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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꽃밭에는 그들이 산다-274화 (274/323)

##  274화: 찾았다, 내, 토끼

어린 학생이 거리에 망연자실 주저앉아 있는 일이 흔한 것은 아니다.

하여 행인들이 흘끔흘끔 눈길을 주었으나, 그 누구도 온기를 내밀진 않았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느새 대한민국은 온정을 건네기보다는 온정 뒤 되돌아올 불의의 사고를 걱정하는 나라가 되었으니까.

지독히 차갑다. 외롭고 서러운 마음이 심장을 뚫어 기어코 나를 죽여버릴 것만 같다.

‘누구라도…….’

손 좀 내밀어줘.

나 여기 있잖아. 다들 내가 보이잖아.

어떻게 이 넓은 세상 그 누구도 발을 멈추지 않아?

어떻게 이 많은 사람 중 단 한 명도 괜찮냐고 물어보지 않아?

이제는 울음도 나오지 않는다. 세계가 나를 내쳤는데 눈물을 흘려봐야 뭘 하겠는가. 그게 땅을 적시면 외려 나를 더 미워할지도 모르는데.

윤설은 땅을 짚었다. 힘 빠진 손목이 몇 번 꺾이다가 겨우 몸을 지탱한다.

비척비척 일어선 윤설의 앞.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저 하늘 위에서 무심하게 비극을 관망하던 태양이 가려졌다. 그리고 어둠처럼 짙고 깊은 목소리.

“괜찮나.”

“……당신은…….”

“울어도 된다.”

“……?”

“기대도 되고.”

뭐야. 이 사람 뭔데-.

“명령해도 좋다.”

대체 뭔데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이었다. 조각나 텅 비어버린 눈에서 후드득 눈물이 떨어져 내린다.

볼을 빠르게 가로지르는 생경한 느낌에 마른 손이 황급히 얼굴로 올라갔다.

무의식적으로 닦아내려는데, 사내의 단단한 손이 살짝 닿아 제지한다.

“……?”

“네 눈물을 닦아주는 건 내 의무라.”

마치 허락을 구하듯 잠시 볼 근처를 맴돌던 따뜻한 손이 뺨을 부드럽게 쓸더니, 엄지가 눈가를 훔쳤다.

넋 나간 와중에도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자각은 있다. 윤설은 당황한 표정으로 사내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건 의심할 여지 없이 담뿍 담긴 친애.

‘대체 왜 나한테…….’

굳이 묻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사내가 먼저 답했다.

“그대에게 빚진 것이 많아서.”

“우리 오늘, 두 번째로 보는데…….”

윤설은 죄다 갈라져 가라앉은 목소리로 힘겹게 반론을 제시했다.

그러자 사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진다. 이내 떨어지는 모호한 대답.

“그럴 수도, 아닐 수도.”

“뭐야, 진짜…… 미친 사람이잖아…….”

예고 없이 다가온 수상쩍은 온기.

그러나 그조차도 처음 받아보는 거라…… 우는 법이 익숙지 않은 윤설은 차마 소리도 내지 못한 채로 고요히 부서져 울었다.

***

사내는 위로가 꽤 서투른 듯했다.

애먼 말도, 입바른 소리도 일절 없었다. 건네는 건 그저 투박한 토닥임.

그렇게 너무 가깝지 않은 거리와 말을 줄인 담백한 위로는 외려 윤설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윤설은 갈라진 입술을 뗐다.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린 것 같네.”

“다 울었나.”

“……네에.”

민망함에 눈을 피했으나 올곧은 시선은 끝까지 따라붙는다. 마치 윤설을 구석구석 파헤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원하는 것을 말해라.”

“왜. 들어주려고요?”

“물론.”

“……내가 엄청 많은 돈이라도 달라고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보다 더한 것도 죄다 바쳤는데 돈이 대수일까.”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이라서 그런가. 무슨 말인지 당최 모르겠다.

다만 무엇을 요구하든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표정에서 여실히 드러나 윤설은 픽 웃었다.

잠시 기대어 위로를 받기는 했다만, 모르는 이에게 근본적으로 의지할 만큼 성정이 유약하진 않다.

“제 이름은 윤설이에요. 성이 윤. 이름이 설.”

“…….”

