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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꽃밭에는 그들이 산다-255화 (255/323)

##  255화: 내 연인에게서 떨어져!

그리고 이곳, 엘리시아의 진영.

하늘에 맞닿기라도 할 것처럼 높이 솟은 성벽을 올려다보며 엘리시아는 난감하다는 듯 한숨을 흘렸다.

고운 눈썹을 찌푸린 엘리시아를 향해 아르티나 기사단원 중 하나가 슬쩍 눈치 보며 보고를 올렸다.

“사령관님. 정찰병이 말하길, 성 내부에선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럴 줄 알았다. 살짝 고개를 기울인 엘리시아가 읊조렸다.

“저 안에 적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수가 몇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구나.”

이것으로, 마주할 수 있는 전장의 유형 중 가장 까다로운 판이 되었다.

“축성 능력이 있는 악마가 살아 있었다니.”

전쟁은 공성보단 수성이 압도적으로 쉽다.

즉, 군세가 비슷한 상황이라면 저런 무식한 성을 지어두고 성문을 꽁꽁 걸어 잠근 상대를 이겨 먹기는 하늘의 별 따기란 소리다.

심지어 이쪽은 식량 등의 물자가 현저히 적은 상황.

‘여러모로 곤란한데.’

엘리시아가 느리게 검지를 까닥였다.

‘휴고 정도의 무식한 힘이 아니면 저 성벽을 부술 수 있을 리도 없고.’

상황이 이럴 줄 알았다면 내 남편을 자루에 담아 올걸.

‘하다못해 저 안에 있는 마족들의 수라도 알면 좋으련만.’

전략이란 아군과 적군의 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니만큼, 적의 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엘리시아가 획책할 수 있는 전술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격전지를 버리지도, 또 막무가내로 쳐들어가지도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진 지 어느덧 사흘.

이쯤 되니 엘리시아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조금의 움직임만 있어도 그로부터 적군의 수를 짐작이라도 해 볼 텐데, 저 성은 정말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다.

“머리 좀 쓰는군.”

아마 저들의 목적은 내 발을 여기에 묶어두는 것이겠지.

적의 수를 알지 못하는 이상 내가 공성의 부담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공세를 펼치지 못하리라는 것도 아주 잘 이용하고 있어.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한 엘리시아는 허름한 막사 안에서 독주를 병째로 입에 털어 넣으며 전략판을 응시했다.

시간을 더 오래 끌 순 없다. 어떤 결정이든 내려야만 한다. 이미 군량은 바닥이 났고, 사냥을 통해 조달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엘리시아가 깊은 한숨 끝에 술병 하나의 마개를 더 따던 찰나.

- 톡. 톡.

군막을 두드리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레 술병을 내려둔 엘리시아가 조용히 단검을 쥐었다.

“검은 내려두시지요. 적이 아닙니다.”

“깊은 밤, 야영지에 허가 없이 들어온 주제에 적이 아니라…….”

“공녀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이브가?”

반신반의하며 엘리시아가 검의 위치를 살짝 낮췄다. 하지만 곁에 불러둔 운다인은 돌려보내지 않은 채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항복하는 것처럼 두 손을 들고 천막 안으로 들어온 자는 투박한 안대로 왼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이거 귀한 손님이 오셨군.”

엘리시아가 운다인을 돌려보내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의자에 나른하게 기대 두 다리는 테이블 위로 올린 것이, 선대 공작부인이 아니라 치열한 전장을 누비는 거친 장수를 보는 듯했다.

“기억해주시니 영광입니다.”

“이브의 성년식 날에 주변을 맴도는 것을 보았지.”

파라반트의 마스터가 능글맞게 입꼬리를 올렸다.

“제가 감히 댁의 금지옥엽을 마음에 두어.”

“얼마든지 두어라. 어차피 그대가 가닿을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니.”

“이래 봬도 주제를 제법 잘 아는 천것이니 염려 마시길.”

그가 엘리시아의 앞에 방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았다.

엘리시아는 슬쩍 눈썹을 올리기만 할 뿐 태도를 지적하진 않았다.

“그래서. 내 딸의 지시로 그 귀한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다?”

“예. 와보니 새삼 알겠습니다.”

“무엇을?”

“역시 제가 연모하는 분께선 참으로 현명하시다는 것을.”

마스터의 오른쪽 눈이 곱게 접혔다.

“다들 지원군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거라 하시더군요.”

“……?”

