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7화: 외전. 이브 미니미 비비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아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환영사. 이벨리아가 흐릿하게 웃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아빠도 비슷한 말을 해줬다고 들었는데.”
“배워왔어. 비비가 부인처럼 자라기를 바라서.”
침대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은 아가레스가 팔을 내려 이벨리아에게 아기를 보여주었다.
“작아. 이렇게 작은 게 정상인가.”
“더 컸으면 나 죽었어.”
고작 요만한 아기 내보내는 데도 얼마나 고생했는데.
“말도 못 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괜찮은 거 맞아?”
“혹시 악마들은 태어나자마자 말을 하니……?”
갓 태어난 아가가 ‘엄마 안녕하세요?’ 하면 조금 무서울 것 같은데.
인간 기준에서 보면 지극히 정상이라며 남편을 달랜 이벨리아가 손을 뻗어 아기의 포대기를 살짝 들췄다.
와닿는 공기가 어색한지 미간을 찌푸리는 표정이 사랑스럽다.
“아르티나 혈족 중 검은 머리카락은 우리 비비뿐일 거야.”
“다행히 눈은 부인을 그대로 닮아 푸른 빛이야.”
“누가 우리 아이 아니랄까 봐 둘의 색을 반씩 가지고 태어났네.”
배시시 웃은 이벨리아가 비비안의 작은 코를 톡 건드렸다.
“반가워, 아가.”
때로는 노도처럼 사납고, 때로는 솜사탕처럼 달콤한 이 세계에 온 걸 환영해.
“울보 아빠가 건넨 맹세는 엄마도 함께 지킬 테니까…….”
아가. 부디 너는.
어른들이 지켜낸 시대 위에서 태평성세만을 누리기를.
***
루페르트 공녀가 탄생했다는 소식은 제국 전역을 휩쓸었다.
부친은 루페르트 공작이자 마계 동부의 지배자.
모친은 아르티나 공녀이자 마계의 왕.
말 그대로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이.
좋든 싫든 몇 년 내에 제국의 실세로 부상할 비비안 루페르트와 가느다란 연이라도 맺을 수 있다면 가문의 위세가 펴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여 수도는 물론이요, 저 먼 변방에서까지 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선물과 서신을 뻔질나게 보내댔다.
[마침 제 여식도 공녀님과 연배가 비슷하니 말동무로 두시면…….]
[제 조카의 검술이 뛰어나다고 명성이 자자합니다. 혹시 호위가 필요하시다면…….]
[사돈의 팔촌이 이유식 요리에 소질이 있는데, 전속 요리사로 두시는 것도…….]
그렇게 태어난 지 고작 한 달 된 아기의 줄 한 번 잡아보겠다고 온 제국이 사돈의 팔촌까지 팔아가며 들썩이는 가운데.
이벨리아의 몸조리를 위해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루페르트 공작저에서는 진작 출입 허가를 받아둔 측근들이 날마다 모여 비비를 내놓아라 시위하는 중이었다.
“야, 잔디 집사. 비비는?”
“비비 전하는 지금 자고 있을 시간이다.”
“그래? 그러면 자는 얼굴 잠깐만 보고 와야겠다.”
“안 돼.”
“왜!”
“자칫 주무시는 걸 깨우기라도 했다가 비비 전하의 키가 땅콩 폐하만큼만 자라면 책임질 거야?”
“내 동생 키가 뭐 어디가 어때서! 애가 조금 땅콩 같고 밥풀 같고 하긴 해도 눈에 보이면 됐지!”
세드릭을 비롯한 객들이 아무리 졸라대도 비비안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모유를 먹거나 자거나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주치의가 정한 하루에 딱 세 번.
해가 동쪽 창문에 걸리자 세드릭이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우리 비비 영접 시간 다 되어간다.”
“누구 마음대로 우리 비비야.”
“정정하지. 내 비비 영접 시간 다 되어간다.”
“비비 전하는 마계의 황녀시다. 예를 갖추도록.”
“황녀고 나발이고 내 조카거든. 너야말로 네 황녀의 삼촌인 나한테 예를 갖춰라.”
“…….”
“그러고 보니까 내가 네 황제의 오라비인데 이게 반말을 찍찍 싸네? 세상 하직하고 싶냐? 너 이름이 뭐랬지? 타르타르 소스?”
세차게 나부끼는 악마의 조동아리를 이기지 못한 바르바토스가 끄응 침음했다.
저 인간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다 재앙이나 다름없다.
세드릭이 말로 바르바토스를 몇 대 더 뚜까 패려고 입을 열던 찰나.
