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뭐야, 겁나 멋있잖아?2021.04.29.
이벨리아는 사절단원 중 가장 좋은 방을 얻었다. 본래대로라면 사절단의 대표인 휴고에게 배정되었을 방이지만, 아가레스가 몇 달 전 한밤중에 황제의 집무실로 쳐들어가 가장 좋은 방을 배정하라며 으름장을 놓은 결과였다. 벽면 한쪽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햇빛이 잘 들었으며, 휴고와 아가레스가 배정받은 방 사이에 딱 끼어 있어, 안전도, 경치도, 광합성도 최상이었다.
“으웅……. 눈부셔…….”
어젯밤, 휴고가 쳐둔 두꺼운 커튼도 쨍한 날의 햇빛을 완전히 가리지는 못했다. 감은 눈 위를 뛰노는 듯한 햇살에 부스스 눈을 뜬 이벨리아는 폭신한 이불에 얼굴을 마구 비비다가 멈칫했다. 여기가 어디지! 나 언제 잠들었지! 번쩍 눈을 뜨자마자 보인 커다란 침대는 금색의 베일이 양옆으로 묶여 있었다. 화려한 샹들리에 대신에 벽에 달린 환한 구체들이 방 안을 밝게 비추었고, 천장에는 독특한 색감의 아름다운 꽃문양이 가득했다.
“……?!”
“여기, 동대륙.”
한참을 멍하니 두리번거리는 누나를 보다 못한 엔리르가 잠시 날개를 꺼내 파닥파닥 날아와 정보를 전달했다. 아르칸의 당부에 따라 곧바로 날개를 집어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핫! 동대륙!! 내가 잠깐 조는 새에 몰래 도착했구나!”
엔리르의 느릿한 속삭임을 듣자마자 이불을 뻥 하니 걷어찬 이벨리아는 발딱 일어나 문으로 우다다 달려 나갔다가 문밖에 시립해 있던 하르벤타 제국의 시녀에게 달랑 붙잡히고 말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공녀님. 하르벤타 제국에 계실 동안 공녀님의 시중을 들 베타 카리엘리라고 합니다. 편히 베타라 불러 주시지요.”
“반갑네, 베타. 나 밖에 좀-.”
“아직은 안 되십니다. 잠시.”
빨리 바깥 구경을 하고 싶어서 버둥거리는 몸짓은 하등 소용이 없었다. 주름이 진 시녀장은 이벨리아 정도의 어린아이쯤이야 눈을 감고도 손바닥 안에서 굴릴 수 있을 만큼 노련했다. - 짝짝. 시녀장이 두어 번 손뼉을 치자 시녀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와 예를 갖추었다. 제법 어려 보이기는 했지만, 황제 폐하께서 직접 잘 모시라 명하신 무려 타 제국의 공녀. 까탈스러운 귀족들을 많이 겪어본 시녀들은 타 제국 공녀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이후 동대륙 특유의 꽃향기가 나는 향유로 씻고, 머리를 빗어 내리고, 가장 부드럽다는 라크 비단으로 만든 푸른색 당의를 입은 이벨리아는 그 자체만으로 마치 덜 여문 복숭아 열매처럼 사랑스러웠다. 꾸밀 맛이 나는 타국의 공녀님에, 시녀들은 저들도 모르게 이벨리아를 치장하는 손길에 정성을 더했다.
“옷 아주 예쁘다……. 하르벤타 제국 옷은 참 예쁘구나.”
자국의 의복이 아름답다 칭찬하는데 이를 물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독특한 색감과 부드럽게 퍼지는 곡선이 자랑이지요.”
기실 며칠간 타국의 공녀님 시중을 들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다지 탐탁지 않았던 시녀들마저 사심 없는 칭찬에 가슴 가득 뿌듯함이 차올랐다. 금색 실이 수놓아진 푸른 당의와 옥빛의 비단 치마. 거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황금빛 머리카락이 옷의 가치를 수십 배는 높여 주는 것만 같아 시녀들도 새어 나오는 감탄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또 누가 입느냐에 따라 천지 차이기도 하지요. 자, 이것을.”
시녀장은 마지막으로 이벨리아의 머리 양쪽에 은색으로 빛나는 핀을 끼워주며 황금색의 통행패를 쥐여주었다.
“이 황궁의 극비 장소 이외에는 이 하르벤타 제국 어디라도 출입이 가능한 통행패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직접 전달해 달라 하명하셨습니다.”
