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화: 우리 가문이 최종 흑막인가
“…….”
데뷔탕트 파트너.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혹 지나친 바람이 만들어낸 환청은 아닐까.
아가레스는 코앞에 들이밀어진 꽃다발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널 닮은 노란 꽃이 가장 선명히 눈에 박혀 들었다.
곧이어 훅 끼쳐오는 따뜻하고 향기로운 냄새. 아마 이것이 남들이 봄 내음이라 부르는 그것일 터다. 참으로 생경한.
머리고 가슴이고 할 것 없이 훈풍이 몰아닥치는 것이, 봄바람이 꼭 그렇게 가벼이 살랑이는 것만은 아닌가 보다.
술조차 취하게 하지 못했던 정신을 눈앞에 있는 친우가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한편 이벨리아는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입을 삐죽였다. 토끼가 왜 대답이 없지?
‘설마 나랑 가는 게 싫은가? 그새 마음이 바뀐 건가? 이래서 파트너 선정은 타이밍이라고들 하는 걸까?’
너 진짜로 거절하기만 해봐라, 앞으로 다신 기회 안 줘. 그런 마음으로 이벨리아가 다시 한번 입을 열던 찰나였다.
“아스. 내 데뷔탕트에…….”
미처 말을 다 맺기도 전. 꽃다발이 위로 쑥 들리더니 친애하는 악마가 눈을 마주치곤 작게 중얼거렸다.
“잠시. 이벨리아.”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아쉽다는 듯 목을 긁었다.
“이런 건 내가 먼저 할 수 있게 해줘야지.”
“……?”
“네가 눈치만 조금 줬더라면 내가 먼저 청했을 텐데.”
악마가 조심스레 투정을 부렸다.
혹시 네가 날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옅은 희망에 나름대로 준비도 다 마쳐뒀었는데, 이 야속한 친우야.
받은 꽃다발을 옆에 내려둔 악마가 성큼 다가와 두 팔을 이벨리아의 목 뒤로 뻗었다. 마치 포옹이라도 하는 것처럼.
“……!”
정신 차려보니 악마의 단단한 가슴팍이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다.
흠칫 놀란 이벨리아가 걸음을 물리려 했으나, 목 뒤에 닿아 있는 손 때문에 쉽지 않다.
곧이어 온기 없는 뭔가가 목 언저리에 닿았다. 더듬더듬 매만져보니 아무래도 목걸이인 듯하다.
“…….”
장신구를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은 악마의 손길은 제법 길게 이어졌다.
이례적으로 가까운 거리. 규칙적인 숨결이 귓가에 와 닿는다.
내리 닿는 그것이 뜨거운 건 자신의 온도가 높기 때문인지, 아니면 악마의 온도가 높기 때문인지. 이벨리아는 알 수 없었다.
쿵. 쿵.
심장이 묘하게 뛰었다.
꿀꺽 넘어가는 침이 긴장으로 메말라버린 목을 따갑게 적셨다.
달칵. 목걸이가 채워지는 소리가 났다.
미묘한 아쉬움을 느낌과 동시에, 아가레스가 살짝 몸을 물렸다.
그리고 이벨리아의 바다 빛 눈에서 단 한 시도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아주. 아주 느리게.
단단한 손이 이벨리아의 오른손을 쥐고 살짝 들어 올렸다. 뜨거운 입술이 손등 위로 내려앉았다.
이벨리아는 생각했다. 마치 화인(火印)이 찍히는 것만 같다고. 아니, 어쩌면 화인(花印)일지도 모르겠다고.
“이벨리아 아르티나.”
네 입에서 형태를 갖추는 내 이름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다.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그대의 첫걸음을 내가 보필할 수 있길.”
성년식과 데뷔탕트 파트너를 청하는 인간들의 예법이다.
하여 이벨리아 역시 이번만큼은 배운 예법에 따라 답했다.
“……그대가 내 새로운 시작의 동행자가 되길.”
혹자는 인생을 책에 비유하곤 한다.
특히 성인이 되는 것은 이전의 장(章)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장이 막을 올리는 것이라고.
그 고루한 비유에 빗대자면, 그래.
너와 나는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서도 이전 장에서처럼 함께일 터다.
***
아가레스와 이벨리아가 서로를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며 둘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와중.
그 묘한 분위기를 깨트린 건 바로 로노베였다.
짝짝! 손뼉 소리가 혼몽해져 있던 모두의 정신을 일깨웠다.
“자, 자, 그럼 이제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네요!”
