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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루이 새끼가 어떤 새끼냐 (48/323)

48화. 루이 새끼가 어떤 새끼냐2021.03.15.

더없이 하찮은 계약서를 작성하고 며칠 뒤였다. 악마 제파르에 의해 실라페가 역(逆)소환되면서 뒤집어졌던 속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 같았다. 정령서에 따르면 역소환의 후유증은 제법 길다 하였으나, 생각보다 빠르게 속이 나아진 것은 요리장 세토의 정성스러운 음식 덕분이기도 했다.

16549729917599.jpg“실라페!”

정령 소환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자 이벨리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실라페를 불러내는 것이었다. 역소환된 정령들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정령계로 돌아갈 뿐이라는 것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령도 고통을 느끼는지, 다쳐서 피를 흘리는지, 그런 세세한 것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케르베로스의 이빨에 물려 사라진 실라페가 계속 신경 쓰였다. - 쏴아아. 창문 닫힌 방에 난데없는 소소리바람이 불더니 이내 연둣빛 독수리의 형상을 띠었다. 한 번 크게 날갯짓을 한 실라페가 곧장 이벨리아에게로 날아들었다.

16549729917605.jpg[계약자! 괜찮아? 안 괜찮아? 개 같은 악마 새끼! 세상에, 이 커다란 볼따구에 반창고 붙인 것 좀 봐!]

하려던 걱정도, 사과도, 모두 선수를 빼앗겼다.

16549729917599.jpg“아니, 실라페가 괜찮은지 물어보려고 부른 건데…… 난 괜찮아! 다 나았어!”

이어진 말은 실라페를 비롯해 실라페를 통해 이벨리아를 지켜보던 페르세스마저도 웃음 짓게 했다.

16549729917599.jpg“실라페는 괜찮아? 정령도 의사 정령이 있어? 의사 정령이 치료해준 거야?”

16549729917605.jpg[의사 정령……. 병아리가 가진 저 정령서는 스튜 받침이야?]

16549729917599.jpg“……좀 더 크면 읽을 거야. 아직 글자가 너무 어려워서 일단 저기에 둔 거야.”

스스로도 민망한 것을 알아서 이벨리아의 목소리가 어물어물 작아졌다.

16549729917605.jpg[정령이 받을 물리적 충격은 모두 정령사가 대신 받지. 우리 계약자 덕에 난 괜찮아.]

병아리 계약자의 몸 여기저기 남은 생채기가 마냥 신경 쓰여 이벨리아의 곁을 맴돌며 바람을 일으키던 실라페가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16549729917605.jpg[제발 공부를 좀 해. 모처럼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 왜 이리 게을러?]

16549729917599.jpg“이……이만 돌아가!”

이벨리아는 날개로 찰싹찰싹 머리를 내리치며 다그치는 실라페를 얼른 정령계로 돌려보냈다.

16549729917599.jpg“실라페는 우리 엄마처럼 잔소리쟁이구나.”

고개를 저은 이벨리아가 아마도 걱정하고 있을 물고기 친구, 운디네도 불렀다.

16549729917599.jpg“웅디네.”

작은 물보라가 치더니 허공에서 헤엄친 물고기가 찰싹 이마로 달라붙었다.

16549729945813.jpg[으어어엉- 아주 가만 안 둘 거야! 우리 병아리 통통한 볼따구에 이게 무슨 일이야 으어엉-.]

16549729917599.jpg“내 볼따구…….”

실라페도 운디네도 커다란 볼따구, 통통한 볼따구라고 하니 이벨리아는 저도 모르게 제 볼을 조물조물 만져보았다. 이거 다 젖살이랬어. 이거 다 크면 빠진다고 했다고. 물의 정령답게 운디네가 퐁퐁 솟아낸 눈물은 이벨리아의 방 카펫을 흠뻑 적셨다. 더 이상 카펫이 젖지 않도록 타월을 몇 겹 가져다가 까는데, 운디네가 스튜 받침으로 쓰이던 이벨리아의 정령서를 들고 뽈뽈 날아와 페이지를 뒤적거렸다.

