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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꽃밭에는 그들이 산다-256화 (256/323)

##  256화: 한 침대에서 먹는 아침

설원이 온통 얼어붙은 이 광경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강풍과 함께 몰아닥친 거대한 마력은 잠시나마 이 세계 자연 위에 덧씌워졌다.

렐리안의 다급했던 심경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창공에서 땅으로 내리꽂히는 수빙(水氷)은 악마의 화염을 모두 소멸시키고도 한동안 멎지 않았다.

여파로 지상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멎는다. 잿빛 하늘 사이 언뜻 푸른색이 비친다.

그 위를 활강하는 녹색 독수리는 아르칸을 비롯한 아르티나 기사단에겐 제법 익숙한 것이었다.

[아야! 내 깃털! 계약자의 친구도 내 깃털을 존중하지 않네!]

“……미안해요, 정령님.”

[거긴 내 머리털이야! 안 떨어뜨릴 테니까 머리털 당기지 마!]

실라페의 투덜거림과 함께, 렐리안은 고요히 눈발 날리는 설원에 착지했다.

얇은 경갑옷을 입고 손에는 마력을 증폭시키는 아스트라페를 든 채로.

아르칸은 지척에서 살랑이는 보랏빛 머리칼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멍하니 손을 뻗었다.

격렬한 전투로 인해 메마른 입술이 천천히 열린다.

“……렐리안?”

간절히 불렀으나 늘 돌아오던 사근사근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혹시 숨이 끊기기 전에 스쳐 가는 환영인가. 아르칸은 손끝을 옅게 떨었다.

“……렐리안.”

물기 머금은 자색 눈동자가 그제야 아르칸을 돌아봤다.

“말 걸지 말아요.”

답하는 음성은 방금 쏟아져 내린 얼음처럼 차갑기 그지없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아르칸이 와락 달려들어 어깨를 부여잡았다.

“렐리안, 그대가 이 위험한 곳엔 어떻게……!”

“말 걸지 말라고요. 나 잔뜩 화났으니까.”

서늘한 눈초리. 거칠 것 없던 사령관의 등허리에 식은땀이 삐질 흘러내렸다.

죽음에서 기껏 벗어났더니 사신보다 무섭다는 화난 아내와 마주했다.

아르칸이 어물어물 렐리안의 어깨를 쓸었다.

“……그, 일단 내가 미안하고…….”

“내게 뭘 사과해야 하는지 알긴 아나요?”

“그대에게 미리 말을 하고 떠나지 못해서-.”

“아니.”

“죽을 뻔해서……?”

“아니.”

“……그럼 나 뭐 잘못했어?”

렐리안이 한 걸음 크게 다가가 아르칸의 볼을 와락 감싸 쥐었다.

날아오는 내내 아주 호되게 성질을 내버리겠다고 다짐했었는데…… 피곤이 한가득 내려앉은 몰골을 보아하니 그러기도 쉽지 않다.

“날 안 믿어준 거.”

“난 항상 그대를 믿는-.”

“말로만 믿잖아.”

“……?”

렐리안이 엄한 표정으로 다그쳤다.

“용님을 제외하면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는 나예요.”

“알고 있어.”

“마탑주 자리도 내가 걷어찼고.”

“……그것도 알지.”

“모처럼 대마법사 아내를 뒀으면서 함께 출진하자 제안조차 하지 않는 게 말이 돼요?”

아르칸이 살짝 시선을 내렸다. 자신의 뺨을 잡은 아내의 고운 손이 눈에 들어온다. 굳은살 하나 없는, 여리고 보드라운. 렐리안, 나는 그저…….

“그대는 내 어머니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랐어.”

아버지가 어머니의 평안을 평생토록 바라 힘써오셨듯, 나 역시 다를 것 없으니까.

“홀로 안전한 울타리는 되레 지옥이에요.”

“내겐 그대가 이 험한 곳을 밟는 게 지옥이야.”

