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화: 현상금, 이브의 총애
매국(賣國).
사사로이 이권을 취하기 위해 조국을 팔아넘기는 행위.
세레스가 열어젖힌 남쪽 성문 사이로 연금술사들과 호문쿨루스들, 그리고 그들의 실험체인 검은 이리와 붉은 원숭이 떼가 물밀듯 밀려든다.
혹여 휩쓸릴까, 세레스는 성의 사잇문인 암문(暗門)에 몸을 숨겼다.
나고 자란 조국이 마구잡이로 짓밟히는 광경을 빤히 바라보는 눈엔 죄책감 따위는 일절 없었다. 가득한 건 외려 환희.
‘됐어, 됐어! 아버지의 명대로 부족함 없이 해냈다고!’
며칠 전 새벽, 자신을 찾아온 아버지의 호문쿨루스. 표정 없이 새파란 얼굴이 인형처럼 달각달각 입을 움직이며 전했더랬다.
조만간 대대적인 수도 침공이 이뤄지니 미리 판을 깔아두고 때가 되면 성문을 열어젖히라고.
그때부터 세레스는 에드윈과 자신의 오라버니, 그리고 에드윈의 외할아버지인 이세르나 백작과 함께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아르티나 영지전에 종군하는 황실 기사와 귀족 사병들도 제법 매수해두었지.’
막사에서 자고 있을 때,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식사할 때. 아군이라 믿던 이에게 심장을 찔려버리면 제아무리 아르티나라도 별수 있나.
혹여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이 수도로 귀환한다고 해도 걱정할 것 없다.
본디 사람이란 감당할 수 없는 비극 앞에선 정신을 놓아버리게 되는 법이니까.
세레스의 입가에 기대감 어린 미소가 매달렸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래, 영지전에서 가까스로 살아서 돌아왔는데 가장 먼저 그들을 마중하는 건 성 밖에 효시된 황태자의 시체인 거야.’
기꺼운 상상에 입꼬리가 점점 더 경사를 그린다.
‘그리고 이 제국의 주인이 된 내가 기사들을 모두 끌고 나가 아르티나를 맞이하는 거지.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벅차오르는 감정을 숨길 수가 없어 이젠 잇새에서 키득거리는 웃음까지 샌다.
‘그러고서 반쯤 주검이 된 공녀를 눈앞에 던져줄 거야.’
그걸 보면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빌까? 울까? 분노할까? 소리를 지를까?
“아아. 시시하게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왔으면 좋겠다.”
와서 봐줘. 내가 만든 이 복수극을. 보고 짐승처럼 우짖어줘.
흥분감에 세레스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내가 발아래 둘 수 없었던 모든 것들. 뼈아팠던 능욕의 순간들. 이젠 상관없다.
그 모든 건 이번 전쟁을 끝으로 이 땅에서 지워질 테니까.
이제 난 황제가 될 에드윈의 곁에서 황후로 군림하면 그만이다. 내 명에 감히 토를 달지 못하는 것들을 모아두고서.
암문 밖에선 찢어지는 비명이 울린다. 제발 살려달라는 애원도.
바깥 상황이 궁금해진 세레스는 암문 사이에 얼굴을 처박고 틈새로 눈을 깜박였다.
이가 기괴하게 삐져나온 검은 이리 하나가 평소 아르티나를 칭송하던 시종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것이 보인다.
“하하…….”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허공을 뛰는 원숭이가 과거 자신에게 입바른 말을 했던 시녀의 등에 손톱을 박아 넣는 것도 눈에 들어온다.
“하하하…….”
병기나 다름없는 호문쿨루스가 황태자를 극진히 모시던 기사의 목을 단번에 비틀어 던져버리는 것 역시.
“하하하, 아하하하하-!”
광소가 터졌다. 우습기 그지없다.
내 앞에선 모가지를 그리들 뻣뻣하게 세우더니 단말마는 너 나 할 것 없이 죄다 초라하구나!
세레스는 저 성벽 위 흩날리는 금빛 머리칼을 올려다봤다.
늘 당당하게 빛나던 얼굴이 낭패로 찌푸려져 있다. 간헐적인 웃음과 함께, 세레스는 혼잣말로 물었다.
“그러게 왜 그랬어? 왜 태어나서 내가 가진 걸 다 빼앗았어? 왜 나를 무시했어? 왜 우리 가문을 이 꼴로 만들었어? 왜 보란 듯 행복하게 웃었어? 응?”
다 네 탓이잖아. 내 잘못이 아니잖아.
탐오로 얼룩져도 여전히 고운 얼굴에 독기가 번들거렸다.
