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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침 좀 발라놓자! (26/323)

26화. 침 좀 발라놓자!2020.12.28.

카론이 사준 과일 꼬치가 커다랗고 무거워 두 손으로 움켜쥐고 한 개씩 베어 물며 걸어가던 이벨리아의 뒤. 역시 우려하던 대로 꼬리가 붙었다. 구걸하던 아이들에게 곰돌이 가방을 열어 금화 몇 개를 쉽게도 와르르 쏟아낸 후 아장아장 걸어가는 것을 목격한 뒷골목 패거리들은 살금살금 이벨리아의 뒤를 쫓았다. 딱 보아도 부유한 귀족인 것 같은 저 어린 아기는 아직 솜털 보송한 소년 하나와 호위 기사인 듯 보이는 자 하나만을 대동하고 있었다. 호위 기사의 주의만 좀 돌리면 납치는 식은 죽 먹기이리라.

1654972405666.jpg“야야, 네가 가서 저 멀대 같은 호위 기사랑 한 판 떠라. 그 사이에 우리가 홱 낚아채 올라니까.”

1654972405666.jpg“저 기사도 그다지 세 보이지는 않는구먼. 하, 내 이 무시무시한 불주먹에 맞고 픽 숨 멎어버리면 어쩌나 몰라.”

호위 기사를 대동하고 있는 것이 조금 불안하기는 하였으나 그다지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저런 비실비실해 보이는 호위 기사만을 붙여 밖으로 내보낼 정도면 그다지 고위 귀족도 아닐 터였다. 납치한 후에 적당히 협상하면 돈 좀 만져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1654972405666.jpg“이거 땡잡았네, 땡잡았어. 아르티나 공작가 정도만 아니면야 우리 ‘고자쓰’패밀리 이름만 들어도 벌벌 기지 않겠냔 말이야.”

1654972405666.jpg“아 행님, 고자쓰 아니고 골져스, 골져스! 거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겠수.”

최근 이 뒷골목을 꽤 주름잡는다고 이름을 날린 열댓 명의 사내들은 곧 큰돈을 만질 생각에 흐흐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일확천금의 꿈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려는데, 가장 앞서나가던 사내의 어깨에 단단한 팔 하나가 척 걸쳐졌다.

16549724056679.jpg“거 참 아쉽게 됐네. 우리가 바로 ‘그’ 가문이라. 근데 너희 패거리 이름 무슨 일이야?”

전혀 기척도 없이 다가와 귀에다가 속삭이는 바람에 뒷골목 우두머리가 화들짝 놀라자, 헤롤드가 입꼬리를 올려 비릿하게 웃었다.

16549724056683.jpg“흐아암- 수도 치안이 엉망이네. 주군께 보고드려야겠어.”

드웬이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여태 폭탄 같은 아기씨의 뒤꽁무니만 바라보았는데도 피곤이 밀려왔다.

1654972405666.jpg“조용히 처리해라.”

단장 에딘이 헤롤드와 드웬에게 명령했다. 헤롤드가 ‘예이-!’ 대답하고는 곧바로 사내의 주먹을 꺾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16549724056679.jpg“이 자식, 요 말캉한 주먹으로 카론한테 불주먹을 날린다고? 으하하핫-!”

그렇게 뒤를 몰래 밟은 세 기사가 열댓 명의 불량배들을 조용히 처리하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과일꼬치 하나를 몽땅 해치운 이벨리아는 닭꼬치 굽는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포장마차를 향해 코를 킁킁대며 침을 흘렸다.

16549724056696.jpg“저거어…….”

냄새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포장마차로 슬슬 다가가는 여동생의 이마에 세드릭이 손바닥을 찰싹 대어 멈춰 세웠다.

16549724056701.jpg“더 먹을 수 있어, 이브? 배가 빵하고 터져버리겠는데?”