16549729945813.jpg[히끅…… 우리 병아리 소중한 볼따구……. 자, 여기 좀 봐, 병아리야.]

16549729917599.jpg“……?”

16549729945813.jpg[아직 네가 여기까지는 읽지 않은 것 같은데, 여기 적힌 이분이 우리들의 왕이셔.]

운디네가 그렇게 칭송해 마지않는 왕이라는 말에 이벨리아가 호기심을 가지고 흘끗 정령서를 들여다보았다. 잘 알려진 것이 없어 기재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서두로 시작하는 페이지에는, 물의 정령왕에 대한 이름과 굉장히 간략한 정보 정도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16549729945813.jpg[잘 봐뒀어? 잘 기억 해뒀어? 앞으로 혹시 무슨 일이 생기거든, 우리의 왕의 존함을 불러.]

16549729917599.jpg“그런데 여기에, 왕을 부르려면 생명과 맞바꾸어야 한다고 쓰여 있는데……?!”

16549729945813.jpg[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인간이 감히 왕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영혼에 깃든 <자연력>을 끝까지 끌어다 써야 하니까.]

16549729917599.jpg“끝까지……?”

16549729945813.jpg[응. 지닌 자연력이 정령왕을 소환할 때에 필요한 자연력보다 적다면 즉사하는 것이 당연하고, 엇비슷하다고 하더라도 회복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일반적이야.]

섬뜩한 설명 뒤로 이어지는 운디네의 말은 여느 때와 같이 저의 왕에 대한 칭송이었다.

16549729945813.jpg[무려 이 세상 모든 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야.]

이 제국 전역에 비를 내리실 수도, 해일을 일으키실 수도, 모두 말려 사막으로 만드실 수도 있는, 그 모든 불가능한 것들이 가능하신 분이라고.

16549729945813.jpg[그런 분을 뵈려면 마땅히 그 정도 위험이야 감수해야 하지 않겠어?]

16549729917599.jpg“나는 아직 죽기 싫어. 안 부를래.”

혼신의 힘을 다한 영업에도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이벨리아에게, 운디네는 작은 비밀 하나를 알려주었다.

16549729945813.jpg[이번 같은 일이 생긴다면, 악마의 손에 죽나 우리의 왕을 소환하다 죽나 매한가지 아니야? 그리고 왠지 병아리 너는 괜찮을 거 같아.]

인장이 있으니까. 물의 왕께서, 바람의 왕께서, 직접 네게 남기신 인장. 그러나 이는 한낱 하급 정령인 운디네가 감히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운디네로서는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을 건네는 것이 최선이었다.

16549729945813.jpg[존함을 꼭 기억해 둬.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불러야 해. 알았지? 응?]

아마 기다리고 계실 거야. 감히 악마가 네게 손을 뻗던 그날. 네가 다쳤던 그날. 모든 왕들께선 길고 긴 시간 동안 보이신 적 없는 분노를 내비치셨으니.

16549729945813.jpg‘그래도 가능하면 다른 왕이 아닌, 나의 왕을 처음으로 불러주면 좋겠어.’

나의 왕께서 가장 오랜 시간, 가장 간절하게, 너를 기다리셨으니까. 운디네는 애써 다른 정령왕들이 적힌 페이지를 가리고, 물의 왕 엘라임이 적힌 페이지만을 오래도록 보여주었다. 어딘지 익숙한 느낌이 들어 이벨리아는 입속으로 몇 번을 되뇌었다.

16549729917599.jpg‘엘라임…….’

세상 모든 물을 다스리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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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549729917605.jpg“서부 영지들 대부분에서 실종자 신고가 빈번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16549730004064.jpg“분명 일전엔 간간이 실종자가 있다 하지 않았었나.”