아마 이벨리아가 에르카디아의 황궁 내에서 몇 가지의 기물파손 및 대장 선포 등을 한 전적이 있음을 알았더라면, 황제 세필리아가 이런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을 터였다.
“점심에는 황제 폐하를 알현하셔야 하오니, 그전까지 구경하시다가 돌아오시지요.”
“응! 그럴게!”
시녀장의 말을 듣고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금방이라도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릴 것처럼 다리를 달랑대고 있는데, 방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 똑똑. 이내 밖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벨리아는 웃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꼬맹이. 놀러 가자.”
‘역시 내 친구!’
이쯤 되면 이심전심이 분명했다. 나가려고 하는데 아주 딱 맞춰서 찾아온 것 봐! 기특한 토끼 같으니. 실상 아가레스는 해가 뜨기 전부터 방문 앞에 기대어 작은 친구가 일어나 준비를 마치기를 기다렸으나, 이벨리아는 모르는 사실이었다. 든든한 보호자도 생겼겠다, 이벨리아는 망설임 없이 의자에서 뛰어내려 문을 벌컥 열었다.
“가자! 황궁 탐험!!”
“어디부터 가고 싶어?”
“저기 뒤편에 후원이 있대. 황족들만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던데……, 짠!”
이벨리아가 황금패를 높이 치켜들며 말을 이었다. 높게 쳐든 팔은 아가레스의 가슴팍에도 채 닿지 못했다.
“이걸 받았지! 이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대!”
황금 통행패를 자그마한 이로 깨물어 잇자국이 남자 ‘오오- 진짜 금!’이라며 감탄하는 이벨리아를 보며 아가레스가 나직한 웃음을 흘렸다.
‘애한테 별걸 다 가르쳤다, 미친개 기사단.’
“특별히 토끼도 데리고 들어가 줄게. 아마 토끼를 처음 만난 숲속처럼 예쁜 곳일 거야.”
이벨리아는 걸어서 단 10분 거리에 있는 후원을 장장 30분에 걸쳐 걸어갔다. 한 손에는 황금색 통행패를 꼬옥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황궁의 모든 것을 만지작대면서 이리저리 옆길로 새는 바람에.
“와아- 저것 좀 봐!”
“예쁘긴 한데, 우리가 가는 후원은 저쪽.”
아가레스는 마치 어린 양을 우리 속으로 몰아넣는 양치기가 된 기분이었다. 이벨리아의 작은 발걸음이 후원 입구 앞에 닿자 후원을 지키던 문지기들은 황금색 통행패를 확인하고는 앞을 막았던 창을 거두어들였다. 아무래도 손으로 밀어서 여는 문은 아닌 듯, 문지기들이 사슴 모양의 패를 거대한 나무 중심에 끼워 넣자 나무가 덩굴을 빠르게 걷어 올리면서 후원의 입구가 나타났다.
“산……?”
좁은 입구 안쪽으로는 상당히 광활한 산이 보였다. 말 그대로 산이었다. 그러니까,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것만 같은 자연 그대로의 산. 하르벤타의 황제는 꽃보다는 나무를 좋아했고, 고요하고 한적한 후원보다는 새가 울고 사슴이 내려오며 종종 뱀이 출몰하기도 하는 자연 그대로의 산맥을 좋아했다. 황제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한 후원은 이벨리아 키의 수십 배는 될 것 같은 울창한 나무들과 정제되지 않은 흙길이 매력적이었다.
“산이 통째로 후원이라니! 나중에 나도 이런 후원을 가지고 싶어!”
신고 있던 신발을 냉큼 벗어 던지고 흙길을 자박자박 밟으며 이벨리아가 환호성을 터뜨리자, 아가레스가 난감한 듯 웃었다.
“꽃만 가득한 건 재미가 없어. 이곳이 훨씬 마음에 들어!”
네가 원한다면 산을 옮겨서라도 만들어주기야 하겠다만, 그 황제의 취향을 닮으면 곤란한데.
“여기 우리 비밀기지랑 비슷하다, 그치?”
작은 친구가 고약한 황제의 취향을 답습할까 우려하던 아가레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부드러이 풀어졌다.
‘우리.’
친구의 입에서 들려오는 단어가 감미로웠다. 단 한 번도 묶인 적 없던 테두리가 주는 안온함은 아무리 느껴도 질리지 않았다.
“그래, ‘우리’ 비밀기지랑 비슷하네.”
