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저는 공녀가 좋습니다!2021.11.08.
생전 들어본 적 없는 망언이 세레스의 귀를 찔렀다.
“지금…… 지금 뭐라고!”
모욕적이다. 감히. 감히 이까짓 게!
“닥치라고 했어. 주제넘게 여왕벌처럼 굴며 소란 피우지 마. 여긴 엄연히 너보다 신분이 높으신 공녀님께서 주최하는 연회장이야.”
세레스가 찻잔을 집어 던지려다가 이곳이 연회장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고는 탁자에 거칠게 내려두었다.
“하! 어리석어, 렐리안.”
분노를 숨기지 못하는 목소리가 속절없이 떨렸다. 꺼지지 않는 질투와 꺾을 수 없는 자존심이 그 안에 가득 담겨 있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지금이라도 줄 제대로 서는 게 좋을 거야.”
휙 돌아서 걸어가는 세레스의 뒤로, 렐리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 황제나 황태자가 귀족이 주최하는 연회에 참석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더욱이 귀족의 사택에서 개최되는 연회에 행차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황제를 비롯한 황비 베나카, 황태자 루드비히, 황자 에드윈까지. 모두 참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회의 이유가 무려 에르카디아 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것에 그 무엇보다도 도움이 될, 정령왕 소환이었으니 말이다. 가장 좋은 곳에 마련된 상석에 앉아 인사를 올리는 귀족들을 대강 눈으로 훑으며, 황제가 휴고에게 물었다.
“우리 공녀는 어디 있는가?”
“연회의 주인공 아닙니까. 아직 준비 중이지요. 조금 늦는다고 하여 너무 노여워 마십시오. 그리고 ‘우리’라는 호칭은 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 공녀는 얼마든 늦어도 돼. 무려 정령왕의 계약자에게 내가 성질낼 수나 있을까!”
바로 옆에서 화려한 분칠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황비가 자색 칵테일을 집어 들며 말했다.
“공작. 공녀가 이제 아홉 살이던가요.”
황후라면 몰라도 제국법상 정해진 명징한 신분이 없는 황비는 공작 정도의 고위 귀족에게 대뜸 말을 낮추긴 어렵다. 휴고는 익숙하다는 듯 답했다.
“그렇습니다.”
“슬슬 정혼자를 정해야 할 나이인 것 같은데.”
이 제국의 흠 없는 국모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자애로운 미소가 가득 머금어졌다. 은근히 에드윈의 어깨를 툭툭 털어주는 것이, 마치 휴고의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려 하는 것만 같았다.
“아직 이르지요. 게다가 정혼자는 필요 없습니다.”
“정혼자가 필요 없다니요? 혹시 이미 마음에 두고 있는 영식이 있나요?”
“제 마음이 이브의 정혼자를 정하는 데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지요.”
“……공녀가 원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정혼자로 삼겠다는 말입니까?”
“이브가 원한다면, 저와 합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만 검을 다룰 줄 알고, 제 아내와 지식을 겨룰 수 있을 만큼만 현명하고, 아르칸과 세드릭 사이에서 기가 죽지 않는 대범함과 공작저에 서식하는 여우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을 용감함 정도만 갖추고 있으면 족하니, 역시 이브의 의사가 가장 우선이겠군요.”
“……그 정도면 공녀의 의사가 문제가 아닌데.”
황제의 시선이 느리게 루드비히를 향하고, 루드비히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에드윈. 요즘 네 검술이 제법 출중해졌다고 황실 기사단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하던데.”
“예, 어머니. 최근 밤낮으로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제 모르는 황비와 황자는 공작의 눈에 들겠다는 일념으로 자화자찬을 시작했다.
“최근 전술집을 읽는 것에도 그리 열심이라지.”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는 것이 그리도 즐겁더군요.”
휴고는 속에서 북받치는 코웃음을 밖으로 내뱉지 않고자 무던히 노력했다.
‘저 고양이 솜방망이 같은 손으로 검술이 출중하긴 무슨.’
검술을 부단히 익혔다면, 저기 황태자의 손처럼 굳은살이 잔뜩 박여 있어야 옳다. 황자의 저 말랑말랑한 손바닥은 진검은커녕 장난감 목검조차 제대로 잡았다고 보기 어려웠다.
‘여기 있다가는 기어코 황족을 시해하고 말 것 같으니 자리를 떠야겠군.’
