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아가 용의 복수를 위하여2022.01.06.
통상의 정보 길드는 정보의 수집 경로 자체가 떳떳하지 않기에 음지에서 활동한다. 번듯해 보이는 술집에 들어가 은밀한 암호를 읊으면 아무도 모르는 공간으로 안내하여 정보를 거래한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방법으로 거래가 이뤄지니까. 그런 측면에서 ‘파라반트(Paravant)’는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대놓고 정보를 거래하는 유일한 길드이자, 제국 내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다루고 있는 길드다. 오죽하면 ‘파라반트’가 알지 못하는 정보는 신도 눈을 가린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니까. 이런 길드는 하르벤타엔 없다. 으리으리한 길드 건물 앞에 선 이샤트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루드비히에게 물었다.
“신기하군. 정보 수집은 위법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이리 떳떳하게 존재하지?”
“이들은 제국민들의 알 권리를 내세워 정보 수집의 위법성을 정당화한다.”
“잡아넣을 수 있을 텐데?”
“어려워. 제국법에 저촉되는 정보 수집 경로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수사기관이 입증해야 하는데, 이들은 어마어마한 재력으로 그것들을 은폐하는 데 능하거든.”
그 외에, 타 제국 황태녀인 이샤트에게 말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기는 했다. 파라반트는 황실과 고위 귀족들의 약점이 될 정보도 적지 않게 잡고 있다. 그러니 황실과 고위 귀족들은 굳이 파라반트를 잡아넣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그들의 정보가 제국민들에게 폭로되는 것을 막고. 파라반트는 상당한 세금을 냄으로써 제국의 경제에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때로 황실과 고위 귀족의 눈과 귀가 되고는 했다. 소위 말해 서로 칼자루를 쥔 상생. 그 결과 파라반트는 이리 번듯한 건물에서 정보를 유통할 수 있게 되었다. 파라반트의 입구 가장 높은 곳에는 거대한 현판이 달려 있었다. 누구라도 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 없도록 크고 깊게 새긴 짙은 글씨였다. [정보의 가치는 목숨의 가치보다 높다.] 고개를 한껏 꺾어 현판을 바라본 이벨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병아리. 저게 무슨 말인지 이해해?”
“그럼. 정보가 엄청 소중하다는 거잖아.”
그 말에 루드비히가 낮게 웃음을 흘리며 후드 위로 이벨리아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러니 이곳에서 정보를 얻으려면 목숨 또는 그보다 높은 가치를 내놓으란 소리야. 한마디로 파라반트가 파는 정보는 더럽게 비싸단 말이지.”
“내 곰돌이 지갑-.”
“-으로는 턱도 없고.”
“세상은 뭐가 이렇게 팍팍해!”
뭐가 다 이렇게 비싸! 한 푼 두 푼 모은 곰돌이 지갑으로는 길거리 닭꼬치 외엔 아무것도 살 수 없어! 찰떡같이 믿던 곰돌이 지갑은 별 쓸모가 없다. 이벨리아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어린 친구의 시무룩한 모습을 두고 볼 수 없는 아가레스가 물었다.
“무슨 정보를 사고 싶은데?”
“데퐁트 후작이 진짜 죽었는지. 세레스와 리카드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그러자 아가레스가 보석 덩어리 몇 개를 내밀었다.
“자. 이걸로 사. 부족하면 더 줄게.”
“아니야. 이미 발하일의 보석도 토끼가 낙찰받아 줬는데. 물론 그것도 내가 어른이 되어서 부자가 되면 다 갚을 거지만, 이 보석까지 받을 순 없어.”
“그러면 정보를 사기 어려울 텐데?”
그 말에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이벨리아가 씩 웃었다. 돈이 없어도 가진 다른 게 있다.
“내가 팔 아주 귀한 정보랑 내가 사고 싶은 정보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음. 파라반트가 말하는 가치가 꼭 돈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 맞거래할 정보가 있다면 그것도 상관없어.”
아까부터 꼭 팔고 싶은 정보가 있다더니. 이쯤 되니 뭔지 상당히 궁금하다. 저리 으스대는 것을 보니 지닌 정보가 그리 헐값에 팔릴 것은 아닌 것 같다. 아가레스가 은근슬쩍 운을 뗐다.
“우리 꼬맹이가 사려는 정보는 꽤 비쌀 텐데. 꼬맹이에게 그에 상응할 만큼 귀한 정보가 있나?”
