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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난 거지 악마가 아니야 (74/323)

74화: 난 거지 악마가 아니야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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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살의 늦가을.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던 그맘때 즈음. 이벨리아는 비밀기지에 쪼그려 앉아서 새로 생긴 개미집을 구경하고 있었다.

16549737141457.jpg“우왕! 개미가 집으로 돌아간다! 내가 바닥에 둔 육포를 들고 가고 있어!”

16549737141462.jpg“우리 꼬맹이 건데. 다시 뺏을까?”

16549737141457.jpg“못된 토끼. 세상에서 밥을 뺏는 게 가장 나쁜 짓인데.”

꼿꼿하게 서 있는 악마의 다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엄하게 다그칠 수 있는 자는 세상천지에 이 작은 친구 하나뿐일 것이었다.

16549737141462.jpg‘네가 마주하는 세상에서는 그 정도가 가장 나쁜 짓이었으면.’

입가에 띤 희미한 미소에 담긴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작은 친구는 개미집을 톡톡 건드리던 나무 막대기를 내리고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16549737141457.jpg“개미도 집이 있고 벌도 집이 있는데…….”

이벨리아의 시선이 아가레스를 향했다. 쪼그려 앉은 채 고개를 한껏 위로 젖혀 바라보는 표정이 제법 동정심에 가득 차 있었다.

16549737141457.jpg“우리 토끼만 집이 없넹…….”

……갑자기? 이렇게 갑자기 나를 집 없는 악마로 만들어?

16549737141462.jpg“분명 있다고 말해준 것 같은데.”

머리가 상당히 좋은 친구이니 아마 잊은 것은 아닐 테고, 내 말을 믿지 않는 것이로군. 아가레스가 비뚜름하게 웃으며 이벨리아의 머리를 꼬옥 눌렀다.

16549737141457.jpg“마계에만 있고 인간계에는 없잖아. 악마니까. 그리고 마계에 있는 집도 굉장히 허…… 아니야.”

눈썹을 팔자로 만든 이벨리아가 황급히 입술을 깨물더니 뒷말을 흐렸다. 이를 본 아가레스의 한쪽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이 꼬맹이가 또 무슨 헛생각을 하기에 이러나. 그 누구 앞에서도 굽혀진 적 없던 무릎은 작은 친구 앞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바닥에 닿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가레스가 이벨리아를 따라 무릎을 굽히고 커다란 손으로 통통한 두 뺨을 폭 감싸며 눈을 맞추었다.

16549737141462.jpg“꼬맹이. 나 봐. 엄청 뭐.”

16549737141457.jpg“아냐. 이런 말은 실례랬어.”

볼을 잡힌 이벨리아의 시선이 슬슬 오른쪽 아래로 내려갔다.

16549737141462.jpg“네가 내게 하는 말 중에 실례는 없어. 말해봐.”

16549737141457.jpg“……엄청 허름한 판잣집에는 계절마다 물이 새잖아.”

이벨리아가 입술을 삐죽대다가 어물어물 말했다. 아가레스는 말문이 막혔다. 허름한 판잣집? 가장 광활한 영토에 지어진 내 성이?

16549737141462.jpg“이건 또 웬…….”

16549737141457.jpg“저기, 혹시 원한다면 여기 오두막에서 매일매일 지내도 좋아. 내가 허락할게.”

신경 써주는 건 고마운데, 뭐랄까. 기분이 참……. 이 제국 황제에게 ‘네 집에는 감자 없지?’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랄까. 정말로 예기치 못한 오해에 아가레스가 입매를 쓸었다.

16549737141462.jpg“음…… 대체 어디서 그런 오해가 시작됐는지 모르겠는데.”

16549737141457.jpg“괜찮아. 친구 사이에 자존심은 필요 없잖아.”