휴고는 대강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고서는,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 딸에게 가보아야겠다는 핑계로 자리를 떴다. 한편 적극적인 어필에도 불구하고 휴고의 표정이 영 시큰둥하자, 황비는 황제에게 기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에드윈도 이제 정혼자를 찾을 나이가 되기는 하였지요.”
“방금 공작의 말대로 당사자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지 않겠나. 차후 에드윈이 마음에 드는 영애가 생기거든 내게 살짝 일러주게.”
남은 칵테일을 단숨에 들이켜며, 황비가 마치 장난꾸러기 아들을 대하듯 에드윈의 머리칼을 헝클었다.
“우리 에드윈은 이미 마음에 둔 영애가 있답니다.”
“오, 그래? 누구냐, 에드윈? 이 아비는 까맣게 몰랐구나.”
악독한 성격을 황제의 앞에서만은 제법 잘 감추는 에드윈이 애교 많은 아들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에드윈은 황제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더니, 천진한 눈망울로 위를 바라보며 해사하게 웃음 지었다.
“폐하, 저는 공녀가 좋습니다.”
“……공녀가?”
황제의 얼굴에 난처함이 내려앉았다. 다른 귀족 영애들이라면 그 혼처가 황자라고 함에야 거절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황가의 일원이 될 기회는 모든 가문과 영애들에게 꿈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나 아르티나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벨리아는 황태자비나 황자비가 아쉬울 것 없을 정도의 권세를 이미 누리고 있었고, 평생을 누릴 테니.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루드비히와 공녀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이거 곤란하군.’
황제가 말을 고르는 사이. 지금껏 조용히 연회장을 내려다보던 루드비히가 천천히 에드윈에게 시선을 돌렸다.
“탐내지 말거라, 아우야. 감히 네까짓 것이 눈에 담을 아이가 아니다.”
“형님?”
“-라고 분명 경고했던 것 같은데.”
일전에 황궁 복도에서 했던 말을 재차 읊자, 에드윈의 왼쪽 눈이 살짝 경련했다.
“너무하십니다, 형님. 아우의 마음을 이리 짓밟으시다니요.”
“그래요, 말이 지나치십니다, 황태자. 아우가 공녀에게 마음을 품고 있다면 나서서 도와주어도 모자랄 판에……!”
루드비히의 입가에 서늘한 비소가 맴돌았다. 일평생 홀로 칼날 위를 걸어온 황태자의 눈빛 역시, 그가 걸어온 길과 크게 차이 없이 날카로웠다.
“헛소리 마십시오. 그 누구도 이브에게 누구와 연을 맺으라며 등 떠밀 수 없습니다.”
“설마 황태자도 공녀에게 마음을 품고 있어서 이러는 겁니까?”
“제 마음이 뭐가 중요합니까. 그 무슨 일에든 이브의 마음이 우선인 것을.”
에드윈이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애매하게 말하긴. 결국 자기도 관심을 두고 있어서 이러는 것이면서.’
그렇다면 더더욱 잘 되었다. 형님이 갖고자 염원하는 것이라면 빼앗는 것조차 즐거우리라. 에드윈이 잘 정돈된 머리를 매만지며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공녀가 저를 좋아하면 문제없다는 거로군요, 형님.”
에드윈은 자신 있었다.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외모에, 황자라는 든든한 신분, 나쁘지 않은 무예 실력과 나날이 일취월장하는 배움. 요모조모 비춰봐도 자신보다 잘난 또래 영식은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공녀가 자신에게 마음을 주는 것도 시간문제이리라. 한편 루드비히는 눈썹을 과하게 위로 올리고 좁은 어깨를 애써 넓게 편 이복동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브가 꼴뚜기랬는데. 닮긴 했군.’
꼴뚜기 황자라고 부르던 친우의 말을 생각하면서 온갖 개폼은 다 잡고 있는 에드윈을 보자, 그 얍삽한 얼굴에 해산물이 겹쳐 보이면서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결국, 루드비히는 약 십여 년 만에 에드윈의 앞에서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왜 웃으십니까, 형님?”
고개 들어 다시 얼굴을 보아도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큭큭.”
루드비히는 그렇게 한참을 더 웃다가 입꼬리에 남은 웃음을 겨우 털어냈다. 그러고선 에드윈에게 바짝 다가서서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진지한 표정으로 토닥이는 손길이 제법 안쓰러운 이를 대하는 것 같았다.