로노베가 사뿐사뿐 걸어 이벨리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밥풀 폐하. 인간계에서 너 정도 지위면 데뷔탕트와 성년식을 한 번에 치르지?”
“응.”
그러자 인간계의 문화엔 문외한인 마르바스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한 번에 치러? 데뷔탕트랑 성년식은 다른 거 아니야?”
“성년식은 성인이 된 해의 생일에 열고, 사교계 데뷔 역시 성인이 된 해의 생일에 하지.”
“뭐야. 같은 거네?”
“같은 날을 뜻하는 건 맞지만, 그러면서도 달라.”
“뭐가 달라?”
“성년식이야 가족들끼리 조촐하게 열어서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한다, 해도 그만이잖아?”
“그렇지?”
“근데 사교계 데뷔는 그렇지 않거든. 데뷔라는 건 많은 이들 앞에서 시작을 선보인다는 의미인데, 자기들끼리 조촐하게 열어서 자 너는 오늘부터 사교계에 데뷔했다, 하면 누가 알아줘?”
“몰라주겠지?”
“그게 다른 거야. 성년식은 작게 하더라도 데뷔탕트는 절대로 작게 열 수가 없어.”
“……뭐가 이렇게 복잡해?”
“요약하자면, 돈 많은 집안 자제들은 성년식을 성대하게 열어 그때 데뷔탕트를 치르고, 돈 없는 집안 자제들은 성년식은 조촐하게 하되, 생일 이후에 열리는 가장 큰 연회에서 데뷔탕트를 치른다는 거지.”
마르바스가 그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돈 없으면 남의 연회에서 데뷔를 한다?”
“정확해. 보통 신년제나 뭐 그런 제국 차원의 행사에서 한다고 하던데.”
마르바스가 볼을 긁적였다.
“근데 귀족들은 다 돈 많은 거 아니야?”
“데뷔탕트를 치를 정도면 제국 내 개떼같이 많은 귀족들에다가 그 식솔들까지 불러서 며칠 재워주고 먹여주고 해야 해. 그 정도 돈이 있는 귀족은 흔치 않지.”
“그럼 뭐 신년제 같은 때 데뷔하는 귀족들이 엄청 많겠네?”
“우후죽순이야. 그러니 관심을 못 받지.”
“역시 돈이 최고로군.”
“인간계는 더더욱 그렇지.”
로노베가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여하간 밥풀 폐하 가문은 돈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우니, 아마 밥풀 폐하 혼자만의 성년식을 개최함과 동시에 거기서 데뷔탕트를 치를 거야. 그렇지, 밥풀?”
“언니 악마는 나보다 인간 세상을 잘 아네.”
“나 몽마야. 인간들의 꿈을 먹고 사는데 이 정도야 쉽지.”
로노베가 혀로 붉은 입술을 핥았다. 그 표정이 제법 요염해 보여, 이벨리아는 언젠가 자신도 따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니까,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란 소리야!”
이벨리아가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커다란 눈을 슴벅였다.
그러자 로노베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기 시작했다.
“밥풀과 주군의 옷도 맞춰야 하고, 드레스코드에 맞게 연회장도 장식해야 하고, 참석자들에게 줄 선물도 정해야 하고, 혹시 밥풀이 공작저 외에서 연회를 열 거라면 타고 갈 마차도 정해야 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티끌만큼의 오류라도 있어선 안 돼!”
“…….”
“…….”
“왜 다들 그런 표정으로 봐? 지금 내가 말한 건 아주 요약한 거야. 다 풀어서 말하려면 사흘 밤낮도 모자라.”
모두가 질린 표정으로 로노베를 바라봤다. 저 열정적인 강의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건 오로지 아가레스 뿐이었다.
주군을 등에 업은 로노베가 기세등등해져서 이벨리아의 팔을 와락 붙잡았다.
“밥풀 폐하! 공작저 돌아갈 때 나도 데려가.”
“우리 집에? 왜?”
“너희 가문에서도 네 연회를 주도적으로 준비하는 인간들이 있을 거 아니야. 미리 내 의견을 전달해둬야 나중에 수정하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지!”
“우리 집…….”
이벨리아의 머릿속에 아빠와 엄마, 두 오라버니와 엔리르, 미친개 기사단, 집사 하델과 전속 하녀 테사가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언니 악마. 우리 집에 오는 건 좋은데, 쥐도 새도 모르게 모가지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각오는 하고 와야 할 거야.”
“아르티나가 사탄보다 더한 가문이란 건 잘 알고 있어.”
“대체 내가 모르는 내 선조들께서 무슨 짓을 하신 건지 원.”