세드릭의 말에 이벨리아는 무슨 어림도 없는 소리냐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여전히 닭꼬치 연기에 시선을 집중했다. 배가 빵! 터질 것 같다고 말려서 될 일이 아니었다. 닭꼬치를 저 오물거리는 작은 입에 물려드려야만 꺼질 간절한 열망을 본 카론이 말했다.

16549724086302.jpg“저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안 됩니다. 제가 사 올 테니 여기 계십시오.”

닭꼬치 포장마차는 길거리 음식 중에서도 특히 인기가 좋은지 사람들에게 겹겹이 둘러싸여 보이지도 않을 만큼 혼잡스러웠다. 저곳으로 뛰어들었다가는 이벨리아 자신이 납작 눌린 병아리가 되어 구워 먹힐 참이었다. 카론이 포장마차로 다가가자, 입맛을 다시던 이벨리아는 이내 세드릭의 옷소매를 톡톡 잡아끌었다.

16549724056696.jpg“오라버니, 목말라. 웅디네 불러도 대?”

운디네 와앙 깨물면 물 나오는데. 목이 마를 만도 했다. 아까 디저트를 먹고 난 뒤에는 물도 마시지 않고 몇 시간을 내리 돌아다녔으니. 세드릭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엘리시아의 충고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정령사가 정령을 ‘소환’하면 정령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즉, 정령사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정령의 모습이 보이게 된다. 이 제국엔 정령사가 제법 희귀하니, 이곳에서 운디네를 부른다면 시선이 쏠릴 것은 자명했다.

16549724056701.jpg“아니, 여기선 안 돼. 내가 금방 사 올게. 아가는 여기 잠시만 그대로 있어.”

어차피 기사 셋이 뒤를 따를 것이라고 아버지께 미리 언질을 받았다. 그러니 자신이 잠시 자리를 비워도 큰 사달이 나지는 않을 터였다. 카론도 바로 앞 포장마차에 있었고. 그 기사 셋이 이미 아기씨를 노리던 뒷골목 불량배들을 혼내주고 있음은 알지 못하였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 세드릭과 카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길거리에 오도카니 서 있던 이벨리아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남녀의 고성이 오가는 것을 듣고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16549724086317.jpg“아 좀 놔 봐라! 이 자식아!”

은색 머리칼을 높게 하나로 묶고 고양이같이 요염한 눈초리를 가진 여인이 붉은 머리칼을 가진 남성의 배를 주먹으로 퍽퍽 치고 있었다. 여인은 멀리서 보더라도 한눈에 확 띌 정도로 굉장한 미인이었다.

16549724086322.jpg“이 마녀야! 좀 진정하라고! 지금 가서 뭘 어쩔 건데!”

16549724086317.jpg“인사만 한다고! 인사만! 눈앞에 있는데!”

16549724086322.jpg“질린다, 진짜. 몇천 년을 살아도 그 막무가내인 성격은 변하지도 않냐? 네가 뭐라고 쟤랑 인사를 해?”

16549724086317.jpg“뭐, 엘라임만 인장 찍으라는 법 있냐? 나도 침 좀 발라놓자!”

바람의 왕 페르세스와 불의 왕 이프리트는 인간들의 축복제를 구경하러 온 참이었다. 신에 필적하는 힘을 가졌기에 인간계에서 활동하는 것에는 상당한 제약이 존재했고, 그조차도 계약자를 두지 않으면 아주 짧은 시간만 머물 수 있었다. 페르세스와 이프리트는 각자 계약자를 두고 있기에 인간계에서 제법 오랜 시간을 돌아다닐 수 있었으나, 계약자가 없는 엘라임과 트로이는 축복제 구경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일순 엘라임의 계약자인가 싶을 정도로 그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16549724086317.jpg‘분명 엘라임은 계약자가 없는데…….’

