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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꽃밭에는 그들이 산다-314화 (314/323)

##  314화: 외전. 헛구역질, 설마……?

아가레스는 끝내 대답하지 않고 멀리 시선을 돌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멍멍이 기사단이 전제로 한 건 ‘너를’ 닮은 딸이잖아.

네가 남긴 거라면 발자국만 봐도 나는 가슴이 뛰는데. 하물며 너를 그대로 닮은 눈과 말투, 그리고 성정이라니.

‘그깟 땅만 안겨주고 멈출 리가.’

세계를 다 쥐여줘도 아쉬울 것을.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딸을 상상하자 악마의 입매에는 황홀한 미소가 그려졌다. 바라보던 이벨리아가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나왔다. 빙구 미소.”

그 신랄한 평가에 아가레스가 입꼬리를 내려 원위치시켰다. 흠흠. 너무 체통이 없었나.

한편 안이 보이지 않게 창문이 비스듬히 열린 대형 목욕탕에서는 대체 뭘 하는 건지 기사단의 기합 소리가 우렁우렁 들려왔다.

- 흐아압! 수련이다!

- 두꺼비 입에서 졸졸 나오는 물 맞으면서 수련은 무슨.

- 냉탕에서 헤엄 경주할 사람!

- 나. 벌칙은 익사 어때?

- 역시 판돈으로 목숨 정도는 걸려야 흥미롭지!

워낙 목청이 커서 다 들린다.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진 저택에 이벨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떡할 거야. 쟤들 이제 외부 수련을 빌미로 아주 뻔질나게 드나들 텐데.”

설상가상으로-.

“어이, 매제! 술 좀 내와 봐!”

저 술고래 오라버니는 또 어떡할 거야…….

이벨리아가 원망하는 표정으로 남편을 올려다봤다.

작게 미안, 읊조린 아가레스가 세드릭에게 물었다.

“선호하는 술은?”

“보드카!”

“가져오지. 괜찮은 거로.”

“이놈 이거 말이 좀 통하는 놈이었잖아?”

세드릭이 아가레스의 어깨를 팡팡 내리쳤다.

어느새 정원에 술판을 깔고 마주 앉은 두 주당은 술을 병째로 퍼마시기 시작했다.

“크흐! 좋다!”

“좋은 날 마시려고 보관해두던 술이다.”

“뭐야. 오늘이 좋은 날이란 소리야?”

“부인께서 아끼는 이들이 놀러 왔으니까.”

“……너 이 자식.”

술 묻은 입가를 손등으로 훔친 세드릭이 새 술병을 열어 아가레스에게 건넸다.

“보면 볼수록 진국이란 말이지.”

아가레스가 픽 웃었다.

혓바닥을 매끄럽게 굴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부인이 아끼는 이들이니 자신의 마음도 덩달아 말랑말랑해진 것뿐.

두 술고래가 네놈 참 괜찮구나, 그쪽도 나쁘지 않아 따위의 시답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부어라 마셔라 하는 광경을 바라보던 이벨리아는 이마를 짚었다.

망했다.

정원의 풀이 물 아닌 술을 먹고 자라겠어.

토끼가 오라버니와 기사단한테 저렇게 홀랑 넘어가 버릴 줄이야.

“……이 신혼집은 오염됐어.”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녁에는 휴고와 엘리시아가 루페르트 공작저 문을 두드렸다.

딸 부부의 신혼여행 얘기를 들으며 함께 저녁을 먹던 엘리시아가 휴고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별장 하나 더 만들까 봐요.”

“원한다면 어디든.”

그러자 아가레스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 별장. 이곳에도 하나 두는 게 어떤가.”

“이 저택에?”

“남는 게 건물이다. 후원에 있는 곳 정도면 어떨까 싶은데.”

“우리야 좋긴 한데…… 갑자기 왜?”

“이브를 보고 싶어 할 것 같아서.”

“……”

“…….”

“……상당히 괜찮은 놈이었군.”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괜찮은 놈이었어요.”

평생 곁에 두고 살던 딸이 갑자기 사라지니 빈 둥지 증후군 비슷한 증상을 겪던 휴고와 엘리시아는 악마의 배려에 감격했다.

식탁 밑에서 이벨리아가 아가레스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으나, 눈치 없는 악마는 되물을 뿐이었다.

“왜, 이브. 별채는 너무 멀어? 아예 본채를 내어드릴까?”

“……아니…….”

마계 동부의 지배자라는 수식어가 울고 가겠다, 이 순둥이 호구야.

***

그렇게 슬금슬금 점령당해 아르티나 공작저인지 루페르트 공작저인지 애매하게 되어버린 이바스 저택.

이벨리아는 아가레스의 손을 끌고 마계로 향했다.

“어휴. 정신없어.”

“가족들이랑 더 안 놀아도 돼?”

