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화: 토끼야 이걸 어쩌냐
세게 안긴 것도 아니다.
그저 몸을 가까이 마주 대고 머리만 가슴에 톡 기댄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레스는 흡사 밧줄에라도 꽁꽁 묶인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
어떻게 여린 인간 하나가 세계보다도 강한 악력으로 자신을 옭아맨단 말인가.
뒤로 발을 빼려던 아가레스는 문득 생각했다.
‘움직였다가 이브가 바닥으로 콩 쓰러지기라도 하면?’
슬슬 빠지던 발이 딱 멈췄다. 그러자 또 다른 우려가 밀려든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으면 이브가 정신 나간 심장 소리를 듣게 될 텐데.’
선택에 고민을 담은 적 없던 악마는 지금만큼은 격렬한 갈등에 시달렸다.
다른 기사들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지만, 아마 이벨리아가 고개를 들었더라면 웃음을 참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마계 전역을 호령한다는 악마가 친구 하나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두 손을 마치 항복하는 자세로 들어 올린 데다가, 동공은 속절없이 떨리고 있고, 심지어 귀와 얼굴, 목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으니.
‘미치겠네…….’
오른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던 아가레스는 이벨리아가 새끼 고양이처럼 품을 파고들기 시작하자 심지어 생명의 위기까지 느끼기 시작했다.
‘이건 죽는다.’
심장이 미친 망아지처럼 발작하듯 뛰는데 죽지 않고 살아 있을 리가 없다.
‘떨어뜨려야 해.’
그래야 오래오래 살아남아서 곁을 지켜주지.
그렇다고 휙 뿌리칠 수는 없기에, 아가레스는 달래듯 이벨리아의 등을 쓸어내렸다.
“이브.”
크흠.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다시. 아주 신뢰감 있고 진중한 목소리로.
“이브.”
“으응.”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돼. 넌 내게 명령만 해.”
그 말에 이벨리아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제법 자란 키 탓에 푸른 눈동자가 악마의 가슴께에서 빛을 발한다. 악마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보진 말고.”
“왜?”
“그렇게 갸웃거리지도 마.”
“으응?”
“그런 소리도 내지 말고.”
“뭘 다 하지 말래?”
……그러게 말이다.
아가레스가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네가 너무…… 너인 탓이지.
심히 이상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친우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을 애써 참아내며 아가레스가 화제를 돌렸다. 여전히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깃발을 보니 악마는 둘이로군. 영지 북쪽과 남쪽에 하나씩.”
그 말에 이벨리아가 기대고 있던 몸을 떼어냈다. 막상 따뜻한 온기가 멀어지자 못내 아쉬웠던 아가레스의 손이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눈앞의 참극에 익숙하여 별 감흥 없는 대악마와는 달리, 이 군을 제대로 이끌고자 하는 이벨리아는 이를 앙다물고 바짝 정신을 차렸다.
기댈 수 있는 친우에게 부리는 어리광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크게 심호흡한 이벨리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명령을 내렸다.
“이곳을 점령한 악마는 둘이다. 고로, 세 팀으로 군을 나눈다. 두 팀은 각 악마의 진영을 치고, 한 팀은 생존자를 확보하도록.”
그 말에 뒤에 도열해 있던 기사들이 너도나도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저는 아가씨 팀!”
“그럼 저는 정령사 팀!”
“그렇다면 저는 병아리 팀!”
아가레스 역시 경계의 눈빛으로 기사들을 노려보며 이벨리아의 어깨에 커다란 손을 얹었다.
“좋군. 그러면 나는 내 주인 팀으로 하지.”
“…….”
뭐야. 이 순박한 눈빛들은. 뭐 이렇게 다 다른 팀에 자원한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손을 들고 있어.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표정이면 다 되는 줄 알아? 이러면 팀 나누기가 안 되잖아.”
“예리하시긴.”
“이런, 똑똑하시긴.”
“……너희가 내 지능을 닭으로 본다는 건 잘 알았어.”
“이브. 그냥 다 같이 가서 하나씩 깨부수면 안 돼?”
악마의 제안에 기사들이 다 같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가뭄에 콩 나는 것보다 낮은 확률의 의견 합치!
그러나 이벨리아는 고갯짓 한 번으로 그 역사적인 동맹을 깨트려버렸다.
“안 돼. 아직 생존한 영지민들이 있을 수도 있어. 빠르게 격파해야 희생이 줄어.”
“…….”
“…….”
다들 이벨리아와 함께 가고 싶은 마음에 못마땅하다는 듯 입을 삐죽이고는 있으나, 그 누구도 반론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 군의 사령관은 이벨리아. 전장에서 상관의 명령에 합당한 이유 없이 불복종하는 것은 즉결처형감인 중죄다.
