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저자가 악마입니다!2021.11.15.
그 광경을 지켜보던 루드비히는 눈을 질끈 감았다. 생애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남의 일로 이렇게 대신 수치스러울 수 있다니.’
황비는 어떠려나. 아들을 끔찍하게 아끼니 우리 아들은 마음도 잘 사로잡는다며 대견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 루드비히는 시선을 돌려 황비를 바라봤다. 황비마저 볼이 붉어진 채로 칵테일을 들이켜는 것을 보아하니, 아들의 연애 사업이 가망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나 보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 에드윈이 이브의 마음을 얻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루드비히가 굳이 웃음을 숨기지 않으며 우아하게 차를 머금었다.
‘걱정한 것이 미안할 정도군.’
에드윈이 계속해서 이벨리아에게 이것저것 권하자, 사색이 된 이벨리아는 세상 모든 것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둘러대며 후다닥 도망쳐버렸다.
‘에비. 지지.’
*** 이벨리아는 렐리안이 홀로 앉아 있는 테이블로 쪼르르 달려가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기다렸다는 듯 하인이 건네는 오렌지주스를 한 모금 길게 빨아들이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이브. 표정이 왜 그래요?”
“황자 전하가 아주 이상해. 지지야.”
“원래 소문이 자자해요. 이브의 표정을 보니 소문보다 더한 지지인가 보군요.”
똥 씹은 작은 친구의 표정을 보고 한달음에 달려와 곁에 앉은 아가레스도 다시 물었다.
“왜. 역시 죽이는 게 낫겠어?”
“그건 역모예요!”
“악마를 역모죄로 재판정에 세워보던가.”
“타당한 지적이군요. 그렇다면 찬성이에요.”
“네가 찬성하면 그야말로 역모지, 렐리안.”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는 이벨리아 주변으로는 말을 걸고 싶은 듯 서성이는 이들이 여럿이었으나, 이벨리아는 의도적으로 시선을 두지 않았다.
‘관심을 주는 순간 벌떼처럼 달려들겠지. 귀찮아.’
감히 공녀가 다가올 틈을 주지 않음에야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말을 틀 수 있는 이는 없다. 그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그나마 여지를 주는 엘리시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살짝 우월감이 담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렐리안은 연회장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자기들끼리 모여 속닥속닥 이야기 나누는 무리를 발견했다. 그 무리의 가운데에는 오만한 표정의 세레스가 서 있는 것으로 보아,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을지 추정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렐리안이 보랏빛 눈을 살짝 찌푸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자꾸 저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린댔는데. 정신 못 차렸네.”
“렐리안, 언제 이렇게 입이 험해졌어, 바람직하게?”
볼을 발갛게 붉힌 렐리안이 이벨리아 쪽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는 귀에다가 속삭였다.
“아르칸 오라버니에게는 비밀이에요. 별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요. 오라버니는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봐왔으니까 놀라실까 봐요.”
이벨리아가 별다른 의심 없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칸의 뒤를 슬쩍 눈으로 좇던 렐리안이 아, 하며 새로운 주제를 던졌다.
“아, 이브. 아까 데퐁트 후작 영애와 대화를 좀 나누었는데, 후작가에서 오늘 뭔가 꾸미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럴 것 같았어. 그치만 뭐든 괜찮아. 아스도 있고 렐리안도 있으니까.”
“저요……?”
자신을 대악마와 같은 선상에 놓을 정도로 믿는다는 말일까. 렐리안의 볼이 기쁨으로 붉어졌다.
“하긴, 제가 요즘에 아주 열심히 마법을 배웠거든요. 이제 이브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얼려버릴 수 있어요.”
“나는 꽁꽁 얼려버릴 수 있다.”
“저는 태워버릴 수도 있어요.”
“나는 재로 만들 수 있어.”
“대악마님. 한낱 인간인 저와 꼭 이리 말싸움을 하셔야겠어요?”
“네가 이브의 첫 번째 친구를 자처한 순간부터 너는 한낱 인간이 아니라 내 적이다.”
“…….”
두 친구가 티격태격하는 소리를 들으며 세레스 무리를 응시하던 이벨리아가 유리컵을 내려놓으며 렐리안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저 주황색 단발머리 영애는 누구야? 아주 적극적으로 내 욕을 하고 있나 본데.”
“아. 델포이 자작가의 영애예요.”
