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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꽃밭에는 그들이 산다-313화 (313/323)

##  313화: 외전. 토끼가 아니라 늑대였어

흐린 여명이 밤을 덮고 내려앉은 새벽.

밤 내내 시달린 이벨리아는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음성으로 아가레스의 어깨를 밀어냈다.

“그만…… 나 이제 졸려…….”

“응. 이제 자자.”

“……그러려면 네가 이 손을 좀 멈춰야 할 것 같은데.”

“응. 가만히 안고 있기만 할게.”

“……네 입과 손 중 누구 하나는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어.”

말과 달리 손은 계속해서 이벨리아의 등허리를 쓸어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인을 재우기가 영 아쉬웠던 악마는 특유의 본성을 아낌없이 발휘하여 살살 꼬리를 흔들었다.

“이브. 조금만 더 놀다 자자.”

“날 죽이려고 이래……?”

졸린 눈을 나름대로 사납게 치켜세우고 묻자 빤히 바라보던 악마가 느리게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 모습이 꼭 초식동물 사냥을 앞둔 육식동물처럼 보였다.

“딱 반 각만.”

“반 각?”

“반 각.”

“……진짜 딱 반 각?”

“진짜.”

이벨리아는 속았다.

재점화된 불길이 고작 반 각 만에 꺼질 리가 없었고.

까무룩 기절하듯 잠든 것은 결국 해가 뜬 뒤였다.

***

그렇게 지금, 해가 중천을 넘어가는 시간.

“…….”

침대에 걸터앉은 아가레스는 안절부절 입술을 깨물었다.

이벨리아는 평소에도 상당한 잠꾸러기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점심이 훌쩍 넘은 이 시간까지 깨지 않은 적은 없는데.

배꼽시계가 초침시계만큼 정확한지라 최소한 밥 먹을 시간에는 벌떡 깨서 배를 채우고 다시 잠들고는 했는데.

악마가 이불 위로 빼꼼 나온 이벨리아의 맨 어깨를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이브.”

미동도 없다.

“이브. 밥 먹고 다시 자자.”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주자, 단잠을 방해받는 것이 언짢은지 작은 손이 탁 뿌리쳐버린다.

그러더니 이불 속으로 얼굴을 묻고 꼬물꼬물 파고 들어갔다.

“…….”

아가레스는 자책했다.

다 나 때문이야.

이브가 무려 신혼여행까지 와서 마음껏 놀지도 못하고 이렇게 침대 붙박이가 되어버린 건 전부 내 잘못이야.

‘처음에 졸린다고 했을 때 멈출걸…….’

어쩌지. 이브 배고플 텐데. 밥 굶으면 안 되는데. 그렇지 않아도 몸이 한 줌이던데.

고기라도 잡아 와서 냄새를 풍겨봐야겠다. 그렇게 결심한 찰나였다.

“……으으.”

이불 고치 속에서 작은 신음이 들렸다. 와락 달려든 악마가 태세와는 달리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이불을 빼꼼 젖혔다.

“이브? 깼어?”

“……너어…….”

“응.”

“너어, 토끼 칭호 반납해…….”

“응?”

“누가 토끼래. 누가 너 보고 토끼래. 어디가 토끼야.”

이불 속에서 고양이 앞발처럼 가벼운 손이 쉭 튀어나와 악마의 단단한 허벅지를 때렸다.

“이 늑대 같은 놈아!”

“아. 칭찬이었구나.”

“욕이야! 좀 적당해야지, 좀!”

다시 한번 허벅지를 툭 치는 팔과 손목이 온통 울긋불긋하다. 어디 부딪쳐 다치기라도 했나 싶어 황급히 낚아챈 악마는 이내 깨달았다.

“……아.”

긴 밤 내가 네게 깊이 다가가면서 남긴 흔적.

뭐야. 너무…… 황홀하잖아.

아가레스가 이불째로 이벨리아를 꼭 껴안고 얼렀다.

“미안해, 이브. 그렇게 아름다운 시간은 처음 겪어서 그랬어.”