이벨리아가 손을 뻗어 지시했다.
“내가 북쪽. 아스가 남쪽. 헤롤드 경은 생존자 확보.”
“이브.”
“빨리 끝내야 해. 머뭇거리는 사이에 피해가 더 커질 수도 있어.”
“늘 그렇듯 현명하고 합당한 명령이야. 하지만 위험할지도 모르잖아. 나는 데리고 가주면 안 돼? 응?”
아가레스는 금방이라도 북쪽으로 달릴 것만 같은 이벨리아의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마치 대형견이 주인에게 아양을 떠는 것처럼. 이벨리아가 슬쩍 머리를 밀며 답했다.
“다른 진영도 네가 가야 빨리 끝나잖아.”
“……그래도.”
“여기서 악마를 가장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는 건 토끼인걸.”
풀 죽은 듯 숙여져 있던 악마의 고개가 천천히 들어 올려진다.
“내가 누굴 전적으로 믿고 군을 내어주겠어. 토끼 정도 되니까 다른 쪽을 맡아달라고 부탁도 하고 그러는 거지.”
곧이어 입꼬리가 움찔 움직이더니.
“토끼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악마잖아.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떡 벌어진 어깨가 더욱 넓게 펴지기에 이르렀다.
이내 수려하고 단단한 손이 검은 머리칼을 무심한 듯 쓸어올린다.
“……이럴 때는 내 뛰어난 능력이 원망스러워.”
“오구, 오구. 원래 뛰어난 토끼는 바쁜 법이지.”
“하아, 그래도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별수 없이 다녀와야지, 뭐.”
“세상에, 우리 토끼 정말 기특하다.”
“아주 신속하게 개박살을 내고 돌아올게.”
“헤엑, 우리 토끼 굉장히 듬직하다.”
으쓱. 으쓱. 대악마의 고고한 어깨가 위로 들썩이는 듯한 환영이 보인다.
뒤에서 짝다리를 짚고 삐딱하게 서 있던 기사들이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어이가 없어서, 진짜.’
‘저 표정 봐라, 저거. 저게 어딜 봐서 악마냐, 호구지.’
‘우리 아가씨의 악마 조련 능력이 아주 가공할 수준에 이르렀군.’
그 수군거림을 간단히 무시해버린 아가레스가 이벨리아에게 당부했다.
“그래도 이브. 위험한 일이 생기면 날 부른다고 약속해. 그 약속 없이는 못 가.”
“약속!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바로 부를게.”
“진짜지?”
“그럼, 진짜지! 몸에 작은 생채기 하나만 나도 바로 부를게!”
“그게 나면 벌써 세상 무너지는 큰일이 난 거야. 나뭇잎만 날아와도 불러.”
“……진심이야?”
“거짓처럼 보여?”
“그랬다간 네가 아주 수시로 내 곁에 불려와야 할 텐데.”
그러자 원하는 말을 들었다는 듯, 고개 숙여 시선을 맞춘 악마가 씨익 입매를 올렸다.
“그거 아주…….”
요요하게 휘는 눈꼬리에 이벨리아가 꿀꺽 침을 삼켰다.
“……바라는 바야.”
잘게 떨리는 호흡이 남몰래 뱉어졌다.
‘……아, 진짜.’
적당히 좀 해라, 이 요망한 악마야.
***
그렇게 각 팀의 수장이 정해지자 이후 절차는 꽤 간단했다.
이벨리아는 아가레스와 헤롤드에게 사령관의 일부 권한을 양도했고, 아가레스의 강력한 요구로 인해 카론을 비롯해 비교적 강한 기사들은 죄다 이벨리아의 부대에 예속되었다.
그리고 이벨리아의 성화로 그중 알렉만 빠져 나머지 기사들과 아가레스의 부대에, 그리고 적당히 발 빠른 이들이 헤롤드의 부대에 배속되었다.
이벨리아는 각 사령관 대행들의 뒤에 선 기사들을 천천히 살폈다.
‘헤롤드의 부대야 그렇다 치고…… 토끼 부대는 필히 전투를 치러야 할 텐데.’
면면을 보아하니 사령관 대행인 아가레스와 부대행인 알렉이 빠지면 아주 큰일이 나게 생겼다. 대다수가 신입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당연했다.
“……토끼야. 이러면 나뭇잎이 날아와서 내가 널 불렀을 때 너희 부대 기사들은 모두 황천길 아닐까?”
“알 게 뭐야.”
“우리 가문 기사들이니 좀 알아줬으면 하는데.”
“원래 전쟁은 뒈지면서, 아니, 죽으면서 배우는 거야.”
“우리 토끼도 한번 죽으면서 배워볼래?”
“……아니.”
