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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꽃밭에는 그들이 산다-221화 (221/323)

##  221화: 손잡지 마. 떨리니까.

에르트 백작이 한 손으로 이크리안의 입을 막고, 남은 한 손으로는 목을 감아 질질 끌고 나갔다.

집무실 밖, 분노한 이크리안의 고함이 점점 작아져 갔다.

아, 놔 보라고. 안 죽인다고. 등등의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온다.

부하의 난데없는 폭동에 가만히 서서 눈을 깜박이던 루드비히가 탄식했다.

“……눈을 까뒤집고 달려들다니.”

항상 총기와 여유로 빛나던 눈은 어디로 가고, 황태자고 뭐고 죄다 만년빙 속에 처넣어버릴 것처럼 살기 번뜩이던 눈.

심지어 일순 휘몰아치던 마나는 소드마스터인 루드비히조차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누가 차기 대마법사 후보 아니랄까 봐.

“아무리 그래도 내가 주군인데.”

루드비히가 허리를 굽혀 마나 폭풍에 휩쓸려버린 서류를 주섬주섬 주웠다.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우수수 휘날린 화초 잎도 하나하나 치웠다.

“너무들 하는군. 너무들 해.”

여기저기 주렁주렁 열린 고드름도 똑똑 떼어냈다.

“이거 서러워서 진짜.”

한 치의 반성도 없이 구시렁대는 모습.

이크리안이 봤다면 다시 한번 광견이 되어 으르렁 달려들기에 부족함 없는 뻔뻔함이었다.

“에이. 손 시려. 뭔 놈의 얼음이 검기를 써야 잘려.”

그렇게 어질러진 집무실을 한참 치우면서도, 루드비히는 단 한 번도 시종을 부르지 않았다.

제법 어린 시절부터 군신의 관계를 맺었던 둘.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루드비히가 이크리안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하나둘씩 늘어갔다.

인재. 참모. 충신. 아군. 전우. 동료.

그리고…… 친우(親友).

그렇기에 이크리안의 이 정도 행패는 루드비히에겐 별것도 아니었다.

하여 괜히 시종들을 불러 이크리안을 구설에 오르게 하고 싶진 않았다.

“이 하해와 같은 성총을 그놈이 알아줄까 모르겠군.”

홀로 집무실 정리를 마친 루드비히는 창가에 놓인 의자에 길게 드러누워 팔로 눈을 가렸다.

시야를 가렸음에도 외면할 길 없이 새어 들어오는 석양. 감은 눈앞은 완전한 암흑은 아니었다.

저항할 수 없이 내리쬐는 따스함이 못내 또 누군가를 떠오르게 한다. 루드비히가 입매를 늘렸다.

“데이트라…….”

그것도 땅 도둑과.

이것 참.

“그때 독약 먹고 뒤지지 않길 잘했군.”

그 많은 암살 시도에서 끝내 살아남은 것은 바로 이날을 위해서이리라.

“모처럼 얻은 기회에 부족함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몇 없는 수하들은 모태 솔로라 도통 도움이 안 되고.

그렇다고 조언을 구할 마땅한 곳도 없다.

한동안 석상처럼 그대로 굳어 곰곰이 생각하던 루드비히의 입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깊은 생각에 빠질 때면 간혹 나오는 버릇이다.

“실라페의 말에 따르면 죄다 가진 지위와 능력을 아낌없이 사용한 듯한데.”

용은 용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정령왕은 정령왕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그 외에 파라반트 마스터는 본인이 일생을 걸고 이룩한 업적을 넘겨준다고 했고.

다들 차별화 전략을 넘어 세상에 본인 외에는 아무도 하지 못할 법한 일들을 벌여뒀다.

흡사 공작새가 꽁지깃을 펴고 내 깃털이 이렇게 예뻐요 자랑이라도 하듯.

“게다가 일반적인 의미의 데이트는 그 악마가 이미 했다고 했지.”

영리한 자식.

그 이상을 하지 못해서 안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벨리아의 첫 데이트는 인간들의 그것으로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동시에 루드비히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선점함으로써 손발을 묶으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겠고.

“……무슨 수를 내긴 내야겠군.”

이렇게 된 이상, 식사를 하고 공연을 보는 등의 통상적인 데이트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상정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은 이미 그 악마가 해주었을 테니까.

루드비히가 느리게 턱을 쓸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다른 이들은 엄두도 못 내는 것.

따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

“…….”

루드비히가 눈을 가리고 있던 팔을 내렸다.

“좋아.”

만족스러운 생각이 떠오른 듯, 입가는 유려하게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권력 남용 좀 해볼까.”

