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황비의 종장2022.03.07.
특별재판이란 지나치게 사소하거나, 수사기관을 거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거나, 혹은 통상의 수사기관을 거치면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아니할 경우에 요청되는 것. 이 경우에는 세 번째라고 봄이 옳았다. 수사기관이 발 벗고 나서서 황비의 죄를 직접 파헤칠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공간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법정 안으로 밀려 들어온 군중들은 가장 먼저 피고인석에 앉은 이를 보고 놀랐다. 황비여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화려해서. 보통 피고인석에 앉는 이들은 법정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어두운색의 의복을 갖춰 입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황비는 금색 원단으로 만든 정복에, 그것도 모자라 머리와 귀, 팔에 있는 대로 장신구를 얹어두고 있었다. 아가레스가 높게 들어준 덕에 앞을 본 이벨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대관식이야 뭐야. 정신 나간 꼴뚜기 같으니라고.’
특별재판이 으레 그렇듯이, 당해 재판에 한해 발탁된 특별검사, 궁내부 장관의 지위를 역임하고 있는 카시스 후작이 피고인의 지위와 공소사실을 진술했다.
“본 제국의 황비, 베나카 륜 에르카디아는.”
그러자 피고인석에 오만하게 앉아 있던 황비가 버럭 소리쳤다.
“감히 에르카디아의 이름을 가벼이 담는가!”
일반 수사검사들이었다면 기가 눌릴만한 노호성. 그 뒤로 장신구가 짤랑이는 소리가 준엄한 법정에 어울리지 않게 울렸다. 그러나 카시스 후작은 오히려 이를 갈며 진술을 이어갔다. 대외적으로 공녀님을 노린 것으로 되어 있어 이해관계인인 휴고가 아니라 자신이 특별검사로 발탁되기는 하였으나, 기실 자신의 딸인 렐리안을 노린 것 아니었던가.
“대륙력 1040년 7월 26일 오후 1시경. 시녀인 카시스 후작가의 서녀를 사주하여 카시스 후작가에서 이벨리아 폰 아르티나, 이하 피해자의 식사에 독을 투여했다.”
황비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자, 열세 명의 재판관 중 가장 가운데에 앉은 수석재판관이 엄중한 눈으로 정숙하라 경고했다.
“성분 분석 결과 음독한 자는 수 분 내에 사망에 이르는 극독으로 밝혀졌다.”
그러자 방청석에 앉은 이들이 급히 숨을 들이켰다. 그래서 설마. 이 제국의 유일한 공녀가 사망하였다는 말인가.
“피해자는 아직도 사경을 헤매고 있는바, 이는 엄밀히 제국의 고위 귀족을 고의로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것이므로, 제국 형법 제254조 살인미수. 약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4조 약물 취급자가 아닌 자의 약물 취급 금지. 동법 제39조 독극물 사용의 금지 등 공소장에 상세히 기록한 총 열다섯 가지의 죄목으로 기소한다.”
카시스 후작의 진술이 끝나자 황비가 피고인석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제국법 제4조. 황족의 처벌은 재판을 통해 결정할 수 없다. 나를 이 재판정에 세운 것 자체가 이미 법에 맞지 않은 것이니, 이 특별재판은 죄를 따지기도 전에 각하되어야 마땅하다.”
그러자 흰 수염을 길게 기르고 두꺼운 안경을 쓴 수석재판관이 천천히 법전을 폈다. 재판정을 장악하는 이는 황제도, 황비도, 공작도 아닌 재판관이다. 재판관에게는 재판 당사자들의 신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피고인과 피해자일 뿐. 하여 존댓말은 없었다.
“피고인의 신분인 황비는 이 제국법전에 기재되어 있지 아니하다.”
“하지만 나는 황자의 모후로……!”
“피고인을 황족으로 볼 수 없으므로 항변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단칼에 잘려버린 황족으로서의 자존심. 황비가 아랫입술을 세게 감아 물었다. 진을 친 군중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웅성대자 황비의 자존심에는 더욱 깊은 금이 갔다. 황비를 대변하여 변호인의 자리에 앉은 이세르나 백작이 침착하게 변론했다.
“황족인지를 여기서 다투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살인미수 등의 범죄 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지요.”
“동의하네.”
“한데 후작께서는 공소사실만 읊으시고 그 어떤 증거자료도 제출하지 아니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애초에 증거가 있기는 한지 의문입니다.”
그 말에 두 인물에게서 즉각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저 새끼도 조만간 손 좀 봐야겠군.”
