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프롤로그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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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아, 글쎄! 나는 모르는 일이라니까.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여기까지 와서 나를 못살게 구는 건지 모르겠네. 대체 몇 시간을 괴롭힐 거냐고! 나 바쁜 사람이라니까? 다 필요 없고, 내 변호사나 불러 줘. 변호사! 이봐, 검사 양반들! 내 말 듣고 있어? 듣고 있냐고!”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중앙지방 검찰청 취조실.

기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의자가 각각 하나씩 놓여 있는 취조실 안에서는 벌써 몇 시간째 혼자 앉아 있던 양 씨가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채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검게 선팅이 된 유리를 향해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대한민국 야당 소속의 김 모 국회의원에게 뇌물을 공여한 혐의를 받고 있던 양 씨는 태연한 얼굴로 처음 중앙지검에 발을 디뎠을 때와는 달리 무척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목청껏 외치는 중이었다.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서.

“그래서, 그 대단한 변호사님은 대체 언제 올 거래?”

취조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모니터실.

서울중앙지방 검찰청 특별수사 제1부를 맡고 있던 유재익 부장검사가 고운 아미를 좁히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모르겠는데요.”

“귀가 뚫린 이상 지금쯤 소식은 들었을 겁니다.”

유 부장은 그런 제 등 뒤에서 흘러나오는 심드렁한 대답들에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방금 들었던 답변을 은근히 원하기는 했으나, 흘러나온 어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유 부장은 불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획 몸을 돌려 제 뒤에 서 있는 큰 키의 두 남자를 빤히 응시했다.

중앙지검에서 일하는 여직원들 사이에서 흔히 ‘투톱’이라 불리는 두 검사가 취조실 안을 집어삼킬 듯 바라보며 서 있었다.

하나같이 큰 키와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누가 봐도 미남이라 칭할 만큼 화려한 얼굴들을 소지하고 있는 두 남자는 마치 대결이라도 하듯 눈에 힘을 주고 있기까지 하다.

‘뒷골 당기네.’

어쩌다 이 화상들이 동시에 중앙지검으로 발령을 받았는지.

유 부장은 어떡하면 자신이 먼저 취조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두 남자들을 흘긋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아내가 오늘처럼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군. 결혼기념일이란 좋은 거야. 안 그래, 유 부장? 하하하! 그 녀석들 사이에서 중재, 잘해 주게!]

이번 사건에서 유 부장이 이끄는 특수부와 공조를 하게 된 첨단범죄수사부의 수장, 한형석 부장검사의 능글맞은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놈의 결혼기념일 핑계를 대며 연차까지 써서는 이른 시간 퇴근해 버린 한 부장으로 인해 이 빌어먹을 두 폭탄들의 관리가 제게로 넘어온 것이다.

‘돌겠군.’

물론, 이들이 중앙지검의 핵심이라 불리는 특별수사부와 첨단범죄수사부로 오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둘 다 최연소 나이에 사법고시를 통과했고, 사법연수원에서도 특출한 활약을 보였으며, 얼마 전까지 소속되어 있던 각 지방검찰청에서 두각을 드러낼 만큼 실력이 좋았다.

유 부장도 소문으로만 듣던 두 검사가 중앙지검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에 환호를 했다면, 말 다 한 것이다.

그러나 지검으로 온 이후가 문제였다.

아니, 정확히 다른 부서와 공조를 할 때가 문제였다.

[부장님, 설마하니 부장님의 직속 부하인 저를 두고 신 검에게 모든 일을 맡기시는 건 아니겠지요?]

[학연도 지연도 아닌, 이번에는 부서연입니까? 유 부장님께서는 그런 일에 연연하실 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신 검, 섭섭한 소리를 하는군요. 부서연이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제 능력이 신 검보다 낫기 때문에 부장님께 말씀드린 겁니다.]

[백 검의 다혈질적인 성격은 이번 수사에 방해만 될 뿐이니 먼발치서 지켜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신우영, 말 다 했나?]

[다 했다.]

쾅!

[이 개자식이 진짜! 도대체 내 앞길을 몇 번이나 가로막으려 드는 거야!]

[웃기는군.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괜히 흥분하지 마라.]

앞으로 중앙지검, 아니 장차 대한민국 법조계의 자랑이 될 두 검사는 놀라울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 얼마나 나쁜지 조금만 붙여 두면 금세 으르렁거리며 싸움을 해 대는 터라 그들의 직속 상사인 자신과 한 부장의 짜증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망할 놈들…….’

이번과 같이 꽤 큰 사건에서는 이 빌어먹을 두 검사가 힘을 합쳐 피의자의 진술을 받아 내야 하건만, 슬쩍 훑어본 결과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어떻게든 먼저 승진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애증의 두 검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취조실 안으로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유 부장은 한 번 더, 긴 숨을 흘렸다.

이번엔 어떤 놈을 먼저 들여보내야 하나.

