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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 7년 만의 축복제 (154/323)

154화: 7년 만의 축복제202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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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드비히와 아가레스, 엔리르와 함께 축복제를 갈 수 있도록 허락받는 과정은 빈말로라도 쉬웠다고 할 수는 없었다. 넘어야 할 산으로 아르티나 기사단, 오라버니들, 아빠, 엄마가 있었으니까. 동정심 호소와 협박이 먹히지 않자, 이벨리아는 난생처음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16549762008218.jpg“아가. 밥 안 먹어?”

16549762008222.jpg“허락해주지 않으면 난 평생 안 먹어!”

그렇게 아침과 점심이 지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가족들의 미간에 점점 우려가 들어찼다. 한 시간도 못 버틸 줄 알았는데 무려 두 끼나 거르다니. 우리 아가 한 끼라도 굶으면 배가 아프다며 슬퍼하는데. 우리 아가 키 무럭무럭 크려면 잘 먹어야 하는데. 그 자비 없는 투쟁에, 휴고는 끝내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한숨 같은 허락을 내뱉었다.

16549762008225.jpg“좋다. 다녀오거라.”

16549762008222.jpg“세토! 나 고기! 잔뜩! 코끼리만큼!”

목표를 달성한 이벨리아가 단번에 소리 높여 고기를 외쳤다. 단식하는 시간 동안 몰래 이벨리아에게 주먹밥을 뭉쳐 날라다 주던 엔리르도 기쁘게 날개를 파닥였다. 훌륭한 협업을 이뤄낸 용과 인간, 소위 말해 범(汎)종족 사기단이 테이블 아래에서 짝, 하이파이브했다. *** 축복제 당일, 이른 오후. 루드비히와 아가레스는 약속 시간 한참 전부터 공작저 응접실로 들어섰다. 둘 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마음은 같았다.

16549762008233.jpg‘기대돼.’

즉, 도무지 황궁과 마계에서 약속 시간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어 새벽부터 동동거리다가 끝내 달려온 것이었다. 몸이 들떠서. 그러나 주변을 둘러본 아가레스와 루드비히가 마주한 것은, 어린 친구의 환영 대신 찌르는 듯한 몇 쌍의 시선. 마치 적이 공작저에 쳐들어온 것처럼 아르티나 기사단과 휴고, 엘리시아, 아르칸, 세드릭 모두 응접실에 전투태세로 서 있었다. 심지어 검까지 차고.

16549762008237.jpg“눈빛이 아주 따가운데.”

16549762008241.jpg“한 판 하자는 눈이군.”

16549762008237.jpg“……내가 혹시 반역의 현장에 들어온 건가.”

16549762008241.jpg“기분 나쁘게 쳐다보지 말고 덤벼.”

휴고가 검집을 매만지며 물었다. 마치 수문장처럼.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 태세였다.

16549762008225.jpg“누가 감히 우리 아가에게 축복제를 가자고 권했나.”

16549762008241.jpg“꼬맹이가.”

16549762008225.jpg“…….”

저 삿된 것들이 어린 딸을 살살 꾀어낸 줄 알았더니. 딸이 먼저 가자고 권했다면 이를 물고 늘어질 수는 없다. 휴고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16549762008225.jpg“나가서 뭘 할 생각이지.”

16549762008241.jpg“이브가 원하는 것. 위험하지 않게.”

휴고가 슬쩍 눈썹을 들어 올렸다. 뭐지. 모범 답안을 준비해 온 건가.

16549762008225.jpg“언제 귀가할 예정인가.”

16549762008241.jpg“이브는 일찍 자야 하니까 11시 이전.”

16549762008225.jpg“혹시 내 딸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16549762008241.jpg“내 시선은 항상 이브를 향해 있다.”

16549762008225.jpg“혹시 위생이 철저하지 않은 불량식품을 먹고 싶다고 하면…….”

16549762008241.jpg“딱 하나까지만. 그 이후로는 잘 달래도록 하지.”

드물게 휴고의 말문이 막혔다. 악마 주제에 무슨 대답이 이렇게 바람직하단 말인가.

16549762008225.jpg“혹시 내 딸이 털끝 하나라도 다쳐서 돌아오는 날엔…….”

16549762008241.jpg“내 목을 내놓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휴고가 엘리시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16549762008225.jpg“부인. 뭐라고 말 좀 해보시오.”

그러자 엘리시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1654976206607.jpg“왜요, 좋은데요. 우리 아가가 안전 걱정 없이 신나게 놀다 돌아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이브의 충견 같은 저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어요.”

