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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꽃밭에는 그들이 산다-192화 (192/323)

##  192화: 왜 그렇게 예쁜 거야

“에이, 퉤. 입에서 흙 맛이 나.”

“나도.”

공작저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오며, 이벨리아와 엔리르는 입가를 문질렀다.

깊은 산맥으로 들어갔다가, 동굴을 뒤적이다가, 팻말을 박았다가.

도무지 말끔하게 돌아올 수가 없었다.

“토끼랑 용이랑 비밀기지에서 놀다 오겠다고 했는데.”

꼴이 이러니 어디서 드잡이라도 하고 온 줄 알겠다.

어쩔 수 없지. 티 나지 않게 조용히 몰래 들어가는 수밖에.

고개를 끄덕인 남매는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저택 문 앞에 다다랐다.

- 끼이익.

조심스럽게 문을 열면서 눈치를 보는데.

‘하필!’

목청으로 따지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헤롤드와 눈이 딱 마주쳤다.

‘훠이, 훠이, 저리 가라 멍멍아!’

그 다급한 마음 속 외침에도 불구하고, 짙은 밤색 눈이 이벨리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천천히 훑어내렸다.

산발이 된 머리. 진흙이 묻은 볼. 끝단이 심히 더러워진 드레스. 손목 안쪽에 긁힌 듯 붉게 남은 흔적…….

입이 움찔 움직이는 것이 당장이라도 사이렌을 울릴 듯하여, 이벨리아가 다급히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댔다.

“헤롤드. 쉬잇. 쉬이잇.”

“으아니! 아가씨!”

“……바랄 걸 바라야지, 내가.”

“누가 우리 아가씨를 바닥에 굴렸다!”

조금 더러워졌을 뿐인데 마치 세상이라도 뒤집힌 것처럼 빽 소리 지르는 충실한…… 기사.

곰을 삶아 먹은 듯한 목소리가 쩌렁- 쩌렁- 울렸다.

그 소리를 들은 아르티나 기사단이 삽시간에 와글와글 모여들었다.

‘반응속도 뭐야……'

“헤엑, 아가씨!”

“아가씨가 오염되셨다!”

“아주 꼬질꼬질.”

“아가씨를 바닥에 굴린 이가 누굽니까?”

“……대충 모험가의 훈장 정도로 생각해줘.”

입만 뚫리고 귀는 막고 사는 아르티나 기사단.

이벨리아의 항변 따위 들을 생각도 없는 그들은 엔리르의 꼬리를 휙 들어 올렸다.

“새끼 여우도 더럽다!”

“빨래통에 집어넣어!”

“욕조 아니고?”

“털이잖아. 털은 빨래지.”

“너도 털 많은데 그럼 앞으로 넌 빨래냐.”

자신의 본질이 흠결 없는 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엔리르는, 평소보다 배로 당당하게 날개를 쭉 펴고 외쳤다.

“나는 용이다! 빌어먹을 미친개들!”

물론 빨래통으로 달랑달랑 들려가는 중이라.

“놔라아! 브레스를 뿜을 테다!”

……위엄은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

다음날 오전.

방 발코니에 앉아 있던 이벨리아는 들려오는 소란에 아래를 내려다봤다.

“나랑 활쏘기 대결할 사람.”

“상품은 뭐냐.”

“상품? 아가씨의 다음 외출 호위권.”

“나 한다.”

“나도.”

“두말하기 없기다.”

“이긴 사람 목을 뚫어 상품 뺏는 것도 가능?”

“가능.”

생각할 것이 많아서 그런가. 공작저에서는 일상인 기사단의 요란함이 오늘따라 약간 번잡스럽게 느껴졌다.

"왜 내 호위권을 가지고 저것들이 난리야."

우르르, 기사들이 연무장 쪽으로 몰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이벨리아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금제탑이고 감자탑이고 그것들이 어디 있는 줄을 알아야 잡아서 때리든 매달든 할 텐데.’

얘기는 많이 들었으나 그놈들이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는 통 알 수가 없다.

‘인마전쟁 때 데퐁트 후작이 금제탑을 불태운 이후 마땅한 거점도 없는 것 같고…….’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을까.

‘카밀라한테 제대로 좀 캐보라고 시킬까?’

양피지에 카밀라 이름을 적은 이벨리아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지웠다.

'어렵겠지.'

카밀라의 정보 수집 능력이 특출나다고는 하나, 상대는 아르티나의 정보부가 수년을 쫓아도 흔적 발견이 어려웠던 금제탑이다.

섣불리 꼬리를 밟으러 다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할 위험도 있고.

