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고장 난 네 남자2021.12.23.
외형 변경 마도구의 효능은 인체를 제외한 사물에까지 적용되지는 않는지, 옷은 휘감는 마력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진 채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벨리아는 아가레스의 망토를 빌려 덮고 있는 채였고, 이샤트 역시 평소 갖춰 입던 습관대로 품이 꽤 넓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우와! 나 좀 봐!”
이벨리아가 신이 난 듯 짹짹 외치며 발딱 일어섰다. 곧장 물의 거울을 만들어 그 안에 자신을 비춰보니, 대략 열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게 내 어른 모습이구나! 내가 크면 이렇게 되나 봐!”
어릴 적보다 덜 구불거리는 부드러운 금발이 허리께까지 내려와 있었고, 엘리시아의 것을 똑 닮은 푸른 눈은 조금 더 유순한 눈매를 띄었다. 통통하던 젖살이 빠져 턱선이 갸름했고, 훌쩍 큰 키는 성숙한 태를 내게 했다. 무엇보다 지금보다 훨씬 길쭉길쭉한 팔과 다리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신기해!”
마치 시간을 달려서 비밀을 조금 엿보고 온 기분이다. 이리저리 몸을 돌리면서 감탄하던 이벨리아가 일순 고개 돌려 물었다.
“나 어때?”
“…….”
어딘지 넋 빠진 표정의 네 남자가 아무 대답 없이 멍하니 응시했다. 항상 나 잘한다고 칭찬해주던 자들이 왜 저렇게 말이 없지. 이벨리아가 가까이 다가가 올려다보며 답을 재촉했다.
“나 어떠냐구. 왜 말이 없어?”
그러자 아드니엘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볼에는 옅은 홍조가 자리한 채였다.
“공녀. 역시 내 부인이…….”
말을 다 맺기도 전에 엔리르가 아드니엘의 볼을 퍽퍽 내리쳤다. 마치 살고 싶으면 정신 차리라는 듯 험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러더니 이번엔 걱정 어린 표정으로 이벨리아에게 말했다. 평소라면 파닥파닥 날아가 어깨에 앉았을 텐데, 왜인지 이번만큼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멀찍하게 떨어진 채였다.
“누나. 누나는 그만 자라도 될 것 같아.”
“왜, 별로야? 난 마음에 드는데!”
루드비히 역시 다섯 발자국 정도 성큼 물러났다. 왜인지 귓가가 뜨끈한 것 같아 두 손으로 귀를 감싸고 웅얼거렸다.
“그래. 그만 자라도 될 것 같다.”
“식량 도둑까지 그렇게 말할 정도야?”
엔리르와 루드비히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자 이벨리아가 마지막 남은 희망, 아가레스에게로 다가가 빤히 올려다보았다. 얼른 칭찬을 좀 해보라는 듯 눈을 반짝이면서.
“…….”
시선을 마주친 아가레스가 큰 손으로 눈가를 덮어 가렸다. 훌쩍 커버린 시선이 낯설었다. 꼬맹이는 꼬맹이일 뿐인데. 꼬맹이가 아닌 꼬맹이라니 어딘가 심히 고장이 나버린 듯했다.
“아스?”
부르는 목소리도 평소 튀는 물방울 소리를 닮은 ‘아스!’가 아니라 잔잔한 호수를 닮은 ‘아스’다. 정상이 아니다. 뭔가 잘못됐다. 그래. 이상하다. 이건 이상하다. 감정 표현과 에두르는 말에 익숙하지 않은 대악마는 느끼는 바를 가감 없이 입 밖으로 냈다.
“……이상하다.”
“이상해? 그 정도야?”
다시 물어도 대답이 없다.
“내가 보기엔 꽤 괜찮은데. 아니야?”
오히려 한 발자국 다가가면 겁을 잔뜩 집어먹은 초식동물들처럼 후다닥 물러나기 일쑤다.
“그렇게 도망까지 갈 수준이야……?”
그 누구도 예쁘다고 해주지 않자 사실 자신의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든 이벨리아는 입을 삐죽였다.
“다들 미적 감각이 영 별로야. 하나는 황태자고 하나는 용이고 하나는 악마라서 그래.”
“맞아. 공녀 엄청 예쁜데. 아마 데뷔탕트 때에는 사교계를 뒤집어 놓을걸!”
마찬가지로 열여섯 정도의 모습으로 변한 이샤트는 미소년인지 미소녀인지 헷갈릴 정도로 호방해 보였다. 황제 세필리아와 똑 닮은 붉은 머리칼이 허공에 휘날리고, 늘어진 입매가 씩 미소 지었다.
“자, 공녀. 우리 예쁜 옷 입어보러 가자. 입고 바깥 구경하자.”
