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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이브는 이브의 이브야! (79/323)

79화: 이브는 이브의 이브야!202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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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둑한 저녁, 이벨리아는 하루 동안 잘 먹어 반질반질해진 얼굴로 작은 손을 반짝 들어 올렸다. 노란 전등불이 위에서 아래로 비춰, 그렇지 않아도 토실한 볼이 더욱 빵빵해 보였다.

1654973884078.jpg“난 갈게!”

16549738840784.jpg“제발 가라.”

1654973884078.jpg“너한테 인사한 거 아닌데. 아스한테 한 건데.”

16549738840784.jpg“이게 끝까지 진짜!”

금방이라도 꿀밤을 먹일 것처럼 주먹을 쥐고 흔들던 마르바스는, 뒤로 숨겨두고 있던 왼손에서 상자 하나를 툭 내던졌다. 이벨리아가 얼떨결에 상자를 받아 안았다.

16549738840784.jpg“야. 땅콩. 이거나 가져가. 가지고 가서 다신 오지 마라.”

상자 안에는 아까 이벨리아가 맛있게 먹었던 타파스 조각이 곱게 포장되어 있었다.

1654973884078.jpg“너…….”

16549738840784.jpg“뭐. 왜. 생각보다 좋은 악마였다고?”

1654973884078.jpg“여기 독 탔어?”

16549738840784.jpg“내놔!”

마르바스는 인상을 팍 찌푸리고 다시 빼앗아 가려는 듯 손을 뻗었다. 그 손을 피해 몸을 돌리며, 이벨리아가 환하게 웃었다.

1654973884078.jpg“고마워. 잘 먹을게, 잔디.”

16549738840784.jpg“고작 타파스 몇 조각 가지고 고맙긴 무슨. 흥.”

막상 또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영 어색하다. 마르바스의 귓가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 땅콩은 밥풀만 해서는 한 마디도 안 진다. 내뱉는 말마다 기분이 나쁘거나 얄밉거나 당황스러운 것을 보니 보통 땅콩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상자 안에 놓인 타파스를 빤히 바라보던 이벨리아가 느닷없이 메고 있던 가방을 열어 안을 뒤적였다. 가방에 빨려들 듯이 뒤진 끝에 나온 것은 레몬 사탕 두 알. 크기는 제법 작았으나, 고사리 같은 손 위에 올라가자 손을 가득 채웠다. 이벨리아가 마르바스에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1654973884078.jpg“잔디도 이거 먹어.”

16549738840784.jpg“뭐, 뭔, 뭔 콩알 만한 사탕을 지금 대악마인 이 몸에게-.”

1654973884078.jpg“싫으면 말고.”

16549738840784.jpg“누가 싫댔냐? 내놔. 네가 오늘 나를 괴롭힌 값을 이걸로라도 받아야겠다.”

다시 가져가려는 시늉을 하자, 마르바스가 다급히 사탕을 잡아챘다.

1654973884078.jpg‘심술 맞기는 해도 나쁜 악마는 아니야.’

이벨리아가 손을 살짝 위로 뻗어 마르바스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1654973884078.jpg“다음에 만나면 못되게 굴지 마. 말도 예쁘게 하고.”

16549738840784.jpg“흥. 네가 뭔데.”

1654973884078.jpg“그렇지 않으면.”

16549738840784.jpg“뭐. 주군한테 이르기라도 하려고?”

1654973884078.jpg“네 이름을 기어코 알아내서 사역마로 부려버릴 거야.”

16549738840784.jpg“…….”

고위 악마와 계약을 맺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사역마로 부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여러모로 특이한 저 땅콩이 진지한 표정으로 선언하니 왠지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솟아올랐다. 밥풀만 한 게 협박도 제법이다. 성질 한번 고약해. 꼬맹이의 그럴싸한 으름장에 당황한 악마의 눈앞에, 난데없이 검이 번쩍 스쳐 지나갔다. 본능적으로 검을 피한 마르바스가 알렉을 향해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16549738840784.jpg“뒤질래?”

16549738901335.jpg“야. 악마. 아까 재밌었지.”

16549738840784.jpg“뭐래. 봐주느라 힘들었구만.”

16549738901335.jpg“다음에 한 판 더 하자. 그 알량한 검술 제대로 부숴 줄 테니까.”

16549738840784.jpg“물에 빠져도 그 조동아리는 동동 뜨겠군.”

어이가 없다는 듯 마르바스가 피식 웃자, 알렉도 씨익 따라 웃었다. 기실 알렉이 대악마로 불리는 마르바스와 호각이라고는 할 수 없었으나, 알렉의 변칙적인 검술은 마르바스를 흥미롭게 하기엔 충분했다. 상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검사들에게, 간만에 만난 훌륭한 대련 상대는 기꺼웠다. 한편 엔리르는 아가레스의 머리 위에 올라타 솜방망이 같은 앞발을 눈앞에 휘휘 저어댔다.

