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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우리 꼬맹이 찾으러 간다 (40/323)

40화. 우리 꼬맹이 찾으러 간다2021.02.15.

16549728256312.jpg‘아빠가 보고 싶어.’

이벨리아의 눈이 살짝 하늘을 향하던 순간이었다. 주의력이 흩어진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은 단탈리온이 곧바로 자리를 박찼다. 제자리에서 통통 튀던 제파르도 기괴하게 입을 찢어 웃으며 카론에게로 쇄도했다. 흉측한 모습으로 달려드는 단탈리온으로 인해 이벨리아의 몸이 살짝 움찔하며 굳었다. 다행히 허공을 부유하던 실라페가 날카로운 바람을 만들어 뻗어오는 단탈리온의 팔을 쳐냈다. 아니, 말이 쳐낸 것이지 실상은 자른 것과 다름없었다. 마족의 팔이 눈앞에서 잘려 나가는 광경을 생생하게 눈에 담은 이벨리아는 울상을 지었다.

16549728256312.jpg‘무서워! 징그러워!’

16549728256322.jpg[정신 차려. 계약자! 네 뒤에 기사까지 죽게 만들 셈이야?!]

실라페가 단탈리온 두 마리의 팔을 잘라내고 몸통까지 꿰뚫으며 꾸짖었다. 이벨리아는 입술을 세게 깨물고 눈을 부릅떴다.

16549728256312.jpg“아니. 안 돼. 정신 차렸어. 이제.”

등 뒤에서는 카론이 제파르와 검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보다는 기운과 기운이 부딪히는 거대한 파열음 같은 소리였다.

16549728256312.jpg‘카론이 등 뒤를 맡겼는데 내가 정신을 못 차리면 안 돼.’

이벨리아가 작은 고개를 도리질 쳤다.

16549728256322.jpg[계약자, 어려우면 눈 감고 있어. 알아서 처리해볼 테니까.]

실라페의 음성에 이벨리아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용기가 무색하게도 이벨리아는 아직 정령술에 익숙지가 않아 딱히 특출난 지령을 내리지는 못했다. 실라페와 비등한 힘을 가진 마족이었더라면 패하는 쪽은 정령술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이벨리아가 되었을 터였다. 몸이 꿰뚫려 쓰러진 그 자리에서 곧바로 검은 연기가 되어 흩어지는 단탈리온들의 시체를 바라보던 이벨리아가, 이내 카론과 제파르를 향해 몸을 돌렸다. 카론을 도와줄 요량이었다. 악마는 도저히 검이 맞부딪히는 소리라고는 할 수 없는 굉음을 내며 카론과 칼을 섞으면서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유유자적했다. - 휘익.

16549728256322.jpg“꼬맹아. 뒤를 봐야지.”

그들 쪽으로 몸을 돌린 이벨리아에게 시선을 둔 제파르가 짧고 높게 휘파람을 불며 경고했다. 꼬맹이. 친구 아스가 늘 불러주는 그 호칭이, 따뜻하게 느껴졌던 그 호칭이, 이토록 소름이 돋을 줄이야. 기묘한 웃음에 소름이 돋아 다시 황급히 뒤를 돌아본 이벨리아의 시야에 담긴 것은 어느새 제파르가 소환한 상급 마물, 케르베로스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달려드는 광경이었다.

16549728256312.jpg“아……!”

차마 탄식조차 내뱉지 못한 순식간. 검은 머리가 셋 달린 거대한 개가 실라페의 날개를 잡아 물어뜯었다.

16549728256322.jpg[이런. 계약자……!]

역소환되는 와중에도 작은 계약자를 우려한 실라페가 어떻게든 버티고자 했으나, 아직 어린 이벨리아의 육체가 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기도가 뜨끈한 것이 느껴졌다.

16549728256312.jpg‘토하는 건가……?’

꺼림칙한 감각에 이벨리아가 콜록 기침을 하자 선홍색 피가 후드득 땅을 적셨다.

16549728285319.jpg“아기씨!!”

악마와 검을 맞대며 극도로 예리해져 있는 기사의 청각에 작은 주인이 연이어 기침을 내뱉는 것이 들렸다. 흘끗 시선을 돌려 아기씨의 조그마한 입에서 선혈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눈에 담자, 카론의 검이 멈칫했다.

16549728256322.jpg“휘익- 기사. 너도 뒤를 봐야지.”

