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녀님의 꽃밭에는 그들이 산다-277화 (277/323)

##  277화: 공녀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2차 인마전쟁 종전일로부터 여덟 달 뒤.

연무장에서 맥 빠진 기합을 지르던 알렉은 냅다 검을 내팽개쳐버렸다.

검 다루기를 자신의 목숨과 같이 하라는 기사단의 신조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태도였지만 그 누구도 꾸짖지 않았다. 심정이야 모두 같았으니까.

“후…….”

깊은 한숨과 함께 털썩 주저앉은 알렉이 손바닥으로 땅을 쓸었다.

“우리 아가씨 어릴 적에 여기서 데굴데굴 구르셨었는데…….”

“구르신 적은 없지 않았나?”

“그랬었나. 워낙 동글동글하셔서 그냥 걸으셔도 구르시는 것처럼 보였어.”

“……누가 저놈 재앙의 조동아리 좀 봉인해라.”

“뭐 어때. 듣고 화내실 아가씨가 안 계시는데…….”

“아가씨 돌아오시자마자 네놈이 방금 한 말 다 이를 거다.”

“돌아오시기만 하면 조동아리 백 대를 처맞아도 난 좋아.”

힘없는 알렉의 말 뒤로, 며칠 굶은 곰처럼 축 늘어져 있던 헤롤드가 멍하니 우려를 덧붙였다.

“우리 아가씨 어디서 굶고 계시는 건 아니겠지……?”

그러자 여기저기서 단호한 대답이 돌아온다.

“절대 아님.”

“그건 아님.”

“아무튼 아님.”

“그, 그럼 어디 가서 맞고 계시는 건……?”

“결코 아님.”

“일단 아님.”

“아무튼 아님.”

뭐야. 뭐 이렇게 아가씨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

“그럼 네놈들은 대체 뭐가 걱정인데!”

“길 잃으셨을까 봐.”

“바로 그거지.”

“우리 아가씨 어릴 적부터 오른손 왼손 헷갈리셨잖아.”

“밥 먹는 손. 밥 안 먹는 손. 열 살 때까지도 이렇게 외우셨지.”

충성스러운 미친개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길을 잃고 헤매다 거지꼴이 되어버린 이벨리아가 남의 집 앞마당에서 감자를 서리하는 장면까지 구체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안 되겠다. 조금 더 기다려 보다가 신 잡으러 가자.”

“알레기 놈이 웬일로 맞는 말을 다 하네. 신이면 우리 아가씨 토해내는 방법도 알겠지.”

“그래. 신앙심 따위 개나 줘라!”

“내 신앙은 우리 아가씨께 있다!”

여기저기서 옳소, 옳소, 외침이 터져 나온다.

그러자 헤롤드가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벼락 맞아 뒈질 자식들. 신을 입에 담을 때는 경건해야 하는 법이야.”

“경건? 어떻게?”

“자. 잘 보고 배워라, 무지렁이들아.”

헤롤드가 아련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두 손을 고이 모았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아가씨를 내려주시옵소서. 우리 아가씨를 안 내려주시면 제가 당신 목을 똑 따서 내려오겠사옵니다.”

“신성모독이 여기 있었네.”

“벼락 맞을 놈.”

“악마도 저런 기도는 안 하겠습니다.”

기사단이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저는 저놈과 관계가 없습니다. 손을 내젓던 찰나였다.

선대 공작 부부가 머무는 별채 쪽에서 이젠 익숙해진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 채 별채 방향을 바라보길 몇 분.

드웬이 입술을 작게 달싹였다.

“존체 상하시면 안 되는데…….”

아르티나에 몸담은 일원 모두가 불안하고 초조한 것은 매한가지나, 한순간에 자식을 잃은 어미의 심정에 감히 비하겠는가.

차디찬 겨울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애끓는 소리에, 기사단 모두가 침통하게 고개를 숙였다.

***

“엘.”

“…….”

“한 숟갈이라도 들어, 제발.”

휴고가 입가에 가져다 댄 미음을 멍하니 내려다보던 엘리시아가 고개를 돌렸다.

“엘.”

“……내 딸은 어디서 배를 곯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 딸이 그럴 리 없다는 건 그대가 더 잘 알잖아. 엄마니까.”

“이 세계가 아니잖아. 타지에만 떨어져도 외로운 법인데, 심지어 건널 길 없는 다른 세계잖아…….”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내 아가가 어떤 끔찍한 일을 겪고 있을지, 어떤 험난한 길을 걷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심장이 천 갈래로 찢어지는 것만 같아서…….

실 끊어진 인형처럼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엘리시아가 힘없이 옆으로 쓰러져 누웠다.