말로 뱉어 되새겨보아도 여전히 달아, 아가레스는 붉은 입술을 혀로 한 번 쓸었다. 그렇게 이벨리아와 엔리르가 마음껏 흙길을 만끽하고 아가레스가 조금 떨어진 뒤에서 천천히 따라 걷고 있을 때였다. - 바스락. 풀숲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누군가 소리를 낮춰 대화하는 듯한 속삭임이 뒤를 이었다.
‘누나가 나가 봐. 얼른.’
‘크흠. 흠. 기다려봐. 목소리 좀 가다듬고.’
“……?”
바람결에 들려오는 낮은 헛기침 소리에 이벨리아가 귀를 쫑긋 세우고 몸을 돌렸다. 엔리르는 수상한 사람이 누나를 괴롭히면 꽉 깨물어 주라는 휴고의 당부를 떠올리며 작은 송곳니를 드러내고 아르릉거렸다. 잠시 뒤, 풀숲을 헤치고 나온 아이는 이벨리아의 또래로 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몸짓에 따라 허공을 수놓는 기다란 붉은 색 머리카락을 보며 이벨리아는, 마치 동화책에서 본 도깨비불 같다고 생각했다.
“어푸- 퉤, 퉤!”
소녀는 풀숲에 숨어드는 바람에 입속에 들어간 자그마한 나뭇잎을 퉤퉤 뱉어내며 머리를 쓸어 올리고 입을 열었다.
“이곳은 황족만이 출입할 수 있는 후원이다! 아무리 에르카디아 제국의 사절단이라고 한들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고양이라기보다는 새끼 표범과도 같은 느낌의 소녀는 팔짱을 끼고 고고하게 턱을 치켜든 채로 근엄하게 다그쳤다. 소녀를 따라 풀숲 속에서 걸어 나온 소년도 이벨리아와 엇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붉은색 머리 위에 미처 털어내지 못한 나뭇잎을 붙이고서 소녀의 당의 소매를 톡톡 당기는 것이 꽤 수줍은 성격인 듯했다.
“누나, 저기 손에 황금패…….”
“뭐?! 황금패?!”
소녀는 제법 다혈질인 편이었고.
“폐하께 받은 것이로군. 그렇다면 조금 전에는 실례했다. 사과하지.”
상당히 사과가 빠른 편이었다. 한껏 위엄을 갖추려 화려한 깃을 펼친 공작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깃털에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것처럼 허술하기도 했다. 딱 그 나이처럼. 소녀가 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나는 하르벤타 제국의 황태녀, 이샤트 루 하르벤타라고 한다.”
씨익 웃으며 손을 내미는 소녀는 허술할지언정 만만치는 않았다. 아가레스가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게 크면 딱 지금의 황제처럼 되겠어.’
이 제국이나 저 제국이나 다음 대 황제 중 제대로 된 인간이 없겠군.
‘차라리 다 갈아엎고 우리 꼬맹이를 황제로 세울까.’
“처음 뵙겠습니다. 에르카디아 제국 사절단원, 이벨리아 아르티나입니다. 하르벤타의 꺼지지 않는 홍염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는 길에 이미 익혀둔 하르벤타의 인사말이 청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흘러나왔다. 사절단원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는 이벨리아가, 정중하지만 비굴하지 않게 인사를 마주 건네며 이샤트의 손을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손을 잡아 인사하는 것은 고위 귀족의 예법에 걸맞지는 않았으나, 먼저 내밀어져 온 손을 마다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샤트는 의외라는 듯 한쪽 눈썹을 살짝 올렸다. 그 위세 높은 아르티나의 공녀가 이렇게 얌전한 레이디였다고?
“이쪽은 내 동생 아드니엘. 나랑 쌍둥이지.”
이샤트의 옆에 선 아드니엘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쌍둥이라고는 하지만, 당차고 활발한 이샤트에 비해 움츠러든 아드니엘이 훨씬 어려 보였다.
“이해해. 얘가 낯을 많이 가려서.”
자칫 버릇이 없다고 오해할 법한 인사에, 이샤트는 이벨리아의 오해를 방지하고자 어깨를 으쓱하며 해명을 덧붙였다. 이벨리아가 대수롭지 않게 사르르 웃자 이샤트와 아드니엘의 시선이 해사한 얼굴에 못 박히듯 머물렀다. 그루터기에 걸터앉는 이샤트는 타고난 기품과 위엄만 아니었다면 저잣거리 소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행동이 자유분방했다.
“……생각했던 것과는 꽤 다르네.”
“어떻게 생각하셨는데요?”
