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7화: 외전. 외사랑의 끝 (4)
다음날.
“이건 뭐야.”
“아이스크림입니다, 폐하.”
“갑자기 웬 아이스크림.”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하여 사 왔습니다. 드십시오.”
“…….”
‘드셔보시겠습니까’가 아니라 ‘드십시오’다.
먹지 않으면 입에 처넣을 보좌관의 기세에, 당최 이게 무슨 일인가 영문 모르는 루드비히는 아침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리고 하루 뒤.
“오늘은 또 뭐지.”
“개떡입니다, 폐하.”
“……뭔가 시사하는 게 있는 건가?”
“그냥 개떡입니다. 개떡이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하여 사 왔습니다. 드십시오. 개떡.”
그만 말해. 개떡.
이쯤 되니 루드비히는 조금 무서워졌다.
‘혹시 살찌워서 잡아먹기라도 할 속셈인가.’
최근 귀족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는 유능한 보좌관이 이상 행동으로 자신의 간담도 서늘하게 만들고 있다.
마침 들어온 이크리안이 반색하며 불쑥 손을 뻗었다.
“오. 개떡! 나도 좋아하는데!”
“…….”
“좋아하는데…… 먹으면 날 개떡으로 만들 것처럼 쳐다보네, 백작.”
뻗었던 손이 얌전히 거둬졌다.
홀로 개떡을 우물거리던 루드비히는 생각했다.
‘대체 왜 이러는지 내일은 이야기를 해봐야겠군.’
***
그렇게 다음날.
아니나 다를까, 카밀라는 또 무언가 한가득 안고 출근했다.
“오늘은 뭐야.”
“도넛입니다, 폐하.”
루드비히가 깃펜을 탁 내려두었다.
“백작. 대체 왜 이래.”
“무엇이 말입니까.”
“왜 내게 매일같이 먹을 것을 가져다 바치느냐는 말이야. 황궁에 널린 것이 음식인데.”
“…….”
“이유를 물었다.”
“……신하가 군주께 음식을 진상하는 것이 문제입니까?”
“아니. 그대가 안 하던 짓을 해서 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지.”
악마님, 먹을 것 주면 좋아한다면서요. 전혀 안 좋아 보이시는데요.
속으로 부르짖으며, 카밀라는 슬쩍 고개 들어 루드비히의 홍안을 살폈다. 그러자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떨어져 내린다.
“제대로 설명하도록.”
“…….”
폐하의 눈이 엄하시다. 어영부영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히 드러났다.
카밀라 역시, 드러내기로 한 마음을 언제까지고 수면 아래 묻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어쩌면 보좌관 자리에서 내쳐질지도 몰라.’
그래도…….
카밀라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폐하. 제게는 충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
폐하께서 공녀님으로 인해 옥루 흘리시던 것을 보았던 그때부터.
아니, 조금 거슬러 폐하의 그림자로 검은 복면을 쓰고 일하던 그때부터.
아니 어쩌면…… 공녀님께서 처음 저를 폐하께 보내신 그날부터.
저는.
“감히 주제도 모르는 불충한 신이, 제국의 태양을 향해 연심을 품었습니다.”
***
루드비히는 높은 서류 더미 사이로 비치는 주홍빛 머리칼을 흘끗 바라봤다.
‘더럽게 불편하네.’
하필 카밀라가 마음을 내보인 직후에 눈치도 없는 보라색 여우 한 마리가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출근하는 바람에 딱 잘라 거절할 기회를 놓쳤다.
‘내 마음은 다른 곳에 닿아 있으니 접으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괜히 신경이 쓰인다. 한 공간에서 업무를 하고 있으니 더더욱.
‘이브도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겠군.’
그렇게 고백을 받은 이와 고백을 한 이 모두 각자의 업무에 덜 집중한 탓에, 둘의 퇴근 시간은 자연히 늦어졌다.
그사이 자기 몫의 일을 다 끝낸 이크리안이 상쾌하게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끝! 그럼 전 이만 퇴근합니다.”
