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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꽃밭에는 그들이 산다-282화 (282/323)

##  282화: 마계의 새로운 왕

로노베가 이벨리아의 손을 질질 끌고 집무실 밖으로 나섰다.

“이건 여자들끼리 얘기입니다!”

아무도 따라오지 말라는 듯 엄포를 놓고 문을 쾅 닫아버린 로노베는 바로 맞은편 방으로 들어가 이벨리아를 벽에 밀어붙였다.

“밥풀 폐하! 대체 왜 주군과!”

“당연한 걸 묻네. 아스는 다정하고 상냥하고 멋있으니까.”

“주군이 대체 어디가!”

“적어도 나에겐 그래.”

태연한 답에, 로노베가 잘 관리된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주군께선 밥풀 폐하께만큼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셨었지.

‘너무 내 기준으로만 생각했구나.’

미우나 고우나 우리 밥풀 폐하.

부디 세상 둘도 없이 소중한 첫 연애를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로노베는 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당부했다.

“밀당.”

“밀당?”

“연애는 100% 밀당이야, 밥풀 폐하.”

“……우웅.”

“왜 시선을 피해? 듣고 있어? 그렇게 물은 물이요, 술은 술이요, 하면서 연애하면 사내들은 금방 질린다고!”

“으응, 우리 토끼는 안 그래.”

“그건 우리 개는 안 물어요랑 똑같아! 사내는 다 그래. 내가 얼마나 많은 사내의 꿈을 먹어 치웠는데!”

“아스의 꿈은 못 먹었잖아.”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언니 악마. 연애해봤어?”

“……아니?”

“근데 뭘 알아?”

“…….”

전세 역전. 외려 이벨리아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로노베의 얼굴 앞에 검지를 까닥까닥 흔들었다.

“언니 악마. 연애하려면 모름지기 마음을 숨김없이 보여줘야 해. 그래야 상대방도 알지.”

밀당은 무슨.

“서로 당기기도 모자란 소중한 시간인데.”

이벨리아가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그러니까 언니도 밀당 그거 그만하고 잔디한테 조금 더 마음을 보여봐.”

그 말에, 벽을 짚고 있던 로노베의 손이 크게 미끄러졌다.

“……티, 티, 티 났어?”

***

비슷한 일은 아가레스의 집무실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마르바스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책상을 탕탕 두드렸다.

“밀당! 밀당! 연애는 밀당입니다, 주군!”

“……그게 뭔데.”

“밀고 당기기요! 때로는 미는 것도 필요하다, 이겁니다. 항상 당기기만 하면 땅콩이 금방 질려서 도망갈지도 모른다고요!”

“근데 마르바스.”

“예, 주군!”

“너 연애해봤던가.”

“예, 주군?”

“안 해 본 거로 아는데.”

“…….”

전세 역전. 외려 아가레스가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마르바스에게 조언했다.

“잘 새겨들어라. 연애 한 번 못 해 본 마르바스.”

마르바스의 눈에 왈칵 눈물이 고였다.

“밀고 당기는 시간 낭비나 하고 있으니 네가 연애를 못 하는 거야.”

오늘따라 언어폭력이 아주 찰지십니다, 주군.

“연애는 마음을 한없이 보여주는 거다. 당기기도 부족한 시간에 밀기는 무슨.”

픽 웃으며 아가레스가 수하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그러니 그대도 로노베에게 조금 더 마음을 보이도록.”

그 말에, 마르바스의 몸이 벼락 맞은 것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티, 티, 티 났습니까?”

***

얼굴 붉어진 로노베의 손에 이끌려 다시 돌아온 이벨리아는 아가레스를 보자마자 도도도 달려가 폭 안겨들었다.

아가레스 역시 마찬가지로 두 팔 벌려 연인을 끌어안았다.

“그거 아니라니까, 밥풀 폐하!”

“그거 아니라니까요, 주군!”

“몰라. 난 이게 좋아.”

“난 그런 이브가 좋다.”

수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됐다, 됐어. 저 둘한테 밀당이니 뭐니 연애의 일반론을 가르쳐봐야 뭘 하는가. 이미 관계부터가 일반적인 것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데.

왕과 주군의 사랑놀음. 그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나마 빠르게 정신을 차린 바르바토스가 물었다. 제법 현실적인 얘기였다.

“주군. 마왕은 죽은 것이 맞습니까.”

