짜 너무 섹시한 거 아니냐. 못 참겠군.”
“잠깐, 하!”
우영은 완벽하게 탈의된 하체 쪽으로 내려가는 승진을 말리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으으. 으!”
이미 승진은 우영의 페니스를 움켜쥔 채 우영의 구슬로 혀를 가져다 대고 있었다.
“크으읍!”
강한 열기가 가득한 승진의 입 속으로 쏙 들어간 한쪽 구슬이 우영의 눈앞을 흐려지게 만들었다. 우영은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려 했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두 다리를 벌리고 있는 승진의 힘이 강해졌다.
제……길, 머리가 아프다. 승진의 혀끝이 닿았던 모든 부위가 욱신거려 숨이 막혔다. 승진의 입 속에서 들려오는 할짝이는 혀 소리와 움찔거리는 제 몸의 반응에 빈혈이 일 것만 같다. 그리고 그와 비례하게, 승진의 혀와 손이 닿은 페니스가 갈수록 부푸는 게 느껴진다. 오늘 아침까지 승진에게 몇 번이고 쏟아부었던 제 것에서 또다시 무언가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우영은 흐으으,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었다.
“잠깐…… 하으, 잠, 으읍, 크흑!”
망할. 이러다 진짜 먹히겠군.
이미 자신을 잡아먹기로 결심한 승진의 우악스러운 힘을 떨칠 수가 없다. 온종일 정신적으로 지쳐 있던 우영은 딱 보기 좋은 먹잇감이었다. 우영은 끄으, 숨결을 흘리며 이번엔 붉은 기둥을 혀로 쓸고 있는 승진을 향해 말하려 했다.
“그, 그만…….”
딱딱한 이가 예민한 살갗을 쓸었다. 그 느낌에 더욱 짜릿해져 목구멍이 컥 막혔다. 입 밖으로는 그만하라는 말을 꺼내고 싶은데 조금 더, 조금 더 승진의 입 안으로 제 것을 밀어 넣고 싶었다.
뜨겁다.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나방처럼 정신없이 승진에게 말려 들어가는 자신을 느낄 수가 있었다.
우영은 입술을 닫으려 했지만, 쉬지 않고 터져 나오는 신음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으, 읏! 으읍!”
헐떡이는 숨소리. 귀두 끝이 목젖에 닿았다 떨어지는 것을 똑똑하게 느낄 수 있어, 더욱 달아오른다. 돌아 버리겠어. 승진의 까끌까끌한 혀 돌기가 페니스를 자극하자 우영은 더 이상 참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배, 백가!”
솟아 있던 우영의 불기둥에 입을 맞추고, 혀로 자극하며 힘껏 빨아 당기는 행위를 반복하던 승진이 다급히 그를 부르는 우영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치켜떴다.
“후우, 응?”
우영은 붉어진 얼굴로 거친 숨과 함께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나, 큭, 나올…… 것 같아.”
그러자 승진이 빙긋 웃었다.
“그럼 내보내.”
“……!”
“빨리.”
그러면 더 이상 붙잡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일부러 자극하는 것이 틀림없는 승진이 제 것에서 손을 떼 주었으면 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의 얼굴 위로 사정을 해 버릴 것 같아서.
우영은 기다란 다리로 승진의 어깨를 밀치려 했지만, 제 양쪽 다리를 단단히 잡고 있는 승진으로 인해 그러지를 못했다. 제……길! 제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들 생각을 않는 승진은 계속해서 우영의 페니스를 물고 있었다.
“흐윽, 읍, 하으윽!”
승진은 여전히 그의 음경을 담고 있었다. 어디 사정할 테면 해 보라는 듯, 이젠 아예 불기둥을 잡고 입 속에서 넣다 뺐다를 반복하는 승진의 행위는 우영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크으읏!”
어떻게든 승진의 입 안에서 사정하지는 않겠다고 버티던 예민한 귀두 끝이 한계치를 넘어선다. 우영은 결국 펑 터져 버린 온몸의 감각에 교태로운 숨을 터뜨렸다.
“하아, 하아…….”
“…….”
숨까지 헐떡이며 진한 사정을 한 후 눈을 아래로 내리자 승진의 입가에 고인 뿌연 액체가 시야로 들어왔다. 생긋 웃으며 그를 바라보던 승진이 목젖을 넘기는 게 보인다.
