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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화: 살롱의 새로운 주인 (86/323)

86화: 살롱의 새로운 주인202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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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롱. 힘깨나 쓴다는 귀족들이 다양한 문화생활을 향유하기 위해 후원금을 내어 수도 일각에 저택을 짓고 여러 지원 물품을 내놓아 마련된 공간. 그 명성만큼이나 제법 화려한 대저택 안, 책을 읽으며 깊은 토론을 나누는 방은 ‘살롱드메’라고 불렸다. 그 살롱드메의 문이 열리기 몇 시간 전부터 귀부인들이 살롱의 응접실에 모여 앉아 사교계 이슈를 화두로 삼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통상적인 풍경이었다. 보통은 다양한 가십거리 중 관심이 있는 주제에 따라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담소를 나누었으나, 오늘만은 달랐다. 한 귀부인이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을 흥미로운 주제를 입에 담았기 때문이다.

16549740947811.jpg“살롱에 가장 많은 누적 후원금을 낸 가문이 주최자의 자리에 앉는 건 다들 아시지요?”

16549740947811.jpg“그럼요. 그래서 데퐁트 후작부인과 후작영애께서 변함없이 주최자의 자리에 앉으셨잖아요.”

귀족들이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아 만든 살롱이라고 하더라도 후원금액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는 법. 본디 가장 많은 후원금을 누적한 가문이 ‘살롱의 주최자’로서 상석에 앉아 토론을 이끌어갈 권리를 가졌다. 돈이라면 아쉽지 않게 굴린다는 귀족들 사이에서도 돋보이는 후원금을 쾌척하려면 단연 제국 내 최상의 경제력을 가지는 가문이어야 했다. 덕분에 데퐁트 후작부인은 매번 가장 상석에 앉아 거드름을 피웠더랬다. 덤으로 후작영애인 세레스 역시.

16549740947811.jpg“그랬었지요. 그런데 말이죠-.”

베르트 백작부인이 사방을 슥- 둘러보며 모두가 자신의 말에 주목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만족스러운 반응이다. 이어 목소리를 낮추어 작게 속삭였다. 우리만의 비밀이라는 듯 눈을 찡긋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16549740947811.jpg“이번 모임부터는 주최자가 바뀌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무려 자타공인 사교계 마당발로 통하는 베르트 백작부인의 말이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보다 뜨거운 화두가 있을 리 없다. 근 10년간 변한 적 없던 주인이 바뀌다니! 각자의 무리에서 고고한 표정으로 귀만 쫑긋 세우고 있던 부인과 영애들이 백작부인의 근처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16549740947811.jpg“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살롱의 주인은 항상 데퐁트 후작부인이셨잖아요.”

16549740947811.jpg“설마 데퐁트 후작가보다 더 많은 후원금을 쾌척한 가문이 있다는 건가요?”

16549740947811.jpg“그럴 리가요! 데퐁트 가문은 가진 재원 중 적지 않은 부분을 이 살롱에 투자한다고 들었는걸요.”

삽시간에 곁에 붙어 허둥대는 꼴들이 마치 고깃덩이를 빼앗긴 이리들 같았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정보를 물어온 백작부인이 요요하게 웃으며 부채를 살랑댔다. 자, 자, 새로운 권력자 앞에 줄들 서라고.

16549740947811.jpg“백작부인, 혹시 어느 가문인지 귀띔이라도 받으신 것이 있나요?”

16549740947811.jpg“후원금액은 철저히 기밀로 유지되는 것은 다들 잘 아시면서. 그러니 새로운 주최자 역시 개회 전까진 알 수가 없죠.”

백작부인이 의뭉스레 모른 척을 했다. 속마음은 전혀 다르게 먹은 채였다.

16549740947811.jpg‘그분께서 굳이 나를 콕 집어 이런 임무를 맡기시다니. 잘 해내어서 관계를 좋게 다져두면 분명 우리 가문에도 큰 도움이 될 거야.’

그 드높은 분께서 먼저 필요하다며 손을 뻗어주셨다. 당장에라도 뽐내고 싶을 만큼 자랑스러웠지만, 그런 기색은 아예 없는 것처럼 숨겨낼 수 있었다.

16549740947811.jpg‘적당히 바람만 잡으면 그만이라고 지시하셨지만, 이왕 맡겨주신 것, 최대한 극적인 효과를 내야지.’

백작부인은 괜히 다른 가문을 끌어들였다.

16549740947811.jpg“추측하자면, 그래도 종종 참석하셨던 카시스 후작가 정도가 아닐까요?”

귀부인들이 냉큼 미끼를 물었다.

