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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꽃밭에는 그들이 산다-302화 (302/323)

##  302화: 외전. 나는 당신의 것

계획했던 이들 모두에게 승낙을 받았으니 이제 남은 건 청혼뿐이다.

이른 새벽. 마계.

아가레스는 가진 것 중 가장 단정한 옷을 갖춰 입었다.

나름대로 신경을 쓴다고 썼는데, 거울을 보니 그냥 평소와 똑같다.

‘……치장 같은 걸 해본 적이 있어야 알지.’

그렇다고 이 이른 시간에 로노베나 다른 부하들을 불러 모아 나 지금 청혼하러 갈 것이니 단장을 도우라고 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가레스는 옅게 한숨 쉬며 커프스단추를 잠갔다.

‘기회 되면 렐리안에게 좀 봐달라고 해야겠군.’

열린 창을 통해 겨울을 맞이하는 새벽 특유의 향이 스며든다. 청량하면서도 가볍고, 그러면서도 그 어느 계절보다 숨 가득 차오르는 공기.

탄생 이래 가장 또렷한 새벽, 악마는 고요히 방문을 열었다.

흡사 각성 상태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심장이 제멋대로 펄떡인다.

영명한 머릿속에서는 무슨 말을 어떻게 내뱉어야 할지 시뮬레이션이 끊임없이 돌아갔다.

그때였다.

성의 아래층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

이브는 공작저에 있고, 부하 놈들은 이 시간에 여기 있을 리가 없…….

“……다들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주군!”

“기다렸습니다, 주군.”

“왜.”

“왜긴요.”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로노베가 주군의 머리와 옷을 스윽 훑더니 이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주군께서 이러고 청혼하러 가실까 우려되어서죠.”

“……이상한가?”

“네. 아니, 어머, 나도 모르게 본심이 냅다…….”

“…….”

치장에 조예 깊은 야무진 손길이 불쑥 다가오더니 살짝 구겨진 옷의 끝자락을 매만졌다.

도움의 손길을 얌전히 받아내며 아가레스가 물었다.

“어떻게들 알았지?”

“왕의 오라버니가 말해줬습니다.”

“세드릭?”

“아르칸 아르티나요.”

“그놈이 왜?”

“저와 같은 걱정을 했던 모양이지요. 주군께서 오늘 청혼을 하실 예정이니, 미리 잘 좀 살펴달라고 전하던걸요.”

충실히 답하던 로노베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안 돼. 이건 아니야. 답이 없어. 싹 갈아엎어야 해.”

“……그 정도인가?”

“네. 아니, 어머, 나도 모르게 또 본심이…….”

“…….”

태어나 처음으로 수하 앞에서 을이 된 주군.

아가레스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내려갔다.

“올라오세요, 주군. 옷 갈아입고 머리도 다시 하시는 게 좋겠어요.”

그러자 반 발짝 뒤에서 기웃거리던 마르바스와 바르바토스가 말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해? 우리 주군은 그런 거 안 해도 멋있으신데?”

“맞다. 과하게 법석을 떠는군.”

아가레스의 어깨가 살짝 올라갔다.

“쯧쯧, 가련한 모태 솔로 악마들아. 본판이 잘났으니 매양 똑같아도 괜찮겠지, 하는 그런 방심이 여인을 질리게 하는 법이란다.”

아가레스의 어깨가 다시 내려갔다.

그렇게 주군을 이끌고 2층으로 올라가던 로노베는 뒤를 졸졸 따라오는 악마들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네놈들은 왜 죄다 올라와?”

“우리도 궁금해.”

뭐 어쩌라고. 도움 하나 안 되는 것들이 잔뜩 올라와봤자 번잡하기만 할 뿐이다. 로노베가 마치 잡새를 쫓듯 손을 휙휙 휘저었다.

“죄다 꺼져.”

“그냥 둬라.”

“예?”

“다들 궁금할 법도 하니.”

주군께서 왜 이러시지? 시끄럽고 어수선한 거라면 학을 떼시는 분께서?

의문 어린 시선을 느낀 아가레스가 답했다.

“……좋은 날이니까.”

좋은 날이니 다들 함께하면 더 좋은 날이 될 거라는 그런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건가? 다른 존재도 아닌 주군께서?

“송구하지만, 혹시 주군의 탈을 쓴 밥풀 폐하……?”

“아니다.”

“어어, 예, 뭐…… 주군께서 그러시다면…….”

당황하여 잠시 굳어 있던 로노베는 이내 부지런히 움직이며 직접 옷을 수선했다.

건넨 옷을 갈아입고 나온 주군에게 깔끔한 부토니에를 꽂아주며, 몽마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좋아, 이 정도면 됐어.”

“우와아, 땅콩 폐하 기절하겠네!”