“당신은 이름 안 가르쳐줘요?”

“내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건 오로지 한 분뿐이라.”

“뭐, 그래요. 그럼 혹시 한자 알고 있으면 내 이름의 설이 무슨 자를 쓰는지 맞혀볼래요?”

“…….”

“모르는구나.”

“내가 뭘 모르는 일은 아주 드물다.”

“그래서, 알아요?”

“……지금이 그 드문 경우인 것 같군.”

무심한 얼굴로 꼿꼿하게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묘하게 귀엽다. 옅게 웃으며, 설이 자답했다.

“설. 불사를 설(焫). 환히 피어나는 불꽃 같은 인생을 살라고 우리 부모님께서 지어주셨대요.”

수능 날이 으레 그러하듯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윤설은 고개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운명. 그런 형체 없는 이름의 적과 맞서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니 적어도, 이름값은 하면서 살아야겠죠.”

어디 가열하게 타오르는 것만 불씨이던가.

작아도, 미약해도, 끝내 사그라지지 않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불씨인 것을.

***

세계의 잔혹한 농간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반짝이는 눈은 참으로 고결하다.

등 뒤로 아공간을 연 아가레스는 작은 돌 하나를 꺼내 윤설에게 건넸다.

“이거. 지니고 있도록.”

“……돌멩이인데요?”

“그냥 돌멩이가 아니다.”

“그럼 뭐 축복이라도 담긴 돌멩이인가요?”

“역시…… 정확해.”

말도 안 된다는 어조로 일견 비꼬듯 던져보았는데, 거기다 대고 심각한 표정으로 정확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아무래도 약간 모자라 보여.

“혹시 그 돌멩이에서 뭔가 느껴지나.”

“으음, 흙냄새? 뭐 신성한 기운 그런 거?”

“본래부터 정령사의 자질이 있었군.”

아가레스는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면 그 물 덩어리에게 꼭 말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이브는 네놈의 흔적 때문에 대정령사가 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가늠할 수 없는 잠재력이 있었던 거라고.

이벨리아 한정 팔불출이 되어버리는 아가레스에게는 윤설이 농담조로 때려 맞추는 애매한 이야기가 다시 없을 천재 정령사의 자질로 탈바꿈되어 들렸다.

“그건 자연력을 소량이나마 담아둔 돌이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행운을 불러들이는 부적의 역할을 했지.”

“뭐, 그럼 속는 셈 치고 가지고 다녀 볼게요.”

윤설은 작은 돌멩이를 주머니 속에 넣었다. 기실 미신 같은 건 단 1%도 믿지 않지만, 호의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아가레스는 뚝뚝 떨어지는 미련을 애써 숨긴 채 윤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돌을 바라봤다.

방금 건넨 돌은 과거 정령왕 소환을 기념하는 연회 당시 이벨리아가 직접 자연력을 불어넣어 참석자들에게 베푼 것.

이벨리아의 손길이 닿은 것이니만큼 아가레스에게는 보물이었으나,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미신이 홀로 세계와 맞서는 윤설에게 일말의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대악마인 아가레스로서는 알 리가 없었다.

정령사가 만든 물건은 이를 지닌 인간에게 많든 적든 자연력을 퍼트리며, 그 일환에서 정령석은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경우-.

지닌 인간으로 하여금 아주 잠시, 정령을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을.

***

그날 이후. 윤설에게 아가레스는 애매한 거리의 지인이 되었다.

참 이상했다.

나이도, 정체도, 하다못해 국적도.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건만, 단지 자신에게 우호적인 존재 하나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과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윤설은 버틸 수 있었다.

예기치 못한 거액의 빚더미에 올라앉았어도.

오랜 노력이 피붙이의 방해로 물거품이 되었어도.

수능을 치른 같은 나이의 사촌이 가채점 결과를 으스대며 자랑했어도.

새로 사귄 지인의 존재로 인해 윤설은 세상에 가느다랗게 붙어 있을 수 있었다.

***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일에는 때로 정면 돌파가 효과적이다.

윤설은 사채업자가 바닥에 던지고 간 명함으로 전화를 걸어 말했다.

3억에 대한 담보를 걸겠으니, 추심을 늦춰달라고.