이 모든 것이 마치 장난이라는 것처럼 가볍게 튀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카론의 귀 바로 옆에서. - 푸욱. 이내 살을 찢는 섬뜩한 소리가 들린다. 키득키득. 사방으로 터진 피에 신이 난 듯 악마가 웃는다.

16549728256312.jpg“안 돼!! 카론!!”

이벨리아의 기사가 무너져 내린다. 방해물을 치운 악마가 붉은 갑옷을 덜그럭대며 한 걸음씩 걸어온다. 언뜻언뜻 은색 부분이 보이던 악마의 갑옷은, 카론의 피가 덧씌워져 붉은 부분이 더욱 넓어져 있었다. 이벨리아의 시야는 딱,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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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시스 후작가의 기사들은 황궁으로 빠르게 말을 몰았다. 악마라니. 이 수도 한 가운데에 고위 악마라니. 듣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진짜라면 더할 나위 없이 심각한 문제였다. 황제 칼라일의 집무실 앞. 기사들은 황실 기사들이 막아서는데도 불구하고 무례하게 알현 요청 없이 황제의 집무실에 들어가야 한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1654972828534.jpg“무슨 일이냐.”

소란스러움에 눈살을 찌푸린 황제가 직접 집무실 문을 열고 나왔다. 열린 문틈 사이로 아르티나 공작과 저들의 주인인 후작이 보였다. 카시스의 기사들은 사건이 발생하였음을 큰소리로 외쳤다. 대략 세 문장에 가까운 말들 중 휴고의 뇌리에 박힌 것은 ‘공녀님’, ‘악마.’ 두 단어뿐이었다.

16549728285346.jpg“…….”

1654972828534.jpg“…….”

후작의 기사들이 내뱉는 그 말의 무게가 심히 무거웠기에 황제의 응접실 안에는 잠시 서늘한 침묵이 들어찼다. 가장 먼저 응접실에서 황제의 어깨너머로 국정을 배우고 있던 루드비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내 휴고가 벽에 걸려 있는 황제의 검을 뽑아 들었다. 황제의 집무실 안에서는 황제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무기를 소지할 수 없었기에 휴고의 검은 바깥 어딘가에 맡기고 들어온 참이었다. 휴고가 뽑아 든 검은 에르카디아 황가의 보검이었으나 황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검의 검집까지도 벽에서 떼어 건네주었다.

1654972828534.jpg“……황실 기사단을 모두 풀어라. 황궁을 수호할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공녀를 찾아라.”

황제의 명령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황제 시점에서는 점찍어두었던 미래의 며느릿감이자 친우의 하나뿐인 딸에게 닥친 위협이었으니.

16549728285346.jpg“……이브.”

마치 신음처럼 딸의 이름을 읊조린 휴고에게서는 형언할 수 없는 살기가 흘렀다. 검에 있어서는 그 끝을 본 자가 피워내는 살기는 응접실에 있는 모든 이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나마 휴고와 함께 전장을 누볐던 황제와 카시스 후작만이 가까스로 숨을 나누어 내뱉으며 묵직한 기운을 견뎌냈다. 휴고가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 하자, 카시스 후작이 휴고의 앞을 막았다.

16549728256322.jpg“각하. 잠시만.”

16549728285346.jpg“……비켜라.”

16549728256322.jpg“언제 말을 타고 가십니까.”

받아내는 기운이 벅찼으나 카시스 후작은 대마도사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자였다. 아직 이크리안도, 웬만한 마탑의 마법사들도 이르지 못한 경지. 손짓이나 주문 없이 오롯하게 의지만으로 만들어낸 이동 마법진이 어느새 황제의 집무실 바닥에 넓게 펼쳐져 있었다.

16549728256322.jpg“오르시지요.”

16549728285346.jpg“…….”

휴고가 말없이 그 위에 섰다. 루드비히와 카시스 후작도 마법진을 밟았다. 이내 이동 마법진이 후작의 마력을 받아 붉게 빛났다. *** 후작가와 상점가를 잇는 짧은 골목.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 가장 먼저 도착한 휴고와 카시스 후작, 그리고 루드비히는 눈에 담기는 광경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16549728314137.jpg“아…….”

루드비히가 마치 심장에서 쥐어짜내듯 고통스러운 침음을 내었고,

16549728256322.jpg“……이럴 수가.”

카시스 후작은 탄식하며 한 손으로 얼굴을 덮어 쓸어내렸다.

16549728285346.jpg“…….”