16549729917605.jpg“최근 그 수가 꽤 증가하였다고 하는데, 한 영지의 문제가 아니라 서부 영지 전체인 터라, 원인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16549729917605.jpg“어느 영지에 특별히 치중된 것이 아니라면 그저 우연 아니겠습니까. 실종자야 늘 있었던 문제였는데, 일시적으로 어느 지역에서 조금 더 많이 발생한다 하여도 이상할 것은 없지요.”

그렇게 루드비히가 황제의 옆에서 국정을 논하는 것을 들으며 배우던 그 시간.

16549729917599.jpg“흐아암-.”

이벨리아는 비밀기지에서 나른하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오늘 루드비히를 보기는 그른 것 같았다. 온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오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16549729917599.jpg“오늘 루이는 못 오려나 봐.”

1654973000409.jpg“아쉽기 그지없군.”

꼬맹이의 절친 자리 쟁탈자가 오지 않으니 아가레스는 자연히 기분이 좋아졌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즐겨 앉던 비밀기지 내 커다란 바위. 이벨리아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가레스가 바위에 깔아준 담요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다리가 점점 길어지고 있는 것은 같은데 여전히 땅에 발이 닿지 않는다. 애써 발끝을 땅 쪽으로 쭈욱 뻗어 동동거려보지만 두 친구들처럼 땅에 발이 닿으려면 아직은 한참 더 자라야 할 것 같았다.

1654973000409.jpg“아직 멀었어. 한참 짧으니 그만 용써.”

그를 따라 땅에 발을 대어보려는 작은 친구를 나른한 눈으로 바라보던 아가레스가 픽하니 웃었다.

16549729917599.jpg“치. 빨리 자라야 예쁜 옷을 입을 텐데.”

1654973000409.jpg“지금 입은 옷도 예쁜데. 무슨 옷을 입으려고.”

그는 지금 이벨리아가 입은 흰색 원피스가 참 마음에 들었다. 황금빛 머리칼과 흰색 원피스는 작은 친구의 맑은 성정을 그대로 외형화해 놓은 것 같았기에.

16549729917599.jpg“나, 얼른 얼른 자라서 이런 옷 입을 거야. 천이 모자라게 쓰인 것 같은 옷.”

1654973000409.jpg“…….”

이런 옷을 입을 거라면서 자그마한 손으로 묘사하는 옷들이 영 심상치 않다. 여기 훅, 저기 훅, 파내는 손동작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는 목적어를 빼고 작게 읊조렸다.

1654973000409.jpg“……그래, 하면 되니까.”

16549729917599.jpg“뭘?”

아가레스는 속으로 답했다.

1654973000409.jpg‘전쟁을.’

꼬맹이가 조금 더 크면 제국 내 사내자식들을 말살시키는 전쟁이라도 벌여야겠다. 여기저기 파인 원피스를 입은 꼬맹이를 보고 사내새끼들이 침을 흘리게 둘 수야 없지. 꼬맹이가 입고 싶다는 옷을 그가 입지 못하게 할 수는 없으니, 바라보는 사내놈들이 없어지면 될 일. 그를 현실화시키는 것 또한 그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말 한마디로 제국을 전쟁 위기로 몰아넣은 줄도 모르고, 이벨리아가 태연히 다른 주제를 꺼냈다.

16549729917599.jpg“있지, 루이랑 아스랑 나는 친구잖아.”

1654973000409.jpg“나랑 이브는 친구지.”

그 눈 빨간 자식은 알 바 아니고.

16549729917599.jpg“친구들끼리는 종종 집에도 놀러 가고 그러잖아.”

1654973000409.jpg“종종 그렇지.”

16549729917599.jpg“나, 놀러 가고 싶은데. 루이 집에.”

1654973000409.jpg“……왜 그 애새끼 집이야? 내 집에는 안 놀러 오고 싶어?”