고개를 돌린 그들은, 이내 인간들이 들고 있는 등불보다도 환하게 반짝이는 황금빛을 발견했다. 아주 드문 영혼. 다른 세계에서 차원의 틈새에 빠진 그들의 아이를 구해준 적이 있는 인간이다. 하급 정령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선하고 당찬데 어딘가 모자라서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고. 예쁘고 귀여운 것이라면 환장하는 페르세스는, 환생을 도운 엘라임만 아이에게 콕 인장을 찍어놓은 것이 아주 불만스러웠다. 그리하여 자기도 만난 김에 저 아이에게 침 좀 발라놓자며 발버둥 치는 것이었다.

16549724086322.jpg“좀! 트로이가 하는 말 못 들었어? 지금 정령의 기운이 강해져봤자 마족들과 인간들의 표적만 된다니까?”

16549724086317.jpg“이 멍청이야, 둘까지는 괜찮댔어. 즉, 나까지는 문제없단 소리지.”

16549724086322.jpg“아니, 그래도……!”

16549724086317.jpg“어허. 괜히 질투하지 마, 추하다 이 추프리트야.”

추프리트…… 이 마녀가 진짜! 이프리트가 막무가내인 페르세스를 말리면서 이벨리아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질질 끌고 들어갔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이 마녀를 말리려면 육탄전을 벌이는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본 이벨리아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둘이 하는 대화까지는 들리지 않았으나 아름다운 언니가 고성을 치고, 남자가 골목길로 끌고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하니 나쁜 짓을 벌이려는 것이 분명했다. 딱 양아치처럼 생겼더라니. 하는 짓도 양아치구나! 기사의 가문에서 자라 기사도 하나만은 빠삭하게 익히고 있었다. 이 상황은 이벨리아가 들은 기사도에 맞지 않았다. 이벨리아는 로브를 살짝 들추어 단검을 손에 쥔 다음 타박타박 여자가 끌려 들어간 골목길로 따라갔다. 아주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16549724086317.jpg“놔! 안 놔?! 이 양아치가 어디다 손을 대?”

16549724086322.jpg“가만히 있으라니까, 좀!!”

질질 끌어대는 이프리트에게 짜증이 난 페르세스가 거대한 바람으로 쳐내려던 찰나,

16549724056696.jpg“이 노옴!”

잔뜩 위엄 있는 척 소리치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골목 어귀에서 들려왔다.

16549724115568.jpg“……?”

치고받고 싸우던 이프리트와 페르세스의 시선이 동시에 쨍한 노란색 후드로 향했다.

16549724056696.jpg“이 나쁜 놈! 감히 제국의 수도에서 못된 짓이라니! 어서 레이디를 보내드리지 못하까!!”

멋들어지게 후드를 휙 던지려고 했건만. 목에 걸린 리본이 잘 풀리지 않았다.

16549724056696.jpg“켁. 걸려따.”

이벨리아가 낑낑대며 후드를 잡아 뜯다시피 벗어던졌다. 후드에 가려져 있던 황금빛 머리칼이 어두운 골목에서도 환히 빛을 내었다. 푸른 두 눈은 불의를 보고 참지 않겠다는 듯 불타오르고 있었다. 누가 아르티나 가문 아니랄까 봐. 발개진 얼굴로 단도를 뽑아 드는 이벨리아의 눈은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냈다. 그 눈빛만 보면 가진 실력이 그토록 엉망진창일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16549724086317.jpg“어머머……!”

페르세스는 저를 구하겠답시고 삐약대는 작은 병아리를 보고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외마디 감탄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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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맙소사, 너무 귀엽잖아!

16549724056696.jpg“웅디네!!”

16549724144026.jpg[계약자-학!!]

비장하게 자신을 부르는 계약자의 목소리에 근엄하게 나타났건만. 앞에 계신 두 분은 바람과 불을 지배하는 왕들이 아니시던가. ‘계약자!’를 외치며 당당히 나타난 운디네의 목소리에 삑사리가 났다.

16549724086317.jpg“아-하하하!!”

불의 왕을 물리치겠다고 물의 하급 정령을 불러낸 아이의 용기가 가상했다. 페르세스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눈에 맺힌 눈물방울을 닦았다. 이프리트는 운디네를 보며 검지를 입술에 올리고는 이내 목을 스윽- 긋는 시늉을 했다.