“형님?”
“우리 이브 눈은 바닥에 달리지 않았다.”
*** 그렇게 렐리안과 세레스가, 루드비히와 에드윈이 전초전을 벌이고 있을 무렵. 이벨리아는 준비를 끝마치고 다시 침대에 벌렁 드러누우려다가, 드레스와 머리가 망가진다는 테사의 잔소리를 듣고 비척비척 소파에 앉았다.
“연회 시작도 전에 이미 연회가 끝난 기분이야.”
“공녀님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회이니 힘드시더라도 조금만 더 참으시지요.”
옆에 붙어 앉은 아르칸이 잘 정돈된 여동생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우리 아가가 이렇게 힘들어하니 앞으로 연회는 열지 말아야겠다.”
“그거 좋은 생각이야. 오라버니, 나 저기 초콜릿 하나만.”
아르칸이 초콜릿 포장지를 벗겨 입에 쏙 넣어주는데, 발코니 쪽에서 똑똑, 정중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발코니로 들어올 사람…… 아니 존재는 누군지 묻지 않아도 뻔하다. 이벨리아는 낮게 웃으면서 짐짓 물었다.
“숙녀의 방 발코니에 멋대로 침입하다니. 누구시죠?”
“그대의 충성스러운 악마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레이디?”
장난을 받아주는 악마 친구의 너스레에 까르르 웃으며 이벨리아가 발코니 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아가레스가 난간을 훌쩍 넘어 방 안으로 들어왔다.
“토끼, 옷이……!”
평소 입던 옷과는 달리 깔끔한 연미복을 입은 모습이 제법 어울렸다. 이벨리아가 바짝 다가서며 고개를 갸웃했다.
“토끼도 연회에 참석하려고 왔어?”
“아니. 네 곁에 있으려고 왔지.”
시선을 마주치며 환하게 웃는 여동생과 악마의 모습에, 아르칸이 눈을 찌푸리며 사이에 끼어들었다.
“악마. 에스코트는 내가 한다.”
“누가 뭐래.”
“웬일로 이렇게 순순하지? 네가 한다고 우길 줄 알았는데.”
어디선가 가져온 꽃 몇 송이를 이벨리아의 손에 쥐여주며, 아가레스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난 인간계의 작위가 없잖아. 내가 에스코트를 하면 우리 꼬맹이에게 흠이 될 수 있어.”
“에엥, 왜 그런 걸 신경 써? 누가 감히 나한테 흠을 운운해? 난 상관없어!”
“난 상관있어. 네 곁에 완벽하지 않은 것 하나라도 있는 꼴, 난 못 봐. 그게 나라면 더더욱.”
“그럼 난 평생 토끼 에스코트는 못 받아?”
아가레스가 이벨리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작은 신발을 발에 신겨주었다.
“곧 받을 수 있게 될 거야.”
고개 들어 씩 웃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강아지 같아, 이벨리아는 친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 나가기 전에 잠깐만. 운디네!”
허공에서 물방울을 퐁퐁 튀기며 나타난 운디네가 꼬리를 찰박찰박 휘둘렀다. 아주 흥분한 모양새였다.
[계약자! 계약자! 내가 다 듣고 왔지!]
난데없이 뭘 듣고 왔다며 시끄럽게 구는 물고기 정령에, 아가레스와 아르칸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이벨리아를 바라봤다.
“아, 연회장에서 무슨 이야기들이 돌고 있는지 듣고 오라고 했거든. 특히 꼴뚜기 황자랑 세레스 위주로.”
“……우리 아가 언제 이렇게 똑똑해졌지.”
“……우리 꼬맹이 언제 이렇게 닭이 되었지.”
오라버니와 친구의 칭찬에 씩 웃은 이벨리아가 운디네에게 말해보라며 손짓했다. 운디네가 허공을 한 바퀴 휘돌더니 이벨리아의 무릎 위에 앉아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표독스러운 먼지는 렐리안한테 까불다가 렐리안이 닥치라고 했어.]
“……너 제대로 들은 거 맞아? 렐리안이 닥치라고 했다고?”
[응.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싶지 않으면 조동아리 닥치라고 했어.]
갑자기 운디네가 하는 보고의 신뢰도가 확 떨어졌다.
[그랬더니 표독스러운 먼지가 오늘 무슨 일이 있을 줄 아냐면서 렐리안한테 줄 잘 서라고 했어.]
