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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꽃밭에는 그들이 산다-206화 (206/323)

##  206화: 아가레스의 분노

속삭이며 부르는 소리를 들은 밧사고가 이벨리아의 손을 자근 밟으며 낄낄 웃었다.

“공녀야.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나 본데. 그자는 오지 않아.”

“…….”

“아무리 악마라 한들, 천 리 밖에서 부르는 이름을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진명(眞名)으로 악마를 불러낼 수 있는 건 계약자이거나, 혹은 완벽한 복종을 맹세한 사역 관계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네 혼에 딱히 낙인이 찍히진 않은 거로 봐서 계약을 맺은 건 아닌 것 같고.

그 악마가 널 아무리 아낀다 한들 네게 연과 혼까지 모두 내던졌을 리도 없으니.

쪼그려 앉은 밧사고가 허리를 숙여 이벨리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더 재밌게 발악해 봐. 이건 너무 시시…….”

한껏 여유롭게 이죽거리던 악마의 입매가 별안간 서늘하게 굳었다.

목덜미부터 발끝까지 짜르르 내달리는 소름.

예언의 귀공자라는 예명답게, 그에게는 미래의 편린이 보였다.

……자신이 울부짖고 있는 끔찍하고도 머지않은 미래가.

밧사고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 허공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럴 리가.”

설마. 이럴 리 없다. 이럴 리 없어.

“……온다고? 정말?”

아무리 끼고돈다 해도 그렇지. 밑바닥마저 이 인간에게 바쳤다고?

이벨리아의 바로 옆에서 거대한 마기가 일렁였다.

밧사고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아직 뚜렷한 형체를 갖추기 전임에도 격이 다른 기운이 사방을 잠식한다.

달려오던 이샤트도, 성벽 위의 황제도,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기사들과 마족들까지.

- 털썩.

모두가 그 압도적인 기운에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이벨리아는 힘겹게 고개 들어 읊조렸다. 눈에는 짙은 환희를 담은 채로.

“……내 악마는 와.”

“대체 어떻게 길들인…….”

“길들인 거 아냐.”

그런 일방적이고 가혹한 관계가 아니다.

“서로 길든 거지.”

서로가 서로에게 단 하나라서.

답하는 와중, 마기가 서서히 형체를 갖췄다.

곧이어 진보랏빛의 짙은 운무를 헤치며 걸어 나온 대악마.

이벨리아의 충실한 친우가 시선 돌려 그의 주인을 찾았다.

단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 이상…….

“……!”

아래로 시선을 내린 그가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땅 위에 어지러이 흩어진 태양 같은 금빛 머리칼. 힘없이 늘어져 있는 따뜻했던 손. 돌바닥에 스며들고 있는 피. 숨을 쉬는 것도 힘든 것처럼 미약하게 오르내리는 가슴…….

아가레스의 턱이 덜덜 떨렸다.

차마 손을 대지도 부르지도 못한 채로.

손을 댔다가 차가울까 봐. 불렀다가 답이 없을까 봐.

내가 너로 인해 행복해해서, 그래서, 세계가 네게까지 불행을 안겨줬을까 봐.

“아아…….”

나오는 것은 다만 황망한 신음뿐이다.

울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토끼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느낀 이벨리아가 없는 힘을 마지막으로 쥐어짜 고개를 들었다.

“토끼야…….”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던 아가레스가 그제야 짧은 숨을 내뱉었다.

네 입에서 나의 또 다른 이름이 나왔다는 사실에 감격하기도 잠시.

그의 심장이 금방이라도 멎을 듯 쿵 떨어졌다.

네 보드라운 얼굴에까지 남은 생채기. 늘 그를 홀렸던 눈가에 터진 실핏줄. 쥐면 곧 부러질 것 같아 섣불리 잡아보지도 못했던 팔과 다리에서 흐르는 피…….

감히 어떠한 말도 꺼내지 못하고, 아가레스는 마치 깃털을 다루듯 이벨리아를 조심히 안아 올렸다. 오늘만큼은 미리 허락을 구하지 않은 채로.

이벨리아가 그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와줘서 고마워.”

답 대신, 아가레스는 물었다.

“누구야.”

“쟤가 그랬어.”

칭얼거리듯 이벨리아가 답했다.

가문과 지위의 무게를 안 뒤로 그 누구에게도 부리지 않던 어리광은, 오로지 아가레스를 향할 때만 오롯이 내비쳐졌다.