“당신의 지옥을 함께 걷는 게 내 역할이죠.”

혼약식 날 분명 말했던 것 같은데. 렐리안이 옅게 웃으며 아르칸의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예전에 내가 오라버니에게 그랬었거든요. 언젠가 아르칸 오라버니가 위험에 처하면 아주 멋있게 달려가서 온통 벼락으로 구워버리고 공주님 안기로 구해서 나올 거라고.”

“그 녀석 분명 안 들은 귀 산다고 했겠군.”

“그리고 그 자리에서 프러포즈할 거라고.”

“……!”

“지금이 내가 딱 꿈에 그리던 상황인데, 프러포즈는 이미 당신이 선수 쳐버렸으니…… 어때요, 공주님 안기라도 해줄까요?”

렐리안의 너스레에 픽 웃은 아르칸은 얼음 더미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마족들을 향해 검을 겨눴다.

“이것들부터 다 처리하고 나서 얌전히 안기지.”

“좋아요. 얼른 없애버리고 안아줘야지.”

등을 마주 댄 렐리안 역시 미소 띤 채 아스트라페를 높이 치켜들었다.

금빛 검기와 대마력을 담은 마법진이 동시에 설원의 창공으로 산개한다.

두 주인의 곁으로 달려오던 아르티나 기사단 일원들은 생각했다.

그들이 일평생 등을 보고 달렸던 선대 주인님 내외와…… 참으로 같다고.

***

렐리안이 마법을 배우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언젠가 악마와 대적할 이벨리아를 돕고 싶다는 마음. 하여 렐리안의 마법은 특히 빙(氷) 계열에 특화되어 있었다.

상극으로 불을 사용하는 악마로서는 전후좌우 솟구치고 떨어지는 대마법사의 빙결 마법을 파훼할 수 없음은 당연했다.

하여 아르칸의 격전지 중 하나가 예상보다 빠른 승리로 종결된 뒤.

렐리안은 배다른 언니가 종군 상단을 통해 잔뜩 보내온 식량을 두 볼 가득 밀어 넣었다.

흡사 햄스터처럼 빵빵해진 볼을 귀엽다는 듯 쿡 찌르며 아르칸이 따뜻한 차를 건넸다.

“그대가 여기 온 걸 이브는 알아?”

“알죠. 이브가 제게 말해줬는걸요.”

“이브가? 뭐라고?”

“그대로 읊자면…….”

렐리안이 이벨리아의 표정과 몸짓을 그대로 흉내 내며 말을 이었다.

“렐리안이 연구실에 처박힌 사이에 우리 오라버니가 홀로 출진을 해버렸는데, 물론 오라버니는 아주 강하지만 혹시 적이 막 불덩어리를 쏘는 악마면 어떡하지? 아니면 마족이 엄청나게 많아서 반드시 마법사가 필요하다면 어떡하지? 그것도 아니면 또 의무다 뭐다 혼자 마족들 사이에서 칼춤을 추고 있으면 어떡하지?”

“……거짓말이지?”

“놀랍게도 진실이고, 와보니 사실이네요.”

“내 동생이지만 참으로 귀신같아. 어디 눈이 될 만한 정령이라도 붙여둔 건가.”

“원래 공녀님은 대단해요. 그러니 내가 평생 졸졸 쫓아다녔죠.”

“……여하간 이브가 그대를 거의 발로 차서 내쫓은 격이군.”

“그렇다기엔 ‘우리 오라버니가 홀로 출진을’까지 듣고 제가 먼저 갑옷을 챙겨 입었는걸요.”

사랑하는 아내가 이 험한 곳에 있는 게 언짢은 것과는 별개로, 자신을 위해 한달음에 달려와 준 그 든든함에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르칸이 자기 몫으로 배분된 주먹밥 하나를 렐리안의 손에 올려주며 물었다.

“근데 그 아스트라페는 어디서 났지? 상당한 귀물 같은데.”

