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잠깐, 아빠?!2021.12.27.
비밀기지를 벗어나 번잡한 시내로 나온 이벨리아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까 괜히 긴장되어 어깨를 움츠렸다.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눈 주변을 적절히 가리는 가면까지 착용했지만, 누군가 가까이 다가올 때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때? 누가 보면 나인 줄 알아볼까?”
이벨리아가 아가레스 한 번, 루드비히 한 번, 번갈아 올려다보며 물었다. 몸집에 비해 큰 후드가 자꾸 흘러내려 눈을 가리는 바람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손으로 꼬물꼬물 검은 천을 헤치면서. 루드비히가 앞을 보기 편하게 후드를 약간 잡아 올려주며 답했다.
“아니. 몰라볼 것 같다. 감쪽같아.”
“누가 봐도 우리 꼬맹이가 아니라 어엿한 레이디로 볼 거야. 아, 조심.”
“마도구를 써도 여전히 작네. 밟히겠다.”
제법 번화한 거리이기에 바삐 걷는 사람들이 주변으로 스쳐 지나가자, 루드비히와 아가레스는 이벨리아의 양옆에 서서 호위하듯 길을 텄다. 마도구를 써서 어른 비스름하게 자랐다지만, 두 친구가 보기에는 여전히 부스러기처럼 작아 위태하기 그지없었다.
“어윽. 나도 좀 신경 써주지?”
뒤에서 사람들에게 치이고 있는 이샤트의 투덜거림이 들려왔지만, 아가레스도 루드비히도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야. 용. 숨 안 막혀?”
루드비히가 망토 속에 갇힌 엔리르를 향해 작게 물었다. 이벨리아의 반려 여우에 대해서는 일부 고위 귀족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있었기에, 엔리르는 혹여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루드비히의 망토에 들어가 있는 터였다. 할딱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망토가 움찔움찔 흔들리더니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헤엑…… 나는 대단한 용이다. 이런 건 아무렇지도 않아! 헤엑…….”
“…….”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렸으나, 용씩이나 되어서 설마 질식사하진 않겠지. 루드비히는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한편 이벨리아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후드에다가 가면까지 썼으니 분명히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우리를 쳐다보는 거지.’
지나가는 사람마다 이쪽을 흘끗대는 것이 왜인지 이 거리에서 엄청나게 주목받고 있는 듯하다. 이벨리아가 양손으로 루드비히와 아가레스의 옷자락을 톡톡 잡아당기고 작게 속삭였다.
“왜 사람들이 자꾸 이쪽을 바라보지?”
“네가 눈에 띄어서겠지.”
“네가 시선을 끄는 걸 어쩌겠어.”
후드 속의 이벨리아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가면 쓰고 후드까지 뒤집어썼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 몸집만 커졌지 정신연령이 자라지 못한 이 두 친구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벨리아가 시선 돌려 이샤트에게 물었다.
“왜일까, 이샤트. 왜 사람들이 자꾸 이쪽을 바라볼까?”
사람들을 헤치고 힘겹게 따라온 이샤트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고 오른손으로는 아가레스를, 왼손으로는 루드비히를 가리켰다.
“이 둘 때문. 공녀는 맨날 봐서 모를 수도 있는데,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둘 다 훤칠하긴 하거든.”
심지어 악마와 달리 아직 덜 자랐던 황태자조차 마도구의 효능으로 성인의 모습을 갖추었으니 말 다 했다.
“이 둘 때문…….”
거리가 마치 어느 선지자가 바다 가르듯 양쪽으로 쫙 갈라지는 사태의 원인을 찾았다. 이벨리아가 자신들은 무고하다는 듯 영문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친구의 등짝을 시원하게 내리쳤다.
“가서 후드 사와! 얼굴 가려!”
내 잠행을 망치는 것은 용납 못 한다! *** 소중한 친구의 흥밋거리를 자신들 손으로 무너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가레스와 루드비히는 군말 없이 주변 의류점으로 달려가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짙은 색 후드를 입고 돌아왔다. 후드를 뒤집어썼다고 해서 가진 태가 빛바래지는 않았기에 시선은 여전히 진득하니 따라붙었지만, 그래도 얼굴이 훤히 보였던 아까보다는 덜하긴 했다.
“어디부터 가실까요, 레이디.”
“이샤트가 가고 싶다고 했던 경매장부터 가자!”