익숙하지 않은 가문이다. 그런 가문의 영애가 자신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서 저렇게 열심히 영애들을 선동하고 있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어딘지 찝찝해진 기분에 한숨을 푹 내쉬는데, 교묘하게 자세를 바꿔 영애들을 시야에서 가려버린 아가레스가 대뜸 물었다.
“꼬맹이. 새우 먹을래?”
“응, 먹을래!”
“잠시만 기다려.”
아가레스는 곧장 핑거푸드가 놓인 테이블로 걸어가 접시에 새우를 가득 담아온 다음, 하나하나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렐리안이 경악하는 표정으로 아가레스를 바라봤다.
‘무려 대악마가 새우 껍질을 벗기고 있다니.’
이벨리아가 발을 까닥이며 새우에 손을 뻗자, 아가레스가 그 손을 부드럽게 잡아채 원래 있던 자리에 놓아두었다.
“그거 껍질 그냥 먹어도 되는데.”
“입 다쳐.”
“새우 껍질인데?”
“새우 껍질에도 너는 다쳐. 아.”
입을 벌리자 깔끔하게 벗겨진 새우가 입에 쏙 들어왔다. 너무 큰 것은 잘게 잘라 입에 넣어주어 먹기가 아주 편했다.
‘이 토끼 일 잘하네.’
아가레스 덕에 어느 정도 배가 차니 표정도 노곤하게 풀어졌다. 이참에 참석자들하고 표면적으로나마 교류를 조금 해볼까 싶어 일어서려는데.
‘뭐야. 왜 이쪽으로 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레스 무리에서 자신을 실컷 욕하던 주황색 머리 영애가 생긋 웃으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설마 나한테 인사하려고? 염치도 없이?’
자신을 깎아내리는 인간도 싫지만, 앞뒤가 다른 인간은 더욱 최악이다. 이벨리아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로 주황색 머리의 영애를 빤히 바라봤다. 만일 인사를 건넨다면 아주 본때를 보여줄 요량이었다. 그녀가 지척까지 다가와 드레스 자락을 살짝 움켜쥐고 고개를 숙였다. 제법 귀엽게 생긴 영애는 세드릭 또래 정도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공녀님. 이리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델포이 자작가의 카밀라라고 합니다.”
“반갑네, 영애. 아까는 저쪽에서 꽤 재미를 보는 것 같던데.”
이벨리아가 여상한 표정으로 마주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뼈가 있는 말과 함께. 당황할 것이라 생각했던 카밀라는 오히려 담담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요. 꽤 재미있던걸요.”
“그렇다면 나와 재미를 보기는 어려울 거야. 나는 줄을 넘나드는 이를 좋아하지 않거든.”
“그러실 것 같았어요.”
한쪽 입꼬리를 씩 올려 웃은 카밀라가 작은 쪽지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이름과 가문이 제법 길게 적혀 있는 리스트였다. 이벨리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쪽지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이게?”
“제가 공녀님에 관해 이야기할 때 동조한 이들이에요.”
“……?”
“말 그대로, 공녀님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슬쩍 흘리니 본인들이 더 신나서 살을 붙이더군요.”
쪽지를 바라보는 눈이 옅게 반짝였다. 그러니까. 이건.
“공녀님께는 피아식별서 정도가 되겠네요.”
친구들에게는 말랑하다고 해도 이벨리아는 이 제국 단 하나뿐인 공녀.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탐색하는 듯한 푸른 눈이 카밀라의 표정을 샅샅이 훑었다.
“이걸 왜 나에게 주는 거지?”
“그렇게 보지 마셔요, 공녀님. 저희 가문은 한미한지라. 늘 줄을 잘 잡아야 한다고 배웠거든요.”
카밀라가 턱에 닿는 단발머리를 쓸어 넘겼다.
“기왕 잡을 거라면 끊어지지 않을 줄을 잡아야죠. 오늘 보니 단단한 줄은 이쪽인 것 같고요.”
“…….”
이벨리아가 긍정 없이 고개를 기울이자, 카밀라가 애써 환하게 웃으며 리스트를 더 바짝 내밀었다. 아무리 당찬 성품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실상 이벨리아의 말 한마디라면 목이 날아갈 지위에 있다 보니, 조금씩 떨리는 손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제게 잡힌 줄이 되어주세요, 공녀님. 저는 공녀님의 손에 들린 패가 되어드릴 테니까.”
“난 가치 없는 패는 쥐지 않아.”
어떤 것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 카밀라는 답했다.
“한미한 귀족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과 사건의 수집, 공녀님과 후작 영애께서는 손 더럽힐까 하지 못하시는 여론의 조성, 배신, 뒤처리.”