“그런데 선대 공작부인께서만 마땅한 조력자가 없을 거라고.”

“……내 딸이지만 참으로 귀신같은 아이야.”

정확한 평가에 마스터가 낮게 소리 내 웃었다.

“전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정보 아니겠습니까.”

“동의하네.”

“저 성벽 안, 마물의 수가 필요하신 거겠지요.”

“……가능하겠는가.”

시원하게 입매를 올린 마스터가 엘리시아의 술병을 낚아채 입에 털어 넣었다.

크으, 소리를 내며 입가를 훔쳐내는 손이 그가 살아온 날들을 방증하듯 거칠다.

“날 밝기 전에 가지고 오겠습니다.”

“어떻게…….”

“영업 비밀입니다.”

단호하게 자르고 천막 밖으로 나서던 마스터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흘끗 뒤를 돌아봤다.

“이만 주무시지요. 몸 상하시면 제 하늘께서 걱정하시니.”

***

다음 날 새벽.

끝내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한 엘리시아는 막사 앞에 떨어져 있는 전서를 집어 들었다.

“빠르기도 해라.”

수신인이 확인하는 즉시 화르르 불이 붙어버리는 종이엔 엘리시아가 그토록 필요로 하던 정보가 적혀 있었다. 바로 적군의 수.

종이 한구석에 작게 그려진 브이 손 모양이 마치 저 잘난 것을 알아달라는 투정처럼 보여 엘리시아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수는 우리와 비슷하군.”

우리보다 월등히 많진 않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이상 이제 망설일 건 없다.

공성전이 심히 불리하다는 건 인정.

그렇다면 저들이 알아서 성을 버리게 만들면 그만이다.

제국 제일의 전략가. 불세출의 지장. 엘리시아의 머릿속엔 이미 적을 섬멸할 계책이 십수 가지는 떠올랐다.

그중 가장 확실한 방법을 골라낸 엘리시아가 부관에게 명했다.

“발 빠른 기사 몇을 선별하여 후퇴시켜라.”

“소신, 불민하여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스물이면 족하다. 그들은 말꼬리에 빗자루를 달고 먼지를 일으키면서, 수도로 돌아가는 산맥에서 밥 짓는 연기를 피워 올리고 등불을 달 것이다. 다만, 우리 군사 중 절반 이상이 후퇴한 것처럼 꾸며야 하니 연기와 등불의 양은 부족함이 없어야 하고.”

부관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설마…….

“우리 군사 중 대부분은 서남쪽 분지 윗부분에 매복시키거라. 그리고 이곳엔 나를 비롯해 최소한의 인원만 남는다.”

부관의 등허리에 소름이 자르르 올랐다.

엘리시아가 씩 웃으며 머리칼을 높게 묶었다.

“저들은 우리 군의 숫자를 알고 있다. 서로 군세가 비슷하니 성을 걸어 잠그고 나오질 않지. 아마 최대한 체력을 보존하다가 우리가 지치는 순간 일거에 쏟아져 나와 섬멸할 계획일 터.”

적 사령관. 그대는 제법 교묘하지만.

“그러니 우리는 대다수가 이 지지부진한 전장에 지쳐 후퇴한 것으로 꾸미면 그만이다. 우리의 수가 현저히 적어진 것을 안 순간 저들은 굳이 성을 고수할 이유가 없으니.”

책략 싸움으로 하자면 내가 한 수 위거든.

엘리시아가 철옹성 같은 성벽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자, 어디 기껏 지은 성을 버리고 뛰쳐나와 보라고.”

이 산맥이 네놈들의 무덤이 되어 줄 테니.

바라보던 부관은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팔을 쓸었다.

주군의 계책은 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첨예하고 교활했다.

그 누구라도 발 들이면 빠져나갈 수 없도록.

***

그로부터 이틀이 더 지난 오후.

파라반트의 마스터는 성문을 응시하고 있는 엘리시아에게 다가가 물었다.

“제가 더 도울 것은?”

“없다. 정보만 있다면 내가 잡지 못할 적은 없어.”

“대단하십니다.”

“우리 이브가 날 닮았지.”

“……오늘이겠습니까?”

“저것들이 나오는 거?”

엘리시아가 손을 뻗어 성문을 가리켰다.

“마침 지금이네.”

미끼에 제대로 걸려버린 마족들은 공들여 지은 성을 버리고 성문을 열어젖혔다.

선두에서 말을 달리는 건 자신이 사지로 들어가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는 측은한 악마.

