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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꽃밭에는 그들이 산다-283화 (283/323)

##  283화: 루드비히의 대관식

이벨리아가 실로 압도적인 대관식을 치른 이후.

“…….”

정당하게 즉위한 왕에게는 다시 없을 충성을 바치는 악마들인 만큼 이벨리아의 왕좌 발치에는 오만가지 귀물들이 놓여 있었다.

휘황찬란한 뇌물이자 공물을 삐딱하게 내려다보던 이벨리아가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거 가져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러자 눈앞의 악마가 흘끗 눈치 보며 헤헤 웃었다.

“하, 하지만 이게 왕의 위엄에 딱 맞는 물건이라…….”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망토가? 내가 무슨 산채 두목인 줄 알아?”

“아이고, 그냥 호랑이가 아니라 영물로 떠받들어지는 은호의 가죽인데…….”

그 말에 이벨리아가 슬쩍 눈썹을 올리며 되물었다.

“여엉무울?”

“예, 영물!”

“나 주겠다고 무려 영물을 잡아버렸어?”

드디어 치하가 내려질 거라고 생각했는지, 대번에 얼굴이 환히 핀 악마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예! 제가 직접 잡아 왔습니다!”

뿌듯하게 답하자마자, 머리 위로 매운 꿀밤이 날아든다.

- 따악!

“으악! 와, 왕이시여?”

“영물을 잡아? 날 주겠다고? 영물을? 신수가 되기 직전의 신성한 그런 동물을? 이것들이 날 저주받아 죽게 하려고 그냥!”

“으아아악!”

이벨리아가 폼으로 쥐고 있던 검집을 붕붕 휘두르자 기겁한 악마가 무릎 꿇은 채로 뒷걸음질 쳤다.

“다신 이런 거 가져오지 마! 잘살고 있는 영물 냅둬!”

오냐오냐해주니까 죄 없는 동물까지 잡아 올리고 말이야.

후. 한숨 쉬고 검을 대충 옆으로 던져버린 이벨리아가 아래를 바라보며 선언했다.

“앞으로 뇌물은 딱 두 개만 받겠다.”

그 말에 악마들과 마족들의 귀가 쫑긋 서고 눈이 반짝 빛났다.

왕께서 공식적으로 받겠다 선언하신 뇌물?

분명 값비싸고 귀중한 물건일 터.

가장 먼저 구해와서 왕께 바쳐야만 한다!

모두의 열렬한 시선을 받으며, 왕좌에 고고히 앉은 이벨리아가 손가락을 펼쳤다.

“하나. 오렌지.”

“……오, 오렌지?”

“둘. 마들렌.”

“……마, 마들렌?”

“이상, 끝. 그 외에 다른 건 필요 없어. 나 너희보다 돈 많아.”

방금 말한 것 외에 다른 쓸데없는 거 바치기만 해봐, 어디. 이마에 혹 나는 정도로는 안 끝날 줄 알아.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사악하게 미소 지으며 대전을 나가버리는 왕.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악마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뇌물을 좋아하시는 건지 싫어하시는 건지.”

“그냥 원하는 뇌물을 지정해서 받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야! 다 들린다! 아직 문 안 닫혔다!”

“……!”

발소리가 멀어지자 악마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성정이 어마어마하시군.”

“이봐, 내 이마에 혹 났나 좀 봐 줘.”

“아주 알차게 났다.”

악마들은 그 많은 뇌물 더미 사이에서 먹을 것만 쏙쏙 골라간 왕을 떠올렸다.

“……음식을 좋아하시나 본데.”

제아무리 똑똑한 이벨리아라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이곳은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마계.

이 수라장에서 무력이 부족한 이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단 하나, 강한 이의 곁에서 권력을 얻는 것.

그리고 마계의 절대군주는 바로 왕. 심지어 당대 왕은 전례 없이 동부까지 통합했다.

고로…….

“마계 최고의 숙수를 데려와라. 어서.”