“일을 다 했으면 남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도리 아니던가.”
“폐하와 백작이 내내 다른 생각 하는 것을 제가 모를 줄 아셨습니까? 업무 시간에 도덕 없이 딴짓한 이는 돕지 않는 것이 제 도리입니다.”
생긋 웃은 이크리안이 휙 나가버리자, 둘만 남은 집무실에 정적이 감돈다.
“…….”
“…….”
괜히 깃펜을 몇 번 사각거리던 루드비히가 입을 열었다.
“백작.”
“예.”
“얘기 좀 하지.”
“……어!”
“……어?”
“후작 각하께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갑자기?”
“각하! 후작 각하!”
우당탕탕. 쾅.
심히 어색한 연기로 다리를 책상에 찧어가며 도망쳐버린 보좌관.
삽시간에 홀로 남은 루드비히가 단단한 팔로 눈가를 가렸다.
“후우…….”
황제라는 위치에 있다 보니, 약에 취한 여인이 얇은 옷 하나 걸치고 품으로 뛰어든다거나 아비를 따라 입궐했다는 여인이 치마를 걷고 넘어지는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외양상 절절해 보이는 여인들의 고백을 대수롭지 않게 거절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다.
그가 외사랑을 해보았으니까.
누구보다 깊이 앓아본 적이 있으니, 거짓으로 흉내 내는 이들을 걸러내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렇기에 루드비히는 알 수 있었다.
백작의 마음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이벨리아를 향한 그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
그날 이후로도 카밀라는 매일 먹을 것을 올려두었다.
그러나 루드비히가 거절할 기회만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 그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다. 외근이다, 출장이다, 온갖 이유를 대면서.
어김없이 책상에 가득 쌓인 색색의 마카롱을 보며 루드비히가 한숨을 내쉬었다.
“백작은. 오늘도 없나?”
“외근이랍니다.”
“핑계인 것 같은데.”
“핑계라기엔 갈 때마다 뭘 물어오긴 합니다.”
“그럼 이건 대체 언제 놓고 간 건데.”
“글쎄요? 제가 왔을 때도 이미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하나 먹어도 됩니까? 개같은 소리에 반박하다 보니 당이 떨어집니다. 어지러워요.”
루드비히는 앞에 놓인 마카롱 중 색이 가장 예쁘지 않은 것을 이크리안에게 던졌다.
“저는 보라색이 먹고 싶습니다.”
“…….”
“보라색 주세요. 보라색.”
칭얼거림에 보라색 마카롱 하나를 툭 던지며 루드비히가 혀를 찼다.
델포이 백작.
누가 봐도 나를 피하고 있지 않은가.
마음 접으라 말할 틈도 없이 촉새처럼 어딜 그리 쏘다니는지.
그렇지 않아도 일이 바쁜 마당에 괜히 신경 쓸 것 하나가 늘었다.
최근 들어 자주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루드비히는 무슨 맛인지 느껴지지도 않는 마카롱 하나를 입에 쑤셔 넣었다.
***
무려 두 달 뒤.
전보다 조금 살이 오른 루드비히는 탁상 위에 쌓인 상소문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양이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래, 범람하고 있다.
폭우에 강이 넘치듯 상소문이 탁상을 넘어 여기저기 깔려 있으니까.
[역대 황제 폐하들께서는 약 13세에서 16세 사이에 약혼하시고, 17세 성인이 되자마자 혼인을 하시어 제국의 기반을 바로 세우시고 후사를 든든히…….]
[이미 약관을 훌쩍 넘은 폐하께 아직도 비가 없다는 것은 제국민들을 불안케 하는…….]
알아. 안다고.
내가 너무 늦은 거, 나도 안다고.
루드비히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상소문을 쏟아버렸다.
이제는 귀족들뿐만이 아니라 제국민들까지 우리 황제 폐하께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 아니냐는 불경한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신전들은 신도들을 모으기 위해 앞다투어 제국에 커다란 재앙이 도래할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신탁을 내놓았고.