“아마 발하일 보석 경매장을 말하는 거겠지, 황태녀.”
“맞다. 이번 사절단에 내 개인 재산으로 책정된 금화들이 꽤 있지. 그걸로 보석을 사두려 한다.”
그거론 턱도 없이 부족할 텐데. 루드비히가 픽 웃었다. 이 황태녀는 발하일의 보석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발하일.’에르카디아 제국 내에서도 경쟁자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보석상. 한 해에 단 두 개의 세공품만 제작하며, 단 하루의 경매일을 지정해 주인을 찾는다. 그렇기에 낙찰되는 가격 또한 상상 이상. 이샤트가 가져온 사절단 비용으로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 황태녀도 금전 감각 어지간히 없군.’
그래도 한 해에 단 하루 개최되는 경매인만큼, 그리고 출품되는 두 개의 세공품이 웬만한 왕국 국보로 책정될 수준인 만큼, 구경하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이다. 굳이 초를 치지 않고 일행들을 인솔하던 루드비히가 뒤를 돌았다. 한눈팔면 사고 칠 것들이 여럿이라 빈틈없이 확인해야 했다.
‘잘들 따라오고 있나.’
둘러보는데 하나가 빈다. 사라진 이는 어김없이 뽈뽈 돌아다니는 병아리 하나.
“병아리는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던 이샤트가 손가락으로 저쪽 포장마차를 가리켰다.
“엥? 아, 병아리 저기 있다. 꼬치 먹으려고 줄 서 있는데. 옆에 토끼도 서 있네.”
“토끼 그건 없어진 줄도 몰랐다.”
“병아리 데려와?”
“여기서 기다리지. 꼬치 못 먹게 하면 어차피 조금 뒤에 다시 이탈할 거다.”
그렇게 꼬치만 두 손 가득 안겨주면 얌전하게 졸졸 따라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자주 걷지 못하는 거리에 호기심이 많은 이벨리아는 그 후로도 딴 길로 새기 일쑤였다.
“오른쪽. 거기서 오른쪽이다, 병아리!”
“응!”
“멈춰, 거기 아니고 반대다, 병아리.”
“히잉, 그렇지만 저기 있는 과자는 사 먹고 가자!”
“자꾸 그렇게 시간을 지체하면 이미 보석들을 누가 홀랑 낙찰해서 가 버릴 거다.”
“그럼 안 되지! 과자를 사서 들고 가자! 얼른! 얼른!”
“과자를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없는 건가…….”
이마를 짚으며 루드비히가 혼잣말로 한탄했다.
“길 잃은 어린 양을 인도하는 게 신이 아닌 내가 될 줄이야.”
***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발하일 경매장의 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수도 중심지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소재하기는 하였으나, 경매 참석자들의 신상 보호를 위해 수많은 호위가 철통같은 수비를 담당하고 있었다. 신원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 불법 경매는 아니나 낙찰자에 관한 관심이 지대하다 보니 신원을 드러내길 꺼리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었다. 경매장 입구 근처에 다다르자 이벨리아가 폴짝 뛰며 신난다는 듯 외쳤다.
“나도 용돈 가지고 왔지!”
이벨리아가 아직도 애용하고 있는 곰돌이 용돈 지갑을 소중히 내밀며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볼이 빵빵한 곰돌이 지갑을 보니 마음이 풍요롭게 차올랐다.
“꼬맹이도 보석을 사려고?”
“응! 한 해에 두 개 밖에 안 나온다잖아. 나도 예쁜 보석 살 거야.”
기대에 찬 눈이 해맑게 반짝인다. 자신이 낙찰받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표정. 후드 아래 루드비히와 아가레스의 시선이 마주쳤다.
‘저 하찮은 곰돌이 지갑으로 가능한가.’
‘당연히 안 되지. 저 곰돌이 지갑이 다이아몬드로 가득 채워져 있어도 안 돼.’
애초에 공작에게 보석 경매장에 간다고 말했더라면 그 팔불출이 낙찰 가능한 수준의 금화를 와르르 쏟아주었을 텐데. 그런 지원이 없다면 그저 작고 소중하게 모아둔 용돈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루드비히와 아가레스는 자연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화가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에 들어갔다.
‘우리 꼬맹이 시무룩한 얼굴을 볼 수야 없지.’
‘내가 낙찰받아 주면 좋아할 텐데.’