“오렌지와 마들렌을 말씀하신 것엔 필시 깊은 뜻이 있을 터.”

“세상 모든 산해진미를 녹여 만든 마들렌을 대령하거라!”

“오렌지 속을 파서 안에 보석을 가득 채워 넣어라!”

왕의 총애에 대한 악마들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었다.

***

악마들이 오렌지와 마들렌을 구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이벨리아는 아르티나 공작저에 기별을 넣었다.

바람의 중급 정령이자 전용 전서구인 실라페를 통해 날린 내용은 간결했다.

「마계는 이제 제 겁니다. 잠시 시찰 좀 하고 가겠음.」

한 줄짜리 쪽지를 받아든 아르티나 일가의 반응은 천양지차였다.

“생각보다 놀라운데, 또 생각만큼 놀랍진 않군. 왜일까, 부인?”

“……어쩌면 본능적으로 이런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일단 동부의 지배자를 수족처럼 부릴 때부터 심상치 않기는 했어요.”

“역시 우리 누나야! 세계 하나쯤은 점령해줘야 내 누나답지!”

“밥 먹다 말고 숟가락 놓고서 잠시 다녀온다더니…… 내 여동생이 기어코 마왕이…… 마왕이…… 끄르륵…….”

“세드릭! 정신 차려라!”

***

짧은 전서로 인해 공작가가 뒤집어진 그 무렵.

이벨리아는 마왕성 외부 안내에 가장 최적화된 악마 하나를 불러올렸다.

바로 마계의 마당발로 소문난 11위, 구시온.

대전에서 눈치 빠르게 줄을 댄 너구리 같은 악마가 아첨하듯 두 손을 싹싹 비볐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지만, 내가 친분 있는 악마들은 모두 동부의 악마들이라. 중앙성 주변 지리엔 익숙하지 않아 그대를 불렀네.”

“서엉은이 마앙극하옵니다아, 폐하아-.”

“……그 말투 좀 어떻게 안 되나? 담백하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좋다, 뭐. 나가서만 좀 조용히 해줘. 정체를 밝히지 않고 둘러보고 싶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잠행! 야행! 바로 이 구시온의 전문이지요!”

“믿음직스럽군.”

그리고 불과 몇 분 뒤.

아가레스와 구시온만을 대동하고 성 밖으로 나간 이벨리아는 자신의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어허! 이분이 감히 누구신 줄 알고!”

“…….”

“정체를 밝힐 수는 없으나 아주 대단한 분이시다! 썩 비키거라!”

누가 봐도 정체를 동네방네 밝히고 있잖아. 11위 악마가 이렇게 야단법석을 떨 존재가 세상천지 왕밖에 더 있냐고.

이벨리아가 연인을 돌아보며 속삭였다.

“토끼야. 쟤 멍청해.”

“그래 보인다.”

“헤헤, 왕이시여. 제가 앞을 아주 뻥 뚫어두었으니 편히 걷기만 하시면 됩니다!”

“……그렇네. 잠행이고 뭐고 의미가 없겠어.”

“아차차, 왕의 존귀한 발이 땅에 그냥 닿을 수는 없으니 제가 여기 레드카펫을 가지고 왔사온데…….”

주섬주섬 붉은 카펫을 꺼내 들자, 이벨리아가 연인에게 눈짓했다.

쟤 좀 어떻게 해봐. 끄덕인 아가레스가 구시온의 어깨를 잡아 돌린 뒤 속삭였다.

“그 마음 나도 잘 안다.”

“예?”

“나 또한 왕께서 딛는 길에 비단이고 꽃이고 죄다 깔아드리고 싶거든.”

“역시! 국서께서도 이해해주실 줄-.”

“근데 그건 내가 할 일이고.”

“……?”

“그대는 입 다물고 안내나 해.”

“……소, 소신이 뭔가 잘못하였습니까?”

“다물라고.”

“네, 알겠-.”

“대답도 하지 마.”