16549729917599.jpg“토끼는 마계에 집이 있고 이곳에는 없잖아.”

1654973000409.jpg“있어.”

없었는데 있어. 오늘부터 있어. 이미 아가레스의 머릿속엔 어떻게 하면 꼬맹이가 방문하고 싶은 집을 만들 수 있을까 창대한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

1654973000409.jpg‘이 수도에서 가장 큰 저택을 사들이라고 지시해야겠군.’

긴 생을 사는 악마들도 때로는 인간계에서 유희를 즐기기도 하였으니, 없는 신분 하나 만들어서 저택을 매입하는 것 또한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악마가 인간계에 집이 있다고? 갸웃대던 이벨리아는 아스가 그렇다면 그런가보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16549729917599.jpg“사실은 황궁이 가고 싶은 거니까, 이번에는 루이 집에 놀러 가고 다음에는 토끼 집으로 놀러 갈래.”

저택이 아니라 황궁을 짓든지 사든지 빼앗든지 하라고 해야 하나.

1654973000409.jpg‘아니면 인간계에 제국 하나를 건설해야 하나.’

제 말 한마디에 한 제국 두 왕조가 생기거나, 대륙 내 다른 제국이 생길 위기에 빠졌는지는 모르고, 이벨리아는 또 여상하게 말을 이었다.

16549729917599.jpg“내가 아주 어렸을 때 생일파티를 황궁에서 했었대. 나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1654973000409.jpg“그래서 궁금한 거야?”

16549729917599.jpg“응. 황궁은 커다란 동상도 많고, 깊은 숲도 있고, 그 숲에는 때로 신기한 동물들이 나오기도 하고, 황궁 요리사들의 음식은 굉장히 맛있대.”

소중한 친구가 버릇없는 애새끼의 집으로 놀러 간다는 것에서 기인한 불쾌함을 애써 내리누르며, 아가레스는 그 모든 정보들을 기억했다.

1654973000409.jpg‘커다란 동상. 깊은 숲. 신기한 동물. 맛있는 음식.’

그날 밤, 아가레스의 충복 마르바스는 울상을 지으며 인간계의 부동산을 발로 뛰어다녀야만 했다. 큰 동상 여러 개를 만들 수 있고, 깊은 숲을 끼고 있고, 종종 신비한 동물들이 나오기도 하는, 황궁에 비견할 정도로 거대한 저택을 구하고자. 악마가 작은 친구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방법의 스케일은 이벨리아의 작은 머리로는 평생이 가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 아빠, 아빠, 아빠. 저 좀 보세요, 아빠, 아빠! 저녁 식사 시간, 휴고는 어디선가 느껴지는 강렬한 시선에 먹던 식전 빵을 다시 내려두었다. 딸의 저 눈빛에 껌뻑 죽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례로 저렇게 쳐다보는 딸을 이기지 못하여 축복제에도 보내준 전적이 있지 아니하던가.

16549730061701.jpg“우리 아가, 오늘은 또 무슨 일로 그렇게 쳐다보실까?”

희미한 미소를 띠고 시선을 맞추자, 이벨리아가 식탁 의자에서 폴짝 내려와 휴고의 자리로 가서 두 손을 위로 뻗었다. 휴고가 번쩍 들어 무릎 위에 앉히자, 이벨리아는 그제야 보다 가까운 곳에서 눈빛을 발사하며 입을 열었다.

16549729917599.jpg“아빠아- 친구 집에 놀러 가고 싶어요!”

16549730061701.jpg“카시스 영애의 집이라면 어제도 다녀오지 않았느냐.”

16549729917599.jpg“아아니- 렐리안 집 말고요, 루이네 집이요!”

16549730061701.jpg“……루이?”

휴고의 눈썹이 불길하게 꿈틀댔다. 딱 들어도 사내자식 이름인데. 이어 묻는 말은 지금 당장이라도 루이인지 나발인지를 척살할 것처럼 음산했다.