“네가 원인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여하간 우리 폐하의 연회가 엉망이 되는 것보단 내가 모가지의 위협을 받는 게 나으니까 데려가.”
“뭐. 그러든가.”
이벨리아가 큰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언니 악마도 나름 고위 악마이니 아빠랑 엔리르 정도가 아니면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을 터다.
“주군께서도 자주 오셔야 해요! 밥풀 폐하의 파트너시니까 함께 준비하셔야죠!”
“그야 물론…….”
“언니 악마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원래 토끼는 우리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어.”
“……그렇다.”
키득 웃은 이벨리아가 앞에 놓여 있던 아가레스의 찻잔을 들어 쭉 마셔버리고는 말했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내가 아무리 동부의 왕관을 썼다지만, 우리 집에도 내가 돌봐줘야 하는 가족들이 많거든.”
“땅콩. 종종 놀러 올 거지?”
“응. 풀때기 보러 와야지!”
그러자 마르바스가 기겁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속삭였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주군께서 내 다음 이름을 풀뿌리로 만드실 거다. 빨리 말 바꿔.”
“물론 우리 토끼 보러 오는 김에 겸사겸사 풀때기도 보는 거지!”
“그믑드.”
그때. 쭈뼛쭈뼛 다가온 바르바토스가 오렌지 주스 한 병을 건넸다.
“……자주 놀러 와라. 오렌지 주스를 많이 준비해 둘 테니.”
“그럴게! 그리고 우리 토끼 잘 부탁해. 쟤가 저렇게 무뚝뚝해도 사실은 모지리 악마를 참 대견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바르바토스의 시선이 천천히 아가레스를 향했다.
주군께선 답하지 않으셨으나, 부정하지 않으셨다는 것에서 충분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겠다.”
답하는 바르바토스의 뺨이 파르르 경련했다.
이젠 이벨리아도 안다. 저게 나름대로 웃음이나 다름없는 표현이라는 것을.
데려다준다는 아가레스의 손을 잡으며, 이벨리아가 뒤로 돌아 손을 크게 흔들었다.
“다들 잘 있어! 감기 조심하고! 혹시 가능하다면 내 데뷔탕트에 모두 초대할게!”
그 이후에도 뭐라 뭐라 외치는 것 같은데, 인간계로 가는 통로를 지나느라 더는 소리가 명확하게 들려오지 않았다.
보랏빛 통로가 서서히 닫히다가 이내 점이 되어 사라지자, 집무실 안에는 늘 그랬던 것처럼 서늘한 침묵만이 자리했다.
워낙 밝고 시끄러운 태양이 휩쓸고 간 자리라서 그런지 그와 대조되는 평소의 고요가 더욱 크게 와 닿았다.
“…….”
“…….”
서로 빤히 바라보던 바르바토스와 마르바스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을 열었다.
“그…….”
“그…….”
“먼저 말해라.”
“내가 너보다 높잖아. 너 먼저 말해.”
“……우리가 악마라서 초대를 못 받더라도 선물은 좀 보내고 싶은데.”
“나도 같은 용건이었어.”
“보석이면 되려나.”
“좀 더 특별한 거로 찾아봐. 쟤 보석 많아.”
그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소 닭 보듯 하며 살아왔던 두 악마는 난생처음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시작했다.
***
그리고 아르티나 공작저로 온 지 고작 1시간 만에 로노베는 깊이 후회했다.
‘주군께서 돌아가실 때 따라갔어야 했어…….’
악명은 익히 들었으나 이 정도 미친 집단일 줄은 몰랐다.
로노베가 끼긱 고개 돌려 유일한 동아줄을 바라봤다.
“……밥풀 폐하야. 날 좀 구해주지 않으련?”
그러나 이벨리아는 통에 담긴 비스킷을 냠냠 씹어 먹으며 답할 뿐이었다.
“미안. 우리 멍멍이들은 내 말도 잘 안 들어서!”
“…….”
로노베는 자신 앞에 줄을 선 기사들을 바라보며 1시간 전을 회상했다.
아르티나 공작저에 들어서서 분명 밥풀의 연회 준비를 돕기 위해 왔다고 말했건만.
공작은 꺼지란 건지 하라는 건지 모를 손짓만 휘휘하다가 들어가 버렸고.
두 황금 머리통은 이게 공작저인지 악마 소굴인지 모르겠다며 투덜대다가 들어가 버렸더랬다.
그리고 공작부인은 ‘어머, 내가 예전에 많이 잡아 죽였던 악마들과 머리 색이 비슷하네.’라는 말을 하고선 왠지 모르게 손을 뚜둑 꺾었고.