끄덕끄덕.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구시온이 처량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리 핍박하시지? 문득 들었던 의문은 질투로 활활 타오르는 금빛 눈동자와 맞닿자마자 모두 증발했다.

“으읍. 읍.”

“여기로군.”

이벨리아가 안내를 요청한 곳은 바로 마계의 빈민가였다.

“…….”

어두운 골목을 바라본 눈이 깊이 가라앉았다.

아이들은 거리에서 동냥하고, 그들이 기댄 판잣집은 다 기울어져 주거지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역병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기운이 거리를 휘감고 있는 데다가, 더러운 오물이 사방을 잠식하고 있다.

이벨리아의 표정이 점차 서늘해지자 입에서 손을 뗀 구시온이 쩔쩔매며 변명했다.

왜일까, 그는 새로운 왕에게 마계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흐, 흔한 일입니다, 왕이시여.”

“흔해?”

“예, 어느 세계나 이런 일은-.”

“네가 저기 널브러진 마족 중 하나라도 그냥 흔한 일이라며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어?”

“……예?”

“아, 내가 운이 없어 그 흔한 것 중 하나가 되었구나, 하면서?”

고위 악마로서는 알 수 없었다. 대체 왕께서 왜 진노하신 것인지.

어디나 그렇잖은가. 강한 자는 모든 것을 독식하고, 약한 자는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비단 마계 아닌 인간계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의아함으로 물든 수하의 눈을 일별하며 이벨리아가 말했다.

“난 이상론자가 아니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 따위 믿지 않아.”

“…….”

“동시에 난 성인군자도 아니다. 그저 저들이 안쓰러운 마음에 이러는 것도 아니야.”

“부족한 소신은 감히 왕의 뜻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위와 아래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나라는 반드시 기운다. 하여 제왕학에선 가르치지. 나라의 명운을 알고 싶다면 저 아래를 보라고.”

“…….”

“저들은 내가 이끌 마계의 훌륭한 일꾼이자 동량이 될 수 있지. 모가지 뻣뻣한 악마들은 못 하는 일을, 저들은 할 수 있어.”

이벨리아가 눈짓하자, 아가레스의 마기가 골목을 휩쓸고 지나갔다.

창궐하던 역병이 일시에 가라앉는다.

흐리멍덩한 눈으로 빈민가의 마족들이 이벨리아를 바라봤다.

일순 착각이 들었다. 버려진 소굴엔 비칠 리 없는 태양이 내려앉았다는 착각이.

나이 지긋한 마족이 힘없이 조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허허…… 그럴 리 없지, 그럴 리 없어. 존귀하신 분이 이런 곳에 행차하실 리 없지…….”

똑바로 바라보며, 이벨리아가 금빛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거기. 뭐가 그럴 리 없어.”

“……?”

“내가 이번 대 왕 맞는데.”

“……!”

짧은 답. 여파는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빈민가 소굴에 늘어져 있던 이들이 하나둘씩 고개 들어 이벨리아를 바라봤다.

저들끼리 사실 확인을 위해 속닥거리는 소리가 다 죽어가는 거리에서 불씨처럼 피어오른다.

왕이라고? 왕?

이 마계의 지존?

문득 보낸 의심의 눈초리는 몇 초도 되지 않아 사그라든다.

저 작은 소녀는 몰라도, 양옆에서 거대한 마기를 흩뿌리는 두 악마가 그 말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경악한 빈민들 사이로, 맑은 음성이 퍼져나갔다. 흔들림 없는 확신을 담은 채로.

“힘만 센 무식쟁이가 다스리던 때랑은 많이 달라질 거다.”

배고프면 서로 아귀다툼을 하고. 아프면 울고. 억울하면 분노하는…… 그런 존재들이라면 제국에서도 많이 봐왔어. 관리하고 다스리는 것에는 제법 자신이 있단 말이지.

“인마전쟁으로 인해 이 세계엔 큰 상처가 남았다.”

“…….”