16549738901352.jpg“악마, 악마.”

16549738901356.jpg“치워. 앞이 안 보이잖아.”

16549738901352.jpg“난 동굴을 찾기로 했어.”

16549738901356.jpg“그러던가.”

16549738901352.jpg“돈은 짜릿한 거였어. 집주인의 보물창고에서 보물을 몇 개 물어 동굴에 묻어둬야겠어.”

이 멍청한 용은 상대도 못 가리고 뭐라는 거야. 아가레스가 제 눈을 가리고 있는 엔리르의 앞발을 걷어냈다.

16549738901356.jpg“……휴고 아르티나의 재산을 털다간 그 짧은 용생 마감하게 될 거다. 다른 인간의 것을 털어.”

16549738901352.jpg“인간들 중에서는 황제가 제일 부자라던데. 황제의 창고를 털까?”

16549738901356.jpg“좀 만만한 인간 것을 털라고.”

16549738901352.jpg“그렇다고 우리 누나 주머니를 털 순 없잖아.”

만만하기로는 최상인데 말이야. 저도 모르는 새에 고개를 반쯤 끄덕인 아가레스가 애써 정신을 차렸다. 우리 꼬맹이가 등쳐먹기 딱이긴 해도 그걸 막고자 내가 곁을 지키고 있는 건데. 아가레스가 협탁 위에 굴러다니던 보석 몇 개를 주머니에 대충 담아 엔리르의 목에 꽉 묶었다.

16549738901352.jpg“켁!”

16549738901356.jpg“이거나 동굴에 묻고. 사리 분별력이 생길 때까진 그냥 얌전히 살아. 휴고 아르티나의 보물창고에 쳐들어가지 말고. 황제한테 가서 보물 내놓으라 불 뿜지 말고. 우리 꼬맹이한테 만만하다느니 뭐라느니 뻥긋도 하지 말고. 알아들어?”

자본주의에 단단히 홀린 용이 재앙의 조동아리로 사고를 치기 전에, 아가레스는 재력으로 그 입을 막아버렸다. 어린 용이 고개를 크게 끄덕인 후 보물 주머니를 소중히 안아 들었다.

16549738901352.jpg“보물 고맙다, 악마!”

16549738901356.jpg‘우리 꼬맹이는 어쩌다 저런 모자란 용을 주워서는.’

눈을 찌푸리던 아가레스는 아래에서 느껴지는 약한 악력에 고개를 내렸다. 그의 작은 친구가 옷자락을 톡톡 건드리고 있었다.

1654973884078.jpg“토끼, 아니, 아스! 다음에 또 놀러 올게.”

16549738901356.jpg“언제든. 편히 토끼라고 부르고.”

1654973884078.jpg“둘이 있을 때는 토끼라고 부를게. 곧 비밀기지에서 만나!”

16549738901356.jpg“기다릴게. 항상.”

이벨리아가 붕붕 손을 흔들며 마차에 올라탔다. 그 옆에서 아르티나 기사단은 마르바스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며 비속어를 쏘아댔고, 엔리르는 아가레스가 준 보물 주머니를 꼭 안고 파닥파닥 날갯짓을 했다. 그들을 태운 마차가 빠져나가고 화려한 음각을 새긴 육중한 대문이 천천히 닫혔다. 틈새로 더 이상 작은 친구의 내민 손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가레스의 시선은 그 끝을 좇았다. ***

16549738840784.jpg“주군. 저 오늘 집사 역할 잘했습니까?”

16549738901356.jpg“몰라서 묻나.”

불쾌함이 가득 담긴 아가레스의 시선을 받자, 마르바스가 의기소침하게 고개를 숙였다.

16549738840784.jpg“……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마르바스도 눈치는 있다. 제가 오늘 집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음은 잘 알았다. 감정을 이기지 못해 주군의 귀한 손님에게 툴툴대기도 했고, 그 수행원들인 기사들에게는 필담으로 아주 악담을 쏟아내기도 했으니까.

16549738840784.jpg‘곧 주군의 기운이 목을 조르거나, 무릎을 내리누르거나, 혹은 주군께서 직접 때리실 수도…….’

곧 다가올 처분에 두 눈을 꼭 감았으나. 생각 외로 어떠한 타격도 가해지지 않았다.

16549738840784.jpg‘……?’

마르바스가 천천히 눈을 떠 주군의 눈치를 살폈다. 소리 없이 저만치 걸어가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16549738840784.jpg‘혹시 혼을 낼 필요도 없이 나를 아주 내쳐버리신 건가?’