도무지 마르지 않는 눈물이 또다시 시트를 적셨다.

“휴고. 우리 이브, 우리 아가 어떡해…….”

“…….”

“안 돌아오면 어떡해. 못 오고 있으면 어떡해. 살려달라 외치고 있는데 어미인 내가 듣지도 못하고 있는 거면, 그러면 어떡해…….”

단장(斷腸)의 고통을 그대로 담은 울음은 절규와도 결이 같다.

차마 손 닿지 않는 깊은 어딘가가 시퍼렇게 멍이 드는 듯하여 엘리시아는 그저 가슴을 내리쳤다.

휴고는 하루하루 죽어가는 엘리시아를 꽉 끌어안았다. 의미 있는 위로의 말은 건넬 수 없었다. 사실, 그 역시 같은 마음이었기에.

부인을 위해서 위태롭게 버티고 서 있을 뿐, 휴고 역시 속이 죄다 찢긴 것은 매한가지였다.

연을 맺은 이래 모든 일을 함께 이겨내 온 부부는…… 이번만큼은 함께 가라앉았다.

자식을 잃었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

같은 시간.

아르칸은 무려 이틀 만에 엔리르의 연구실에서 나온 렐리안에게 물었다.

“피곤하진 않아?”

“하나도요. 스승님의 연구를 돕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거든요.”

“용 상태는 어때.”

“물 한 모금 안 드시고 정신없이 연구만 하고 계세요. 차원을 넘는다는 건 용의 마법 체계로도 쉽지 않은 모양이에요.”

엔리르는 이벨리아가 사라진 바로 그날, 아르칸에게 자신의 연구실을 대령하라 소리를 빽빽 지르더니 완성이 되자마자 냅다 틀어박혔다.

그 누구도 출입 금지. 단, 조수 격인 제자 렐리안은 제외.

하인들이 시간 맞춰 문 앞에 놓아주는 식사는 단 한 번도 비워진 적이 없었다. 무려 여덟 달을. 단 한 번도.

“……저놈 건강 상하면 이브가 속상해할 텐데.”

“같은 말씀 드렸는데, 용이라서 괜찮대요. 그보다-.”

렐리안이 손을 뻗어 부쩍 수척해진 아르칸의 볼을 쓸었다.

“당신이야말로 오늘 뭐 좀 먹었어요?”

“……당신은?”

서로 부정을 의미하는 침묵.

렐리안이 아르칸의 품에 안겨들었다.

“이브는 괜찮을 거예요. 나를 여기까지 끌어올린, 강한 사람이니까.”

“…….”

“그런 기분이 들어요. 이브는 분명, 다른 세계에서도 대단한 일을 해내고 돌아올 것만 같은 기분.”

가쁜 호흡을 내뱉으며 눈물을 흘리는 아르칸의 어깨가 속절없이 떨린다. 렐리안이 다독이며 속삭였다.

“그곳에서도 내 공녀님답게 많은 것을 구해내느라…… 그래서 늦는 거야. 너무 따뜻한 마음으로 헤매고 있어서, 그래서 늦는 거야……. 곧 올 거야, 분명히…….”

한계 없이 무너지고 있는 남편에게,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였다.

***

울다가 끝내 혼절한 엘리시아를 의원에게 맡긴 휴고는 무거운 걸음으로 공작저 뒤편으로 향했다.

어두운 밤. 교교하게 휘도는 달빛.

잠시 올려다보던 휴고가 별다를 것 없이 풀로 뒤덮인 땅을 발로 툭툭 내리쳤다.

그러자 삽시간에 땅이 패고 갈라지며 드러난 것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휴고는 곁을 지키고 선 기사단장 에딘에게 말했다.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도록.”

“존명.”

대대로 가문의 중죄인을 가둬두고 고문 등을 통해 자백을 받아내던 지하 감옥.

아르티나의 직계 또는 가문의 오랜 가신들 외엔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기에 내부는 관리되지 않는다.

자연히, 죽어간 이들의 흔적 역시 그대로 남아 있었다.

휴고가 천천히 계단을 딛고 내려갔다. 걸음마다 수습되지 않은 백골이 발에 채지만 담담한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가장 깊은 곳까지 한참을 내려간 휴고는 핏물로 얼룩진 철창을 열었다.

끼이이익. 귀를 긁어내리는 소리와 함께, 마력을 담아둔 호롱에서 가느다란 불이 피어올라 일렁인다.

최하층 감옥 사방의 벽에 달린 쇠사슬은 단 하나의 죄인에게 향해 있다.