한 세상 지배자의 거처를 허름한 판잣집으로 단정 지어버린 이벨리아의 생각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작년, 악마 제파르에 의해 좋지 않은 일을 겪은 이벨리아는 공작저 내에 있는 서재에 가서 마족에 관한 책을 꺼내어 읽었더랬다. 책이 이벨리아의 팔뚝보다 두껍고 난해하였기에 카론의 도움을 받아 땅바닥에 쿵 내려둔 다음에 앞부분만 살랑살랑. 마계에 직접 방문하였다가 살아 돌아온 인간은 없었기에, 이 책은 과거 사역마를 두었던 인간이 악마의 이야기를 듣고 집필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책들이 그렇듯이 가장 하위의 마족들이 먼저 소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족들은 마계 내에서도 비옥한 토지를 차지하지 못한 자들임은 당연했고. 자연히 그들은 오물이 가득한 좁은 골목에서 판자를 얼기설기 이어 붙이고 거주하고 있었다. 이벨리아가 읽은 앞부분에는 그런 삽화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딱 거기까지만 읽은 뒤 무겁고 어려워 책을 탁 덮은 이벨리아는, 아가레스의 거처도 책에서 본 그것과 크게 다르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물론 아가레스가 그 세세한 사정까지는 알 리 없었다.

16549737141462.jpg“하, 이 작은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들었는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아마 작은 친구의 머릿속에는 딱 작은 친구를 닮은 노란색 병아리가 뽈뽈 돌아다니면서 세상 특이한 생각들을 심어두는 것이 분명했다. 만물을 발아래 두고 세상을 오시하던 악마에게, 동동 떠다니는 비눗방울 같기도 하고, 날리는 민들레 홀씨 같기도 한 작은 친구의 생각들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16549737141462.jpg“됐다. 그럼 일단 인간계에 있는 집으로 먼저 초대하기로 하지.”

어차피 내 머리로는 네 예쁜 생각들을 이해할 수 없을 테니.

16549737141457.jpg“진짜 집이 있어? 인간계에?”

게다가 순진한 눈망울로 고개를 갸웃대는 작은 친구를 보아하니 백문이 불여일견일 듯했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있었다. 아니, 없었지만 지금은 있다. 작년에 이벨리아가 황궁에 놀러 가는 바람에, 질투심의 발로로 짓게 된 인간계의 대저택. 대저택 건설은 그 시작부터 제법 치밀했다. 오랜 세월 드넓은 마계의 영역을 무리 없이 관리한 아가레스의 수완은 절대로 녹록지 않았다. 제국의 수도에 전례 없던 대저택을 세우는 것이니 좋든 싫든 사람들의 눈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가레스는 귀찮은 일은 미연에 방지하자는 주의였다. 작은 친구가 편히 오가며 쉴 수 있는 안식처를 만들고 싶었던 것뿐, 온 제국 사람들의 호기심 대상이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저택의 외관이 거의 완성될 때 즈음, 황제 칼라일의 집무실에 난데없이 들이닥친 아가레스는 딱 한 마디를 던졌다.

16549737141462.jpg“빚 갚아라. 황제.”

1654973720049.jpg“동대륙 황제에게도 빚 갚으라며 쳐들어간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16549737141462.jpg“그래서?”

1654973720049.jpg“그대는 황제들을 상대로 채권을 추심하고 다니는 고리대금업자나 다름없군! 하하하!”

16549737141462.jpg“…….”

1654973720049.jpg“……영토나 고위급 작위 또는 국보급 보물이 필요하다면 시일이 좀 걸리네.”

16549737141462.jpg“그따위 것을 받자고 온 것은 아니고.”

제국의 고위 귀족 작위도, 국보급 보물도, 한낱 ‘그따위 것’으로 둘러쳐 버리는 악마의 눈동자는 거만함을 담았고, 입매는 비웃음을 걸었다.

16549737141462.jpg“곧 수도에 저택 하나가 생길 거다. 타국 귀족의 망명이라던가, 신의 현신이라던가, 시끄럽지 않게 대충 처리하도록.”

황제에게 말을 건네는 것도 귀찮았다. 빨리 돌아가서 실내 장식을 마친 다음 꼬맹이가 좋아하는 것들로 저택을 가득가득 채워야 했다.

1654973720049.jpg“내가 그대에게 진 것은 어찌 보면 목숨 빚인데. 그걸 그따위 것 무마하는 데에 쓰나?”

