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지지. 기사단 지지!2021.01.18.
이벨리아의 글자 공부는 엘리시아의 주도 아래 매일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 저녁을 먹기 직전, 식구들이 모두 모인 시간. 그림을 보여주고 뒷면에 쓰인 글자를 맞추거나, 글자를 보여주고 그 글자를 그대로 읽는 방식이었다.
“자, 아가. 이건 뭐지?”
“빠나나! 아주 마시찌!”
이쯤은 이제 쉽다는 듯, 이벨리아가 어깨를 으쓱 높이며 외쳤다.
“그럼 이건 뭐지?”
“바압! 더 마시찌!”
“밥을 짓는 벼. 우리 아가 똑똑하구나.”
옆에서 지켜보던 휴고가 역시 우리 딸은 몇 단계 건너뛰어 생각할 줄을 안다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다음 카드 그림은 뿔 달린 악마. 쉬운 난이도다. 그러나 대답이 영 이상했다.
“토끼이!”
저 무시무시한 악마 그림을 보고 토끼라니? 휴고와 엘리시아, 아르칸과 세드릭까지 모두 놀라 이벨리아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깔린 정적의 영문을 모르는 이벨리아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족들을 훑었다.
‘……!’
아차. 내 친구 토끼를 자주 만나다 보니 그만.
“……를 냠냠 먹는 앙마! 아주 무섭찌!”
“그렇지.”
“놀랐잖아, 우리 아가.”
“우리 아가 미적 감각에 심히 문제가 있나 했네.”
……휴. 조심해야겠다. 식은땀이 삐질 흘렀다. 아빠와 엄마와 오라버니들에게 걸렸다간 비밀기지의 쓱싹은 예정된 미래였다.
“자. 마지막. 이 글자 한번 읽어볼까?”
엘리시아가 ‘좌회전’이라 쓰인 낱말 카드를 들었다.
“꽤 어려운 단언데. 우리 아가가 이걸 읽을 수 있나?”
꼼꼼히 살피던 이벨리아가 알았다는 듯 환히 웃으며 손을 반짝 들어 올리고 외쳤다. 나 알아! 다 알아!
“지화자!”
“좌회전. 오늘은 저녁 먹은 후에 엄마랑 글자 공부 조금만 더 하자.”
딸을 무릎 위에 앉힌 엘리시아가 나머지 공부를 알렸다.
“흐잉.”
맑은 푸른 눈이 아래로 축 쳐졌다.
*** 이벨리아가 엘리시아와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을 무렵. 적막한 저녁. 아르티나 기사단의 거처. 공작저와 고작 연무장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있건만 투박한 기사들이 거주하는 건물이니만큼 그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러그 따위는 집 먼지 진드기만 가득해서 못 쓴다며 가져다 버린 지 오래. 기사들은 딱딱한 바닥에 옹기종기 둘러앉으면서도 그 누구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모두가 목욕을 끝마치고 곧바로 모여 번쩍번쩍한 갑옷 대신에 검은색 바탕의 무복을 입고 있던 터라, 기사들 모두가 어둠 속에 더더욱 잘 녹아들었다. 기사들의 응접실에는 풀벌레 소리까지도 선명하게 들려올 정도로 정적만이 가득했다. 평소에 늘 들려오던 웃음소리도, 장난도. 모두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어떠한 작은 기미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만큼 곧 이야기를 나눌 사안은 중대했다. 모시는 분들에 대한 반항은 늘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기에.
“시작해볼까.”
불조차 켜지 않은 은밀한 회동. 헤롤드가 음산하게 입을 열었다. 모여 앉은 기사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라고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3년을 이날만 기다려 왔다.”
“그동안 우리가 최대한 고분고분하게 행동했던 것은 다 지금을 위해서였지.”
가느다랗게 흔들리는 촛불이 기사단의 결연한 얼굴들을 비추었다. 되돌아갈 곳은 없다. 거역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망설이지 않는 것이 곧 성공의 방법.
“……주군을 먼저 잡아야 합니다.”
다른 기사들에 비하여 아직 앳된 기사가 용감하게도 제의하였으나,
“배웠던 병법은 모두 똥으로 나왔나. 가장 약해 보이는 목표물이 먼저다.”
드웬이 곧바로 반박했다.
‘……아기씨.’
모두의 머릿속에 ‘가장 약해보이는 목표물’이 스쳐지나갔다.
“자 그럼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해볼까.”
밤이 깊어갔다. 고개를 내미는 어스름한 태양이 검은 하늘을 물들일 때까지. 은밀하고도 비장한 회동은 계속되었다. *** 진즉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깨끗하게 비웠으나 밥을 먹으면 다시 졸린 것은 만인의 인지상정. 이벨리아는 곰치를 안고 응접실 붉은색 의자에 자리를 잡고 다시 눈을 감았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을 맞이하며 이제 막 꿈나라 행 기차를 타려고 하는데,
“아기씨.”