아가레스가 파닥파닥 날아다니는 엔리르를 잡아채며 되읊었다.

16549762008241.jpg“충견이라니.”

1654976206607.jpg“아. 실례. 대악마를 앞에 두고 하기엔 너무 무례한 말…….”

16549762008241.jpg“날 아주 잘 파악하고 있군.”

1654976206607.jpg“……?”

하늘을 찌르는 저 자존심에, 충신도 아니고. 충심도 아니고. 충견이라고 순순히 인정하다니. 실수로 뱉은 말을 흔쾌히 인정하는 것도 모자라 어딘지 기뻐 보이기까지 하다.

1654976206607.jpg‘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아가와 악마가 진정 사역마 계약을 맺은 건가……?’

엘리시아가 혼란에 빠진 사이.

16549762008222.jpg“나 왔다!”

어두운색 후드를 뒤집어쓴 이벨리아가 폴짝 뛰어 내려왔다. 계단 다섯 칸을 앞두고 그냥 뛰어내려 버리는 성급함에, 응접실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손이 움찔거렸다.

16549762008222.jpg“가자! 축복제! 용돈도 이렇게 잔뜩 챙겼지!”

빨리 나가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는 여동생의 후드를 여며주며, 세드릭이 신신당부했다.

16549762094198.jpg“이브. 길거리에 불쌍한 아이들이 있다고 해서 금화를 와르르 쏟으면 안 돼. 목마른 아이가 있다고 해서 운디네를 불러내 물을 줘도 안 되고.”

16549762008222.jpg“그런 짓을 왜 해? 오라버니 바보야?”

16549762094198.jpg“네가 다…… 아니야, 됐다. 이제라도 그게 바보짓인 걸 알았으면 됐어. 우리 동생 많이 컸다.”

16549762008222.jpg“……?”

전부 이벨리아가 과거 축복제에서 자행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 엘리시아가 진하게 미소를 띠며 딸과 눈을 맞췄다.

1654976206607.jpg“자. 아가. 배운 건 복습하고 나가야지.”

16549762008222.jpg“네!”

1654976206607.jpg“공작저 바깥에서 마족이 나타나면 어떻게 하라고 했지?”

16549762008222.jpg“엘라임을 불러서 없애버려.”

1654976206607.jpg“누가 함께 밥을 먹자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하지?”

16549762008222.jpg“너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 앙?”

1654976206607.jpg“옳지. 누가 이브를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면?”

16549762008222.jpg“아빠! 엄마! 오라버니! 토끼야! 식량 도둑! 요옹! 엘라임! 미친 멍멍이!”

1654976206607.jpg“그렇지. 크게 부르면 누군가는 바로 달려갈 거란다.”

휴고와 아르칸, 세드릭을 비롯한 아르티나 기사단은 생각했다. 이거 데자뷔인가……?

16549762121838.jpg“마님과 아기씨의 이 대화를 7년 전에도 들었던 거 같은데. 아기씨 축복제 가시기 전에.”

16549762121842.jpg“그땐 대답이 참으로 하찮으셨는데.”

16549762121846.jpg“지금도 내용만 무시무시하지 몸집과 표정은 하찮으신데.”

16549762121838.jpg“참 바람직하게 자라셨어, 우리 아기씨.”

역시 대륙 제일 무가의 주인답다. 아르티나 기사단은 저마다 눈시울을 훔쳤다. ***

16549762008222.jpg‘누가 보면 멀리 사절단이라도 다녀오는 줄 알겠다!’

고작 몇 시간, 수도 내 거리에서 놀다 오는 것뿐인데 온 공작저 식구들과 식솔들이 나와 이벨리아를 배웅했다. 아주 드물게 공작저 대문 앞을 지나는 제국민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흘끗 바라보다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16549762008222.jpg‘난 이제 아가도 아닌데.’

이런 우르르 배웅은 창피하다! 이벨리아가 마치 던져버리듯 반짝 손을 들어 인사했다.

16549762008222.jpg“다녀올게!”

걸음을 빠르게 놀려 모퉁이를 돌면서, 이벨리아가 루드비히에게 물었다.

16549762008222.jpg“근데 식량 도둑은 어떻게 허락받았어? 토끼랑 엔리르는 같이 가도 식량 도둑은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 그대로였다. 루드비히는 이 제국의 국본. 축복제에는 마땅히 황궁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야 했다. 친구의 물음에 루드비히는 한숨 쉬며 끔찍했던 며칠간을 회상했다.

16549762008237.jpg“넌 짐작도 못 할 거다.”