‘세레스를 잡아서 확 조져버려?’

자기 아빠가 금제탑 소속 연금술사였으니 소재 정도는 파악하고 있지 않을까.

‘아냐. 걔는 머리가 텅텅 비어서 아무것도 모를 가능성이 커.’

그럼 누구를 이용하면 좋을까…….

여러 이름이 양피지에 쓰였다 지워지길 한참.

- 똑. 똑.

정갈한 노크 소리에 이벨리아는 깃펜을 내려두었다.

“들어와, 카론.”

“항상 귀신같이 잘도 맞히십니다, 아가씨.”

“내 방문을 그렇게 노크할 사람은 카론밖에 없어.”

다들 발코니로 쳐들어오거나 딱따구리처럼 노크하거나 해서.

“무슨 일이야? 우리 미친개들이 누구 목을 뚫어버렸어?”

“그걸 어떻게…… 아니, 그런 말이 오가긴 했으나 아직은 아닙니다.”

“그러면?”

“일전에 아가씨께서 어떤 소년을 구해주셨다던 그 정보 길드…….”

“파라반트?”

“예. 그 길드, 깃발 색이 바뀌었습니다.”

“무슨 색으로?”

“붉은색입니다.”

이샤트와 외형 변경 마도구를 사용하고 파라반트를 방문했던 날. 뒷골목에서 맞던 거지 소년을 되새기며 이벨리아가 씩 웃었다.

“6년. 생각보단 빠르게 장악했네.”

“바로 가시겠습니까?”

“응. 푸른 깃발이 붉게 변하는 날. 첫 고객이 되어주겠다 약속했거든.”

일이 풀리려니 이렇게도 풀리는구나.

“그리고 걔는 단 한 번, 어떤 정보든 구해다 준다고 했고.”

이벨리아는 후드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랍 속에 잘 보관해두었던 투박한 청동 펜던트도 손에 들고.

“자. 봉 잡으러 가볼까.”

***

금제탑. 연금술사. 악마.

주제가 이것들이라면 더는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이벨리아는 호위로 카론을 데려감과 동시에, 아가레스와 엔리르를 불러 함께 파라반트로 향했다.

얻은 정보는 안에 꼭꼭 감추고 한 톨이라도 흘리지 않겠다는 듯, 실로 철옹성 같은 담장.

들어선 이벨리아가 가장 앞에 앉은 정보 교환원에게 말했다.

“얼마 전에 마스터가 바뀌었다지.”

“……길드 내부 사정은 기밀입니다.”

“기밀은 무슨 기밀. 깃발을 떡하니 바꿔놓고선.”

“용건이 없으시다면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용건 있어. 여기 마스터 좀 불러봐.”

흡사 ‘이 가게 사장 나오라고 해!’에 비견될 막무가내.

하급 정보 교환원은 냅다 마스터를 찾는 이를 향해 경계 어린 시선을 보냈다.

“아니, 이거 봐, 목걸이. 너희 마스터가 이거 들고 찾아오라고 했다고.”

설마 정말 뭔가 있나 싶어 유심히 살폈건만, 줘도 안 가질 쓰레기 같은 펜던트다.

제대로 미친 사람이 분명하다.

“가드! 여기 거동수상자가 있다!”

“어어?”

***

“쫓겨났다…….”

과거 거지 소년을 도왔던 바로 그 골목.

이벨리아가 서럽게 쪼그려 앉았다.

“나를 이렇게 대한 길드는 네가 처음이야…….”

“마스터 된 날에 길드 무너지는 꼴을 봐야, 아, 귀빈 대접은 제대로 해야 하는구나, 배우겠지.”

“내가 할래. 브레스.”

엔리르의 입에 일렁이는 청염이 모이기 시작하자, 이벨리아가 용의 주둥이를 한 손으로 꾹 눌러 닫았다.

“안 돼. 이 길드에서 뽑아먹을 건 다 뽑아먹은 다음에 무너뜨려.”

“뽑아먹으려면 일단 입장이 가능해야 할 텐데.”

“고가의 정보를 판다고 해서 상층부로 올라가면 무슨 수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에엥. 그건 귀찮아. 그냥 이렇게 하자.”

뾰족한 수가 있는 듯한 당당함에 아가레스와 엔리르, 카론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벨리아는 마침 옆에 고여 있는 빗물 위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사르르 모인 물이 신속하게 형태를 갖추고.

이내 나타난 것은…… 창.

“너 설마…….”

“아가씨…….”

“누나……?”

응? 왜? 해사하게 웃은 이벨리아는.