아가레스의 충복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이 마르바스의 의미. 선뜩해진 마르바스가 다급히 달려가 아가레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16549738840784.jpg“주군,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슨 벌이든 달게 받을 테니, 내치지만은……!”

아가레스가 마르바스를 일별하며 답했다.

16549738901356.jpg“아이가 웃었으니 됐다.”

16549738840784.jpg“그럼 저 잘한 겁니까……?”

그의 어린 친구는 마음 편히 티격태격할 친구 하나 얻기 힘든 지위에 있었다. 모두가 어화둥둥 감싸주는 것도 좋지만, 잴 것 없이 으르렁댈 친구 하나 있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아가레스가 발걸음을 옮기며 작게 치하했다.

16549738901356.jpg“나쁘진 않았다.”

16549738840784.jpg‘뭐야, 그 땅콩이 도움이 될 때도 다 있네?’

주군의 입에서 나쁘지 않다는 말을 들은 것이 대체 얼마 만이던가. 마르바스의 입술이 기분 좋은 호선을 그렸다. 다음에 땅콩을 만나면 아주 조금은 친절하게 대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16549738901356.jpg“아.”

아가레스가 마르바스에게 손을 뻗었다. 혹시 주군의 마음이 바뀌셨나 어깨를 움츠리는데.

16549738901356.jpg“내놔.”

16549738840784.jpg“예? 무엇을요?”

16549738901356.jpg“사탕. 아까 꼬맹이가 준 것.”

16549738840784.jpg“예에?”

마르바스가 재깍 움직이지 않자 아가레스의 수려한 눈썹이 살짝 꿈틀댔다. 마르바스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오늘 유일하게 받은 선물인 사탕 한 알을 주섬주섬 꺼내 아가레스의 손 위에 올려두었다. 커다란 손바닥 위에 얌전히 놓인 노란 사탕 한 알. 아가레스가 음산하게 읊조렸다.

16549738901356.jpg“분명 두 알이었을 텐데?”

16549738840784.jpg“……지금 딱 꺼내서 드리려고 했습니다.”

마르바스가 서럽게 입술을 삐죽였다. *** 새해를 맞이함은 지난 일곱 해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르티나 가문의 식구들은 한 해의 첫날을 응접실에서 함께 보냈다. 이벨리아가 가장 좋아하는 따뜻한 벽난로, 달콤한 코코아, 바삭한 쿠키, 그런 것들을 잔뜩 준비해두고. 여느 위세 높은 가문들은 해의 첫날에 성대한 파티를 개최하기도 하였으나 아르티나 가문은 그런 허례허식을 자랑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대했다. 그러니 그들이 누군가에게 가문의 건재함을 내보이기 위해 신년 연회를 열거나, 혹은 타 가문의 연회에 걸음 하는 일은 없을 터다. 황실이 주관하는 연회에 얼굴을 비추는 것이면 모를까. 또 아무리 화려한 연회라 하더라도 가족들과 보내는 이 소소한 시간만큼 값진 것은 없을 터였다. 그런데 아르티나 공작가의 가주, 휴고의 심기는 영 불편했다.

16549739015715.jpg‘새해 첫날부터 저건 뭐야.’

마음에 쏙 드는 새해의 첫날에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하나. 지난해와 모두 같은 것들 사이에 달라진 것 하나. 휴고가 눈썹을 비뚜름하게 올리며 말했다.

16549739015715.jpg“안 가나?”

16549738901356.jpg“내가 왜?”

16549739015715.jpg“여긴 내 집이다.”

16549738901356.jpg“그대 집에 내 꼬맹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여동생을 ‘내 꼬맹이’라고 칭함에야 아르칸 또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르칸은 제 꼬리를 물고자 뱅글뱅글 돌고 있는 엔리르를 옆으로 살짝 치우며 반박했다.

16549739015731.jpg“우리 이브가 왜 당신 꼬맹이야.”

16549739015735.jpg[그래. 병아리는 내 병아리야.]

16549738901352.jpg“내 누나야. 정령은 잡아먹히고 싶지 않으면 그 입 다물어.”

엔리르가 운디네의 꼬리를 앞발로 꾸욱 누르자 찰박 물방울이 튀었다.

16549739043638.jpg“악마도 큰 도련님도 정령도 용도 모두 무슨 소립니까. 아기씨는 우리 기사단의 아기씨인데요.”

그렇게 다들 이 세상 가장 사랑하는 아이에 대한 친밀감을 주장하는 가운데, 이벨리아가 단 한 마디로 논쟁을 끝냈다.

1654973884078.jpg“이브는 이브의 이브야. 다들 나한테 예쁨 받고 싶으면 새해에도 잘하도록 해! 선물과 뇌물은 모두 환영이야!”