축복제에 마물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미리 나가 살펴야 한다는 명목으로 보고서 한 권. 통하지 않자, 축복제의 민간 시찰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보고서 두 권. 그것마저 안 먹히자, 축복제 한 번 참여해보지 못한 황태자가 올바른 황제가 될 수 있겠냐며 황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보고서 한 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가 꼼짝하지 않자.

16549762008237.jpg‘이렇게 살 바에야 황태자고 뭐고 다 내려두고 튀어버리겠습니다.’

16549762149315.jpg‘그리 말해도 안 된다!’

16549762008237.jpg‘황비의 일로 심장이 찢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16549762149315.jpg‘……진심으로 사과하마. 어리석었다. 내가 어리석었어. 하지만 축복제는 안 된다. 나는 이만 보고를 받으러 나가봐야…….’

16549762008237.jpg‘모릅니다. 저를 밟고 가십시오. 꽉 밟고 어디 가 보시지요.’

  루드비히는 진짜로 드러누워 버렸다. 시종들이 경악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황제가 걸어가는 길 앞에 그냥 대자로 드러누워 버렸다. 다섯 살 때도 하지 않던 ‘날 밟고 가라’ 시전. 회상하던 루드비히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16549762008237.jpg“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다 버렸다고 보면 돼.”

그렇게 해서라도 꼭 오고 싶었다. 이 축복제에. 소중한 친구와 함께. 일전에 하르벤타의 황태녀가 왔을 때 이브와 함께 거리를 거닐던 것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혹시 티가 날까, 안내하느라 피곤하다는 연기를 하긴 했지만, 실상 그깟 안내 따위 골백번도 더 할 수 있을 만큼 기꺼웠다. 오죽하면 황궁으로 돌아간 이후 몇 달 동안은 그날을 생각하며 실없는 웃음을 짓기도 했으니까. 2년 뒤 성년식을 치르고 나면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

16549762008237.jpg“제왕은 모름지기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놓치지 않는 법이지.”

대륙을 다스리는 제왕학을 고작 축복제 놀러 가는 데 가져다 붙인 루드비히는 뿌듯하게 웃었다. *** 제국 전역에서 함께 기리는 축복제라고는 하나, 특별히 인파와 문화, 놀 거리와 먹을거리가 집결되는 곳은 있게 마련이다. 그 중심 거리 초입.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의 등불이 하늘 높이 매달려 환히 빛을 냈다. 거리 양쪽에는 장신구를 파는 좌판부터 간단히 먹을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까지 제각기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악사들은 모자나 악기 케이스 따위의 것들을 앞에 놓고 솜씨를 뽐내고 있었고, 다양한 악기 소리와 춤은 거슬림 없이 자연스럽게 거리에 울려 퍼졌다. 만두가게에서 치익 소리와 함께 주기적으로 뿌옇게 올라오는 김이 이벨리아의 옆얼굴을 따끈하게 만들었다. 그 소란스러움과 번잡함 사이. 오직 거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흥겨움과 정이 녹아들어 있었다.

16549762008222.jpg“우와아! 우와아!”

16549762177658.jpg“오와아! 오와아!”

이벨리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시에 엔리르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정신없이 꼬리를 살랑댔다. 이벨리아의 어깨 위에서 팔딱팔딱 뛰면서.

16549762008222.jpg“저거 봐! 저거!”

16549762177658.jpg“누나! 저 불 풍선 삼켜도 돼?”

16549762008222.jpg“응! 돼! 다 먹어버려!”

넋 나간 한 아이와 한 용을 본 아가레스와 루드비히는 흘끗 시선을 마주치고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16549762008233.jpg‘적어도 이놈만은 제정신이라 다행이군.’

이벨리아는 앞으로 폴딱 달려 나가려다가 아가레스의 팔에 턱 막혀버렸다.

16549762008222.jpg“왜!”

16549762008241.jpg“천천히 구경해. 네가 만족할 때까지 안 들여보낼 테니까.”

16549762008222.jpg“아까 우리 아빠한테 날 11시까지 보내겠다고 한 걸 다 들었는데!”

16549762008241.jpg“악마의 말을 쉽게 믿는 게 아니지.”

역시 내 친구들. 사기꾼 기질이 넉넉한 것이 아주 바람직하다. 그 말에 안심하여 천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일곱 해 전과는 달라진 것들이 상당히 눈에 띄었다.

16549762008222.jpg“나 아가 때랑은 많이 달라졌네!”

16549762008237.jpg“너 여기 네 살 때 왔었는데. 기억이 나?”