“그래!”
두 소녀가 어디 가서 옷을 구하면 좋을지 재잘재잘 떠드는 동안, 네 남자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뒤에 서 있었다. 루드비히와 아드니엘의 볼과 귀가 붉어지고, 엔리르의 눈이 더욱 몽롱해지고, 아가레스가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장관이었지만 마냥 신난 이벨리아가 눈치채기는 어려웠다.
“나 옷 구할 좋은 곳을 알아!”
“오! 어디 의상실?”
“의상실에 가면 소문이 날 거야. 그러지 말고 빌리자!”
“누구한테서? 아는 어른 영애가 있나?”
“예쁜 옷을 좋아하는 악마 하나를 알아!”
“예쁜 옷을 좋아하는 악마……?”
이샤트의 오묘한 시선이 아가레스를 향했다.
“동(東)마계의 지배자 취향이 그런 쪽이었나……. 음. 그럴 수 있지. 취향은 존중한다.”
“헛소리 집어치워.”
단박에 일갈한 아가레스가 물었다. 여전히 멀찌감치 떨어진 채였다.
“혹시 내 부하를 말하는 거야, 꼬맹이…… 아니, 이브?”
“응! 언니 악마! 항상 옷이 예뻤어. 딱 내 취향이야!”
“그 옷들은…… 아니, 됐다. 네가 입고 싶으면 입어야지.”
감히 흘끗대는 사내들 눈은 내가 처리하면 그만이니. 후. 짧게 한숨 쉰 아가레스가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그러자 피보라와 같은 붉은 연기 속에서 나타난 요염한 몽마가 곧바로 부복했다.
“주군. 부르셨습니까.”
“예쁜 옷을 입어보고 싶다는군. 도와라.”
아가레스의 시선을 따라 고개 돌린 로노베가 경악했다.
“이 인간은 또 누구입니까, 주군! 그 밥풀은 어디 가고 새로운 인간이!”
“안녕!”
“밀가루 반죽 같은 게 어디 감히 반말을!”
“나야, 나! 아야, 엉덩이 아파!”
어린 밥풀이 자신을 부려먹을 때 써먹었던 엄살이 나오자 로노베가 입을 떡 벌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너, 그 밥풀이라고? 아니, 인간 아가들은 이렇게 빠르게 자라나? 마족보다 성장 속도가 더 빠르군.”
“아니. 마도구인데 한 6시간 후면 다시 돌아온대! 이 기회에 언니 악마가 입는 예쁜 옷 나도 입어보고 싶어.”
여전히 크지 않은 손이 당당하게 내밀어졌다.
“옷 좀 줘.”
“내 옷 비싼데.”
“나 돈 많아!”
소중하게 보관하던 곰돌이 지갑이 내밀어졌다. 이를 하찮게 바라보던 로노베가 투덜거렸다.
“됐다. 얼마 살지도 않은 밥풀의 코 묻은 돈을 어디다 써.”
이벨리아와 이샤트를 오두막 안으로 데려간 로노베는 아공간을 뒤져 즐겨 입던 옷 중 그나마 단정한 것들을 몇 벌 꺼내 들었다. 로노베의 취향대로 아주 화려하긴 하였으나, 천이 심히 모자라게 쓰인 옷들은 아예 선택지에서 제외한 채였다.
‘아무거나 입혔다가는 주군께서 내 모가지를 치시겠지.’
밖으로 하나둘씩 꺼내지는 옷들을 보면서 이벨리아가 심통 난 표정으로 볼을 부풀렸다.
“언니. 왜 이것밖에 없어? 더 훅훅 파인 건 없어? 나 모처럼 어른이 되었는데!”
“없어. 있어도 없다. 어디 꼬맹이가 벌써 옷에 눈을 떠가지고는.”
칫. 입을 삐죽인 이벨리아가 개중 가장 예쁜 옷을 집어 들었다.
“나 이거 입을래!”
“……진심이야?”
놓여 있는 옷 중 객관적으로 보기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색감이나 디자인 모두. 아름다운 것에 사족을 못 쓰는 자칭 악마 패션계의 선구자 로노베가 치를 떨었다.
“골라도 제일 안 어울리는 걸 골라? 너 패션 감각 없지!”
“……있어!”
“있을 리가 없지. 매번 남이 골라 주는 옷만 입었을 텐데.”
“이거 입고 머리를 이렇게 이렇게 양쪽으로 묶으면 예쁠 것 같은데.”
로노베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다른 드레스를 집어 이벨리아에게 휙 던졌다.