긴 뿔피리 소리를 배경 삼아, 악마가 호탕하게 웃어댔다.

“크하하핫-! 적의 수는 우리의 삼 분의 일도 안 된다! 우리가 성에 없는 줄 알고 죄다 다른 격전지로 가버렸구나!”

“속이는 맛이 있네.”

“지원군이 오기 전에 모조리 쓸어버려라!”

쯧쯧. 혀를 차며 마족의 군대를 바라보던 엘리시아가 돌연 말머리를 돌려 산맥 쪽으로 달렸다. 마치 날벼락처럼 뛰쳐나온 군세에 놀라 도망이라도 치는 것처럼.

그러자 더욱 득의양양해진 악마가 이를 드러내며 그르렁거렸다.

“잡아라, 잡아! 저게 엘리시아 아르티나다!”

전공에 눈이 멀어버린 악마는 엘리시아가 깔아둔 판으로 성실하게 따라붙었다.

어느덧 전후좌우 높은 절벽에 가로막힌 분지(盆地).

달리던 말을 급격히 멈춘 엘리시아가 뒤돌아 정면으로 악마를 마주했다.

그러자 악마가 껄껄 소리 높여 웃었다.

“오냐, 좋은 생각이다! 이대로 투항한다면 팔다리만 부러뜨리고 곱게 모셔가마!”

엘리시아가 씩 웃으며 오른손을 들어 까닥였다.

“마법사. 조준.”

“여기 마법사가 어딨…… 어어……?”

분지 위. 압도적으로 유리한 지형에서 마법진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기마대. 출격.”

장창을 든 기마대가 급격한 경사면을 타고 쇄도하듯 떨어져 내린다.

덫에 갇혀 허공을 올려다보던 악마가 멍청한 소리를 냈다.

어어?

이러면 안 되는데?

“이게 무슨……?”

“네 머리가 나보다 좋지 않았던 것을 탓하렴.”

섬멸당하는 악마와 마족들을 응시하던 엘리시아가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내며 곱게 웃었다.

“덫에 사냥감이 걸릴 때의 쾌감은 참으로 중독적이란 말이지.”

***

한편 여기. 아르칸의 격전지.

영지 하나하나가 악마들이 심혈을 다해 파 놓은 덫이자 함정이니만큼 아르칸이 맡은 지역도 만만치는 않았다.

사방이 불길이다. 기사들의 비명과 살 타는 매캐한 냄새가 아르칸의 오감을 사정없이 유린했다.

그는 균열에서 끝없이 튀어나와 대지를 메운 마족들 저 너머로 시선을 두었다. 기괴한 뿔을 가진 악마가 자기 몸집만큼 거대한 횃불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다.

‘저 횃불.’

저게 이 절망적인 상황의 원흉이다.

분명 이곳은 설원일진대, 저 악마가 횃불을 가져다 대는 곳마다 어김없이 지옥불이 일고 있다.

순리를 거스른 불이니만큼 눈과 물로 뒤덮어도 도무지 꺼지질 않는다. 그러니 경지에 다다른 아르칸 본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기사들은 제대로 검 한 번 휘두르지도 못하고 절명하고 있었다.

기사 중 하나가 불붙은 환부를 감싸 쥐며 괴로운 표정으로 보고했다.

“각하, 그나마 카시스의 마법사들이 펼친 빙계 마법 정도가 저 악마의 불을 잠시라도 밀어내고 있습니다.”

“빙계 마법…….”

아르칸의 잇새에서 작은 탄식이 흘렀다.

흘끗 보니 마법사들의 빙(氷) 계열 마법이 효과적인 것은 맞으나, 이곳에 있는 마법사의 수는 너무도 적다. 반면 불길은 이미 이 고원을 다 태워버릴 정도로 널리 퍼져 있었으니…….

“이 불길을 잡으려면 이안 그 빌어먹을 자식 정도는 와야겠군.”

그러나 이곳에 이크리안은 없다.

이 거대한 불길을 다 잡을 정도의 마력을 펼칠 대마법사도 물론 없다.

아르칸은 불빛을 받아 짐승의 것처럼 번뜩이는 눈으로 적진 한가운데를 노려봤다.

패색 짙은 이 전장에서 아버지라면. 어머니라면. 세드릭이라면. 이브라면. 친애하는 내 가족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굳이 물을 것도 없다.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아르칸은 잘 훈련된 군마 위에 훌쩍 올라탔다.