그 험상궂게 생긴 창끝에 펜던트를 매달아.

- 쐐애애액.

냅다 파라반트의 최상층, 마스터의 방으로 던져버렸다.

- 콰아아앙.

무려 대정령사의 힘. 무식하기 짝이 없는 파괴력이다.

이벨리아가 뿌듯하게 웃으며 손으로 브이를 그렸다.

“어때. 이러면 펜던트를 보고 튀어나오겠지!”

“……죽었을 것 같은데.”

“이 길드 씹어먹고 깃발 바꿀 정도면 안 죽었을 거야.”

다른 피해 없이 오로지 최상층 마스터의 방만 휑하게 뚫린 건물.

정보 길드에 대한 테러라고 오인한 고객들이 우르르 도망치고, 가드들도 길드 안팎으로 경계를 높이던 와중.

값비싸 보이는 창 하나가 뻥 뚫린 최상층에서부터 이벨리아 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감히 근처에 닿기도 전에 잡아챈 카론이 창끝에 달린 쪽지를 빼서 건넸다.

「괴팍하긴……. 올라와라. 일러둘 테니.」

“역시 아가씨께선 항상 옳으십니다. 들어가실까요.”

“아니. 계단 오르기 귀찮아.”

“그러면…….”

뭘 되묻냐는 듯 이벨리아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날아가자!”

“……정보 길드 마스터에게 아가씨의 정체를 이렇게 막 드러내도 되겠습니까.”

“이미 눈치챘을걸. 이 대륙에 물로 만든 창을 날릴 수 있는 게 나 말고 누가 또 있겠어.”

그리고 이 정도 정보 길드가 내 정체 하나 뒷조사하지 않을 리도 없고.

어차피 들킬 정보라면, 자의로 제공해 생색을 내고 협업을 염두에 두는 것이 낫다.

이벨리아는 망설임 없이 정령을 불렀다.

“실프 넷.”

[실프! 실프! 실프! 실프!]

얇은 날개를 파닥이는 바람의 정령들이 계약자의 의지에 따라 이벨리아와 카론, 엔리르의 어깨에 하나씩 걸터앉았다.

그리고 덩그러니 남은 실프 하나.

“너는 토끼 위에 좀 앉아줘.”

[……싫어.]

“왜?”

[무서워. 악마 무서워.]

“널 해치지 않을 건데도?”

[얼굴만 봐도 무서워.]

“너 보는 눈 없다. 우리 토끼 세상에서 가장 잘생겼는데.”

[……아냐.]

“토끼야, 너무 속상해하지…… 아니, 기뻐 보이네?"

얼굴만 봐도 무섭다는 실프의 말이 그렇게 기분이 좋았나.

심지어 옅게 웃고 있기까지 하다.

“이브. 나는 알아서 올…….”

“그럼 실프가 나를 들고, 내가 아스 손을 잡으면……. 응? 토끼 뭐라고?”

“나는 알아서 네 손을 잘 잡고 있겠다고.”

그 말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닌 것 같은데.

미심쩍은 눈초리에도 여우 같은 악마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게 어떤 기회인데.’

그렇게 바람의 힘을 빌린 일행의 얼굴이 최상층에 빼꼼 빼꼼 떠오르자.

지붕과 벽면이 죄다 날아가 버린 방 중앙 가죽 의자에 오만하게 걸터앉은 청년이 하, 헛웃음을 지었다.

“뭐 하나 예상대로 따라주질 않는군.”

***

방만하게 등을 기댄 채, 양 팔걸이에 팔꿈치를 대고 손은 앞으로 모아 깍지를 낀 자세.

가히 일국의 군주와 같은 거만함이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정보가 패권과 목숨을 좌우하는 난세, 세계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 일컬어지는 길드의 수장이라면 왕에 빗대도 과하진 않을 것이니.

이벨리아는 거래 상대방을 찬찬히 살폈다.

‘옛날에 맞던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네.’

그때는 바짝 독기 오른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마치 세파(世波) 위를 쉽게 타고 넘는 이처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다갈색 머리칼 아래…… 왼쪽 눈을 감싼 안대?

이벨리아가 기겁했다.

“히익. 호, 혹시 눈이…….”

“아프네.”

“내가 날린 창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면. 가책이라도 좀 느끼나?”

정점의 정보 길드. 파라반트의 새로운 마스터가 능글맞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론과 엇비슷한 키. 이벨리아는 한참 고개를 꺾었다.

“너와 내가 만났던 건 분명 6년 전이었지.”

“맞아.”

“신기하군. 넌 그때나 지금이나 자라질 않았어.”