“아, 이거요?”

렐리안이 발치에 대충 던져둔 아스트라페를 발로 툭툭 치며 답했다.

“마탑에서 훔쳐 왔어요.”

“……뭐?”

“정확히 말하자면, 이브가 훔쳐다 줬어요.”

“……마탑의 물건을 훔치면 척살이라고 들었는데. 일반 물건도 아니고 귀물을 훔쳐 왔어, 내 동생이?”

“뭐 어쩌겠어요, 이 격전지에 얼마나 많은 마력이 필요할지 알 수 없는데. 책임이야 내 오라버니가 지겠죠.”

렐리안이 주먹밥을 반 잘라 아르칸에게 내밀며 맑게 웃었다.

“아니면 이쪽 오라버니가 지셔도 좋고.”

나의 각하께서 그 정돈 막아주실 수 있잖아요?

이벨리아에게 제대로 물들어버린 뻔뻔한 말투. 그것마저도 마냥 사랑스러워 아르칸이 재차 입술을 겹쳤다.

그리고…….

뒤에서 지켜보던 아르티나 기사단 일원들은 이번에도 생각했다.

그들이 일평생 등을 보고 달렸던 선대 주인님 내외와…… 이것까지 같으셔야만 했냐고.

‘저것만큼은 닮지 않으시길 바랐는데.’

‘전쟁터에서 애정행각하시는 것까지 닮으시다니.’

‘하…… 인생 쓰다, 써.’

***

한편 시간을 조금 앞으로 돌려, 렐리안이 이벨리아의 실라페를 타고 격전지로 출발한 다음 날, 공작저.

늦은 저녁까지 아르티나 정보부와 파라반트로부터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전보를 받아 살피던 이벨리아는 눈앞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흘끗 시선을 올렸다.

“왜, 토끼?”

“너 쉬어야 해.”

“됐어. 우리 가족들부터 렐리안까지 죄다 나가 있는데 쉬긴 무슨.”

“그러니까 더더욱. 네 일은 그들을 걱정하는 게 아니야. 이 수도를 지키는 거지.”

“정보를 살피는 것도 수도를 지키는 일이야.”

“네가 보고 있는 건 모두 영지전 정보인 걸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이벨리아가 뭐라고 답하기도 전.

훅 다가온 악마의 커다란 손이 뺨을 넉넉히 감쌌다.

“……!”

이내 단단한 손가락이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한 눈가를 살살 쓸어내린다.

“이렇게 졸음 가득한 눈을 하고.”

손이 조금 아래로 미끄러지더니 엄지가 입술 위를 배회한다. 닿지 않게. 그러나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제대로 먹지도 않고.”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뜨거운 손이 목덜미를 지나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속상하게.”

이벨리아가 고개를 숙이고 있자 어깨에 내려앉은 손이 미약한 힘을 띤다.

봐달라는 뜻. 이에 흘끗 올려다보니 금빛 눈동자엔 우려가 담뿍 담겨 있다.

이 숙련된 위로, 혹은 거부할 수 없는 아양.

이벨리아는 마지못해 들고 있던 전서를 내려두었다.

그제야 악마의 입매에 요요한 미소가 번진다. 마치 소소한 사냥을 성공한 맹수처럼.

부드럽게 손을 끌어 이벨리아를 소파에 앉힌 악마가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주며 다정히 물었다.

“저녁 먹을까?”

“아니. 입맛 없어.”

“네가 좋아하는 송아지 스테이크랑 감자 퓌레인데도?”

“우리 집 저녁 메뉴를 토끼가 어떻게 알아?”

“내가 시켰으니까. 네가 좋아하는 거로.”

조금 전까지 전혀 입맛이 없었는데. 토끼의 입에서 나오는 음식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허기가 진다. 이벨리아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럼 조금만 먹을까? 토끼 성의도 있으니까?”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바람처럼 일어난 아가레스가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테사가 신속하게 음식을 날라 테이블에 올려준다. 이벨리아는 조금 황당해졌다.

