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녀님의 꽃밭에는 그들이 산다-196화 (196/323)

##  196화: 나 이렇게 잘 컸는데

황제의 인가와 아르티나의 후원까지 얻게 되자, 이후 절차는 일사천리였다.

문화제 소식이 제국민들에게 퍼져나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뭐든 자극적으로 재생산해내는 제국민들의 입을 타자, 소문은 사실과 달리 제법 변질되어 있었다.

이번 문화제는 위대하신 황태자 전하와 기타 등등이 고안해내시고, 아르티나의 공녀님께서 내가 전액을 후원하겠다 하시며 황금 자루를 휙 내던지셨다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에드윈이나 세레스의 이름이 부각되는 일은 없었다.

황자와 데퐁트 후작 영애보다야, 황태자와 아르티나 공녀가 훨씬 맛있는 소문의 온상지였으니까.

모두 이벨리아의 의도대로였다.

***

그렇게 궁 안팎이 문화제로 한창 시끄러울 무렵.

소위 황태자의 오른팔로 알려져 있는 보좌관, 에르트 백작은 루드비히의 집무실에서 울상을 짓고 있었다.

산더미같이 쌓인 서류에 서명을 휘갈기던 루드비히가 흘끗 시선 들어 에르트 백작을 훑었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울상인가, 백작. 혹시 후작 영식이 또 그대에게 일을 미루고 도망이라도 갔나?”

“그건 하루 이틀도 아니라서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전하.”

“그러면.”

“일전에 제게 잠시 귀띔하셨던 문화제 말입니다. 그거 혹시 저 없이 진행하셨습니까?”

“내가 그대를 빼놓을 리가.”

그러자 백작의 안색이 대번에 환해졌다.

“역시 그렇지요? 전하께서 측근인 저를 빼놓고 이런 큰일을 진행하실 리가 없지요?”

“그렇다 치지. 한데 갑자기 그건 왜 묻나.”

“이번 문화제 기안서를 폐하께 올린 건 황자 전하인데. 귀족들과 제국민들 사이에서는 전하께서 고안하신 것으로 이야기가 퍼진 모양입니다.”

“……난데없이?”

“저도 그게 이상하기는 합니다. 분명 저 역시 달리 행동에 착수하지는 않았는데 말이죠.”

루드비히가 검지로 원목 책상을 느리게 두드렸다.

에드윈이 누구를 통해 엿들었든, 아니면 정말 우연히 그와 같은 아이디어를 냈든 그건 알 바 아니다.

어차피 멍청한 이복동생 따위는 큰 위협이 되지도 못했으니.

다만, 누가 에드윈이 간만에 쌓은 공적을 홀랑 뺏어 그의 입에 떠먹여 줬는지는 알고 싶긴 하다.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니 좋긴 한데.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하긴 하군.”

“황자 전하께서 아주 속이 뒤집어지시겠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모처럼 주목받을 기회라고 여겼을 텐데.”

영문을 알 수 없는 두 군신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무렵.

이크리안이 서류 뭉치를 안고 활기차게 들어섰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에르트 백작과는 달리, 잘 자고 잘 먹어서 반질반질한 낯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그 밝은 인사에 분노한 에르트 백작이 이크리안의 면전에 삿대질을 했다.

“좋은 아침은 무슨! 그대 왜 어제 내게 말도 안 하고 퇴근했는가!”

“업무시간이 끝나 퇴근을 한 것을 가지고 이리 화를 내시면…… 제국 노동청에 당장 이 악덕 상사를 고발해야겠군요.”

“그대의 일을 다 끝마치지 않고 갔으니 하는 소리지!”

“그러게 왜 제게 그리 많은 일을 시키셨습니까, 백작님.”

“뭐, 뭐?”

“업무시간 내에 끝낼 수 있는 양만 맡기셔야지요. 그게 안 되면 사람을 더 뽑으시든가.”

“저, 저, 저…….”

차기 마탑주. 차기 대마도사. 불세출의 천재.

그 잘난 능력으로 혓바닥만 강화했는지 도무지 한 마디를 지지 않는다.

황태자의 총애로 인해 한순간에 저런 뺀질이를 수하로 두게 된 에르트 백작이 목덜미를 잡았다.

“전하! 지금 보셨습니까, 이 하극상을!”

“…….”

“말이 나온 김에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요즘 영식이 일하는 태도가 아주 나무늘보 저리 가라입니다!”

에르트 백작의 분노를 보아하니 이건 좀 풀어줄 필요가 있겠다.

뛰어난 능력 덕에 대놓고 이크리안을 아끼기는 하나, 그 때문에 다른 수하들에게 불만이 생겨서는 곤란하다.

아예 시선 돌리고 휘휘 휘파람을 부는 보라색 여우를 일별하며, 루드비히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르트 백작.”

“예, 전하!”