“왜 평소에 이렇게 하고 다니지 않으셨습니까, 주군?”

부하들의 열렬한 반응에 아가레스가 거울로 시선을 돌렸다.

“……!”

“어떠세요? 마음에 드시지요, 주군?”

“유능하군. 고맙다.”

“……네?”

“유능하다고.”

“아니, 그거, 말고…….”

“고맙다.”

“……맙소사.”

로노베가 입을 틀어막았다. 주위의 악마들 역시 모두 얼어붙었다.

삽시간에 고요해진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아가레스는 그저 담담히 말했다.

“다들 새벽부터 고생 많았다. 잘 다녀오지.”

“…….”

“…….”

메마른 사막처럼 건조하게 부유하던 주군께서 근래엔 곧잘 작은 미소를 띠신다.

세상을 증오하여 미래를 외면하던 눈은 내일을 향해 반짝였다.

죽음을 바라 주변 그 어느 것에도 정 주지 않던 마음은 곁을 나눈 이들에게 조금씩 가닿았다.

수하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리도 기꺼운 변화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주군께서 그들의 하늘이라면, 왕께서는 마계의 태양이셨다.

“자, 잘 다녀오십시오, 주군!”

“긴장하지 마시고요!”

“저희는 혼약식을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만면에 웃음꽃을 띤 악마들은 하늘이 태양을 온전히 품기를, 하여 태양이 하늘을 오래도록 밝히기를, 온 마음 다해 기도했다.

***

시끌벅적한 배웅을 받은 아가레스는 객쩍은 표정으로 인간계의 꽃집에 들렀다.

이른 새벽임에도 부지런하게 향기를 흩뿌리는 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가레스는 개중 가장 맹목적으로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꽃을 가리켰다.

“아스포델.”

“얼마나 드릴까요?”

“있는 거 전부.”

첫 손님부터 통이 크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 주인이 흰 꽃을 담뿍 집어 들고 야무진 손으로 포장하며 말했다.

“참 아름다운 꽃이지요?”

“…….”

“꽃말은 생김보다 더 아름다운데. 혹 무엇인지 아십니까?”

알다마다.

바로 그 꽃말 때문에 굳이 이 꽃을 찾는 건데.

아가레스가 꽃송이를 살짝 매만지며 답했다.

“나는 당신의 것.”

참으로 제 마음 같은 꽃말이라,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피었다.

***

소담스레 핀 꽃을 들고 공작저로 걸어가는데, 해가 다소 가리더니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

아가레스의 표정이 굳었다.

너를 닮은 말간 날씨에 네 덕분에 사랑하게 된 세상을 눈에 가득 담으며 청혼하려고 했는데…… 난데없이 비라니.

심지어 구름이 해를 가리는 바람에 기온이 떨어져 쌀쌀하기까지 하다.

“설득 명단에 신도 넣었어야 했나.”

그랬으면 하필 이날 날씨가 이 모양이 되는 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헛된 생각을 하며 차선책을 궁리하던 찰나.

귓가에 작은 웃음소리가 스친다.

“날씨를 왜 걱정해?”

“……페르세스?”

“세계는 신의 관할이지만, 최소한 저 비구름은 내 지배 아래 있는걸.”

은빛 숨결 한 번에 하늘을 뒤덮고 있던 구름이 산개한다. 그 사이로 언제 가렸냐는 듯 새파랗게 맑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은 내가 치워주지.”

땅에 고여 있던 물과 공기 중에 남아 있던 습기는 엘라임의 손짓에 둥실 떠올라 맑은소리를 내며 깨져 나갔다.

“세계를 데울 줄도 모르는 능력 없는 악마. 에잉, 쯧쯧.”

투덜대며 불망나니가 가볍게 발을 구르자, 가을의 끝 무렵이라 서늘했던 기온이 한낮의 봄처럼 온기를 품었다.

그리고.

“너 설마 그 꽃 들고 가서 청혼하려는 거야?”

“그렇다.”

“꽃이 덜 싱싱한데.”

“어쩔 수 없다. 꽃집에 있었던 것이니.”

“으음, 안 되지, 안 돼.”

단호하게 고개 저은 트로이가 쪼그려 앉아 땅을 토닥였다.

그러자 쏘옥 고개 내미는 작은 새싹. 순식간에 자라 봉오리를 맺더니 퐁 터져 꽃을 피워낸다.

지닌 꽃다발을 빼앗고 같은 꽃을 한아름 안겨주며 트로이가 말했다.

“타이밍 봐서 주변에 온통 같은 꽃을 피워줄게. 일단 이거 들고 가.”

“…….”

아가레스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풍성하게 핀 아스포델을 받아들었다.

이놈들이 죄다 몰려나와 한마음 한뜻으로 도움을 주는 상황이 영 어색하다.