*** 입구에 선 경비들은 후드를 살짝 들어 올린 루드비히와 아가레스, 이벨리아와 이샤트의 얼굴을 얼핏 보고는 곧바로 교차하고 있던 창을 거뒀다. 적지 않은 세월 문지기를 담당한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태만 훑어도 거동수상자인지 신분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귀족인지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비록 후드를 푹 눌러쓰고 레이디들은 눈가를 가리는 가면까지 쓰고 있지만, 수상한 이들이 아니라 고위 귀족임이 분명했다.
“우와아.”
순탄하게 내부로 들어오자마자 이벨리아가 작게 감탄을 내뱉었다. 아주 어두운 통로. 마치 생명을 얻은 듯 앞서서 통통 튀어 나가는 옅은 호롱불이 오로지 발밑만 아슬아슬하게 비췄다. 걸을 때마다 발걸음 소리만 메아리치듯 울리는 것이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공간임이 확실했다. 호롱불을 따라 긴 통로를 지나자, 오페라 극장같이 계단식으로 배치된 좌석이 눈에 띄었다. 경매에 실질적으로 관심 있는 귀족들이라면 경매장에 거금을 투자하고 좋은 좌석을 배치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혹은 드높은 명성을 지닌 귀족들이라면 경매장 측에서 먼저 좋은 자리를 배정해주기도 하였다. 이를 잘 알지 못하고 그저 선착순으로 앉으면 된다고 생각한 이벨리아가 경매장 가장 앞쪽을 가리켰다.
“우리 가장 앞에 앉자!”
“네 신분을 밝히면 바로 가능해.”
“……돈과 신분이 중요한 이 더러운 세상.”
“그 더러운 세상의 최고 수혜자가 바로 너야, 땅 도둑.”
일행 중 단 한 명이라도 신원을 밝혔다면 곧바로 가장 앞자리로 배정될 것이나, 지금 그 누구라도 신원을 밝히면 다른 이들의 신분까지 줄줄이 탄로 날 것이 자명했다.
“사실 난 뒤가 좋아!”
이를 잘 알고 있는 이벨리아는 아무 불평 없이 뒷자리에 착석했다.
“얼른 시작하면 좋겠다!”
이벨리아는 곰돌이 용돈 지갑을 뒤적여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한 뒤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돈이 많아. 이 정도면 보석 두 개도 다 살 수 있을 거야.”
왜인지 짠한 표정으로 이벨리아를 바라보던 두 친구가 쓰디쓴 현실을 좋게 둘러 말해주려던 찰나였다. - 챙! 허공을 떠다니던 눈부신 크리스털이 맑은 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져 참석자들의 무릎 위에 한 알씩 내려앉았다. 그와 동시. 단조로운 목소리가 높낮이 없이 울렸다.
[올해도 우리 경매장을 찾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 무릎 위에 내려앉은 사파이어는 약소한 선물입니다. 이깟 보석, 발하일에선 경매 붙일 가치도 없죠.]
팟, 어두운 경매장 속 유일한 빛 한 줄기가 무대에 선 이를 비췄다. 검은 옷에 얼굴 전체를 덮는 흰색 가면. 발하일 경매장 경매사의 특징이다. 쇼에 익숙한 경매사가 두 팔을 넓게 벌렸다.
[발하일에서 경매가 이루어지는 물품은 한 해 동안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단 두 개의 세공품입니다.]
참석자들이 기대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일 선물? 프러포즈 선물? 혹은, 결혼 예물?]
경매사가 과장되게 고개를 저었다.
[단언컨대 이 제국 국보로 지정되어도 부족함 없을 세공품. 올해는 더욱 그렇습니다.]
경매사의 양옆으로 다시 두 개의 빛이 내리꽂혔다. 유리 안에 든 두 개의 보석. 시야에 들어오자 참석자들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경매장을 짙게 채웠다.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방금 그 반응으로, 이미 가치는 증명되었으니까요. 왼쪽 보석부터 곧바로 시작해보죠. 예상가 100만 리브르부터.]
*** 100만 리브르. 웬만한 귀족들이 죽을 때까지 평생 모아도 다 모으지 못하는 금액이다. 과거 휴고가 딸이 준 꽃잎을 박아두기 위해 구매한 모리안의 낙찰액이 50만 리브르였다. 그 낙찰액의 두 배가 최저 금액으로 책정된 것이다. 예년보다 훨씬 높아진 예상액이다. 호기롭게 경매에 참여하려 했던 참석자들이 손에 쥐고 있던 패들을 바닥에 내려두었다. 감히 엄두 내기 어려운 금액이긴 했다. 그리고 곰돌이 지갑을 소중히 쥔 이벨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배……백만…….”
