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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웃지 마, 우웩. (83/323)

83화: 웃지 마, 우웩.202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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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뒤. 금제탑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얻은 휴고가 황궁을 방문하고자 할 때였다. 이벨리아가 쪼르르 달려 나와 휴고의 다리에 매달렸다.

16549740041783.jpg“아빠, 아빠, 황궁에 가요?”

16549740041787.jpg“우리 딸, 심심한가 보구나.”

제 맘을 찰떡같이 알아주는 아빠에게 이벨리아가 생글생글 웃어 보였다. 요즘 식량 도둑이 꽤 바쁜지 비밀기지로 오는 발걸음이 뚝 끊겨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 놓고 놀 사람이 몇 안 되는 마당에, 그중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친구가 오질 않으니 다소 무료하기는 했다.

16549740041783.jpg“나도 갈래요!”

16549740041787.jpg“아빠는 폐하와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아마 황궁에 따라오더라도 우리 아가가 심심한 것은 매한가지일 텐데.”

16549740041783.jpg“루이를 불러서 같이 놀 거예요!”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황태자는 황태자. 제국의 차기 지존이란 늘 일감에 치이는 자리였으니, 불러내고 싶다고 해서 불러낼 수 있는 자는 단연코 아니었다. 그런데도 휴고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16549740041787.jpg‘아르티나의 충정을 길이 받고 싶다면 군말 없이 우리 아가와 놀아주라지.’

그 무엇보다도 무거웠던 휴고의 충정은, 이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어린 딸보다 우선순위에 놓일 수는 없었다.

16549740041787.jpg“좋은 생각이구나. 준비하고 내려오너라.”

16549740041783.jpg“잠시만요! 눈 깜짝할 사이에 갔다 올게요! 비비안! 비비안!”

신이 나서 발을 구른 이벨리아가 단숨에 비비안에게 달려가 머리를 빗어달라 채근했다. 하지만 침대 위에서 신나게 굴러다니면서 자느라 머리칼이 산발이 되어 빠른 시간 안에 빗기에는 영 무리였다. 비비안은 황금빛 머리칼을 하나로 높게 묶어 붉은 리본을 달아주었다. 개나리색 드레스를 팔랑거리며 이벨리아가 루드비히에게 줄 간식을 쓸어 담았다. 아직도 애용하고 있는 곰돌이 가방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16549740041783.jpg“엔리르! 가자!”

16549740072112.jpg“어딜?”

16549740041783.jpg“황궁!”

엔리르가 통통한 앞발을 교차해 그 위에 머리를 턱 올려둔 채 관심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엔리르는 요즘 아주 바빴다. 누나의 눈을 피해서 산천을 돌며 보물을 숨겨둘 만한 동굴을 찾고 있었으니까. 누나가 황궁에 방문한다면 이건 좋은 기회다. 외출한 시간 동안 멋들어진 동굴을 찾아서 악마에게 받은 보석을 차곡차곡 묻어둘 예정이었다.

16549740072112.jpg“……위대한 용은 황궁에 가지 않아.”

16549740041783.jpg“응? 위대한 용은 황궁에 어울리지!”

살짝 흔들린 엔리르가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살랑댔다.

16549740072112.jpg‘아니, 정신 차려. 동굴을 찾아서 보물을 모은 다음 누나한테 뭔가를 선물해야 해.’

이벨리아의 곁에 찰싹 붙어 있는 자본주의 악마 때문에 위기감을 느낀 엔리르가 고개를 탈탈 털었다.

16549740072112.jpg“위대한 용에게 황궁은 우습지. 그런 곳은 가지 않아.”

엔리르가 앞발에 고개를 파묻고 눈을 꼭 감았다.

16549740072112.jpg“…….”

함께 가자며 조르거나 그럼 쉬라며 돌아서거나, 어찌 되었든 기척을 낼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앞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16549740072112.jpg‘왜 아무 소리도 안 들리지?’

궁금해진 엔리르가 살짝 실눈을 떴다. 앞발 밖으로 눈을 빼꼼 꺼내어 보니.

16549740072112.jpg“……!”

아랫입술을 살짝 내민 이벨리아가 속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엔리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16549740072112.jpg“누……누나?”

16549740041783.jpg“우리 아가 용이 언제 다 커서……. 이걸 뭐라고 한댔는데……. 사춘기랬던가.”

시무룩하게 뒤를 돌아 타박타박 걸어 나가는 작은 어깨가 더욱 작아 보였다.

16549740041783.jpg“그럼 쉬어……. 난 엔리르랑 같이 황궁에 가서 놀 생각에 기뻤는데.”

