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황궁에 웬 개 짖는 소리가2021.03.18.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지 않나. 결국 휴고는 이벨리아의 손에 곱게 들린 초대장을 결국 빼앗지 못했다.
“후…….”
그도 그럴 것이 초대장을 받았다고, 이제 루이네 집에 놀러 갈 수 있다고, 루이 아빠의 허락을 받았다고. 조막만 한 두 손으로 커다란 초대장을 소중히 쥐고 발을 동동 구르는 딸의 소망을 거절할 아버지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었다. 한편 우리 아기씨가 주인님을 따라 황궁에 가신다니 비비안의 손은 오랜만에 바빠졌다.
“우리 아기씨, 황궁은 정말 오랜만이시지요?”
“옹. 내가 다 크고 나서는 가 본 적이 없으니까!”
비비안은 회상에 잠겨 살포시 웃었다.
“아기씨 처음 황궁에 가실 적에도 제가 이리 치장을 도와드렸었는데.”
“으음…… 분명 내가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털모자를 썼었을 거야. 약간 기억이 나.”
“파란 드레스에, 봄이라 털모자는 쓰지 않으셨었지요.”
하녀인 비비안의 인식 속에 황궁은 별천지 그 자체였으니, 우리 순진한 아기씨가 별천지 속의 별이 되려면 최대한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드려야만 했다. 그렇게 비비안의 손에서 완성된 이벨리아는 평소보다 훨씬 더 고귀해 보였다. 존엄함을 상징하여 오로지 후작 영애 이상의 여성만 입을 수 있는 보랏빛 드레스. 그 위에 펼쳐진 황금빛 머리칼은 은하수에 수놓은 별빛을 닮았다. 드레스 밑단에 알알이 박힌 다이아몬드는 드레스에 담긴 휴고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감히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자수정으로 만든 물방울 형태의 머리핀을 꽂은 이벨리아에게서는 엘리시아를 닮은 고아한 분위기가 풍겼다.
“머리핀 모양이 마들렌하고 비슷해. 마들렌 먹고 싶은뎅.”
입만 열면 그 분위기를 깨는 것이 문제인지라, 비비안이 부드러이 웃으며 조언했다.
“우리 아기씨, 황궁 가시면 최대한 말을 덜 하시는 게 좋겠어요.”
*** 황태자의 집무실. 오전 여덟 시밖에 안 되었음에도 루드비히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어제 황제 칼라일이 처리한 서류들을 다시 보고 있었다.
‘실종자 수가 상당하군. 이게 우연일 수가 있는 건가.’
그 주인이 아직 어린 소년이라고 보기에는 제법 무거운 분위기의 집무실은 이곳저곳에 마구잡이로 쌓인 서류 더미들 때문에 지저분해져 있었다. 그러나 루드비히가 방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을 워낙 싫어하여 시종들은 감히 이를 치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차를 우려 건넬 뿐이었다.
‘금제(禁制)탑 출신 생존자가 발견되어 즉각 사살하였다라……. 아직도 남아 있었군.’
본래도 더할 나위 없이 부지런하고 뛰어나 타고난 군주라는 평을 듣고 있는 루드비히였다. 그럼에도 그는 최근 과도할 정도로 업무와 훈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작은 친구와 계약서를 작성한 그다음 날부터였다. 어린 나이에 홀로 세상을 마주한 루드비히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제국 누구보다 빛날, 높은 자리로 올라설, 소중한 친구의 곁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가 모든 이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홍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때문에 한층 더 빈틈없는 제국의 지존이 되어가고 있었으니. 지금처럼 멍하니 되묻는 태도는 루드비히의 시종에게도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뭐라고 했나.”
“아르티나 공녀께서 오늘 공작 각하와 함께 황궁을 방문하신다는 기별이-.”
이브가? 이브가 온다고? 대체 왜? 한 손을 대충 휘저어 시종을 물린 루드비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급하게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책상에 놓여 있던 잉크병이 쓰러져 서류 몇 장을 적셨으나 지금 그깟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브가 황궁에 오면 황궁 구경은 누가…….’
대체 이브가 왜 오는 것이냐고, 혹시 이브에게 황궁을 구경시켜주어도 되겠냐고, 황제의 집무실로 뛰어가 물으려던 루드비히는 문고리를 돌려 나가려다가 이내 걸음을 멈추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는데-. 방이, 더러워. 서류가, 지저분해.
‘혹시 땅 도둑이 내 방을 구경하러 올지도 모르잖아.’
루드비히가 줄을 두어 번 흔들어 종을 울리자 곧바로 시종들이 들어왔다.
“방 치우도록.”