16549740947811.jpg“타당하네요. 카시스 후작영애께서도 슬슬 얼굴을 비추실 나이가 되셨으니까요.”

데퐁트 후작 가문을 재력으로 누를 가문이라면, 엇비슷한 카시스 후작가 정도가 아닐까. 대다수가 동의했다. 그러자 베르트 백작부인이 또 다른 선택지를 제시했다.

16549740947811.jpg“아, 이세르나 백작가도 있겠군요. 백작부인께서 또 얼마나 살롱에 관심이 많으신데요.”

16549740947811.jpg“하긴, 백작부인께선 거의 매번 참석하셨죠!”

16549740947811.jpg“맞아요. 게다가 요즘 이세르나 백작가가 추진한 교역이 대성했다는 소식은 다들 들어보셨잖아요?”

이후로도 의견은 분분했다. 위세와 재력, 위엄과 품위, 살롱에 대한 관심을 겸비한 가문들은 한 번씩 입에 오르내렸다. 단, 아르티나 공작 가문만 제외하고. 아르티나는 살롱의 탄생 이후 일절 관심도 걸음도 없었으니,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만일 참석을 한다고 하더라도 타 가문들이 십여 년간 쾌척해 온 후원금 이상을 단번에 내놓아야만 주최자의 자리에 앉게 될 텐데. 그 재력이 끝을 알 수 없는 공작 가문이라고 한들 이제 와서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참석자들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살롱의 주최자. 살롱의 새로운 주인. 절대로 가볍지 않은 의미다.

16549740947811.jpg“흠흠- 저는 잠시 휴게실에.”

16549740947811.jpg“저도 잠시 볼일이 생겨서.”

살롱드메가 열릴 시각이 임박하자 귀부인들은 휴게실에서 용모를 정돈하거나, 하인들에게 보석을 구해오라 명하는 등 제각기 새로운 주최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살롱의 새로운 주최자라는 이름만으로도 당분간 사교계에 미칠 영향이 파다할 것인데, 그 큰 후원금을 쾌척한 가문이라면 금전 줄 또한 풍족한 가문일 것이 확실했다.

16549740947811.jpg‘척지지 않고 잘 보여야만 해.’

16549740947811.jpg‘관계를 잘 다져두면 나중에 우리 아들 출셋길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

16549740947811.jpg‘괜찮은 영식이 있는 집안이라면 우리 딸과 혼사를 맺어도 좋겠어.’

살랑이는 부채 속, 화려한 화장 뒤. 부인들은 저마다 바삐 잔머리를 굴렸다. 강자와의 친분이 곧 지위가 되는 세계. 그 중심을 딛고 서야 비로소 평안한 세계. 바야흐로 사교계였다. *** 이벨리아가 태어난 이후 몇 배는 화려해진 공작가의 마차 안.

16549741006519.jpg“저는 품위 있는 공녀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이제 살롱에 갈 만큼 다 컸으니까요!”

16549741006525.jpg‘그렇다면 그 달랑달랑하는 다리부터 좀 멈추어야 할 텐데.’

엘리시아는 바닥에 채 닿지 않아 정신없이 흔들리는 다리로 시선을 옮기며 생각했다.

16549741006519.jpg“오늘부터는 젤리도 조금만 먹고, 기사들에게 박치기도 하지 않고, 엔리르 꼬리 두드리는 것도 그만할 거예요.”

정도만 지킨다면 젤리를 먹는 것도, 장난을 치는 것도, 때로는 사납게 이를 드러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엘리시아는 그저 딸의 머리를 부드러이 쓰다듬었다.

16549741006525.jpg‘어차피 일각도 가지 못할 결심인 것을.’

16549741006519.jpg“아마 집으로 돌아가면 다들 놀랄 거야. 갑자기 아가씨가 되어 돌아오면 깜짝 놀라겠지.”

살롱이라니. 벌써 다 큰 아가씨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벨리아는 뿌듯하게 웃으며 옆에 놓인 젤리 통에 손을 넣었다. 습관대로 작은 손을 애써 크게 펴 한 움큼 꺼내려다가 멈칫했다.

16549741006519.jpg‘아차, 품위 있는 영애는 젤리를 마구 털어 넣지 않지.’

이벨리아가 젤리 통을 무릎 위에 얹고 짧은 손가락으로 젤리를 하나하나 꺼내 먹으며 물었다.

16549741006519.jpg“살롱에는 누가 와요? 렐리안도 올까요?”

16549741006525.jpg“후작부인에게 연락을 해두었으니 아마 참석할 거란다.”

16549741006519.jpg“그러면 밉살맞은 네피르는요?”

16549741006525.jpg“글쎄. 적어도 후작부인이 데려오지는 않겠지.”