세상 환한 얼굴로 짧은 두 팔을 쫙 벌려 선물과 뇌물에 대한 사랑을 표한다. 청렴결백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아르티나 가문과 뇌물이라는 단어는 영 어울리지 않았으나, 아기씨의 사랑에 언제나 목마른 기사단은 쪼르르 달려가 마들렌 한 바구니를 안고 돌아왔다.

16549739043649.jpg“우리 아기씨 새해 첫 뇌물입니다!”

1654973884078.jpg“흠. 조개 모양이 아주 잘 잡힌 마들렌이군. 흡족하다!”

엔리르 역시 질 수 없다. 어린 용은 운디네의 꼬리를 놓고 파닥파닥 정원으로 날아가서 꽃 한 송이를 물고 돌아왔다.

16549738901352.jpg“이거. 누나를 닮은 예쁜 꽃.”

1654973884078.jpg“이 자식. 입이 백 점이야. 좋다!”

아가레스는 곱게 세공된 호박색 티아라를 꺼내어 이벨리아의 머리 위에 살포시 얹었다. 어느 고대 왕국의 유물이라나 뭐라나. 인간들의 세상에서는 제법 가치 있는 보물이랍시고 이런저런 책들에 실려 있는 것 같았는데, 어차피 아가레스의 입장에서야 이벨리아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었다. 티아라를 쓴 이벨리아가 위엄 있는 척 턱을 바짝 들어 올리고 짧은 다리를 꼬았다. 아직 짧은 다리는 잘 꼬아지지도 않아 그저 얹어둔 것에 불과했다.

1654973884078.jpg“엣헴. 어때?”

16549738901356.jpg“원하신다면 왕국이든 제국이든 세워 바치도록 하지요, 나의 폐하.”

아가레스가 씩 웃으며 오른손을 심장 위에 대고 허리를 굽혀 보였다. 삿된 것들이 여동생에 대한 친밀감을 주장하자, 영 기분이 상한 아르칸이 이벨리아를 번쩍 들어 무릎 위에 앉히며 물었다.

16549739015731.jpg“우리 아가는 새해 목표가 뭘까?”

그 질문에 응접실 모든 일원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이벨리아의 바람은 모두의 소원. 지금 저 작은 입에서 나올 말이 곧 아르티나 가문의 다음 한 해 목표가 될 터였다.

1654973884078.jpg“나는 지금 심각한 고민 중이야. 새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응접실에 모여 있던 모두가 선명한 웃음을 띠었다. 이제 막 여덟 살이 되는 꼬맹이가 무슨 성대한 계획을 세우려고. 먹고 자고 놀기만 해도 충분한걸.

16549739072232.jpg“우리 이브는 커서 뭐가 되고 싶은데?”

세드릭이 눈매를 휘며 다시 한번 물었다.

1654973884078.jpg‘커서? 어른이 되어서?’

그렇게 먼일까지는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벨리아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침묵이 길어지자 아르칸이 이벨리아를 고쳐 안으며 선택지 몇 개를 던져주었다.

16549739015731.jpg“아버지처럼 아르티나 가문의 가주가 될 수도 있고, 어머니의 가문인 베르타샨 가문의 가주가 될 수도 있지. 아니면 어머니처럼 황실의 정령사…… 아니, 이건 못 들은 걸로 해. 여하튼 우리 아가가 하고 싶은 것이라면 뭐든 할 수 있도록 오라버니가 도와줄 거야.”

결코 적지 않은 의미를 담은 선언이었다. 이벨리아가 아르티나의 가주 자리를 원한다면 아르칸은 깨끗하게 내려두겠다는 승복. 소중한 동생과 자리를 다투고픈 마음 따위는 없었다. 동생이 없다면 어떤 자리에 앉더라도 차디찬 칼날 위일 것이니.

1654973884078.jpg‘으음. 난 뭘 하고 싶은 걸까.’

곰곰이 생각하는 고개가 갸우뚱거렸다. 이벨리아의 고민에 모두가 주목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미래를 그리는 작은 아이가 사랑스러웠다.

16549738901356.jpg‘우리 꼬맹이가 마계를 가져다 바치라 호령하면 당장 바알의 목을 쳐야겠군.’

16549739015715.jpg‘우리 딸이 세상 모든 보석을 모아 보석길을 만들어달라 요청하면 그리해야지.’

16549739043638.jpg‘우리 아기씨께서 옆 왕국이 가지고 싶다 하시면 당장 출정해서 정복해야지.’

16549738901352.jpg‘우리 누나가 내 동굴을 원하더라도 줄 수 있어.’

세상 어떤 바람을 뱉더라도 대악마와 휴고, 기사단, 용은 군말 없이 따를 터였다.

1654973884078.jpg“나는…….”

작게 입을 연 이벨리아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결심했다는 듯 선언했다.

1654973884078.jpg“놀고먹는 게 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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