“많이 자랐는데? 너 눈에 문제 있…… 아, 미안.”

이벨리아의 시선이 다시 한번 안대에 닿았다.

뻔뻔하게 부수고 쳐들어온 주제에 대수롭지 않은 대목에서 예의를 갖추는 침입자.

코웃음 치며, 그가 이벨리아의 후드 위로 손바닥을 아슬아슬하게 걸쳤다.

“아닌데. 그때도 이만했는데.”

“아. 아아.”

맞다. 나 그때 이샤트랑 외형 변경 마도구를 썼었지.

자라질 않았다는 말에 이성이 끊겨 잠시 잊었다.

다 사정이 있다며 대충 둘러댄 이벨리아는 마스터의 가죽 의자로 조르르 걸어가 앉았다.

“오. 가죽 좋고. 경치 좋고.”

“……경치야 좋겠지. 네가 지붕을 날려버렸는데.”

“결국 이 자리를 차지했네.”

“네 도움이 컸지.”

“알고 있으니 다행이야.”

“넌 겸양을 모르나?”

어깨를 으쓱인 이벨리아가 가죽 의자에 몸을 더 파묻었다.

“뭐. 네 은혜 덕에 나와 여동생이 산 건 부정할 수가 없지. 약속했던 대로 1회에 한해 어떤 정보든 대가 없이 가져다 바치겠다.”

그 말에 이벨리아가 후드를 벗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공식적으로 신분을 밝히겠다는 뜻.

잠시 굳은 채로 침을 삼키던 마스터가 퍼뜩 정신 차리고 물었다.

“……원하는 정보는?”

“금제탑.”

“범위는?”

“소속 연금술사. 거주 지역. 거점. 능력. 자금줄. 동맹. 역사. 관련 실험.”

“……너 양아치냐.”

“둘째가라면 서럽지.”

“그 정보 하나하나가 얼마나 비싼 줄은 알아?”

“아무리 비싸 봐야 너와 네 동생의 목숨 값보단 쌀 텐데.”

“……말은 잘하네.”

“말도 잘하는 거야.”

“한 마디를 안 져.”

“나름대로 지고 있는 게 많아서.”

마스터가 픽 웃었다.

6년 전과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달라졌다 싶었더니.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무겁고 진중하다.

말 그대로 짊어진 것이 많은 이처럼.

“이봐. 아르티나의 공녀.”

“그렇게 부를 거면 말 높여. 네가 낮춰 부를 지위가 아니야.”

“본명을 부르면 말 편히 해도 되나?”

“좋을 대로 해. 파라반트의 마스터라면 일국의 왕이나 다름없으니까.”

“좋아. 이벨리아. 금제탑에 한해서, 네가 원하는 정보는 뭐든 구해보도록 하지.”

예상외라는 듯, 이벨리아가 슬쩍 눈썹을 올렸다.

‘마구잡이로 던졌다가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협상하려고 했는데.’

덥석 전부 물어버린다고?

‘이 마스터 사실 굉장한 호구인가?’

“호구 아니고.”

“아니, 내 생각을 어떻게 알았지. 그러면 왜?”

“별 이유 없는데.”

“대가 없는 친절은 안 믿어.”

굳이 이유가 필요하시다면야.

마스터가 씩 웃으며 가볍게 말했다.

“그냥 마음에 들어서라고 해둘까.”

***

봉 잡았다고 외친 이벨리아가 길드를 무너뜨릴 것처럼 구는 아가레스를 달래 돌아간 이후.

파라반트의 마스터는 벽면이 날아간 최상층 끄트머리에 서서 한탄했다.

“내가 미쳤지.”

정신줄을 놓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 정보를 어떻게 다 구하나."

그 양아치가 요청한 정보라면 파라반트 정보원의 90%가 매달려야 하는 수준이다.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펜던트와 함께 날아든 창을 보고, 6년 전 자신을 구해준 이가 아르티나의 공녀라는 사실쯤은 곧바로 알아챘다.

공녀라면 거래 상대자로 손색없으니 적당히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할 생각이었는데.

“홀랑 부당 계약을 맺어버렸네.”

청년은 자잘한 상처가 뒤덮인 손으로 수려한 얼굴을 쓸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 생각해보면 이유는 직관적이었다.

공녀가 후드를 벗었을 때 드러났던 벌꿀 같은 머리색.

고고하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

맑고 힘 있는 목소리.

공간을 지배하는 당찬 태도.

“예뻤지…….”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무슨 사람이 그렇게 생겼냐.”

제대로 꽃피우기 시작한 미모에 홀린 ‘호구 1’이라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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