죄인의 목은 무언가에 깊이 베이기라도 한 듯 반쯤 떨어져 덜렁이고 있었고, 그곳에선 연신 짙은 피가 떨어져 차가운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마왕, 바알.

이 존재의 생존은 루드비히와 아르티나만 아는 극비였다.

처참하게 묶인 바알의 주변에는 무려 네 명의 정령왕이 손수 친 봉인이 둘려 있었다.

이 세계 그 어느 것보다도 짙은 자연력. 아무리 마왕이라고 한들 여기선 지배력이 짓눌릴 수밖에 없다.

힘을 쓰거나 잘린 목의 상처를 치유하기는커녕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것도, 입 한번 달싹이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한쪽 눈을 흘끗 떠 휴고를 바라본 바알이 낮게 웃었다. 몸이 흔들릴 때마다 반쯤 잘린 목도 함께 흔들린다.

“크흐…… 아무래도, 불안해진, 모양인데…….”

전쟁 이후 아가레스의 검에 의해 반쯤 죽어가던 바알을 굳이 살려 이곳에 데려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브가 돌아오지 못할 것을 대비한 보루.

이 세계에서 자력으로 차원을 넘나들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이것 하나뿐이니, 휴고와 아르칸, 그리고 루드비히는 당분간 이것을 죽이지 않기로 합의한 터다.

대충 못질한 나무 의자에 걸터앉으며 휴고가 물었다.

“다른 차원에서 이브가 손을 뻗는다면 네놈은 그걸 느낄 수 있나.”

“가능하지.”

물론 지금이야 이 빌어먹을 봉인 때문에 권능이 싹 사라져버렸지만.

바알이 파들거리는 입꼬리를 올렸다.

“계약하자, 휴고 아르티나.”

“어떤.”

“나를 풀어주렴. 모가지가 반쯤 잘린 채로 달랑달랑 매달려 있으려니 영 죽을 맛이거든.”

“…….”

“대가로 이벨리아를 찾아주지.”

휴고가 더 들을 이유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마왕을 내려다 봤다.

“네놈은 내 딸을 탐냈지.”

“보물이잖아. 난 악마고.”

“나는 내 딸의 안위를 위협하는 것들과 협력하지 않는다.”

“쯧쯧, 안쓰러운 이벨리아. 아비의 잘못된 선택으로 평생 세계 밖을 떠돌겠구나. 외롭고 쓸쓸하게…… 찾아주지 않는 가족들을 원망하고 또 원망하면서.”

“세상엔 협력 외에 협박이란 좋은 수단이 있지.”

“과연 내게 먹힐지.”

“고문은 내가 직접 할 테니, 기대해도 좋다.”

내 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가.

잠시 길을 잃었더라도 걱정하지 말거라.

네 안위 앞에서라면, 이 아비는 기꺼이 악마라도 될 테니까.

***

이벨리아가 사라진 날로부터 어느덧 1년이 흘렀다.

늘 하급 정령들의 재잘거림으로 소란하던 정령계 역시 바닥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평소 자신의 영역에서 움직이지 않던 정령왕들은 도무지 혼자서는 불안감을 견딜 수 없어 엘라임의 영역에 눌러 앉아버렸다.

“……말랑말랑 말랑이 지금 어디에 있을까?”

“뭘 걱정해. 그 녀석 성격으로는 어디 떨어져도 다 깨물어서 해치워버릴 텐데.”

“그러는 네가 제일 불안해하고 있으면서.”

“아닌데? 전혀 아닌데?”

“아뉜뒈? 전혀 아뉜뒈? 그 달달 떠는 다리나 좀 멈추고 말하지?”

“……크흠.”

페르세스의 핀잔에 이프리트가 멋쩍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근데 솔직히 걔 너무 자라다 말았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고.”

“동감이다. 내 계약자는 작고 여려.”

“애가 입이 좀 험하고 맘에 안 드는 게 있으면 깨물겠답시고 이를 딱딱 부딪쳐서 그렇지, 천성은 아주 감자같이 유순한 애라고.”

“동감이다. 내 계약자는 감자야. 아니, 감자처럼 유순해.”

그러자 그나마 이성을 지키고 있던 트로이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엘라임의 아가 계약자에게 이상하게 정감이 가긴 한다만…… 너희들의 평가는 진짜 글렀다. 냉정하게 보자면, 엘라임의 계약자는 지옥 한가운데 떨어뜨려 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인간이야.”

“냉혈한.”

“성격파탄자.”

“사이코패스.”

한마음 한뜻으로 무정한 트로이를 매도하던 그때.

“……!”

네 정령왕의 움직임이 일순 멈췄다. 마치 혼이라도 빠져나간 것처럼.