이는 야생의 꼬맹이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이벨리아가 흙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으며 여상히 물었다. 이샤트의 눈이 다시 한번 살짝 커졌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뭐, 좋은 능력만큼 거만하고 오만하고 깔끔을 떠는 성격인 줄 알았지. 딱 재수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얌전하고 털털한 성격인 줄은 미처 몰랐달까. 예법에는 어긋나게 손을 내밀며 인사를 청해도 놀라지 않고 받아준다. 채신머리없이 그루터기에 대강 걸터앉아도 땅바닥에 마주 앉아주며 분위기를 맞추어 준다. 전형적인 고위 귀족과는 조금 다른 모습에 이미 이벨리아에 대한 호감도가 한 20% 정도는 올라갔지만, 이를 드러내기가 어딘지 민망해 이샤트는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재수가 영 없지는 않네.”
“황태녀님은 딱 재수 없기 직전이에요.”
오는 말투가 퉁명스러우니 가는 말투도 불퉁하면서도 서로의 얼굴에는 한 점 불쾌감도 없었다. 황태녀와 공녀. 드높은 신분에 맞지 않게 그루터기와 땅바닥에 주저앉은 이샤트와 이벨리아의 녹안과 청안이 얽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시원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나아…….”
호쾌한 이샤트의 웃음소리와 청량한 이벨리아의 웃음소리를 뚫고, 이샤트의 뒤에 매달린 아드니엘이 이벨리아의 뒤쪽을 가리키며 칭얼거렸다.
“왜?”
“저기 뱀…….”
“뱀?!”
이샤트가 앉아 있던 그루터기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치 세상 모든 뱀을 무찌를 것처럼 부라린 두 눈과 주먹 쥔 두 손이 든든했다. 이벨리아는 이샤트가 뱀을 처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으악! 진짜 뱀이잖아!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동생 아드니엘을 휙 내동댕이치고 혼자 그루터기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뭐야 저 사나워 보이는 겁쟁이는.’
‘겁쟁이였어?’
독은 없어 보이지만 혹시라도 이벨리아가 두려워할까 싶어 가까이 다가오던 아가레스도, 이샤트가 마땅히 그 고고한 위엄을 뽐내며 동생을 보호하리라 생각했던 이벨리아도,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루터기 위에 올라간 이샤트를 바라보았다.
“이봐, 공녀! 얼른 도망쳐라! 뱀이다, 뱀!”
“…….”
“뒤! 뒤에 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이샤트가 손가락질하는 방향으로, 이벨리아가 느리게 뒤를 돌았다. 주황색 몸통에 흰색 줄, 거기에 중간중간 그어져 있는 검은 색 무늬가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이긴 했다. 뱀은 이벨리아로부터 고작 열 보 떨어진 곳에서 꼬리를 파르르 떨며 혀를 날름거렸다. 그 위협적인 자태를 본 이벨리아가 양손으로 통통한 두 볼을 감싸 쥐고 꽥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 진짜 뱀이다!”
“거 보라지 않았나! 여기에라도 올라와! 어서!”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뱀이다!”
“그래, 몸에 좋고- 뭐?!”
그루터기 위에서 소리를 지르던 이샤트의 말문이 턱 막혔다. 긴박하게 도망가던 아드니엘이 뻣뻣하게 굳었다. 이벨리아가 두려워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빠르게 다가와 뱀을 잡아 던져버리려던 아가레스도 뚝- 멈춰 섰다. 뱀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던 엔리르의 털이 바르르 떨렸다. 습기 없는 따뜻한 바람이 조용해진 후원을 한 번 쓸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황금빛 머리칼, 그 아래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얼굴, 조막만 한 붉은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뱀탕은 불치병도 완치!”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벨리아가 끄트머리가 대충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 나무막대기를 주워들었다.
“뱀술은 죽은 자도 벌떡!”
“…….”
“…….”
잡아서 이따가 점심에 하르벤타 제국의 황제 폐하한테 선물로 드려야지. 앙다문 이샤트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아르티나 공녀가 얌전하다고 했던 거 전부 취소야.
“뭐야…….”
뱀의 머리 아래를 막대기로 꼬옥 눌러 손으로 휘어잡는 이벨리아를 멍하니 바라보던 이샤트가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중얼거렸다.
“겁나 멋있잖아……?”
마치 산삼이라도 캔 것 마냥 뱀을 번쩍 들어 올린 작은 친구. 왜인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무려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감탄하는 하르벤타의 황태녀. 도망가려다 말고 저 멀리서 박수를 짝짝짝 치고 있는 황자.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아가레스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침음을 내뱉었다.
“아르티나 기사단…….”
그 망할 미친개들. 대체 애한테 뭘 가르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