진심 어린 사과에 눈매가 조금 온순해진 이벨리아가 입술을 삐죽이며 물었다.

“그럼 앞으로는 자제할 거야?”

“…….”

“그럴 생각 추호도 없네?”

“……몸에 좋은 거, 산삼이라도 캐올까?”

퍽. 악마는 기어코 허벅지 한 대를 더 얻어맞았다.

다시금 이불 속으로 파고든 이벨리아는 꿈에 반쯤 발 걸친 채로 웅얼거렸다.

사실 있잖아.

내가 부끄럽고 졸리고 배도 고파서 성질을 내기는 했지만 말이야.

“토끼 아닌 늑대도…… 나쁘진 않아.”

***

정신을 차리니 늦은 오후였다.

단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부인의 어깨와 팔, 목과 다리를 정성껏 주물러주던 악마가 웃었다.

답지 않게 순박한 미소다. 어제 그렇게 달려들던 포식자는 어디로 가고.

“잘 잤어?”

“……배고파.”

“그럴 것 같았어.”

흘끗 돌리는 시선을 따라가자, 테이블 위에는 각종 빵과 스튜가 소담스레 차려져 있었다.

꿀꺽 침을 삼키니 아가레스는 이벨리아를 이불로 돌돌 말아 감싼 다음 번쩍 안아 무릎 위에 앉혔다.

그러고서는 빵을 잘게 떼어 정성스럽게도 먹여준다.

새끼 새처럼 입만 벌려 받아먹던 이벨리아가 악마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적댔다.

“고기 먹고 싶어.”

“소? 돼지? 양? 사슴? 바로 잡아 올게.”

“물고기.”

“물고기. 5분만 기다려.”

이벨리아는 벌떡 일어나려는 악마의 목에 매달렸다.

“같이 가. 나 잘 잡아.”

“……좀 쉬지.”

“밤 내내 못 쉬게 한 게 누군데.”

가볍게 눈을 흘기며 뒤로 돌아 벽을 보고 있으라고 명령한 다음, 편한 원피스로 갈아입고 두 팔을 벌렸다. 안아줘.

마치 그릇 하나 드는 것처럼 가벼이 들어 올리는 품에 안온하게 안긴 채 저택 바로 앞바다로 간 이벨리아는 오랜 친구를 불렀다.

“운디네!”

[계약자! 혼인 축하…….]

퐁 튀어나와 밝게 외치던 운디네는 악마의 품에 안긴 계약자를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할 마음이 사라졌어. 질투나.]

본디 이 악마 앞에서는 꼬리를 말고 도망치기 바빴으나 계약자가 있는 지금이라면 무섭지 않다.

악마는 계약자 앞에서라면 착한 초식동물처럼 구니까.

살랑살랑 유영해서 다가온 운디네가 이벨리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마치 고자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거 알아, 계약자? 예전에 저 악마가 나를 막 부리부리 노려보면서 잡아먹겠다고 협박했어.]

“네가 맛있게 생기기는 했지.”

[그럼 이것도 들어봐. 예전에 저 악마가 내 꼬리를 잡고 쥐불놀이하듯 빙빙 돌려댔어.]

“네 꼬리가 길고 탐스럽기는 해.”

[……그럼 이것도 알아? 저 악마 예전에 나를 잡고 탈탈탈 털어낸 적도 있어. 물 짜내겠다고.]

“그런 방법도 있었네. 나는 베어먹을 생각만 했는데.”

[……나는 방금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인간들의 표현을 이해했어.]

“……?”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씩씩대는 물고기를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며, 이벨리아가 손을 뻗어 요청했다.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물고기 좀 잡아다 줘.”

[그걸 물고기 모양 정령인 나한테 부탁하는 거야? 동족상잔 개념으로다가?]

“넌 물고기 모양이지만 물고기는 아니잖아. 붕어빵이 붕어를 먹는 거에 죄책감 느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지.”

[말도 안 되는 말을 그럴듯하게 하는 것도 참 능력이야.]