악마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최고로, 또 유일하게 두려운 것은 친우의 저 눈빛이다. 냅다 꼬리를 만 대악마는 한껏 너그럽게 기사들을 돌아봤다.
“한심하게 약해빠진 것들. 개똥으로 쓰려 해도 부족할 실력으로 무슨 전쟁터까지 쫄래쫄래 쫓아와서는.”
“토끼야?”
“……그러니 최소한 개똥으로 무르익을 때까진 내가 지켜주지. 네가 부르면 대충 잡초인지 잔디인지 그거 불러두고 갈 테니까 염려하지 마.”
적당히 똥 덩어리들 안 뭉개지게 지키라고 하면 후딱 뛰어와서 할 일을 할 터다.
이 잔인한 평가에도 기사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 악마는 최소한 헤롤드 경, 알렉 경, 카론 경에게는 이렇게 박한 평가를 내뱉진 않았으니까.
악마 나름의 기준에 자신들은 턱없이 못 미친다는 뜻이겠지. 검을 쥔 신입 기사들의 손에 세게 힘이 들어갔다.
여하간 악마의 대비책을 들은 이벨리아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우리 잔디 정도면 맡길 만하지.”
“우리. 그건 내 전용이야.”
“그래, 우리 토끼. 한낱 잔디. 됐지?”
“흡족해.”
하여간 날이 갈수록 토끼 조련이 쉬워진다. 이 단순한 악마 같으니라고.
이벨리아는 도열한 기사들을 바라봤다. 다들 결연한 표정이었다.
“모두 각 부대 사령관 대행의 명을 잘 받들도록!”
“예!”
“긴말은 필요 없을 거라 믿는다. 너희 역시 아르티나의 일원이니.”
“……예!”
“아스와 헤롤드 경은 기사들 잘 이끌고.”
“물론이지.”
“염려 놓으십시오, 아가씨!”
즉각 들려오는 대답이 참으로 든든하기도 하다. 내가 멍멍이 몇과 토끼 하나는 참 잘 키웠단 말이야.
저것들도 할 땐 하는 것들이니 품위 있는 태도로 군을 이끌겠지. 이벨리아는 만족스럽게 끄덕이며 먼저 출발했다.
그리고 잠시 뒤. 등 뒤에서 아가레스와 헤롤드의 출진 명령이 들려왔다.
“쯧. 가자. 허약한 개똥 덩어리들아.”
“힘들면 뒤처져도 좋다. 혼자 질질 짜면서 황천길 걷다 보면 아, 내가 헤롤드 경의 등 뒤에 바짝 붙어서 목숨이라도 부지해야 했는데, 후회하겠지.”
꼿꼿하게 말을 타던 이벨리아의 몸이 살짝 삐끗했다.
***
아가레스의 남쪽 진영 토벌팀.
가장 앞장서서 말을 달리던 악마의 뒤로, 알렉이 바짝 따라붙었다.
“이봐. 악마.”
“사령관 대행에게 말버릇이 불손하군.”
“이봐. 사령관 대행.”
“존칭. 어디 졸개 따위가.”
“……빌어먹을 사령관 대행님아.”
“오냐.”
뭐에 화가 난 건지 바득 이를 간 알렉이 짓씹듯이 내뱉었다.
“우리 아가씨께서도 눈이 있으시다.”
“이브도 인간인데 당연히 눈이 있지.”
“그것도 앞에 아주 똑바로 달려 계시다.”
“이브가 물고기도 아닌데 그럼 앞에 똑바로 달려 있겠지. 무슨 당연한 소리를 자꾸 짖어대는 건가.”
알렉이 아가레스의 바로 옆까지 말을 몰았다. 삐딱한 시선이 악마를 꿰뚫을 듯이 가닿았다.
“그러니까 꼬리치지 말라고.”
“……?”
“살살 웃으면서 주인, 주인……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그 말에 아가레스가 가소롭다는 듯이 픽 웃었다.
자신은 이 하룻강아지가 표출하는 감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질투하는군.”
그 말에 알렉의 표정이 와그작 일그러졌다.
“무슨 소릴!”
“맞다. 내가 해봐서 안다, 그거.”
“아니라고!”
“내가 이브와 더 가까워질까 봐. 혹시 이브가 더는 네놈을 봐주지 않을까 봐. 다른 이와 네가 알지 못하는 가약을 맺을까 봐. 가진 적도 없었건만 빼앗길까 봐…… 두려워서 밤마다 제대로 눈을 감을 수도 없겠지.”
“……너 그러냐?”
“넌 아닌가?”
“이, 이, 이 개자식이! 너, 너어, 네놈이 하는 건 진짜 질투고! 내가 하는 건 충성심에서 기인한 우려고! 이 망할 자식아!”
“다른가?”