국회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사건인지라 아무래도 담당 검사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릴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까, 잘만 이용한다면 제 능력을 세상 밖으로 퍼뜨릴 가능성이 높은 케이스라는 소리.

마음 같아서는 그의 직속 부하인 백승진 검사를 먼저 밀어 넣고 싶다만, 만약 그랬다가는 첨수부의 한 부장이 왜 제 부하는 챙기지 않았냐고 몇 달 동안 툴툴거릴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두 녀석 모두 취조실 안의 양 씨에게서 자백을 받아 낼 수 있을 만한 취조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지라 유 부장은 고심, 또 고심해야만 했다.

“부장님.”

“부장님!”

그때였을까.

유 부장이 흐응, 콧소리까지 뱉어 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던 도중 귓가로 들려 온 두 남자의 외침은 그의 가슴을 철렁거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유 부장은 인상을 쓰며 두 남자를 쳐다봤다.

“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 양 사장한테서 자백 받아 내겠습니다.”

“안 됩니다, 부장님! 이번 사건은 저희 첨수부에서 먼저 맡게 된 사건입니다. 도리상 당연히 제가 먼저 취조해야 합니다.”

“신 검, 지금 여기 계신 분은 우리 특수부의 유재익 부장검사님이시다.”

“백 검, 도리를 지켜. 이건 우리 첨수부 사건이야.”

“……이 개자식이! 또 해 보자 이거야?”

“누가 겁낼 줄 알고?”

……제기랄.

“너희 둘 다 입 안 닥쳐!”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어김없이 소리를 높여 가는 두 검사들을 참다못한 유 부장이 버럭 언성을 내질렀다. 그는 서늘한 눈을 빛내며 움찔 놀라는 두 검사들을 향해 외쳤다.

“이것들이 어디서 영역 싸움이야. 이건 중앙지검 공동 수사라고 몇 번을 말해!”

아마도 이 빌어먹을 두 검사들은 공조라는 개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매번 이럴 수가 있느냔 말이다.

능력이라도 안 좋으면 미워할 텐데, 하나같이 검찰청에 몇 없을 뛰어난 검사들이라 더 그의 속을 문드러지게 만든다.

진짜 지독한 놈들이 아닐 수 없다.

유 부장은 쳇, 입술을 삐죽이는 두 검사들을 응시하며 으르렁거렸다.

“그래도…… 부장님.”

키는 또 왜 이렇게 큰지, 목이 아플 정도로 올려다봐야 해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듣기로는 정확하게 둘 다 185센티라고 했는데, 소문이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유 부장은 입술을 씰룩이며 천천히 저를 흘긋거리는 두 놈들 중 신씨 성을 가진 검은색 머리 검사의 부름에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검은색 머리, 신우영 검사는 유 부장의 서늘한 시선에도 주눅 들지 않고 제 할 말을 차분하게 뱉어 냈다.

“공동 수사도 좋지만 취조 순서는 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뭐?”

“맞습니다. 동시에는 안 들어갈 거 아닙니까. 누가 먼접니까?”

이에 질세라 백씨 성을 가진 갈색 머리 검사가 툭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는 검은 눈동자를 부담스럽게 일렁이며 유 부장의 대답을 기다렸다.

유 부장은 그 뜨거운 시선에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을 애써 무시했다.

“부장님, 앞서도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이번 사건은 저희 첨수부에 먼저 떨어진 일입니다. 그러니 취조 순서도 제가 먼저겠죠?”

신 검사는 흐음, 신음을 흘리는 유 부장에게 불쑥 말했다.

“부장님! 저랑 먼저 약속하셨잖습니까! 대검으로 가기 위해 저 먼저 밀어 주신다고!”

이에 질세라 백 검사가 소리쳤다.

사고 회로를 굴리던 유 부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백 검, 백 검은 정말 예의라고는 없군. 몇 번을 말하지? 이건 우리 첨수부의 일이라고!”

신 검사가 다시 소리쳤다.

“첨수부에서 해결하지 못해 우리 특수부까지 온 거 아닌가? 맡은 일도 제대로 처리 못 해서 다른 부서에 손을 내밀었으면, 일을 더 잘 맡는 우리가 해결하도록 지켜봐야 하는 거 아니야?”

백 검사도 버럭 외친다.

유 부장은 하아, 숨을 흘리며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유 부장님, 혹시 잊고 계시는 것 같아 말씀드리는 건데…… 제가 비록 첨수부이기는 하나, 저는 부장님 중학교 후배입니다.”

……뭐?

유 부장은 뜬금없는 신 검사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개자식이, 이제 와서 학연을 따져?”

“부서연엔 학연이다. 중앙지검에도 늦게 들어온 주제에 어디서 굴러들어 온 돌을 빼내려는 건지. 백 검사야말로 정말 뻔뻔하군.”

“말 다 했냐? 일찍이라고 해 봤자 한 시간 먼저 들어왔잖아!”