저벅. 저벅.
2층에서 내려오는 묵직한 발소리가 들렸다.
아르티나 일가, 악마들, 그리고 정령왕들까지. 방문객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잠시 뒤. 계단을 열 개쯤 남겨두고 멈춘 아가레스는 마치 사자가 주인공인 어느 동화에서 원숭이가 아기 사자를 들어 보여주는 것처럼 비비안을 번쩍 들어 올렸다.
“아우웅-.”
커다란 손에 하찮게 들린 비비안이 공중에서 포효했다.
위엄 넘치는 옹알이에 객들의 표정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하아…… 귀여워…….”
“저 말랑말랑 볼따구…….”
“비비야. 삼촌이야. 따라 해봐. 삼촌.”
“그 단어는 발음이 어려워서 아기가 익히지 못한다.”
아르칸의 어깨를 잡아 뒤로 휙 내던진 휴고가 비비안과 눈을 마주치며 종용했다.
“비비. 할아버지. 쉽지? 할아버지.”
“……네 글자니까 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아버지.”
그러자 엘리시아가 남편과 아들의 어깨 사이로 얼굴을 쏙 내밀었다.
“그럼 할머니. 이건 세 글자니까 쉽지. 비비야, 할머니.”
세뇌라도 하는 것처럼 각자 자기의 호칭을 주입하는 아르티나 일가.
그 뒤에서 서로 시선을 나누던 악마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끼어들었다.
“지금 그런 호칭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럼 뭐가 중한데.”
비비안의 호위기사로 임명된 낑깡 농장 주인 구시온이 정중하면서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꿇어라,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 이 말부터 배우셔야 합니다, 비비 전하.”
“뭐야. 그 인성 파탄 날 교육은.”
“숟가락을 드시는 것보다 몽둥이를 드시는 것을 먼저 익히셔야 하고요.”
“범죄자 조기 교육이냐.”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마땅히 필요한 생존법이지요.”
구시온과 세드릭이 티격태격하자 아가레스가 몸을 돌려 비비안의 귀를 막았다.
“세상이 온통 지지로구나. 모두 흘려듣거라. 안타깝게도 네 주변에는 제정신인 이를 찾기가 어렵다.”
그러자 개중 가장 얌전하게 서 있던 트로이가 손을 뻗었다.
“아가 안아볼래.”
“…….”
“눈에 불신이 가득하네. 나를 저것들과 한패로 보면 서운한걸.”
트로이의 시선을 따라 주변을 빙 둘러보던 아가레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지. 땅의 왕은 예로부터 선을 잘 지킬 줄 아는 자였다. 나름 신사적이기도 하고.
하여 아가레스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아가를 트로이에게 건넸다.
대부는 누가 할 것인지에 관한 주제로 입씨름을 벌이던 엘라임과 이프리트가 뒤늦게 기함했다.
“잠깐. 트로이 너 양아치 짓 하지 마라.”
“저놈은 고양이야! 비비는 생선이고! 생선한테 고양이를 맡기는 꼴이라고!”
“……반대 아니냐?”
“여하간 안 돼!”
버럭 소리를 지른 이프리트가 비비안을 빼앗을 기세로 한달음에 달려왔으나.
“뭐가 안 돼?”
돌아보며 씨익 웃는 트로이의 품속. 편안하다는 듯 얌전히 안긴 비비안의 오른쪽 눈 밑에는 이미 눈물점처럼 대지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으아악!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겉도 속도 시꺼먼 흙덩어리 자식!”
“세상에. 미니 이브가 인생을 저당 잡혔어.”
“내 계약자의 아가가 하필 저놈의 인장을……!”
“트로이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도둑 인장 찍기가 그게 정령이 할 짓이냐?”
“너는 그런 말할 자격 없지, 페르세스.”
이벨리아 어렸을 적에 냉큼 인장 찍어버린 게 누군데.
현명하여 기회를 놓치지 않는 땅의 왕이 빙글 웃었다.
“인장 찍은 김에 대부(代父)도 내가 하는 게 맞겠다. 그렇지?”
***
대부 트로이.
세 정령왕은 질투가 난다는 이유로, 아가레스는 아빠인 내가 있으니 대부 따위 필요 없다는 이유로 극렬하게 반대했으나, 이벨리아의 끄덕 한 번에 모두 의미 없는 반항이 되어버렸다.
비비안은 빠르게 자랐다.
외형은 이벨리아와 아가레스를 반씩 닮았으나 성격은 완전히 엄마를 닮아 아장아장 걸으면서도 온갖 사고를 치기 일쑤였다.