16549740072112.jpg“아니, 잠깐!”

동굴을 찾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도 누나의 감정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었다. 엔리르는 감히 이벨리아의 말을 거절한 몇 초 전의 자신에게 브레스를 몇 방 쏘았다.

16549740072112.jpg“같이 가!”

파닥파닥 날아가 머리 위에 착 올라앉자 이벨리아가 짧은 팔을 들어 머리 위를 쓰다듬었다.

16549740041783.jpg“위대한 용은 황궁에 안 간다며?”

16549740072112.jpg“위대한 용은 항상 은인의 곁에 있지.”

16549740041783.jpg“항상?”

16549740072112.jpg“언제나.”

머리 위에서 살짝 아래를 내려다보니, 통통한 볼 아래로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다. 이벨리아의 작은 웃음 한 자락은 늘 엔리르를 행복하게 했다. 감정에 반응하는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였다.

16549740041783.jpg“꼬리 좀 가만히 둬 봐. 간지러워.”

16549740072112.jpg“그럼 날 그만 행복하게 해.”

16549740041783.jpg“그럴 순 없지. 널 행복하게 하려고 데려온 건데.”

16549740072112.jpg“…….”

어린 용의 꼬리가 조금 더 빠르게 살랑였다. *** 휴고가 알현실에 들어가고 이벨리아가 홀로 남자, 시종장이 황급히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16549740127551.jpg“황공하오나, 지금 황태자 전하께서는 업무 중이십니다.”

16549740041783.jpg“기다리죠, 뭐. 이참에 황궁 구경도 하고요.”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릴 적 이미 황궁 구석구석을 때려 부수며 구경을 한 경험이 있었음에도 이벨리아는 천연덕스럽게 마치 처음 온 양 굴었다. 한편 그 시절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시종장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적어도 기물파손은 막아야 했다.

16549740041783.jpg“저기가 전하의 개인 연무장인가요?”

16549740127551.jpg“예, 그렇습니다.”

16549740041783.jpg“저 지푸라기 인형에는 왜 금테가 둘려 있는 거예요?”

16549740127551.jpg“저 지푸라기 인형이 바로 황태자 전하께서 직접 치하하신 인형입니다.”

16549740041783.jpg“치하요?”

16549740127551.jpg“예, 황태자 전하께서 전하의 칼을 의연히 받아냈다 하시면서 직접 치하하셨지요. 본분에 충실한 자에게 치하하심과 동시에, 이 황궁 가장 낮은 이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시는 전하의 은덕을 새기고자 금테를 둘러두었습니다.”

16549740041783.jpg“……아, 네.”

16549740127551.jpg“모든 궁인이 오가며 지푸라기 인형을 보고 본받겠다 다짐하고 있지요.”

아이고, 이걸 어째. 이벨리아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나왔다. 황궁에도 참 정상인 하나 없구나 싶었다. 식량 도둑이 진심으로 지푸라기 인형을 기특하다 여겨 치하했을 리가 없는데. 그런데도 황태자에게 치하를 받은 것만으로 위상이 치솟아버린 지푸라기 인형. 둘린 금테가 참으로 위풍당당했다.

16549740041783.jpg‘식량 도둑 분명히 딴짓하다가 걸려서 민망해서 치하하는 척했을 거야.’

이벨리아는 자신의 소꿉친구를 제법 잘 파악했다. *** 무거운 양피지가 책상에 휙 내던져졌다. 아래에는 황태자의 직인이 진하게 찍혀 있었다. 남은 서류들을 올려두었던 책상 가장자리가 모두 비어 있었고, 처리한 서류들을 올려둔 책상 앞쪽은 가득 차 있었다.

16549740156322.jpg“끝났군.”

개운한 표정으로 목을 돌린 루드비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땅 도둑이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르게 급한 일들만 처리한 터였다.

16549740156322.jpg“난 이만 가보겠다. 남은 일들은 내일 처리하도록 하지.”

16549740127551.jpg“잠시만요, 전하.”

보좌하던 에르트 백작이 뒤편에서 슬그머니 양피지 두루마리 하나를 더 꺼냈다.

16549740127551.jpg“이것까지만 하시면 됩니다. 이것도 제법 급한 건이라.”

16549740156322.jpg“……알았다.”

황궁을 혼자 거닐고 있을 땅 도둑 친구가 눈앞에 아른거리기는 하지만, 그는 황태자였다. 어떠한 상황에도 책무를 내팽개쳐서는 곤란했다. - 탁. 서류를 빠르게 읽은 루드비히가 직인을 찍었다.

16549740156322.jpg“그럼 난 이제…….”