“다르지! 하늘과 땅만큼 다르지! 지금 네놈이 하는 건 이성 간에 하는 질투잖아!”
늘상 멍한 말투로 일관하던 알렉이 보기 드물게 빽 소리를 지르며 말 위에서 마구잡이로 몸을 흔들었다. 그 기괴한 광경을 바라보던 아가레스가 천천히 입을 열어 지금 들은 말을 되 읊었다.
“……이성 간?”
“너 이 시꺼먼 악마 자식! 당장 그 음흉하고 더러운 마음 접어라, 엉? 우리 아가씨께 허튼짓 한 번이라도 했다가는 그날로 동부의 지배자 토벌하고 나도 죽는 거다!”
“이성 간이라…….”
“알았냐? 앙? 아주 그냥 간담이 서늘해서 말이 안 나오나 본데, 우리가 괜히 미친개 기사단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 이 말이야!”
“……이성…….”
급발진한 알렉이 크르렁 컹컹대는 와중에도 아가레스는 북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일 뿐이었다.
***
한편, 이벨리아의 북쪽 진영 토벌팀.
이벨리아는 창공에 휘날리는 천을 흘끗 바라봤다.
72위(位)의 각 악마를 상징하는 문양이 으레 그러하듯 현란한 인장이 새겨진 깃발.
“이 개자식이. 남의 집 앞마당을 이렇게 만들어 두고 깃발을 저렇게 높이 달아뒀어?”
“그러게 말입니다. 저건 얼른 와서 내 대가리를 깨 달라, 이런 의미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몸이 가벼워지게 모가지를 좀 쳐달라, 이런 의미라고도 볼 수 있겠지.”
깃발을 내건 악마가 들으면 역시 마귀가 따로 없다며 경악할 소리를 태연하게도 해대며, 그들은 천천히 말을 몰아 진영 안쪽으로 넘어갔다.
“이상하네. 생각보다 조용한데?”
“이미 다 철수한 거 아니겠습니까?”
“깃발을 이렇게 높게 달아두고?”
“사령관께서 오신다는 소리를 듣고 쫄아서 튄 걸 수도 있습니다. 어디서 들었는데, 악마들에게 아르티나는 사탄이나 다름없다고 하더군요.”
“그건 너희 기사단 때문이잖아.”
“단언컨대 주군 때문입니다. 저희는 그저 내리신 명만 수행하는 귀여운 멍멍이 집단인 것을요.”
“……카론 너만은 정상인 줄 알았는데.”
자칭 귀여운 멍멍이의 영문 모르겠다는 갸웃거림을 외면한 이벨리아는 감각을 잔뜩 곤두세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꽤 깊이 들어갔음에도 인기척이 없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듯 타오르는 불과 연기, 부서진 목재 등만 사방을 장식하고 있을 뿐.
이윽고 진영 가장 한가운데에 다다른 이벨리아가 걸음을 멈췄다.
삼면은 높은 목책으로, 남은 한 면은 얼기설기 짜인 문이 있는 곳.
통상 군을 이끄는 사령관이 머무는 곳이다.
이벨리아가 오른손을 슬쩍 들었다.
‘경계.’
알아들은 기사들이 검집에 조용히 손을 가져다 댔다.
‘함정일 수도 있다.’
마치 후퇴한 척하여 진영의 가장 깊은 곳까지 끌어들인 다음 출구를 막고 고도 높은 곳에서 불화살, 창, 마법, 바위 등을 날려대는 것은 꽤 자주 쓰이는 병법 중 하나이니.
이벨리아는 털을 바짝 곤두세운 고양이처럼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문 앞까지 다가간 다음, 실프를 불러 천천히 문을 밀었다.
그 틈새로 보인 것은…….
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화려하기 짝이 없는 왕좌.
그리고 그 위에 오만한 자세로 앉은 청년.
카라락. 카라라락.
잘 다듬은 손톱이 왕좌 팔걸이의 장식을 긁는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울려 퍼진다.
이벨리아가 옥좌의 주인을 바라봤다.
그러자 마치 그 시선을 기다렸다는 듯, 익숙한 가면 아래로 붉디붉은 입술이 느리게 호선을 그린다.
이내 느긋함에 함빡 젖은 낮은 목소리가 다정히 속삭였다.
“안녕, 이벨리아.”
“…….”
“오랜만이지?”
흡사 친구에게 건네기라도 하듯 친근한 인사.
“…….”
답이 없자 고개를 사르르 옆으로 기울인다.
비단으로 만든 장포가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섭섭하게 왜 인사가 없을까. 오래 기다렸는데.”
“……망할.”
야, 토끼야. 미안하다.
나뭇잎이 아니라 돌덩이가 날아왔어.
보낸 지 30분 만에 널 좀 불러야 쓰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