“어떻게 테사가 이렇게 타이밍 좋게 음식을 들고 밖에 서 있어?”

“내가 지시했으니까. 언제든 네가 먹을 수 있게 준비하라고.”

“……치밀한 토끼 같으니라고.”

어떻게든 날 살살 꾀어내서 먹게 할 계획이었군.

“왕의 건강을 챙기는 건 충신의 의무지.”

나른히 웃은 악마는 충실하게 식사 수발을 들었다.

스테이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입에 넣어주고, 목이 마른 티를 내기도 전에 오렌지 주스를 따라주면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이벨리아는 커다란 눈을 느리게 슴벅였다.

빌어먹을 식곤증. 어제 한숨도 자지 못하는 바람에 축적된 잠이 한 번에 몰려온 듯하다.

“하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자, 악마는 마치 준비라도 해둔 것처럼 어디선가 담요를 꺼내 들고선 고치를 감듯 이벨리아를 돌돌 감았다.

“뭐야……?”

“자자.”

오른팔을 둘러 어깨를 살짝 당기자 가벼운 몸이 순순히 딸려온다.

아가레스는 이벨리아를 자신의 무릎 위에 조심히 눕혔다.

“……나 안 잘 건데.”

“그럼 잠깐 졸기만 해.”

“……잠깐?”

“아주 잠깐.”

“……그럼 잠깐 졸고 남은 전서 볼래…….”

“그래.”

토끼의 술수에 적당히 타협한 이벨리아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

악마는 그 거대함에 어울리지 않는 섬세한 손길로 친우의 어깨를 규칙적으로 토닥였다.

색-. 색-.

금세 들려오는 옅은 호흡이 악마에겐 그 어떤 음률보다 아름답다.

아가레스는 깊이 잠든 이벨리아를 한쪽 팔로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에겐 지나치게 가벼워 아무래도 내일 아침은 조금 더 신경 써서 먹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침대로 걸음을 옮긴 악마는 이불을 젖혀내고 친우를 눕혔다.

우웅, 잠투정하며 뒤척이는 것이 안쓰러워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고, 두꺼운 이불 위를 토닥이려다가 멈칫한다.

“…….”

과거에도 그랬지만 이젠 더더욱 네 의사 없이 어느 한구석이라도 손대는 것이 조심스럽다.

하여 악마는 그저 곁에 앉아 환히 비치는 달빛을 가려주었다.

네 꿈이 과거 내가 보름달을 만들어주었던 그날처럼 달기를 바라면서.

***

새가 심상치 않게 지저귄다. 심지어 감은 눈앞도 밝다.

“……!”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이벨리아는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아침이라니! 왜 아침이야!”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 미지근한 물 한 잔이 손에 내려앉는다. 쭉 들이켠 이벨리아가 사납게 눈을 치켜떴다.

“너, 이 요망한 토끼! 전부 계획된 거였지! 밥부터 잠까지!”

“응.”

“뭐, 뭐가 이렇게 당당해?”

“네 건강보다 우선인 건 없어. 그리고-.”

아가레스는 밤새 조용히 곁을 지키며 이벨리아 대신 전서를 읽고 요약한 정리본을 내밀었다.

유려한 필체로 가득 채워진 종이 두 장.

“덜 혼나려고 이것도 정리해뒀고.”

받아든 이벨리아가 얼떨떨하게 눈을 깜박였다.

훑어보니 자신이 읽고 정리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이 핵심 내용이 잘 추려져 있다.

“……유능한 토끼.”

“네가 마음껏 부려먹어도 되는 토끼지.”

픽 웃은 악마는 미리 준비해뒀던 빵을 친우에게 자연스럽게 물렸다.

