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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꽃밭에는 그들이 산다-245화 (245/323)

##  245화: 마지막 연회를 즐겨둬

분노에 찬 아가레스가 기어코 마르바스의 정강이를 발로 냅다 차버렸을 무렵.

이벨리아 역시 고통받고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늘 온화하던 테사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가씨. 거기서 발을 그렇게 내리찍으시면 후작님 발등이 네 갈래로 쪼개지셔요.”

“…….”

“세상에, 아가씨. 그런 동작은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왜? 이건 좀 괜찮아?”

“아주 기괴합니다. 팔을 그렇게 뻗으시면 옆에서 춤을 추고 있는 다른 참석자들 눈을 죄다 실명시키실 거예요.”

“…….”

“어머, 그렇게 턴을 하시다니!”

“잘했어?”

“누가 보면 아가씨께서 악귀에게 조종이라도 당하는 줄 알겠어요.”

“…….”

참다못한 이벨리아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테사.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설마 아가씨의 데뷔탕트에서는 모두 춤을 추지 말자는 취지로 가자 뭐 그런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조심스레 열었던 입이 단번에 다물렸다.

눈치 빠른 테사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 귀족 영애에게 춤은 기본 중의 기본 소양입니다.”

“테사. 지금 내가 기본도 없다고 돌려 말하는 거야?”

“그럴 리가요. 대놓고 말씀드리는 거랍니다.”

“……히잉.”

비비안이 죽은 이후 이벨리아의 유모나 다름없었던 테사는 울상이 된 아가씨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매만져주며 달랬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제게 기본만 배우시면 된답니다. 어차피 후작 각하께서 사교용 춤을 잘 익히고 계실 테니, 아가씨께선 각하께 몸을 맡기기만 하시면 되거든요.”

‘맨날 성에 곱게 박혀 살던 내 토끼가 춤 같은 걸 출 수 있을 리가.’

그러나 이벨리아는 차마 테사의 근거 없는 믿음을 정정해 줄 수가 없었다.

정정하는 순간 자신의 춤 학습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벨리아가 깊은 한숨을 쉬며 한탄했다.

“내 검술 실력과 예술 감각이 춤에까지 그대로 적용될 줄이야.”

몸 쓰는 덴 영 소질이 없다는 건 검술을 배우는 일평생 익히 깨달은 것이었고, 음악에도 그다지 소양 없다는 것은 몇 년 전 문화제 때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었다.

춤은 무려 그 두 가지가 합해진 것이었으니 이벨리아에게는 쥐약이나 다름없었다.

“여하간 내 데뷔탕트에 내가 망신을 당할 수는 없는 일이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우리 아가씨.”

“내가 또 한다면 하는 성격이잖아?”

“그렇지요. 그건 우리 아가씨 어릴 적부터 봐온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지요.”

참 대견하셔라,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테사를 향해 이벨리아가 활짝 웃어 보였다.

“그래서 배우긴 배울 건데 말이야.”

이벨리아가 슬슬 발을 뒤로 뺐다. 발코니 쪽을 향해서.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테사가 두 팔을 뻗고 후다닥 달려왔으나.

실프를 불러낸 이벨리아는 발코니 밖을 향해 훌쩍 몸을 던져버린 후였다.

“오늘은 너무 많이 했어! 좀 쉬고 싶어!”

쌔앵.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아가씨를 향해 테사가 울부짖었다.

“아가씨! 고작 10분 배우셨어요!”

“헤헤.”

“고작 10분 하셨다고요! 고작! 아가씨 쿠키 드시는 시간보다 짧다고요!”

“에헤.”

탁.

안정적으로 1층에 착지한 이벨리아가 바보같이 웃으며 테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발코니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아래를 바라보던 테사가 이마를 짚었다.

성년을 맞이하셨으니 겉으로라도 달라진 척 구실 줄 알았건만.

성난 황소처럼 여기저기 들이받고 다니시는 건 어릴 적과 한치 다를 바가 없으시다.

“어휴. 저렇게 사고뭉치처럼 구셔서야 누가 우리 아가씨와 혼약을 올리실까.”

테사의 마음도 모르고, 그저 이 복잡한 세상을 벗어나 휴식을 좀 취하고자 정원 쪽으로 걷던 이벨리아는 최근 수십 번도 더 했던 한탄을 다시 한번 읊었다.

“이렇게 귀찮은 건 줄 알았다면 애초에 데뷔탕트 금지령을 내릴 걸 그랬어.”