“가족들이 오는 건 좋은데 아무리 그래도 이바스 저택이 아르티나 공작저 2탄이 되는 건 사양이야. 토끼도 너무 내 생각만 하지 말고 싫으면 좀 거절하고 그래.”

“안 싫어.”

“안 싫어?”

“너는 내 가족이잖아. 네 가족은 내 가족이기도 하고. 가족끼리는 원래 아낌없이 나누는 거라고 배웠다.”

“그건…….”

무려 악마가 가족의 도리를 읊는다. 여기서 아니라고 하면 내 도덕성은 악마보다 못한 것이 되어버리게 생겼다.

“……그렇지.”

악마 토끼가 결혼하더니 예와 효를 중시하는 선비 토끼가 되어버릴 줄이야.

여하간 번잡한 이바스 저택을 탈출해 마왕성으로 왔건만, 이곳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권력 지상주의에 찌들대로 찌든 9위 악마 구시온이 알현실 앞을 서성이다가 이벨리아가 돌아오자마자 도도도 달려와 납작 엎드렸다.

“폐하아아아아-! 옥체 강녕하셨사옵니까아아-!”

“말투. 담백하게.”

“넵, 폐하!”

“오늘은 또 무슨 일이야.”

“이것을 좀 보아 주십시오!”

구시온이 하위 마족을 시켜 들고 온 물건의 천을 휙 걷어 올렸다.

화분에 심어진 나무의 가지 끝에는 동글동글 작고 탐스러운 주황 알맹이가 달려 있다.

“자라다 만 오렌지?”

“자라다 만 오렌지와 비슷한 낑깡이라고 합니다, 폐하! 인간 세상 저 먼 어느 왕국에서 유행하는 열매라기에 그렇다면 마땅히 폐하께 진상해야겠다 싶어 가져왔지요.”

그토록 좋아하는 오렌지 비스름하게 생긴 과일. 새콤한 냄새를 맡으니 군침이 확 돌았다.

“맛은 있겠는데 양이 너무 적은걸. 한 입 거리잖아.”

“그러실 줄 알고 묘목도 구해와 저희 일족이 직접 재배 중입니다, 폐하!”

“온도를 맞추지 않으면 어려울 텐데. 일족이 농경에 조예가 있나 보네?”

“예, 폐하. 송구하오나 그렇습니다!”

“네가 무슨 일족이었더라?”

“하문하여 주시니 영광입니다. 저는 부패 일족의 장을 맡고 있습지요!”

“부패? 썩는 거?”

“부패와 탄생은 종이 한 장 차이 아니겠습니까!”

……너무 아니잖아.

그 낑깡 먹었다가 제대로 탈 나는 거 아니야?

이벨리아의 마음도 모르고 구시온은 마구 아양을 떨어댔다.

“폐하, 폐하, 이것도 보십시오.”

품에서 주섬주섬 꺼낸 것은 거울. 악마의 영지 상황을 비춰 보일 수 있는 귀물이다.

유리에 선명하게 비춰 보이는 구시온의 영지에는 비옥한 땅 대신 비닐이 가득했다.

“비닐로 감싸 온도를 유지해야만 사시사철 낑깡 묘목을 기를 수 있다고 하여, 소신의 영토를 온통 비닐로 덮어버렸습니다!”

“…….”

왕의 총애가 자신을 향할 것이라고 확신했는지 잔뜩 흥분한 구시온의 손에서 낑깡 묘목이 부패되어 바스스 흩날렸다.

“아이고, 내 낑깡!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비닐 안에 묘목이 가득하니까요!”

손짓 한번으로 산 하나를 부식시켜 버린다는 권능의 악마가 이벨리아 앞에서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헤헤 웃는다.

그리고 구시온의 그 처절한 몸부림을 바로 지척에서 바라보던 로노베도 지지 않았다.

몽마 자존심이 있지. 로노베가 커다란 상자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뭐야?”

“잠깐. 열기 전에…… 이건 여자들의 비밀이니 다들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지요.”

그러자 아가레스가 이벨리아를 바라봤다. 나도 나가? 하는 표정으로.

이벨리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작게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귀여운 투정이 들려온다.

“나는 마르바스와 비밀 얘기나 하러 가야겠군.”

서운함을 티 내는 걸음걸이를 보며 픽 웃은 이벨리아가 상자를 열었다. 이게 뭐야.

“거지 옷?”

“……밥풀 폐하 감각 진짜 처참하다.”

한숨을 쉰 로노베가 옥좌 가까이 와서 속삭였다. 알현실에는 둘 외엔 아무도 없었지만, 덩달아 이벨리아도 귀를 쫑긋 세웠다.

“폐하. 잘 때 뭐 입고 자?”

“잘 때 입는 옷은 잠옷이지.”