***

‘이 짓도 더는 못 해 먹겠군. 빨리 양위하든가 해야지, 원.’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황제가 뻑뻑한 눈을 비비며 서류를 내려두었다.

잠시 쉬려던 찰나. 타이밍 좋게 황태자가 들었다는 기별이 왔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황태자의 뒤에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정작 창문은 자신의 뒤에 있을진대.

‘고놈 참. 누구 아들인지 참 훤칠하다.’

날 닮아서 그래, 날 닮아서.

속으로 뿌듯해하던 황제는 지척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이는 루드비히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아버지.”

“……아버지라고 부르는 경우는 딱 하난데.”

내가 당해봐서 알지.

아버지라고 부른 뒤에는 늘 터무니없는 요구가 따라붙었다.

“또 무슨 삿된 의도로 무엇을 강탈하려고.”

황제의 눈이 가늘어지자 루드비히가 천진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소자가 설마 불순한 의도가 있을 때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겠습니까.”

“그럼 아니냐?”

“당연히 아니지요.”

“……진짜?”

“속고만 사셨습니까.”

찬찬히 표정을 살펴보니, 아무래도 진실인 듯하다.

그래. 우리 아들이 그렇게 속 시커먼 아이는 아니지.

황제가 긴장을 풀고 호탕하게 웃었다.

“허허. 하긴, 황태자가 그리 약았을 리는 없지! 그럼 오늘은 무슨 일로 왔느냐. 이 아비랑 술이라도 한잔 기울이고 싶었더냐?”

아무래도 과한 의무와 업무에 짓눌린 황태자가 자신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 보다.

항상 꿈꾸던 부자간의 모습을 상상한 황제가 헤벌쭉 웃으며 곧바로 시종장에게 손짓했다.

“시종장. 술상을 좀 봐오…….”

그 명이 미처 끝나기도 전.

말 돌리는 법이 없는 루드비히가 냅다 요구했다.

“선산에 좀 들게 해주십시오. 동행자와 함께.”

명령을 내리던 황제의 입이 딱 멈췄다.

“…….”

“…….”

“……삿된 의도 아니라며.”

불순한 의도 없다며! 이보다 더 불순할 수가 없다!

황제가 손짓으로 시종장을 물리고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루드비히에게 일갈했다.

“안 된다! 그곳이 어떤 곳인데 감히!”

자, 이제 이 아들놈이 바닥에 드러누워서 생떼를…….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응? 이렇게 쉽게?”

“예. 선산은 여러모로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니까요.”

“크흠. 큼. 그른 것은 빠르게 포기할 줄도 알고. 황태자도 이제 철이 조금 들었구나.”

“예. 어쩔 수 없지요, 폐하.”

“아니, 아버지 호칭은 어디 가져다 버리고 다시 폐하냐!”

“소자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폐하. 편안한 밤 되시길.”

단번에 호칭이 바뀌어버린 것은 아쉬우나, 상당히 의외기는 하다.

‘저 고집쟁이가 이리 순순히 물러난다고?’

예로부터 원하는 게 생기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하던 놈이 아니던가.

뒤에 따라붙는 그 의문어린 시선을 느낀 루드비히가 문을 반쯤 나서다 말고 한숨처럼 내뱉었다.

“데이트 따위가 뭐가 중하겠습니까…….”

“뭐?”

잘못 들었나. 황제가 되물었다.

“데이트 말입니다. 인생 첫 데이트를 좀 해보나 했는데…… 폐하께서 이리 도와주시지를 아니하니 어찌할 방도가 있겠습니까.”

지금 이 말이. 데이트라는 이 말이. 황태자비를 맞이하라는 황제와 귀족들의 청을 귀 파면서 씹어버린 황태자가 한 말이 맞는가.

황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한번 되물었다.

“……데이트?”

“소자는 괜찮습니다.”

“아니, 잠깐.”

“그저 평생을 홀로 늙어 죽으며 황후궁을 비워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요. 그 옛날 카를로스 대제께서도 나는 제국과 결혼하였다고 선포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루드비히가 황제의 집무실 밖으로 한 발을 내밀었다.

그러자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잠깐. 황태자. 잠시 거기 서 보거라.”

루드비히의 입꼬리가 티 나지 않게 슬쩍 올라갔다.

옳지. 월척이 코앞이다.

“왜 그러십니까, 아버지.”

가능성이 생기자 다시 아버지로 돌아온 호칭. 여우 같기 그지없다.

영문 모르겠다는 듯 돌아본 황태자를 향해, 황제가 물었다.

“혹시…… 어, 어느 가문의 영애더냐?”