마주치는 사람마다 드레스다, 장신구다, 춤이다, 아주 각양각색으로 나를 괴롭힌단 말이야.

“모처럼 탈출에 성공했으니까 이바스 저택이라도 좀 다녀올까.”

그래. 그게 좋겠다.

결심한 이벨리아는 뒤로 돌자마자 나지막하게 신을 찾았다.

“……신이시여. 이브 살려.”

“어? 밥풀 폐하, 잘 만났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공녀님!”

드레스 앵무새 둘이 이벨리아를 발견하고는 후다닥 달려와 앞뒤를 감싸버렸다.

“밥풀 폐하, 이것 좀 봐봐. 이 앙버터가 옷을 이렇게 만든대! 이게 말이 돼?”

“제 이름은 앙제스입니다! 이 대륙 최고의 디자이너고요!”

“아 눼눼. 나는 마계 최고의 안목을 가진 몽마거든.”

“말이 나온 김에 저도 공녀님께 좀 여쭙겠습니다. 이 숙녀분께서 옷을 이런 식으로 만든다고 하시는데, 아무리 봐도 레이스 부분의 밸런스가 영 꽝이지 않습니까?”

“뭐? 꽝이라고?”

“네, 꽝입니다. 아주 꽝이요!”

으르렁대던 둘은 기어코 도면을 쫙 펼쳐두고 이벨리아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어떤 도면이 더 마음에 드냐면서.

‘이건 세계가 멸망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논쟁이야. 벗어나는 게 답이다.’

이벨리아가 주춤 물러섰다. 그러나 두 디자이너는 이를 두고 볼 생각이 없는 듯했다.

심지어 둘 중 하나는 고위 악마이니 더더욱. 이벨리아의 주변에 난데없는 사슬이 일렁거렸다.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악마 언니?”

“대답해주기 전까진 아무 데도 못 가! 얼른 똑똑히 보고 뭐가 더 나은지 말해 봐!”

안 되겠다. 둘 머리에 물벼락이라도 뿌리고 그 틈을 타서 도망쳐야지.

이벨리아가 작게 물고기 친구를 불러냈다. 허공에서 짠 나타난 물고기 한 마리가 악동처럼 웃으며 꼬리를 휘저었다.

[계약자! 계약자! 오늘 내가 카사 꼬리에 붙은 불을 꺼버렸어!]

“꺼도 되는 거야, 그거?”

[아니! 카사는 불의 정령이니까 불을 끄면 안 되지!]

“근데 왜 꺼버렸어?”

[그 요망한 부리로 귀여운 척 짹짹거리는 게 꼴 보기 싫어서!]

“……너도 참 성질머리 하곤.”

[정령의 성질머리는 왕 아니면 계약자를 닮아. 우리 왕은 온화하시니 내 성질머리의 근원은 바로 계약자야! 근데 계약자 뭐 해?]

이벨리아가 운디네를 잡아챈 다음 대략 물고기의 귀가 있을 법한 곳에 대고 속삭였다.

“이 둘의 머리 위로 물 좀 뿌려줘.”

[봐봐. 성질머리하고는.]

계약자의 부탁에 따라 허공을 유영하던 운디네는 물을 흩뿌리기 직전에 꼬리를 멈추고 호기심을 보였다.

[근데 이건 뭐야? 무슨 그림인 거야?]

“내 데뷔탕트 드레스 도면. 신경 안 써도 돼.”

[드레스? 그거 꼭 입어야 해? 그냥 물을 입고 가면 안 돼?]

인간 세계에 대해선 잘 모르는 순수한 정령의 말에 서로 으르렁대던 악마와 인간이 사납게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물고기 정령.”

“정령님은 인간들의 정서를 잘 모르시니 그만 정령계로 돌아가기나 하시지요.”

[……우리 계약자 곁에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아주 못됐어, 훌쩍. 나는 그냥 우리 계약자가 물의 정령사니까 물을 모티브로 해서 드레스를 만들면 어떨까 했던 건데…….]

그 말에 로노베가 손에서 마기를 빼고 운디네의 꼬리를 탁 잡아 거꾸로 탈탈 흔들었다.

바닥에 물이 후드득 흘러내렸으나 개의치 않고.

“자세히 좀 말해 봐.”

[허, 헛소리라며! 나 어지러워!]

“아무리 헛소리라도 귀를 열고 듣는 것이 디자이너의 자세니까.”

“숙녀분께선 디자이너는 아니시잖아요. 제가 정식 디자이너죠.”