“그 잠옷이 혹시 줘도 안 입을 사방팔방 다 막힌 잠옷이야?”

“왜 줘도 안 입어? 내 잠옷이 얼마나 포근한데.”

로노베는 사내를 유혹하는 기술 따위 눈곱만큼도 없는 왕을 어쩌면 좋냐는 듯 바라보며 상자 안을 가리켰다.

“꺼내 봐, 폐하.”

엄지와 검지로 조심스레 잡고 들어 올리니 비단으로 만들어진 천이 사르르 흘러내렸다. 요모조모 살펴보던 이벨리아가 경악했다.

팔을 끼워 넣는 곳이 없다. 가슴 윗부분을 가리는 천도 없다. 신혼여행 첫날밤에 수줍게 잘라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이건…… 너무 남루하고 허름하잖아.”

“이걸 보고 남루하고 허름하다고 표현하는 인간은 폐하밖에 없을 거야.”

“그럼?”

“보통은 섹시하다고 하지. 사내 마음에 제대로 불을 지르는 잠옷이거든.”

몽마가 분홍빛 눈을 휘며 요요하게 웃었다. 마치 이 분야에서만큼은 어리숙한 왕을 가르치려는 것처럼.

“밥풀 폐하. 꿈과 성을 관장하는 몽마로서 감히 여쭙건대, 아직 주군과 입맞춤 이상은 안 해봤지?”

“…….”

“거 봐. 둘 다 숙맥이라 그럴 것 같았어.”

……그게, 사실 우리 이미 볼 장 다 봤어.

“나한테만큼은 솔직해도 돼. 이런 방면에서 몽마의 감은 정확하거든.”

너 사실 몽마 아니지. 감이 아주 구린데.

“원하는 날에 이거 딱 입고 주군 앞을 슥 지나가기만 해 봐. 그러면…….”

이벨리아가 꿀꺽 침을 삼켰다. 그러면?

“아이, 몰라. 내가 더 말하면 너무 불경한 신하 같잖아. 여하간 꼭 입어 봐! 그 이후는 주군께서 다 알아서 하실 테니까!”

그래. 걔 알아서 하더라. 잘.

문득 열기로 가득했던 간밤이 떠오른 이벨리아가 푹 고개를 숙였다.

“어? 폐하 얼굴이 발개졌는데? 더워? 아니면 부끄러워서 그래?”

“몰라. 이제 나가 봐.”

“벌써? 이런 방면으로 나한테 또 물어볼 건 없어? 응?”

“나가!”

이벨리아는 축객령을 내렸다.

로노베가 건넨 잠옷은 보물처럼 소중하게 품에 안은 채였다.

***

알현실에서 나온 로노베가 긴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두 분 다 저리 숙맥이셔서야…… 후사는 볼 수 있을지 걱정이네.”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알현실 앞을 지나가던 마르바스가 툭 답했다.

“별게 다 걱정이네. 너나 잘해라.”

“갑자기 왜 시비야? 주군은 못 뵈었어?”

“뵈었다. 금과옥조를 듣고 오는 길이야.”

“무슨 금과옥조?”

“넌 알 거 없고. 알현실에서 땅콩 폐하랑 뭐 했냐?”

“금과옥조를 드렸지.”

“무슨 금과옥조?”

“넌 알 거 없고.”

했던 말 그대로 맞받아치는 로노베에 마르바스가 낮게 웃음을 흘렸다.

심장에 꽂히는 듯한 웃음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감춰 물며 로노베가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나한테 시비나 걸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 미련퉁이 사자야. 지금 밥풀 폐하 총애 좀 얻어보겠다고 온 마계가 난리인데 혼자 유유자적 육포나 씹고 있다가는 좌천될걸?”

마르바스가 육포 하나를 꺼내 로노베의 입에 물려주며 말했다.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땅콩 폐하는 나 못 내쳐.”

“무슨 자신감이야?”

“아무리 다른 놈들이 이제 와서 애써봤자지. 땅콩 폐하 뭣도 없던 어린 시절부터 몸 바쳐 놀아드린 건 나란 말씀이야.”

“뭐. 그렇게 자신이 있으시다면야. 난 이만 간다.”

“야. 잠깐.”

“왜.”

“…….”

“뭐.”

머뭇거리던 마르바스는 새로 꺼낸 육포 하나를 로노베의 입에 또 넣어주었다. 로노베가 인상을 찌푸리고 우물우물 입을 움직였다.

“뭐야. 혹시 여기 독 묻혔어?”

“로노베.”

“말해. 답답하게 굴지 말고.”

“나랑 어디 좀 나갔다 오자.”

“어디?”

“땅콩 폐하 드릴 쿠키 사러. 폐하가 좋아하는 곳이 있거든.”

“총애 걱정 안 된다더니?”

“총애 걱정이 아니라 온전한 충심이다.”