이벨리아에게 아가레스는 그런 존재였다. 얽히고설킨 인간들의 이해관계 그 위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친구.

“나 졸려…….”

아가레스가 이벨리아의 등을 천천히 도닥였다. 포화 떨어지는 전장이 아니라 평온한 비밀기지에서 재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천천히 이벨리아의 눈이 감겼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이가 왔으니 더 걱정할 것은 없었다.

숨소리가 고르게 가라앉은 것을 확인하고, 아가레스는 이샤트를 향해 까닥 손짓했다.

이샤트가 빠릿빠릿 달려왔다. 지금 저 악마 눈 밖에 났다간 하르벤타도 끝장이다.

“넵. 부르셨습니까.”

“……이브를 안고 멀리 떨어져라.”

“넵. 얼마큼 멀리 떨어질까요?”

“황궁 범위 밖.”

“……설마 황궁 폭삭…… 아니, 넵!”

분노하신 것도 알고 그 심정에 백분 공감하나 제발 황궁만큼은 좀 살려주십사 빌려던 이샤트는 냉큼 답하고 이벨리아를 받아 안은 채 호다닥 물러났다.

고개 들었다가 분노로 이성을 잃은 눈을 봤기 때문이다. 이벨리아가 이곳에 없었다면 벌써 주변을 초토화했을 터.

‘지금 황궁이 중요한 게 아니야.’

저 악마가 부디 자비를 베풀어 이 하르벤타 전체를 지워버리지 않길 바랄 뿐이지.

상황 파악이 빠른 이샤트는 황궁에 있던 소수의 인원을 빠르게 대피시켰다.

한편 자신의 참혹한 미래를 보고 얼이 빠져 있던 밧사고는 고개를 저었다.

죽는다고? 내가? 그렇게 처절한 비명을 지르면서?

그럴 리 없지. 암. 그럴 리 없어.

내 예언은 경우의 수에 따라 수도 없이 바뀌기도 하는 것이니까.

애써 정신을 다잡은 밧사고가 으르렁 이를 드러냈다.

“일족의 배신자.”

“…….”

“저것만 생포해갔으면 왕께서 나를 더욱 어여삐 여겨주셨을 텐데.”

밧사고의 도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가레스는 그저 이샤트에게 안겨 말을 타고 가는 이벨리아만 하염없이 눈으로 좇았다.

그리고 그가 최소한으로 좁힐 수 있는 기운 범위 바로 바깥으로 말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 쿠구구구궁.

단 한 번도 오롯이 쏟아낸 적 없던 아가레스의 기운이 황궁과 그 일대를 삽시간에 집어삼켰다. 정확히 이벨리아와 이샤트의 바로 뒤까지.

땅이 거칠게 흔들린다. 견고하던 하르벤타의 왕도(王都) 지반이 흡사 종이라도 된 것처럼 종으로 횡으로 갈라지고. 그 사이에서 끓어오르는 용암. 사이로 형체 희미한 것들의 얼굴이 우짖는다.

제2악마. 아가레스(Agares).

이명. 마계 동부의 지배자.

고유 권능…… 불명(不明).

하르벤타의 왕도를 갈가리 찢어내는 지진은 그가 가진 수많은 권능 중 하나일 뿐.

말 그대로 재해, 천재지변, 혹은 신벌.

그 외의 단어로는 설명할 길이 없는 절대적인 힘.

힘의 반경 내에 있던 하르벤타의 황궁이 마치 종잇조각처럼 부서져 내린다.

저 멀리에서 황제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미처 경계 밖으로 도망가지 못한 마족들은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갈라진 땅속으로 떨어져 절명했다.

믿을 수 없는 밀도로 신체 위에 쏟아지는 마기에, 밧사고 역시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아!”

나름대로 위명 있는 악마라고, 힘의 반경 내에 후들거리는 다리로나마 유일하게 서 있는 채였다.

진보랏빛 마기에 맞서 밧사고 특유의 노란빛 마기가 높게 일었다.

공간을 온통 잠식한 아가레스의 것과는 달리 벽을 세운 듯한 한정된 마기였으나, 객관적으로 보자면 실로 대단하긴 했다.

생명의 위협과 더불어 악마 특유의 호승심을 느낀 밧사고의 실눈이 번쩍 뜨였다.

“배신자! 악독한 은둔자!”

밧사고가 발발 떨리는 손으로 카드 더미를 허공에 띄웠다.

집어 던져올리는 것은 붉은 광대가 그려진 조커(JOKER).