그러자 후드를 쓴 고개가 아주 당당하게 끄덕였다.
“엔리르. 여기에다가 자연력을 조금만 넣어봐.”
이벨리아는 지니고 다니던 특징 없는 돌멩이 하나를 루드비히의 후드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통통한 앞발 두 개가 쏙 나오더니 돌멩이를 집어 꼬물꼬물 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잠시 뒤. 다시 통통한 앞발 두 개가 사이에 낀 돌멩이를 꼬물꼬물 밖으로 내밀었다.
“아. 미안. 엔리르. 작은 브레스도 살짝만 뿌려줄 수 있을까?”
다시 같은 절차를 거쳐 아까보다 그을린 돌멩이가 꼼질꼼질 밖으로 내밀어졌다. 용의 흔적이 묻은 돌을 던졌다 잡아채며 이벨리아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난 이걸 팔 거야.”
“응. 나를 팔아도 돼. 누나.”
후드 속에서 엔리르가 작게 속삭이자 이벨리아는 루드비히의 후드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그럴 리가.”
엔리르를 왜 팔아. 내 동생의 신상에 조금이라도 해가 가는 건 용납 못 한다. 파라반트는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거다. 용이 어디에 있는지도, 몇 개체가 있는지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용과 함께하는 인간이 누군지도, 심지어 이 정보를 파는 인간이 누구인지도. 일절. 다만 그들은, 이 정보 하나만을 얻게 되겠지. 「용은 살아있다.」 기실 용이 멸종되지 않았다는. 기존의 상식을 뒤집어엎고도 남을 정보. 그건 이벨리아가 원하는 정보를 사고도 남는 값일 터였다. 마도구로 나이가 변하자마자 그 목적지를 이곳으로 잡았던 것, 여기서 굳이 이 정보를 팔고 싶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천진하던 푸른 눈이 언뜻 사나운 빛으로 번뜩였다.
‘경고는 제대로 해야지.’
감히 엔리르를 두고 실험했던 이들은 탈출한 어린 용의 소재를 파악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용이 성장하여 그들을 찾아내는 날. 목숨 부지가 불가능할 것은 뻔했으니까.
‘공간이동에 실패해서. 혹은 실험의 부작용으로. 혹은 보호자가 없어서. 그래서 이미 죽어 없어졌길 간절히 바랐겠지만.’
이벨리아가 자기 잘했냐는 듯 루드비히의 후드 속에서 쏙 얼굴을 내민 엔리르를 한 번 쓰다듬었다.
‘그놈들은 마지막 용이 죽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겠지. 그리고 곧 그들을 찾아 복수하리라는 것도.’
이 정보를 파는 건. 그 어느 날 그들을 찾아낼 때까지 한시라도 발 뻗고 자지 못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벨리아는 용의 힘이 새겨진 돌멩이를 부서트릴 듯 쥐며 서늘하게 웃었다.
‘내가 조사버릴 때까지 두려움에나 떨어라.’
*** 일행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응시하자, 이벨리아가 간단히 속셈을 설명했다.
“우리 아가 용을 괴롭혔던 사람들이 있어. 언젠가 내가 그들을 다 찾아서 유황길로 보낼 거지만, 그동안 계속 불안에 떨었으면 좋겠어서.”
“유황길이 아니라 황천길. 어쨌든 대단하다, 공녀.”
“용은 은혜를 두 배로 갚고, 원한은 열 배로 갚았다고 하지. 그들이 알게 되면 밤에 잠도 못 자겠군.”
루드비히 역시 이벨리아와 함께 엔리르를 처음 발견한 이다. 당시 처참했던 용의 상태를 똑똑히 기억한다. 그때는 아무 감정 없었지만, 그래도 몇 년 살 부대끼고 나니 아주 약간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도 했다.
“나도 도울게. 이 모지리 용을 괴롭힌 이들을 황천길로 보내는 거.”
“꼬맹이가 원한다면 나도.”
그러자 루드비히의 품속에서는 훌쩍, 훌쩍, 숨죽여 우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엥? 이게 무슨 소리야.”
이벨리아가 루드비히에게 바짝 붙은 다음 후드를 제치고 안을 들여다보자, 어린 용이 말캉한 앞발 하나를 입에 넣고 엉엉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엔리르? 왜 울어! 질식했어?”
“허엉…… 히끅, 아니이, 대단한 용은, 히끅, 질식 안 해애…….”
“그럼 왜 울어!”