“맞다.”

“그럼 마계는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무엇을.”

“누군가는 동부를 넘어 중앙을 통치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군.”

그러자 조금 전까진 일견 가벼운 태도를 보이던 로노베가 진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왕과 주군께서 뜻이 있으시다면 저희가 중앙으로 가서 판을 벌이겠습니다. 뜻이 없으시다면 저희는 그저 동부에 머물고, 중앙에는 알아서 왕을 세우라 이르겠습니다.”

그들은 아가레스에게 중앙으로의 진출을 권하지 않았다.

주군께서 중앙까지 장악하신다면 자신들의 행동반경이 넓어지기야 하겠다만…… 그들에겐 그런 것보다 주군의 행복이 우선이었다.

다만, 예전부터 누누이 동부의 중앙 장악을 원하던 마르바스만 아무 말 없이 못마땅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였다.

잠시 수하들을 둘러보던 아가레스가 이벨리아에게 눈짓했다. 원하는 대로 하라는 뜻. 그러자 이벨리아가 역으로 물었다.

“우리가 중앙을 차지하면 너희들은 어떨 것 같아?”

“좋지! 중앙 좋지!”

“……사실 동부보단 중앙이 좋긴 해.”

“나 역시 그러하다.”

이벨리아가 흡사 먹이를 앞에 둔 강아지처럼 눈을 빛내는 마르바스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렇다면 우리 의견 물을 것 없어. 너희가 원하는 걸 이뤄주는 것도 너희의 충성을 받는 우리의 몫이니.”

손쉽게, 또 오만하게 떨어지는 답.

“고로, 너희가 중앙으로의 진출을 원한다면.”

이벨리아가 턱을 치켜들었다.

“내가 이 마계를 갖도록 하지.”

실로 오만한 출사표.

홀린 듯 바라보던 마르바스가 작게 훌쩍였다.

뭐야, 이 땅콩만 한 왕. 제법 멋있잖아.

“그럼 이대로 중앙으로 쳐들어가면 되는 건가?”

“아니, 밥풀 폐하. 대관식을 치러야 해.”

“대관식?”

“마계의 왕은 힘의 논리를 따르지. 심지어 종족도 중요하지 않을 만큼 아주 지독하게 말이야. 힘이란 게 꼭 무력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지혜나 인품 등을 모두 아우르기는 한다만…… 어쨌든 밥풀 폐하가 생각하는 인간계의 대관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거야.”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벨리아의 표정에 바르바토스가 덧붙였다.

“왕이 왕좌까지 걸어가는 모든 걸음. 도전자들은 출사표를 내밀 수 있다. 듣기로 전대 마왕은 대전이 죄다 피로 물든 후에야 왕좌에 앉았다더군.”

“흐음…… 난투극이겠네.”

“크게 걱정할 건 없다. 어차피 2차 인마전쟁 당시 마왕 측근의 고위 악마 대부분이 숙청당했으니.”

태연히 고개를 끄덕인 이벨리아가 집무실 의자에 털썩 앉아 두 발을 책상 위에 올렸다. 까닥이며, 거만하게 선포한다.

“내가 할래. 대관식.”

“이브, 그건 내가…….”

“토끼가 대관식 해서 마계의 왕이 되면 동부를 나 줬던 것처럼 마계도 나 줄 거 아니야.”

“물론이지.”

“그럼 난 허수아비 왕이잖아.”

“감히 누가 너를-.”

위협적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연인을 향해 이벨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정당성이 얼마나 중요한데. 우리 토끼가 아무리 나를 어화둥둥 떠받들어도, 모든 마족들에게 내가 진정한 왕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순 없어.”

“…….”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할 거야.”

“……험한 길이다.”

“토끼가 보고 있을 거잖아.”

“…….”

“조금이라도 위험해지면 포기할게. 아니면 토끼가 나와서 나한테 출사표를 내밀어. 그러면 곧바로 검 내던지고 항복할 테니까.”

무진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이벨리아가 씩 웃으며 연인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나 단층에서 헤맨 시간이 수십 년이야.”

“…….”

“그동안 검술도 지긋지긋하게 익혔고, 몸도 많이 강해졌어. 심지어 이 세계에선 정령의 힘도 쓸 수 있잖아?”