16549741006519.jpg“그러면 모지리 얌생이 세레스는요?”

16549741006525.jpg“아가. 품위 있는 귀족 영애와 ‘모지리 얌생이’라는 말은 영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구나.”

이벨리아가 입술을 안으로 감춰 물었다. 확실히 그렇다. 고작 30초 전에 품위 있는 귀족 영애가 되겠다고 다짐했는데. 입술을 앙다물고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던 이벨리아의 얼굴이 점점 빨개졌다. 입을 열 때 이르러서는 씨근대며 콧김을 내뿜을 기세였다.

16549741006519.jpg“잠깐 품위 있는 귀족 영애 파업할래. 난 아직 잊지 않았어! 그 모지리 얌생이가 나를 죽이려고 했던 거! 언젠가 봐라, 꼭 갚아줄 거야.”

자라면서 아르티나 공작가와 데퐁트 후작가의 관계를 익히 들은 이벨리아 역시 어릴 적 끔찍했던 경험의 주모자가 누군지 알기는 쉬웠다. 젤리를 먹느라 더러워진 손을 닦고자 불러낸 운디네가 시원하게 꼬리를 흔들며 호응했다.

16549741035005.jpg[우리 병아리 바로 그 자세 아주 좋아! 엉덩이를 확 걷어차 버리자! 우리 병아리 앞에 다 무릎을 꿇어라!]

16549741006519.jpg“엉덩이를 확 걷어차자! 다 무릎을 꿇어라!”

16549741006525.jpg“아가, 품위 있는…… 아니, 됐다.”

품위는 진창으로 처박아버린 말투였다. 한마디 하려던 엘리시아는 포기했다. 아버지, 오라버니들, 기사단 사이에서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자란 딸의 거친 말버릇을 고치기는 퍽 쉽지 않았다.

16549741006525.jpg‘게다가 뭐,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말을 예쁘게 할까.’

아르티나의 공녀쯤 되면 어느 정도 제멋대로인 말버릇은 흠 축에도 끼지 못한다. 씩씩대며 과거의 일을 회상하던 이벨리아가 기어이 젤리 통의 입구를 입에 대고 거꾸로 탈탈 털어 넣기 시작했다.

16549741006519.jpg“가망 앙 도. 평생 앙……!”

곰 모양의 여러 색깔 젤리를 가득 물고 웅냥냥냥 뭐라 웅얼거리는 것이 세레스 욕임은 대략 추측할 수 있었다. 운디네가 이벨리아의 곁을 느리게 유영하며 그 웅얼거림을 따라 했다.

16549741035005.jpg[웅냥냥냥냥- 맞아, 맞아. 우리 병아리가 하는 말 다 맞아.]

16549741006525.jpg“그렇지. 가만둘 수 없지.”

엘리시아 역시 온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 딸의 유년기에 큰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그날 돌아오는 마차에서 모든 아르티나 일원들이 맹세하지 않았던가. 언젠간 멸문의 화를 면치 못하게 할 것을.

16549741006525.jpg“살롱에 참석하는 것에 그 목적이 아예 없다곤 할 수 없단다, 아가.”

이벨리아가 지금처럼 살롱에 발길을 끊고 지낸다면, 차후 살롱을 기반으로 사교계를 장악할 세레스에게 대항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티파티나 무도회에서 후작부인이 살롱의 이야기를 얼마나 의도적으로 끄집어내던지. 아르티나 가문이 소외되는 주제가 그것밖에 없으니 더욱 집착하는 것이 빤하게 보였다. 그러니 오늘 살롱 참석의 주된 목적은 이벨리아의 성공적인 사교계 데뷔를 위한 발판 만들기였으나, 부수적인 목적은 살롱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데퐁트 후작 가문의 꼴을 더는 보기 싫음이었다. 유치하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본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복수가 가장 즐겁지 않은가. 엘리시아는 마치 악동처럼 입꼬리만 올려 씨익- 웃었다. 그 표정이 남편인 휴고와 상당히 닮아 있었다.

16549741006525.jpg“표정 참 볼 만하겠어.”

  *** 데퐁트 후작부인과 세레스는 살롱드메의 개장 시간보다 조금 일찍 살롱에 도착했다. 본디 작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모임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면 차지할수록 나중에 도착하는 법이었으나, 오로지 살롱에 한해서만은 세레스의 극성에 후작부인도 일찍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레스의 입장에서야 얄미운 공녀 없이 제가 무리의 여왕이 된다는 것이 제법 짜릿한 일이었기에 조금이나마 빨리 가서 그 달콤함을 누리고 싶음이 당연했다. 살롱의 응접실로 들어가자 높게는 백작부인부터 낮게는 남작부인까지. 데퐁트 후작가의 눈에 들고자 몸부림치는 모든 이들이 화려하게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 새로운 살롱의 주인은 누구일까 흥미로워하던 눈빛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살롱의 새로운 주인이 궁금한 것은 여전했으나 그것을 후작부인과 후작영애 앞에서 드러낼 만큼 멍청한 이는 여기 없었다.