16549737141462.jpg“두 번 말하게 하는 것은 황제들의 특성인가.”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인간계의 모든 이들이 인마전쟁 휴전의 일등 공신인 아가레스에게 빚을 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가레스는 그중 그나마 수지가 맞는 황제, 칼라일에게 빚을 갚으라며 독촉하는 것이었다. 마치 하르벤타의 황제 세필리아에게 그랬던 것처럼 돈이 아닌 권력으로 갚으라고. 그렇게 서대륙과 동대륙 황제에게 달아둔 빚이 모두 작은 친구를 위한 것에 쓰였지만, 그에게 이벨리아보다 더 중한 것은 없으니 아주 성공적인 수금이었다. *** 72 악마 중 5위, 자칭 타칭 ‘대악마’ 중 하나로 불리는 마르바스는 정말 바빴다. 아가레스의 대표적인 충복으로는 마르바스 외에도 8위 악마인 바르바토스가 있었으나, 바르바토스는 기밀 임무들을 처리한다고 마계에 도통 붙어 있지를 않았다.

16549737229283.jpg‘그 자식 분명 어디서 농땡이 치고 있는 거야. 뭔 기밀 임무가 그리 많아?’

바르바토스가 시도 때도 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모든 잡일은 자연히 마르바스에게 배당되었다.

16549737229283.jpg‘잡일. 잡일. 허접스러운 잡일.’

지금과 같이 집을 구하고, 집을 꾸미고, 사용인들을 고용하고, 주방장을 찾는 그런 일들 말이다.

16549737229283.jpg“내가 이런 일을 할 악마가 아닌데…….”

바닥 한 번 쓸고 투덜.

16549737229283.jpg“주군께서는 한겨울에 오렌지를 구해오라 명하시질 않나, 이젠 갑자기 인간계에 집을 얻으라고 하시더니 심지어 청소까지 시키시고 말이야.”

창틀 한 번 털고 투덜.

16549737229283.jpg“어떤 인간 때문인지 내 눈앞에 보이기만 해봐라. 감히 지엄하신 주군을 물들이다니.”

물걸레질 한 번 하고 투덜투덜.

16549737229283.jpg“확 그냥 팔을 잡아 찢-.”

16549737229309.jpg“한 글자만 더 내뱉어라. 네 입이 먼저 찢어질 터이니.”

투덜대던 마르바스와 그 옆에서 쩔쩔매며 열심히 걸레질하던 40위 악마, 라움의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검보라색 연기가 마르바스의 입을 감쌌다. 실로 금방이라도 잡아 찢을 것처럼. 검보라색 연기는 주군의 독보적인 기운이었다. 라움이 존경하는 그의 주군과 차마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마르바스 역시 벌을 서듯 두 팔을 번쩍 들어 귀 옆으로 바싹 붙이며 무릎을 꿇었다.

16549737229283.jpg“기초적인 일들은 모두 다 해 두었으니 이제 수하들 시키면 안 되겠습니까, 주군? 제가 이래 봬도 어디 가선 굉장히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대악마란 말입니다.”

대악마? 네가? 아가레스의 표정이 명백히 무시를 담았다. 대꾸 한마디 없이 뒤돌아 걸어가던 아가레스가 걸음을 멈추었다.

16549737141462.jpg“아, 네가 집사다.”

주군의 고고한 음성이 누가 집사인지를 명확히 특정하지 않았기에, 마르바스는 황급히 수하 라움에게 폭탄을 떠넘겼다. 절대 싫어. 이상한 보타이를 매고 인간들 앞에서 집사를 하기는 절대 싫어. 죽어도 싫어.

16549737229283.jpg“주군 말씀 잘 들었지? 네가 집사다, 라움.”

16549737141462.jpg“…….”

그 말에 아가레스가 음산한 한숨과 함께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인 채 마르바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주 오랜 세월 주군을 지척에서 보필해 온 마르바스는 잘 알고 있었다. 저 시선이 무슨 의미인지.

16549737229283.jpg‘사지 멀쩡히 걸어 나가고 싶으면 알아서 기라는 뜻이다…….’