“그 옷 입고 머리 양쪽으로 묶으면 괴담 속 칼 들고 돌아다니는 인형 같을 거다. 난 고운 얼굴 막 쓰는 것들 딱 질색이야. 두 꼬맹이 모두 오늘은 내 지시를 따른다. 실시.”
아주 예쁘게 바꿔주지. 미에 집착하는 것은 몽마의 본능이다. 그 정점에 선 로노베는 오랜만에 승부욕을 불태우며 화사하게 웃었다. *** 한편 네 남자는 이벨리아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누나가 자라면 저렇게 되는구나…….”
“공녀가 아마 이 제국에서 제일 예쁠 거야.”
“이브에게 날아갈 청혼서들은 황실 차원에서 쳐내야겠어.”
“…….”
“악마는 아주 넋이 빠졌군. 그렇게 놀랐나?”
“……넋 빠지긴 누가. 꼬맹이는 꼬맹이일 뿐인데.”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익숙한 침묵이 자리했다. 아드니엘을 제외한 셋은 제법 오랜 시간을 함께했지만, 그 시간의 대부분을 매개하고 있던 이는 이벨리아다. 중재자가 없어짐에야 그들 사이에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눌 사안은 별로 존재하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마치 어미 닭을 쫓던 병아리들처럼 이벨리아가 들어간 오두막만 응시하는 이들 사이로, 어린 용이 자그마하게 입을 열었다.
“꼭 웨딩드레스를 입으러 간 신부를 기다리는 신랑이 된 느낌이다.”
곧바로 검과 마기가 날아들었다. 예상했다는 듯 방어진을 펼쳐 큰 타격 없이 방어한 용이 고개 돌려 아드니엘에게 조언했다.
“봐. 여기선 말조심해야 해. 넌 저런 거 못 막잖아. 스치면 사망이야.”
화들짝 놀란 아드니엘이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어린 용을 향해 검을 날렸던 루드비히는 귓가가 붉어진 채로 입매를 쓸었다. 엔리르의 말에 괜한 긴장감이 가슴 뻐근하게 차올랐다. 이곳, 이벨리아를 이성적인 감정으로 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낯선 분위기는 잔잔하던 감정을 이유 모르게 술렁이게 하기엔 부족함 없었다.
‘저 멍청한 용은 괜히 신랑 신부 같은 쓸데없는 얘기를 해서는.’
***
“자! 다 됐다!”
로노베가 뿌듯한 표정으로 손뼉을 치며 단장을 마쳤음을 알렸다. 원래 그리 입고 싶다던 드레스를 입혀주고 머리나 조금 만져준 다음 내보낼 심산이었건만. 조금씩 손을 대다 보니 이 꼬맹이들 꾸미는 맛이 아주 달콤했다. 결국, 가지고 있던 화장품까지 꺼내 입술도 살살 칠해주고 볼도 톡톡 두드려주다 보니 제법 오랜 시간이 흘러 있었지만, 결과가 저리 흠잡을 곳 없으니 그만큼 뿌듯하기도 했다.
“꼬맹이들 주제에 꽤 하는군. 너희 지금 잘 기억해두고 있다가 나중에 데뷔탕트 할 때 이렇게 꾸며달라고 해. 알았어?”
멍하니 거울을 보던 이벨리아가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외쳤다.
“와. 언니 정말 대단하다!”
“흥. 보는 눈은 있어서.”
“악마 언니 손은 금손으로 만들어졌어?”
“……기분이다. 네 데뷔탕트 날도 내가 꾸며주지.”
“고마워! 가서 자랑해야지!”
이벨리아는 오두막 문을 쾅 열고 후다닥 뛰어나갔다. 쨍한 붉은 빛 원피스가 기다리던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잠시 인간의 모습을 덧입은 화왕(花王)을 보는 듯했다. 빙그르르 돌자 꽃잎이 만개하는 것처럼 눈앞이 화사하게 피어나 그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어때? 이번엔 안 이상해?”
“…….”
“…….”
“왜 또 말이 없고 왜 또 그렇게 다들 뒤로 물러서? 응? 안 이상하냐구.”
“이상…….”
“하다고 하기만 해봐.”
“하지 않고 예뻐. 역시 우리 꼬맹이야.”
그 말에 해사하게 짓는 눈웃음. 아가레스는 여태 자신도 모르게 꽉 쥐고 있었던 주먹을 풀었다. 그래. 우리 꼬맹이다. 하찮게 으르렁거리는 말투 하며 사납게 치켜뜨는 눈, 천진한 행동과 말투까지. 영락없는 우리 꼬맹이다.
‘내가 뭘 그리 긴장했지. 멍청하긴.’
모습이 조금 바뀌었어도 그의 소중한 친우다. 달라진 건, 그리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긴장이 완전히 풀린 아가레스가 씩 웃으며 한쪽 무릎을 꿇고 이벨리아의 오른손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제가 모시지요.”