마왕을 비롯해 대악마와 고위 악마 여럿이 소멸한 현시점에서 내 자연력을 막을 정도의 악마는 잔디나 모지리 외엔 없기도 하고.

“내가 전에 말했었지.”

이벨리아가 손을 뻗어 아가레스의 볼을 느리게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이깟 왕, 내가 할 테니까…… 우리 토끼는 내 옆에서 아양 떨며 행복하게 살라고.”

그거, 진심이었어.

***

대관식. 무려 수백 년 만에 열리는 행사.

대자보가 중앙성 앞에 떡하니 붙자 마계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심지어 대관식을 통해 왕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이는 바로 인간.

몇몇 악마들과 마족들이 소리 높여 의견을 교환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 건방지게 대관식을 치러?”

“왜 말이 안 돼? 강하기만 하면 무슨 상관이야.”

“그럼 네놈은 강한 강아지가 와서 네놈을 지배한다고 하면 아이고, 강아지님, 저를 지배하십시오, 할 거냐?”

“강아지가 나보다 강하다면 당연히 조아려야지.”

서열 비슷한 두 악마의 언성이 격화되자, 다른 악마 하나가 끼어들었다.

“나도 인간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 인간이 어디 보통 인간인가? 이미 동부의 왕 자리를 차지한 지 꽤 되었다고 하던데.”

“동부의 지배자께서 맹목적으로 아끼는 인간이라고도 하고.”

“그럼 실상은 허수아비 왕 아닌가? 그냥 동부 지배자의 후광 아래 영광을 누리는 거 아니냔 말이야.”

“그런 소문이 거슬리니 직접 대관식을 치르겠다는 거 아니겠는가.”

제각기 내는 의견으로 중앙성 앞이 시끄러워지자 11위 악마, 구시온(Gusion)이 언짢다는 듯 턱짓으로 벽보를 가리켰다.

“짜치게 여기서 입 놀리지 말고, 불만 있으면 직접 출사표나 던지도록.”

그러자 재잘대던 악마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기실 그 인간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손속에 자비 없는지는 동부의 악마들과 마족들을 통해 익히 전해 들은 터다.

심지어 2차 인마전쟁 당시에 그 위용을 직접 본 마족들도 있었고.

“듣자 하니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인간이라던데.”

“사탄의 현신이라는 말도 있더라고.”

“심지어 바다를 다루더구먼.”

“검술도 꽤 했던 걸로 기억한다.”

“참모 역할도 겸했던 것을 보아하니 지략도 자신 있는 모양이지.”

“……나는 포기. 죽고 싶은 생각은 없어.”

“어차피 마생 한 번인 거! 나는 도전한다!”

새로운 제도에 편입되는 자.

새로운 권력 구도에 반발하는 자.

마계 전역-.

대관식으로 인한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

바야흐로 대관식 당일.

로노베는 이벨리아에게 황금색 용이 그려진 붉은 장포를 입혀주었다.

“괜찮겠어, 땅콩 폐하? 마계의 대관식은 생각보다 험해.”

“그래서 붉은 옷 입었잖아. 피 튀어도 티 안 나게.”

“……무리하지 마.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무조건 기권해. 주군께서 바로 끼어드실 테니까. 알았어?”

“걱정해줘서 고맙긴 한데, 내가 단층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너희는 몰라.”

세상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오만가지 것들과 죄다 싸우면서 헤쳐 나왔다고.

“그러니까 간식 가져와서 편하게 구경이나 해.”

- 두우우웅. 두우우웅.

대관식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장엄하게 울린다.

이벨리아가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관식이 치러지는 대전 앞에 서자, 아가레스가 연인을 대신하여 문을 열었다.

제국 황제의 대전 못지않게 화려한 곳. 드높은 단상 위에는 왕좌와 왕관이 고고히 자리하고 있다.

피를 흩뿌리고서야 비로소 걸을 수 있다 하여, 통칭 ‘붉은 길’.

양옆으로 출사표를 던질 예정인 악마들과 마족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한 걸음 딛자마자 아귀다툼, 다른 말로 하자면 자격 증명이 시작된다.

망설임 없이 내디디며, 이벨리아가 씩 웃었다.

“시작하지.”

***

두 식경 뒤. 악마들은 입을 벌렸다.

저 인간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으나, 이 정도에 이를 줄은 미처 몰랐다.