중얼거리는 자는 휴고였고.
“하. 증거? 그딴 게 있을 리가 있나! 애초에 내가 하지 아니한 일인 것을!”
과히 당당하게 가슴 펴는 자는 황비였다. 황비의 태도에 방청석이 다시금 술렁였다. 저리 당당하다면 아르티나 공작가가 헛다리를 짚은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려던 찰나. 카시스 후작이 수석재판관을 바라보며 짧게 고개를 숙였다.
“증인을 신청하겠습니다.”
“채택한다.”
증인? 증인은 무슨! 비웃던 황비의 동공이 일순 크게 확장되었다.
‘설마 없어졌던 그것이!’
아니나 다를까. 작은 의자에 존재감 없이 앉아 있던 네피르가 일어서 후드를 벗었다. 황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네년!”
네피르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증인석 앞에 섰다. 황비를 애써 바라보지 않으면서.
“황비 전하의 시녀, 네피르라 합니다.”
“선서하라.”
“양심에 따라 숨기거나 보태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말하며, 만일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증언하도록.”
“공소사실에는 한치의 그릇됨도 없습니다. 황비 전하의 말단 시녀가 제게 와 극독을 넘겨주면서, 그것을 공녀님의 식사에 타라 하였습니다.”
혹시 뭐 대단한 게 있을까 싶어 눈을 부라리던 황비가 기세등등하게 허리를 폈다.
“보아라! 내가 아니라 말단 시녀라지 않느냐!”
“피고인이 사주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사주? 내가 사주했다면 고작 말단 시녀가 아닌 수석 시녀들을 시켰겠지! 말단 시녀라니! 나와는 마주칠 일조차 잘 없는 이들을!”
긴장이 풀린 황비의 입에서 거짓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방청석에서 후드를 뒤집어쓰고 지켜보던 이벨리아가 씩 웃었다. 이럴 줄 알았다. 예상을 벗어나질 않는다. 흘러갈 상황에 대해서 미리 언질을 받았던 카시스 후작은 곧바로 몰아붙였다.
“독의 추출 결과서와 피해자의 소견서 역시 모두 증거로 신청합니다.”
“채택한다.”
법대 아래 있던 행정관들이 후작이 내미는 결과서와 소견서를 수석재판관에게 올렸다. 결과서와 소견서에는 제국 내 가장 이름 높은 의료재단의 날인이 찍혀 있었다. 공증까지 받아둔 것은 단연 아가레스의 생각이었다. 의사들이 쉬운 용어로 기재한 소견서와 결과서를 천천히 훑은 수석재판관이 말했다.
“소견서에 따르면 피해자는 음독하여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 맞군. 추출 결과서를 참고하면 피해자가 먹은 음식에 들은 독과 같은 성분이고.”
황비는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결고리다.
“여전히 그 독을 타도록 내가 사주했단 증거는 없지 않은가.”
정황과 자신을 잇지 못하는 이상, 감히 이 제국의 황비를 벌할 수는 없다. 카시스 후작은 서류 하나를 더 내밀었다.
“이 서류 역시 증거로 신청합니다.”
“채택한다.”
이벨리아의 명에 따라 카론이 구해왔던 서류봉투가 법대 위로 올라갔다.
“……음.”
지금까지는 혹여 심증이 드러날까 무심하게 법정을 내려다보던 재판관들의 표정이 처음으로 의미 있는 의문을 담았다. 피고인 역시 증거자료를 확인하고 방어권을 행사해야 하므로, 재판관들은 이를 황비에게 넘겼고.
“이게……!”
황비 역시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시스 후작이 쐐기를 박았다.
“피고인의 수석 시녀 자택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서류봉투 안에서 나온 것은 몇 개의 서신. 「흔적은 남지 않음. 10분이 지나면 음독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 「금액 50만 리브르. 이틀 내로 광장 분수대 앞 두 번째 벽돌 아래 둘 것.」 「입금 완료. 아흐레 뒤 같은 장소.」 독약 구매 과정에서 수석 시녀가 판매상으로부터 받은 것들이었다. 수석 시녀 역시 황궁에서 닳고 닳은 이. 이런 거래에는 능숙했다. 신중을 기하고자 황궁이 아닌 자택을 근거지로 택하기까지 했고. 심지어 받은 서신은 모두 벽난로에 넣어버렸는데.
‘어, 어떻게!’
표정에 슬슬 금이 가는 황비와 수석 시녀를 바라보며, 방청석에 앉아 있던 이벨리아가 발을 까닥까닥 흔들었다. 아가레스가 물었다.