잠시 뒤.

이프리트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혼란하여 흐트러진 음성이었다.

“……야. 이거 뭐냐?”

“너희들도 봤어……?”

“우리가 잃은 기억인가.”

“신계. 물레. 우리가 아는 것들 외에-.”

“천사. 황금색 물뿌리개를 든 천사.”

삽시간에 해일처럼 밀려든 기억.

동시에 그들을 억누르던 세계의 제약이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사방을 옥죄던 새장이 사라진 기분이다.

벌을 받아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명백한 신격(神格).

영민한 그들은 곧바로 이해했다.

신물을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구하고자 했던 존재가 있었다는 것.

끝내 구하지 못하고 벌을 받아 떨어졌다는 것.

물레가 돌아 그 존재에 대한 기억을 잊게 되었다는 것.

그 존재가, 지금, 그들이 과거에 부순 신물을 복구하였다는 것.

그 결과로 자신들의 죄가 사해졌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변곡점에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 모두가 아껴 마지않던-.

이벨리아라는 것.

***

정확히 같은 시간. 아르티나 공작저.

붉은 머리칼의 사내가 연구실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이벨리아가 좋아하던 응접실 소파에 죽은 듯 기대어 있던 세드릭이 다듬어지지 않은 얼굴로 고개 꺾어 막냇동생을 바라봤다.

“……오랜만이다. 밥 먹었냐.”

“먹었겠어? 나 1년 만에 연구실에서 나오는 건데?”

“……챙겨 먹어라.”

“뭐야. 왜 이렇게 물기 다 빠진 시금치 같아?”

“…….”

“못생겨져선.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오늘이 누나가 간지 딱 1년째라고.”

“알고 있다.”

“뭘. 못생겨진걸? 아니면 1년이 된걸? 하여튼, 나 더는 못 기다려.”

세드릭이 비척비척 몸을 바로 세웠다.

“……그럼 뭐 어쩌려고.”

“그때 누나한테 맹세했어. 1년의 밤이 다 지날 때까지 안 돌아오면 차원을 찢어서라도 찾으러 가겠다고.”

“아무리 너라도 어떻게 차원을 넘냐.”

“지금 용 무시해? 그거 넘으려고 1년 동안 밥도 안 먹고 연구만 했는데? 내 본체가 아주 반쪽이 됐어! 홀쭉해졌다고!”

이 세계에 남은 유일한 용. 엔리르가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자부심을 표현하듯 높이 솟은 콧대가 으쓱인다.

“용은 대단해. 고로, 내 마법엔 실패가 없지.”

“…….”

“그러니 딱 오늘 밤까지만이야. 오늘 밤이 지나면, 나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누나를 찾으러 갈 거야.”

모든 차원을 다 돌아야 한다고 해도 괜찮아. 용은 수명이 기니까.

한평생 헤매야 한다고 해도 괜찮아. 누나를 찾는 길이라면 그래도 좋으니까.

가만히 바라보던 세드릭이 다가와 엔리르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그러고선…….

무너져내린다. 그대로.

매일 눈물을 쏟아도 메마르지 않은 눈엔 다시금 비탄이 고인다.

“엔리르…….”

“……형아?”

“제발…… 제발 이브 좀 데려와 주라…… 제발.”

“…….”

“우리 아가 좀, 제발, 생사라도 좀 알아 와 줘…….”

다 큰 사내의 처절한 울음이 공작저를 메운다.

울음은 전염되는 법. 사용인들 역시 몸을 돌리고 옷소매로 눈가를 가렸다.

지난 1년 내내 그래왔듯 모두가 또다시 눈물바다에 잠기려던 그때였다.

- 콰앙!

공작저의 문이 굉음을 내며 열렸다.

겁도 없이 감히 공작가가 선포한 폐문을 뚫고 뛰쳐 들어온 것은 루드비히의 보좌관, 에르트 백작.

“다들 나와보십시오! 어서요!”

에딘이 검집을 들고 날카로운 기세를 내뿜었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지금 예의 차릴 때가 아닙니다! 어서! 공작 각하! 공작 각하!”

쩌렁쩌렁한 외침에 2층에서 내려온 아르칸이 텅 빈 눈으로 물었다.

“이게 무슨 소란인가. 백작.”

에르트 백작이 아르칸에게 달려가 와락 안겨들었다.

“돌아오셨습니다! 돌아오셨어요!”

그대로 굳어버린 아르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설마. 온몸이 덜덜 떨린다. 그러자 에르트 백작이 못을 박듯 다시 한번 울먹이며 읊조렸다.

“돌아오셨다고요. 공녀님께서. 루페르트 후작님과 함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