일어서려던 루드비히 앞에 또다시 새로운 두루마리 하나가 수줍게 놓였다.

16549740127551.jpg“전하, 진짜 이것 하나만 더 처리하시면 됩니다. 이게 또 시급한 안건이라…….”

16549740156322.jpg“진짜 마지막이라 이거지?”

- 탁. 직인을 찍자마자 새로운 두루마리가 슬그머니 놓였다.

16549740127551.jpg“전하, 진짜 마지막…….”

16549740156322.jpg“백작. 지금 장난하나?”

16549740127551.jpg“한 번에 드리면 처리하지 않고 나가실까 봐…….”

16549740156322.jpg“내가 그럴 리 있나. 진짜 박차고 나가기 전에 한 번에 내놔. 다 처리하고 갈 테니까.”

슬쩍 눈치를 보던 에르트 백작이 뒤에 숨겨두었던 두루마리를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16549740156322.jpg“……이게 다 급한 건이라고.”

처리했던 것만큼의 두루마리가 새로 쌓였다. 루드비히는 두루마리로 에르트 백작의 머리를 내려치고 싶은 것을 애써 참아냈다.

16549740127551.jpg“예, 전하.”

16549740156322.jpg“…….”

눈을 내리깔고 있던 에르트 백작의 귀에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류를 처리하고 계시나 싶어 눈을 슬쩍 들어보니.

16549740127551.jpg“전하! 지금 도망가시는 겁니까?”

16549740156322.jpg“도망이라니. 어감이 별로군. 잠시 휴식이라고 해두지.”

외투에 팔을 꿰던 루드비히가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방문을 나가는 발걸음이 제법 날쌨다.

16549740127551.jpg“안 됩니다!”

손을 뻗어 보았으나 감히 옥체에 손을 댈 순 없었다. 순식간에 두루마리와 단둘이 남은 에르트 백작은 애타는 목소리로 주군을 불러댔다.

16549740127551.jpg“전하! 전하! 이건 진짜 급한 건입니다! 전하!”

16549740156322.jpg“그렇다면 그대가 꼼꼼하게 처리해두도록.”

16549740127551.jpg“전하!”

부르면 부를수록 주군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을 보니 돌아오실 생각이 영 없어 보였다. 이래서 두루마리를 하나씩 드렸던 건데! 다 처리하고 가신다고 하셔서 한꺼번에 내어드렸던 건데!

16549740127551.jpg“내가 이럴 줄 알았어!”

분통이 터진 에르트 백작이 발을 소심하게 굴렀다. 전하를 믿는 게 아니었다. 황궁에서 누군가를 믿으면 호구 되는 거라고 배웠음에도 또 실수하고야 말았다.

16549740127551.jpg“이걸 언제 다 처리한담.”

두루마리 앞에 선 에르트 백작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 끼이익.

1654974021225.jpg“백작님, 전하는 어디 가시고 혼자 뭐 하십니까?”

경쾌한 발걸음으로 들어오는 보랏빛 머리카락. 에르트 백작에게는 구원자의 강림이나 다름없었다. 이크리안의 뒤쪽으로 후광이 비치는 것만 같았다. 에르트 백작의 눈이 번뜩였다.

16549740127551.jpg“오, 카시스 영식 왔나.”

에르트 백작이 문 쪽으로 게걸음을 걸으며 환하게 웃었다.

1654974021225.jpg“왜 그런 표정으로 저를 보며 그런 걸음으로 걸으시죠?”

16549740127551.jpg“황태자 전하께서 카시스 영식에게 남기신 말씀이 있다네.”

1654974021225.jpg“전하께서요?”

흠, 흠. 목소리를 가다듬은 에르트 백작이 루드비히의 자세와 어조를 그대로 흉내 내며 거만하게 말했다.

16549740127551.jpg“카시스 영식, 내 급한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우네만, 여기 올려둔 두루마리들은 시급한 일이니 오늘 내로 모두 처리해두도록.”

1654974021225.jpg“……전하께서 진정 그리 명하셨다고요?”

16549740127551.jpg“그럼! 나는 전하께서 명하신 다른 일이 있어 이만!”

그새 문가에 다다라 있던 에르트 백작이 황급히 문을 쾅 닫고 후다닥 뛰어 도망쳤다. 물고 물리는 황궁. 같은 주군을 모시는 신하들끼리도 예외는 없었다.

1654974021225.jpg“이런. 더럽게 많군.”

순식간에 호구가 되어버린 불세출의 천재, 이크리안 카시스는 내린 적 없는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기 시작했다.   *** 이벨리아는 분수대에 앉아 튀기는 물방울을 즐기며, 엔리르는 근처에서 꽃을 답삭 물어 삼키며 루드비히가 업무를 완료하기를 기다렸다. 황궁은 늘 화려했고 오가는 시종들만 보더라도 흥미로웠기에,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하지는 않았다.