“그대가 요즘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은 내 익히 들었네.”

“알아주시니 광영입니다, 전하.”

“역시 내가 믿을 사람은 그대밖에 없어.”

“……!”

찌잉. 감동한 표정으로 에르트 백작이 두 손을 모아 쥐었다.

“그대가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이들을 몇 더 선발하게.”

“예에? 정말이십니까?”

“그럼. 내 소중한 수하가 말라가는 꼴을 두고 볼 수야 없지.”

“하해와 같은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언하아-!”

거의 넙죽 엎드리다시피 한 에르트 백작이 눈물을 글썽이며 이크리안이 스윽 밀어둔 서류 뭉치를 냉큼 집어 들었다.

“그럼 저는 전하의 믿음이 되기 위해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저거 봐라. 루드비히가 고개를 저었다.

저 일만 잘하지 잔머리는 영 허술한 수하가 왜 매번 이크리안의 놀림감이 되는지 알 만도 하다.

에르트 백작이 나가고 집무실 문이 닫히자 이크리안이 빙글 웃었다.

“이게 웬 횡재이지요? 분명 서류 뭉치가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그대 계속 이런 식으로 할 텐가.”

“오늘은 제 잘못 없습니다. 방금 전하도 보셨지 않습니까. 백작님께서 제 서류를 냉큼 집어가 버리셨는데, 제가 뭘 어쩌겠습니까.”

“그대가 백작의 서류 더미에 섞어버렸잖아.”

“섞다니요. 그저 슬쩍 밀어둔 것을.”

“……이 여우를 진짜.”

“상관의 명에 따르지 않으면 혼이 나요, 혼이 나.”

그 상관의 명 따위 하루가 멀다 하고 귓등으로 흘려듣는 이크리안이 요요하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아. 그런데 전하. 그거 들으셨습니까?”

“후…… 뭐 말인가.”

“문화제의 기안자가 전하시라고 소문이 쫙 퍼졌던데요.”

“그렇지 않아도 그게 의문이야. 난 실행에 옮긴 적이 없는데.”

“그거 어떻게 된 일인지 제가 알아 왔습니다.”

솔깃한 루드비히가 서명하던 서류에서 눈을 떼고 이크리안을 바라봤다.

능글맞게 웃은 여우가 가벼운 목소리로 폭탄 같은 말을 내뱉었다.

“공녀님께서 소문내셨답니다.”

“이브가?”

“예에. 살롱에서요. 렐리안이 그러던데요.”

“갑자기 왜? 무슨 이유로?”

“이것 보십시오. 이런 정보도 척척 물어오는 제가 얼마나 유능한지. 서류 정도야 조금 농땡이를 쳐도…….”

“이크리안!”

“예. 예. 지금 막 말씀드리려 하고 있었습니다. 데퐁트 영애가 마치 문화제를 본인이 생각해 낸 것처럼 귀족들에게 제안했다고 합니다. 이미 황자 전하의 인가까지 받았다면서요.”

“데퐁트 영애가?”

“진실 여부는 차치하고, 공녀님께서는 그 모습이 영 꼴 보기 싫으셨던 모양입니다.”

“……설마.”

“어허 헛소리 집어치워라, 그건 황태자 전하께서 내게 한참 먼저 하셨던 말씀이고, 그러니 내가 전액을 후원하겠다, 선포하셨다고 합니다.”

“…….”

“그 결과로 전하께선 손 하나 안 대시고 성군 칭송을 받고 계시는 중이시고요.”

“그러니까, 이브가 에드윈과 데퐁트 영애의 공적을 날름 먹어치운 다음에 이쪽으로 퉤 뱉어줬다는 말이로군.”

누구의 아이디어가 먼저였든 간에, 어쨌든 기안서를 올리고 판을 깔아둔 것은 모두 에드윈과 세레스가 한 일인데.

어디 가서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고 있으니 그 둘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터다.

이크리안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가끔 보면, 사탄들도 공녀님 앞에선 엉엉 울고 가겠습니다.”

같은 편이라서 다행이지 원.

“전하. 행여라도 공녀님과 척질 생각은 하지도 마십시오.”

“안 해.”

“그러시다면 다행이고요.”

성년을 앞둔 아르티나의 공녀는, 불세출의 천재에게도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로 성장했다.

“제가 지략전엔 어지간히 자신 있는데, 공녀님만큼은 대적을 장담할 수 없거든요.”

그러자 루드비히가 픽 웃었다.

“그대야말로 이브를 상대로 이길 생각하지 마.”

나는 늘 이브에게 질 텐데, 내 수하인 그대가 감히 이기려 들어서야 곤란하지.

***

그리고 남의 공적을 홀랑 먹어치운 이벨리아는 그 대가로 상당한 고통을 받는 중이었다.

이바스 저택에서 검무를 시연한 뒤.