루드비히가 자신의 집무실에 손을 대도록 지시한 것은 처음이었다. 시종들은 당혹감을 애써 숨기고 노련하게 고개를 숙였다. 시종들의 손이 사방으로 떨어진 서류뭉치에 닿으려던 찰나. 나가려던 루드비히가 한 번 더 멈칫하고는 사족을 덧붙였다.
“……깨끗하고 단정하게. 위엄 있게. 황태자의 방처럼 멋있게.”
*** 황제는 이벨리아에게 황궁 구경을 시켜주고 싶다는 루드비히의 간청을 흔쾌히 허락했다. 애초에 아르티나 공작으로부터 살기 어린 눈초리를 받게 될 것을 알면서도 왜 공녀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미친 짓을 거행했겠는가. 다 숙맥 같은 아들을 돕기 위함이었다. 황제가 보기에 그의 아들은 아직 아르티나 공녀를 그저 친구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으나.
‘세상 누가 단지 친구를 그런 조급한 눈길로 바라본다던가. 시간이 지나 두 아이가 성인이 되면 관계가 어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공녀가 다쳤을 땐 꼬랑지에 불붙은 망아지인 양 안절부절못하지를 않나. 공녀가 공작저에서 치료를 받는 엿새 동안은 먹이를 빼앗긴 강아지인 양 낑낑대지를 않나. ‘지금은’ 단순한 친구일 뿐이더라도 추후의 관계는 아무도 장담치 못할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황제는 이벨리아가 루드비히와 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제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을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집무실에서 나온 루드비히는 황궁의 시종장을 불러내어 이것저것 지시하기 시작했다.
“점심은 온실에. 음료수는 오렌지주스로.”
그 아이는 꽃을 좋아하고 벌레는 싫어하니까. 벌레가 많은 정원보다는 온실이 낫지.
“지금 온실에 핀 꽃이 무엇이던가.”
“지금은 장미가-.”
“금낭화로 채워두도록.”
땅 도둑은 금낭화 향을 좋아하니까.
“후원의 분수대는 수리가 끝났는가.”
“아직 완벽하게 끝나지는 아니하여 운영은 차주부터-.”
“오늘부터 운영하거라.”
내 작은 친구는 분수대를 좋아하니까.
“뒤쪽 숲에는 사슴들이 서식했던 것 같은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지금은 잘-.”
“사슴들이 좋아할 법한 먹이를 숲 입구에 풀도록.”
이브는 저를 꼭 닮은 동물들도 좋아하니까.
“그, 흠…….”
“전하?”
물 흐르듯 지시하던 말이 일순 멈추자, 시종장이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다.
“그, 옷은, 괜찮은가.”
옷? 무슨 옷? 두어 번 눈을 깜박이던 시종장은 어울리지 않게 귀 끝이 붉어진 제국의 작은 태양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참으로 잘 보이고 싶으신 모양이구나.
“지금도 완벽하시지만 황비 전하와 공작부인 다음으로 고귀한 여성을 에스코트하는 자리이니, 정복을 갖추어 입으심이 어떨까 싶습니다.”
기실 정복까지 갖추어 입을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황실의 정복은 실로 화려하여 어린아이의 시선을 잡아두기에는 제법 효과적이었기에, 눈치 빠른 시종장은 정복을 준비하도록 일렀다.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는 황태자 전하께서는 어린 나이에 북부를 시찰하고자 검을 쥐고 말에 오르던, 모후의 죽음에도 입술을 깨물고 피를 흘릴지언정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서릿발 같은 음성으로 귀족들을 다그치던 그 소년과 동일 인물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처음 보는 그 소년다운 모습이 시종장의 눈에는 꽤 만족스러웠다. *** 왕국도 아닌 제국. 위엄을 상징하는 황궁은 과히 넓은 것이 당연했다. 그러니 황궁 입구에서 황제 또는 황태자의 궁이 있는 중앙까지 가기 위해서는 걷는 것으로는 턱도 없었고, 전용 마차를 타야 했다. 귀족 가의 사적인 마차는 황궁 내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기에 휴고와 이벨리아도 황제가 직접 보낸 황궁 마차를 타고 내부를 가로질렀다. 또 황궁 내에서는 황족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호위 기사는 대동할 수 없었기에, 마차는 에딘이나 카론이 아닌 황실 기사들이 직접 몰고 있었다.
“마차 예쁘다! 이거 진짜 금이에요?”
“예? 예, 진짜 금입니다.”
“금으로 만든 마차를 만들도록 지시하마.”
근엄하게 서 있던 황실 기사에게 쪼르르 달려가 마차를 가리키며 묻는 작은 공녀님에게 그렇다고 답하는 기사들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귀족 영애들이라 함은 기사들을 저들의 아래로 보아 고고한 척 눈을 치뜨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와아- 저 방금 달려가는 사슴을 봤어요!! 저거 사슴 맞죠?!”