16549740041783.jpg“엔리르. 엔리르.”

16549740072112.jpg“응. 응.”

엔리르가 방금 입에 넣은 노란색 꽃을 퉤퉤 뱉으며 답했다. 이 꽃은 쓰다.

16549740041783.jpg“황궁 안에서 누구를 마구 패면 어떻게 될까?”

16549740072112.jpg“……누나가 마구 팰 누구가 용이 아니면 됐어. 마음껏 패.”

16549740041783.jpg“그러다 잡혀가면?”

16549740072112.jpg“나. 황태자. 악마. 집주인.”

16549740041783.jpg“이름만 들어도 든든하네.”

이벨리아가 끄덕이며 저 멀리서 걸어오는 회색 머리칼을 응시했다. 아주 좋지 않았다.

16549740041783.jpg‘하나여도 꼴 보기 싫은데, 하나도 둘도 아닌 셋씩이나 몰려오고 있잖아.’

이벨리아는 명상을 하듯 살짝 눈을 내리감고 깊이 심호흡했다. 그 짧은 새 다가온 데퐁트 후작이 여지없이 알은체를 했다.

16549740266789.jpg“이게 누구십니까. 얼마 전에 뵙고 이렇게 또 뵙습니다, 공녀님.”

16549740041783.jpg“자주 뵈어야 없던 정이 들 여지도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빠르게 표정을 갈무리한 이벨리아가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화답했다. 속으로는 각종 험한 말을 내뱉고 있지만, 겉으로만 보기에는 흠잡을 곳 없이 고상한 인사였다. 데퐁트 후작의 곁에 서 있던 소년의 회색 눈이 이벨리아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내리다가, 느린 어조로 입을 열었다.

16549740127551.jpg“호오……. 처음 뵙습니다, 공녀님.”

이벨리아가 아무 대답 없이 살짝 턱을 치켜들었다.

16549740127551.jpg“이거, 무안하게 인사도 받아주지 않으실…….”

16549740041783.jpg“누군지 모르는 자의 인사를 받아줄 이유가 없는데.”

민망하다는 듯한 소년의 말을 이벨리아가 단번에 끊었다. 기실 누군지는 뻔히 알았다. 데퐁트 후작과 세레스 사이에 당당히 서 있을 자가 후작 영식 외에 더 있겠는가. 그러나 지위로 따지자면 후작 영식은 명백히 공녀인 이벨리아의 아래. 처음 만날 때는 마땅히 이름과 가문을 밝혀 인사를 올려야 했다. 즉, 이벨리아는 지금 제대로 예의를 갖추어 인사하라 종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눈썹을 꿈틀대던 소년이 묘하게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16549740127551.jpg“소문만 무성한 공녀님을 이제야 뵙게 되어 제가 큰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데퐁트 후작가의 리카드라 합니다.”

16549740041783.jpg“반갑습니다. 영식.”

리카드가 귀족들의 예법대로 이벨리아의 작은 손에 살짝 입술을 대자, 이벨리아가 황급히 손을 빼냈다. 이건 지지다.

16549740294541.jpg“오랜만이네요, 공녀님.”

16549740041783.jpg“그러게요.”

이벨리아가 세레스를 일별하며 간결하게 대답했다. 마치 무시당하는 기분. 세레스는 이를 악물었다.

16549740294541.jpg‘거만해.’

못 본 새 더 오만해졌다. 제 오라비를 대하는 태도나 꼿꼿하게 세운 등에서 공녀의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자신이 마땅히 누릴 관심, 칭송, 경탄, 경애. 그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저것에 극심한 분노가 피어올랐다.

16549740294541.jpg‘아니. 아니야.’

눈가를 찌푸리던 세레스는 이내 여상히 웃어 보였다. 이벨리아가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부드러운 미소였다.

16549740294541.jpg‘저것도 얼마 남지 않았어.’

그렇게 생각하면 이 웃음 따위 몇백 번이고 지어줄 수 있었다.

16549740294541.jpg‘곧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순리대로. 그날이 오면 공녀를 내 노예로 두고 부려야지.’

그날을 생각하면 세레스는 이벨리아를 앞에 두고도 터져 나오는 미소를 참기가 어려웠다. 세레스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누가 보면 둘도 없는 친우를 만난 줄로만 알겠다. 꽃처럼 해사한 그 미소를 표정 없이 바라보며, 이벨리아는 생각했다.

16549740041783.jpg‘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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