“이건 콘트라파소야.”
행한 업보를 그대로 돌려받는 지옥의 형벌.
너도 똑같이 당해봐.
모두 가졌다 빼앗기는 비참함을.
사랑하는 이들이 사지로 내몰리는 비극을.
이건 다…….
“빌어먹을 이벨리아 아르티나, 네가 시작한 일이니까.”
***
더할 나위 없는 참극을 한 편의 희극처럼 감상하던 세레스는 황자궁으로 돌아왔다.
황족의 거처는 드넓은 황궁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기에 아직은 침공의 여파가 직접 미치진 않고 있었다.
초조하게 손톱을 깨물며 서성이던 에드윈이 세레스를 와락 부여잡고 물었다.
“어떻게 됐지?”
“열었어요.”
“연금술사들은. 많이 왔나?”
“까마득하게요. 하늘에도 마족들이 빼곡해요.”
“전황은 좀 어떻지?”
“마족들만 상대할 때는 비등해 보였어요. 황태자와 공녀, 루페르트 후작이 생각보다 잘 버티더라고요. 하지만 이젠 연금술사에다 악마들까지 줄줄이 참전할 테니 어쩔 수 없이 밀릴 거예요.”
“확실해? 지금 네 추측 따위가 필요한 게 아니야!”
“확실해요! 마지막으로 본 공녀의 얼굴이 아주 엉망이었다고요!”
그제야 긴장이 풀린 에드윈이 세레스의 어깨를 거칠게 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역시 아르티나 일가를 모두 영지로 내보낸 게 주효했군.”
방금까지 동동거리던 모습은 간데없이 에드윈은 턱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신이 모든 판을 짠 것처럼 거만하게.
그 꼴이 가소롭기 짝이 없었지만, 세레스는 일단 참아냈다.
어차피 저것도 곧 자신의 꼭두각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될 테니까.
굳은살 없이 말랑한 손으로 쿠키를 집어 입에 넣으며 에드윈이 쯧쯧 혀를 찼다.
“아버지도 참 안되셨어.”
마주 앉은 세레스는 차를 우려내며 고개를 기울였다.
“애초에 형님이 아니라 날 황태자로 책봉하시지. 그러면 서거하시는 그날까진 평안하실 수 있도록 신경을 써드렸을 텐데.”
“폐하도 살해하실 생각이신가요?”
“뭐, 병세를 보아하니 곧 돌아가실 것 같긴 한데 인간사 모르는 거 아니겠나. 자칫 오래 살아계시기라도 하면 곤란해. 그리고 살해라기보단, 음…… 오랜 투병으로 괴롭지 마시라는 효도라고 해두지.”
천륜을 끊어내는 패륜. 인간의 탈을 쓰고선 할 수 없는 발언을 해대면서도 에드윈은 그저 태연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인데…….”
“아버지는 무슨. 어머니가 냉궁에서 미쳐가는 것을 두고 보기만 할 때부터 내겐 아버지 역시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어.”
에드윈은 얼굴 부분을 지져버린 황제의 초상화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다시 세레스에게로 초점을 옮겼다. 광기 가득한 눈이었다.
“그보다 세레스.”
“네.”
“하나 말해둘 게 있는데.”
“말씀하세요.”
“그 전에 질문. 이번 전쟁에서 공녀가 살아남을 것 같나?”
“일단 아버지께 공녀는 되도록 살려서 넘겨달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러자 에드윈이 세레스의 손등을 은근하게 쓰다듬었다.
서로 이성적 매력은 일절 느끼지 못하기에 둘 사이 신체 접촉은 드물다 못해 없는 편이었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세레스의 눈에 의문이 들어찼다.
“내가 황제가 되면 그대에게 황후 자리를 준다 약조했지.”
“그러셨지요.”
“그 약조는 내 목숨같이 지킬 예정이야. 다만.”
에드윈의 얼굴에 일순 짙고 더러운 욕망이 번뜩였다.
“공녀를 내 첩 중 하나로 들였으면 하는데.”
“……뭐라고요?”
“물론 황비의 지위를 줄 건 아니야. 우리가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아르티나는 전범(戰犯)에 역적 가문이 되는 건데, 그런 가문의 여식을 어디 고귀한 황비 자리에 올리겠나.”
어이가 없어 입을 벌린 세레스는 어디까지 가나 보자는 식으로 팔짱 끼고 등받이에 기댔다.
이를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인 에드윈은 신이 나서 속셈을 나불댔다.
“천것으로 두고 그저 내가 좀 데리고 놀았으면 해서. 무엇보다 곁에 둬야 감시하기도 분을 풀기도 용이할 것 아닌가. 그렇지?”