“나는 너무 좋아…….”
뭐가 너무 좋다는 건지. 이벨리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루드비히에게 엔리르를 좀 토닥여 달라 부탁하고자 시선을 올렸다.
“식량 도둑. 넌 왜 이렇게 얼굴이 빨개. 더워?”
“더, 덥긴 누가 더워! 아니, 더우니까 저리 좀 떨어져!”
“……우리 제국 황태자가 오락가락하네.”
정신 차리라는 듯 루드비히의 어깨를 툭 건드리자 루드비히가 마치 감전이라도 당한 것처럼 부르르 떨더니 뒤로 휙 물러났다.
‘참 이상하네. 진짜 더위 먹었나.’
의아하다는 듯 루드비히를 일별한 이벨리아가 금세 관심을 거뒀다. 지금 더위 먹은 식량 도둑이 중요한 게 아니다. 파라반트에서 의심받지 않도록 잘해야 하는데!
“후. 떨린다.”
“왜 그렇게 긴장해. 그냥 정보 길드야.”
“내 정체를 잘 숨겨야 하잖아. 어른 행세를 해야 하니까 아주 떨려.”
이벨리아가 잠시 눈을 감고 손을 조물조물 잼잼 움직였다.
“우리 엄마 빙의 중이야. 잠시만.”
그리고 잠시 뒤. 반짝 뜬 눈은 눈꼬리가 조금 더 올라가 있었고, 턱도 조금 더 치켜들어 졌다. 허리는 아주 꼿꼿하게 세워졌다.
‘오. 공작부인과 제법 비슷하군.’
역시 피는 못 속인다며 루드비히가 내심 감탄하던 찰나.
“호. 호. 호. 다들 조아려라! 갈라져라! 네놈들의 모가지를 쳐버리기 전에!”
“……설마 그게.”
“내가 바로 이 제국의 공! 작! 부인이다!”
“한참 잘못 빙의되었군. 공작부인이 아니라 악령이 씐 듯하다.”
“전쟁터에서 붉은 머리 마족을 수도 없이 베었지! 오호호!”
“정보 길드에서 용한 퇴마사에 대한 정보를 먼저 사야겠군.”
모두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따라 하는 이벨리아를 바라보던 와중. 엔리르만 귀를 뒤로 축 늘어뜨리며 루드비히의 후드 속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똑같다. 무서워.”
*** 원형의 탑처럼 생긴 파라반트로 들어가자 서글서글한 인상의 청년 하나가 다가와 매뉴얼을 읊었다.
“어서 오십시오. 파라반트에서 귀하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후드는 벗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두 손바닥을 위로 보이게 해서 가리키는 방향을 보아하니 탑 1층에 마련된 일반실로 안내하려는 모양이었다. 1층에는 특색 없이 동일하게 생긴 투박한 문이 쭉 둘려 있었는데, 대다수의 정보 거래자들은 이곳에서 E 또는 F급의 정보를 거래하곤 했다.
‘우리가 별 대단한 정보를 가져오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나 본데.’
이 청년은 승진하긴 글렀다. 경매장 경비병들은 태만 보고도 잠행 나온 고위 귀족이라는 것을 알아봤건만. 이벨리아가 못마땅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동안 봤던 어머니의 말투를 최대한 흉내 내면서.
“내가 가진 정보를 고작 저 문 뒤에서 풀기엔 수지가 안 맞는데.”
그 한 마디에 청년의 눈썹이 움찔 위로 솟았다.
‘이런, 귀족이었나!’
고고한 말투. 자연스러운 하대. 굴지의 정보 길드 내에서도 일절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 호위를 셋이나 대동하는 재력. 귀족 중에서도 저 별나라에 있는 고위 귀족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제법 위세 있는 가문의 영애임이 분명했다. 청년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허리가 조금 더 굽혀지고, 목소리는 더욱 진중해졌다.
“귀한 정보는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지요. 부끄럽게도 제 안목이 부족했습니다. 위로 올라가시지요.”
안내하는 방향의 계단에 먼저 발을 디디며, 이벨리아가 청년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제시하는 정보를 살 권한이 있는 자를 앉히는 게 좋을 거야. 기다리는 건 질색이라.”
지극히 귀족적인 태도. 물론 이벨리아로서야 신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것이었으나, 이를 알 리 없는 청년은 위로 올려보내는 고객 인적사항에 한 줄을 휘갈겨 적었다. 「괴팍한 성격. 응대에 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