주군은 무섭다. 기본적인 성정 자체가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두 번 말을 하게 만드는 것도, 감히 앞에서 왕왕 짖어대는 것도, 치기 어린 도전도, 절대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넘어가지 않으시는 분이셨다.

16549737229283.jpg‘기어야지. 그래, 기어야지.’

마르바스는 들고 있던 하얀 색 손수건을 펴서 허공에 두어 번 털은 다음 목에 돌돌 감아 리본을 묶었다. 마치 보타이처럼. 그 후 양손을 곱게 뻗어 마치 안쪽으로 안내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몸짓만은 꽤 오랫동안 버틀러 훈련을 받아온 자처럼 우아했다. 당장이라도 손님들을 씹어 먹을 것만 같은 표정과 손님에게 건네기에는 매우 무례한 단어만 아니라면.

16549737229283.jpg“악마의 저택에 어서 오시고 어서 가십시오. 빌어먹을 인간 여러분.”

16549737141462.jpg“저녁 메뉴는 악마로 하면 되겠군. 아이에게 특이한 요리를 대접할 수 있겠어.”

주군께서는 빈말을 하지 않으신다.

16549737229283.jpg‘진짜 죽는다. 진짜 구워져서 접시에 놓여 밥상에 올라간다.’

그제야 진정 생명의 위협을 느낀 마르바스가 손을 반짝반짝 흔들어 보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목숨을 지키고자 하는 필사적인 애교였다.

16549737229283.jpg“환영합니다, 인간 여러분! 원하시는 만큼 편히 머물다 가시기 바랍니다!”

16549737141462.jpg“…….”

16549737229283.jpg“저는 뛰어난 집사, 마르라고 합니다! 불편하신 점이 있다면 언제든 이 마르를 찾아주세요!”

16549737141462.jpg“적당히 해라. 꼴 보기 싫다.”

방긋방긋 웃던 마르바스의 어깨가 축 내려갔다. 주군 미워. 힝. *** 얼마 전부터 수도 중앙에서 살짝 비켜난, 그러니까 수도 정중앙으로부터는 말을 타고 약 20분 거리에 있는 곳을 기점으로 알 수 없는 소문이 돌았다. 새로 생겨난 대저택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소문들이었다. 황제 칼라일이 귀족들에게 ‘우리 제국의 귀빈’이라고 둘러댄 뒤, 평민들의 거리에도 같은 소문을 내도록 은밀히 지시하였으나, 그러한 소문으로 호기심이 가라앉기에는 너무도 존재감이 컸다. 혹자는 황태자의 별장이라고 하였고, 혹자는 황위 다툼에서 밀려난 황자의 피신처라고 하였으며, 누군가는 타국 대귀족이 망명을 위해 지은 것이라고도 하였다. 또 어떤 이는-.

16549737283787.jpg“아, 거참. 아니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어떻게 저택이 뚝딱 지어지나? 악마가 지은 저택이 맞다니까 그러네?”

16549737283787.jpg“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악마가 인간계에 터를 잡나? 응? 저 아르티나 가문한테 개박살 나고 말지.”

16549737283787.jpg“또 모르지. 예전에 전쟁을 멈추었다던 동(東)마계의 지배자나 그 측근일지도. 그들이라면 아르티나 가문하고도 꽤 우호적일 법도 하지 않나.”

제법 사실에 가까운 추측을 하기도 하였다. 여하간 이토록 명확하지 않은 여러 소문이 수도를 휩쓸 정도로 저택은 웅장하고, 화려하고, 거대했다. 저택이라기보다는 ‘성’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더 정확할 정도로.

16549737283787.jpg“저 벽돌은 뭐로 만든 거라던가? 어찌 저리 색이 독특한지.”

그 어느 귀족 가문의 저택에서도 본 적 없는 고풍스러운 검붉은 색 벽돌과 윤기 나는 검은 색 지붕은 그 원석의 가치를 감히 책정할 수 없을 만큼 값비싼 것임이 분명했다.

16549737283787.jpg“저 멀리 새 부리처럼 보이는 것은 천체망원경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별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부호인가 보이.”