16549762008222.jpg“그럼! 나 다 기억나! 내가 뭘 먹었었냐면, 아마 오리고기를 먹고, 후식으로는 크로칸무슈를 먹었던 것 같아.”

그러자 인파 사이에 이벨리아가 치이지 않게 단단히 지키던 아가레스가 거들었다.

16549762008241.jpg“너 그거 안 먹었어. 과일 꼬치와 닭꼬치, 아이스크림을 먹었지.”

16549762008222.jpg“그걸 토끼가 어떻게 다 알아?”

아차. 실수. 대악마의 눈가가 살짝 경련했다. 친구라고 불리기도 전에 흥미인지 무엇인지 모를 감정으로 지켜봤다는 걸 알게 되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른다.

16549762008241.jpg“그냥 그랬을 것 같았어. 추측이야.”

친구 의심하는 법을 모르는 이벨리아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지만, 루드비히의 눈은 진위를 파악하듯 가늘게 아가레스의 표정을 살폈다. 앞서가는 이벨리아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아가레스가 루드비히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16549762008241.jpg“넘어가자. 어?”

16549762008237.jpg“싫은데.”

16549762008241.jpg“피차 이래서 좋을 거 없을 텐데.”

16549762008237.jpg“손해 볼 건 너뿐인 것 같은데.”

16549762008241.jpg“네놈 2년 전 비밀기지에서 자다가 이브를 부르며 울었던 거.”

16549762008237.jpg“상도덕이 없군. 그걸 얘기하겠다고?”

16549762008241.jpg“둘 다 칼끝을 물고 있으니 베이지 않게 입 조심히 놀려야겠지.”

두 친구가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속닥거리자 이벨리아가 가던 길을 되돌아와 둘의 후드를 톡톡 잡아당겼다.

16549762008222.jpg“뭐야? 뭐야? 나도 알려줘. 마족이라도 나타났대?”

루드비히와 아가레스가 서로를 빤히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16549762008237.jpg“아니. 상도덕 없는 악마 새끼 하나가 나타났다.”

16549762008241.jpg“버릇없는 애새끼 하나도 나타났고.”

단합과 화합의 축복제. 그런 이념 따위 저 멀리 가져다 버린 두 친구를 보며 이벨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16549762008222.jpg“……이 친구 새끼들을 그냥.”

  *** 눈만 마주쳤다 하면 티격태격하는 두 친구를 어르고 달래며 이벨리아는 다시 축복제 구경에 매진했다. 한편 이벨리아의 어깨에서 잠시 내려온 엔리르는 좌판 근처를 빙글빙글 돌며 감탄을 뱉었다.

16549762177658.jpg“히야…….”

여긴 공작저에서 미처 먹어보지 못한 것들이 산더미다. 공작저 음식들이 모두 영양을 고려하여 건강한 맛이었던 것과 달리, 이 길거리의 음식들은 온갖 자극적인 냄새가 났다. 그중 어린 용의 눈을 가장 잡아끈 것은 아주 붉은 양념이 묻은 흐물흐물 막대기. 작고 얇은 흰색 막대기를 소스에 열심히 비비는 주인장 아래로, 하르벤타로 유학 가서 직접 배워 온 비법 음식이라는 광고 문구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16549762177658.jpg“매운 거……?”

엔리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코를 찌르는 알싸한 냄새가 너무 좋을 따름이었다.

16549762177658.jpg‘맛있겠다. 하나만 먹어볼까?’

물건을 살 때는 돈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엔리르는 좌판에 놓인 음식들이 모두 자신에게 바치는 공양물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축제였으니까. 사람들의 발을 요리조리 피해 뽈뽈 걸어간 엔리르가 순식간에 좌판 위에 휙 올라서더니 작은 떡 하나를 냠 입에 물었다.

16549762261508.jpg“이 도둑고양이가!”

가게 주인이 빗자루를 들고 엔리르에게 휘두르자, 깜짝 놀란 용의 몸 주위로 마치 본능처럼 방어 마법이 발했다. 엔리르가 인상을 확 찌푸리고 주인을 노려보며 으르릉 송곳니를 드러냈다.

16549762177658.jpg“이게……! 아차. 야, 야오옹!”

16549762261508.jpg“분명 방금 ‘이게’라고 한 것 같은데?”

16549762177658.jpg“야옹, 야옹!”

16549762261508.jpg“이거 근데 고양이는 맞나? 잘 보니 여우 같은데.”

엔리르가 앞발을 딱 든 채 정지했다. 잠깐. 여우가 어떻게 울더라.

16549762177658.jpg“……와파파파파파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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