세레스는 기가 막혔다.
입으로는 아르티나를 증오한다 그리 외쳐대면서 공녀에 대한 집착은 아직도 버리질 못했구나. 욕망이 뇌를 지배한 모지리 같으니라고.
어차피 전쟁만 끝나면 이 모자란 약혼자도 자신의 손아귀에 떨어질 테니, 굳이 지금 대립각을 세울 필요는 없다.
하여 세레스는 그저 쌀쌀맞게 내뱉었다.
“일단 생포나 하고 생각해요.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하긴. 그 악독한 것은 혀를 깨물고 죽으면 죽었지 순순히 포로가 될 것은 아니지.”
마치 염원하던 장난감을 빼앗길 위기에 놓인 아이처럼 에드윈의 눈썹이 아래로 축 내려갔다.
“그럼 그대, 선대 후작에게 좀 전해주겠나?”
“뭘요.”
“공녀를 사로잡자마자 자연력을 폐하고 손발의 힘줄을 자른 다음 자결하지 못하게 재갈을 물리라고. 그러면 산 채로 내 앞에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와, 전하 진짜…….”
“좋은 방법이지? 공녀가 생긴 건 제법 반반하니 그냥 죽이기엔 영 아깝단 말이야.”
쓰레기시네요. 세레스는 나오려는 말을 애써 눌러 삼켰다.
저 더럽고 음습한 욕망. 뭘 원하는 건지 그 검은 속내가 적나라하게 펼쳐지니 마주하고 앉아있기도 구역질이 난다.
차갑게 일어선 세레스는 애정 없는 눈으로 약혼자를 일별하고 돌아섰다.
***
두 매국노가 안전한 곳에 처박혀 전쟁 이후의 황홀한 미래를 꿈꾸고 있던 그때.
제국의 존립을 위해 사투하는 성벽과 성문 부근엔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오늘 이 세계가 멸망한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불길, 물길, 그리고 끈적한 피.
남문과 동문 사이에서 두 성벽을 모두 지켜내고 있던 이벨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 호문쿨루스들 상당히 강해. 키메라들도 만만치 않고.’
일단 성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는 것들부터 어느 정도 처리를 해줘야 하는데.
지상에 집중할라치면 창공에서, 창공으로 시선 돌리면 다시 지상에서. 번갈아 시선을 빼앗으니 뭐 하나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다.
‘침공이 강해지는 곳에 우르르 몰려가서 막을 게 아니야. 배치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어.’
노대 위로 올라간 이벨리아는 사방위 성벽과 성문의 특색, 주로 공격하는 적의 특성을 재빠르게 파악했다.
일순 훑는 것만으로도 전황을 그려내는 타고난 지장. 이벨리아가 입을 열었다.
“병력을 나눈다!”
기사들은 바삐 검을 휘두르면서도 귀를 기울였다.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책략가가 바로 이벨리아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남문을, 루페르트 후작이 동문을, 카시스 영식이 북문을, 전하께서 서문을 맡는다!”
그러자 이벨리아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고 주변을 맴돌던 아가레스와 루드비히가 못마땅하다는 듯 답했다.
“……일단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인 것 같군.”
“남문과 서문은 너무 먼데. 어쩔 수 없지, 뭐. 알겠어.”
그리고 이미 저 먼 곳에서 마법을 난사하던 이크리안은 배에 힘을 주고 크게 답했다.
“네에에에엡!”
언제 저기까지 갔대, 발 빠른 공장장. 이벨리아가 팔을 뻗어 기사들을 가리키며 추가로 지시를 이어갔다.
“아르티나 기사단은 남문과 동문으로, 황실 기사단과 기타 사병들은 북문과 서문으로 분병(分兵)하도록!”
“예!”
“분병하라!”
비록 수라장이나 사령관이 크게 당황한 기색 없이 바로 서자, 우왕좌왕하던 기사들 사이에서도 각 잡힌 대답이 들려왔다.
아가레스와 루드비히, 이크리안이 각 성문으로 향하고, 직후 이벨리아 역시 기사들을 이끌고 남문으로 발을 떼려던 그때.
- 쐐애애애액.
촉이 돌로 된 화살 하나가 정확히 미간으로 쇄도한다. 일반 화살과 달리 그야말로 빛처럼 빠른 속도로.
‘이런……!’
정령을 불러 막아내기엔 이미 화살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잘못하면 즉사겠는데.’
다가올 고통에 대비해 자신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던 찰나.
- 크르르르르.
흡사 용암이 끓는 듯한 으르렁거림과 함께 뜨거운 입김이 훅 끼쳐온다.