한껏 투덜대며, 물고기와 족보가 일절 섞이지 않은 물고기 형상 정령은 쌩하니 바다 위로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뒤.

[하나!]

“우와, 가오리다!”

[둘!]

“에엥, 뭐야. 심해 어류?”

[셋!]

“상어! 이건 맛있지!”

커다란 물고기 셋을 잡아 뭍으로 휙휙 던진 운디네가 마치 큰일 했다는 듯 꼬리로 이마를 훑으며 돌아왔다.

[자! 됐지?]

“응, 충분해!”

이벨리아는 불새 형상의 카사를 불러내 평평한 돌 아래 깔고 그 위에 물고기를 구웠다.

그 만행에 굳어버린 운디네와 돌 아래에서 화르르 불을 내던 카사가 번갈아 신세를 한탄했다.

[정령 권익 보호 위원회를 발족합니다. 땅땅땅.]

[내가 고기 굽는 데 쓰이다니…….]

[정령 착취의 끝판왕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왕님, 저는 불판의 정령이 되었어요…….]

[악마가 옮았다. 내 계약자도 이제 악마다.]

재잘대는 정령들을 바라보며 이벨리아가 픽 웃었다.

“뭐 어쩔 거야. 너희 왕들도 내 앞에선 물고기 굽고 그러는데.”

[……생각해보니 그렇네.]

[나 얼마 전에 우리 왕께서 계약자가 버린 쓰레기 치우시는 것도 봤어.]

정령계의 진정한 실세는 이 인간이다.

낚시 정령과 불판 정령은 입을 다물고 얌전히 고기를 구웠다.

***

백사장에 모닥불까지 피우게 하여 두 정령의 노동력을 착취, 아니, 빌리고 돌려보낸 뒤.

야생의 원숭이처럼 물고기를 뜯던 이벨리아가 말했다.

“맞다. 토끼 키가 좀 자란 것 같은데. 내 기분 탓이야?”

“자랐어. 조금.”

“모습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치사하게 키도 늘린 거야? 나 열심히 자랐는데 시야 차이가 계속 비슷하잖아!”

“늘린 거 아니야. 누가 구원해준 덕에 나도 이제 시간에 편입되었으니까, 키도 조금 자라는 게 당연하지.”

그 말에 이벨리아는 들고 있던 물고기를 내려두었다. 그리고 지금껏 두려워서 미처 묻지 못했던 질문을 꺼냈다.

“……있잖아, 토끼는 수명이 얼마나 돼?”

답이 곧장 돌아오지 않는다. 침묵에서 답을 짐작한 이벨리아가 말을 이었다.

“나는 인간이야. 대정령사라서 보통 인간들보다 수명이 조금 길다고는 해도, 그래도 150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거야.”

“…….”

“……너 혼자 남을 먼 미래가 걱정돼.”

그러자 푹 숙인 머리 위로 따뜻한 손길이 와닿는다.

“이브. 듣고서 나 혼내지 마.”

“……?”

“신을 만났어.”

“신을? 언제?”

“단층에서 나올 때.”

백사장 위 환히 타오르는 불빛을 바라보며 아가레스가 천천히 설명했다.

시간을 모두 걸어 신물을 되돌리고 다시 현세로 돌아오려던 그때. 잠시 시간을 잡아둔 신은 흐릿한 신형으로 아가레스의 앞에 나타났었다.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죄업에 비해 가혹했던 형벌에 대한 배상. 그리고 기어코 과거의 죄업을 벗어낸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 들어주겠다고.

배상으로 아가레스는 요구했다.

“너와 같은 시간을 걷게 해달라고. 해서, 너의 죽음도 함께 맞을 수 있게 해달라고.”

보상으로 아가레스는 간청했다.

“만일 네가 원한다면, 죽음 이후에도 너를 따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런 게 가능해……?”

까마득한 신의 권능에 입을 벌린 부인의 볼을 쓸며 악마가 말했다.

“안타깝게도, 나의 배상과 보상으로는 너의 죽음에까지만.”

“……그럼 그 이후는 못 해준대?”