“나는 그런 마계를, 천사들도 내려와 받아달라고 애원할 매력적인 세계로 만들 작정이다.”

이 거대한 세계의 황제가 오만하게 선포했다.

“적어도 내 품 안에 있는 이들이라면, 그 누구 하나 굶지는 않게 만들어주마.”

빈민가의 마족들은 훗날 회상했다.

그날을 기점으로, 마계는 완전히 뒤집혔다고.

***

비슷한 시각.

대관식을 위해 화려한 사자가 수 놓인 붉은 망토를 두르던 루드비히가 한숨 쉬며 실라페의 부리를 꽉 잡았다.

“이브는. 아직 소식 없어?”

[오겠지, 뭐. 그보다 내 부리 한 번만 더 잡으면 네 손이 동강 잘려 나갈 줄 알아.]

“그리 성의 없이 대답하면 네가 먹고 있는 케첩을 빼앗아 버릴 것이다.”

[치사하긴.]

툴툴대면서도 케첩 병을 발톱으로 움켜쥔 옥빛 독수리가 성실히 부리를 달싹였다.

[오고 있대. 급한 일만 처리하고 대관식 전엔 도착한대.]

정보의 대가로 루드비히는 새로운 케첩 병 하나를 실라페 앞에 놓아주었다.

독수리 주제에 인간이 먹는 소스에는 왜 이렇게 환장하는지 모를 노릇이다.

“독수리. 나 오늘 어떠냐.”

[……구구.]

“왜 갑자기 말 못 하는 척이야.”

[……구구구.]

“제법 봐줄 만하다고 말하기 부끄러워 그런 것으로 알겠다.”

코웃음 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실라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옅게 웃은 루드비히가 시종들의 손길을 받아내고 있을 무렵.

똑똑. 간결한 노크 소리와 함께 발코니 문이 빼꼼 열렸다. 문을 닫고 있어 미처 듣지 못했던 바깥의 소음이 훅 밀려들었다가 사라진다.

“전하의 브로치는 금빛으로 하는 것이 낫습니다.”

“왔군, 카밀라. 바쁠 텐데 내 보석까지 신경 쓸 여유가 있나?”

맡은 임무를 급히 마무리하고 달려온 것인지 수하의 옷매무새는 영 엉망이었다.

옷깃을 툭툭 정리한 카밀라가 늘 그렇듯 완벽한 보고서를 턱 내려두었다.

일이 힘들다 투정 부릴 법도 하건만, 우직한 수하는 그저 고양이 눈매를 무심히 깜박인다.

“신경 써드리고 싶어서요.”

“충직하긴.”

“……그럼요. 전하.”

카밀라는 조금 느리게 답했다.

“공녀님께서는요?”

“곧 온다고 실라페가 전하더군.”

표정 없던 용안이 공녀님 이야기 한마디에 옅은 미소를 띤다.

“……아직도.”

“음?”

아직도 공녀님을 많이 은애하십니까, 전하?

묻고 싶었으나 카밀라는 삼켰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 공녀님께서 과거에 보내신 모든 전서가 전하의 책상 위에 일렬로 늘어져 있는 것만 보더라도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하여 카밀라는 자연스럽게 말을 바꿨다.

“공녀님께서 많이 기뻐하시겠습니다.”

그 말에, 강대한 주군께서는 아이처럼 환히 웃으셨다.

“그래 주면 좋겠군. 그 얼굴 하나 보자고 이 길을 걸었으니.”

“분명 그러실 겁니다. 저는 대관식 장소에 먼저 가서 정보를 모으고 있겠습니다, 전하.”

“쉬다 가지?”

“충분히 쉬었습니다.”

“그대와 이크리안을 반씩 섞으면 딱 적당한 신하가 나올 텐데.”

한 놈은 너무 일 중독이고 한 놈은 너무 뺀질거리니, 원.

카밀라는 주군의 농에 픽 웃으며 발코니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무언가 발목을 잡기라도 한 듯 그 자리에 멈춰 선다.