“흐음.”
“이 정도면 감히 공녀님이 사용하시는 패 중 하나가 될 수 있을지요?”
함부로 제 사람을 늘리지 않는다. 잠시 고민하던 이벨리아는 카밀라가 내민 쪽지를 검지와 중지로 잡아 아가레스에게 넘겼다.
“그 머리색부터 꽤 마음에 들었어.”
*** 카밀라와 통성명한 이후, 이벨리아는 주최자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고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와 동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던 이들이 굶주린 이리 떼처럼 우르르 몰려들었다.
“공녀님!”
“경축드립니다, 공녀님!”
때로 카밀라처럼 운이 좋아 초대장을 얻은 한미한 가문의 귀족들을 만날 때면, 지나치게 절절매 오히려 부담스럽기도 했다.
“아이고. 공녀님. 이리 초대해주셔서 가문의 영광입니다. 이 멜라니 남작! 은혜를 평생 잊지 않고 각골난망하겠습니다!”
“……반갑네, 남작. 부디 좋은 시간이 되기를…….”
“공녀님! 소인과 조금만 더 대화를 나눠주시지요! 저쪽에 아주 맛있는 새우가 있다고 하던데. 혹시 소인이 한 새우 올려도 되겠습니까?”
“새우는 이미 배가 터지게 먹어서.”
“그렇다면 혹시 소인이 한 고기 올려도 되겠습니까?”
“고기 알레르기가.”
그렇게 기껏 떼어두고 한 발짝 옮길 때마다 새로운 이들이 벌떼같이 달라붙기 일쑤였다. 이벨리아의 근처로 참석자들의 밀도가 점점 높아졌다. 인사를 마친 이들이 바로 빠져나가지 않고 여전히 곁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쪼그마한데 사람들이 몰려오니 파묻히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이브 깔린다!’
기어코 참석자들 사이에 묻혀버린 이벨리아가 기어코 입버릇대로 금지령을 외쳤다.
“으, 으아! 이브 금지령! 이브 금지령!”
앗, 방금 이브 금지령은 조금 방정맞았다. 이벨리아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위엄 있는 표정과 목소리로 다시 한번 또박또박 명했다.
“이브 금지령!”
엣헴. 방금 제법 권위 넘쳤다. 이 정도면 다들 겁을 먹었겠지. 이젠 나한테 막 달려들지 않겠지. 뿌듯한 표정으로 좌중을 훑어보려는데. 든든한 팔이 이벨리아를 번쩍 안아 올렸다.
“이브 금지령이 들리더구나.”
“아빠아-.”
사람들이 나를 발에 밟힌 젤리처럼 만들려고 해요. 다부진 품에 안기자 시야가 훌쩍 높아진 것이 마음에 들었다. 높은 곳에 있으니 한층 더 위엄 있겠지. 듬직한 아빠의 목에 팔을 두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야. 왜 다들 웃고 있어?’
내가 무려 금지령을 내렸으면 아주 벌벌 떨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벨리아가 눈을 살짝 찌푸리며 툭 내뱉었다.
“내가 이브 금지령을 내렸는데 아무도 안 무서운가 봐?”
참석자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가장 앞에 서 있던 자작이 활짝 웃으며 냉큼 고개를 숙였다.
“무섭습니다, 공녀님!”
“아이고, 살려만 주십시오!”
“위엄 넘치셔라!”
“…….”
아닌데. 안 무서워 보이는데. 묘하게 부모님이 자신을 볼 때 짓는 표정들과 비슷하다. 슬쩍 물의 거울을 만들어 아까 지은 표정을 다시 지어보았다. 눈을 치켜뜨고 볼을 부풀리고 입을 앙다물었다.
‘아무리 봐도 아주 사나운 표정인데. 왜 아무도 안 무서워하는 거야.’
자존심이 상한 이벨리아는 아빠에게도 똑같은 표정을 지어 보여주었다.
“아주 무서운 표정이로구나. 우리 아가가 화가 많이 났군.”
거 봐. 무서운 표정 맞지. 제국의 소드마스터가 무섭다는데 무서운 거 맞다. 기분이 풀린 이벨리아가 사르르 웃으며 휴고의 목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 데퐁트 후작과 세레스는 아르티나 공작가 일원들에게 인사 올 마음 따위 일절 없었다. 어차피 오늘이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가문이다. 연회장 가운데 느긋하게 앉아 있던 데퐁트 후작은 브로치에 박아둔 구슬을 흘끗 보며 작게 혀를 찼다.