담보의 가치를 묻는 물음에, 윤설은 그 무엇보다 가치 있다고 답했다.

내건 담보는 자신의 미래였다.

이 대한민국 바닥, 가장 성공한 법조인이 되어 돈을 쓸어모아 이자까지 모두 갚겠다고.

황금알을 낳을 거위의 배를 지금 가르겠느냐, 아니면 키워서 더 큰 이익을 취하겠느냐. 당돌하게 묻는 윤설에게 사채업자는 재밌다는 듯 낄낄 웃으며 답했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고, 우리도 그 담보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는 좀 봐야 쓰지 않겄어?”

“어떻게 보여주면 되죠?”

“뭐, 대한민국에서 으뜸가는 대학에 떡하니 붙는다면야 느 미래를 담보로 잡아줄 수 있겄는디.”

“번복하기 없어요.”

“리미트는 1년이여.”

협박과 기대가 반반 섞인 어조. 윤설은 담담하게 답했다.

“얼마든지요.”

***

독한 년.

그 이후 1년간 피붙이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이모네 집에서 나오진 않았다.

쓸데없는 오기라면 오기였다.

어디 한번 보라고.

내가 얼마나 아득바득 살아가는지 보라고.

짓밟아 땅에 비벼대도 기어코 살아나서 타오르는 것을 똑똑히 보라고.

***

사내를 친구라 정의하기엔 일렀다.

그저 지옥 같았던 스무 살.

견디다 못해 집에서 잠시 뛰쳐나오는 날이면 공원에 함께 앉아 있는 게 전부였으니까.

꽃잎이 떨어지는 밤.

매미가 우는 밤.

나무가 노랗게 물드는 밤.

붕어빵을 사 먹던 밤…….

그 모든 계절의 밤, 여전히 정체 모를 사내는 가만히 윤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

스물한 살의 2월.

윤설은 보란 듯 합격증을 내던졌다.

이모와 이모부는 벌게진 얼굴로 학비는 꿈도 꾸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았고.

사촌들은 위조가 분명하다며 소리를 꽥꽥 지르다가 이내 어차피 거지는 등록금을 못 내지 않느냐 비아냥거렸다.

시기. 질투. 자격지심. 불안.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가만히 바라보던 윤설은…… 그 자리에서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봐. 나는 짓밟히지 않았어. 사그라지지 않았어. 기어코 살아남아서 피워냈어.

일견 기괴한 소리로 한참을 웃어대던 윤설은 흡사 미친 사람을 보듯 멍하니 눈을 키운 이모네 가족을 밀치고 망설임 없이 뛰쳐나왔다.

발은 본능적으로 공원을 향했다.

이 기쁨을 전할 존재는 이 세상에 단 하나였으니까.

“……아.”

깨달은 건 그때였다.

어느새. 미처 인식하지 못한 그 어느 순간에-.

“나, 해냈어.”

“그럴 줄 알았다. 너는 그런 존재니까.”

누가 봐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너는.

이미 내겐 벗이 되어 있었다.

***

스물두 살의 4월.

윤설이 대학에 간 이후에도 둘의 관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간간이 술잔을 부딪치고.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고.

과제가 어려울 때면 네게 질문을 던지고.

가끔 치킨이 먹고 싶을 때면 공원으로 찾아가고.

여전히 수라장이나 다름없는 현실에 사내가 애매한 거리로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윤설은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벚꽃이 흐드러진 어느 밤. 한강 앞에서 윤설은 물었다.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 거야?”

“내 주인이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

그때가 되면 떠날 거냐는, 답이 뻔한 물음은 던지지 않았다.

표정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 ‘주인’이라는 사람을 이 존재가 얼마나 갈망하는지.

다만 윤설은 무릎을 끌어안아 몸을 둥글게 말고 말했다.

“난 세계가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어.”

“그 기분 잘 안다.”

“근데 잠시나마 너를 내려준 걸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가 봐.”

“…….”

“별처럼 많은 불행 속에 금방 사라질 딱 하나의 행운이네.”

강바람을 타고 사내의 작은 대답이 들려온다.

“……나 역시, 그러하다.”

대화는 자신과 함께하고 있건만, 시선은 저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처럼. 픽 웃으며 윤설이 물었다.