“우리 꼬맹이 짓인가?”
“카론과 이프리트의 합작이지.”
카론은 몰래 수석 시녀의 자택에 잠입해 벽난로 안의 재를 모두 꺼내왔고, 이프리트는 검게 탄 재를 되살려 복구시켰다.
“대가로 앞으로는 이름을 불러주기로 했어. 양아치 말고.”
“……그 새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아가겠군.”
“계약 맺자고 달려드는 걸 이름 불러주는 거로 타협한 거야.”
“잘했다. 그 겉멋만 든 놈과 엮여서 좋을 게 없어.”
두 친구가 속닥거리는 와중. 황비가 서신을 패대기치며 소리쳤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앞뒤 모르는 이년이 따로 벌인 일이다! 피고인의 자리에는 이년이 앉으면 되겠구나!”
그러자 황비의 곁에 서 있던 수석 시녀가 황망한 표정으로 더듬더듬 황비를 불렀다.
“저……전하!”
“이 건방진 것! 예쁘다, 예쁘다 했더니 감히 이 제국의 유일한 공녀를 해하려 들어?”
수석 시녀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황비의 비호를 받지 못하면 자신은 시신조차 부지할 수 없을 것이다. 황비의 꼬리 자르기. 이벨리아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수석 시녀를 바라보며 작게 혀를 찼다.
‘황비의 선택이 결국 저 시녀를 돌아서게 하겠지.’
이 또한 이벨리아가 그린 판의 일부였다. 아무리 증거를 모아도 결국 수석 시녀 선까지 올라갈 뿐. 황비가 수석 시녀에게 지시하였다는 것은 시녀 본인이 증언하지 않으면 입증이 어려웠다. 그래서 미리 카론에게 지시를 해두었었다.
‘카론.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늦은 밤 수석 시녀를 찾아가.’
‘하명하십시오. 가서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황비가 렐리안을 살해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해. 그리고 낚싯대를 던져줘.’
‘미끼는 무엇으로 하길 원하십니까.’
‘황비가 먼저 시녀를 버릴 경우, 시녀가 상황에 맞춰 증언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시녀의 목숨은 살려주겠다고.’
먼저 배신을 종용하는 것이 아니라, 황비가 자신을 버릴 때를 대비하여 선택지를 준 것이었으므로, 황궁의 암투에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수석 시녀는 옅게 고개를 끄덕였었더랬다.
‘제 사람 소중한 줄 모르는 그 못된 버릇이 황비를 사지로 몰아넣을 거야.’
수석 시녀가 법대 앞으로 뛰쳐나가 무릎을 꿇었다. 법관들이 아니라 휴고를 향해. 자신의 목숨줄을 쥔 이가 누구인지 잘 아는 것을 보니 영 어리석지는 않은 모양이다.
“각하! 황비 전하께서 명하셨습니다!”
“네 이년! 감히 어디서 거짓을 고해!”
“황비 전하께서 공녀님의 식사에 독을 타라 명하셨습니다! 증거도 있습니다!”
수석 시녀는 현명하게도 황비가 렐리안이 아닌 이벨리아를 살해하라 명했다고 진술했다. 눈치로 알았다. 황족에 준하는 공녀를 엮어야 황비의 형량이 훨씬 높아질 것을. 나아가 일전에 찾아온 신원불명의 자가 원하는 판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수석 시녀의 품에서 화려한 반지 하나가 나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비가 조공을 받았다며 이리저리 자랑하고 다니던 커다란 에메랄드 반지.
“황비 전하께서 이걸 제게 주시며 지시하셨습니다!”
“네년! 감히 내 반지까지 절도하였구나!”
황비의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두껍게 칠한 화장이 마치 가면 깨어지듯 깨어졌다. 수석 시녀가 웃는 듯 울며 휴고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뒤적이는 품에서는 황비가 주었던 돈주머니, 수석 시녀의 동생들을 협박하는 데 사용한 편지 등이 끊임없이 나왔다.
“가, 각하.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는 아닙니다. 그저 저와 제 식솔들을 죽인다 하여 어쩔 수 없이 따랐을 뿐입니다.”
“저년이 끝까지 거짓말을 하는구나!”
바락 외치던 황비는 본능적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황제와 법관들. 그리고 방청석에 앉은 군중들까지. 이들의 반응을 확인하고자.
‘왜…… 왜 다들 저런 눈으로 나를……!’