“한 시간은 시간 아닌가?”

“신우영, 너 내가 물로 보이냐?”

“백승진, 너는 내가 만만해 보이나?”

아아…….

‘이 두 녀석을 대동하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서른하나 동갑이라고 들었던 두 남자가 이를 갈며 서로를 향해 불꽃을 튀기는 장면은 유례없을 만큼 황당한 풍경이었다.

유 부장은 침을 튀기는 두 남자들을 흘긋거리다, 취조실 안에서 얼른 변호사를 불러 달라고 외치는 양 씨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후읍.

이윽고 호흡을 고르려는 듯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신 유 부장은 제 얼굴이 차갑게 물들어 가는 것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두 검사들에게 소리쳤다.

“나가!”

유 부장이 저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남자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손을 마구 휘저었다.

“너희 둘 다 나가! 나가라고!”

* * *

김 모 의원 뇌물 공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된 양 씨는 12일 오전 9시 12분부터 취조를 받기 시작해 13일 새벽 5시가 되어서야 귀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9시간이 넘게 지속된 강도 높은 조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건 취조를 맡은 두 명의 검사가 취조실 안으로 들어간 12일 밤 11시경.

밤을 꼬박 새우고도 끄떡없는 젊은 패기의 두 검사들이 쉬지 않고 몰아붙인 끝에, 결국 양 씨는 김 모 의원에게 금품을 공여했다는 사실을 자백했다.

눈물을 흘리며 진술하는 그의 말을 한 자도 놓치지 않고 들은 후에 취조실을 나선 두 검사는 흐뭇한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유 부장의 미소를 얻어 냈고, 잠깐 동안의 휴식을 수여받은 상태였다.

꾹―

“틀림없이 내가 취조할 차례였어.”

서울중앙지방 검찰청 앞에 위치한 B 오피스텔.

중앙지검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주로 입주해 있는 오피스텔의 엘리베이터 안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을 디딘 두 남자들 중 소리를 뱉어 낸 것은 19층을 누르던 승진이었다.

긴 조사 동안 목을 짓누르던 넥타이를 풀어 헤친 그는 갈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미간을 찌푸렸다.

“몇 번을 말하지만 우리 첨수부 사건이다. 특수부는 그저 공조였을 뿐이야. 게다가 이번엔 네가 아니라 내 차례였어.”

단정했던 앞 머리카락이 앞으로 내려와 인상을 쓰던 우영은 낮게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빌어먹을 자식. 끝까지 양보를 안 하는군.”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 2층, 2층에서 3층, 그렇게 19층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승진은 위로 올라가고 있는 엘리베이터 내의 층 표시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는 너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백승진, 넌 내가 대검 먼저 가는 꼴 죽어도 못 보지?”

우영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6층을 지나쳤다. 승진은 코웃음을 쳤다.

“아무래도 너보다는 내가 먼저니까. 계단을 오를 때도 순서가 있는 법이잖아?”

“연수원 성적은 내가 우위였으니 능력은 내가 월등해.”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군. 사시는 내가 수석이었다.”

“대학은 누가 수석 졸업했더라.”

“고등학교까지 내려가길 원해?”

“개자식.”

“변태 새끼.”

땡―

으르렁거리는 설전들이 오가던 와중, 두 남자를 태운 엘리베이터가 정확히 19층에 멈춰 섰다. 드르륵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을 가만히 바라보던 승진과 우영은 동시에 좁은 엘리베이터 밖을 벗어나서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허공에서 두 남자의 눈동자가 부딪쳤다.

1901호와 1902호.

한참이나 시선을 마주하다 이내 정확히 맞은편에 있는 각자의 집 문을 흘긋거리던 두 남자가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그들의 동공은 세차게 요동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고뇌하는 것처럼.

“그래서.”

묘한 침묵을 지키던 두 남자 중 고요를 흐트러뜨린 사람은 머리를 벅벅 긁던 승진이었다. 승진은 고요하기 그지없는 우영의 눈동자를 직시하며 물었다.

“오늘은…… 누구 집에서 잘 건데?”

미세하게 떨리는 승진의 말에 우영이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어제 아침에 보니까 우리 집 샤워기가 고장 났더군.”

“그럼 우리 집 갈까?”

“너 베개 새로 샀어?”

“샀지. 너 때문에 비싼 걸로 샀어, 인마.”

“기특하군.”

“기특하면 오늘은 내가 너 안게 해 주든가.”

“포지션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동전 뒤집기다.”

“제길. 그놈의 동전. 어째 변하질 않냐.”

“싫으면 네가 좋은 방법 마련해 보지그래?”

우영의 차가운 대답에 피식 웃음을 흘리던 승진은 우뚝 서 있는 우영에게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우영은 귓가에서 느껴지는 승진의 체취에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의 집이 있는 1902호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공은 공公.

사는 사私.

우정을 빙자한 파트너십은 그들이 질긴 인연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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