“그거 나한테 하는 말 아니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이 모호함은 이젠 제법 익숙하여 윤설은 더 캐묻지 않고 흘려넘겼다.

어떤 비밀이 있어도 상관없다.

네가 나의 구원이자 벗이란 사실은 변함없을 테니까.

***

스물세 살의 10월.

한강 인근 공원을 거닐던 윤설은 돈을 부치라는 이모의 메시지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닫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온갖 폭언과 협박을 담은 메시지가 날아든다.

쉴 새 없이 울리는 핸드폰을, 곁에 선 사내가 자연히 빼앗아 꺼버렸다.

“지지. 이런 거 보지 마라.”

“지지라니. 아기들이나 쓰는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있다. 다 커서도 그 말을 쓰는 내 소중한 친우가.”

“그 보호자라는 사람?”

“응.”

“근데 벌써 4년도 넘었는데…….”

윤설이 살짝 눈치를 보며 뜸을 들였다. 아가레스가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있잖아, 그, 보호자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

말하고 보니 충분히 상처가 될 법하다. 황급히 변명을 덧붙이려던 찰나. 사내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안 든다.”

“……어떻게 그렇게 맹목적이야?”

“내겐 신이자 하늘이고, 주인이자 구원이거든.”

신도가 신을 우러르듯, 나는 그분을 추앙해서.

자신의 존재를 죄다 내던지는, 복종이나 다름없는 말을 하면서도 사내의 표정은 그저 태연하다. 거짓 하나 섞이지 않은 진심.

윤설은 문득 얼굴도 모르는 그 존재가 부러워졌다.

나를 구원한 너의 구원이라니.

“……되게 멋있는 사람인가 보네.”

“세상에서 가장.”

“엄청 당당하고 현명하겠다. 나랑은 다르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또 애매하게 흐리는 말.

윤설은 깨달았다. 그 보호자라는 존재와 자신이 함께 나오는 주제에서, 사내는 늘 이렇게 모호한 대답을 건넨다는 것을.

“그 보호자에 대한 얘기 조금 더 해주면 안 돼? 궁금해.”

그러나 돌연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 물 흐르듯 나누던 대화의 상대방이 증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왜 대답이 없…….”

의아하여 시선 돌린 윤설은 보았다.

하나뿐인 벗이 어딘가를 홀린 듯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직감이 벼락처럼 머리를 후려쳤다.

……왔구나.

네 주인이.

***

이번 여정은 신계에 올라갔던 것에 비하면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다만, 아무래도 세계가 달라서 그런가, 지나는 길이 말도 못 하게 험하긴 했지만.

“으으, 되게 정신없는 세계네.”

투덜대며 강물이 일렁이는 공원 근처에 다다른 이벨리아가 작게 읊었다.

“피어라, 등불이여. 피안의 경계에서 우리를 이끌어라.”

말끝에 따라붙는 빛은…… 이젠 지척에서 깜박인다.

드디어. 바로 이 풀숲 뒤에서.

이벨리아는 튀어나올 듯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 위에 손을 올렸다.

“제일 먼저 뭐라고 말하지?”

잘 지냈어? 아니면, 나 왔어? 그것도 아니면, 데이트하자?

“그냥 무난하게 내가 구하러 왔다! 이런 거로 가볼까……?”

그래, 그게 좋겠다.

굉장히 오랜만에 만나는 거니까, 우리.

분위기도 풀 겸. 잔뜩 겁을 먹었을 내 악마를 안심도 시킬 겸.

“후우.”

크게 심호흡한 이벨리아가 무성하게 자란 풀을 젖혔다.

생채기가 난 얼굴부터 흙투성이 발까지 모두 풀숲 밖으로 내밀자…….

“…….”

애써 생각했던 인사말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응어리진 감정이 명치를 치받아 숨조차 잘 쉬어지지 않았다.

세상이 지워지고 그저 너만 가득하다.

눈물이 형편없이 얼굴을 적시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눈앞에 있는…… 너.

보고 싶었어. 정말 보고 싶었어.

수십 년을 헤매면서 단 한시도 널 보고 싶지 않은 적이 없었어.

그리움을 잔뜩 머금은 목소리가 심장에서 쥐어짜내듯 비어져 나왔다.

“찾았다, 내,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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