“앙버터. 마계에선 힘이 곧 논리야. 줘터지고 싶지 않으면 입 조심해.”

“인간계에선 실력이 곧 논리랍니다. 망신당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말씀 가려서 하셔요.”

“흥. 밥풀 폐하가 널 아낀다고 내가 널 못 죽일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옷에 관한 한 제겐 타협은 없답니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지요, 물고기 정령님?”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드레스를 이렇게 만들면 어떨까…….]

운디네가 물로 바닥에 드레스를 그리기 시작했고, 로노베와 앙제스는 쪼그려 앉아 눈을 빛냈다.

‘정령과 악마, 인간의 대화합이라.’

그 역사적인 광경을 보던 이벨리아는.

‘아주 흐뭇한 광경이야. 튀자.’

그 화합의 불똥이 자신에게 튀기 전에 재빨리 발을 놀려 튀어버렸다.

***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온실로 달아난 이벨리아는 그제야 편안하게 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아르티나 가주 일가만 사용할 수 있는 온실. 여기라면 테사나 앙제스가 감히 따라오지 못할 터다.

물론 모든 인간의 법칙에서 예외인 로노베라면 모르겠지만.

마음 놓고 터덜터덜 들어서던 이벨리아는 나무에 가린 벤치에 흐르듯 늘어진 황금빛 머리칼을 보고 씩 웃으며 뒤꿈치를 든 채 살금살금 걸어갔다.

‘작은 오라버니네.’

몰래 놀래줄 요량으로 지척까지 다가가 손을 들어 올리던 찰나.

가만히 늘어져 있던 세드릭이 몸을 휙 돌려 크게 입을 벌렸다.

“와악.”

“으악! 오라버니!”

소스라치게 놀라 비틀대는 여동생을 붙잡아주며 세드릭이 키득키득 웃었다.

“우리 집에서 기척 느끼는 데 제일 둔감한 건 너야, 우리 아가.”

“쳇, 망할 검사들. 정령사 서러워서 살겠나.”

이벨리아가 입이 댓 발 나와 툴툴대면서 세드릭의 옆에 앉았다.

“그나저나 우리 아가가 이곳을 찾을 정도면 밖에서 꽤 시끄러운 일이 있었나 본데?”

“데뷔탕트. 이렇게 귀찮은 일인 줄 몰랐어.”

“흐음. 확실히 온 집안이 난리긴 해.”

“큰 오라버니랑 작은 오라버니 때도 이 정도였어? 나만 몰랐던 거야?”

“물론 이 정도까진 아니었지.”

“근데 왜 나는!”

“모두가 이브를 가장 아끼니까.”

“……?”

세드릭이 이벨리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착한 이브가 조금 봐 줘. 다들 기뻐서 그래. 우리 아가가 이렇게 건강하게 잘 자랐다는 걸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치이.”

하여간 작은 오라버니는 혀에 꿀을 바른 게 분명하다.

생각해보면, 다소 고지식한 큰 오라버니와는 달리 작은 오라버니는 어릴 적부터 자신을 참 잘 달랬다.

“아버지께서 초대장을 돌리시면서 정말 기뻐하시더라.”

“……그러셨어?”

“근래 그렇게 웃으시는 건 처음 봤어. 공작저에 외부인 드나드는 걸 별로 달갑지 않아 하시는데 그 많은 귀족들에게 방까지 내어주셨잖아.”

“…….”

“다들 그래, 이브. 잘 느껴봐. 모두가 얼마나 들떠 있는지. 그 속에 이브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듬뿍 담겨 있는지.”

“…….”

그렇네.

다들 자기 일도 아닌데 이렇게 발 벗고 나서는 이유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귀찮은 일이 아니었는데. 감사해도 모자랄 일인데.

이벨리아가 세드릭의 어깨에 기댔다.

“오라버니는 항상 현명해.”

“너와 함께 자랐으니까.”

두 남매의 얼굴에 그린 듯 닮은 미소가 피었다.

아르칸과 엔리르까지. 네 형제는 서로의 나침반이자 지침서였으며, 그렇기에 서로의 모습이 가장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너른 어깨에 얼굴을 비비던 이벨리아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아, 그런데 오라버니. 페르세스 언니한테선 답장 왔어?”

“……아직.”

“오라버니도 그래서 여기 들어와 있었구나? 마음이 심란해서?”

세드릭이 민망하다는 듯 볼을 긁적였다.