“크하하하하학! 땅콩 너 진짜 웃기다! 으하하하학!”

“시끄러워. 이 빌어먹을 사자.”

폭소하며 데굴데굴 구르는 마르바스의 등을 콱 밟아버린 이벨리아가 머리를 쓸어올렸다.

“토끼야. 너도 혹시 문화제에 참가할 거야?”

“크흡. 아니.”

“너 설마 지금 웃어?”

“큭큭. 아니.”

“…….”

세상에 내 편은 없어.

“……왜 참가 안 하는데, 토끼는?”

여전히 입꼬리에 웃음을 매단 채, 아가레스가 답했다.

“예술.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거라며.”

“응. 토끼는 잘할 것 같은데.”

“아니. 난 못 해.”

“토끼도 나처럼 예술 밑바닥 인생이야?”

“글쎄. 그보단, 내게 이 세상에 아름다운 건 단 하나밖에 없거든.”

감히 그걸 구현할 순 없으니, 예술은 무의미하지.

똑바로 닿아오는 눈.

아무리 눈치 없는 이벨리아라도 아가레스가 뭘 의미하는지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부끄러워 고개 돌린 이벨리아는 괜히 잔디 악마를 밟은 발에 꾸욱 힘을 주었다.

“끄아아악! 이 무도한 땅콩이!”

“시, 시끄러워!”

“엥? 땅콩. 너 얼굴이 왜 빨가냐?”

“안 빨개!”

“빨간데. 저리 좀 비켜봐라. 열나냐?”

“안 나!”

“그럼 뭐냐. 뒤늦게 네 검무가 얼마나 수치스러운 행위였는지 느끼기라도 했어?”

“…….”

호다닥.

도망치는 이벨리아의 뒤에 졸졸 따라붙으며 마르바스가 깐족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가레스의 손속 없는 마기에 맞고 널브러졌지만.

***

문화제 참가의 열기는 제법 뜨거웠다.

웬만한 가문의 영애와 영식은 거의 다 참가를 신청할 정도로.

이미 뒤집을 수 없는 우열이 정해진 사교계.

혼인 적령기의 귀족가 자제들이 특별히 본인들의 태를 뽐내고 가치를 올릴 기회는 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여 황궁에서 작은 연회 겸 준비한 문화제의 사전 이벤트, 종목 추첨에도 예상외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미리 공지된 대로, 종목은 다섯.

글을 뜻하는 명작(名作),

그림을 뜻하는 명화(名畫),

노래를 뜻하는 명창(名唱),

악기를 뜻하는 명률(明律),

검무를 뜻하는 화무(花舞).

기실 모두 귀족들의 기본 소양이었기에, 어느 것을 뽑으나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하여 추첨을 위해 모인 이들은 흔치 않은 황실 연회를 넋 놓고 구경 중이었다.

오직 한 명.

예술 재능이 바닥을 기는 이벨리아만 빼고.

나이 지긋한 시종이 들고 있는 검은 상자가 저승사자나 다름없이 보였다.

점점 순서가 다가올수록 등줄기가 오싹했다.

‘큰일이다. 큰일이야.’

한번 참가하겠다고 해놓고 그걸 번복설 수도 없고.

‘내가 진짜로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니……!’

차라리 어디 돌발 균열이라도 안 벌어지나?

잽싸게 참전을 선포하고 뛰쳐나갈 용의도 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글이나 그림이 걸리는 게 나아. 하나의 작품만 죽어라 연습해서 외운 다음 그대로 베끼면 그럭저럭…….’

“아. 명작과 명화는 당일 주제를 정해 공표할 예정입니다. 설마 하나만 죽어라 연습하고자 하셨던 분은 없을 테니 큰 의미는 없겠지만요.”

“…….”

망할.

그렇다면 글과 그림은 절대 뽑으면 안 된다.

투명드래곤 크와앙 또는 눈사람의 악몽을 만인 앞에서 다시 겪을 순 없다.

어느덧 다른 귀족들의 종목 추첨이 얼추 끝나고.

분위기를 보아하니 남은 이는 단둘뿐인 모양이다.

미리 시종을 매수해둔 세레스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공녀님께서 먼저 뽑아주시지요.”

“그러지.”

애써 위엄 있는 척한 이벨리아의 손이 상자 속으로 들어가고.

글. 그림만은 안 돼. 글 그림만은 안 돼.

그 간절한 바람과 함께 딸려 나온 하나의 종이.

천천히 펴보니 쓰여 있는 종목은…….

젠장! 이벨리아가 와작 쪽지를 구겼다.

바로 다음으로 마지막 남은 쪽지를 손에 쥔 세레스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것 참. 공녀님과 같은 분야에서 재능을 뽐낼 수 있다니, 영광이네요.”