붉은 길은 이미 달려들었다가 처참하게 패배한 마족들의 피로 진하게 물들었건만, 인간의 표정엔 변화 하나 없다.

“아직 길이 한참 남았는데 무료하구나.”

도발이나 다름없는 말.

발끈한 17위 악마, 보티스(Botis)가 뱀의 혀를 날름대며 붉은 길로 뛰어들었다.

“죽어라-!”

“가상하네. 기억해두지.”

그러나 고작 몇 합 나누지도 못한 채, 물로 만든 창에 어깨를 꿰뚫려 밖으로 던져진다.

이벨리아가 한 걸음 더 나아가며 말했다.

“죽이지 않는다.”

“……?”

“내가 이 길의 끝까지 걸으면 곧 내 신하가 될 이들. 내게 도전할 정도의 인재라면 하나라도 더 살려 두어야지.”

“……!”

“그러니 마음껏 출사표를 던지도록 해. 나는 너희 모두를 살려 두고도-.”

고고한 입매가 호선을 그린다.

“이 길의 끝까지 걸어갈 자신이 있으니.”

***

꼬박 하루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크게 다친 곳은 없으나 마냥 성치만은 않은 몸으로, 이벨리아는 붉은 길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마지막 다섯 걸음.

그 누구도 감히 출사표를 던지지 않는다.

이벨리아가 드높은 단상 위를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장포가 끌리는 곳마다 피가 뚝뚝 떨어져 바닥을 적신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왕좌 앞에 다다른 이벨리아는, 그 위에 놓인 왕관을 들어 자신의 머리 위에 스스로 씌웠다.

이어 왕좌에 털썩 걸터앉자, 아슬아슬 씌워져 있던 왕관이 옆으로 살짝 흘러내린다. 대충 받쳐 올리며 이벨리아가 아래로 시선을 두었다.

그러자.

“마계의 새로운 왕을 뵙습니다.”

“마계의 새로운 왕을 뵙습니다.”

단상 아래 빼곡하게 선 악마들과 마족들이 일제히 무릎 꿇고 고개를 깊이 숙인다.

아가레스와 동부의 악마들부터, 지금껏 마왕의 아래 군림하던 중앙의 악마들과 마족들까지.

인간이면 어떠하랴.

그 누구도 죽이지 않고 이 수라장을 헤쳐나간 무력도, 그 누구도 배척하지 않는 인품도, 감히 넘볼 수 없이 압도적인 것을.

모든 악마와 마족이 보내는 경배가 대전 안을 무겁게 채운다.

비로소 마계 전역-.

새로운 왕의 탄생을 알리는 뿔피리가 널리 울려 퍼졌다.

***

아가레스는 단상 위로 올라 왕좌 아래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내 모두 보라는 듯, 이벨리아의 손을 느릿하게 들어 올려 손등에 입을 맞춘다.

“내 왕께서…… 기어코 모두의 왕이 되셨군. 질투 나게.”

“그래도 내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는 그대지.”

이벨리아가 아가레스의 머리칼을 살짝 흩트렸다.

둘이 있는 공간만이 마치 따로 분리되기라도 한 것처럼 묘한 분위기.

저 아래 선 악마들은 단번에 눈치챘다.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면……!’

새로운 권력 구도 하에 출세를 노리는 너구리 같은 악마, 11위 구시온(Gusion)이 재빨리 하위 마족들에게 속삭였다.

“왕좌 옆에 국서 석을 하나 더 만들어라.”

“국서 석이요?”

“어서!”

채근하던 그 순간. 구시온은 보았다.

새로운 왕께서 자신을 바라보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시는 것을.

“너. 일머리 좀 있다?”

다른 악마들의 질투심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구시온이 넙죽 고개를 숙였다. 인생과 출세는 타이밍이야, 이것들아.

“서엉은이 마앙극하옵니다아, 폐하아-!”

그러자 눈을 번뜩인 다른 악마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휘하 마족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한다.

“국서께서 앉으실 자리에 비단을 깔아라!”

“어서 국서께서 드실 물을 대령하지 못하겠느냐!”

아가레스로서는 실로 생소한 경험이었다.

내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브의 총애를 받기 위해서 나를 이용한다고?

눈 깜짝할 사이, 발치엔 비단이 깔리고 눈앞엔 산해진미가 올라온다.

연인의 머리칼을 쓸며, 아가레스가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왕께 총애받는 후궁이 이런 느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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