“어차피 못 하게 된 데이트 상대가 뭐 중요하겠습니까.”

“아니, 그래도 말은 좀 해보거라. 상대에 따라 내 결정이 달라질 것 같으니.”

좋아. 월척이 반쯤 물 밖으로 나왔다.

루드비히가 시무룩해진 표정을 연기하며 답했다.

“제가 데이트를 할 상대가 달리 더 있겠습니까.”

“설마…….”

“예, 생각하시는 바가 맞습니다.”

황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이고! 아이고, 드디어!”

“……아버지?”

“이 멍청한 놈이 드디어!”

“…….”

“데이트 청할 배짱도 없는 소인배인 줄 알고 내가 얼마나 속을 졸였는지!”

“……그리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얼른 가서 우리 예비 며느리를 확 낚아오너라! 아주 확!”

“이브가 무슨 물고기랍니까.”

“여심 낚는 것은 낚시와 별다를 것 없다! 아니, 아니지. 넌 그냥 가서 냅다 빌기나 해라. 공녀가 곧 신이요, 공녀의 말이 곧 신언인 것처럼 받들라는 말이다!”

“……그래서 선산은…….”

“선산이 대수냐! 가서 불을 지르고 놀든 땅을 파면서 놀든 마음대로 하거라!”

아니, 아버지.

태세 전환이 너무 빠르신 것 아닙니까.

“분명 조금 전까지는 그곳이 어떤 곳인 줄 아냐면서 노발대발을…….”

“그곳이 어떤 곳인지 내가 알 게 뭐냐. 그보다, 공녀와는 무엇을 하고 놀지 정했느냐? 아니, 이럴 게 아니지. 시종장! 술을 좀 내오거라!”

“…….”

아니요, 저 좀 돌아가고 싶은데요.

차마 말을 하기도 전에 삽시간에 놓인 술상.

얼떨결에 황제와 대작하게 된 루드비히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황제가 바짝 붙어 앉아서 아들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황태자. 궁금한 것은 없느냐?”

“없습니다.”

“여심을 뒤흔드는 방법이 궁금하지도 않고?”

“궁금하긴 합니다만, 아버지께 여쭐 것은 아닙니다.”

“왜?”

“어머니의 방 발코니에 찾아가셨다가 뺨을 맞으신 분께 뭘 듣고 싶진 않습니다.”

“……아니, 그래도 좀.”

“게다가 결국 아버지의 사랑은…….”

……전부 실패했지 않습니까.

끝말을 삼킨 루드비히는 앞에 놓인 독주를 그대로 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황태자, 벌써 가느냐.”

“더 나눌 이야기는 없는 듯하여.”

“……정 없긴.”

아쉽다는 듯한 읊조림에도 뒤돌아보지 않던 루드비히는, 화려하게 음각된 문고리를 잡고 작게 속삭였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사랑을 답습하진 않을 겁니다.”

“…….”

그대로 굳어버린 황제를 뒤로하고 집무실을 나온 루드비히는 회랑의 기둥에 잠시 기대어 섰다.

교교월색(皎皎月色)이 천지에 흩뿌려진다.

색 바랜 기억 속, 달빛 아래를 거닐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

아버지와는 다른 사랑을 하겠다는 것.

그건 황좌와 사랑 모두 쥐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둘 다 온전히 쥐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하나라도 온전할 수 있도록 놓을 겁니다.”

그렇게.

이기적이지 않은 사랑을 하겠습니다, 저는.

***

황가의 문양이 음각된 마차가 아르티나 공작저 앞에 부드러이 멈춰 섰다.

황가의 일원이 누군가를 에스코트하는 경우, 직접 운신하지 않고 별도의 수행원이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여 심드렁하게 마차로 다가가던 아르티나 가문의 말단 기사들은 문을 열고 발을 내딛는 이를 보고 화들짝 놀라 허리를 숙였다.

이제 막 약관을 넘은 나이.

검사라고 보기에는 비교적 날렵한 체형.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드마스터.’

‘우리 주군과 대등한 경지까지, 벌써 저 나이에…….’

강자를 존중하고 흠모하는 기사들의 눈은 루드비히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리고.

루드비히는 기사들이 보내는 선망의 시선 따위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진정해라. 진정해.’

무슨 놈의 심장이 이렇게 활어처럼 팔딱팔딱 뛴단 말인가.

‘꼴사나운 모습은 안 돼.’

당당하게. 조금 무심하게. 너한테 내가 목을 매는 건 아니라는 그런 태도…….

“루이!”

……는 사뿐히 나오는 짝사랑 상대를 보자마자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 이브.”