자랑하듯 내보이는 쪽지에는 이벨리아의 것과 같은 종목이 적혀 있었다.

[명화(名畫)]

***

문화제 개최까지는 불과 이레가 남았다.

모처럼의 대행사, 그것도 생계 회복의 기회가 되는 행사에 들뜬 제국민들은 제각기 아름다운 선율을 자아내고, 풍경을 화폭에 담았으며, 소설을 집필하거나 멋들어진 검무를 시연하기도 했다.

문화제의 2부는 귀족 나리들께 본인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판매하는 시간.

만든 예술품의 판권이나 저작권, 혹은 작품 자체를 비싼 값에 판매한다면 몇 해는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을 터다.

그렇게 온 제국이 들썩이는 분위기.

데퐁트 후작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후작저 내에 각종 그림을 그려 널어두던 세레스는 몰려든 기사들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내 그림이 보기 좋으냐?”

“예, 예. 아가씨.”

“천상의 화폭이라고 하더라도 감히 이와 같겠습니까.”

진심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세레스는 예술 실력만큼은 제법 발군이었고, 특히 그림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모든 것이 세레스를 황후로 만들겠다는 전대 후작의 혹독한 교육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본인의 실력이 꽤 뛰어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세레스는 자신과 공녀가 모두 [명화] 종목을 뽑을 수 있도록 미리 물밑작업을 해두었었다.

제대로 망신을 주기 위해서.

‘아주 재밌는 그림이 펼쳐지겠어.’

세레스가 차게 입꼬리를 올렸다.

공녀가 예술에 문외한이라는 것은 귀족 사회에선 제법 유명하다.

그럴 법도 했다.

아르티나는 교양보다는 생존을 먼저 가르쳤고, 권리보다는 의무를 먼저 배우게 했으며, 글과 그림보다는 검술과 창술을 먼저 익히게 했으니까.

‘제국 수호? 요즘 세상에 그딴 거 누가 알아준다고.’

세레스는 그것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허례허식 없이도 그 자체로 고고하다는 식의 자부심 같아서.

‘이번 기회에 아주 뼈저리게 보여주지.’

자신들만의 꽃밭에 빠져 사는 게 다는 아니라는 것을.

때로 다른 이들의 시선이 곧 고귀함을 결정하기도 한다는 것을.

양피지 위에 붓을 내리그으며, 세레스는 확신했다.

이번 문화제에서만큼은- 자신이 승자가 될 것을.

***

그리고 문화제 개최 당일.

장소는 수도 내 가장 넓은 광장이었다.

초겨울 특유의 향이 나는 공기. 쨍하게 청명한 하늘.

그 아래로 황가를 비롯한 각 가문의 깃발이 높게 휘날렸다.

가히 황실과 아르티나에서 주관하는 행사다운 위용이었다.

한편 장소가 아무리 광활하다 한들 가용할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

지정석이 있는 귀족들과는 달리, 제국민들은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꼭두새벽부터 줄을 섰다.

제법 추운 날씨에 하얀 입김을 뿜으며 손을 비비고 담요를 여미기 일쑤.

황금 용의 문양이 대문짝만 하게 찍힌 마차를 타고 광장 내로 진입하다가 그 광경을 본 이벨리아는 마부에게 일러 마차를 세웠다.

“아가씨?”

“잠깐 내릴게, 카론.”

혹시 불상사라도 생길까, 카론을 비롯한 아르티나 기사단이 마차 주변을 삼엄하게 둘러쌌다.

급작스러운 정지에 깜짝 놀란 제국민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마차를 응시했다.

이내 기사들의 호위 속에 마차 밖으로 나온 이벨리아.

흩날리는 황금빛 머리칼에 제국민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공녀님……!”

“공녀님!”

이벨리아의 눈이 추위에 발개진 제국민들의 볼과 손을 천천히 훑었다.

“춥지.”

묻자 모두가 고개를 젓는다.

“안 춥습니다, 공녀님.”

“배곯는 게 진정 추운 것이지요. 이리 큰 행사로 살길을 마련해주셨는데 추울 겨를이 있겠습니까.”

“그보다 어서 따뜻한 곳에 들어가시지요. 바람이 많이 찹니다.”

“감기에라도 걸리시면 어쩌시려고……!”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걱정 어린 말투에 이벨리아가 픽 웃었다.

“그대들에게는 내가 아직도 어린아이로 보이나 봐.”

- 딱.

엄지와 중지를 마주쳐 소리를 냄과 동시.

계약자의 의지를 받은 불의 하급 정령들이 광장 안팎을 가득 수놓았다.

원한다면 계절마저 거스르는 대정령사의 능력.

온 제국이 겨울이나, 광장만큼은 때아닌 훈풍이 불었다.

경악하여 바라보는 제국민들을 향해 이벨리아가 씩 웃었다.

“나 이렇게 잘 컸는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