“……예, 맞습니다.”
“공작저에도 몇 마리 키우도록 하마.”
아르티나 공작에게 호위가 필요 없음은 이 제국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명목상 마부 겸 호위를 맡아 파견된 황실 기사단 단원들은 자칫 겁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기사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붙이는 이 제국 단 하나뿐인 공녀님이 신기했다.
“저거, 저거 동그란 거는 먹는 거예요?”
“저것은 마법 통신구입니다. 드시면 속 아야…… 아니 큰일 나십니다.”
“통신구랑 비슷하게 생긴 디저트를 만들도록 지시해야겠구나.”
휴고가 지붕이 없는 마차 위에서 폴딱폴딱 날뛰는 이벨리아를 답삭 잡아 무릎 위에 앉혔다.
“기사님 검은 엄청 커다랗네요. 저도 검술을 할 줄 알아요! 빨리 진짜 검을 가지고 싶은데, 제 검에 제가 베일까 봐 안 된대요.”
저 작은 아가씨가 검술이라니. 조잘대는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귀여워서 웃음이 나올 것 같은데 웃었다가는 아르티나 공작에게 도륙당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렇게 황실 기사단은 고통스럽게 웃음을 참으며 목적지로 달렸다. ***
‘방, 옷, 음식, 정원, 꽃, 분수대, 디저트. 빼먹은 건 없겠지.’
모든 준비를 마친 루드비히는 다시 집무실로 돌아와 바르게 앉았다.
“흠. 흠.”
작은 친구가 언제 어느 때 들이닥치더라도 정복을 입고 업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이미 몇십 번은 봤던 책, [친구 관계, 이것만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책에 적혀 있었다.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면 그 친구가 전부인 것처럼 매달리지 말고 자기 할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그러나 눈만 서류를 향하고 있을 뿐이지 깃펜은 멈춘 지 오래. 귀는 쫑긋거리며 문 바깥에 작은 발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하기 일쑤였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지.’
분명 20분 전 즈음에 아르티나 공작이 도착했다는 말을 시종으로부터 전해 들었는데. 꼬맹이의 발걸음이 느려서 내 방까지 오는 데 오래 걸리는 걸까. 결국 책에 적힌 조언은 급한 마음 앞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업무에 집중하는 척을 하던 루드비히는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섰다. 그를 찾아오고 있을 작은 친구에게로. ***
“제가 분명. 아르티나의 충성을 길이 얻으시길 바란다고. 어제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컥.”
뜨거운 홍차가 황제의 목에 턱 걸렸다. 눈동자를 또르르 굴리던 황제가 애써 호기롭게 웃었다.
“으, 으하하하핫- 시종장! 와서 공녀를 황태자의 집무실로 좀 안내하도록. 황궁 구경은 황태자가 도울 것이라 하였으니!”
“초대해주셔서 무한한 영광입니다, 황제 폐하.”
이벨리아는 밥줄에게 세상 순진하게도 드레스를 살포시 들어 올리며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 자태에 황제의 만면에 웃음이 가득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암, 공녀를 며느리로 들일 수만 있다면 친우의 손에 사지 한두 개 결딴나는 것쯤이야 아쉽지 않지!’
그렇게 황제의 집무실에서 나와 안내하는 시종장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쫄랑쫄랑 뒤를 따라가고 있는데, 급작스럽게 모퉁이에서 튀어나온 여자에 의해 발걸음이 멈추었다.
‘……?’
여자가 입은 머메이드 식의 황금색 드레스는 몸의 곡선을 완벽하게 살려주었고, 바짝 세운 깃과 위로 높게 올려 묶은 머리는 절로 위압감이 들게 했다. 길게 빼 그린 눈꼬리는 고양이 같은 여성의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해주었지만, 그만큼 표독스러운 인상을 주기도 했다.
“아르티나의 공녀님이로군.”
부드러이 웃으며 건네는 말투는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고개를 숙이는 시종장의 등이 굳는 것이 느껴졌다.
‘시종장이 고개를 숙이는 여자.’
황궁에 오기 전, 엘리시아로부터 황궁 비사 여러 가지를 들은 이벨리아는 단번에 감을 잡았다.
‘저 여자가 내 친구 루이에게 독을 타 먹였다는 그 여자구나.’
저 여자가 내 친구 루이를 끌어내리려고 한다는 그 여자구나.
“황비 전하를 뵙습니다. 이벨리아 아르티나입니다.”