“죄 없는 네가 단층에 뛰어들어 기어코 세계의 시간을 복구한 것. 그 전례 없는 공로를 참작해, 네가 원한다면 사후에도, 또 다음 생까지도.”

“……!”

너와 나의 시간이 달라 늘 걱정이었던 이벨리아의 얼굴에 그제야 환한 웃음이 피었다.

어떻게 맺은 연인데. 우리가 어떻게 엮은 혼인데.

고작 150년, 한평생만 쥐고 있기에는 아쉽지.

“큰일이네, 토끼. 나 집착 강한데. 욕심도 많고. 이번 생도 모자라 다음 생도 나한테 잡히게 생겼다.”

“문화제에 출품된 소설 중에 ‘집착 공녀님이 후작을 길들인다’ 뭐 그런 제목이 있었어.”

“마음에 드는데?”

“나 또한. 그게 현실이 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너는 모를 거야.”

속삭이며 악마가 웃었다.

“난 이미 네게 길들여졌으니, 네가 집착만 해주면 완벽해.”

네 집착은 내겐 은총이나 다름없거든.

***

둘의 신혼여행은 길었다.

계절의 경계를 넘었음에도 돌아올 생각 따위 없이 유유자적 시간을 즐기던 둘은, 기다리다 못해 이 섬 저 섬 헤매 찾아온 엔리르의 불호령에 무진장 싫다는 표정을 하고 수도로 복귀했다.

돌아온 둘은 인간계의 이바스 저택과 마계의 마왕성 모두에 살림을 차렸다. 내키는 대로 두 세계를 오가는 식이었다.

오늘은 이바스 공작저.

눈을 간질이는 햇살에 잠투정하며 느리게 눈을 뜬 이벨리아는 혼례 이후 늘 그래왔듯 웃음을 터뜨렸다.

꿈에서 깨도 또 꿈인 것처럼, 매일 황홀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내가 눈을 뜨면 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다. 가만히, 또 고요히.

그러다 내가 너와 눈을 마주치면 너는 내 이마와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만개하듯 웃는다.

너른 품에 담고 머리칼을 쓸어주며 ‘잘 잤어?’ 낮게 잠긴 목소리로 묻고.

더 자고 싶다고 칭얼대면 어깨 끝까지 이불을 덮어 토닥여주며, 배고프다고 투정하면 손수 커다란 빵을 구워 가져다준다.

매 순간 행복하게 살아왔건만, 혼인 이후 와닿는 기쁨은 지난날의 그것들과는 결이 달랐다. 마치 포근히 감싸는 소파에 안락하게 등을 기댄 느낌이랄까.

오늘도 아가레스가 따라주는 오렌지 주스 한 컵을 마시고 졸린 눈을 비비던 찰나였다.

“이리 오너라-!”

저택 밖, 익숙한 목소리가 예의도 없이 아침 댓바람부터 빽 소리를 질러댄다.

인상을 찌푸린 이벨리아가 발코니를 열고 저 아래 장난기 어린 눈을 반짝이는 세드릭에게 답했다.

“네가 오너라!”

“허어, 우리 동생이 손님 맞는 법을 영 모르는구나.”

“이 아침에 찾아오는 객은 손님이 아니라 손놈이야! 대체 베르타샨은 어쩌고 맨날 이렇게 놀러 오는 거야?”

“페르세스의 바람을 타면 금방이니라.”

“그 이상한 말투 집어치워. 누가 영주 아니랄까 봐 꼰대 바람이 제대로 들었네.”

포옥 한숨 쉰 이벨리아가 아가레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잠시만 기다려, 토끼야. 금방 쫓아내고 돌아올게.”

그렇게 1층으로 내려가던 그때.

- 쾅쾅쾅!

설상가상으로 저택 문이 부서져라 두들기는 소리도 들린다.

“이제 문까지 이렇게 예의 없이 두드…….”

버럭 성질내며 저택 문을 쾅 열어젖힌 이벨리아는 보았다.

“……네놈들이 왜 여기서 나와?”