아, 제기랄.
우영은 거칠어진 호흡으로 인해 차마 입 밖으로 뱉어 낼 수 없는 욕설을 속으로 꾹 삼켰다.
“달콤하네.”
애액으로 범벅된 혀끝으로 입술을 쓸며 승진이 웃었다.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 우영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미친 새끼. 그건…… 비려.”
어디 그냥 비릴 뿐이겠는가.
이상하게 귀가 화끈거려 우영은 이를 갈았다.
“우영아.”
“왜, 씨발.”
“너 가게 해 줬으니까 이제 나 가도 되냐?”
“…….”
“나 지금 폭발 직전이라서.”
승진이 짙게 미소를 흘리며 속삭였다.
귓불을 살짝 깨물어 버리는 그를 말리고 싶었으나,
“윽!”
갑자기 홱 몸을 돌려 버리는 승진으로 인해 그러지도 못했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승진의 정면을 바라보고 있던 우영은 어느새 엎드린 자세가 되었다.
“배, 백가. 잠…… 읍!”
방금 사정한 저를 쉬지 못하게 만든다.
개자……식!
민감한 애널 쪽으로 입술을 가져다 댄 승진이 후, 입김을 불어넣자마자 우영이 신음을 삼켰다. 그는 파르르 떨리는 얼굴을 베개 위로 파묻으며 이를 갈았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이해가 안 된다. 분명 자신은 승진에게 화를 냈는데, 어째서 이 녀석이 꼴려 버린 것인가. 백승진은 왜 이렇게 저를 안고 있고, 자신은 왜 백승진이 저를 박도록 내버려 두는 것인가.
“하아!”
우영은 제 엉덩이를 부여잡고선 혀끝을 놀려 대는 승진으로 인해 뜨거운 숨결을 터뜨렸다.
“우윽!”
그러고는 이윽고 밀려오는 승진의 두꺼운 기둥을 받아들이며 이불을 끌어안았다.
“신가야.”
“하아, 하아.”
승진의 페니스가 제 안에 들어차자 온몸이 뚫려 버릴 것 같다. 전신을 관통하는 감각에 우영은 신음만 흘려 댔다.
“나 오늘 안 껴도 되냐?”
“으윽, 하으.”
“안 끼고 싶어. 그냥 네 안을 다 채우고 싶다. 응?”
그 말을 듣자마자 찌르르 전율이 이는 것은 곧 그의 것이 제 안을 뜨겁게 만들리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 제길, 진짜 돌겠네.
입 안을 감도는 말을 내뱉고 싶었으나 퍽퍽, 피스톤질을 이어 가는 승진으로 인해 그럴 수도 없었다.
“그냥 한다?”
어차피 그냥 할 생각이었으면서 승진은 계속해서 물어 댔다. 엉덩이를 붙잡은 승진이 허리를 마구 흔들자 숨이 막혔다.
“크으으, 읏! 으으!”
“우영아.”
“하으으, 큭! 으읏!”
“섹시한 우리 우영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우영이.”
“으읍, 하아!”
“내가 널 두고 누구한테 한눈을 팔겠어. 못 팔지. 응. 그래, 못 팔아.”
살과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와 승진이 말하는 소리, 그리고 승진이 우영의 어깨, 등을 가리지 않고 입을 맞추는 소리가 어우러져 머리를 혼탁하게 만들었다.
우영은 더는 생각을 포기했다.
“네가 만나지 말라면 안 만날게. 아니다. 네 말대로 이용해야 하니까 만나기는 해야겠지. 그럼 네가 다시 질투하려나. 하으. 그러면 뭐, 만나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한, 크으!”
승진은 저를 물고 놓아주지 않는 우영의 애널 안으로 깊숙이, 더욱 깊숙하게 페니스를 밀어 넣으며 전신을 떨었다.
변태…… 새끼.
우영은 미친 듯이 허리를 흔들어 대던 승진이 제 안을 뜨거운 것으로 가득 채우기 전에 이를 갈며 소리쳤다.
“일단 만나긴 만나되, 그 자식한테 헤실거리지 말, 하윽,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