벤치에서 일어난 이벨리아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이 언니 또 부끄러워서 이래.”

“응?”

“하여간 생긴 건 세상 당돌하게 생겨선 꼭 이런 데서 수줍음을 탄다니까. 좋긴 좋은데 어떻게 좋다고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사흘 밤낮 바람의 영역에서 땅 파고 있을 게 빤히 보여.”

이벨리아가 도도도 달려가 냅다 온실 문을 열어젖혔다.

“잘 봐, 오라버니.”

“이브?”

“페르세스 언니이-!”

살랑이며 부는 봄바람이 듣고 있다는 듯 이벨리아 주변으로 훈풍을 일으켰다.

“내 데뷔탕트에 우리 오라버니랑 손잡고 같이 올래애-?”

그러자 공기의 흐름이 뚝 멈췄다. 그 흔한 미풍조차도 숨을 죽였다.

연신 살랑이던 꽃과 풀, 허공을 날던 꽃가루들이 일제히 멈춰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조금 뒤.

달콤한 향내를 가득 품은 봄바람이 온실 속으로 밀어닥쳤다.

농익어 간신히 매달려 있던 꽃잎들이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허공에 나풀대다가 이내 세드릭의 주변으로 다가가 선명한 글자를 그려냈다.

「좋아.」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흩어져 버린 꽃잎의 답.

자신이 제대로 본 것이 맞는지, 세드릭은 이벨리아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온실 입구에 선 이벨리아가 허리를 짚고 씩 웃었다.

“좋대.”

“……미친. 최고다.”

세드릭이 금쪽같은 여동생을 꽉 끌어안았다.

“됐다! 나도 파트너 생겼다! 파트너!”

“오라버니가 아빠랑 엄마 손잡고 입장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이브, 아예 그날 청혼을 해버릴까?”

“……그건 아니지, 이 연애 멍청이야.”

***

데퐁트 후작저는 오랜만에 활기가 넘쳤다.

아직도 황자비로 정식 책봉되지 못한 세레스는 늘 물건을 던지며 패악을 부려댔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오라버니께선 어디까지 오셨다더냐?”

“조금 전 수도에 입성하시었다고 합니다. 황제 폐하를 배알하고 오신다 하셨으니, 아마 오찬을 드실 때 즈음 당도하실 듯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오찬은 오라버니와 함께 들어야겠다! 차질 없이 준비를 해두거라!”

“예, 아가씨.”

가늘고 높은 콧노래를 들으며 하녀는 깊이 고개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물러났다.

세레스는 잘 손질된 머리를 검지로 돌돌 말며 입꼬리를 올렸다.

며칠 전 이른 새벽 찾아온 아버지의 호문쿨루스가 전한 소식을 떠올리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새로 가주가 된 오라버니를 전면에 내세우면 금방 과거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하셨지.’

데퐁트 후작가는 본래도 명문가 중의 명문가였다.

내세울 적당한 가주만 있다면 밟아도 밟아도 그리 쉬이 죽진 않는 가문이라는 소리다.

‘오라버니가 전쟁터에서 제법 오랜 기간 공을 세웠으니 당연한 일이야.’

가문의 위세가 전과 같아지면 제국 내부의 정보를 마족들과 연금술사들에게 빼돌리기도 쉬울 터다.

그렇게 안에서 제국을 좀먹어가다가 마족들이 전쟁을 일으키면 아르티나의 출정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이후 가장 거슬리는 방해물이 사라진 수도 사방위의 성문을 활짝 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아버지와 연금술사들은 이 수도에 무혈입성.’

심지어 아버지께서 아주 오래전부터 심혈을 기울이시던 진이 거의 다 완성되었다고 하셨지.

“푸핫-! 아하하하하!”

세레스가 광소를 터뜨렸다. 허리까지 접어가며 띤 웃음이 얼굴 위에 화사하게 자리했다.

“끝이야. 끝!”

황제도. 황태자도. 공녀도. 전부 끝이라고!

세레스에게 조국의 멸망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곧 다가올 부귀와 영화, 그리고 그토록 꼴도 보기 싫었던 아르티나 가문의 몰락 앞에서라면, 제국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도 기꺼이 팔아넘길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세레스가 황금 용의 인장이 찍힌 초대장을 애잔하다는 듯 검지로 쓸었다.

“마지막 연회를 즐겨둬, 이벨리아 아르티나.”

네 비참한 말로를 향해, 이번만큼은 나 역시 진정으로 축하를 건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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