“좋아. 잠깐 어른이 된 나를 에스코트하기엔 루이와 엔리르는 너무 작으니까. 오늘은 토끼한테 부탁할래!”
생긋 웃으며 이벨리아가 아가레스의 팔에 손을 올렸다. 그 광경을 부럽다는 듯 바라보던 이샤트도 자신의 남동생 아드니엘에게 물었다.
“야. 난 어때?”
몸을 이리저리 돌리자 단정한 녹색의 드레스가 바람에 찰랑댔다. 음. 녹색 원피스에 붉은 머리라. 아드니엘이 뚱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벨리아를 보던 시선과 달리 얼어버린 동태처럼 무감정한 눈이었다.
“장미 줄기 같아.”
“장미 같다고?”
“장미 줄기 같아.”
“이게!!”
퍽. 다시 한번 참외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공기를 타고 울렸다. *** 마도구의 효력이 풀리기까지 그리 넉넉한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동선은 최소화되었다. 이샤트가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은 에르카디아 제국 보석 경매장. 하르벤타도 화려함으로 지지 않는 제국이기는 하나, 보석에 있어서만큼은 에르카디아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이는 원석의 차이라기보다는 세공 기술의 차이였는데, 에르카디아 제국은 과거 왕국이었던 시절부터 세공 기술 발전에 국가 자원을 아끼지 않고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르벤타에서도 이름 높다 하는 보석들은 에르카디아로부터 수입된 것들이 제법 많았다.
“폐하께서 사절단 비용으로 쓰라고 주신 돈과 내 용돈을 합쳐 보석을 낙찰받을 예정이다!”
보석 경매장에 간다는 말에 자본주의에 물든 어린 용 또한 눈을 빛내며 자신이 살 수 있는 보석이 있을지 금화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보석 경매장에 갔다가 정보 길드에 들르자!”
“좋다. 근데 공녀는 왜 갑자기 정보 길드가 가고 싶은 거야? 사고 싶은 정보가 있어?”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사기보다는 팔고 싶은 정보가 있어.”
“팔고 싶은 정보? 공녀가 가진 정보가 있기는 해?”
“……나도 다 생각이 있어, 이샤트. 아직은 비밀.”
이벨리아가 가려고 하는 곳은 이 제국 가장 뛰어난 정보 길드, ‘파라반트’. 경고성으로 정보를 좀 팔고, 가는 김에 사기도 할 계획이었다.
“그럼 사고 싶은 정보는 뭔데? 공녀 가문에 정보부 있잖아.”
“있으면 뭐 해. 우리 엄마 아빠는 아직 내가 이것저것 다 알기를 원치 않으셔.”
그러니 이왕 어른의 모습이 된 김에 유수의 정보 길드를 찾아가 그간 궁금했던 것들을 물을 계획이었다. 예를 들어 데퐁트 후작이 진짜 죽은 것이 맞는지, 세레스나 리카드는 어디에 있는지 등을. 두 친구가 목적지에 대해 재잘재잘 토론하는 와중.
“황태녀. 나도 마도구 하나 쓴다.”
“누나. 나도.”
“잠깐! 그게 얼마짜린데!!”
루드비히와 아드니엘도 이샤트가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알약을 하나씩 삼켰고.
“느낌이 신기하군.”
루드비히는 훤칠한 청년으로 훌쩍 자란 반면 아드니엘은 지금보다 더 어린아이로 변신하고 말았다.
“……왜 나만…….”
키득키득 웃은 이벨리아가 허리 숙여 눈을 맞추며 머리를 토닥였다.
“미안, 아드니엘. 오늘은 어른들만 따로 놀고 올 테니까, 아드니엘은 오두막 속에서 코 자고 있어.”
늘 엄마 아빠가 하던 말을 자신이 뱉게 되니 참으로 짜릿하다. 이벨리아는 이샤트가 미리 준비해온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눈가를 가리는 가면까지 착용했다. 커다란 후드가 흘러내려 앞이 잘 보이지 않자, 양옆으로 다가온 아가레스와 루드비히가 팔을 내밀었다. 이벨리아가 오른손을 아가레스의 팔에, 왼손을 루드비히의 팔에 올렸다. 보드라운 손이 팔에 와닿자 루드비히는 왜인지 모르게 아주 커다란 죄를 짓는 느낌이 들어 시선을 저 먼 허공으로 돌려버렸다. 눈치채지 못한 이벨리아가 두 친우의 팔을 꽉 붙잡고 당당하게 외쳤다.
“가자! 놀러!”
오늘 나는 어엿한 어른 영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