첫마디부터 갓 태어난 양의 울음처럼 어눌하다.

준비해왔던 멋들어진 인사말 따위는 저 멀리 날려 먹은 지 오래였다.

그래서 고작 나온 말이라고는.

“모시러 왔어.”

존댓말과 반말이 우스꽝스럽게 섞인 말투.

루드비히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정신 안 차리냐, 진짜.

뻣뻣하게 내민 팔에, 이벨리아의 손이 얹어졌다.

그러자 루드비히가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떨었다.

“식량 도둑. 추워?”

“……아니.”

답하며 슬쩍 내려다보니, 마주 올려다보는 푸른 눈과 경고 없이 깊게 얽혀든다.

“윽.”

저 맑은 눈빛이 마치 천근의 망치라도 되는 것처럼 루드비히의 심장을 잘게 다져놓았다.

“루이?”

이제 시작인데.

지금 막 만났는데.

그의 소꿉친구는 여지없이 그의 머릿속을 곤죽으로 만든다.

흰 매화 잎이 살랑살랑 눈앞으로 떨어져 내린다.

사람 홀리는 것이 그의 팔을 잡은 친구와 똑 닮았다.

“루이. 괜찮아?”

“……괜찮아.”

안 괜찮다. 전혀.

‘차라리 전쟁터를 구르는 게 낫겠군.’

제멋대로 날뛰는 심장에, 루드비히가 눈을 꽉 감았다가 떴다.

***

황궁에 도착하자, 루드비히는 황제궁의 바로 뒤편으로 이벨리아를 안내했다.

그러자 해맑은 얼굴로 졸졸 따라 걷던 이벨리아가 루드비히의 팔을 뒤로 당겼다.

“잠깐! 여기 황제 폐하 허락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곳 아니야?”

“맞아.”

“나 허락 안 받았는데? 모가지 잘리면 식량 도둑이 책임질 거야?”

“네 목은 안전해. 나랑 체결한 계약이 있잖아.”

참, 그렇지. 이벨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적의 나는 아주 현명했어.”

“굉장히 똑 부러졌지.”

열심히 호응하던 루드비히는 일견 단순한 조경 장식으로 보이는 분수 앞에 멈춰 섰다.

솟구쳐 떨어지는 물이 사방으로 산개하고 있었다.

루드비히가 검지 끝을 살짝 물어 피를 내고서, 분수의 물에 한 방울 떨어뜨렸다.

- 우우우웅.

무언가를 확인이라도 하듯, 물이 우웅 소리를 내며 진동한다.

이내 분수에서 솟구치던 물이 온통 붉게 변하더니, 일제히 증발했다.

곧이어.

- 차각. 차각.

어딘가에 딱 들어맞는 부지런한 소리를 내며, 흰 대리석으로 만든 분수가 스스로 모습을 바꾸기 시작한다.

분수 한가운데가 움푹 꺼져 들어가고, 마치 구체를 떠받치는 듯한 모양으로 변하더니…….

받침 위, 허공에서 넘실거리는 장막 하나가 살포시 내려앉았다.

실로 비현실적인 광경.

이벨리아가 입을 헤벌렸다.

“……게이트?”

“맞아.”

“……여기서?”

“신기하지.”

“엄청! 뭐야, 모험인가!”

이벨리아가 이런 것에 환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루드비히는 씩 웃었다.

“모험이라면 모험이지. 오로지 황제와 그 직계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황제, 그리고 황제와 황후의 적자만 들어갈 수 있다.

즉, 냉궁에서 미쳐버린 황비나 황자인 에드윈을 데리고 오더라도 이 통로를 열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걸 타면 어디로 가?”

“비밀. 타볼까?”

“당연하지! 황궁에 나타난 비밀 게이트라니!”

이벨리아가 흡사 붉은 천을 본 투우소처럼 발을 굴렀다.

황제와 그 후계자만 입장이 가능하다면, 그저 고만고만한 곳으로 이어질 리는 없지!

성격 급한 이벨리아가 루드비히의 손을 덥석 잡았다.

“가자! 얼른!”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으나, 뒤에 따라오는 이가 돌덩이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이벨리아가 흘끗 뒤를 돌아보자, 얼굴이 새빨개진 루드비히가 말을 더듬거렸다.

“……손, 손, 손 좀…….”

“뭐라고?”

“손…….”

“얘가 기력이 허해졌나 왜 이렇게 날벌레만 한 소리로 말을 해?”

“손!”

“손 뭐!”

그 말랑한 손으로 내 손 그렇게 막 잡지 말라고!

……심장 떨리게,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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