머리 위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헤론드……?”
가느다랗게 실눈을 뜨고 바라본 헤롤드는 평소와는 다르게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부르는 목소리도 ‘오구오구 우리 아기씨!’ 가 아니라, 어딘지 딱딱한 ‘아기씨’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이벨리아가 반쯤 눈을 뜨고 고개를 갸웃댔다. 헤롤드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같이 가주실 곳이 있습니다.”
뭐야, 헤롤드 왜 이러지? 평소와는 조금 다른 헤롤드가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이벨리아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말갛게 두 손을 뻗었다.
“안아주면 갈래. 아직 졸려…….”
잠시 죄책감 어린 표정을 지은 헤롤드는 곧바로 이를 지운 후 이벨리아를 번쩍 안아 들었다.
‘순진한 우리 아기씨.’
품에 안겨 잠시 꾸벅꾸벅 졸았을까. 헤롤드가 이벨리아를 내려놓은 곳은 대연무장보다는 외진 곳에 있는 소연무장이었다.
“다들 여기서 모 해……?”
땅에 내려진 이벨리아가 밝은 태양을 피해 눈을 비비며 물었다. 기사들이 대연무장이 아닌 소연무장에 와글와글 몰려 있는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에 제법 낯설었다. 이벨리아의 물음에는 어느 기사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헤롤드의 낮은 목소리만이 소연무장을 울렸다.
“도구는 준비되었나.”
헤롤드가 뒤를 보며 묻자,
“여기 있습니다.”
데릴이 헤롤드의 손에 아기씨를 사냥할 도구를 올려주었다.
“아기씨. 이게 뭘까요?”
작은 병아리를 사냥하는 데에 과한 도구는 필요하지 않았다. 배를 채울 작은 마들렌이면 충분하지. 고소한 냄새에 이벨리아가 반짝 위를 올려다보았다. 헤롤드의 손에 고이 들린 각양각색의 마들렌이 보인다. 마들렌. 요즘 이벨리아의 군것질이 느는 바람에 엘리시아가 금지령을 내린 그 마들렌. 자태조차 아름다웠다. 졸음에 겨웠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마……마들렌!”
이벨리아가 손을 뻗자, 헤롤드가 황급히 마들렌을 더 높이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부탁을 하나 들어주시면, 이 마들렌은 전부 아기씨의 것입니다.”
이상하다? 원래는 순순히 줬었는데?
“줘어…… 히잉.”
“안 됩니다.”
정말 이상하다? 이쯤 되면 안 주고는 못 배겼는데?
“흐이잉…… 빨리 줘어. 응? 응?”
이벨리아가 마들렌을 향해 까치발을 들고 두 손을 힘껏 위로 뻗은 채로 칭얼거렸다. 기사단 모두가 저들도 모르게 심장을 부여잡았다. 저 공격은 반칙이다. 크리티컬! 전쟁터에서 머리를 맞은 것과 같은 강도의 충격이 스쳐 지나갔다.
“으억, 아……안 돼.”
“빠앙- 빠앙-.”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내민 채 발을 동동 구르자 헤롤드의 얼굴이 괴롭게 일그러졌다.
“진짜 안 되는데……. 아니, 일단 하나 받으시고.”
절대로 넘어가지 않으리라 엄숙하게 선포하였던 헤롤드가 이벨리아의 손 위로 마들렌 하나를 살포시 내려두었다.
“에이, 다 틀렸다, 다 틀렸어.”
“우리 편으로 만들기 전까진 절대 드리면 안 됐었는데.”
뒤에서 지켜보던 기사들이 툴툴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이제 어쩌지. 다 글렀나.”
아르티나 기사단은 이벨리아가 다섯 살이 되는 해까지만 공작저에 머물도록 되어 있었다. 그마저도 이벨리아의 호위 기사가 선발된 후 휴고가 곧바로 쫓아내려고 했던 것을 온 수도가 다 알 정도의 거한 시위를 하며 난리를 쳐서 연장된 기간이었다.
“다음 해면 우리 아기씨 다섯 살이 되시는데…….”
“우리 아기씨 아직 이렇게 먼지만큼 작으신데…….”
아르티나 기사단은 아직도 작은 코흘리개인 병아리 아기씨를 두고 북부로 돌아가 역겨운 마족들 얼굴이나 마주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기사단은 지금도 조를 나누어 반년씩은 북부에서 상주하며 마족 토벌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니 수도에 더 머무른다고 해서 마족 소탕에 소홀하게 될 일은 전혀 없을 것이었다.
“우리 아기씨 사교계 데뷔하시는 것도 좀 봐야 하는데.”
“우리 아기씨 괴롭히는 것들은 손목이든 발목이든 어디 하나 꺾어주고.”