16549730061701.jpg“어느 집안 영식이냐.”

16549729917599.jpg“응? 아빠 루이 몰라요?”

갸웃대는 딸을 보며, 휴고가 아르칸과 세드릭을 슥- 눈으로 훑었다. 딸을 보는 꿀 떨어지는 눈빛과는 전혀 다르게 단단한 눈빛으로.

16549730061701.jpg‘말해라. 아들들아. 루이 새끼가 어떤 새끼냐.’

1654973008969.jpg“……황태자 전하께서 이브에게 알려준 애칭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

애칭.

16549730061701.jpg“하.”

짧게 숨을 끊어 쉰 휴고가 이벨리아를 내려두고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맞부딪히는 손가락 소리에 집사 하델은 시종들에게 바로 말을 준비하라 일렀다.

16549729917599.jpg“아빠?”

휴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딸을 뒤로하고 공작저를 나섰다.

16549730119639.jpg“이런, 큰일이네.”

말과는 달리, 재미있는 구경하겠다는 듯 엘리시아가 미소를 지었다. 엘리시아가 짐작한 대로, 휴고의 목적지는 황궁. 그의 오랜 친우에게 아들 관리 좀 잘하라고 으름장을 놓을 셈이었다. *** 다음 날 아침. 휴고의 손에는 잔혹하게 구겨진 초대장이 들려 있었다.

16549730061701.jpg“태워라.”

주인이 던지는 초대장을 주워 군말 없이 벽난로 속으로 던지며, 하델이 물었다.

16549729917605.jpg“어제 황제 폐하를 알현하신 것 아니셨습니까?”

휴고의 눈가가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래, 분명 그는 어제 저녁밥을 먹다 말고 황궁으로 향했다. 황제의 집무실을 다소 불경하게 열어젖힌 그는, 분명 경고했더랬다.

16549730061701.jpg“황태자 전하께옵서 우리 이브에게 애칭을 알려주시고, 황궁으로 놀러 오라 꾀어내시기까지 하셨더군요.”

16549730004064.jpg“오- 우리 황태자가 역시 날 닮아 적극…….”

16549730061701.jpg“부디 앞으로 아드님 관리를 잘하시어 아르티나 가(家)의 충성을 길이 얻으시기를 깊이 바라는 바입니다.”

16549730004064.jpg“……무섭긴. 경고인가?”

16549730061701.jpg“경고는 무슨. 협박입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서로의 지지대가 되어 온 소꿉친구이자 전우였기에, 그리고 눈에 뵈는 것 없는 딸 가진 아버지이기에 가능한 발언이었다. 황제의 대답도 채 듣지 않고 나온 휴고는 몰랐다. 휴고가 박차고 나간 집무실 문을 보며 황제가 흐흐- 하며 음흉한 웃음을 흘린 것을. 그리고 황제의 대답을 촉구하지 않고 나온 그 경솔함의 대가가 바로 이것이었다. 황가의 문양이 그려진 초대장. 그 내용은. [제국을 떠받치는 아르티나 공작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하여 아르티나 공녀를 특별히 황궁으로 초대하는 바이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인과관계의 파괴도 이런 파괴가 따로 없고. 내 노고랑 우리 이브의 초대가 무슨 관련인데, 대체. 자신에게 온 초대장만 불태우면 되었을 것이라고 간단히 생각한 것 또한 칼라일을 너무 만만히 본 것에서 기인한 대처였다.

16549729917599.jpg“나 초대장 받아따!”

아침 식사 시간, 나비처럼 뛰어내려온 딸의 자그마한 두 손에는 금색 바탕의 봉투에 붉은색 문양이 그려진 초대장이 달랑달랑 들려 있었다. 이를 본 휴고는 기어이 스테이크를 자르던 칼을 식탁에 깔끔하게 내리꽂고야 말았다. 칼라일, 이 황공한 개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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