“나를 아나?”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황비를 향한 귀족들의 인사법에는 ‘태양의 그림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벨리아는 이를 알면서도 일부러 쏙 빼고 황비를 지칭했다. 기실 ‘황비’라는 것은 에르카디아 제국법이 정하는 공식적인 지위는 아니었다. 한 황제에 단 하나의 반려, 황후. 그러다 보니 황제의 첩을 마땅히 지칭할 단어가 없어 황비라는 지위를 내려준 것일 뿐, 건국 당시부터 유래 있는 지위는 아니라는 것. 그렇기에 ‘태양의 그림자’라는 허울뿐인 인사말이 생긴 것이었다. 달이 되진 못한. 그러나 태양의 뒤에 선 유일한 자. 또 태양의 비호를 받는 자. 이를 빼고 지칭하는 것은 일견 모욕적으로 들릴 법도 했다. 태양의 그림자라는 사회통념에 비춘 인사말을 제외한다면 이 제국법상 황비의 지위를 인정하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으니. 또 성인인 귀족이 단지 ‘황비 전하’라고만 칭하는 경우 그 의미는 ‘근본도 없는 지위에 앉은 여성’을 돌려 비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야사도 있을 정도니까.
‘공녀가 아직 어려서 뭘 모르는 것이겠지.’
황비는 다시금 고아한 미소를 띠었다. 황비에게는, 그리고 그의 아들 에드윈에게는, 아르티나 가문이 필요했다.
“듣던 대로 똑똑한 아가씨로군. 어디 가시는 길인가?”
“영광스럽게도 아버지를 따라 입궁할 기회를 얻어 황궁을 구경하고자 하는 길입니다.”
이벨리아 또한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니라는 듯, 여상히 웃어 보였다. 아버지는 이 제국 귀족들의 수장이요, 어머니 역시 비범한 장군임과 동시에 이 제국 귀부인들을 통솔하는 격 높은 여인. 타고나길 이 핏줄을 안고 태어나 매번 이 제국 커다란 역사와 분쟁, 야사와 비사를 듣고 자랐다. 본능적으로 지닌 눈치와 자라면서 배운 감각은 이 상황에서도 이벨리아를 태연하게 만들었다.
“황궁은 홀로 구경하기에는 너무도 넓지. 오, 마침 저기 황자가 오는구나.”
황비의 시선이 닿는 곳으로 눈길을 던진 이벨리아가 얼굴을 살포시 찌푸렸다.
‘그 뱀 후작하고 느낌이 영 비슷한데.’
그러니까, 더럽고 치졸한 자 특유의 불길한 느낌이랄까. 고상하기보다는 거만한 팔자걸음으로 황비의 곁에 와서 선 황자는 어서 내게 인사하라는 듯 고개를 빳빳하게 세워 들었다. 턱을 치켜들고 이벨리아를 내려다보는 검은색 눈이 제법 오만했다. 명백히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
‘하.’
이벨리아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이벨리아는 자신의 위치를 잘,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설령 이 제국의 황제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지위. 다른 제국이나 왕국에 사절로 간다면 국빈으로서의 대접을 받을 지위. 황태자도 아닌 황자에게 이딴 눈길을 받아야 할 지위는 결코 아니었다.
‘아무리 황족이라지만 건방져.’
기분이 상한 이벨리아는 건성으로 인사를 건네었다.
“황자 즌하를 뱁슴다. 이벤리아 아으티나라고 함다.”
일견 버릇이 없어 보이면서도, 또 고작 어눌한 말투를 가지고 트집을 잡기도 뭐하여 에드윈이 한쪽 눈을 살짝 찌푸렸다. 옆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황비가 우리 아들 최고 스킬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어떤가, 공녀. 우리 황자는 외모가 참 출중하지. 벌써 많은 영애들의 구애를 받고 있단다.”
응, 안 출중해. 눈을 뜨다 만 꼴뚜기 같아.
“무예도 상당히 뛰어나서 얼마 후면 북부 시찰을 다녀올 예정이기도 하지.”
네, 짝짝. 대단하시네요. 제 친구 루이는 이미 옛날 옛적에 다녀온 것으로 아는데.
“지략은 또 얼마나 군계일학인지, 벌써 웬만한 병법 책은 다 읽었지 뭔가.”
아이고, 뇌는 꼴뚜기 뇌가 아니라서 그거참 다행입니다.
“흠, 그래서 공녀가 우리 황자와 좋은 관계를 맺어 주었으면 싶은데.”
아 니예, 니예. 녭??!! 시큰둥하게 고개만 까닥이던 이벨리아의 동공이 놀란 토끼처럼 확장되며 고개가 번쩍 들렸다. 그 좋은 관계라는 것이 그냥 친구로서 쎄쎄쎄, 하고 놀라는 것은 아닐 텐데? 그보다 더 깊은 그렇고 그런 관계를 원하는 것일 텐데? 이내 나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던 표정은 장렬하게 무너져 이벨리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만천하에 알렸다. 야-!! 황궁에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