“우웅…….”
“으아, 비비 전하! 그거 먹는 거 아닙니다! 놓아 주십시오!”
구시온은 엔리르의 몸통을 야무지게 잡고 머리통을 아앙 물고 있는 비비안을 보며 기겁했다.
“호들갑 떨지 마. 난 괜찮아. 비비라면 얼마든지 물려줄 수 있어.”
“지지입니다! 지지! 털이 얼마나 더러운데!”
“아. 걱정하는 게 그쪽이었어?”
봉제 인형처럼 얌전히 안겨 물림을 당하던 엔리르가 서운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 깨끗한 용인데. 목욕한 용인데.
“비비. 저 악마 말 듣지 마. 나 깨끗해. 꿀꺽 삼켜도 비비는 안전해.”
“아우웅.”
“옳지. 옳지. 엔리르는 맛있는 용이에요. 안전한 식료품 1등급 용이에요.”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용의 식료품 선언에 호위기사 구시온이 어지러운 머리를 짚던 찰나.
오늘도 어김없이 외부 훈련을 마치고 루페르트 공작저 욕탕을 빌려 쓴 아르티나 기사들이 보송보송한 옷차림으로 우르르 몰려와 비비안의 시선에 맞추려고 몸을 납작 엎드렸다.
“아이고, 우리 비비 아기씨. 용 고기를 맛보고 계셨구나!”
“아부-!”
“헉, 다들 들었어? 방금 헤롤드라고 하셨는데?”
“전혀?”
“아부우-!”
“이번에는 진짜 지나가는 개가 들어도 헤롤드라고 하셨어!”
“지나가는 개가 들어도 아부우였는데?”
“질투로 귀가 멀어버렸구나, 알렉. 비비님, 헤롤드 여기 있습니다! 헤롤드, 헤론드, 헤에드, 아부우. 아무렇게나 부르십시오!”
산처럼 거대한 기사들이 하나같이 바닥에 배를 갖다 붙이고 아기와 함께 기는 광경은 실로 가관이었다.
마침 2층에서 내려오다가 이 해괴한 몸짓들을 마주친 이벨리아가 비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저놈들 저거 애초에 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너 책임져, 토끼.”
“그래도 비비와 잘 놀아주니까…….”
그때. 아장아장 걸어간 비비안이 헤롤드의 어깨를 꽉 쥐고 옹알거렸다.
“멈무.”
“……!”
“멈. 무.”
“으아아아이고! 아기씨께서 우리 기사단 이름을 아신다!”
“아주 또박또박 읊으셨어!”
“맞습니다, 맞아요, 아기씨. 저희는 멍멍이 기사단입니다. 멈무! 멈무!”
그렇지 않아도 사냥개 비슷한 기사들이 이젠 완전히 한 마리 개가 되어 멍멍 짖고 있다.
루페르트 공작저에 때아닌 개소리가 아우우 울려 퍼진다. 이벨리아가 스산한 눈으로 남편을 일별했다.
“잘 놀아주니까, 뭐?”
“쫓아낼게. 당장.”
아가레스가 기사단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비비안이 해실해실 웃으며 아가레스의 바짓자락을 붙잡았다.
“빠아. 멈무.”
“……비비가 이렇게 좋아하니까 조금만 더 둬도 될 것 같고.”
“너 그렇게 홀랑 넘어갈래? 아가 교육에는 단호하게…….”
“마아아- 멈무! 멈무!”
“……넘어가자. 귀엽네.”
***
비비안의 첫 생일을 불과 한 달 앞둔 어느 날.
비밀기지에서 책을 읽던 루드비히는 나른하게 늘어져 빵을 먹고 있는 이벨리아에게 물었다.
“비비 생일 연회는.”
“해야지. 준비 중이야. 토끼가.”
“내 궁을 빌려줄 테니 거기서 하는 건 어때.”
하해와 같은 황제의 은혜에 이벨리아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황궁 문턱 넘으면 부정 타. 퉤퉤.”
“그럼 어디서 하려고. 비비의 격에 맞는 장소가 많지는 않을 텐데.”
“우리 집에서 하지 뭐. 이바스 저택.”
“참석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많이 초대할 생각 없어. 검은 속내 없이 비비의 첫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존재들만 부를 거야.”
“그렇군. 시간 내서 꼭 참석하도록 하지.”
“…….”
“……?”
“…….”
“……초대장. 나 안 줘?”
“황가하고 엮이면 부정 타는데…….”
“이게 진짜!”
뼈 때리는 친우의 말에 짐짓 큰소리를 내면서도 루드비히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직도 시간이 약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다만, 시간은 같은 감정을 무수히 반복하여 무뎌지게 만들었다.