16549724086322.jpg‘우리가 누군지 발설하면 죽는다.’

끄덕 끄덕 끄덕. 의미를 단번에 이해한 운디네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뽀실뽀실 이벨리아에게로 다가가 머리 위에 안착했다.

16549724144026.jpg[그…… 저…… 오늘은 내가 컨디션이 좀 안 좋아, 병아리야.]

16549724056696.jpg“전련도 그런 게 이떠?”

16549724144026.jpg[그럼, 있지. 아무래도 감기에 걸렸나 보다. 아이코 어지러워. 켈록, 켈록.]

16549724056696.jpg“웅디네는 그럼 쉬어. 저 얀아치는 내가 혼내줄게. 어서 레이디를 노아라!”

16549724086317.jpg“아하하하! 양아치란다, 양아치! 우리 아가가 보는 눈이 좀 있으시네!”

16549724086322.jpg“너, 마녀…… 이 자식……!”

페르세스가 한층 더 강하게 목을 옥죄어오는 이프리트를 향해 손을 한 번 휘젓자, - 퍼억. 이프리트가 가볍게 날려가 벽에 처박혔다.

16549724086317.jpg“어머, 실수! 어휴, 말도 많네, 양아치가.”

페르세스가 유려한 한쪽 눈썹을 슬쩍 올렸다가 내리더니 손을 탁탁 털면서 이벨리아에게로 걸어왔다. 또각또각, 높은 구두 소리가 골목길에 울렸다.

16549724056696.jpg‘구하려던 레이디가 한 손으로 얀아치를 날려버려떠…….’

이벨리아는 사실 악당이 이 언니였던 건가 싶어 반 발짝 슬금 물러났다. 조그마한 머리를 빠르게 굴리는 사이. 지척까지 다가온 페르세스가 쪼그려 앉아 이벨리아와 눈을 맞추었다. 은빛 눈이 요요하게 휘었다.

16549724086317.jpg‘엘라임 말이 맞네. 아주 예쁜 황금색 기운이야. 기분까지 좋아지는.’

한편 이벨리아는 이벨리아대로 가까이서 눈을 마주친 페르세스가 아름다워 입을 헤- 벌리고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16549724056696.jpg“와아…… 아주 예쁘다…….”

악당일 수도 있지만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16549724086317.jpg“아, 진짜 너무 귀엽잖아!!”

페르세스가 은빛 눈을 반짝이며 당장이라도 이벨리아를 끌어안을 것처럼 손을 움찔댔다. 저 녀석 저거 또 시작이네. 벽에 처박힌 이프리트가 눈을 살짝 찡그렸다.

16549724086317.jpg“아가, 언니라고 좀 불러볼래?”

16549724056696.jpg“……언니? 다친 곳 업떠요?”

착실하게 언니라고 부르는 와중에도 혹시 다쳤을까 이리저리 기웃대는 아이는 심히 사랑스러웠다. 고위 악마나 신들 정도가 아니라면 쉽게 상처 낼 수 없는 정령왕의 몸 상태를 걱정하다니.

16549724086317.jpg“우리 용감한 기사님 덕분에 살았네. 고마워!”

페르세스가 은빛 눈을 곱게 접으며 감사를 건넸다.

16549724086322.jpg“으으, 야 마녀.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담벼락에 처박힌 이프리트가 부스스 일어나 뒷머리를 매만지며 가까이 다가왔다. 이벨리아는 흠칫 경계하며 단도를 꼬옥 쥐었다. 생긴 것으로 사람 차별하면 안 되는데, 아무래도 저 사람은 양아치가 맞는 것 같았다. 양아치가 아니고서야 저렇게 생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아치가 아니라면 저렇게 웃통을 홀랑 까고 있을 리가 없었다.

16549724086317.jpg“아하하- 괜찮아, 기사님. 우리는 친구야. 조금 과격하게 장난친 것뿐이지.”