‘반응이 없잖아.’
오류가 있을 리 없다. 이 구슬은 오랜 기간 신과 동일한 힘을 얻기 위해 연구를 거듭한 연금술의 산물이다.
‘거리 때문에 감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나 본데. 어쩔 수 없군.’
데퐁트 후작은 손짓으로 세레스를 불러 이벨리아와 아가레스가 있는 테이블로 가까이 다가갔다. 후작이 지척으로 다가오자, 이를 가장 먼저 알아챈 휴고가 불쾌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냈다.
“후작.”
“각하. 이리 영명하신 공녀님이 계시니, 이 제국의 홍복이 아니겠습니까. 감축드립니다.”
이게 왜 이렇게 살갑게 구나. 휴고가 답 없이 한쪽 눈썹을 슬쩍 올렸다. 영혼 없는 인사를 전한 후작은 브로치를 흘끗 내려다 봤다. 동시에 입꼬리가 경련했다.
‘……색이 변했군.’
역시 맞았다. 틀릴 리가 없었다. 공녀의 곁에 바짝 붙어 앉은 저 사내는, 공녀를 곧 부서질 새끼병아리 대하듯 애지중지하는 저 사내는.
‘악마다.’
후작은 폭소를 터뜨리고 싶은 것을 애써 내리눌렀다.
‘드디어! 드디어 아르티나를 잡았다!’
아르티나가 그토록 아끼던 공녀로 인해 멸문지화를 피하지 못하게 될 것이니, 이 얼마나 달콤한 광경이 될 것인가! 볼 일은 다 끝났다는 듯 차갑게 돌아선 후작은 조금 전 이벨리아가 개회사를 했던 단상 위로 올라가 두어 번 손뼉을 쳤다. - 짝, 짝, 짝. 참석자들의 시선이 단상 위로 쏠렸다. 당연히 아르티나 가문이나 황실의 일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 자리에 뜬금없이 데퐁트 후작이 서 있자 참석자들의 표정에 의구심이 어렸다. 후작이 이벨리아의 키에 맞춰진 소리 증폭기를 잡아 뜯듯 위로 뽑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최근 제국에는 마물을 비롯한 악마들이 기승입니다. 불과 얼마 전 치러진 토벌전에서도 무려 두 악마가 현현했지요.”
이토록 불안정한 정세에 정령왕을 불러낸 공녀에 대한 축하인가 보다.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공작 각하께서는 마물을 소환한 미로네 백작과 그를 이용하여 공녀님을 살해하려 했던 영애를 지엄한 제국법에 따라 처형하셨습니다. 아주 온당하게도.”
그 사안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데퐁트 후작은 긍정을 표하는 참석자들과 눈을 맞추며 유려하게 말을 이었다.
“마족을 소환하거나 마족과 내통하는 것은 모두 중죄로 다스렸기에, 그나마 이 제국이 이렇게나마 재건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대목에서는 참석자 일부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게 지금 이 장소와 무슨 연관이 있는가. 후작이 비탄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만일 고위 악마와 내통한 자가 있다면 어찌해야겠습니까.”
“……!”
이벨리아의 푸른 눈이 크게 뜨였다. 자신을 가리키지 않았지만, 그 대상이 자신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꾸미고 있는 일이 저거였어? 내 토끼를 이용해 나를 엮어 넣으려고?’
당혹감에 얼어버린 사고가 제대로 흘러가기도 전이었다. 참석자들이 무슨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 소리쳤다.
“고위 악마와 내통한 자가 있다면 당연히 사형이지요!”
“마물도 아니고 고위 악마라니! 제국을 팔아넘기겠다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그냥 사형은 호상이지요! 삼대를 거열형에 처해야 마땅합니다!”
“아니,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겁니까? 악마와 내통한 이가?”
“그렇지 않고서야 후작 각하께서 굳이 이 자리에서 저런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있다는 소리지요!”
참석자들이 동요했다. 고성이 오갔다. 누구인지 밝히라는 요구가 귀 따갑게 연회장을 메웠다. 그 요구에, 데퐁트 후작이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참석자들의 시선이 팔을 따라 옮겨졌다.
“……!”
“……!”
이어 누구도 빠짐없이 경악한 표정을 띠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참석자들을 향해, 데퐁트 후작의 포고가 다시 한번 날아들었다.
“저자. 아르티나 공작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저자가 바로 악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