“또 우리 아기씨에게 찝쩍거리는 놈팡이들 허리는 좀 접어주고.”
“그리고 우리 아기씨가 설령 혼약이라도 맺게 되시면 혼인식 전에 신랑 목도 꺾어주고.”
“그렇게 평화롭게 살아야 하는데…….”
그러나 막상 주군을 공략하자니 어림도 없었다. 이미 생떼을 거하게 놓아 공작저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을 연장해 주신 주군이셨다. 그러니 공작저의 최약체이면서도 진정한 실세! 마들렌만 살살 흔들어주면 홀랑 넘어와 기사들 편을 들어주실 아기씨가 일 순위 공략의 대상이 된 것이었다. 기사단 전원은 아주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아기씨가 울고 불며 마들렌을 달라고 부탁하셔도 아기씨가 그들의 편을 들어 주군께 달려가시기 전까지는 절대 드리지 말자고. 그러나 아기씨의 부탁은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기교 없이 직진이다! - 털썩.
“아기씨!! 저 북부 가기 싫어요!!”
데릴이 연무장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무릎을 꿇고 앉은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털퍼덕. 마치 건빵을 받지 못한 곰이 으워엉- 주저앉은 모양새였다.
“저도요!! 북부에는 아기씨도 없고…… 일전에 보셨던 단탈리온 있죠? 그런 놈들이 매일 저를 잡아먹으려고 쫓아와요, 아기씨…….”
검을 뽑는 시간이 귀찮다며 종종 마족들을 손으로 잡아 찢어 죽이는 드웬도 외쳤다. 드웬의 맨손에 세상을 하직한 마족들이 들으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소리였다. 기사들은 ‘아이구, 우리 데릴, 우리 드웬 아주 무서웠겠네. 내가 아빠한테 말해 주께!’ 정도의 반응을 기대하였으나. 이벨리아는 오물오물 마들렌을 먹으며 눈을 동그랗게 뜰 뿐이었다.
‘기사들이 미쳤나 봐……!!’
그들을 정신 이상자 정도로 보는 아기씨의 눈빛. 이를 본 아르티나 기사단은 서로 시선을 나누었다. 무릎이라도 꿇고 제대로 빌어보자는 눈빛을 교환하던 찰나. 알렉이 기사들의 눈빛을 보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런 의미의 눈빛이군. 알았다.’
‘그래, 알렉. 먼저 아기씨께 싹싹 빌어봐라.’
그러나 기사단 공식 ‘눈치 없는 새끼’인 알렉은 기사들의 은밀한 눈짓을 완전히 잘못 이해했다.
“뿌애애앵- 북부! 가기! 시! 러!”
무릎을 꿇고 싹싹 빌기보다는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목청껏 뿌애앵 거리면서 발로 허공을 뻥뻥 차댔다.
“시러어- 시러어-!!”
추태를 정면으로 목격한 이벨리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히이익-!”
지지! 지지! 기겁한 이벨리아가 마들렌을 툭- 떨어뜨리고는 꽁지가 빠진 새처럼 연무장 밖으로 달려 나갔다.
“흐아앙- 오라버니이-!”
마침 대연무장으로 들어오던 아르칸이 무엇인가에 기겁하여 달려오는 여동생을 번쩍 안아 들었다.
“이브, 아가. 오라버니 봐봐. 왜 그래?”
“지지…… 커다란 지지 봤어…….”
지지를 보았다며 품에 얼굴을 포옥 묻자 아르칸은 나름대로 납득했다. 음. 커다란 벌레라도 봤나 보군. ***
“뿌애애앵이 뭐냐, 어? 뿌애애앵이!”
“아 진짜. 그럼 너희가 하던가. 네놈들이 미적지근하게 떼를 쓰니까 아기씨가 반응이 없으셨잖아.”
알렉이 머리를 쓸어 올리며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반응을 만든 게 기겁해서 도망가시게 만든 거냐? 앙? 거기다가 데릴 너는 차라리 무릎을 꿇지 주저앉는 건 또 뭐야?”
“…….”
“그만들 하자. 자괴감 든다.”
헤롤드가 이마를 짚으며 만류했다.
“다음 목표에 집중하도록. 다음 목표는 진정한 실세. 마님이시다.”
주군께 찍소리도 못 하시는 공자님들은 공략해보아야 별 효과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정원에서 아름다운 꽃을 몇 송이 꺾어 들고 마님을 오매불망 기다리기를 어언 1시간.
“아아- 목표물. 목표물께서 외부 일정을 마치시고 귀환하셨다. 헤롤드 출동하라.”
“여기는 헤롤드. 목표물께서 아끼시는 꽃병에 예쁜 꽃을 꽂고 있다. 기분이 좋아지시면 작전 실행하겠다.”