그리고, 아무런 말 없이 검을 쥐고 선 휴고의 목울대가 크게 몇 번 일렁였다. 조금 전까지 그의 소중한 딸이 있었을 것이 분명한 그 자리에 딸은 없었다. 대신에 딸의 호위 기사가 반죽음이 되어 늘어져 있었다. 심지어 딸의 것이 분명한 작은 핏방울이 차가운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참혹한 광경과 어울리지 않는, 노란색 손모아장갑이 눈에 밟힌다. *** 그의 작은 친구가, 처음으로 친구라는 말을 건네준 친구가. 난생처음 사심 없는 선물을 건네준 친구가, 그의 축복을 빌어주고, 그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와 모닥불 앞에, 비 내리는 나무 밑에, 눈 내리는 바위 위에 앉아 시답지 않은 수다를 떨던 그의 친구가. 그리하여 이제는 들이쉬는 공기조차도 달게 만들어주는 친구가. 없었다. 평소에도 붉게 빛나던 루드비히의 홍안이, 지금은 마치 피눈물을 흘리듯 선혈과도 같은 색을 내었다. ……그 작은 아이가. 그 여린 아이가. 아니, 아직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작은 친구는 어딘가 특별했으니까. 지켜주어야 할 것처럼 약하고 바보 같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 그가 기댈 수 있도록 작은 바위가 되어 주기도 했으니까. 울컥 넘어오는 쓴 물을 삼키고 뿌옇게 물드는 눈을 애써 깜빡이며, 루드비히는 말을 몰았다. 이제는 이벨리아가 주인이 되어버린, 비밀기지로. ***

16549728314137.jpg“악마!!!”

늘 작은 친구의 웃음소리가 조롱조롱 맴돌던 비밀기지에, 단 한 번도 자리한 적 없는 루드비히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16549728314137.jpg“악마!! 나와!!”

아가레스와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항상 차분하고 단호하던 루드비히의 목소리에, 미처 감추지 못한 진한 파문이 일었다. 제발, 악마. 이제 자꾸 비밀기지에 찾아와도 뭐라고 안 할 테니까. 항상 나타나던 것처럼 오늘도 나타나. 네게도 그 어떤 존재보다 소중한 아이잖아.

16549728314137.jpg“제발 좀……!!”

16549728346589.jpg“뭔데. 네가 왜 날 찾아.”

상당히 기분 더럽게. 아가레스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벨리아가 어디에 있는지 그 예민한 기운으로 짚어내었더랬다. 그의 작은 친구가 카시스 후작저 근처에서 뽈뽈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알아내고서는 아무래도 오늘 만나기는 영 글렀나보다, 싶어 주변을 배회하던 작은 몬스터들을 잡아 도륙하던 참이었다. 비밀기지 근처에는 보호 결계가 쳐져 있기는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길을 잃은 꼬맹이 친구에게 이를 드러낼 수도 있으니.

16549728314137.jpg“악마!!”

루드비히가 다시 한번 외치며 성큼 다가섰다. 아가레스가 마치 세상 불결한 것을 다 보겠다는 듯 윽- 하는 소리를 냈다. 대체 뭐야.

16549728314137.jpg“악마, 이브…… 이브 좀 찾아줘…….”

16549728346589.jpg“무슨 소리야. 꼬맹이 동화책 공장장 있는 곳에 간 거 아니야?”

쯧. 마음에 안 들어. 꼬맹이 행방을 왜 나한테 와서 찾아. 나만 알아도 모자랄 판에.

16549728314137.jpg“악마가. 이브를 데려갔어.”

갈라져 새어 나오는 루드비히의 목소리는 절망과 두려움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 두려움은 악마의 등장에서 기인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16549728314137.jpg“내가 아무것도 못하니까. 너라도 이브 좀 구해줘…….”

세게 깨문 입술에서는 눈동자 색과 같은 피가 흘렀다. 이 세상 가장 소중한 친구가 사라졌는데 도움밖에 요청할 수 없는 무력함이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유일한 쉼터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에 숨이 막혔다.

16549728346589.jpg“누가, 뭘 해?”

어느새 해가 져 어두워진 비밀기지. 오두막 앞에 달린 자그마한 호롱불에 비친 악마의 황금빛 눈은 시퍼런 안광을 쏟아냈다. 그의 입매가 비틀리듯 올라갔다. 바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마치 누군가의 뼈를 물어뜯는 그것과도 같았다.