몇 년 전부터 그래왔듯 시선은 본능적으로 주군이 계신 곳을 향한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가슴이 아주 조금, 시렸다.

***

만세! 만세! 만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짙푸른 날이었다.

맑디맑은 창공 위로 제국민들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하늘 위를 휘도는 커다란 매가 새로운 황제의 즉위를 축복하는 듯했다.

역대 황제들이 안전상 또는 명분상 이유로 황궁 및 신전에서 즉위했던 것과 달리, 루드비히의 대관식 장소는 유례없이 광장이었다.

아직 2차 인마전쟁의 추모비가 남은 바로 그곳.

“저기! 저기 폐하께서 나오신다!”

“아직은 전하시지!”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저 관만 쓰시면 이 제국의 군주이신 것을!”

전례가 없는 떠들썩한 대관식.

묘하게 허한 마음을 들뜬 환호성으로 채우며, 루드비히는 부귀와 영화를 상징한다는 금빛 길 위를 걸었다.

누군가를 찾듯 좌우를 둘러보자 황관과 가장 가까운 상석 옆에서 말간 얼굴이 빼꼼 내밀어진다. 마치 나 이곳에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작금의 하늘처럼 짙푸른 눈을 직시하며 루드비히가 웃었다.

보여, 이벨리아?

온전히 네게 바치고 싶은 날이야.

길 위에서도 왠지 머뭇하던 황태자의 걸음은 그때부터 거침이 없었다.

그 보무에 제국민들이 손을 모아쥐고 눈을 빛냈다.

어쩌면 저 젊고 헌앙한 황제께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코흘리개 아이들조차 손뼉을 치며 온 마음 다해 루드비히를 축복했다.

“근데 전하의 관은 누가 씌워주시나?”

“보통은 선대 황제 폐하께서 씌워주시는 게 관례인데…….”

“신전이 나서지 않을까?”

“아니면 하다못해 선대 공작 각하라도?”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과 달리.

제단 앞에 선 루드비히는 자신의 손으로 망설임 없이 황관을 집어 들었다.

이벨리아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자리했다.

“옳지. 이래야 내 친구답지.”

뚫어질 듯 응시하던 귀족들과 제국민들이 입을 벌렸다.

저 오연함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신권(臣權)도, 신권(神權)도, 나는 따르지 않겠다.

오로지 제왕이 통치하는 강대한 제국을 만들겠다는 포효.

태양을 받은 황관이 머리 위에서 지엄히 빛나고, 황가의 축복이라 불리는 홍안이 좌중을 훑는다.

이내 이 자리 모두를 압도하기에 부족함 없는 목소리가 떨어졌다.

“거창한 목표는 없다. 다만-.”

두루 지나던 시선이 한곳, 그의 구원자를 향해 못 박힌다.

나를 기어코 이곳까지 끌어올린, 나의…… 친우.

지금 네가 지은 그 맑은 웃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기댈 수 있는 제국을 만들겠다.”

와아아아아아!

만세!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큰 희생을 낳은 전쟁 이후이니만큼 허례허식 없는 대관식이었다.

그러나 젊은 황제의 통치관을 보여주기에는, 또 제국민들의 마음을 울리기에는, 일절 모자람 없었다.

***

창공을 뒤덮는 환호성 사이.

시선 마주친 이벨리아와 루드비히의 머릿속엔 처음 만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다사다난했던 사건들이 스쳐 지나갔다.

너와 내가 공유한 많은 것들.

서로 모르는 것 하나 없는 나의 친우. 나의 전우.

‘진짜 길었다, 이 코흘리개야.’

‘……그 코흘리개를 네가 이렇게 잘 키웠지.’

‘알긴 알아?’

‘잊지 못해. 그 어느 순간도.’

푸핫.

작은 비밀기지의 공유자를 넘어 이젠 각 세계의 왕이 된 두 친우가 마주 웃었다.

그 오랜 길의 끝에서도-.

우린 여전히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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