그러나 이 계획은, 생전 꽃꽂이라고는 구경조차 해본 적 없는 헤롤드가 꽃병을 넘어뜨려 장렬하게 깨지는 바람에 실패했다. 헤롤드는 엘리시아가 불러낸 운다인에 의해 물에 쫄딱 젖은 채로 터덜터덜 연무장으로 돌아왔다.
“……다들 거적때기 가지고 와.”
마지막 방법을 쓸 때였다. *** 어둑해진 저녁. 주군께서 복귀하시기 직전에 아르티나 기사단은 거적때기를 정원에 펼쳐두고 그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만들 좀 해라.”
“추합니다.”
기사단장 에딘과 호위기사 카론이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단장하고 카론은 공작저에 있으면서 아기씨 크는 거 볼 수 있다고 유세 떤다! 우우!”
“우우우!”
거적때기에 무릎을 꿇고 앉은 기사단이 야유를 보냈다.
“……배 아프면 너희도 단장 하던가.”
“그러게 말입니다. 잘 좀 해보시지 그러셨습니까.”
뼈 때리는 팩트 폭력. 씩씩대는 기사단을 뒤로하고 에딘과 카론이 공작저로 들어가자마자, 공무를 마친 휴고가 귀환했다.
“이건 또 뭐야.”
아늑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달려 나올 병아리 딸을 기대했건만. 웬 사내놈들이 징그럽게 정원을 가득 채우고 주저앉아 있다. 휴고가 수려한 눈을 찌푸렸다.
“주군!”
헤롤드가 선창하자,
“주군!!!”
나머지 기사들이 장엄하게 따랐다. 누가 보면 죄를 고하며 할복이라도 할 기세였다.
“저희가 수도에서 날뛰는 것이 낫겠습니까, 마족들이 북부에서 날뛰는 것이 낫겠습니까?”
그래서 뭔데. 너희. 휴고의 금안이 싸늘해졌다.
“저희를 이렇게 보내시면 수도의 랜드마크인 건국 기념 시계탑 정도는 부수고 갈 것입니다!!”
“부수자-!! 부수자-!!”
이 자식들이. 선창하는 헤롤드를 따라 땅이 흔들릴 정도로 외치는 자신의 기사단. 어이가 없어진 휴고가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한 손을 들었다. 저 손이 내 뺨을 후려치지 않을까 싶은 기사단은 조개처럼 입을 꼬옥 다물었다.
“그래서. 북부 가기 싫다고?”
휴고가 황금색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자, 금안이 살벌하게 빛났다. 끄덕끄덕. 대형견들의 머리가 일제히 끄덕였다.
“…….”
꽤 오랜 시간 주군께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시자 슬쩍 주군의 눈치를 보던 드웬은, 헤롤드를 대신하여 선창했다. 주군께서 고민하실수록 밀어붙여야지!
“저희를 기어코 보내신다면 북부에서 마족들과 술이나 꺾으며 친목대회를 할 것입니다!”
“…….”
“…….”
저기, 얘들아? 나는 왜 아무도 안 따라해 줘? 드웬의 배신감 어린 눈빛이 기사들을 훑었으나, 기사들은 차갑게 그 시선을 외면했다. 너무 갔다, 드웬.
“드웬은 따라오고 나머지는 들어가라. 번잡하군.”
망했다. 드웬이 털썩, 거적때기를 짚었다. 이래서 타이밍을 잘못 맞추면 패가망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사단은 남는다. 당분간 수도가 그리 안전치 않을 것 같으니.”
됐다!! 며칠만 기다리면 휴고가 먼저 수도에 남아 있으라고 명했을 텐데. 그 며칠을 기다리지 못해서 종일 공작저를 발칵 뒤집은 대형 멍멍이들은 마치 개껌이라도 하사받은 것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휴고에게 호명당한 드웬만 제외하고 모두가 시시덕대고 있는데.
“빠아아-!”
돌아서는 휴고의 품으로 이벨리아가 와락 안겨들었다. 널찍한 품에 달랑 들어 올려져 휴고의 어깨너머로 꿇어앉아 있는 기사들을 본 이벨리아는, 이내 휴고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말하기 시작했다.
“압빠아, 아까 알렉이 바닥에 이러캐 누어서 ‘뿌애애앵-!’”
엇, 아기씨. 잠깐!!
“부뿌 가기 시져 뿌애앵-! 해따.”
알렉의 다급한 만류가 이벨리아에게로 향했으나 이미 늦었다.
“……너도 따라오도록.”
미친개한테는 매가 약이다. 아기 앞에서 아기도 부리지 않는 추태를 부린 알렉 역시 결국 소환되었다. 터덜터덜 주군을 따라 연무장 쪽으로 걸어가는 알렉의 등 뒤. 조롱조롱 따라붙는 해맑은 아기씨의 마지막 말이 비수가 되어 박혔다.
“에비, 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