이벨리아에게 던졌던 것과 같으나, 크기는 네 배 이상 팽창된 채였다.

“죽어! 죽어! 죽어!”

비명인지 저주인지. 광적인 고함과 함께 거대한 카드가 아가레스의 이마로 날아왔다. 가히 눈으로 좇기도 어려운 속도로.

- 콰앙!

아가레스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가 깊게 패였다. 반동으로 이는 흙먼지가 시야를 뿌옇게 물들였다.

인간은 물론이요, 악마조차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의 충격. 밧사고는 확신했다.

“아하하핫! 그걸 맞고도 멀쩡할 리가 없지!”

이 공격으로 죽었으리라 생각지는 않지만, 적어도 사지 중 어디 하나는 성치 못할 것이다.

“하하하핫! 내가 괜히 왕의 대리자가 아니라…… 케엑. 켁.”

믿을 수 없다는 듯 밧사고가 눈동자를 아래로 굴렸다.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목을 잡아들어 올린 우악스러운 손.

“케에엑.”

상대가 멀쩡해도 지나치게 멀쩡하다.

몸에 흙먼지 하나 묻지 않은 채, 그 모래폭풍 속에서 홀로 고고하게 서 있다.

아가레스가 허공에 대롱대롱 들린 밧사고의 눈을 차갑게 올려다봤다.

“너무 크게 짖었어. 하룻강아지가.”

게다가 감히 내 주인을 물었으니. 죽어도 싸지.

그가 가장 깊은 균열 앞으로 천천히 다가섰다.

닥칠 일을 직감한 밧사고가 발버둥 쳤으나, 올가미처럼 목을 죈 손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커헉. 후회할…… 텐데!”

“후회한다.”

“지금이라도…….”

“널 진작에 죽이지 못한 것에.”

“……컥. 컥. 심복인 날 죽이면 왕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을…….”

“너나 마왕이나 내겐 같다. 같잖지.”

그 오만함에 밧사고가 입을 찢어 웃었다. 입술 위를 칠한 붉은 색조가 볼까지 번져 더욱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끄륵. 동부의 지배자. 네 오만이 언젠가 너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진부하군.”

“아하하핫. 예언가의 예언이 가장 적중률이 높을 때가 언제인 줄 아나.”

“…….”

“바로 죽기 전이야. 지금처럼.”

“…….”

“보인다. 네놈이 소중한 것들을 모두 잃고 홀로 남아 억겁의 시간을 헤맬 미래가.”

가소롭다는 듯 웃은 아가레스가 밧사고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이내 금안에 떠오르는 알 수 없는 문양. 밧사고가 봄과 동시에…… 안구가 불에 타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밀어닥쳤다.

“크아아아아악!”

“쉬이. 시끄럽다.”

그가 한 손으로 밧사고의 얼굴을 덮었다.

그러자 지독하게 코끝을 찔러오던 혈향, 전장의 냄새가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밧사고가 황망히 더듬거렸다.

“으아아, 내, 내 코가……!”

삽시간에 시각과 후각을 잃어 공포에 질린 감정을 미처 다 표현하기도 전. 이번엔 혀가 베이는 듯한 고통과 함께 더는 제대로 언어를 구사할 수 없다.

“끄으으……!”

곧이어 몸 외부의 감각이 마치 어딘가로 유리된 것처럼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가레스가 밧사고의 얼굴에서 손을 뗐다.

마치 더러운 것을 만졌다는 듯 불꽃처럼 날름거리는 마기가 손을 한번 휩쓸고 지나갔다.

제대로 말을 뱉지 못하는 밧사고가 몸을 뒤틀며 애원했다.

외부 자극이 완전히 차단되니 외려 내부에서 이는 고통이 극심하게 다가왔다.

“끄윽, 끄으으…….”

죽일 거면 차라리 빠르고 편하게 죽여달라는 애원.

밧사고의 오감 중 네 개를 빼앗은 아가레스는, 유일하게 남겨둔 청각에 빌어 속삭였다.

“개의 주인을 건드렸으면 물릴 각오도 했어야지.”

“……으으.”

“마왕은 나와 내 주인의 손에 죽을 것이다.”

“끄아아아!”

“이참에 내가 왕이나 해볼까 하거든.”

아가레스가 균열 위로 팔을 길게 뻗었다. 바로 아래엔 시뻘겋게 혀를 날름거리는 용암이 흐른다. 그 열기를 느낀 밧사고가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그리되면 나는 마계를 내 주인께 바칠 테니.”