예상했던 고통은 없다. 이벨리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곧바로 보이는 건 거대하고 복슬복슬한 황토색 앞발.
“……짐승?”
다가오는 마족 두엇을 입으로 물어 찢어내며, 괴수라 불러도 모자람 없을 짐승이 화살 박힌 앞발을 탈탈 털었다.
“아, 따가, 따가. 이거 권능을 담은 화살인데?”
익숙한 목소리. 또 익숙한 경박스러움. 이벨리아가 반색하며 외쳤다.
“잔디!”
마르바스가 이벨리아 대신 맞은 화살을 이빨로 뽑아내며 툴툴댔다.
“땅콩 폐하. 지지리 약하시면서 이런 최전선에서 날 잡아 잡숴 하고 있으면 어떡하냐, 대책 없이? 응?”
“나 안 약…….”
“봐라, 지금도 자타 공인 대악마인 내가 안 왔으면 그 조그만 머리에 화살 박혀서 죽을 뻔했지. 나 정도 되니까 이게 따가운 거지, 땅콩만 한 폐하가 맞았으면 즉사라고!”
잔소리를 빙자한 자기 자랑.
잔디 다루기엔 도가 튼 이벨리아는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이며 의지 없는 물개처럼 대충 손뼉을 쳤다.
성의 없는 반응에도 기뻤는지 훙훙 뜨거운 콧김을 뿜던 마르바스는 전장을 주욱 훑더니 이내 후방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저놈이네. 활.”
“어디?”
“땅콩 폐하 시력으론 안 보일 거야. 저놈이 10위였나, 12위였나, 저 말 대가리 내가 어디서 많이 봤는데 잘 기억이 안 나네.”
“꽤 높네? 제법 위협이 되겠어.”
그러자 마르바스가 그르렁 소리를 내며 거만하게 웃었다.
“폐하. 나 정도는 되어야 높다고 할 수 있는 거야. 잠시만 기다려, 저거 물어올게.”
툭 치면 날아갈 우리 땅콩 왕에게 감히 무식하게 활을 쏴?
중얼거리며 거대한 사자는 그대로 성벽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어어, 그렇게 혼자 가면 안 되는데! 잔디야! 멍청아!”
삽시간에 신형조차 보이지 않는다.
적의 몸통도 아니고 후방까지 쳐들어가 버린 답 없는 잔디를 바라보며 이벨리아가 황망히 입을 벌리던 그때.
“놔둬, 밥풀 폐하.”
“언니 악마! 하지만 잔디가 혼자 저기까지……!”
“쟤는 저런 전투를 좋아해. 무식하게.”
그러자 돌처럼 억양 없고 묵직한 목소리가 이어 들려온다.
“대가리가 사자니 지능도 별반 다를 것 없겠지. 별수 있나.”
“모지리 악마도 왔네!”
“……왕이 싸우고 있는데 안 올 수 없지. 신하 된 도리로.”
한편 아르티나 기사단을 제외한 다른 기사들과 병사들은 입을 헤벌렸다.
공녀님께서 동부의 지배자와 친분이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 휘하 악마들까지 저리 자연스럽게 부려먹으실 줄이야.
흘끗 둘러본 로노베가 진홍빛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요요히 웃었다.
이내 보란 듯, 이벨리아 앞에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어 부복한다.
직후, 동부의 모든 악마와 마족들 역시 일제히 몸을 낮춘다.
“다들 왜…….”
이벨리아가 미처 의문을 표하기도 전. 바르바토스가 고개 들어 청했다.
“하명하시길, 나의 왕.”
아. 이벨리아는 깨달았다.
이곳엔 동부의 마족들뿐만 아니라 인간, 연금술사, 다른 지역의 마족들까지 두루 모여 있다.
대내적으로 아무리 편하게 지낸다고 하더라도, 다른 집단 앞에서 그들이 인정한 왕을 쉽게 대했다가는 동부 전체의 권위가 떨어지게 마련.
의도를 알아챈 이벨리아가 옅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오연히 떨어지는 왕령.
“세레스 데퐁트. 회색 머리, 잿빛 눈. 내 앞에 데려와.”
“생사는?”
“숨은 붙여서. 내가 죽일 거라.”
“존명.”
곧바로 몸을 일으켜 산개하려는 마족들의 뒤.
이벨리아가 첨언했다.
“아. 걸리는 게 있어야 재밌겠지?”
악마와 마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휙 돌아온다.
둘러보며 이벨리아가 씩 웃었다.
“현상금, 왕의 총애.”
악마들의 눈이 번뜩 불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