상황을 가늠하던 이크리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폐하. 이런 말씀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국혼을 더 미루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귀족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긋지긋하군.”
방계 황족이라도 있었다면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설령 그가 불의의 사고로 죽어버리더라도 방계가 황위를 이으면 되니까.
그런데 하필 선대 황제인 칼라일의 배다른 형제들은 선황 치세 초기에 역모를 꾀하다가 모두 참수당했고, 그의 이복동생이었던 에드윈도 목이 날아가 버렸으니…….
당장 그가 죽어버리면 형식상의 황위 계승권을 가진 아르티나 공작가로 황관이 넘어가게 생긴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그 가문은 황위 따위 줘도 안 가진다는 신념을 가진 가문이지 않은가.
욱신대는 머리 때문에 입안을 깨물며 루드비히가 손을 휘저었다.
“그만 나가.”
“오늘 답을 안 듣고 나가면 귀족들이 제 탐스러운 머리칼을 뜯을 텐데요.”
“마법 뒀다 뭐 해. 튀어.”
“제 고상한 마법은 튀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닌데…….”
구시렁대며 창문에 다리를 걸치던 이크리안이 일순 멈칫하더니 흘끗 뒤를 바라보고 말했다.
“폐하.”
“왜.”
“그 깊은 성심을 모르지 않습니다.”
“…….”
“그래도 폐하께서는 이 제국의 아버지 아니십니까.”
“…….”
“공녀님께 부강한 제국을 만들어드리겠다 하셨던 약조, 부디 잊지 마십시오.”
폐하께서 옛사랑에 갈피를 못 잡고 휘청이시면, 그 약조는 이 제국과 함께 무너질 테니까요.
***
뿌옇게 흐린 새벽.
카밀라는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오늘의 먹을 것은 크레페다. 오렌지가 가득 든 크레페.
‘이것만 조심히 놓고 오늘은 북부로 외근을…….’
폐하의 책상 위에 과일과 크림이 풍성하게 든 크레페를 조심스럽게 내려놓던 그때.
- 콰앙.
집무실 문이 열리고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더니.
“잡았다. 내 보좌관.”
지엄한 음성이 들려온다.
그 자리에 딱 굳은 카밀라가 낭패라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 괴상한 것만 두고 오늘은 또 어디로 튀려고 했나.”
“튄 적 없습니다.”
“내가 그대 얼굴을 못 본 지가 벌써 두 달이야.”
“……저를 찾으셨습니까?”
“보좌관이 매일 도망을 다니는데 안 찾는 군주가 있나.”
“……그게 다입니까?”
“답할 것도 있고.”
“…….”
카밀라가 고개를 푹 숙였다.
당연히 거절하실 테지.
아직 성심에 공녀님이 가득 들어차 계시니.
긴장으로 떨리는 카밀라의 눈이 황제의 책상 위 가득 놓인 상소문의 제목을 빠르게 훑었다.
더는 혼인을 미루지 마시라는 절절한 탄원들.
이러다가 제국이 기운다는 오만한 협박들.
카밀라는 루드비히가 입을 열기 전에 선수를 쳤다.
“폐하. 국혼을 하셔야 합니다.”
“그대까지 그 소리인가.”
“언제까지고 혼인을 미루실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폐하는 폐하시니까요.”
“…….”
“공녀님을 연모하시는 폐하의 성심에 다른 이가 찰 리 없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카밀라가 질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니 폐하, 저를 이용하십시오.”
“……?”
“지위를 탐내지 않습니다. 감히 제국을 발아래 둘 생각도 없습니다. 언감생심 폐하를 욕심내지도 않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다만, 이 제국을 더욱 부강하게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다만, 당신의 곁을 지키고 싶습니다.
“폐하께 좋은 반려가 되어드릴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그저, 당신의 무기이자 지지대가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폐하. 저는 폐하의 정치를 함께 할 가장 좋은 동료가 될 수는 있습니다.”