용은 허튼짓하면 죽여버리겠다면서 자신의 머리 위에 거대한 마법진을 동동 떠다니게 했다.
마음에 안 드는 짓을 하면 바로 벼락이 내리치는 마법이라나.
‘그래. 여기까진 그렇다 쳐.’
이 미친 기사단은 자신을 보고 어디 악마가 아르티나 문턱을 넘냐며 세상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다가, 밥풀 폐하가 말리고 나니 그렇다면 대련을 하자면서 검을 들고 조르르 줄을 서는 것이 아닌가.
“아, 새치기하지 말라고!”
“어차피 너는 한방 컷이야, 인마!”
“우리 신입들이 악마 상대할 생각에 아주 신이 났구나. 바람직하다, 바람직해.”
“악마는 고유 권능만 조심하면 별거 없어. 진정한 아르티나 기사단이라면 악마 따위는 맨손으로 때려잡아야지!”
“…….”
구해줘. 밥풀.
간절히 바라봤으나 밥풀은 어깨를 으쓱이며 다가와 마들렌 하나를 입에 쏙 넣어줄 뿐이었다. 이벨리아가 로노베에게 속삭였다.
“악마 언니. 우리 멍멍이들 꽤 강해.”
“몇몇은 그래 보여.”
“그러니까 대련을 빙자해서 마음껏 패버려.”
“……그래도 돼?”
“저것들은 좀 맞아도 싸. 저기 무복 껄렁껄렁하게 입은 것들은 좀 하는 애들이라 쟤들은 피하고, 무복 딱 갖춰 입은 것들은 신입이거든. 쟤들 골라서 나오라고 해.”
이참에 언니 악마는 스트레스를 풀고, 우리 멍멍이들은 실력을 키우고! 꿩 먹고 알 먹고!
생긋 웃은 이벨리아는 손님이 왔다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가 버렸다.
졸지에 미친 멍멍이들 앞에 홀로 서게 된 로노베가 채찍과 사슬을 꺼내 들며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후, 좋았어, 이 빌어먹을 멍멍이들. 다신 덤빌 생각도 못 하게 죽기 직전까지 패주마.”
***
으아아아악!
창밖에서 들려오는 신랄한 비명에 렐리안이 손을 떨었다.
“이브. 저거 저대로 둬도 괜찮은 거예요?”
“괜찮아. 괜찮아. 기사들의 수련 방식은 마법사들하곤 달라서 실전을 겪어야 강해지거든.”
끄아아아악!
“방금 비명은 누구 하나 죽은 비명인데요.”
“괜찮아. 괜찮아. 우리 멍멍이들 생명줄 끈질겨.”
콰아아아앙!
“방금 소리는 뭐 하나 무너진 소리인데요.”
“괜찮아. 괜찮아. 우리 집 돈 많아. 새로 지으면 돼.”
“……네. 뭐. 이브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거겠죠.”
렐리안은 연이어 들려오는 굉음과 비명을 애써 무시했다. 역시 제국 제일의 무가. 수련 방식도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면서.
드르르륵 진동하는 테이블에서 찻잔을 지켜내며 렐리안이 물었다.
“그나저나 데뷔탕트 파트너는 정했어요? 온 제국이 이브의 데뷔탕트로 난리인데 이브만 평온해 보이네요.”
쪼로록. 이벨리아가 빨대로 오렌지 주스 아랫부분을 빨아들이며 답했다.
“마침 오늘 정하고 돌아오는 길이야.”
렐리안의 눈이 반짝 빛났다.
“누구요?”
“토끼.”
“역시!”
탕. 렐리안이 탁자를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우리 이브 아주 보는 눈이 있군요!”
“고마…….”
“그래! 애초에 황실하고는 연을 맺는 게 아니에요!”
“……?”
“어디 황실 들어가서 행복한 인간 봤어요? 당장 우리 오라버니만 봐도 은발 독사에게 물린 뒤로는 시름시름 앓으며 사는걸요!”
탕탕. 렐리안이 답지 않게 분개하며 탁자를 두들겼다.
“황궁 쪽으로는 침도 뱉으면 안 돼요! 그쪽으론 소피만 봐도 부정 탄다고요!”
“……레, 렐리안?”
그 순하던 애가 왜 이렇게 된 거지?
반역 일보 직전의 불경한 사상은 대체 어디서 세뇌된 거야?
“아르칸 오라버니도 항상 제게 말했거든요!”
“아.”
거기였냐.
……이쯤 되면 사실 우리 가문이 최고 흑막 아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