잠시 말을 멈춘 마르바스는 조금 전 주군께서 알려주신 대사를 그대로 읊었다.

“그, 나간 김에 우리도 맛있는 것 좀 먹고 오자고.”

“……둘이?”

“뭐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우리야말로 땅콩 폐하와 주군께서 동부에 계실 때부터 모시던 심복 중의 심복이니까 회합이나 화합이나 뭐 그런 목적으로다가…….”

“야. 뭘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말하고 앉았어.”

“어, 엉?”

“그냥 솔직하게 말해.”

“…….”

“내가 말할까?”

“……아니.”

후우. 마른 입술을 혀로 핥은 마르바스가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다.

“데이트하자. 로노베.”

“……하여튼 미련퉁이 사자 같으니라고.”

주군이나 충신이나 판 깔아줘야 앞으로 나가는 것까지 똑같긴.

어딘가 몽환적이었던 평소의 웃음과 달리 그저 맑기만 한 미소를 지으며, 로노베는 마르바스의 옆으로 쌩하니 지나갔다.

“옷 갈아입고 와. 멋있는 거로.”

“갈 거야? 데이트?”

“두 번 묻지 마. 멋없으니까.”

“엉! 야, 그, 한 식경만 기다려라!”

훌쩍 뛰어 사자로 변한 마르바스가 자신의 저택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입가는 웃는 것처럼 활짝 벌어져 있었다.

‘역시 주군! 연애 고수!’

목에는 주군께서 로노베와 데이트하는 데 쓰라며 묶어주신 용돈 주머니가 달랑거렸다.

***

신혼 생활을 만끽하는 와중에 계절은 두 번 더 바뀌었다.

바야흐로 연초의 신년제 날.

이벨리아는 아르티나 일가와 악마 몇을 이바스 저택에 초대했다.

날은 추웠지만 이벨리아가 카사를 잔뜩 불러둔 덕분에 저택의 정원만큼은 봄날과 다름없이 따뜻했다.

흩날리는 눈발이 온통 하얗게 덮은 세상 속, 마치 다른 세계인 것처럼 온기 가득한 정원은 제법 낭만적이었다.

마르바스, 로노베와 더불어 초대장을 받은 9위 악마 구시온은 황송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폐하! 소신을 신년제에 초대하여 주시다니! 이것이 바로 총애의 맛! 히야, 달다, 달아!”

“누나. 저 악마가 들고 온 작은 오렌지 먹어도 돼?”

“하이고! 폐하의 동생이신 용님이로군요!”

“어, 그런데?”

“듣던 대로 아주 위풍당당하십니다! 이 낑깡은 폐하를 위해 제가 직접 재배한 것인데, 한 번 드셔보십시오!”

“너 괜찮은 놈이구나? 강해 보이는데 예의도 바르네.”

“천부당만부당한 칭찬이십니다! 저는 그저 폐하를 모시는 일개 종일 뿐이지요!”

왕의 총애를 받으려면 모름지기 주변인부터 공략하는 게 정석!

구시온은 특유의 말발로 아르티나 일가를 차례차례 공략해나갔다.

이제는 세드릭의 옆을 꿰차고 앉아 딸랑딸랑 알랑방귀를 뀌어대는 악마를 보며 아르칸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저런 처세술 좋은 악마가 다 있어.”

“저래 봬도 고위 악마야. 나름 귀여운 맛도 있고.”

이벨리아는 오늘 신년제 연회를 위해 아르티나 공작저에서 주방장 세토를 데리고 왔다.

오랜만에 아가씨를 위한 요리를 만든다는 생각에 곰 같은 덩치의 세토는 국자와 집게를 들고 정신없이 주방을 진두지휘했다.

“오늘 메인 요리는 아가씨께서 좋아하시는 송아지 스테이크입니다.”

“역시 세토! 세토의 송아지 요리는 세계 최고지!”

윤기 흐르는 고기를 보며 눈을 빛낸 이벨리아가 나이프를 번쩍 치켜들었다.

“이게 대체 얼마만이야!”

크게 한 점 썰어 입에 와앙 넣으려던 찰나.

“우욱.”

제각기 시끌벅적하던 테이블 위. 진공 상태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소리가 일거에 멈췄다.

당황한 이벨리아가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내가? 송아지 요리를 앞에 두고 구역질을? 내가?

에이, 몸이 아주 잠깐 오류가 났나 보지.

“아무것도 아니야. 다들 걱정하지 마. 내가 송아지 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벨리아가 보란 듯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우욱……!”

쨍그랑. 나이프를 내던지다시피 내려둔 이벨리아가 허리를 숙이고 오른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지 않아도 굳어 있던 참석자들은 숫제 돌덩이라도 되어버린 것처럼 숨조차 멈췄다.

“서,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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