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가. 악마가 탐색하듯 물었다.

“왜 돕는 거지?”

“뭘 당연한 걸 물어.”

“우리 말랑이한테 하는 청혼이니까!”

“내 소중한 계약자에게 하는 청혼은 완벽해야 한다.”

“이브는 다정한 아이잖아.”

아. 그렇다면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기꺼운 마음으로 도움을 받아들인 아가레스가 몸을 돌렸다.

저벅저벅 걸어가는 악마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페르세스가 불쑥 입을 열었다.

“하여간. 눈치 더럽게 없어.”

“……?”

“말로 안 하면 영영 모를 것 같아서 굳이 말로 짚어주자면…… 뭐, 좀 낯간지럽긴 하지만, 너는 우리의 친구이기도 하니까!”

“……!”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는 악마를 향해 이프리트도 볼을 긁으며 말했다.

“밉상이긴 해도 우리가 같이 한 세월이 어디 하루 이틀이야?”

일순 어색한 침묵.

왕들을 바라보던 아가레스가 되읊었다.

“……친구.”

“그 입에서 들으니까 별로다.”

“응. 앞으로 그 단어는 마음속에만 묻어두자.”

“다녀와라, 멍청아.”

“우리도 이제 행복할 때가 되긴 했어. 그치?”

상황과 호칭 모두 익숙하지 않은 건 왕들 역시 마찬가지.

목각인형처럼 어색하게 선 옛 동료들, 아니, 친구들을 바라보며, 악마가 서툴게 답했다.

“……고맙다.”

***

수하들과 친구들의 도움을 한껏 받아 공작저에 도착한 아가레스는 이른 아침부터 부산스러운 기척에 고개를 기울였다.

자주 드나들어 얼굴을 익힌 문지기에게 까닥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

아르칸과 두 보랏빛 머리가 정신없이 손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그들의 머리 위에선 털 뭉치 용이 앞발을 휘저으며 지휘 아닌 지휘를 하고 있었다.

“얼른! 얼른! 곧 그놈이 온다고!”

“이거면 됐나요, 스승님?”

“으음. 흡족하다.”

“이건 어떻습니까, 용님.”

“넌 마탑주 자리를 내려놓길 아주 잘했어.”

“제가 만든 풍등이 제법 괜찮다는 말씀이신지요?”

“아니. 미적 감각이 아주 형편없다는 말이다. 마법은 손재주인데, 네놈은 손재주가 아주 괴상해.”

“야. 이건 어때.”

“풍등을 만들라고 했잖아. 그건 대체 뭐야?”

“풍등인데.”

“……집주인 형아는 그만해. 도움은커녕 방해만 돼. 저쪽으로 가서 형아 손에 죽어간 풍등 재료에다 묵념이나 해.”

복작복작한 정원 쪽으로 걸어간 아가레스가 물었다.

“뭘 하는 거지?”

그러자 렐리안이 만든 풍등을 띄우던 엔리르가 답했다. 뭘 얼마나 열심히 한 건지, 붉은 털에는 검댕이 잔뜩 묻어 있었다.

“보면 몰라? 풍등 띄우잖아.”

“무슨 행사라도 있나.”

“뭐야. 뭘 의뭉을 떨어. 오늘 청혼한다며.”

“……그건 그런데.”

“나한테 허락받으러 왔었고, 나는 허락을 해줬고.”

“그래서 이걸 하고 있었다고?”

“우리 누나는 세계에서 제일 소중하고. 네놈은 내 친구고.”

정원 앞에서 마력 담은 손으로 풍등을 직접 만들고 있던 이크리안과 렐리안도 거들었다.

“저는 일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혼약 지지하고요.”

“저는 아주 옛날부터 두 분의 큐피드였잖아요?”

밝은 햇빛에도 빛바래지 않는 마법으로 두 마법사가 빚고, 한 용이 띄운 풍등이 공작저 하늘을 가득 수놓는다.

마치 하늘에 색색의 문양을 수놓은 것처럼.

“…….”

저 안쪽 어딘가가 괜히 울렁거려 악마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정원 사이 못 보던 흰색 그네가 보인다. 둘이 앉으면 딱 알맞을 크기의 고즈넉한 장식물. 악마의 시선을 따라가던 아르칸이 말했다.

“아버지께서 해두셨다. 둘이 이야기 나눌 때 앉아도 된다고.”

“…….”

또 시선을 조금 돌리니, 화사한 천으로 덮인 테이블과 그 위에 올려진 먹음직스러운 다과가 보인다.

“아. 그건 어머니께서. 긴장되면 먹으라고 하셨다.”

“…….”

눈길 닿는 곳마다 죄다 배려의 손길이다.