나의 군주. 저는 일평생 그것만으로도 족합니다.
그렇게 미처 끊을 틈도 없이 흐른 고백.
“…….”
“…….”
탑처럼 쌓인 상소문.
신전에서 날아온 신탁.
며칠 전 골목 사이에 나붙었다는 방.
새벽부터 국혼을 부르짖는 궁 밖의 소음…….
제법 오래도록 모든 것을 가만히 담던 루드비히가 입을 열었다.
“……내 마음은 여전히 한 사람을 향하고 있다.”
“알고 있습니다.”
“그대에게 마음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평생.”
“각오하고 있습니다.”
“하여 내 곁은 지옥이 되겠지.”
“마음먹기 나름이지요.”
“…….”
“…….”
“황후는, 쉬운 자리가 아니다.”
“제국의 하늘이 되지 않겠습니다. 제국의 땅이 되어 위의 모든 것을 떠받치며 누구보다 그 무게를 깊이 새기겠습니다.”
눈앞의 주군으로 인해 기어코 이 제국을 사랑하게 된 카밀라가 맑고 곧은 눈으로 선언했다.
루드비히는 고요히 시선을 내렸다.
여전히 책상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그 옛날의 꽃잎. 네가 내게 처음 친구라고 부르며 건네주었던 그것.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여전히 찬란한 추억을 손으로 쓸며, 루드비히가 답했다.
“내 마음을 기대하지 마라.”
“예. 폐하.”
“그러나 그대 외에 다른 반려는 없을 거다. 약조하지.”
“……황송합니다.”
일렁이며 차오르는 흐린 여명 사이, 카밀라는 속으로 다짐했다.
폐하께서는 제국의 태양으로.
저는 제국의 대지로.
그렇게…… 당신께서 일평생 은애하실 그분께 부강한 제국을 만들어드리겠다고.
***
서로 마음이 맞닿아 혼인하는 것은 아니기에 긴 시간은 필요 없었다.
불과 열흘 뒤.
제국 천지에 곧 국혼이 거행된다는 방이 나붙었다.
“두 달 뒤라고? 아니, 이렇게 급하게?”
“폐하께서 원래 정인이 있으셨던 건가?”
“그저 제국이 워낙 시끄러우니 마음 맞는 이를 하나 들이신 거지, 뭘.”
위로는 귀족들부터 아래로는 제국민들까지. 둘 이상만 모였다 하면 죄다 국혼 이야기였다.
그리고.
황궁에서 온 전서를 연인과 함께 뜯어본 이벨리아는 작게 중얼거렸다.
“행복하면 좋겠다, 루이.”
“그랬으면 좋겠군.”
“토끼도?”
“응. 친구니까.”
담백한 정의에 이벨리아는 웃었다.
그래, 맞아. 너와 루이도 친구지.
“그거 알아, 토끼야? 카밀라는 루이를 좋아해.”
“안다. 델포이 백작이 내게 조언을 구했거든.”
“정말? 어떤 조언을 해줬어?”
“마음을 전하고 싶으면 먹을 것을 가져다 바치라 말해줬다.”
“……루이는 먹을 것 싫어해.”
“내 기준은 너라. 그놈 기준은 생각 못 했고.”
하여간. 온 세상 표준이 그저 나인 줄 아는 악마 같으니라고.
“어떨 것 같아, 둘의 결혼?”
“잘 어울릴 것 같다.”
“어떤 면에서?”
“그놈에게는 사랑이 필요하고, 델포이 백작은 그 사랑을 줄 수 있으니.”
“그럼 카밀라가 너무 외롭지 않을까?”
“아닐 거다. 연모하는 이의 곁을 차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매 순간 황홀하거든.”
“그걸 토끼가 어떻게 알아?”
악마는 간지러운 손길로 연인의 머리칼을 넘기고 드러난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해봤으니까.”