진위를 살피고자 둘레둘레 둘을 번갈아서 바라본 이벨리아는 페르세스의 눈빛에 어떠한 두려움도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단도를 다시 허리춤에 찬 뒤 운디네를 돌려보냈다. 어쩐지, 예쁜 언니가 잡힌 상태에서도 웃더니 둘이 친구라서 그랬었나 보다. 그 모습을 바라본 페르세스의 눈에 다시 한번 이채가 서렸다. 으으, 귀여워. 홀랑 데려가고 싶어.

16549724056696.jpg“그러면 저는 이만 가보께요, 오라버니가 거쩡할지 몰라서.”

이벨리아가 노란색 후드를 주섬주섬 주워 입자, 페르세스가 리본을 다시 예쁘게 묶어주었다.

16549724086317.jpg“있지, 다음에 만나도 언니라고 불러줄래?”

끄덕끄덕. 이벨리아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자 페르세스가 ‘꺄아!’ 비명을 지르며 꼬옥 껴안았다. 엘라임 나쁜 자식, 이래서 혼자만 봤던 거야!

16549724086317.jpg“자, 언니가 데려다줄게! 사람이 많아서 아가 혼자 걸어가면 위험해.”

페르세스가 이벨리아를 번쩍 들어 안았다. 순간 불안한 낌새를 느낀 이프리트가 소리쳤다.

16549724086322.jpg“야, 너 양아치 짓 하지 마라?”

인장 찍지 말라는 말을 돌려서 건네었건만.

16549724086317.jpg“무슨 말인지?”

씨익 웃으며 뒤돌아보는 페르세스의 품속. 얌전히 안긴 이벨리아의 오른쪽 눈 밑에는 이미 물의 인장과 함께 바람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16549724086322.jpg“야! 너 진짜!”

페르세스는 황급히 따라오는 이프리트를 향해 메롱- 혀를 내민 뒤, 이벨리아가 원래 서 있던 곳으로 데려와 내려두었다. 여동생을 애타게 찾고 있던 세드릭이 울먹이는 얼굴로 후다닥 달려와 끌어안았다.

16549724056701.jpg“이브! 어디 갔었어! 놀랐잖아…….”

이어 카론이 페르세스와 그 뒤에 따라오는 이프리트를 경계하며 칼집에 손을 가져다 대자,

16549724086317.jpg“제가 큰일을 당할 뻔한 걸, 용감한 어린 기사님이 구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페르세스가 고양이 같은 눈을 요염하게 올리며 세드릭과 카론을 향해 미소 지었다. 눈을 마주친 세드릭의 얼굴이 화르륵- 붉어졌다.

16549724056696.jpg“또 바요, 언니.”

미련 없이 뒤를 돌아 걸어가려는 페르세스의 뒤에서 이벨리아가 삐약, 작은 목소리를 내었다. 오라버니만 가득하고 언니는 없는 이벨리아는, 시원시원하고 멋있는 페르세스가 마음에 들었다. 도도하게 앞으로 걸어 나가려던 페르세스의 걸음이 멈칫하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 이벨리아를 꼬옥 껴안았다.

16549724086317.jpg“아아- 아가 정말 언니랑 같이 갈래? 언니가 맛있는 것도 주고 보석도 주고 자알 키워줄게. 응?”

16549724056696.jpg“뎨동해요. 제가 돌바야 할 가독들이 아주 많아서.”

이벨리아가 도리도리 고개를 젓자, 페르세스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정령들의 눈에만 보이는 바람의 인장을 한 번 쓸었다.

16549724086317.jpg“곧 또 보자, 아가. 아마 금방 만날 거야.”

저도 콱 인장을 남겨버릴까, 멍하니 서서 고민하던 이프리트에게 페르세스의 일갈이 날아들었다.

16549724086317.jpg“뭐해, 가자. 질투쟁이 추프리트.”

추프리트……. 저 마녀 내가 언젠가 가만 안 둔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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