“곰돌이 용돈 지갑으로는 조금 부족하지.”
“……경매에 올라온 게 보석이 아니라 이 제국이었어?”
하늘 무너진 표정을 보며 아가레스와 루드비히가 낮게 웃음을 흘렸다.
“나는 못 사……. 나는 백만 리브르 없어.”
“나도 못 산다, 공녀. 가격이 뭐 저렇게 말이 안 되나.”
철석같이 믿고 있던 곰돌이 용돈 지갑이 힘없이 무릎 위로 가라앉았다. 루드비히의 망토 속에서 통통한 앞발이 불쑥 튀어나왔다. 엔리르의 말랑한 앞발 위에는 작은 보석 몇 개가 올라가 있었다.
“누나. 이거 보태도 안 돼? 이거 내 전 재산인데.”
“……이거 보태도 안 돼. 그렇지만 고마워.”
태연한 척 앉아 있던 루드비히 역시 입술을 깨물었다. 황태자 앞으로 책정된 공식 예산을 쓰면 무리 없이 낙찰할 수 있겠으나, 그랬다가는 온 제국에 사치를 일삼는 황태자라며 소문이 돌 게 뻔하다. 그래서 나름대로 모아둔 개인 재산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100만 리브르가 최저가라면 올라가는 낙찰가를 따라잡지 못할 게 뻔했다. 자본주의의 쓴맛을 본 아이들이 시무룩해진 사이. 가장 앞줄에 앉은 이가 패들을 들어 올렸다.
[오. 처음부터 호가가 확 뛰는군요. 200만 리브르 나왔습니다.]
아가레스 역시 패들을 들어 올렸다.
[……살살 올리시지요. 500만 리브르 나왔습니다.]
이 제국 몇 년 치 운영 예산이다. 일국 황제라 하더라도 선뜻 내지 못할 금액. 단 두 번의 호가만에 호시탐탐 낙찰 기회를 노리던 다른 모든 이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패들을 내던졌다. 가장 앞줄에 앉은 이가 다시 패들을 들어 올렸다.
[이건 저희도 예상 못 했는데요. 800만 리브르 나왔습니다.]
아가레스 역시 망설임 없이 금액을 적어 들어 올렸다. 후드 아래 보이는 입매는 여전히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맙소사. 1,000만 리브르. 나왔습니다.]
이쯤 되니 참석자들은 입을 떡 벌리고 두 경쟁자가 누구인지 추측하는 데 눈에 불을 켰다. 둘 다 후드를 쓰고 있음은 물론 어두워서 신원을 식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도에 저 정도 금액을 낼 수 있는 재력가가 둘이나 있었던가! 이벨리아와 이샤트, 루드비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악마가 돌아버린 게 분명하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한들 1,000만 리브르는 이 제국을 사들여도 부족하지 않을 돈이다.
“토끼야. 미쳤어? 그만 그 판때기 내놔.”
“이건 패들이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저자가 생기게 하잖아.”
“뭘!”
“승부욕.”
승부욕에 가산 탕진할 토끼 같으니라고. 도박판에 들어가면 패가망신하기 십상인 습성을 가졌다.
“그러다 거지 되면!”
“네가 키워줘.”
그때였다. 다시 한번 패들을 들어 올리며, 가장 앞줄에 앉은 참석자가 흘끗 고개 돌려 뒤편을 바라봤다. 예리한 눈에 맞서, 아가레스가 후드 아래서 낮게 웃었다. 앞줄에 앉은 참석자가 정확히 이쪽을 바라보는 바람에 이벨리아 역시 그를 스치듯 일별했다. 깊게 눌러쓴 후드. 건장한 체격. 사나운 기세. 그리고 옅은 호롱불 빛을 받아 번뜩이는 금안……. 금안……?
‘잠깐.’
다시 봐도 어둠 속에서 마치 사자의 것처럼 번뜩이는 금빛 눈. 딱 봐도 지기 싫어하는 저 성격. 돈을 물 쓰듯 쓰는 저 경제 관념. 종합해보면 저 사람은……. 이벨리아의 입이 경악으로 벌어졌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