“…….”
“너와 내가 그러하듯, 그들도 행복할 거야.”
확신이 담긴 악마의 말에, 이벨리아는 진심으로 기도했다.
내 친애하는 그대들이, 부디 나보다 더욱 행복해지기를.
***
국혼을 고작 사흘 남겨 둔 오늘.
둘의 외사랑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 명의 외사랑이 끝나지 않는 이상, 다른 한 명의 외사랑도 끝날 수 없을 테니까.
그래도 달라진 점이 영 없는 것은 아니었다.
“먹을 것 좀 그만 가져와라, 카밀라.”
“먹을 것은 곧 마음의 표현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최 누가.”
“공녀님 가라사대입니다.”
“걔는 참…… 내 미각이 정상이 아니란 거 알잖아.”
“그건 걱정 마십시오. 제가 꼭 고쳐드릴 거니까.”
“쉽게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 독에 당한 지 꽤 돼서.”
“생사신의(生死神醫)라면 고칠 수 있겠지요.”
“선황께서 그자를 찾으려고 직접 발품까지 파셨지. 쉬운 일이 아니야.”
카밀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폐하를 피해 돌아다닌 두 달 동안 무엇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실마리를 잡았거든요.”
“……!”
“앞으로 맛있는 것 많이 드시려면 지금부터 위장을 늘려두셔야 하니, 이것 다 드시고요.”
어딜 그리 뽈뽈 돌아다니나 했더니만…….
아니. 그보다 이크리안 그놈이 ‘갈 때마다 뭘 물어오긴 합니다’라고 답했던 그게 생사신의의 거취에 관한 정보였던 건가.
매번 예상보다 더한 것을 해내는 수하를 향해 헛웃음을 지으며 루드비히가 검지를 까닥였다.
“거기 서류 좀.”
“이거요? 이건 제가 이미 처리했습니다.”
“언제?”
“폐하 주무실 때요.”
“……국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잠을 잘 자라고 말했을 텐데.”
“욕심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어느 분께 단단한 울타리가 될 제국을 만들어 드려야지요.”
“그 욕심은 나와 같군.”
글쎄요. 제게 ‘어느 분’이란 공녀님이라기보다는 폐하인걸요.
말을 삼키며, 카밀라는 그저 손에 쥔 것을 슬쩍 밀었다.
“와플 그만 들이밀어라.”
“쳇.”
고개 돌리던 루드비히의 눈이 이벨리아의 흔적을 가득 담은 보석함으로 가닿았다. 마치 본능처럼. 그러자 카밀라가 다시 한번 와플을 들이밀며 물었다.
“아직도 아프십니까?”
“누군가 그랬다. 얻지 못한 첫사랑은 오래도록 아픈 법이라고.”
“……그 첫사랑 외에, 세상 모든 것을 얻게 해드리겠습니다.”
오만하고 당찬 선포에 루드비히가 픽 웃었다.
“그대가?”
“제가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제가 폐하의…… 황후인걸요.”
맹목적인 사랑은 사람의 영혼을 가득 채워 단단하게 만든다.
루드비히는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누군가의 조건 없는 애정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간지러운 기분인지를.
……조금쯤은 마음을 더 열어도 나쁘지 않겠지.
그가 고개를 숙여 카밀라가 들고 있던 와플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
“……맛있군.”
창밖에서 새로이 청명한 바람이 불어온다.
네가 주었던 얇은 꽃잎이 날아갈 듯해, 루드비히는 오래된 보석함을 열어 그것을 소중히 넣어두었다.
서서히 닫혀 저 너머 가려지는 꽃잎이 꼭 자신의 외사랑 같다고 생각하며, 루드비히는 속으로 그의 오랜 친우에게 말했다.
이벨리아.
시리도록 연모했던 나의 첫사랑.
네가 내게 미안해하지 않도록.
내가 네 기쁨에 일말의 티끌이 되지 않도록.
‘……나 역시, 보란 듯이 행복해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