다시 신뢰도가 약간 올라갔다.
“역시. 데퐁트 후작가가 아무 준비 없이 내 축하연에 참석할 리가 없지. 또 다른 이야기들은 없었어?”
[있었어. 황태자 옆에 있는 은발 머리 꼬맹이. 누구야?]
“꼴뚜기.”
[응. 꼴뚜기가 우리 병아리랑 혼인하고 싶대. 황제한테 말했어.]
“…….”
“…….”
아르칸과 아가레스 사이에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천천히 시선을 돌린 아가레스가 운디네를 응시하며 한 음절씩 강조했다.
“혼인.”
[응. 혼인이라고 했어.]
아르칸이 이벨리아의 방 장식장을 열어 검을 찾으며 짓씹듯이 읊조렸다.
“개새끼가. 주제 모르는 황족은 늘 단명하는 법이지.”
“잠깐, 불경한 오라버니. 검 찾지 말아봐.”
아르칸을 말리려고 종종 뛰어가는데, 뒤에서 서늘한 마기가 느껴졌다. 돌아보니 아가레스의 몸에서는 여태 본 적 없는 거대한 마기가 일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헉. 내 토끼가 시꺼먼 토끼가 됐다.’
이벨리아가 호다닥 달려가 흩뿌려지는 마기들을 어디론가 날려버리려는 듯 손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토끼까지 왜 이래!”
“오늘부로 이 제국 황가는 끝이다.”
“그럼 이 제국은 어쩌고!”
“이브, 네가 해. 황제.”
아가레스의 손에서 나는 우드득 소리가 곧 에드윈의 척추에서 똑같이 나게 될 미래가 보였다.
“잠깐, 잠깐! 오라버니랑 토끼 잠깐!”
“목은 내가 벤다.”
“혀는 내가 가져가지.”
이벨리아의 만류는 들리지도 않는 듯, 긴 다리들이 휘적휘적 잘만 걸어갔다. 연미복을 입은 아가레스의 등 위에서 근육이 사납게 꿈틀거리는 것으로 보아, 아주 분노한 것이 분명했다.
‘이러다 내 축하연이 즉위식이 되게 생겼다!’
아르칸과 아가레스의 옷자락을 잡고 뒤로 끌어보았으나, 무식하게 힘만 센 두 남자는 오히려 이벨리아를 대롱대롱 매달고 문 쪽으로 걸었다.
‘이렇게 된 이상 특단의 조치다.’
-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이벨리아가 마치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서러운 얼굴로 처량하게 땅을 바라보았다.
“나 오늘 축하연 엄청 기다렸는데……. 오라버니랑 토끼가 가서 꼴뚜기 목을 베어버리면 나는 축하연을 하나도 못 즐기는데……. 내가 연회를 주최하려면 성인이 되어야 하니까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하는데…….”
“이브!”
“둘뿐인 오라버니와 소중한 친구가 내 축하연을 망쳐버리려고 하다니. 나 배신감에 끙끙 앓을 것만 같아.”
“……그건 안 되지.”
“잘못했어. 미안해.”
아르칸이 검을 내려뜨리고 아가레스가 마기를 진정시켰음에도 이벨리아의 시선이 불신을 가득 담자, 아가레스가 몸을 낮추어 시선을 맞추었다. 마치 항복하듯 두 손을 들어보이면서.
“자, 봐. 마기 없앴어. 네 앞에서는 이렇게 착하게 굴잖아.”
“진짜? 진짜 착하게 굴 거야?”
“네가 원하면 늘 착하고 얌전하지.”
악마 친구의 아양에 소리 내 웃은 이벨리아가 아가레스의 손을 잡고 일어서며 말했다.
“꼴뚜기의 청혼은 거절하면 그만이야. 하지만 데퐁트 후작은 마족과도, 금제탑과도 관련 있을 수 있는 자야. 조심해.”
문밖으로 한 걸음 나서면서, 이벨리아는 마치 전투를 앞둔 기사처럼 어깨를 돌려 풀었다. 감히 내 축하연을 망치려 들어. 감히 우리 렐리안에게 또 시비를 걸어. 그들이 열심히 꾸민 계략이 무엇이든, 크게 두렵지 않았다.
“여차하면 이 제국을 물바다로 만들어버려야지.”
이벨리아가 손목을 돌리며 음산하게 웃었다.
“자,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