곁에 있던 기사가 의도를 짐작한 듯 경악하여 외쳤다.

“각하!”

기사의 가슴팍에 달린 황금 용의 문양. 태어난 이래 늘 어깨를 짓눌렀던 그것을 바라보며, 아르칸은 담담하게 웃었다.

“조금만 견뎌라. 내가 저 악마의 수급을 베어 올 테니.”

“안 됩니다! 차라리 저희도 데리고 가십시오!”

“언젠가는.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르티나 기사단원들 중 온몸에 기운을 둘러 저 불길을 막아낼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독자적인 군을 이끌고 출정했다. 그러니 여기 있는 누가 자신과 함께 들어가 봤자 자살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아르칸이 말의 고삐를 쥐고 내리쳤다.

뒤에서 기사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이내 마족들의 울부짖음에 묻혀 사라진다.

결과는 모른다.

다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

아르칸은 그의 부모로부터, 형제로부터, 그걸 배우며 자라왔다.

아버지에 비하면 아직 한참 젊은 아들은, 그럼에도 아버지를 꼭 닮은 뒷모습으로, 혈혈단신 마족들의 대해로 뛰어들었다.

***

그가 홀로 선두에 나선지 무려 세 시간이 흘렀다.

저 멀리 기사들의 함성과 창칼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만이 그의 위안이었다.

‘빨리 저 악마를 죽여야 하는데.’

목적지를 가늠하던 아르칸이 눈을 찌푸렸다.

‘여전히 멀군.’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혔다 싶으면 어김없이 짓쳐들어오는 마족들.

게다가 마치 영혼까지도 태울 것처럼 사방을 옥죄는 화염.

‘성가셔.’

다른 기사들의 사례를 보아하니, 이 화염은 한 번 인체에 발화하면 꺼지지 않았다. 정령술 다음으로 악마의 기운과 상극이라는 빙계 마법을 제외하고는.

하여 아르칸은 애초에 화염이 몸에 닿지 않도록 몸 주변에 기운을 두르고 있었으나,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는지 장담하긴 어려웠다.

한계 없이 밀려드는 마족들.

혀를 내빼고 넘실대는 불길.

바라보던 아르칸은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이곳이 내 무덤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그가 입술을 세게 물며 헛된 생각을 떨쳐냈다.

‘렐리안. 걱정할 텐데.’

아르칸은 소드마스터가 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자연히 휴고에 비해 그 기운을 다루는 실력이 조금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일거에 달려드는 마족들을 베어내느라 온몸을 뒤덮은 황금빛 기운이 살짝 옅어지던 그때.

마치 이 틈을 기다렸다는 듯 화염 한 조각이 아르칸의 왼팔에 달라붙었다.

망설임 없이 오른손으로 검을 옮겨 쥐면서, 아르칸이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크윽.”

이내 불길이 번져간다.

팔에서 어깨까지.

고삐와 갑옷에도.

그리고 그가 주춤하는 사이를 놓치지 않고 일제히 달려드는 마족들.

“하…….”

생사기로. 전장은 늘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다. 그곳에서 곡예를 벌이는 장수들은 언제 어떻게 죽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내 차례인가 본데.’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러 적을 떨쳐낸 아르칸은 본연의 색을 잃은 하늘로 시선을 올렸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인사라도 제대로 하고 나올걸.’

혼약식 날 약속했는데. 절대 울리지 않겠다고.

내가 돌아가지 못하면. 네가 울 텐데.

불길이 목과 가슴까지 번졌다. 검을 쥔 손이 처참하게 떨렸다. 아가리를 벌린 마족들이 승리를 짐작한 듯 만족스럽게 우짖는다.

“렐리안…….”

아르칸이 은애하는 연인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되뇌던 찰나.

- 쐐애애애액!

하늘에서 쇄도한 얼음 한 덩어리가 아르칸의 팔에 그대로 내리꽂힌다.

거의 동시. 찬 기운은 그대로 세를 키워 어깨와 고삐, 갑옷까지 온통 빙결시킨 후 맑은 소리를 내며 깨졌다. 악마의 불길을 모두 몰아낸 채로.

“……!”

도무지 꺼지지 않던 화염을 단번에 내몬 순도 높은 마력.

놀란 아르칸이 채 시선을 돌리기도 전이었다.

“내 남편한테서 떨어져!”

가냘프지만 힘 있는 고함과 함께.

- 쩌저저저적!

세상이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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