“끄어억! 끄억!”

“내 주인이 신이자 법인 세계가 되겠군.”

마왕과 마계를 숭배하는 밧사고에겐 더할 나위 없이 잔인한 선언이었다.

그렇게 사후(死後)의 미래까지 완전히 박살 낸 아가레스는 밧사고의 청각마저 끊어버렸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완벽한 암흑 속.

- 타악.

밧사고가 용암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가레스의 권능을 받아 영(靈)마저 집어삼키는 대지 아래의 화염.

“끄아아아아아!”

처절한 절규가 점점 작아지더니…….

“끄으…… 흐으…….”

이내 완전히 멎어 들었다.

제3악마. 예언의 귀공자. 마왕의 대리자.

그 화려한 위명치고는 참혹한 말로였다.

지배자의 세계이자 신을 건드린 대가로.

***

밧사고의 소멸을 확인한 아가레스는 저 멀리 바글바글 모여 있는 인간들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이상하다.

한 걸음 다가가면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 거리가 좁혀질 기미가 영 보이지 않는다.

설마 이브를 데리고 가려는 건방진 발상인가. 아가레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도망치는 거지.”

그러자 삐질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이샤트가 대표로 말했다.

“그, 그렇게 살기를 폴폴 풍기면서 오시면…….”

“뭐.”

“으아악! 공녀 여깄습니다!”

프렌드 쉴드!

자칫 잘못하다간 뵈는 거 없는 저 악마가 제국을 온통 땅속에 처박을지도 모른다!

이벨리아를 척 내밀자마자 한껏 치솟아 있던 악마의 살기가 단번에 가라앉았다.

아가레스가 이벨리아를 받아 안으며 물었다.

“이미 어의를 불러 치료했겠지.”

“그럼요.”

“뭐라던가.”

“타박상과 베인 상처가 꽤 심각……이 아니라…… 며칠 동안 절대 안정하면서 치료를 좀 해야 한다고 합니다.”

심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다시금 제국 하늘을 뒤덮는 마기에, 이샤트는 황급히 말을 바꿨다.

수장을 처리했음에도 아직 남아 있는 허공의 균열들. 이어지고 있는 국지전. 희미하게 들리는 비명과 창칼 부딪히는 소리.

소중한 친우가 그 모든 것을 잊었으면 하여, 아가레스는 그 어느 날의 설원에서처럼 이벨리아의 눈을 손으로 덮었다.

그러자 그의 손과 대비되어 핏기 없이 희게 질린 얼굴이 더욱 도드라진다.

말문이 막힌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건가. 악마는 절감했다.

“……왜 혼자 왔어.”

처음으로 그의 주인이 원망스러웠다.

“왜 이렇게 늦게 불러줬어…….”

하여 아가레스는 감히 서운함 한 자락을 내비쳤다.

“네가 이러면 내가…….”

자꾸 너를 사지로 몰아넣는 인간들을 증오하게 되잖아.

그 와중에도 이벨리아가 싫어할 못된 말은 차마 뱉지 못하고, 그는 그저 친우의 손을 들어 올려 입을 맞췄다.

날 불쌍히 여겨줘. 이렇게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뜨리지 말아줘. 그런 애원을 담아.

이벨리아의 손등 위에서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다른 거 안 바라. 네 시선과 발길이 모두 내게서 떠난대도, 나는 오로지 네 안위만을 빌 테니까.”

그때였다. 메마른 입술 사이로 희미한 답이 들려왔다.

“……너 아니면 누구에게 줘야 할지 몰라…….”

내 시선도. 발길도.

혼몽한 정신으로 이벨리아가 말했다. 그러니 내가 알게 될 때까진, 네가 다 가져도 좋아.

희미하게 눈을 뜨자, 여전히 흐릿한 시야로 걱정이 담뿍 담긴 금안이 아리게 박혀 든다.

“그때. 설산. 생각난다.”

“…….”

이벨리아가 힘겹게 손을 뻗어 친애하는 악마의 뺨을 쓸었다.

“그때도 네가 이렇게…… 구하러 왔었는데. 아가레스.”

악마는 애달프게 고개를 기울여 그 달가운 손길에 조금 더 다가갔다.

“넌 매시간 매초 나를 구하잖아. 이벨리아.”

감히 구원을 논하자면 네가 내게 준 것보다 숭고한 건 세계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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