16549728346589.jpg“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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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를 참지 못하고 흘리는 짙은 마기는 루드비히로 하여금 숨을 쉬는 것마저 잊게 만들었다. 마주 섰던 그 어느 것과도 비견할 수 없는 압도적인 기운. 한 세계가 그에게로 쏟아져 내려오는 것에 비유할 만한 거대한 기운은 이자가 과연 단순한 악마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했다.

16549728346589.jpg“……레녹스 산맥. 가서 알려라.”

16549728314137.jpg“너는.”

16549728346589.jpg“우리 꼬맹이 찾으러 간다.”

16549728314137.jpg“……고위 악마라고 들었다. 조심해라.”

하-. 세상 더할 나위 없이 가소로운 소리를 들은 것처럼 아가레스가 짧은 숨을 뱉었다. 악마와 소년은 곧바로 자리를 떴다. 스산한 비밀기지에는 바람 소리가 울음처럼 울렸다. *** 믿을 수 없다는 듯, 천천히 허리를 숙여 장갑을 집어 든 휴고의 뒤로 익숙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16549728376252.jpg“아버지!!”

16549728256322.jpg“주군!!”

달려온 아르칸과 세드릭, 그리고 아르티나 기사단 모두 그 광경을 눈에 담았다.

16549728256322.jpg“아기씨는……!!”

16549728376268.jpg“이브……는……?”

골목 안에는 없잖아. 그러면 아버지가 이미 구하셨겠지. 아버지 품에 있겠지. 분명 우리 아가는 아버지 품에 있을 거야. 세드릭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휴고의 품을 살폈다. 황금빛 눈에는 목숨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간절함이 들어찼다. 제발. 제발! 우리 아가. 우리 이브. 사랑하는 내 동생. 그러나 휴고의 손에는 2년 전 겨울, 세드릭이 그의 어린 여동생에게 선물해 준 노란색 장갑만이 피에 젖은 채 들려 있었다.

16549728376252.jpg“……아버지.”

아르칸마저도 애절한 목소리로 휴고를 불렀다. 그런데도 휴고에게서 그 어떠한 말도 떨어지지 않자, 더는 서 있을 수 없었던 세드릭이 털썩 주저앉았다. 옆에 서 있던 아르칸의 손에서도 피가 흘렀다. 세게 주먹을 쥐는 바람에 짧은 손톱이 파고들며 낸 상처였다. 그 모든 것을 부정하듯 헤롤드가 카론에게로 달려갔다.

16549728376278.jpg“카론! 아기씨는!! 우리 아기씨는!!!”

그와 동고동락하던 어린 기사는 악마의 칼에 몸이 꿰뚫린 것 같았으나 이깟 것으로 명을 달리할 자는 아니었다. 그렇게 녹록하게 훈련시키지는 않았다. 헤롤드는 애써 자신을 위안했다. 숨을 색색 몰아쉬면서도 카론은 마지막 기력을 짜내어 대답했다.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피가 끓는 소리와 섞여 알아듣기 힘들었다.

16549728285319.jpg“악마가. 데려, 갔습니다.”

피가 끓는 목소리 속에는 황망하고 송구하여 차마 흘리지도 못한 눈물 어린 소리도 섞여 있었다. 죄송하다는 말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 카론 혼자서는 어찌할 방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나 주인을 지키는 호위 기사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16549728285346.jpg“……형상을 말하라.”

이윽고 열린 휴고의 입에서는 마른 소리가 흘러나왔다. 몸속에 소용돌이치는 절규를 욱여넣은 휴고는 위태로운 고목(古木)과도 같았다.

16549728285319.jpg“붉은……갑옷.”

16549728285346.jpg“……데려가 치료하도록.”

원하는 대답을 듣자 휴고는 짤막하게 지시를 내리고 돌아섰다. 그 걸음에 담긴 휘몰아치는 비통함이 길을 따라 아로새겨졌다. 그의 딸이 태어났을 때,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던 그 작은 아이를 안고 건네었던 말이 선연했다. 자라던 모습 한순간 한순간이 평생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선명했다. 마계를 뒤집어엎어서라도 찾을 것이었다. 붉은 형상을 가진 악마들을 모조리 학살하더라도, 기어코 찾아낼 것이었다. 살아만 있다면. 어느 세계, 어느 세상에서라도 네가 살아만 있다면. 나는 그곳이 살을 저미는 지옥이라도 기꺼이 뛰어들진대. 사랑하는 나의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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