개정할 때만 해도 호기심을 비추던 눈빛들이. 이젠 둘도 없는 역적을 바라보듯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
‘설령 내가 정말로 공녀를 해하려 했다 한들, 저렇게까지…….’
황비는 몰랐다. 구중궁궐 안에서 호의호식하느라 제국민들 사이에서 이벨리아가 갖는 상징을 미처 알지 못했다. 공신 가문의 유일한 아가씨. 연말연시면 빠짐없이 구휼미를 베푸는 가문의 금지옥엽. 가진 장난감이나 인형을 성문 밖 아이들에게 나누는 대귀족.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떠나, 제국민들의 생명을 직접 지켜줄 수 있는 대정령사. 악마의 친우. 한편으로는 대적자. 제국민들에게 이벨리아는 지켜주고 싶은 어린 아기씨이자. 동시에 그들의 목숨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이미 그 자체로 장군이었다. 순식간에 발판을 잃은 느낌. 황비는 자신을 지지하는 신하들을 바라봤다.
‘왜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느냐!’
그러나 그 시선을 받은 귀족들은 시선을 돌리기 급급했다.
‘폐하! 폐하께서는 왜 저를 그리 보십니까!’
황제 역시 마찬가지로 고개를 떨궜다. 아르티나의 적장녀를, 그것도 이 대륙 유일한 대정령사를 살해하려 했다는 것은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벗어날 수 없는 죄였다.
‘그 요망한 계집이 무슨 수를 썼구나!’
덫에 제대로 걸렸다는 것을 직감한 황비가 발악했다.
“폐하, 저는 억울합니다! 모두 아르티나의 계략입니다!”
“피고인. 더 변론할 것이 있습니까.”
“폐하! 폐하! 저를 좀 봐주십시오, 폐하!”
“……없는가 보군요. 잠시 휴정하고 재판관들의 의견을 모은 뒤, 한 시간 뒤에 선고하겠습니다.”
“폐하!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폐하!”
고요한 분노를 담고, 휴고가 아르티나 기사단에게 손짓했다.
“소란스럽군. 피고인을 감치하라.”
법정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난동을 부리는 피고인은 감치 대상이다. 헤롤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황비의 입을 재갈로 틀어막고 법정 안쪽에 가둬버렸다. *** 선고는 짧았다.
“피고인 베나카 륜 에르카디아를 냉궁에 유폐한다.”
기한이 붙지 않았다. 곧 무기한이라는 뜻. 바꿔 말하자면 죽을 때까지. 황비라는 지위를 고려하면 형이 높은 감이 없지 않았다. 공정한 판결을 내린다는 정의의 여신. 그 손의 천칭마저도 기울여버릴 수 있는 권력. 휴고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
“아아아악!!!”
근위대에게 양팔을 잡힌 황비는 자리에 주저앉아 발버둥 쳤다. 고귀함을 상징하던 장신구가 속절없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안 돼! 아아악! 이럴 순 없어. 이럴 수는……!”
그곳의 끔찍함은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시녀를 그 냉궁에 가둔 이가 바로 자신이니까. 외부의 기온을 잘 받는 건축자재와 구조. 따라서 더운 날에는 열기가 가마처럼 끓었고, 추운 날에는 빙고(氷庫)와 다름없는 온도였다. 마치 가축에게 밥을 주듯 휙 던져주는 곰팡이 핀 딱딱한 빵과 음식물 쓰레기를 재활용하여 만든 스튜. 시녀들이 먹을 때만 해도 깔깔거리며 웃기 바빴으나, 이제 그 대상이 자신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존엄성 하나 없이 버러지처럼 죽게 될 것이 뻔했다. 가둔 시녀들은 불과 반년 만에 미쳐 네발로 기어 다니거나, 스스로 목을 매기 일쑤였으니까. 무섭다. 무서웠다.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나락을 목전에 둔 황비의 발악은 길게 이어졌다.
“으아아악!! 폐하!! 에드윈!! 에드윈!!”
*** 오만하게 앉아 그 꼴을 감상하던 아가레스가 느리게 고개를 기울였다.
‘속이 안 풀리는데.’
냉궁에 갇혀 미치는 건 미치는 거고. 그 고통을 충분히 맛본 뒤에는 자신이 직접 손을 쓰고 싶었다. 대악마는 그의 주인이자 친우를 슬쩍 바라보며 황비를 턱짓했다.
“저거. 더 필요해?”
“아니. 이젠 됐어.”
허락이나 다름없는 말이 떨어졌다. 아가레스의 입매가 비틀리듯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