16549740947811.jpg“어머! 후작부인! 어쩌면 날이 갈수록 이렇게 고와지시는지!”

16549740947811.jpg“부인이 아니라 영애라 불러도 의심 없이 믿지 않겠어요?”

득달같이 달려드는 찬사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넘긴 후작부인이 세레스의 손을 잡고 앞으로 이끌었다. 그 의도가 명백했다.

16549740947811.jpg“모두 과찬이세요. 우리 세레스도 오늘 부인들을 뵙는다고 여러 주제를 깊게 익혀왔답니다.”

사교계는 곧 눈치. 후작부인의 의중을 단번에 알아챈 귀부인들과 어린 영애들이 세레스에게로 시선을 돌려 경쟁하듯 경탄했다.

16549740947811.jpg“세상에, 영애께서는 조금만 지나면 사교계의 꽃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으시겠어요!”

16549740947811.jpg“이제 겨우 열한 살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어쩜 이리 성숙하신지!”

16549740947811.jpg“외모뿐만이 아니지요. 여러 주제를 깊이 익혀왔다고 하시잖아요. 성인도 읽기 힘든 책을 말이에요!”

앞다퉈 쏟아지는 찬사는 맥락도, 의미도 없다. 그저 ‘양대 후작 가문 중 하나인 데퐁트 후작가에 잘 보여야 한다’라는 목적뿐. 세레스는 누가 더 치열하게 경외심을 보내는지를 그 오만한 눈으로 훑었다.

16549741090217.jpg‘그래, 이거지. 이게 고귀한 내게 맞는 자리이지.’

세레스는 마치 황후라도 된 듯 고개를 높게 치켜들었다. 살롱만은 감히 아르티나 공녀도, 카시스 후작영애도 넘보지 못하는 자신의 영역이었다. 살롱만큼은. *** 본격적인 토론의 장이 열릴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응접실에서 데퐁트 가문을 추켜세우던 귀부인들과 영애들은 모두 살롱드메로 향했다. 딱딱하게 격식을 갖춘 의자 대신 부드러운 붉은색 소파들이 놓여 있었고, 각 소파의 앞에는 책을 놓거나 글을 쓸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모든 테이블에는 간단한 다과와 차가 준비되어 있었으며 벽에는 감수성 높은 토론을 돕기 위해 값비싼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대내적으로야 시기와 질투, 견제와 배척이 오가는 자리였으나 대외적으로는 귀족 문화를 꽃피우는 토론의 장. 살롱드메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따뜻함을 주제로 꾸며졌다. 그리고 모두가 욕망하나 아무나 가질 수는 없는 자리. 살롱의 주최자, 속어로는 살롱의 주인을 위해 준비된 상석. 주최자뿐만 아니라 주최 가문의 어린 영애를 위해서 단상 위에는 두 개의 소파가 놓여 있었다. 과거 직계가 없는 가문이 살롱의 주인이었을 적에는 방계 영애를 데려와 자리에 앉히기도 하였다지만, 현 데퐁트 후작부인이 주인의 자리를 차지한 이래로는 늘 세레스의 자리였다. 데퐁트 후작부인과 세레스는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했다. 누가 안내하지 않아도 당연했다. 무려 십여 년간 아니었던 적이 없으니, 아닌 것이 더욱 이상할 터였다.

16549741090217.jpg‘사람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에 의자를 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어.’

제 어머니가 또각또각 일정한 소리를 내며 우아하게 걷는 것을 흘끗 본 후, 낮은 샌들을 신은 세레스 역시 비슷한 폼으로 거만하게 따라 걸었다. 그러나 그 거칠 것 없는 발걸음은 채 몇 걸음 가지도 못해 멈춰 섰다.

16549740947811.jpg“뭐지?”

데퐁트 후작부인이 감히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루브르 백작부인을 불쾌하다는 낯빛으로 내려다보았다.

16549740947811.jpg“비키게.”

살롱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루브르 백작부인의 얼굴에는 난처함이 가득했다. 미리 소식을 귀띔하여 알고 있던 귀부인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16549740947811.jpg“후작부인, 그리고 영애, 정말 죄송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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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740947811.jpg“……오늘 주최자의 자리는 다른 분을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16549741090253.jpg“……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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