이벨리아가 침대 헤드에 기대 오물오물 빵을 넘기는 사이. 아가레스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침대 한쪽이 미세하게 기우는 느낌. 장소의 특수성 때문일까, 아니면 물건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일까. 이벨리아의 심장도 함께 폭 가라앉는다.

‘……옛날엔 침대에 함께 잘만 앉아 있었는데.’

뭔가 방에 단둘이. 그것도 침대 위에 있자니 어딘가 묘하게 배덕한 느낌이 든다.

이벨리아는 흘끗 악마를 곁눈질했다.

도둑질하는 듯한 자신의 시선과는 달리 똑바로 닿아오는 금안.

괜히 놀라 황급히 고개 돌린 이벨리아는 잠시 도르륵 눈을 굴리다가, 이내 엉덩이를 스을쩍 떼서 악마 곁으로 움직였다.

“…….”

아무 반응 없네. 조금 더.

“…….”

이래도 반응 없네. 조금 더.

“…….”

이윽고 완전히 맞닿을 때까지.

악마는 깊이 침잠한 눈으로 친구를, 아니, 이벨리아를 불렀다.

“……이브.”

이벨리아는 모르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번엔 목 울리는 소리가 섞인 부름이 들려온다. 마치 닥칠 위험을 미리 경고라도 하는 것처럼.

“이벨리아.”

“……이대로 있자. 잠시만.”

“…….”

“너랑 가까이 있으면 안심된단 말이야.”

후우. 낮은 한숨이 여린 목덜미에 쏟아져 내린다.

괜히 야살스러워 이벨리아가 파르르 몸을 떨었다.

어떤 의미로 이해한 것인지, 악마는 이벨리아의 몸을 바짝 끌어당겼다.

흡사 품에 안긴 것만 같은 모양새.

이벨리아는 붉어진 얼굴을 숨기고자 악마의 품에 고개를 묻었고. 그에 악마의 귓가 역시 붉게 물들었다.

쿵. 쿵. 오랜 달리기를 한 것처럼 격렬하게 뛰는 심장 소리가 내 것인지 네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빵 더 먹을래?”

“……줘.”

그렇게 어쩌다 한 침대에서 시작된 둘의 아침 식사는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빵을 먹는 도중 손이 스치면 잠시 멈추고.

굳이 같은 빵을 나눠 먹겠다 자르느라 멈추고.

꼭 같은 컵을 사용하겠다 기다리느라 멈추고.

품이 안온하면 그 온기를 느끼느라 멈추고.

늘 긴박하게 달리기만 했던 일상, 네 곁이라면 수없이 멈춰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

해가 중천에 뜰 무렵.

이벨리아는 마치 죄라도 지은 것처럼 방문을 빼꼼 열었다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테사를 마주하곤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아무 일도 없었어!”

“전 아무 말씀도 안 드렸는데요, 아가씨.”

“그냥 밥만 먹었어!”

“저도 알고 있답니다.”

“……그, 그럼 됐어.”

그냥 밥이라기엔 먹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손짓 눈짓이 있었기는 하다만, 어쨌든 영 거짓말은 아니다.

이벨리아는 애써 떳떳하게 가슴을 폈다.

그때였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벼락 치는 것만 같은 날갯짓 소리.

이벨리아는 테사의 등 뒤에 있는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들. 저건…….

“전서구? 뭐가 저렇게 많이……!”

표정을 굳힌 이벨리아가 달려가 창문을 열었다. 십수 마리의 전서구가 일제히 공작저 안으로 날아든다.

그중 자신의 것이 가장 급하다는 듯 크게 우는 새 한 마리. 아가레스가 발목에 묶인 전서를 풀어 이벨리아에게 건넸다.

긴박함을 알리듯 엉망으로 휘갈긴 필체.

그건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황궁 상공. 다수의 균열 발생. 수 불명(不明). 급수 불명(不明)」

빤히 내려다보던 이벨리아가 전서를 구기며 서늘하게 입매를 올렸다.

역시. 예상대로.

“저들이 노린 건 수도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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