16549737283787.jpg“그렇다면 저 첨탑이 바로 전망대의 기능을 하는 것인가 보구먼.”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렵다는 것들이 한낱 소품처럼 종류별로 붙어 있는 것도 심상치 않았다.

16549737283787.jpg“일전에 저택 문이 슬쩍 열릴 때 보았는데, 그 내부가 울창한 숲이더라고!”

16549737283787.jpg“예끼, 이 사람아. 저택 내부에 어찌 숲이 있나?”

16549737283787.jpg“저, 저, 저 보라고! 지금 열리잖아!”

가끔 저택의 바깥 정문이 열릴 때면 틈으로 살짝 들여다보이는 내부. 그 안의 모든 나무가 달콤한 열매를 맺는 값비싼 것들이었다.

16549737283787.jpg“저 번쩍번쩍한 것은 설마 장미인가……?”

심지어 뜰에는 황금색 장미가 빼곡하게 심겨 있었다. 보통 고위 귀족들이 프러포즈할 때 몇 송이 묶어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에 저 장미 다발의 가치를 감히 돈으로 환산하기가 어려웠다.

16549737283787.jpg“저 분수대는 타일 하나만 떼다 팔아도 떼부자가 되겠구먼.”

정제된 분수대에서는 맑은 물이 솟구치고 있었는데, 다이아몬드가 알알이 박혀 환하게 눈을 찔러왔다. 얼마나 많은 다이아몬드를 박아 두었는지, 그냥 거대한 다이아몬드를 세공해서 분수대를 만든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저택 바로 앞의 문가에는 황금으로 만든 동상이 놓여 있었는데 보통 성인(聖人)이나 유명인의 동상을 만드는 것과는 달리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을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16549737283787.jpg“저 동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

16549737283787.jpg“저택 주인의 오래전 죽은 딸 아닐까.”

16549737283787.jpg“아니면 타국에서 믿는 신일 수도.”

그렇게 오가며 저택을 본 모든 이들의 감상은 하나로 귀결되었다.

16549737283787.jpg“누군지는 몰라도, 굉장한 대부호가 엄청난 사치를 했군.”

  *** 수하 악마로부터 저택에 대한 제국민들의 평가를 전해 들은 아가레스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원하던 평가였다.

16549737283787.jpg“인간들이 저택 내부를 본다면 더 놀랄 텐데요. 제국의 황궁조차 이렇지는 못할 것입니다.”

16549737141462.jpg“흐음…….”

마계에 있는 그의 성보다는 상당히 비루하고 협소해서 그다지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의 작은 친구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 둘 예정이니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황궁보다 이곳을 더 좋아해 주도록. 카시스 저택보다 이곳에 더 놀러 오고 싶어 하도록.

16549737141462.jpg‘날 집도 절도 없는 길거리 거지 악마 정도로 생각하는 우리 꼬맹이한테 보여줄 때가 되긴 했지.’

압도적인 능력에 저절로 따라붙은, 마음만 먹는다면 이 제국 영토를 모두 사들이고도 남을 그의 재력을.

16549737283787.jpg“그런데 주군께서 왜 굳이 인간계에 집을…….”

16549737141462.jpg“이미지를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만만한 악마, 거지 악마, 집 없는 악마 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다.

16549737141462.jpg‘가장 친한 친구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자들이 하나같이 만만치가 않단 말이지.’

황태자와 용, 후작 영애라니. 몇 년만 지나면 새끼 용 역시 자기도 용이랍시고 여기저기서 보물들을 모아 동굴 속에 처박아 두는 습성을 지닐 테니, 다들 재력으로 치자면 어디서 밀리지 않는 이들뿐이다.

16549737141462.jpg“제대로 한번 해봐야겠군.”

16549737283787.jpg“무엇을 말이십니까.”

그가 ‘리베르 파테르(Liber Pater)’를 머금으며 와인이 묻어 붉어진 입가를 손끝으로 훔쳐냈다. 이어지는 어조는 여전히 태평했다.

16549737141462.jpg“돈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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