헤롤드를 앞세운 아르티나의 미친 멍멍이들이 저택 앞에 꼬질꼬질하게, 또 옹기종기 서 있는 것을.

“오, 아가씨! 좋은 아침입니다!”

“아니, 너희 때문에 나는 좋은 아침 아닌데…….”

곧 내 남편 품에 안겨서 밥 먹을 시간인데…….

헤롤드가 이벨리아의 뒤를 따라 나오는 아가레스에게 번쩍 손을 들며 요구했다.

“이봐, 악마! 욕실 좀 빌리자!”

“……아르티나에도 욕실은 있을 텐데?”

“아, 욕실. 욕시이이일. 응? 열심히 훈련했더니 덥다고!”

“……훈련도 아르티나 공작저에서 한 거 아닌가?”

“오늘은 야외훈련! 돌아가는 길인데 요 이쁜 저택이 딱 서 있지 뭐야? 꼭 어서 오세요-, 하는 것처럼?”

위아래 없는 기사단의 친화력은 대부분 잘 먹혔지만, 철벽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악마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아가레스가 단호히 거절했다.

“아침부터 신혼집에 쳐들어오는 개차반들에게 내어줄 욕실은 없다.”

세드릭만 안으로 들인 아가레스가 문을 쾅 닫으려던 찰나.

잽싸게 문틈으로 발을 밀어 넣은 헤롤드가 씨익 웃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해둔 비장의 수가 있지.

“먼 훗날, 아가씨와 네놈 사이에 어여쁜 아기씨가 탄생할 수도 있겠지?”

멈칫.

문을 잡고 있던 아가레스의 손에 힘이 빠졌다. 일단 더 말해 봐.

“아가씨를 꼭 빼닮아서 작은 손으로 열매를 나눠주는 그런 고운 심성의 아기씨. 그런 아기씨가 푸른 눈으로 네놈을 바라보면서 손을 뻗고…….”

악마의 얼굴이 몽롱해졌다.

“아빠, 나 인간계 곳곳을 놀러 다니고 싶어요- 하시겠지.”

“……그럴까?”

“분명해. 아가씨도 어릴 적에 그러셨거든. 그러면 누가 지켜드리겠어?”

“내가.”

“쯧쯧, 아니지, 아니지. 물론 네놈도 강하지만 인간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잖아. 대륙 전역을 왈왈 짖으며 누비는 우리 기사단의 조력도 필요하지 않겠어? 충실한 호위이자 뛰어난 안내역으로다가!”

“…….”

솔깃하다.

그러자 기회를 잡은 다른 기사들이 너도나도 외쳤다.

“수호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그 수호자가 선량하고 재치 있고 강한 기사단이라면 더더욱 좋은 법!”

멍멍이들의 별 같잖지도 않은 약 팔이에 이벨리아가 답했다.

“아니, 나는 네놈들에게 내 아가를 맡길 생각이 전혀 없…….”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 끼이이익.

거의 닫혔던 문이 다시 활짝 열렸다.

“토끼야?”

“환영한다.”

“왜 환영을 해?”

“편히 들어와라.”

“왜 편히 들어오라고 해?”

대체 왜? 어안이 벙벙한 이벨리아를 뒤로한 채 우르르 들어온 아르티나 기사단이 환호했다.

“악마 네놈 뭘 좀 아는구나?”

“거래를 아는 놈이었어!”

“딸을 매우 아끼고 말이지!”

“그럼 온 김에 씻고 우리 아가씨랑 아침을 같이 먹어볼까!”

왁자지껄 소란 속 멍하니 선 이벨리아가 어이없다는 듯 남편을 바라봤다.

“허?”

태세 전환이 빨라도 지나치게 빨라 자신도 민망했던지 아가레스가 슬금 시선을 돌렸다.

“아직 있지도 않은 아기 얘기에 뭐 이렇게 홀랑 넘어가?”

“……크흠.”

“딸 생기면 아주 인간계 영토 싹 쓸어다가 쥐여주겠다?”

“…….”

“……진짜 그럴 건 아니지?”

“…….”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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