여전히 익숙지 않은 감정이 꼭 넘칠 것처럼 불쑥 치고 올라온다.

과거 이벨리아로부터 꽃잎을 받았을 때의 그 기분. 쿠키를 받았을 때의 그 느낌.

감사. 감동. 뭐 그런 간지러운 것.

악마가 어색하게 정원을 둘러보던 찰나.

준비가 얼마나 잘 되고 있나 확인하러 나온 휴고와 엘리시아가 꽃을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아스포델이로군.”

“어머, 당신도 나한테 저 꽃 많이 주는데. 꽃말이…… 나는 당신의 것, 이거던가?”

휴고가 아가레스를 바라보며 쯧 혀를 찼다.

“요사스럽긴.”

“앞으로 많은 지도 부탁한다.”

“허. 요망하기까지.”

팔불출 정도라면 지지 않는 남편과 예비 사위를 뿌듯하게 바라보며 엘리시아가 물었다.

“근데 손을 왜 그렇게 달달 떨고 있어?”

“……긴장된다.”

“그대가 긴장도 해?”

“이브 앞에서는 늘.”

신에게도 맞섰으나 딸 앞에서는 마냥 약자인 악마.

상상도 할 수 없는 간극에 엘리시아가 픽 웃으며 조언했다.

“우리에게 한 것처럼만 하면 돼. 당당하게. 진심을 가득 담아서.”

잠시 공작저에 와 있던 세드릭이 생글 웃으며 말했다.

“자아. 그럼 얼추 다 된 것 같고. 내가 우리 아가만 성공적으로 데리고 내려오면 되는 거지?”

“……부탁한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면 더 기다려줘?”

크게 심호흡하며, 악마가 고개를 저었다.

결연한 표정, 미세하게 떨리는 몸, 희게 질린 손끝, 경직된 입가.

자리를 피해 안으로 들어가며 엘리시아가 속삭였다.

“좋-을 때다.”

***

2층으로 올라간 세드릭은 한창 단잠에 빠져 있던 이벨리아를 흔들었다.

“그만 자고 일어나야지, 잠꾸러기 이브.”

“……미인은 잠꾸러기랬어.”

“오늘만큼은 그랬다간 후회할 텐데.”

“……?”

심상치 않은 오라버니의 어조에 이벨리아가 비몽사몽 눈을 떴다.

“으으…… 왜, 무슨 일인데……?”

“자, 일단 일어나자.”

이끄는 손길에 따라 몸을 일으키자 폭포 같은 금빛 머리칼이 허리께까지 흘러 찰랑인다.

소식을 듣고 다급히 들어온 테사가 잠옷을 찢듯이 벗겨내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혀준 다음 머리를 슥슥 빗겨주었다.

“자, 잠깐, 아야! 살살 좀 해, 테사!”

“아이고,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

답하지 않은 채로 테사가 이벨리아의 등을 떠밀었다.

“자아, 다녀오세요, 우리 아가씨.”

“그래, 나가자, 이브.”

“어딜 가냐니까?”

세드릭은 미리 준비해뒀던 변명거리를 내뱉었다.

“오늘 세토가 소를 잡았대.”

“소를?”

“지금 온실 앞에서 바비큐를 한다던데.”

“지금?”

바비큐는 못 참지.

이벨리아는 조르르 세드릭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가 저택 문을 열어젖혔다.

그와 동시.

“……어?”

문을 열던 그 자세 그대로 발이 뚝 멈춘다.

구름 조각 하나 없는 쾌청한 날씨.

말간 창공을 가득 메운 화려한 풍등.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일제히 피어나는 흰 꽃.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멋진 옷을 입고, 한 손엔 꽃다발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작은 상자를 든…… 나의 연인.

“……이게, 무슨…….”

얼떨떨하여 묻던 이벨리아가 끝말을 삼켰다.

긴장하는 법 없는 네가 눈에 띄게 손을 떠는 것이 보여서.

머뭇거리는 법 없는 네가 신중히 말을 고르는 것이 보여서.

꾸미는 법 모르는 네가 이른 새벽부터 얼마나 부단히 움직였을지가 보여서.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이 청혼을 위해, 모두의 축복 속에 내게 다가오기 위해, 네가 얼마나 노력했을지가…… 전부 보여서.

“이벨리아.”

하여, 다정히 부르는 음성에 눈물이 가득 들어찬다.

이벨리아는 홀린 듯 천천히 연인에게 다가갔다.

악마가 영혼을 바치듯 한쪽 무릎을 꿇어 자세를 낮추었다.

감히 다른 말을 덧붙일 수 없어 그저 한껏 마음 눌러 담아 전하는 진심.

“네가 내겐 빛이자 숨이라서…… 욕심내지 않을 수가 없었어.”

“…….”

“나와 혼인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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