옥죄는 심장의 통증이 과거보다는 조금 견딜 만했다. 끝 모르는 미련에 한없이 익숙해져 종래는 다소 무뎌진 가을의 초입이었다.
***
비비안의 첫 생일 연회는 규모로 보자면 성대했고 참석자의 수로 보자면 단출했다.
정리하자면, 초대한 사람은 적은데 금화는 아낌없이 퍼부었다는 소리다.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티아라까지 야무지게 머리 위에 얹은 채 주인공 자리에 앉은 비비안은 사자 형상을 하고 재롱을 떠는 마르바스를 보며 까르르 웃었다.
“멈무!”
“사자.”
“멈무!”
“사자.”
“헤헤. 멈무.”
“……그래. 나는 멈무다. 비비 전하가 멈무라고 하면 멈무지.”
따뜻한 시선으로 딸을 바라보던 이벨리아가 슬쩍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 딸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멈무인 것 같은데.”
“바람직한 현상이야. 세상에 개새끼가 오죽 많아야지. 벌써 깨우치다니 우리 딸은 역시 부인을 닮아서 똑똑해.”
부드러운 바람을 일으켜 비비안의 볼을 간질이던 페르세스가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있지, 실프들한테 들었는데, 저 멀리 어느 작은 왕국에서는 아기의 첫 번째 생일에 물건 잡기를 한대.”
“물건 잡기?”
“탁자에 물건을 여러 개 올려두고 그중 뭘 잡는지에 따라서 미래를 점치는 거지. 검을 잡으면 검에 소질이 있고, 마법 서적을 잡으면 마법에 소질이 있고, 이런 식으로.”
“흐음. 흥미로운데?”
“재밌겠군.”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 딸의 미래가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은 악마는 냉큼 새로운 테이블 하나를 옮겨왔다.
“해보자.”
마찬가지로 비비안이 뭐에 소질이 있을지 궁금한 이들이 자신의 소지품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휴고의 검. 엘리시아의 지도. 아르칸의 깃펜. 세드릭의 가문 인장. 엔리르의 털실.
루드비히의 옥새. 카밀라의 야행복.
렐리안의 마탑주 상징패. 이크리안의 휴가 신청서. 네피르의 돈.
엘라임의 정령석. 페르세스의 보석. 트로이의 땅문서. 이프리트의 고기.
악마들의 몽둥이. 각종 연장 등등.
작은 테이블 위에는 그야말로 돈과 힘과 권력이 모두 올라가 있었다.
참석자들이 잔뜩 기대 어린 표정으로 테이블 앞 의자에 비비안을 척 올려두었다.
“우웅?”
“자, 비비. 골라!”
“검술 잘하는 미니 이브를 보고 싶다, 비비.”
“지도를 잡으렴. 세상을 읽어야 살기 쉬운 법이란다.”
“깃펜. 깃펜을 잡아서 아르티나를 물려받아 줘.”
“형식적으로나마 황위 계승권자이기도 하니 옥새를 잡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쪽입니다, 공녀님. 돈을 잡으세요. 세상은 돈이 최고랍니다.”
“전부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잡아야 할 것은 휴가 신청서예요. 휴가 신청서를 품에 껴안고 살지 않으면 과로와 뒹굴며 살게 되실 겁니다…….”
“내 털실을 잡아! 따뜻해!”
“비비. 부동산이 최고야. 땅문서를 잡아서 알부자가 되어보자.”
미래를 점친다기보다는 자신이 올려둔 물건이 선택받기를 원하는 인기 투표가 되어버린 상황.
빨고 있던 쪽쪽이를 퉤 뱉은 비비안이 테이블 가장자리를 잡고 의자 위에 끄응차 일어섰다.
과연 비비는 장차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참석자들이 꿀꺽 침을 삼켰다.
그리고…….
비비안은 테이블 위로 뒤뚱뒤뚱 올라가 가운데에 척하니 섰다. 묘하게 또렷한 발음이 원하는 바를 내뱉는다.
“거어!”
“그 테이블을 가질 거야, 비비?”
“꺄웅!”
“……똑똑한데?”
“그렇네. 꼭 하나를 고를 필요가 없지.”
“저 모든 게 놓인 세계를 가지면 되는걸.”
티아라를 쓰고 테이블 위에 위풍당당 선 아가를 바라보며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 많은 게 뒤구르기 하면서 봐도 이브 딸이네.”
“보석 집는 거 봐라. 말 타고 달려가면서 봐도 이브 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